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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해 인도네시아편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특징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로 정치와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 인구의 약 88%(176백만명)이 믿고 있는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는 단일신 종교로 '이슬람'은 뜻은 복종, 순종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슬람을 믿는 남자는 '무스림', 여자의 경우 '무슬리마'라고 부르며 경전은 코란입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국교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불교, 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모두가 공휴일이고 중동의 엄격한 이슬람과는 규율도 느슨한 것이 사실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슬람이 13세기 기존에 정착해 있던 힌두교와 불교와 함께 무력이 아닌 무역으로 인도네시아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다원적 종교관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가면 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이슬람 왕궁, 불교사원, 힌두사원이 인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두 개로 나누어진 이슬람 종파 때문입니다. 국민의 약 14.3%를 신도로 하는 [나흐다툴 울라마] 와 국민의 약 13.3%[무함마디야]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두 단체의 지향점이 다른 것도 문제인데 나흐다툴 울라마의 경우 코란, 하디스 외에도 4개의 법학파의 법률에 비중을 두고 있는 반면 현대주의자인 [무함마디야]는 코란과 하디스 외에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무슬림 인구의 지역적 분포인데 인도네시아 발리의 경우 비이슬람교인이 94%, 동부 누사떵아라 91%, 북부 술라웨시 54%, 말루꾸 46% 등 지역에 따라 천자만별로 다르다는 것도 이슬람이 국교가 되기 힘든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아쩨 주에서도 이슬람법을 적용하려 했으나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무산된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생활 속 이슬람 문화가 미치는 영향

생활 속에서 찾아보는 인도네시아 이슬람 문화

 

 

 

<사람들의 성향 >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운명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생활이 종교적입니다. 하루에 5번 신에게 예배하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고, 종교적 행사나 의식에는 제한받기를 싫어합니다. 회교도의 경우 금식월인 라마단과 금요일 정오의 모스크 참배에 꼭 참여하며 이슬람교의 전통으로 술을 마시거나 권하는 일이 드물고 그렇기에 술 마시는 사람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신자이면서도 생활 속에는 여전히 미신과 점 같은 토속적인 샤머니즘도 남아있어 여행, 이사를 하기 전 이슬람력과 자와력을 비교해 좋은 날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음식(Halal food) > 이슬람 음식의 중요한 특징은 돼지고기를 금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코란 53절에서 말하는 먹을 수 없는 육식에 대한 말씀을 따른 것으로, '돼지 같은 놈'은 가장 나쁜 욕에 속합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할랄푸드(Halal food)로 따로 분류하고 있으며, 할랄로 분류된 육류로는 소, 염소, , , 오리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무슬림의 손으로 이슬람식 도살 방법에 의해 잡은 것이라야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마트를 가면 식료품에 Halal이라는 마크가 있어 쉽게 확인이 가능하고 음식점 앞에도 Halal 마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슬림 친구와 외식을 갈 때도 메뉴마다 Halal 표시가 있어 함께 식사를 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라마단 >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아홉 번째 달로 1400년 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 서쪽 동굴에서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달입니다. 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승달이 떠오는 다음 날부터 단식을 시행하는 이슬람의 전통행사이며 이 기간 중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 물을 포함해 어떤 음식도 먹어서는 안되고 담배를 피워서도 안됩니다.

라마단이 끝나면 세계 무슬림들의 최대 명절인 이뚤 피뜨리(Idul Fitri, 혹은 르바란)가 시작되며 우리나라 추석처럼 수많은 도시인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르바란을 전후해서 일주일 동안은 관공서를 포함하여 모든 공공기관이 휴무를 하게 되며 르바란 40일 후에는 이뚤 아드하 꼬르반(Idul Adha Korban)이라는 희생제가 이어지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소와 염소 등을 잡아 음식을 나누는 행사를 말합니다.

 

 

<인도네시아여성>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와 목을 감싸는 스카프를 '질밥(히잡)-Jilbab' 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이슬람 최고 의결기구인 '울라마 협의회'는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섹시한 복장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무슬림 여성들은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긴 소매와 긴 바지, 치마를 입고 머리에 질밥을 쓰고있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10, 20대들이 즐겨 입는다는 질봅(Jilboob) 패션입니다. 인도네시아어 Jilbab과 가슴을 뜻하는 영어 boob의 합성어로 특히 가슴을 강조하는 패션으로 마르푸 아민 부의장은 "질밥을 착용하는 여성은 존중하지만 질밥 착용이 저속해 보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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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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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계시”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실체 이해

 
I. 서론

꾸란에서 "계시“전달자로 “가브리엘 천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은 Sura 2:97-98과 Sura 66:4이다.

그 밖에 Sura 53:5-7에서는 “가브리엘 천사”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3인칭 대명사 “그(he)”에 대한 각주내용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다루고 있다. 또한 Sura 97에서는 “계시” 전달자로 ‘the Rū�ḥ€(the Spirit)’가 한국어 꾸란에 각각 “성령” 또는 “가브리엘 천사”라고 번역되어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Sura 2:97-98, 53:5-7은 모두 메디나 “계시”이고,

 

 “가브리엘 천사”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Sura 53:5-7과 97은 메카 “계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최영길은 “어느 날 밤 무함마드는 눈 앞에서 신의 모습을 대하고 신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 하였으나 메디나 이주 후 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는 유대교의 교리를 알고 천사 가브리엘의 강림이라고 해석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슬람 학자조차도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던 당시에 자신에게 “계시”를 전하여 준 “계시”전달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최영길은 무함마드가 “계시”전달자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확신하게 된 동기를 유대교의 교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 부인 카디자의 사촌, ‘와라카 이븐 나우팔 (Waraqa Ibn Nawfal)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와라카는 기독교인이었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 성서내용의 일부를 읽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븐 히샴’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카디자와 함께 와라카를 찾아가지 않았고 다만 카디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카디자로부터 무함마드가 보고 들었던 것들에 대하여 전해들은 와라카는 “It is the great Namus.”라고 하면서,

만약 무함마드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면 무함마드는 선지자가 틀림없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Namus”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게 되어 진 것이다.

아랍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Namus”5는 “비밀-secret” or “법-law”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무슬림들에게는 “가브리엘 천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는 현대 이슬람사회에서 . “Namus” “명예”나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특별히 부인들이나 딸들, 여자형제들에 대한 남성의 명예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모세에게 율법이 임했듯이 무함마드에게 임한 “율법”을 “Namus”라고도 하고,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주었다는 “가브리엘 천사”를 “Namus”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와라카는 카바신전을 돌아보고 있는 무함마드를 찾아가서

모세에게 주어졌던 계시가 무함마드에게도 임했음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와라카는 메카의 기독교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도 아니었고

무함마드에게 임한 ‘영’을 정의해 줄만큼 영적으로 성숙한사람도 아니었다.

