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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평등]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아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부제: 남녀 평등에 대하여

오늘날, 비록 현실적으로는 차별적 요소가 있을 지 모르지만, 남녀 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만약 여기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런 점에서,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회들은 정말 큰 위기와 숙제를 안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 올 때만해도 교회가 남녀 평등을 선도하였는데, 이제는 그와 반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자신들을 성찰하지 않고 성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교회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것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더욱 성경에서 말하는 남녀 평등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현대적인 관점에 보았을 때, 성경이 남녀 차별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여자에게 교회 안에서 다스림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스림의 권한 속에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가르침의 권한을 제한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은 차별이 아니고 구별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오늘날 누가 보아도 이것은 차별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직 능력에 따른 차별만이 인정될 뿐이지 성에 따른 차별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자 중에서 지적으로 훨씬 탁월하고 리더쉽도 있는데, 금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숙제는 이러한 차별이 평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간 사회는 본질적으로 타락하여서 참된 평등의 사회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평등에 대한 올바른 개념도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평등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아마, 이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모습은 삼위 하나님 그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구분된 세개의 위격을 가지시면서도 동시에 본성에 있어서 단일한 이것 보다 더 평등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대단히 불평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순서에 있어서 성부는 항상 1위가 되신다.  더구나 성자는 단일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한다. 심지어 그분은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성령 하나님 역시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성자께서 주시는 말씀만 교회에 주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또 하나의 평등한 모습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와 지체로서의 교회는 한 몸을 이룬다. 이 속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머리로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께 순종한다. 비록, 교회가 고난가운데 있으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간구하고, 강청하고, 심지어 불평하고 원망할 수는 있겠지만(대표적으로 시편의 탄원시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되고 더구나 그리스도께 명령을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 역시 아무리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회를 사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삼위 안의 사랑과 복종의 관계가 여기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떻게 보면 아주 불평등한 모습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성경은 여자와 남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니까 남녀 간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녀간의 차별을 말하는 다른 구절을 무시하는 것도 정직한 성경읽기는 아니다. 문제는 남녀가 하나인데 어떻게 하나인가가 중요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머리 대 머리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머리와 지체로서 하나라고 말한다. 만약, 이것을 불평등의 관계로 본다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불평등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의 관계 역시 대단한 불평등의 관계이다.

문제는 왜 머리와 몸의 관계를 불평등의 관계로 보는가이다. 그것은 바로 머리와 몸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떼어 놓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사고 방식 속에는 이것은 조화와 평등이 아니라 차별일 뿐이다. 하지만, 성경은 머리와 몸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적이며 올바른 관계임을 가르친다. 즉, 사랑과 복종은 평등이나 하나의 개념과 상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평등의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까? 오직 사랑과 복종이라는 “차별”적인 요소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성경은 아내에게 대해서 말하기를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말한다(벧전 3장 7절).  그리고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들의 기도가 막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 생명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는 전혀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 때문에 교회 안에서 남성들은 특히 남자인 목사들은 여자를 귀히 여겨야 한다.  만약 그들이 귀히 여지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주님 역시 그들의 기도를 귀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즉, 아내를 귀히 여기는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생사가 걸린 영적인 문제이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은 아내 귀한 줄 모르는 남편이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남자들이 교회 안에서 여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수적인 교회들은 남녀 차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회들 보다 자신들이 더 성경적으로 옳다고 자만만 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서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른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아내를 구체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방법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아내에게 경어체를 쓰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것은 아내와 다툴 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두거나 갓 결혼한 젊은 청년들에게 권한다. 벧전 3장 7절에 따르면,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이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반말은 평소 사이 좋을 때는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지는 모르지만, 서로 다툴 때는 험한 말이 쉽게 나오게 되고 서로의 관계에 치명상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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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을 위한 배려] 앉아서 소변보는 남편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배려하는 지를 알려주는 작은 척도가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남자들은 변기를 다 쓰면 의자 받침대를 내려 놓는 반면, 아시아 계통의 남자들은 받침대를 올린 그대로 두고 화장실을 나온다.

