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자녀들을 성인으로 훈련시키기

 

한국 사회에서 성인으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19세 전후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성인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선거권을 갖게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어떨까? 놀라웁게도 한국 교회는 교회법상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한다. 입교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이가 정식으로 교회의 정식 멤버로 등록되는 예식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법상으로는 한국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교회 생활 속에서 그들은 전혀 성인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개혁교회에서 입교식은 "신앙 고백"(confession of faith)라고 불리운다. 원래 이 예식의 기원은 견신례(confirmation)에 있다. 동방교회는 이것을 "기름부음" (Chrismation)이라고 불렀고 대개의 경우 유아 세례 직후에 시행한 반면, 서방교회는 일정한 성인이 된 후에 교리문답의 과정을 거쳐 이 예식을 시행하였다. 서방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개혁교회는 이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카톨릭에서 이 예식을 7가지 성례 중 하나로 보는 반면, 개혁 교회에서는 이 견해를 부정하였다.

 

개혁교회가 입교를 성례로 거부하였다고 해서 이 예식을 소홀이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혁교회의 부모들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보통 고등학교 2학년) 입교를 위한 목사가 인도하는 교리문답 교육에 1주일에 한 번씩 참여시킨다. 교육이 끝나면 당회에서 심사하여 교인으로 받을 것을 결정하고 오는 주일날 예배 시간에 입교식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한국교회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교회는 이것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개혁교회에서는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좀 독특한 것은 입교식을 하는 시간에 목사는 당회에 제출된 개인의 신앙고백서를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 학생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 학생들은 좌석 제일 앞에 앉는데 이어지는 성찬식에서 가장 먼저 포도주와 잔을 분배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먼저 와서 온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축하의 악수를 나눈다. 그들이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는 순간이다.

 

개혁교회에서 이렇게 입교식이 끝나면 정말로 교인이 된다.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학생들이 공동의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공동회의는 보통 주중 저녁에 실시되는데, 아버지(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으며 공동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한다. 보통 자녀들은 아버지 옆에 앉는다. 공동의회는 물론 매우 질서정연하게(decently) 이루어진다. 예를 하나들면, 공동의회는 회의실에서 실시되었는데, 1인용 의자가 8개씩(중간에 통로를 남기고) 배열되어 있었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착석을 하였다. 따라서 몇명이 참석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갓 입교한 학생들은 개혁교회의 정치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한 번은 노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 시간을 내어 방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학생들은 이 교단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학생들은 자기 노트에 다음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고 배움으로써 책임있는 성년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훈련들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개혁교회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경우 (덩치도 크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나는 한국교회의 정서와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의회에 잘 참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참석하라고 광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참가하는 것을 막는 분위기이다. 솔직히 회의문화가 천박한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참석을 가급적 막는 분위기이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교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겨주게 된다.

 

우리가 이런 좋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른들의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보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교회 정치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인간들은 원래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르면, 겸손히 성경과 교회의 전통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개혁교회를 참된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의 무식을 인정하고 성경에서 참된 개혁교회의 원리를 연구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연구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훈련을 받는 길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책임있는 성인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 개혁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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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글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회적 속성에 대하여 매우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4-28)

성경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최종성에 대하여 단호히 말하고 있다. 그는 죄를 위하여 절대로 반복되지 않을 단번의 제사를 드리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것은 거의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야 했던 모세 언약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드린 제사들 중 어느 것도 실제로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장차 오셔서 죄를 정복하실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희생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반복된 제사라는 비성경적인 제도를 다시 만들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왜곡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미사가 얼마나 중요할까? 가톨릭 교회의 교리문답에서는 미사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자 절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미사는 가톨릭 믿음의 근원이고 최고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미사는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가톨릭의 전체 체계의 핵심이다.

가톨릭 사제인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은 그의 책 The Faith of Millions에서 미사의 절차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제가 성찬식을 선언할 때, 그는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가 그의 보좌로부터 내려오게 하여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다시 드려질 수 있도록 그를 우리의 제단으로 모셔오게 된다. 그것은 군주와 황제들의 힘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것은 성자들과 천사들, 혹은 스랍과 그룹들이 가진 힘보다 더 강한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능력보다 더 강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위하여 한 번만 매개적인 역할을 한 인간인 반면에, 사제는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모셔와서 인간의 죄를 위한 영원한 희생 제물로 제단에 세운다. 한 번이 아니라 수천 번을 말이다! 사제가 말을 할 때면, 보라! 영원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명령에 겸손한 순종으로 그의 머리를 숙이신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벗어나시게 하지 않는다. 미사에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반복적이고 불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게 한다. 그는 주(Lord)와 구원자(Savior)가 아니다. 즉, 그는 사제의 힘에 의해서 제단 위에 영원히 종속되어버린 영원한 희생 제물이다. 그것이 로마 가톨릭의 십자가 상에서 분명하게 상징되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로마서 6장 8-10절의 바울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그리스도의 단회적 희생을 부인함으로써 가톨릭는 (성경적으로) 부적합한 사제들에게 인위적인 힘과 권위를 부여하였고, 그것을 믿는 신자들은 죄를 위하여 헛되고 사악한 제물들을 바치는 반복적인 제도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본질적으로, 가톨릭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사람들을 확신시키며 그들을 속이고 기만시키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적당히 사용한 이교도인 것이다. 사실 미사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소멸시켰다.