 

다음은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는 꾸란 구절들이다.

직접적인 언급이 있는 구절들과 간접적인 언급과 더불어 해설이 있는 꾸란 구절들을 고찰함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계시”전달자로 소개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자는 꾸란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실체를 각각 무함마드의 이해, 카디자의 이해, 민속 신앙적 이해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렇게 각기 다른 해석을 하는 이유는 꾸란 “가브리엘”의 “계시”에 관한 구절들8에서 볼 수 있듯이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가 한 번도 자신을 가브리엘 천사라고 소개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꾸란은 “가브리엘 천사”를 “성령”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서, 꾸란 “계시”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정체성 문제는 기독교 신관인 삼위일체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꾸란의 “계시”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천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II. 가브리엘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는 꾸란 구절들

A. Sura 2: 97-98

Sura 2는 메디나에서 계시된 286절로 전체 114장 중 가장 긴 장이다.

Sura 2의 장명은 “바까라(암소)”인데 내용 중 삼분의 일 이상이 성서의 백성들이라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자손 유대인들과 메디나에서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들과의 관계, 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음모, 죄악 등의 일련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10 이는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 들이며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메디나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러므로 Sura 2 : 97-98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계시”의 권위를 피력하면서 자신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Sura 2 : 97-98의 내용이다. 일러 가로되 가브리엘 천사의 적은 하나님의 적이라 말하라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그대에게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꾸란을 계시하셨나니 그것은 이전에 확증되었노라 그것은 믿음이 진실한 자의 길이요 복음이니라 하나님과 그분 의 천사들과 가브리엘과 미카엘에게의 적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적이거늘 실로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자들의 대적이시라

다음은 아랍어 꾸란의 음역으로 아랍어 원전에 “Jibriila (지브릴-가브리엘의 아랍어 격변화)”가 분명

히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Qul mań€-kaana 'aduw-walli-Jibriila fa-'innahuu nazzalahuu 'alaa qalbika bi-'iẓ�nillaahi muṣ€addiqal-limaa bayna ya-dayhi wa hudań�w-wa bushraa lil-Mu'-miniin,- (Sura 2:97) Mań€-kaana 'aduwwal-lil-laahi wa malaaa-'ikatihii warusulihii wa Jibriila wa Miikaala fa-'innallaaha 'aduwwullil-kaafiriin. (Sura 2:98)12

메디나 “계시”는 특성 면에서 메카 “계시”와 많은 차이가 있다. 꾸란 114개 장중에서 메디나 “계시”는 20개이고 나머지 94개의 장은 메카 “계시”이다. 그런데 장과 절의 길이를 보면 꾸란 전체의 3분의 1이 메디나 “계시”이고 3분의 2가 메카 “계시”이다. 그런데 초기에 “계시”된 메카 “계시”에 비하면 메디나 “계시”는 그 장과 절의 길이가 길다. 왜냐하면 메카 “계시”가 단지 우상숭배의 부정과 알라에 대한 유일신 신앙의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메디나 “계시”는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의 건설로 인하여 ‘움마’의 개념이 메디나 “계시”속에 나와 있으며 ‘움마’의 질서를 어떻게 이룩하여야 할 것인가가 메디나 “계시”에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메디나 “계시”는 군사를 포함한 정치적, 사회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특별히 사회성이 풍부한 것이 메디나 “계시”의 특색이라고 한다. 즉 메카 “계시”가 우상숭배의 부정과 알라에 대한 유일신 신앙의 확립이었다고 한다면, 메디나 “계시”는 정치적 시기를 맞아 대외적인 요소와 함께 대내적인 사회성을 풍부히 한 것이다. 무함마드가 “예언자”로서 메디나에서 살았던 시대는 10여년에 지나지 않지만 이때의 “계시”적 특성은 군사를 포함하는 정치성 때문에 “계시”의 구절이 산문조로 되고 내용도 훨씬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메카 “계시”처럼 암시적, 종교적, 상징적 이라기보다는 현실성이 많이 보인다.

메디나 “계시”는 기독교의 교리서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Sura 2 : 97-98은 “계

시”로서의 꾸란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보인다. 무엇보다도 Sura 2 : 97-98은 꾸란의 “계시”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해 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14 이 구절은 메카에서 최초로 “계시”되었다는 Sura 97과는 다른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Sura 97에서는 ‘the Rū�ḥ€(the Spirit)’를 한국어로 “성령”과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여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메카“계시”에서는 확신이 없게 기술되었던 “계시”전달자가 메디나 이주 이후에 주위의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더욱 확고해 졌음을 보여준다. 메디나 이주 이후에 쓰여진 꾸란 구절들이 산문적이고 상징적 이기보다 구체적인 것은 이슬람공동체 ‘움마’를 견고히 하기위한 교리작업의 일환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Sura 2 : 97-98은 꾸란 “계시”전달자로서 “가브리엘 천사”를 확고히 주장하고 있는 구절이다.

B. Sura 66: 4

Sura 66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12절로 선지자의 가정에 관계되는 규범을 소개하면서 무슬림여성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무함마드와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순결을 지키고 믿음에 충실한 여성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과 믿는 사람으로서 실수하고 , 과오를 범했을 때는 즉시 참회하고 선행으로 속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언급되고 있는데, 무함마드에게 누를 끼쳤다는 부인 ‘하프사’와 ‘아이샤’가 회개하지 않고 이로 인하여 무함마드가 이혼하게 된다 하여도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Sura 66:4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너희 둘이 하나님께 회개하면 너희에게 복이 될 것이라 또한 너희 마음도 이미 그렇게 기울었노라 너희 서로가 그분께 거역한다 하여도 하나님과 가브리엘천사와 믿음으로 의로운 자들이 그분을 도울 것이며 천사들도 더욱 그러하리라.

다음은 아랍어 꾸란의 음역으로 아랍어 원전에 “Jibriilu (가브리엘)”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메디나에서 쓰여진 구절은 아랍어 원전에서 ‘the Rū�ḥ€(the Spirit)’가 아닌 “Jibriilu (지브릴-가브리엘의 아랍어 격변화)”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이는 Sura 2 : 97-98에 관한 설명과 같이 ‘움마’공동체의 확립과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이슬람의 교리를 설법하고 꾸란 “계시”의 권위를 세우고자 메디나 이주 이후 후대에 이르러 “가브리엘 천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구절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장은 메카에서 “계시”된 5절로 이루어져 있다. 메카에서 내려졌다는 꾸란 구절들은 이와 같이 메디나에서 “계시”되었다는 구절들에 비하여 짧은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구절의 길이에 따라 구성된 꾸란의 특성상 꾸란의 뒤쪽에 있는 장들이 주로 메카에서 “계시”되었다는 구절들이다. 97장의 특징은 “계시”의 전달자인 “가브리엘 천사”가 주석에만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구절들과 달리 메카에서 “계시”되었다는 Sura 97에는 “Jibrill(가브리엘)”이라는 단어가 아랍어 원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Tanassalul-malaaa-'ikatu war-Ruuhu fiihaa bi-'iẓ�ni Rabbihim-min-kulli' ‘amr:”(Sura 97:4)17 여기서 ‘한 영(the Spirit by Allah's permission - Ruuhu)’ 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가브리엘 천사”라는 말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어 꾸란에 “가브리엘 천사”, “성령”이라고 표현된 것은 메디나 “계시”의 영향을 받아 꾸란 주석가들의 해석에 의한 것일 뿐이다.