 

남편이 화장실에 갔다 왔을 때, 변기의 의자 받침대가 내려져 있으면, 그 사람은 아내를 정말 배려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올려져 있으면 그다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자 받침대가 내려져 있으면,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 왔을 때 바로 볼 일을 볼 수 있지만, 의자 받침대가 올려져 있으면, 의자 받침대를 내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남편의 오줌 자국이지만, 변기 주위에 남아있는 그것들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 한 토막.

 

미국 남학생 열 대여섯명이 모여 간단한 파티를 하였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가서 보니 화장실이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 처럼 깨끗하였다. 그 이유는 그 남학생들 모두가 다 앉아서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조준"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서서 용변을 보면 주위로 변기 안 의 물이나 소변이 튀기 마련이다. 만약 모든 남학생들이 서서 용변을 보았다고 생각해 보라.

 

결혼하고 나서 나의 생활 습관이 완전히 바뀐 것 중의 하나가 소변보는 자세이다. 결혼식을 하자마자, 나의 사랑하는 비둘기는 매우 망설이면서 나에게 조용히 진지한 부탁을 하나 하였다. 처음에 나는 무슨 대단한 부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부탁은 앉아서 소변을 봐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매우 황당하였다. "앉아서 소변을 보다니!" 남동생 밖에 없었던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들어보니 아주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이후로 나는 앉아서 소변을 본다. 적응이 되고 나니 이제는 앉아서 볼 일을 보는 것이 너무 편하다.

 

소변과 관련된 이야기는 참으로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주제들이다. 믿음의 여성들이여, 속으로만 고민하지 말고 남편에게 진지하게 한 번 부탁해 보기를 바란다.  특히 결혼식 올리자 마자,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워 보일 때, 이런 부탁을 지혜롭게 해 보기를 권한다.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아내로 하여금 자신이 튀긴 오줌물을 청소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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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 끊을 수 없는 언약으로서의 혼인(10가지 명제)

 

1.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속에 담긴 뜻은 사람이 정말로 혼인의 끈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창 2: 24, 마 19: 5-6).

 

2.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혼인은 하나님만이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배우자의 죽음이다.

 

3.  배우자가 죽으면, 혼인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에, 자유롭게 되어 새로운 혼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 (롬 7: 2).

 

4. 음행 이외에는 어떤 다른 이유로도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마 5: 32).

 

5. 불신 배우자가 신앙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떠나면, 신자는 자신의 배우자로 하여금 그냥 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경우, 이혼을 당할 수는 있겠지만, 본인 스스로 이혼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고전 7: 13-15).

 

6. 모든 이혼은 법적인 분리를 뜻할 뿐이며, 그 부부가 실재적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7.  모든 이혼한 배우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부부이며, 따라서 배우자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와 재혼하는 것은 음행이다.

 

8. 이혼을 한 신자는 그냥 독신으로 지내든지 아니면 전 배우자와 합하든지 할 수 있을 뿐이며 다른 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고전 7:11).

 

9. 이혼은 혼인의 끝이 아니며, 다시 화합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재혼은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성령님의 용서와 화해의 역사를 현저하게 가로막는다.

 
10. 세속주의에 물든 느슨한 결혼관은 부부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가정을 파괴할 뿐이다. 반대로, 혼인을 끊을 수 없는 언약관계로 보는 성경적 혼인관은 부부에게 멍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부의 하나됨을 굳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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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정] 여보, 우리 각자 다른 교회 한 번 다녀 볼까? 

 

한국 교회는 아직은 부부가 같은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참으로 복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현상도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부모와 다른 교회를 다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과연 앞으로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부모와 자녀도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닐 수 있다면, 부부라고 해서 꼭 같은 교회를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더우나 한국 정서상, 결혼하면 여자가 남편의 교회를 따라가야 하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수십년동안 정든 교회를 떠나 결혼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교회를 출석해야 할까?   교회에 다니면서 정도 들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딴 교회를 다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의미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비록 미국에서 나온 통계 자료지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는 에드나 브라운(Edna Brown)으로 미시간 대학애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그녀는 1986년 이후로 373 쌍의 커플을 조사하였는데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부부가 교회를 각자 다른 교회를 출석하는 경우, 불신자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혼율이 거의 같았다. 즉, 이혼에 관한한, 부부가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면, 불신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부부가 교회를 같이 다니는 경우에는 부부가 교회를 같이 다니지 않는 경우에 비해서 이혼율이 현저한 차이가 났다.

