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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가정예배 ] 은총의 좁은 문 

 

 

 
 제  목 : < 오늘의 가정예배 > 은총의 좁은 문

 말씀 : 눅 13:24


 찬송 : 318장

 묵상 : 잠언 16:1-3(구약926쪽)

 사도신경고백

 찬송 : 270장

 기도 : 가족중


 본문: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말씀: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가는 인생은 마침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지만 좁은 길을 따라 좁은 문을 지나는 사람은 그문을 지날 때

마다 천국의 세계가 환하게 다가옵니다.


 그 첫째 문은 그리스도의 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

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12절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

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

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두며 예수님 중심으로 나갈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

다.


 둘째 문은 성령의 문입니다.  성령의 문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

신 성령세례를 받고 마음 속에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

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하늘나라 영광 길은 더 넓어지고 천국

의 광채는 더  환해지며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마음 속에

넘치는 것입니다.


 셋째 문은 성결주의의 문입니다.  성령충만하여 나아가면 그 다음에는 성

결하게 하는 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성결의 문을 지나

는 사람은 추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자리에 같이 앉 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서 성결케 함으로 하나 님과 대화하고 주 안에 깊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용기  를 얻어 이 문을 들어선 사람에

게는 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계시와 권능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좁은 길의 마지막 문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전적으로 의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보

기에는 바보스럽고 미련하고  아무것도 없는 생활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하늘나라의 화평이 넘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

에게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좁은문을 지나 좁은 길로

가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살

게 되는 은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저희가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오직 주님만 좇3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통성기도 :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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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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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제목: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본문:마 7:13,14

 

어느 날 아인슈타인의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물 한방울을 자신의 손바닥에 떨어트리며 말했습니다. 우주의 지혜를 바다에 비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이 물한방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바다에 비해 물한방울과 같은 그 지혜를 가지고 어떻게 성공하셨습니까?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세가지를 말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생활을 즐길 것, 세 번째는 삶의 여유를 가질 것 등 이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많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고, 자신의 생활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고, 삶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이성적으로 깊이 성찰해보지 못하고 그저 감정과 세파 속에 휩쓸려가기 쉽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주방기구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크게 성공한 후 유명해 진 미국의 성공철학자 지그 지글라(zig ziglar)라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①정직한 사람 ②인격이 좋은 사람 ③성실한 사람 ④신념이 강한 사람 ⑤충성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전세계에서 가장은 많은 강연을 한 인물로 20세기말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의 경영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통하여 개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은 그 책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①주도적이 되라 ②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③소중한 것부터 먼저하라 ④상호이익을 추구하라 ⑤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⑥시너지를 활용하라 ⑦심신을 단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또 나름대로의 비법을 가지고 열심히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공의 비법이 어디 있다고 여기십니까?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단언코 믿음과 노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앞서 말씀드린 것들도 다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건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믿음과 노력이 없다면 그 위대한 것도 이루어낼 수도 없고, 설령 이루어낸다해도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없으며, 설령 사람들 앞에 인정을 받는다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성공하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가운데서 인간적으로 인내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저절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귀하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들은 모두가 무언가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일이나 세상의 일이나 무언가 위대한 족적을 남겼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피나는 노력을 투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없이 매맞고 주리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끝까지 인내하며 참고 힘써 결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역시 몇 번씩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고 결국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수함으로 주님의 수제자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디슨은 이만번이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여 결국 전구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노아 웹스터라는 사람은 웹스터사전을 집필하기 위해 36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두 번이나 대서양을 횡단했으며, 시인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시를 보통 99번씩 다듬어 완성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은 무려 10년의 세월에 걸쳐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인생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위인이라고 불리거나 혹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남다른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좁은 길을 걸어 왔던 사람들입니다. 험하고 힘들어서 가기 어려운 좁은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입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에서 정말 올바르게 성공한다는 것도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그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일부러 골목길을 찾아다니라는 것입니까? 넓고 평평하게 잘 닦여진 고속도로로 다니지 말고 일부러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찾아다니라는 것입니까?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대로로 가지말고 음침한 골목길로 가라는 말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말씀입니까?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길을 그저 가기 쉽다고 아무 길로나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충 대충 하기 쉬운대로, 마음에 끌리는대로, 무사안일하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록 힘든 길이라도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옳은 길, 바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비록 간섭하는 것이 성가시고, 마음에 부담이 가더라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진리의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된 본성 때문에 그 길이 결코 가기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길을 포기하고 그저 편하고 무사안일한 길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러나 정녕 생명의 은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좁은 길은 무엇이며, 넓은 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 길을 가야만하는 것입니까?