본장의 명칭은 제1절의 “실로 하나님은 거룩한 밤에 이 계시를 내리나니”에서 언급된 ‘까다르’란 어휘

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꾸란 9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1. 선실로 하나님은 거룩한 밤에 이 계시를 내리나니

2. 거룩한 밤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대에게 설명하여 주리요

3. 거룩한 이 밤은 천개월보다 더 훌륭한 밤으로

4. 이 밤에 천사들과 가브리엘 천사가 주님의 명령을 받아 강림하여

5. 아침 동녘까지 머무르며 평안하소서 하고 인사하더라

Sura 97의 주제는 “경이로운 권능(능력)의 밤”이다. “계시”가 이 세상에 내려와 멋진 세상과 각 개인의 삶속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알라의 영적 능력이 나타나면서 그릇된 행실들을 바로하고 평화와 화합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19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가 이 밤에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꾸란이 “계시”된 것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새 시대가 도래 하였으나 이슬람에서는 그렇지 않다. 알라는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그의 말씀을 대신하여 보냈고 그 말씀이 꾸란(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a person)이 되었다. 여기서 무슬림들은 알라가 꾸란에서 현현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임마누엘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여기서 가장 큰 차이점은 꾸란 이라는 생명이 없는 글들과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차이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에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손주영도 그의 책에서 “기독교에서는 신의 말씀이 ‘육신화 되었음’을 믿는데, 무슬림들은 신의 말씀이 ‘꾸란이 되어 내려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신의 말씀’인 꾸란을 일생동안 부단히 읽고 암송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표현한다.”22고 한다. 여기서 “계시”전달자에 관하여 해석상의 문제를 살펴 볼 때 같은 저자인 최영길이 각각 달리 “가브리엘 천사”라고 했다가 “성령”이라고 해석한 것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 물론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성령”으로 이해하고 기술 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원문의 ‘Ruuhu - the Rū�ḥ€(the Spirit)’를 생각 할 때에 “성령”이 아닌 ‘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Ruuhu - the Rū€ḥ�(the Spirit)’를 ‘성령’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면 ‘Ruuhu- the Rū€ḥ�(the Spirit)’가 하나님의 영이 되므로 삼위일체론을 받아드리는 것이 되고, 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은 아들도 없고 동반자도 없다고 할 때에 ‘Ruuhu - the Rū€ḥ�(the Spirit)’는 ‘창조된 영’으로서 성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D. Sura 53:1-18

Sura 53은 메카에서 "계시"된 62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꾸란의 메시지와 부활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다른 메카 "계시"와 유사한 내용과 목적을 다루고 있다.23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한 점의 흠도 없고 무함마드의 이기적인 의도나 다른 사람들의 속이는 것으로부터 온 것이 절대 아니라 분명히 알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Sura 53의 주제는 꾸란 “계시”는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이나 착각은 알라를 의심하고 알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라는 모든 것의 원천이요 목적으로 꾸란 “계시”는 착각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 중 1절부터 18절까지는 무함마드에게 영에 대하여 두 가지 비젼(vision)을 주고 있다. 다음은 1절 부터 18절까지의 내용이다.

1. 지는 별을 두고 맹세하사

2. 너희의 동료는 방황하지도 않고 유혹 되지도 아니했으며

3. 그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4. 그것은 그에게 내려진 계시라

5. 그는 능력의 있으신 분25으로부터 배웠노라

6. 그는 지혜를 가지고 나타났으니

7. 그는 지평선 가장 높은 곳에 있었노라

8. 그런 후 그는 가까이 다가왔으니

9. 그 거리는 활 양쪽 끝 사이의 길이 혹은 그보다 더 가까웠더라

10. 그렇게 하여 하나님은 그의 종에게 전하고자 한 계시를 내렸으매

11. 그의 마음은 그가 본 것에 대하여 거짓함이 없더라

12. 그래도 너희는 그가 본 것에 관하여 논쟁하고 있느뇨

13. 실로 그는 다시 한 번 그를26 보았으니

14. 마지막 시드라 나무 옆에 있었더라

15. 그곳 가까이에는 영주할 천국이 있으니

16. 보라 시드라 나무가 가리워지매

17. 그의 시선은 흩어지지 아니하고 한계를 넘지도 않더라

18. 실로 그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예증들을 보았노라

우리는 메카에서 “계시”된 Sura 53:5에서 “계시” 전달자의 이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다만 주석가들이 “계시” 전달자를 “가브리엘 천사”라고 해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함마드는 대부분의 “계시”들을 말로 받았으나

Sura 53은 본 것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순니’파 사람들이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마드를 찾아와서 영감으로 비젼을 주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그가 들었던 음성과 그가 본 비젼을 알라로부터 온 “계시”라고 해석하였다. 그렇지만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이슬람교에서의 영감과 기독교의 영감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함마드는 그가 “계시”를 받은 경험에 대하여 여러 차례 그의 친구들에게 설명하였는데27 “계시”적 현상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Sura 53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가브리엘”을 약 30-50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는 그 영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영을 힘세고 권능 있는 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이 ‘가브리엘’의 특성28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 해석상 문제가 되는 구절은 5절과 13절인데, “능력이 있으신 분”과 “그를”은 영어 꾸란을 살 펴볼 때 “one mighty in power”와 “him”으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아랍어 꾸란에는 “'Allamahuu Shadiidul-Quwaa” (Sura 53: 5), “Wa laqad ra-'aahunazlatan 'ukhraa”(Sura 53: 13)29라고 나와 있을 뿐 “가브리엘 천사 - Jibrill”을 직접 언급한 구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꾸란과 영어 꾸란 각주에서는 ‘“가브리엘 천사”라고 일컬어진다.’ 라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후에 메디나 “계시”에서의 확실한 언급에 영향을 받아 주석가에 의하여 재해석되고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출처 :  소윤정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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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이슬람의 어제와 오늘

 

- Islam in Korea in the 21st Century ; The Past and Present’  

저자 : 이정순 | 출판사 : 도서출판 대서 

발행일 : 2012-11-15 | (152*225)mm 280p | 978-89-92619-73-8

 

머리말

   

