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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헌신예배 - 거룩한 사역자


 


 


제목 : 거룩한 사역자

말씀 : 대하20:20~23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당시 암몬과 모압과 에돔 사람들이 연합군을 이루어 유다를 침공하였는데 여호사밧은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는데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라며 너희가 싸울 것이 없이 내가 싸울 것이니 너희는 대열을 이루고 서서 내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희한한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군대를 이끌고 나가 대열을 이루고 그 앞에 성가대를 앞세워 찬송을 하게 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요. 찬송이 시작될 때에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자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칼 한번 안 쓰고 오직 찬양으로 전대미문의 승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성가대가 가져야 할 자세를 볼 수 있는데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성가대가 어떤 자세로 주님을 섬겨야 할지를 살펴볼 때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성가대원들은 거룩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먼저 오늘 21절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러분, 여기에 보면 거룩한 예복 즉 성가대 가운을 입혀서 찬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떤 상황입니까? 비상 상황입니다. 그런데 찬송은 왠 찬송이며 거룩한 예복은 또 뭡니까? 그럼 왜 이런 비상상황에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찬양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거룩한 사명감의 고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힘으로 그들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재인식시키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가대도 거룩한 예복 즉 가운을 입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폼으로 입는 게 아닙니다. 사람보기에 멋있으라고 입는 게 아닙니다. 목사 가운이나 장로 가운이 성가대 가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는 거룩히 구별되어 그리스도로 옷입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거룩한 사명을 받은 자로 구별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운을 입는다고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그 거룩한 직분이나 사명을 감당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가대원들은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별된 백성이라는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을 위하여 특별히 세움 받은 자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겉으로 입는 예복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믿음과 고백과 사명감이 진정한 예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이 있다면 일상적인 삶도 거룩하게 성결하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은 아무렇게 하면서 성가대석에 앉아서 아무리 꾀꼬리 같은 소리로 찬양을 해도 그 찬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물론 예배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세상에서는 그냥 내 마음대로 살다가 그럴듯한 옷을 입고 그럴듯하게 찬양한다고 그게 온전한 찬양이 되겠습니까?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구원과 인도하심과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과 인자와 자지를 높여 드리는 일인데 그러한 진정한 고백을 가지고 찬양해야 하고 그렇게 진정한 고백을 가지고 찬양한다면 당연히 일생생활에서도 거룩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 성가대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나는 주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 성별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 사역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일상생활도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며 믿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며 더욱 생명의 은총과 능력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성가대는 믿음으로 앞장 서야 합니다.

성가대는 귀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니 만큼 일상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나 모범을 보여야 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귀한 일을 맡으면 맡을수록 모든 일에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21절 다시 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여호사밧은 성가대원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군대의 앞에 세워 찬송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전술적으로보면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딨습니다. 적군이 성가대를 향해 돌진해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가대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두렵고 떨려서 찬양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선두에 서서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20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즉 여호사밧이 ‘걱정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하자 성가대원들이 그 말씀을 믿고 적을 눈앞에 두고 군대의 제일 앞에서 담대히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성가대원들은 이런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믿음 생활에서 앞장서고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교회는 성가대가 목사님 강단보다도 더 앞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가대원들은 목사님 뒤통수 보면서 예배를 드리더라고요. 오늘 이 말씀을 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뭐니뭐니해도 예배의 꽃은 말씀인데 말씀보다 앞에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또 어떻게 보면 뭐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일 앞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 영광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설령 그렇지 않아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하려면 마주보고 해야지 뒷모습보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여러분, 이야기할 때 한 사람이 뒤돌아서서 하면 어떻겠어요?

여하간 여러분,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귀한 사명, 귀한 직분을 맡은 사람은 언제나 남보다 앞장서야 하고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성가대도 동일합니다. 특히 성가대는 예배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마찬가지지만 성가대는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 아니면 예배에 빠지면 안됩니다. 안 그래요?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바쁘다고 빠지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고 빠지고 상황이 그래서 여건이 그래서 빠지고... 아닙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예배보다 우선 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은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예배를 방해합니다.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나 그런 합리화나 변명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닙니다. 사탄의 소립니다. 우리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휴 목사님, 세월이 그런데요. 요새 교인들 다 그런데요. 그러면 교인들 다 도망갑니다. 그러면 힘들어서 교회 생활 못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가 힘들어진 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거꾸로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따라 환경 따라 상황 따라 사람 따라 사람 생각대로 편한대로 하니까 믿음이 죽어가고 교회가 힘을 잃고 교회가 욕을 먹고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면 안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일에 본이 되고 앞장서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세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가대석에 앉아서 졸면 안됩니다.