그의 저서 Light from Old Times에서 J. C. 라일은 가톨릭 미사가 갖는 신학적이고 영적인 의미와그것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기를 좋아하든지 간에,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실재의 교리(real presence)는, 만일 그 교리를 정확하게 해석한다면, 복음의 모든 주된 교리를 모호하게 혼동시키며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모든 것을 손상시키고 방해한다.

성찬식을 성사가 아닌 희생제사로 여기는 순간,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진짜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성찬 테이블에 있다고 말할 때, 성변화된 떡을 먹고 성변화된 포도주를 마시는 모든 사람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진짜 몸과 피를 먹는다고 인정할 때,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이런 전제가 초래하는 중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신성한 교리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어야 하는 희생 제물은 완벽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있다면, 그 위대하신 대제사장은 그의 영광을 빼앗기신다.

그들은 기독교 성직자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죄된 인간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의 위치로 높이는 것이다. 그들은 성례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에 절대 돌려서는 안 되는 영예와 숭배를 돌리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혐오하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참된 교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된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육체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갖지 않으셨으며 사실상 “마지막 아담”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사는 기독교의 복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독교 교회와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죄와 구원과 속죄와 용서에 대한 참되고 성경적인 본질을 무시한다. 그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빼앗고, 그 자리에 피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우상을 갖다 놓는다.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기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노예가 되게 하고 그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저주스러운, 조작된 종교이다.

 

존 맥아더

출처 :  http://gracetokorea.org/

Available online at: http://www.gty.org/Blog/B130221/a-timely-critique-of-the-catholic-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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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1.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서설

 

1) 칼빈은?

1517년 로마 카톨릭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란 종교개혁이 있은 후,

칼빈(1509-1564)은 이를 더욱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확립했다.

 

따라서 ‘루터 없이 칼빈 없고, 칼빈 없이 루터 없다’는 평가가 따르는 것은

“루터는 바위산을 폭파한 사람이라면 칼빈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이란

찬사를 받는다. (Philip Schapp)

 

그의 작품으로는 <기독교 강요>(1536초판과 1559년의 최종판; 평생 보완)

<주석> <설교> <신학논문> <편지> <예배서> <교리문답> 등이 있다.

 

이같은 저술에 나타난 칼빈의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상, 칭의관, 교회관,

성례론, 기도론, 목회원리 등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

신앙고백, 존 낙스 등에 영향을 끼치고 네덜란드에 최초의 개신교 국가가 세워지며

17세기 교리 지상주의에, 18세기 영성운동에, 19세기 자유주의에 영향을 준다..
 

2) 칼빈주의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1884년 최초로 이 땅에 미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1885년 미북장로 목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목사인 아펜젤러가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 후 1890년 평양신학교 마포삼열이 세워지고, 주기철, 이기선, 손양원, 박관준

안이숙 등 시대적 환경에 따른 순교자들이 잇따랐으며,

칼빈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로 박형용, 박윤선, 명신홍 등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3) 칼빈주의 교리는

⓵ 오직 말씀 (Sola Scriptura)

⓶ 오직 은혜 (Sola Gratia)

⓷ 오직 믿음 (Sola Fide)

⓸ 오직 그리스도 (Sola Christo)

⓹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a Deo Gloria) 이었다.
 

2.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와의 비교
 

1) 신학의 2대 사조

기독교 역사 속에서 논쟁이 되고 정의되어 왔던 어울릴 수 없는 2개의 신학사조가

존재한다. 오늘날은 칼빈주의는 정통, 알미니안 주의는 이단으로 치부되어 있다.

2) 2개 사조의 비교


칼빈주의 5대교리 (TULIP)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
 

전적 부패 혹은 전적 무능력

Total Depravity
 
자유의지 혹은 인간의 능력

1)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지. 정. 의

모두가 무력해져 전적 부패하게 되었다

(롬3:10-12, 엡2:1-3)

2) 전적으로 부패하여 무능력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요8:44)

3)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구원함을 얻을 수 있다.(엡2:4-9)
 
1)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전적 무력해진 것은 아니다.


2) 인간의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진다.


3)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택할 수 있다.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2. 조건적 선택
 

1)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여하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예정되고 결정된다.