한국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어 2045년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12619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영국투자은행인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 The Royal Bank of Scotland )인구 고령화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인의 평균나이가 2045년에는 50세로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고령화로 한국의 노동인구는 201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20년부터는 유럽과 일본의 노동인구 감소 속도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전망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이주노동자를 더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주 무슬림 노동자들이 현재보다도 더 많이 한국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 이슬람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에서 발흥되어 지난 1400여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발전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슬림을 중동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유럽과 북미, 아시아등 전 세계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슬람은 각 나라의 문화와 접촉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며 그들 나름대로 정체성을 형성하며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이슬람 문화는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문명이 혼합된 특유한 문화이다. 현재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16억 명이며,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다. 유엔은 이와 같은 추세라면 2200년이면 이슬람이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하여 비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들의 수적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다. 15만 명에 이르는 무슬림들을 한국의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슬림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슬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한국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 이슬람은 이슬람은 평화라는 태도를 내세우며 다가오므로 공격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것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한국은 더 이상 단일 문화국가가 아닌 다문화국가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 무슬림의 증가가 단일문화의 한국사회를 다문화사회로 점차 변화시키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무슬림들이 더 이상 한국에 소수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들은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다수로서의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과 이해가 더욱 깊이 있게 요구되고 있다.

   

2001년도 한국이슬람중앙회측은 한국인 무슬림이 34천여명이라고 발표하였다. 한겨레신문2011517-20일까지 한국의 무슬림이라는 주제 하에 4일간 연속기사를 내보냈다. 517일자 한겨레신문1면에는 한국에 13~14만 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적어도 45천여 명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무슬림은 지난 10년 동안 32.3%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과 한국과의 문화적 교류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이 이슬람을 전파했지만 1960년대까지 그 활동은 매우 미약했다. 1970-80년대 중동에 진출한 한국인 건설근로자들 중에 일부가 무슬림이 되었다. 1980-90년대 이슬람권 국가에 유학한 한국인들이 유학 중에 무슬림이 되어 귀국 후에 책출판과 대중 매체를 통하여 이슬람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또한 노동인력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무슬림들과 접촉한 한국인들 중 일부가 무슬림이 되기도 하였다.

   

이슬람은 막강한 오일머니를 통해 국내 곳곳에 모스크를 세우고 성인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포교 대상으로 삼고 있다. 19765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중앙모스크가 개원했다. 그 이후 20128월 현재 국내에 모스크가 17(11개의 모스크와 모스크 역할을 하는 6개의 문화센터)이다. 모스크로의 발전을 기다리고 있는 이슬람 임시 예배소는 서울 지역 5개를 비롯하여 광주, 인천, 대구, 부산, 대전 등 전국에 60여개소가 있다. 20111216일자 한국이슬람교의주간무슬림에는 남이섬에 관광휴양지내에 있는 종합음식상가(밥플렉스) 건물 2층에 무슬림 관광객들을 위한 예배실과 우두실이 마련되었다고 안내하고 있다.

 

200811국민일보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7.2%이슬람의 내용이나 특징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무슬림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1210일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혐오증ㆍ공포증) 실체를 진단한다의 주제 포럼에서 중동지역 K선교사는 현재 이슬람의 포교활동에 관련된 보도 내용 중 상당수가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2009418일 한국선교신학회 이슬람선교포럼에서 K교수는 이슬람포비아는 타당성이 결여된 음모이론에 가까운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단언하며 이런 위기감으로 인해 보수ㆍ근본적 선교사역자들이 음모론을 확산시켰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선교사와 K교수의 주장이 실린 기사가 한국인 무슬림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어 오히려 이슬람 측에서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현재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매우 편식되어 있다. 한국 선교단체 간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이슬람에 대하여 강의하는 강사들끼리도 의견이 다르다. 그동안 이슬람 포용론경계론으로 양분화 되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슬람에 대하여 잘 모르는 성도들만 혼란이 더 가증되고 있다. 또한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도 혼란을 주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더욱 올바른 이해와 무슬림을 향한 사역에 전략적인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이다.

  

이슬람을 올바로 알려고 할 때 이슬람 국가별로 서로 다른 양상이 있음을 알고 그것에 맞는 이해와 연구를 해야할 것이다. 이슬람권지역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라도 자신의 지역에 대해서만 잘 아는 것이지 다른 모든 이슬람권지역의 사역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분명 실제 상황과는 다른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610년에 발흥하여 21세기까지이어져 오는 약 1400년의 역사를 가진 이슬람을 오늘의 시각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시대별 특징과 이슬람이 전파된 나라마다 다른 환경에서 변형된 이슬람인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꾸란이 쓰인 7세기 이슬람과 21세기의 이슬람은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면이 매우 많다.

   

한국 이슬람이 출판한 책들 중에는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서구적 관점으로 인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다고 하면서 객관성 보다는 이슬람을 다양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런 정보는 한국사회에 또 다른 편견을 갖게 한다.

   

필자는 1980년부터 12월 말레이시아를 처음 방문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금으로 된 원형 모스크와 더운 날씨에 베일을 착용하고 길거리에 다니는 여성들과 여중생들도 교복으로 베일용 스카프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 등이 이슬람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 후 2012년 겨울 쿠웨이트를 방문하기 까지, 필자는 지난 32년 동안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고 중동과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를 포함하여 유럽과 북미, 남미, 동ㆍ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방문하여 현장조사와 학문적 연구를 하였다. 학문적 연구를 더 깊이하기 위하여 2004-2012년 겨울, 봄 학기 시작 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의 첫 학기 동안 방문연구원(Visiting Fellow)으로 네 번과 여름에 한 번, 모두 다섯 번 방문하였다.

 

2006219일 필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방문연구를 한 후 귀국길에 카타르 항공에 탑승했다. 카타르에서 한국에 오는 중간에 북경에서 한 번 더 탑승객을 내려주고 마지막 기착지로 인천에 들어오는 여정이었다. 북경에서 많은 승객이 내리고 나니 비행기가 텅 빈 것처럼 몇 십 명 안남었는데 비행기 중간에 무슬림 소녀가 혼자 앉아있기에 그쪽으로 다가가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무슬림 소녀가 저 한국 사람이 예요라고 말을 하기에 깜짝 놀랐다. ’아마 부모님 중에 한명이 외국인인가 보다하고 질문하니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라고 했다. 다만 부모가 무슬림들이기 때문에 아랍어를 공부하러 무슬림 소녀(K)가 아프리카 수단에 갔다가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에 입국하면서 평상복이 아닌 무슬림 여성들의 의상을 착용하고 비행기를 탄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필자는 한국인 무슬림들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여 온 한국인 무슬림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한국인 이슬람 개종 요인을 연구하여 학회지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전에 발표한 모스크의 역할과 상징성은 책으로 엮고자 약간의 수정과 편집을 하였다. 이 책에서 무슬림 여성의 베일외에는 무슬림 여성의 삶과 문화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필자의 다른 책 이슬람 문화와 여성에 구체적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국 이슬람의 역사는 이미 역사를 연구한 분들의 책을 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슬람 개종 사례는 이에 대한 공신력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하여 추측성의 보도가 아닌 필자가 오랫동안 수집한 한국의 주요 신문의 기사들과 한국이슬람중앙회의 자료 등을 인용하였다. 이것은 한국 이슬람에 대하여 막연한 추측이나 소문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에 근거해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신문 기사에 난 사람들의 이름은 약자로 처리하였다.