그리고 물론 교회의 다른 일에도 앞에서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폼 나게 싹 차려입고 하는 일에는 제법 참여하고 궂은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부모들도 보면 자녀들을 폼나는 일은 안시켜주면 뭐라고 그러고 궂은 시킨다고 뭐라 그럽니다. 그러나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일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고 궂은 일에도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주의 어떤 교회 이야기인데 그 교회 장로님이 자기 교회는 성가대 찬양 소리가 잘 안 들릴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성가대가 잘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가대와 함께 다른 쪽에서 학생들이 관현악기 현악기 타악기가 합주를 하는데 그 악기 소리 때문에 성가대가 찬양할 때에 고음은 그런대로 들리는데 저음은 안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악기연주자를 줄이자고 하니까 목사님이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이 서운해 해서 곤란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학생들에게 교회 화장실 청소를 시키다가 그만두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 화장실 청소를 시키면 난리가 날 겁니다. 여러분, 폼나는 자리는 안 앉혀 준다고 뭐라 그러고, 궂은 일은 시킨다고 뭐라 그런다면 이게 믿음있는 행동입니까? 여러분,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도 궂은 일도 해야 합니다. 궂은 일 하는 사람 따로 있고 폼나는 일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폼나는 일만 하려고 한다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요 자기가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특별히 너무나 귀한 찬양의 사역을 맡은 우리 성가대는 찬양하는 일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모범을 보이고 앞장섬으로 삶의 예배가 뒷받침되어 여러분의 찬양이 진정 향기로운 찬양이 되고 여러분의 삶에도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또 한가지 성가대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은 자기 만족이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찬양을 하면서 우리도 은혜와 위로가 되고 소망도 갖게 되고 능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찬양은 그게 목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찬양이 뭡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구원과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즉 찬양은 나의 기쁨이나 만족이나 은혜나 소원을 이루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며 기쁘시게 해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상황이나 환경도 이기게 되고 위로도 받고 소망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서가 바뀌어 자신이 뭔가 얻으려고 찬양을 한다면 그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노래이므로 찬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21절 후반부 다시 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보세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힘을 주소서. 용기를 주소서. 저들을 물리쳐 주소서. 그렇게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믿고 그래서 그렇게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찬양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위로해달라고 힘을 달라고 소망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게 진짜 찬양입니다. 나의 위로 소망 구원 도움이 목적이 되면 찬양이 아니라 찬양을 나의 필요를 채움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진정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가대는 이 찬양 사역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되새겨보며 믿음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하는 일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생활도 거룩하게 아름답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보기에 그럴듯한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앞장 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정말 여러분의 찬양과 삶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상달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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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헌신예배]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말씀 : 느12:27-30

제목 :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먼저 오늘 이렇게 성가대 헌신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랫동안 성가대를 운영하고 있지 못하다가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성가대를 재조직하여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며 헌신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리게 됨을 무한감사 드립니다.

여러분, 찬양은 우리 기독교인의 삶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을 하나님을 찬양케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43:21절에 보면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 찬송만 부르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지으셨다는 것,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는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존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 그 인생은 진정으로 값지고 의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원수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힘과 뜻을 모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고 나서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기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성벽 낙성식의 모습을 보면서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느혜미야는 성벽 중건의 낙성식을 찬양의 축제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오늘 말씀에 있는대로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다루는 자들을 전국에서 불러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면서 즐겁게 봉헌식을 행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이렇게 찬양을 중심으로 낙성식을 거행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겠습니까?

