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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 복음에 자신의 삶을 드린 사람

 

신약의 역사를 일군 복음의 사람

 

 

두말할 나위 없이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적어도 13권, 그러니까 권수로 보아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했다. 사실상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의 유일한 소식이 되도록 공헌했다. 만약 바울이 없었다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없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킨 것은 흐트러짐 없이 십자가의 복음에 집중한 그의 헌신적인 삶이었다. 바울을 통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로서 믿어야 할 신앙의 교리와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복음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 교회가 만들어진 이 신약시대를 설명하려면 바울을 고려하지 않고는 도무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바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는 것은 처음부터 범위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때문에 범위를 좁혀 바울을 바울 되도록 한 결정적인 회심의 사건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는 도전을 적용해 보고자 한다.

 

주님 만나기 전에는 신앙도 길을 잃어

 

신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도 바울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사도행전 9장에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른바 ‘다메섹 회심 사건’ 이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을 탐구하면서 회심 이후의 모습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데 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다. 당연하기도 하고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바울을 보다 충분히 이해하고 또 우리가 올바른 배움을 얻으려면, 그의 회심 사건 이전의 모습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회심하기 이전에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단지 인간적인 선택이나 고집 같은 것이 아니었다.  회심 이전의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열정으로 예수를 대적했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것이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 22:4).

 

이처럼 다메섹 사건 이전 바울의 모습은 매우 살벌하다.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이었다. 바울이 이처럼 십자가의 원수(행 9:1, 참조 빌 3:18)로 행했던 이유는 그가 철저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바울이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이었다는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려면 복음서를 떠올리면 된다. 즉,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갈등과 대립을 바울도 고스란히 공감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에게 나사렛 예수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일 수 없었고, 이런 예수님의 주장은 그야말로 최고의 신성모독이었다(요 10:36). 게다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신 21:23, 갈 3:13).

 

참된 새로움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그러던 그가 사도행전 13장 이후 후반부에서 보여 주듯이, 그리고 그의 서신서들에서 밝혀 놓았듯이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롬 1:1), 십자가의 복음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전 1:18~31; 빌 1:18~28).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사람으로(고전 4:15; 갈 4:19) 바뀌었고, 마침내는 그 예수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박해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행 20:24; 고후 1:3~11; 딤후 4:5~8).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이처럼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박해하던 자리에서 복음을 위해 박해받는 자리에 기쁨으로 서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혁명적인 변화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바울이라는 인물을 단지 어떤 ‘변화’의 카테고리로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바울은 사실상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었고, 십자가의 복음에 삶을 온전히 드린 사람이 되었다(행 20:24, 21:13, 26:24; 고후 5:13 등).

 

 

그랬기 때문에 이른바 ‘고난 목록’이라고 하는 고린도후서 1장 8~10절과 11장 23~27절 등에 기록된 고난이 그의 복음 전도를 막지 못했다. 일찍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반대하고 그 따르는 무리와 교회를 박해하던 것에 정반대로 바울은 바로 그 십자가와 복음을 위해 위협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마침내 신체적인 핍박과 위협 가운데서도 그것들이 바울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빌 1:18, 2:17; 딤후 3:6~8). 

게다가 바울은 이렇게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대한 전도자로서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참된 목사였다. 바울은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으로 세우고자 힘을 다했다(갈 4:19; 살전 2:7). 목사로서 성도들과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의 고백이 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고후 11:28~29). 바울에게는 교회를 향한 자신의 염려가 그 모든 실제적인 고통보다도 오히려 더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이 역력하다.

 

폭행자에서 순교자로 만든 것은 말씀

 

 

마침내 사도 바울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하며 다녔던 세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감할 때 즈음, 주후 58년경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법 아래 재판을 받는 죄수의 몸이 된다(행 21:33, 25:11). 그로부터 3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로마 감옥에 투옥되고, 모진 박해와 위협의 시절을 거쳐, 주후 67년 순교해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고대하던 주님 품에 안겼다.

 

 

십자가 복음에 대해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바울은 그 복음을 위한 전도자요 고난 받는 자요 눈물의 목사로서 산 인물이다. 바울 탐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변화를 가져오는 주님과의 만남은 그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은혜로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복음에 헌신하는 삶을 향한 도전을 받는다.

 

 

참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따라서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새로움의 출발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참 변화를 향한 시작이 가능하다. 유의할 점이 있다. 바울은 그냥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었다. 또 추론을 거듭해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사색적인 사상가도 아니다. 그의 모든 사고는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의 모든 사역과 가르침은 성경에서 계시로 받은 것에 굴복하고 순종했다. 이런 점에서 성경적 계시의 말씀은 바울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도구였고, 그는 성경대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는 유진 피터슨의 관찰은 적절하다.

 

 

말씀과 함께 오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변화가 아니라면 바울과 같은 변화는 불가능하다.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에 의한 변화가 아닌 변화는 참된 변화가 아니다. 매일 말씀을 제대로 만나는 은혜가 모든 독자에게 있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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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한 나의 그릇   말씀묵상  

성경말씀 : 사도행전 1장 ~ 10장

은혜말씀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장 15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신 모든 일들을 몸소 경험한 제자들은

사도행전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수 있다.

모두가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하고

담대하게 전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7명의 집사를 세웠는데 그들 역시 제자들 못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많은 이적을 베풀게 된다.

특히 스데반은 대제사장앞에서도 담대히 말씀을 전하고

돌로 죽게되는 순교를 당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핍박하던 사울이라는 청년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하심이 임하게 된다.

그날도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주님의 이적이 나타나고

사울은 3일동안 보지도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게 된다.

사울을 고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셨고

꺼려하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 대해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후에 사울은 바울이 되어 사도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게 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믿지도 않고 오히려 핍박하던 사람을 택할 수 있을까?

또 요즘에도 간혹 흉악한 죄악중에 있다가 회심하고 훌륭한 전도자가 된 경우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우리의 의와 공로로서가 전혀 아니다.

나 역시 믿기전의 사울처럼 예수님을 핍박하고

또 흉악한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주님의 은혜로 

내가 너를 택했다고 주님 먼저 나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부르심에, 주님의 택하심에

사도 바울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 모든것을 내려놓는다.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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