이 책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학적인 논쟁이나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며,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한국인 무슬림의 증가 현상을 올바로 인식하여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신학적인 것보다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반적인 이슬람의 역사, 종교, 문화ㆍ사회적 관점과 무슬림들의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한국사회와 교회가 무슬림을 단순히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상과 확산에 대한 좀 더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하려는 데에 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21세기 한국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유용성을 제공하며 올바른 안목을 기르는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출판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도서출판 대서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정순.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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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파학파 the Hanifite

 

법학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다. 페르시아인 Abu Hanifa(767 사망)가 이라크에서 창시되었다. 이라크의 상황이 무함메드가 살던 상황과 유사한 경우 쿠란 그대로 적용하고, 다를 경우 유추해서 적용했다. 다른 학파에 비해 인간의 사유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더 넓게 열어놓았다. 유추에 의한 결정이 일반적 정의에 어긋날 경우 공공이익을 위한 판단 istihsan에서 나오는 '신중한 의견' 또는 '인정된 정의'를 참고로 다시 결정했다. 압바스조, 오스만 터어키가 이들의 입장을 따랐다.

 

말리크 학파 the Malikite

 

메디나에서 말리크 이븐 아나스 Malik ibn Anas(753-795)가 창시했다. 쿠란과 하디스에 의해 법, 의식 해석하고, 애매한 경우 메디나의 '합의된 의견' ijma에 의존했다. 하디스의 정밀한 분석과 엄정한 비판을 통해 신뢰성을 고양시켰다. 해석이 어려운 경우 유추법 사용하고, 이것이 ijma와 상충할 경우 공공이익을 감안하여 결정했다. 이 학파는 보수적 성격을 가졌으며, 꾸란에 배치되는 예언자의 관행을 과감히 배척했다. 현재 북아프리카, 남부 이집트, 동부 아라비아에서 지지되고 잇다.

 

피 학파 the Shafiite

 

법학을 체계화한 학파로, 페르시아 출생 아랍인으로 쿠라이쉬 부족 출신 알-샤피이 al-Shafii가 창시했다. 그는 말리크의 제자로, 독자적인 법률과 전통 관습의 조화로운 절충을 통해 합리적 법학 이론의 토대를 형성했다. 이 학파는 법의 네 근원을 구분한다. 알라의 계시 쿠란, 예언자의 언행 하디스, 법학자들에 의해 표명된 무슬림 공동체의 여론 ijma, 이성에 의한 유추 qiyas가 그것이다. 그중 끼야스 적용에 명백한 규정과 한계를 두었다. 네 근원의 배열에서 이성의 사용을 부차적 요소로 두었다. 쿠란과 하디스에 동등한 권위를 부여했는데, 때로는 하디스에 더 권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불충분한 증거에 기반한 '독자적 해석'도 거부했고 이즈티흐산(선호)을 부정한다. 현재 동부 인도, 북부 이집트(카이로), 동부, 남부 아프리카, 남부 인도에서 지지되고 있다.

 

한발리 학파 the Hanbalite

 

아흐마드 이븐-한발 Ahmad Ibn Hanbal(855 사망)이 창시했다. 그는 알-샤피이의 제자이지만 '독자적 해석'에는 스승보다 더 비타협적인 순수한 전통주의자였다. 꾸란과 예언자의 관행, 즉 순나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현재까지도 샤리아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신앙공동체로 지속되고 있다. 끼야스를 샤리아 법원으로 수용하는 문제에 가장 배타적 입장을 취했다. 무타질라파에 반대했는데, 무타질라파가 쿠란의 창조성을 주장할 때, 이에 단호히 맞서 쿠란의 영원성을 주장했다. 첫째는 쿠란, 둘째는 하디스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Hijaz와 사우디아라비아 전역에서지지되고 있다.

 

기타

 

자히르 법학파

4대 법학파에는 들지 못하나 중요한 학파이다. 쿠란의 외면(자히르)적 의미를 강조했다. 법률해석에서 꾸란과 순나의 언어적 의미에 크게 의존한다. 다른 학파의 견해를 전혀 참조하지 않는 고립적 해석태도 견지한다. 그러나 이성, 유추, 유효 istishab, 모방 taqlid 반대한다. 이 학파는 이라크에서 무함마드 이븐 다우드(909 사망)가 창시했고, 이븐 하즘(1064)이 발전시켰다. 이븐 하즘에 의해 유독 스페인에서 성행했다. 후에 신지학적 수피즘의 대가 이븐 아라비(1240)에도 영향을 미쳤다.

 

 

법학파들에 대한 무슬림의 태도

 

마드하브(법학파) 통합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견의 존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징표라는 하디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법학파 간 차이는 대부분 사소한 것이었다.

 

이즈마

11세기에 마드라사(신학교) 설립하여 네 개 법학파 모두에게 공간을 제공했다. 이즈마(공동체의 합의) 정신에 따랐는데,이즈마는 쿠란, 전승, 유추에 이어 네 번 째 法源이 되었다. 초기 이즈마는 다른 지역의 관례나 전통 받아들여 새로운 방안 모색하는 창조적 역할 했으나, 10세기 말, 11세기 초에 경직화되어 변화 억제 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이즈티하드(法源)의 문은 닫혔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 결과 이즈마가 고착되며 적응력울 잃기 시작했다.

 

샤리아(넓은 길, 곧은 길)

 

하느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신자들의 의무조항으로, 이것의 유일한 입법자는 알라이다. 이 샤리아는 법전화된 적이 없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종교적 가르침이 지닌 실천적 면을 형성하며, 또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세세대대로 전수되었다. 종교판사(카디)는 그 이행여부를 감독했고, 무프티는 어떤 행위가 율법에 준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적 소견서(파트와)를 제출했다.

 

피크(통찰)

샤리아를 다루는 학문으로 신학에 바탕을 두고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샤리아 중 사법적인 부분은 1869년 오스만 제국의 메젤레 속에 법전화되었다. 모든 행위를 다섯 범주로 분류했다. (의무적 행위, 바람직한 혹은 추천할만한 행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행위,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 금지된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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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무슬림 ?

Muslim이란 '복종하는 자', '이슬람에 자신을 봉헌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Islam'승인하다', '복종하다', '자신을 봉헌하다'는 동사의 부정형에서 파생한 명사로 순종, 복종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은 쿠란을 최종 계시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슬람 종교사의 자료는 Hadith(전승집), 예언자의 전기로 구성된다.