 

2)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3)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신 것으로

예정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진다.

 
 
1) 인간이 하나님의 소명에 의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

특정한 개인들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되며

제약된다.

 

3) 믿음은 오직 인간 의지의 결과이다.

4) 구원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하므로 이루어진다.
 

3. 제한 속죄 혹은 특별구속

Limited Atonement
 
3. 일반 속죄 혹은 보편구속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절대적 예정으로 선택된 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2) 그리스도의 속죄는 특별히 택한

자들의 죄를 사하신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모든 택한 백성에게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도록 한다.

(마1:21, 10:5-6, 눅19:10)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에게

해당된다.

2)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때에 유효하다.

4. 불가항력적 은총 혹은

성령의 효과 있는 부르심

Imesistible Grace
 
4. 성령은 실제로 거스러질 수 있다.
 
1) 인간의 외적 소명은 때때로 거부될

수 있으나, 효과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내적으로 부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2) 성령의 내적 소명은 인간에 의해

거부되어질 수 없다.


3) 성령은 인간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며,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케 한다.


4) 이와 같은 성령의 은총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이며, 마땅히

순종하기에 이른다.
 
1)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성령의

부르심을 거스릴 수 있다.

2) 성령은 죄인이 믿을 때까지

그를 중생시킬 수 없다.

3) 우리가 믿음으로 중생이 가능하게

된다.

 
4) 인간의 자유의지는

성령의 구속사역을 제한한다.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5. 은총으로부터의 타락
 

1) 하나님에 의해 책정되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때때로 시험에 빠질 수는 있으나, 영원한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없다.(한번 구원은 영원구원)

 

2) 성령의 사역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르도록 하며,

성도는 이와 같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끝까지 인내하게 한다. (딤후4:18)


 
1) 참 믿음을 소유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못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타락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

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다.


3) 과연 칼빈주의는 무오한가?

 

칼빈이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지는 몰라도 하나님 곧 예수님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 당시의 선지자들에 의해 쓰여짐으로써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에 그 무오성이

인정된다.(딤후3:16)
 

하지만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주의 등 시대흐름에 따른 신학과 사상은 하나님 말씀을

대신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에는 하나는 정통이고 또 하나는 이단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성경에 비추어 진정 성서적 교리로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뜻에 합당한지를, 무엇을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고전1:18),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7-8)


3.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한 성서적 고찰

 

1) 제한 속죄와 무조건적 선택---> 예정론과 결부된 논쟁

당시 예수님은 예정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제한적 속죄론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도한 ‘타락 전 예정설’에 대해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 계속이요, 마침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선택에 의하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존 웨슬리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로 인하여 비록 어두워지고 약화되어

스스로 선을 택하고 의를 행하기에는 무력하게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임할 때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항변하였다.

 

2) 도르트 종교회의-개혁교회의 종교재판이라 칭한다.

1610년 알미니우스를 지지하는 46명의 개혁교회 목사들은 5개 신조를 공인해줄

것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에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즉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3) 성서적 고찰과 사견

 

로마서 8장 말미에 ‘미리 정(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요 지혜이시며 긍휼하심이다.

 

또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합2:4, 롬1:17

갈3:11, 히10:38) 「믿음에서 난 의」요(롬9:30-32) 선택이기에, 그에 따른 선한

행위가 있음으로 온전해지는 것 아닌가!? (약2:22)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시37:3) (롬12:2) (엡2:10)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극단적인 예정론을 고집하여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은 성도를 견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을(롬9:13)

극단적인 하나님의 선택(예정)이고 유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린 성경을 읽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련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자기 관점에서 자기를 위해 읽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칼빈의 5대 교리는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고,

알미니안의 5대 사조는 실제 하나님의 예지와 은혜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창조주로부터 자유의지를 허락받은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인본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미니안 주의에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속이고, 이를 믿고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4. 결어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해서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에 그분께서 자신이 예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도 확신한다. (롬8:30)

 

다만 지나친 칼빈주의자들로 자신들만 옳고 정통이며, 나머지는 다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것은 현 한국 교회에 은혜와 덕이 되지 못한다.

 

지금도 OOO에 의한 세월호 사건으로 아직도 피해자들은 농성 중이고

​5대 교리 중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이라는 무조건적인 구속과 구원 후 죄를 지어도

끝까지 견인해 영광에 이르도록 한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더더욱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타 종교에 본이 되지 못하고,

나만 예수 믿어 천국 가면된다는 이기적 논리는 이제 맘먹고 믿어 보려고 교회에

발을 들여 놓는 초보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여

믿음의 뿌리도 내리기 전에 떠나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WCC 등 다원주의에 동참하고 특히나 예수회 학자들의 기독교학계의

침투와 물타기 작전에도 영적 분별력을 키워 철저히 대비하고 척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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