1. 넓은 길은 육신에 이끌려 자기 마음대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13절의 말씀을 보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크고 넓은 길은 그저 육신의 이끌림을 따라 대강대강 갈 수 있는 길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 편한대로 부담없이 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길을 말합니다. 그 길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길입니다. 그저 죄된 본성의 욕구를 따라 가면되는 길을 말합니다. 사람의 통제나 제재도 받지 않으며, 하나님의 간섭도 거부하며 자기 마음내키는대로 가는 길을 말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입니다. 세상물결 흘러 가는대로 적당히 따라 가는 길을 말합니다. 그저 육신이 요구대로 살면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않습니다. 죄된 본성의 요구에 따라 때로는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살면서 자기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편한 길이겠습니까? 그것이 자유를 누리는 길이겠습니까? 물론 당치 않은 말입니다. 그것은 편한 길도 아니고, 자유의 길도 아닙니다. 그것은 간교한 사탄의 유혹대로 놀아나는 길입니다. 편하고 좋고 자유로운 길 같지만 그 길은 결코 자유로운 길이 아니라 죄의 노예된 길입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결국은 죽음의 길일 따름입니다. 그 길이야말로 뱀의 속삭임에 유혹되어 아담과 하와가 갔던 길인 것입니다.

어느날 뱀은 하와를 찾아가 속삭였습니다. 정말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러자 하와가 그렇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뱀은 다시 말합니다. 아니다. 죽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러자 하와는 점점 뱀의 꾀임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선악과를 보니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결국은 죽음과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괞찮다. 네 마음대로 해라. 네 편한대로 해라. 네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하라. 네 육신이 시키는대로 하라.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네 인생 네가 네 뜻대로 살아라. 왜 간섭받고 사느냐? 자꾸만 이래라, 저래라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필요없다. 그들은 너를 얽어매려고 한다. 너는 자유인이다. 그러니 네 마음에 편한대로 네 육신이 시키는대로 하라.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분명한 사단의 소리입니다. 사단의 소리가 별겁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거역하면 그게 곧 사단이요, 적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16:24절에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또 눅8:21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곧 내 모친이요, 내 형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좁은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요구에 충실한 삶이 아니라 주님의 요구에 충실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을 길로 휩쓸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셨던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실때에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좁은 길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을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꾸만 넓은 길로만 가려고 하는데 너희는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좁은 길이 뭡니까? 이 말씀은 크게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하나는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은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자신만이 유일하게 생명으로 통하는 하나밖에 없는 외길이기에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생명으로 통하는 길이 여러 군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길 예수님 밖에 없는 외길이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또 요한복음 10장 9절에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12절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딱 하나입니다. 곧 예수님만이 생명의 문이요, 구원의 문이요, 영생의 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길은 많다고 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는데 굳이 외길만 고집할 것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남쪽에서 올라가든 북쪽에서 올라가든 아무데로나 올라가도 정상에 올라가기만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나름대로 신을 찾아 올라가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소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사탄의 소리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소리가 사탄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라고 하는데 둘이라고 하면 그것이 사탄의 소리입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하고 연구해보아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사람의 소리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사람이 연구해보니까, 내가 도를 닦아 보니까 그런 것처럼 보이더라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미 예언되어 있던 메시야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대로 이땅에 오신 죄없고 흠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만이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고 생명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길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진정 생명의 은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주장하는 넓을 길로 가지 말고 오직 유일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인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여러분께서는 오직 한길 예수님, 오직 유일한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그 좁은 길은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실때에 생명의 은총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두번째로 좁은 길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은 쉽습니다. 그저 육신의 요구대로 살아가는 것도 쉽습니다. 죄된 인간의 본성에 따라 대강대강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세상 조류를 따라 떠내려가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그러한 삶을 살아있는 삶이 아닙니다. 죽은 삶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 갑니다. 그러한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힘차게 거슬러 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인생입니다.

오직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길은 결코 녹녹한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령이 죄와 무지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 죄와 무지로 오염된 심령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오늘날의 대세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것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조류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치와 이상과 문화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맞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된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길은 간섭받아야 하고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길입니다. 때로는 알기는 알면서도 우리의 육신 속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 우리를 자꾸만 다른 길로 내 몰아가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진리만이 가득하다면 저절로 진리의 길로 가겠는데 우리 안에 비진리가, 거짓된 것들이, 죄된 것들이,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것들이 들어있어서 우리를 자꾸만 그 길로 이끌어가려고 하니까 그것들과 싸우느라고 힘이 들기 때문에 어려운 길이고, 좁은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대 사도도 말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협착하다는 말은 계속해서 어떤 제재를 받는 답답한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육신의 요구와 생각과 세상에 보이는 것을 따라하면 쉽겠는데 그것들을 부정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힘써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좀 힘이들고 답답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비 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리를 따라 가려고 하니까 물질적으로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만나도 내 혈기대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위협을 받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희생해야 하고, 원수조차도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잘 안되고, 힘이 들고, 그래서 가기가 어려운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길이 비록 좁을 지라도 가야하고, 답답해도 가야하고, 손해를 봐도 가야하고, 희생을 당해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답답하고 손해를 보아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진리의 길이기에, 그 길만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기에 우리는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고달파도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죄와 무지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있어서 진리의 길은 결코 다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둠과 연약함과 무지함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있어서 진정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은 결코 넓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전한 진정한 성공자도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생명을 원하신다면 다수가 가는 길을 좇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행복을 원하신다면, 우리가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면, 더욱이 여러분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기를 원하신다면 진리 편에 서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편에 서 계시기 바랍니다.