 

무함메드 이전의 아랍 종교

 

인종과 경제적 상황

아랍인은 셈어를 사용하는 족속이 다수이지만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함메드 당시에 도망해온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서부에 자유롭게 거주하고 있었으며, 대상들의 교역로가 발전하고 있었다.

 

종교적 상황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종교는 원시 셈족의 사막 신앙에서 발전했다. 남부 아라비아는 바빌로니아 종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月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지방신을 숭배했고, 멕카에서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 세 여신 숭배가 있었다. 그 신들은 母神 -라트 al-Lat, 운명의 여신 알-마나트 al-Manat, 비너스의 배우자이며 새벽별을 상징하는 알-우즈자 al-Uzza, 이들 모두는 알라의 딸들로 믿어졌다. Allah는 창조자, 지고신으로, 무함메드의 부족 Quraysh가 숭배한 신이다. 이들은 상위신 외에 천사와 여러종류의 靈魔 jinn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천사들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유익한 존재로 여겨졌고, 영마는 아담보다 2천년 먼저 창조되어 대부분 악의 근원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아라비아 전역, 특히 베드윈족 사이에서는 자연 숭배가 보편적이었다.

 

멕카 Mecca

가장 성스러운 신전 중 하나인 Kaba가 있는 곳이었다. 이 안에 있는 거대한 운석이 숭배의 대상이다. 카바 근처의 성스러운 우물 Zamzam(하갈과 이스마엘에 이곳에 왔다는 전설)도 숭배의 대상으로 소순례 Lesser Pilgrimage가 행해졌다. 카바 안에는 일종의 판테온이 구성되어 있었다. 주요 순례지로 멕카가 자리잡고 있었고, 또한 부족간 갈등의 정점이기도 했다.

 

 

예언자 무함메드

 

대략 571년 쿠라이쉬 부족 하심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출생 이전, 어머니는 6살 때 사망했다. 그후 조부 아브드--무타립 Abd-al-Muttalib과 삼촌 아부 타립 Abu Talib 밑에서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다. 후발과 알-우즈자를 숭배했고, 영마, 사탄, 길조와 흉조 등을 믿는 아리비아 신앙에 회의를 가졌다. 그의 종교적 변화는 유대교, 기독교의 신관념, 심판, 종교적 삶의 영향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친지 WaraqaUmaiya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심취했다. 기독교에 대한 정보는 주로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15세 연상의 하디자와 결혼 2,3명의 아들 낳았으나 모두 어려서 죽고, 네 딸 중 오직 파티마 Fatima만이 그보다 오래 살았다. 그는 정신적 시련을 거치면서 기독교의 신관과 심판 관념등에 동요했다. 40세깨 메카 주변을 방황하며 명상했다.

 

예언자의 소명

멕카 북쪽 수 마일 떨어진 히라 Hira 산의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권능과 명증의 밤"이라고 부르는 날 신의 사자인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환상이 끝난 후 계시의 전체를 재현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며 고민하여 수개월에 걸쳐 체험을 회의하다 스스로가 알라의 진정한 예언자 nabi 이며 사도 rasul 임을 자각했다.

 

초기활동

설교의 기본 내용은 육체의 부활과 지옥의 불에 대한 예언이었다. 초기계시에서는 신의 단일성보다는 신의 권능과 최후 심판에 대한 언급이 주종을 이루었다. 신이 복수로 나타나기도 했다. 쿠라이쉬 부족 사람들은 신의 단일성에 대해서는 반발하지 않았으나, 무함메드가 예언자라는 주장에는 반발했다. 예언자라면 부족 전체의 지도자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회정의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의무를 강조했다. 추종자들은 소수(초기 4년 동안 불과 40여명)였다. 첫 추종자는 하디자, 양자가 된 노예출신 소년 자이드, 아부 탈립의 아들 알리, 상인 아부 바크르 Abu Bakr얐다. 유일신 교리는 메카의 주된 수입원(순례객)을 위협하는 것이므로 반발을 초래했다. 무함메드의 활동에 대한 부족의 반대자들의 방해가 극심했다. 그는 아부 탈립 사망후 이주 계획를 세웠다. 이주 Hijra6226월에 야트립으로 이주하면서 이루어졌다.

 

메디나의 신정정치

 

야트립으로 이주 후 도시의 통치권 장악 후 마디나트 안-나비(줄여서 메디나, 예언자의 도시)로 개명했다. mosque를 건설했고, 단순하고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냈다. 멕카의 대상 공격으로 멕카와 공방전 후 6301월 멕카를 정복했다. 그후 무함메드는 카바 신전의 개혁을 단행해 우상을 파괴하고, 아브라함과 천사들의 그림도 파괴했으며, Zamzam을 정화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아라비아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지배권을 확보했다.

 

생의 후반기에는 계시의 운문 형식은 줄고 종말론적 경고는 의례나 제도적 문제에 대한 가르침으로 대체되었다. 무슬림들의 삶의 모든 분야를 종교에 의해 규정했다. 비스밀라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로 모든 행위를 시작했고, 하느님 앞에 직접 서므로, 중재자 역할 하는 사제 계급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무함메드는 632년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 설교에서 "모든 무슬림은 모든 무슬림과 형제"임을 천명했고, 죽기 전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 caliph(계승자)로 선출했다.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

 

무함메드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 이슬람의 신앙 iman 의식, 또는 의무 din의 토대가 되었다. 신앙보다는 의식의 많은 부분이 정형화되는 과정에서 후대의 변화와 영향이 많았다.

 

쿠란과 그 가르침

쿠란은 이슬람의 근본, 낭송, 복창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를 의미한다. 쿠란은 하늘나라에 보존되어 있는 서판에 담긴 쿠란의 원본이 드러난 것이다. 오직 정결한 자만이 만지거나 낭송할 수 있다. 무슬림들에게 쿠란은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므로 번역할 수 없는 일이다. 번역하는 경우도 단지 그 책의 의미에 대한 설명, 즉 여러 가지 의미의 해석 중 하나일 따름이다. 쿠란의 문체는 모방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문장의 배열이나 문자 하나하나의 배치에 있어서조차 신성하고도 불가사의한 신비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쿠란의 편집은 우스만 시절에 이루어졌는데, 시대순이 아니라 길이순으로 편집되었다. 심판을 강조하는 초기의 단편적 계시가 뒷부분에 수록되었다. 단지 하나의 짧은 기도문만이 일종의 서문으로 채택되어 맨 앞에 배치되었다. 그것은 파티하(開章)로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처럼 사용되었다. 114개의 수라에는 소, , 질주자 등 각각 짧은 표제가 붙어 있다. 예를 들어 수라 112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주제로 하고,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하는 두 개의 짧은 기도문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어떤 수라, 또는 단 한 개의 소절이라도 낭송하려면 먼저 저주받은 사탄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주문과 바스말라를 낭송했다. 바스말라는 "비스밀라힐-라흐마닐-라힘"(자비롭고 자애로운 하느님의 이름으로)으로, 수라 9를 제외한 모든 수라 앞에 놓여 있는 말이다. 우르드어로 비스밀라 카르나는 단순히 '시작하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터키어로 하디 비스밀라는 '시작하자' 라는 의미이다.