1.하나님께서는 찬양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좀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찬양케 하기 위하여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예를 들어 여러분이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봇이 내가 의도한바대로 움직이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 여러분이 의도한대로 그대로 움직이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때 여러분의 마음이 흡족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삶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중의 하나는 역시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의 특징이 무엇이냐 찬양 잘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찬양을 잘한다고 해서 단순히 노래 실력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쁘나 슬프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언제나 찬양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느헤미야도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찬양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아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앎으로 찬양의 낙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믿음 생활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아 그 원하는 바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하면서 제깐에는 부모에게 효도한답시고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드린들 그것을 부모님이 어찌 기뻐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과 함께 살고 싶은데 양로원에 보내 놓고 어쩌다 한번씩 찾아간다면 그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습니까?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늘 싸움만 한다면 이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효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곧 효도인 것입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약국을 경영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헌금은 얼마나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은 그 분에게 우선 집에서 약국에서나 늘 찬송을 하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와도 일부러 한번 들어보라는 듯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정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선은 그 자신이 정말 기쁨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찬양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게 그의 심령속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정말 늘 밝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약사가 늘 그렇게 감사하며 기쁘게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손님들도 훨씬 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업도 더욱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요,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서 또한 하나님이 찬양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가정에서 찬양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 만큼 복된 가정이 없습니다. 물론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자신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그 모든 가족구성원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근심걱정이 물러가게 해 줍니다.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열심히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성가대원들은 그중에서도 일부러 빼내어 찬양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은혜와 기쁨을 선물하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찬양하는 삶이 쉽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찬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과 직책을 주셔서 찬양케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찬양하기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는데 그 중에서 또 빼내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으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아멘하며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연습에 참여하시고 정말 감사와 감격과 기쁨속에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범사에 잘되어지고 기쁨과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족과 성도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2.찬양의 회복이 진정한 영성의 회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가장 좋았을 때는 다윗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이 가장 좋았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성대한 찬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시대는 날마다 성전에서 성가대의 우렁찬 찬양 소리가 온 예루살렘에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삼하6:5에서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이 행했던 찬양의 모습을 보십시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대상23:5 이하를 보십시다. 찬양하는 레위인들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4,000명입니다. 25:1이하에 보면 그 중에서 악기를 다루는 자와 노래에 아주 익숙한 자의 수가 288인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찬양대의 규모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이 내는 헌물로 생활하였으며 온 종일 성전에서 찬양을 준비하며 봉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시대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온 백성이 참여하였고, 거대한 성가대를 조직하여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의 물결이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 시대로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왕상 8:3-5절에 보면 솔로몬이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법궤를 옮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법궤를 성전에 안치하면서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왕상8: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구절에서도 하나님께 큰 찬양을 드렸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 왕상 8:62-64절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광경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낙성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14일동안 낙성식을 행하게 되는데 그때 화목제로 드린 제물은 소가 22,000마리이고 양이 무려 120,000마리나 합이 142,000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거의 10,000마리의 제물을 잡아서 드렸던 것입니다. 하루에 만 마리면 한 시간에 거의 500마리의 소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광경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성대한 성전 낙성식에도 이상하리라 만치 찬양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입니다.

또 왕하23장에는 이스라엘에서 다윗왕 다음으로 성군이라고 부르는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의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우상을 멸하고 율법을 부활시켰던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찬양의 회복에 대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후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점점 쇠하여져 갔고, 레위인들은 점점 성전을 떠나 농사를 짓거나 기타의 일을 하며 연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 생활의 비극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영적인 타락과 함께 찬양이 사라졌고, 동시에 찬양이 식어져 갔을 때 영적으로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양과 영성은 비례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은 찬양의 고백입니다. 기쁨이 없이는, 감사함이 없이는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고, 감격이 있고, 주님안에 있는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있는 자에게는 찬양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며, 찬양하는 순간이 우리의 영혼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히 측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찬양입니다. 즉 내가 얼마나 찬양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 받았을 때는 흥얼흥얼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식었을 때는 찬양 대신 불평과 불만이 쌓였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아니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찬양이 나온단 말입니까”.“목사님도 저와 같은 상황을 당한다면 그런 말씀을 못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 3:1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8)”고 고백한 하박국의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죽도록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와 같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뻐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더더욱 충만히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설령 어려움이 있더라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찬양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찬양을 해야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거듭거듭 불순종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를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 크신 권능과 지혜로 우주를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음악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입니다. 직장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찬송을 부르십시오.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 올 것입니다. 평안이 찾아 올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는 사람마다 찬양의 입술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것입니다.