에드나 브라운의 결과는 서로 다른 교회를 출석하는 것을 고려하는 부부들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배우자와 다른 교회를 선택하는 이유는 신앙생활을 더 잘 하기 위함이겠지만,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오히려 정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면, 같은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듣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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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남인가?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혼인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을 결혼 식 때 단골로 인용되는 본문이 때문에 모르는 성도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을까? 이 질문에 처음에는 나눌 수 없다고 확신있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점차적으로 나눌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나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나눌 수 없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어떤 경우에 나눌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 난무하게 된다--마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인간적이고 세속적 호기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들은 “어떤 경우”를 찾아 해맬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 “어떤 경우”가 음행이나 고의적 유기와 같은 성경적 원인에 한정되지만 나중에는 불치병, 정신병, 폭행, 도박, 우상숭배 등등으로 확대된다. 이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한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혼의 원인은 ‘불가피한 경우’로 정의되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혼의 원인에 대해서 묻는 경우도 거의 드물다. “오죽 했으면 이혼 했을까?”라는 동정적 심정이 다른 모든 고려들을 앞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속에서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시느니라(말 2:16)”라는 성경적 메시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말라기 3장 16절은 그토록 강조하면서, 말라기 2장 16절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그 만큼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본문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근본적인 명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명제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혼이 혼인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이혼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자들은 불신자와 결혼의 본질에 관한 한 아무런 실제적인 차이가 없게 된다. 불신자들도 이혼하면 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성경적 사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혼이나 재혼과 관련하여 의외로 성도들이, 심지어 성경을 많이 아는 목사나 신학 교수들조차 잘 모르는 성경구절이 고린도전서 7장 10-11절 말씀이다.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이것은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는 몇 개 되지 않는 성경 구절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관하여 아주 명시적인 가르침을 준다. 첫째,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이혼을 할 경우에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하나는 독신이고 다른 하나는 전 남편과 다시 화합하는 것이다. 셋째, 재혼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 구절에서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혼이 결혼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혼이 결혼의 끝이라고 했다면, 사도 바울은 그 배우자에게 독신이나 전배우자와의 재결합을 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혼은 사람이 법적으로 나눈 것이지 하나님이 실재적으로 나눈 것이 아니다. 법적인 분리와 실재적인 분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이혼은 혼인의 끝이 아니라 전남편과 다시 화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훈련과정의 시작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이혼한 부부가 서로 남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짝지은 것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두 부부는 여전히 하나로 묶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누구든지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라고 선언하셨다. 만약 이혼이 혼인의 끝이라면 왜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음행이 될 수 있겠는가? 이혼은 재혼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은연중에 “이혼하면 남”이라는 불신자들의 생각이 성도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경우에 이혼할 수 있는가?”라는 바리새인적인 질문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선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어떤 경우”라는 늪에서 헤어 나와 “끊을 수 없는 언약의 끈(the indissoluble bond of covenant)”이라는 성경적 혼인관을 붙들기를 소망한다. 이제 우리는 혼인을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영적 안목을 갖도록 하자. 이것이 이혼과 재혼이 난무하는 세속화된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바로 세우고 교회를 튼튼하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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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위한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에게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허락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은 저희와의 관계를 중히 여기셔서 목숨까지 버려가며

그 관계를 회복해 주셨지만, 저희는 주님과의 관계를

막 연하게 생각하며 저희들과의 관계도 손쉬운 관계로만 여겨 왔습니다.

 

주님!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고 정말 소중한 관계를 이루어나가게 도와주소서!

 

주님!

저희 가정에 비둘기 같은 평화를 주옵소서! 온 가족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묶어 주셔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게 허옵소서!