 

어떤 수라는 각별한 영험(바라카)가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수라 36(야신)은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낭송된 것이다. 각각의 쿠란 구절은 아야트(징표,기적)라고 불렸다. 쿠란에 나오는 인간 존재의 위상은 영들이나 천사보다도 우월한 존재였다. 하느님이 '당신의 숨결로부터' 생명의 입김을 아담에게 불어넣었고, 그릴 자신의 대리자(할리파)로 삼고자 했고, 천서들로 하여금 그에게 절을 올리도록 명했다고 한다. 한편 쿠란은 원죄를 부정한다. 인류 최초의 죄는 유전되지 않았고,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나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쿠란은 인간과 하느님의 절대적 유대관계를 강조했다. 하느님이 아담의 자녀들을 영예롭게 하고(수라 17/70), 아마나(신탁)를 맡겼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쿠란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이 지평선 안(즉 이 세상)과 자신들 속에 놓아둔 징표를 보며 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기 수라(메디나에서 계시된 수라)에는 세상사, 일상사, 정치적 문제에 대한 상당한 양의 가르침을 포함했다.

 

언어의 숭고함을 강조했기 때문에 아랍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경시가 있었다. 이 쿠란은 영창조로 낭송되었다. 암송자 암송자 하피즈(모두 암기하고 있는 사람)는 존경받음

 

쿠란의 해석

무함마드 사후 몇 세대 동안은 무슬림들 대부분은 쿠란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완전히 일치하는 해석은 없었다. 다앙햔 해석의 사실 자체가 쿠란의 초자연적 성격을 증거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씀도 무한한 것이었다.

 

주석 작업은 타바리(935 사망)30권 주석서가 최초의 역작이다. 쟈마흐샤리(1146 사망)는 유명한 주석서를 무타질라파 입장에서 저술했다. 13세기 바이다위 주석서, 15세기 말 잘랄루딘 앗-슈우티 주석서, 19세기 오스만 터키의 엘말리 주석서 널리 사용했다.

 

신비가들은 의미의 참된 핵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문자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러한 노력은 단어의 어근을 캐고 각 표현을 관련지어 보고하는 것이 거의 무한하게 가능한 아랍어의 특성으로 대단히 용이했다.

 

쉬아파, 특히 바티니야 파는 쿠란의 비의적 의미를 강조했다. 쿠란을 읽거나 낭송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직접 대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하느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쿠란 읽는 행위 자체가 성례였다.

 

중세에는 신비수리학적 해석술이 발달했다. 일련의 문자로부터 그 數理値나 조합을 구해 심오한 의미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필사본이 다소 후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간과했다.

 

현대적 해석으로는 무스타파 알-마자라기의 "어떤 명백한 진리가 계시된 문장과 양립할 경우, 그 문장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관점, 사이트 아흐마드 칸(1898 사망)의 자연에 드러난 하느님의 役事는 쿠란에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관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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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상식

1) 이슬람의 의미

이슬람(Al-Islam)은 아랍어로 신(알라)에 대한 "복종","순종"을 의미하며,

이슬람을 믿는 신자가 남성일 경우 "무슬림" 이라고 하고 여성일 경우는 "무슬리마" 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을 통해 이슬람이 전해 지면서

회족들의 종교라는 의미에서 회교로 부르게 되었다.

 

 

2) 꾸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40세 되던해부터 사망하기까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계시를 받은

(알라)의 말씀으로 이슬람의 경전이다.

꾸란은 암송형태로 전해지다가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들에 의해 여러 곳에서 문자화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3대 칼리프 시대에 현재의 꾸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소각하였다.

(알라)의 말씀이 담긴 책이므로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기 전에 몸을 청결히 해여 하며,

꾸란을 읽을 때에는 경건한 자세를 해야하며 음식을 먹거나 남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꾸란을 읽지 않을 때는 경외의 의미에서 천으로 싸서 가장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3) 모스크(Mosque)

에스파냐어 메스키타 및 프랑스어 모스케를 거쳐 영어로 변한 것임.

아랍어로 마스짇은 '이마에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을 뜻한다.

회랑(回廊)이 있고, 안뜰에는 청정(淸淨 :우드)의식을 행하는 샘물이나 수도가 있다.

건물 내부에는 메카의 방향(키브라)을 나타내는 벽감(壁龕 :마흐라브)과 설교자(키티브)

위한 단(:민바르)이 있다.

회랑 한쪽에는 1~6개의 탑(마나르)이 솟아 있고, 예배시각이 되면 예배당을 지키는 무아딘이

탑에 올라가 예배를 권유하는 '아잔'을 소리 높여 낭송하다.

 

 

 

 

4) 예배(쌀라)

메카(카바신전) 방향으로 하루 5번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새벽기도 2, 정오 및 오호, 밤은 4, 일몰은 3번의 절을 하며 기도한다.

- "파즈르(fajr)" : 동트기 전 기도

- "주흐르(dhuhr)" : 정오기도

- "아스르(asr)" : 오후 중반에서 해지기 사이 2-3시 경 드리는 기도

- "마그립(maghrib)" : 해진 직후 드리는 기도

- "이샤(isha)" : 잠자기 전에 드리는 기도

이슬람 기도의 주목적은 자기 정화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거치지 않고 직접 알라와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정오에는 무슬림 신도들이 모두 모스크에 모여 단체 예배를 드린다.

 

5) 청정 의식(우두)

이슬람은 몸과 마음의 청결을 중요시 하며, 신체와 정신의 청결은 꾸란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신자들은 기도나 예배 전 이슬람식 간단한 세정(우두)을 한다.

기도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의식은 타하라(Taharah)라고 하며, 남여 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 씻는 순서는 손, , , 얼굴, , 머리, , 발 등이다.

- 물이 없을 경우에는 깨끗한 모래, , 자갈, 돌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6) 이슬람 염주

이슬람인도 신앙심 유지를 위해 염주(Tasbih)를 돌린다.(천주교, 불교와 유사)

알라의 99가지 이름을 따 99개의 염주로 되어 있으나 보통은 33개의 염주3개로 나누어 사용한다.

7) 이슬람 축제

Eid Al-Fitr (금식 종료 기념 명절)

-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명절

Eid Al-Adha (희생제) : Haji(순례 기간)종료 시점에 시작 이 기간중에 무슬림들은

  선물 및 카드를 교환한다.