잘 못해도 좋습니다. 음정 박자 가사 좀 틀리면 어떻습니까? 음정이나 박자나 가사를 잘 모르겠거든 작사 작곡을 해가면서라도 찬송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술이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재능이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함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실력도 길러야 합니다. 되도록 많이 연습해서 기술적으로 훌륭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좀 실력이 없어도 능력이 없어도 지혜가 부족하더라도 마음을 다해서 기쁨과 감격으로 그 은혜에 눈물 흘리며 찬송하는 그 찬송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영혼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교가 있고,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그 마음에 믿음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고, 신앙고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사 박자 음정이 좀 틀리더라도 그 은혜와 사랑과 긍휼하심을 깨닫고 감격과 기쁨과 은혜로 부른다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이요,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무엇보다도 우리 성가대가 이와같이 귀한 찬양의 사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비록 좀 실력이 딸려도 능력이 좀 부족해도 때로는 바쁘고 힘이 들더라도 언제나 감격과 은혜속에 주님을 찬양하는 성가대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고 마음으로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은 바 그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이 사역에 열심히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찬양을 좋아했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는 성가대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도 늘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축복된 인생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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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헌신예배] 거룩한 사역자

 

 


제목 : 거룩한 사역자

말씀 : 대하20:20~23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당시 암몬과 모압과 에돔 사람들이 연합군을 이루어 유다를 침공하였는데 여호사밧은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는데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라며 너희가 싸울 것이 없이 내가 싸울 것이니 너희는 대열을 이루고 서서 내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희한한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군대를 이끌고 나가 대열을 이루고 그 앞에 성가대를 앞세워 찬송을 하게 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요. 찬송이 시작될 때에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자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칼 한번 안 쓰고 오직 찬양으로 전대미문의 승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성가대가 가져야 할 자세를 볼 수 있는데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성가대가 어떤 자세로 주님을 섬겨야 할지를 살펴볼 때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성가대원들은 거룩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먼저 오늘 21절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러분, 여기에 보면 거룩한 예복 즉 성가대 가운을 입혀서 찬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떤 상황입니까? 비상 상황입니다. 그런데 찬송은 왠 찬송이며 거룩한 예복은 또 뭡니까? 그럼 왜 이런 비상상황에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찬양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거룩한 사명감의 고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힘으로 그들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재인식시키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가대도 거룩한 예복 즉 가운을 입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폼으로 입는 게 아닙니다. 사람보기에 멋있으라고 입는 게 아닙니다. 목사 가운이나 장로 가운이 성가대 가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는 거룩히 구별되어 그리스도로 옷입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거룩한 사명을 받은 자로 구별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운을 입는다고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그 거룩한 직분이나 사명을 감당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가대원들은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별된 백성이라는 그래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을 위하여 특별히 세움 받은 자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겉으로 입는 예복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믿음과 고백과 사명감이 진정한 예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이 있다면 일상적인 삶도 거룩하게 성결하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일상적인 삶은 아무렇게 하면서 성가대석에 앉아서 아무리 꾀꼬리 같은 소리로 찬양을 해도 그 찬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물론 예배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세상에서는 그냥 내 마음대로 살다가 그럴듯한 옷을 입고 그럴듯하게 찬양한다고 그게 온전한 찬양이 되겠습니까?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구원과 인도하심과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과 인자와 자지를 높여 드리는 일인데 그러한 진정한 고백을 가지고 찬양해야 하고 그렇게 진정한 고백을 가지고 찬양한다면 당연히 일생생활에서도 거룩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 성가대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나는 주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 성별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 사역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일상생활도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며 믿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며 더욱 생명의 은총과 능력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성가대는 믿음으로 앞장 서야 합니다.

성가대는 귀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니 만큼 일상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나 모범을 보여야 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귀한 일을 맡으면 맡을수록 모든 일에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21절 다시 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여호사밧은 성가대원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군대의 앞에 세워 찬송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전술적으로보면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딨습니다. 적군이 성가대를 향해 돌진해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가대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두렵고 떨려서 찬양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선두에 서서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20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즉 여호사밧이 ‘걱정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하자 성가대원들이 그 말씀을 믿고 적을 눈앞에 두고 군대의 제일 앞에서 담대히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성가대원들은 이런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믿음 생활에서 앞장서고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교회는 성가대가 목사님 강단보다도 더 앞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성가대원들은 목사님 뒤통수 보면서 예배를 드리더라고요. 오늘 이 말씀을 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뭐니뭐니해도 예배의 꽃은 말씀인데 말씀보다 앞에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또 어떻게 보면 뭐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일 앞의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 영광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설령 그렇지 않아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하려면 마주보고 해야지 뒷모습보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여러분, 이야기할 때 한 사람이 뒤돌아서서 하면 어떻겠어요?