비록 힘들고 외롭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면 열심히 좁은 길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자신을 부인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인생이 아니라 진리를 향하여 생명을 향하려 세상의 조류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모두 세상적으로나 하나님나라에서나 진정한 성공자가 될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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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4) - 우전도 전도사

 

 

우리의 삶은 세상에 한 번 왔다가

안개와 같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된 예복이 입혀집니다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1:6)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8)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오늘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증인이 된 것이나,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 하지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은 고난과 함께 전파되고,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정한 거듭남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고난 가운데 만났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편지를 쓰는 지금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고난 중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이 쉽지 않지만 복음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권합니다.

 
바울은 종종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가치를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즐겁게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님과 함께한 고난의 시간들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힘들고 피하고 싶었지만 주님과 함께 열매맺은 고난의 시간들!

그 고난의 열매는 곧 주님의 마음과도 같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욥기의 고백처럼 주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말씀처럼

그 고난의 열매가 우리의 내면에 정금같이 듬뿍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 동안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 고난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주님을 힘 써 알아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17:3 호6: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6:3)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고난으로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정욕적인 유익을 구하게 되고 정욕을 좇는 길은

욕심은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결국 사망의 길이요 멸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연단을 통하여

고난의 열매를 맺은분들이 이제는 당당히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고난으로 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받고 있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를 알려드리고 나눌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오시는 고난들을

인내로 받을 때마다 주님은 고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난 후에는

고난이 올 때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가를

또한 내가 죄인됨을 알고 바른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올 때는 잠간 근심과 고통이 눈물이 있었지만

고난 후에 맺힐 주님의 사랑의

열매를 생각하면 잠깐의 고통은 기쁨으로

넉넉히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오시는 고난의 의미를

이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으로 다가오셔서 사랑의 방법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1:6)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주님! 제가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사랑의 표현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도

모두 다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표현을 많은 분들이 알고 따르길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방법을 알고 따르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뀔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하는 법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의 방법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면 주님께서 주인으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자는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 십자가 도의 비밀을 알려주시려고

많은 눈물을 흘리시며 애통해 하신 것을 알게됩니다.(고전1:18)

그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지게하시는 십자가를 감사하며 지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면 지을 수록 주님의 사랑이

저의 내면에서 흘러 넘침을 감사드립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십자가를 왜 지라고 하셨는지

이젠 확실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있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이든 사도로서 감옥에 갇혀 있지만,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도 함께 받자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복음으로 인해 당하는

많은 고난들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곧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넉넉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을 순간순간 위로하시고 격려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도와주신다는 것과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들이 영광의 왕관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복음으로 고난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로 구원받은 감격을 누리기 위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둠에 구원의 빛을 비추기 위해, 닥쳐오는 고난에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주께서 (바로 거기에서)나와 함께하심이라”(시23:4).
 
하나님께서 우리를 헤아리시고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스런 면류관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진 자들에게 아름다운 혼인 예복이 입혀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자기부인과 좁은 문, 좁은 길, 그 십자가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도록 은총을

넘치도록 부어주소서.

그리하여 자기부인과 좁은 문, 좁은 길로 그 십자가를 많은 사람들이 지게 하시고

주님 오실 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을 입혀 주시옵소서.

속히오실 영광의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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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 은총의 좁은 문

 

 

 

 

 구  절 : 눅 13:24  / 찬송 : 318장

 묵상 : 잠언 16:1-3(구약926쪽)

 사도신경고백  / 찬송 : 270장

 기도 : 가족중


 본문: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말씀: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가는 인생은 마침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지만 좁은 길을 따라 좁은 문을 지나는 사람은 그문을 지날 때

마다 천국의 세계가 환하게 다가옵니다.


 그 첫째 문은 그리스도의 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

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12절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

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

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두며 예수님 중심으로 나갈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

다.


 둘째 문은 성령의 문입니다.  성령의 문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

신 성령세례를 받고 마음 속에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

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하늘나라 영광 길은 더 넓어지고 천국

의 광채는 더  환해지며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마음 속에

넘치는 것입니다.


 셋째 문은 성결주의의 문입니다.  성령충만하여 나아가면 그 다음에는 성

결하게 하는 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성결의 문을 지나

는 사람은 추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자리에 같이 앉 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서 성결케 함으로 하나 님과 대화하고 주 안에 깊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용기  를 얻어 이 문을 들어선 사람에

게는 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계시와 권능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좁은 길의 마지막 문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전적으로 의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보

기에는 바보스럽고 미련하고  아무것도 없는 생활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하늘나라의 화평이 넘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

에게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좁은문을 지나 좁은 길로

가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살

게 되는 은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저희가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오직 주님만 좇3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통성기도 :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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