 

8) 초생달과 별

이슬람권 많은 나라들이 초생달과 별이 포함된 국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모스크 첨탑 장식에도

활용하고 있어 이슬람의 별과 달은 알라의 권능을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한다.

이슬람의 가름침은 초생달과 별처럼 인간은 안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음.

이슬람에서의 초승달과 별의 유래

- 그러나 초승달과 별이 언제부터 이슬람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는지 유래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지금은 이스탄불)을 점령한 1453

당시 비잔틴 제국에 존재하던 초승달 및 별 상징을 오스만제국이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의 상징으로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고대 아람의 전통적으로 최고의 신인 달신에서 유래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9) 이슬람 3대 성지

메카(선지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 카바신전 소재지)

메디나(최초의 이슬람 도시, 무함마드의 사망지)

알쿠드스(예루살렘, 무함마드의 승천한 장소)

 

10) 이슬람 복장

이슬람 여성의 hijab(머리를 덮는 베일)은 남성의 유혹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쿠란 p352)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검은 옷은 Abaya(아바야)라고 하며, 아프간에서는 부르카,

이란에서는 차도르라고 한다.

 

11) 이슬람과 예술

무함마드는 알라에 대한 믿음과 숭배가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사람이나 동물 그림을 못 그리게 한다. 대신에 기하하적인 다양한 서체 예술이 발달되었다.

음악도 인간은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금지시키고 있다.

 

12) 접대 예절

윗사람들을 매우 공경하고,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극진하게 접대하는 것이 예의이며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다.

속담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이는 인적이 드믄 사막의 생활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예의상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13) 인사

"앗쌀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하면

"오 알라이쿰 앗 쌀람"(당신에게도 평화가...)이리고 답한다.

그렇게 답해주지 않으면 인사 받은 사람은 평화만 받고 상대방은 나쁜것과 해가 되는 것을

가져도 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무슬림들은 상대방보다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므로 다소 짜증나더라도

계속 인사를 받아서 해주는 것이 훨씬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하나님)외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고 악수로 대신한다.

보통 무슬림들은 악수 후 친밀한 사이에는 서로 포응을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인사를 하며 오른손 등을 이마에 가져다 댄다.

이슬람 여성에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인사할 때 부인 또는 여성가족의 안부는 묻지 않는 것이 좋으며, 가족의 안부는 허용된다.

 

14) 좋은 행위 오른손 사용

무슬림들은 오른손을 악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선물을 주고 받을 때 등

좋은 일을 할 때 사용하고, 왼손은 화장실에서 용변 후 씻을 때, 신발을 닦을 때,

그리고 코를 풀 때 사용한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 악수를 할 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큰 실례이다.

심지어 잘 때도 오른쪽으로 자야하며 왼쪽으로 자는 것도 가급적 피하고,

 

손톱을 자를 때 먼저 오른 손 , 왼 손, 오른 발, 왼 발, 순으로 깍으며, 칫솔질도 입안의 오른쪽부터

한다고 할 정도로 오른쪽 우선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 왼손은 사탄과 관련한 부정한 것으로 인식 된다.

 

15) 생리 현상과 관련된 예절

다른 사회와 달리 이슬람권에서는 식사 후에 트림을 하더라도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만

하면 예의를 벗어난 행위는 아니다.

재채기는 아무데서나 해도 상관없고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yarhamuk allah"(may Allah have mercy n yu)라고 한다.

하품은 최대한 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슬람에서는 하품 할 때 나는 소리 '아아-'

사탄이 자극해서 나는 소리라고 한다.

기도 시간에 방귀를 뀌면 알라가 기도 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대로 간다고 하여 아주 싫어하므로

무슬림들 앞에서는 삼가야 한다.

 

16) 화장실

화장실에서 중요한 부분을 무슬림에게 보이는 것은 큰 실례이다.

무슬림들은 목욕이나, 수영할 때에도 허리로부터 무릎까지는 가리는데 이는 무함마드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수나,Sunnah)

무슬림들은 대소변 시 메카 방향으로 해서는 안되면, 용변을 보고 씻을 때 오른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이슬람권의 공공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대부분의 경우 용변 후 물을 사용한다.

17)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

무슬림 사회에서도 좋지 않은 예절로 평가된다.

간혹 무슬림들이 기분 좋을 때나 의견이 똑같을 때, 오른손 바닥을 내미는데

이럴 경우는 손바닥을 쳐주면 된다.

18) 신의 뜻으로(인샤알라)/알라의 덕분에(알 함두릴라)

우리가 무슬림들과 대화할 때, 무슬림들은 승낙 또는 약속의 표시로 '인샤알라"라고 하는데,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알라만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이러할 경우 불확실한 약속의 증표라고 간주하고 "인샤알라" 하지 말고 다른 식으로

확신의 말을 해 줄것을 요청하는 데, 진실한 무슬림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종교의 대한 모욕감을

주는 매우 불쾌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무슬림들은 대답이 애매하거나 불확실 할때 "인샬라"라고 답한다.

19) 식사 예절

식사전에 손을 씻고

먹거나 마시지 전에 Bismillah(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탄이 같이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한다)

초대를 받게 되어 식사할 경우 식사 전에 "비스밀라"

"알라 바라카트후"(알라의 이름으로, 알라의 축복이 당신에게)라고 말한다.

식사전에 음식이 반드시 식탁에 놓여 있어야 한다.

반드시 오른손으로 식사(사탄은 왼손으로 식사한다고 한다).

음식이 뜨겁다고 불어서는 안 된다.

손님이 떠날 경우 문까지 배웅하는 것이 좋다.

싫어하는 음식이 있더라도 표내지 않도록 한다.

선물을 줄 경우, 받는 것이 예의이며 주인의 요청이 없을 경우에는 나중에 뜯어 본다.

 

20) 메카(Mecca)의 중요성

무슬림들은 메카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메카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매년 이슬람 순례객들이

순례하는 이슬람의 성지이다.

 

메카 방향을 향해 기도(쌀라)를 하고, 메카의 중심에는 카바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 종교 생활과 예절, 생활 방식도 메카와 많은 연관이 있다.

 

불결한 것(예를 들어 잠자는 방향, 용변 볼 때)의 자세는 메카로 향해서는 안 된다.

 

21) 기타 예절

여성을 똑바로 주시해서는 안되며, 남성의 과도한 장식은 여성스럽게 보인다고 해서 금한다.

남편 외의 다른 사람들에 보이기 위한 여성의 과도한 장식은 금지되며, 여성은 주로 금, 은을

선호한다.

무슬림 여성들이 때때로 과도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혹자는 이혼 후의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현금 대신 저장 해 둔 것이라고도 한다.

어른앞에서 꼰 자세로 앉거나 발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행위, 침을 뱉는 행위 등은

모두 좋지 않은 행동으로 받아들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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