여하간 여러분,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귀한 사명, 귀한 직분을 맡은 사람은 언제나 남보다 앞장서야 하고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성가대도 동일합니다. 특히 성가대는 예배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마찬가지지만 성가대는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 아니면 예배에 빠지면 안됩니다. 안 그래요?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바쁘다고 빠지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고 빠지고 상황이 그래서 여건이 그래서 빠지고... 아닙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예배보다 우선 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은 온갖 그럴듯한 이유로 예배를 방해합니다.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나 그런 합리화나 변명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닙니다. 사탄의 소립니다. 우리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휴 목사님, 세월이 그런데요. 요새 교인들 다 그런데요. 그러면 교인들 다 도망갑니다. 그러면 힘들어서 교회 생활 못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가 힘들어진 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거꾸로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따라 환경 따라 상황 따라 사람 따라 사람 생각대로 편한대로 하니까 믿음이 죽어가고 교회가 힘을 잃고 교회가 욕을 먹고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면 안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일에 본이 되고 앞장서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세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가대석에 앉아서 졸면 안됩니다.

그리고 물론 교회의 다른 일에도 앞에서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폼 나게 싹 차려입고 하는 일에는 제법 참여하고 궂은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부모들도 보면 자녀들을 폼나는 일은 안시켜주면 뭐라고 그러고 궂은 시킨다고 뭐라 그럽니다. 그러나 안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일만 아니라 어렵고 힘들고 궂은 일에도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주의 어떤 교회 이야기인데 그 교회 장로님이 자기 교회는 성가대 찬양 소리가 잘 안 들릴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성가대가 잘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가대와 함께 다른 쪽에서 학생들이 관현악기 현악기 타악기가 합주를 하는데 그 악기 소리 때문에 성가대가 찬양할 때에 고음은 그런대로 들리는데 저음은 안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악기연주자를 줄이자고 하니까 목사님이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이 서운해 해서 곤란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학생들에게 교회 화장실 청소를 시키다가 그만두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 화장실 청소를 시키면 난리가 날 겁니다. 여러분, 폼나는 자리는 안 앉혀 준다고 뭐라 그러고, 궂은 일은 시킨다고 뭐라 그런다면 이게 믿음있는 행동입니까? 여러분,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도 궂은 일도 해야 합니다. 궂은 일 하는 사람 따로 있고 폼나는 일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폼나는 일만 하려고 한다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요 자기가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특별히 너무나 귀한 찬양의 사역을 맡은 우리 성가대는 찬양하는 일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모범을 보이고 앞장섬으로 삶의 예배가 뒷받침되어 여러분의 찬양이 진정 향기로운 찬양이 되고 여러분의 삶에도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또 한가지 성가대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은 자기 만족이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찬양을 하면서 우리도 은혜와 위로가 되고 소망도 갖게 되고 능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찬양은 그게 목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찬양이 뭡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구원과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즉 찬양은 나의 기쁨이나 만족이나 은혜나 소원을 이루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며 기쁘시게 해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상황이나 환경도 이기게 되고 위로도 받고 소망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서가 바뀌어 자신이 뭔가 얻으려고 찬양을 한다면 그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노래이므로 찬양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21절 후반부 다시 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보세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힘을 주소서. 용기를 주소서. 저들을 물리쳐 주소서. 그렇게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믿고 그래서 그렇게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찬양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위로해달라고 힘을 달라고 소망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게 진짜 찬양입니다. 나의 위로 소망 구원 도움이 목적이 되면 찬양이 아니라 찬양을 나의 필요를 채움받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진정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가대는 이 찬양 사역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되새겨보며 믿음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하는 일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생활도 거룩하게 아름답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보기에 그럴듯한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앞장 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정말 여러분의 찬양과 삶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상달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강교회 조학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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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헌신예배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저희들이 마땅히 찬양으로 영광 돌리며 여호와의 성호를 선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찬양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미련하여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을 찬양하기 보다는 세상의 노래를 즐겼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잘못된 입술을 제단 숯불로 뜨겁게 하시어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의 노래로 바뀌는 심령들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교회에 특별히 구별하여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무리들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 성가대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성가대가 찬미의 소리를 발할 때에 저들의 노래가 레바논의 영광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실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가가 되게 하옵소서.

찬양을 부르는 자와 듣는 자가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을 얻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는 역사를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성가대가 되게 하시고,

찬양하는 심령들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영으로 기도로 찬미하게 하옵소서.

지휘자와 반주자, 성가대원이 하나 되어 가사 한 절 한 절이 신앙으로 고백되게 하시고

마음 깊이 감격이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오늘 헌신예배가 성가대원들을 더욱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은혜스런 찬양과 설교를 원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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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헌신예배 대표기도 ♡감사와찬양 ♡ devotion service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저희들이 마땅히 찬양으로 영광 돌리며 여호와의 성호를 선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찬양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미련하여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을 찬양하기 보다는 세상의 노래를 즐겼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잘못된 입술을 제단 숯불로 뜨겁게 하시어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의 노래로 바뀌는 심령들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교회에 특별히 구별하여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무리들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 성가대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성가대가 찬미의 소리를 발할 때에 저들의 노래가 레바논의 영광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실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가가 되게 하옵소서.

찬양을 부르는 자와 듣는 자가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을 얻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는 역사를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성가대가 되게 하시고,

찬양하는 심령들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영으로 기도로 찬미하게 하옵소서.

지휘자와 반주자, 성가대원이 하나 되어 가사 한 절 한 절이 신앙으로 고백되게 하시고

마음 깊이 감격이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오늘 헌신예배가 성가대원들을 더욱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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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 헌신예배 대표기도 ♡ devotion service

   

 

홀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립니다. 미천한 저희를 불러 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이전에 세상과 마귀를 찬양하던 입술을 정케 하사 주님을 찬송하는 새 노래,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귀한 은총을 내려 주신것도 말로다 형언할 수 없을 만치 감격 적이고 복된 일이 온데 특별히 저희들에게 귀한 달란트를 주셔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오니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저희들은 말문이 막힐 뿐이옵니다.

 

이 시간은 저희들을 주님을 힘껏 찬양할 수 있는 찬양대원으로 세워 주신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놀라워 헌신을 결단하는 마음으로 찬양대 헌신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찬양 대원들이 뜻을 같이하여 주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이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이 시간 헌신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이 저희에게 맡기신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고 찬양의 도구로 새롭게 거듭나는 시간이되 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의 노래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이 구속 받은 은총의 감격과 특별한 은사를 받은 데 대한 기쁨을 가지고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찬양할 때에 저희의 모든 것이 다 주님께 드려지게 하시옵고,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인 찬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향기로운 제물을 주님께 드린다는 정성 된 마음으로 찬양하게 하시고 자랑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찬양대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듣는 이들의 영혼도 감동시킬 수 있는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을 듣는 주의 백성들 심령 가운데도 주님을 찬양 해야 한다는 마음을 더욱 사모하고 사무치게 만드는데 동력이 될 수 있는 찬양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찬양을 연습하는 것 뿐 아니라 믿음과 신앙의 훈련에도 더욱 충실해야 될 줄로 압니다. 항상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않는 찬양 대원들이 되게 하시옵고, 예배 생활도 흐트러짐이 없는 찬양 대원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더욱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할수 있는 찬양 대원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찬양이 있기 전에 무릎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함을 뼛속 깊숙이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주님을 찬양하기에는 부끄러운 것도 많사오나 찬양을 힘써서 준비하고 주님 앞에 드리는 가운데 저희들의 신앙인격도 격상되게 하시고, 예배 때만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찬송이 끊이지 아니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양대 대장님과 지휘자 반주자에게 더 뛰어난 재능과 지혜와 건강을 주셔서 귀한 직분을 감당 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모든 대원들에게도 크신 은총을 내려 주셔서 찬양의 일로 주님께 봉사하며 헌신 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들고 단위에 서시는 귀한 강사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온 성도들의 심령에 주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순서를 맡은 성가대 임원들에게도 함께 하셔서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예배 드리는 온 성도들의 심령을 주님을 찬양하는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실 것을 믿사옵고 저희들과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행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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