 

먼저 저희 가정에 주신 주님의 축복과 은총을 깨닫고

감사할 때 행복이 있사오니 범사에 감사하며

불평이나 원망하는 생활을 하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행복과 사랑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불행과 다툼을 주는 것은

인간의 욕심과 사탄의 장난이오니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가정, 찬송과 기도가 언제나

끊이지 않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희생과 양보와 절제 속에 행복이 있음을 깨달아

그러한 생활을 하게 하시며 저희 가정의 행복이

이웃과 사회와 온 인류의 행복의 밑거름이 되는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가정의 행복을 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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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 대표 기도문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저희를 불러 주셔서

주님 전에 함께 모여 예배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갖게 하시며,

거짓 없는 마음을 주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는 항상 저희들에게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건만, 어리석은 저희들은 주님의 귀한

사랑을 잊은 채 살곤 합니다.

 

하나님과의 신령한 사귐보다 오히려 세상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내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무능함과 부족함은 이 시간 회개하오니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매일의 하루를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하게 하시고,

이웃을 돌아보며 전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영혼을 구하는 귀한 주님의 사명에 다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전도의 부지런함을 일깨워 주시옵오서.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의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낳으시고 기르시며 애쓰시는 그 사랑과 정성에 감사하지 못하고,

부모의 가르침에 불순종하기도 했던 저희들입니다.

사랑과 기도와 눈물로 길러주신 어버이의 마음을 잊지 말고,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버이 은혜를 생각하면서 더 크고 놀라우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하신 주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부모에게 순종하며 부모를 섬기는 것이

마땅히 자녀의 도리임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주께서 맡기어 주신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주장과 마음의 욕심으로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기도로 양육하여

주의 바른 자녀로 만들 수 있도록 훈육의 지혜를 부어 주옵소서.

 

은혜로우신 주님,

 

믿지 않는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가족 모두가 함께 순종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인지요.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선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더욱 힘써 기도하는 가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계속되는 세계 불황에 이 나라의 경제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주여, 행여 경제적인 문제로 실족하여

상처받는 자가 없도록 주여 보살펴 주시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주님께서 지혜와 총명함을 더해 주셔서 하루속히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어려울 때 일수록 기도와 사랑으로 이웃들과 하나되어

이 난관을 헤쳐 나가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는

복된 나라로 만들어 주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귀한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힘있고 권세 있는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시고 목마른 영혼마다

생수가 되는 은혜의 말씀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 시간 드리는

저희들의 감사가 지극히 미비할지라도 주님의

한량없으신 크신 사랑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언제나 함께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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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정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외롭지 않게 하여 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고 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많은 가정들이 신음하며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을 작은 교회로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자신만 아는 우리의 이기적인 죄악 된 본성과

인격적인 미성숙함으로 부부간에 상처를 주며 상처를 받으며

부모와 자식 간에도 대화의 부재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신앙생활도 즐겁고 교회도 건강한데

사단은 온갖 계락을 통해 가정들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믿음의 가정들로 하여금 영적인 분별력을 주옵소서.

서로의 잘못을 꼬집고 헐뜯으며 상대방을 미워하지 말게 하시고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며 죄를 짓게 만드는

사단을 대적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런 가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가정들마다 칭찬이 보약임을 알게 하소서.

 

남편은 입만 열면 아내를 자랑하며

아내는 우리 남편이 최고라고 말하게 하소서.

부모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게 하시며 자녀는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사랑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 미워하지 않게 하시며

사랑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어가는 가정이 되게 하사 상처입고

허물어진 가정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의 가정들로

 회복되어 가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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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맞아 드리는 기도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귀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첫 돌을 맞이하였습니다.

365일 한 해 동안 건강을 주시고,

무럭무럭 성장하게 도와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삶도 주님께서 주장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귀한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질병이나.

이 어린 심령의 성장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성령님이 제거하여 주시고, 늘 감찰하여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또한 귀한 생명을 낳아서 기르는 부모에게 복 주옵소서.

이 어린 자녀로 말미암아 항상 집안에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이 어린 심령을 위하여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양육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바르게 교훈하며 ,

하나님이 이 어린 심령을 세상에 보내신 귀한 뜻을 깨달아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일꾼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믿음의 대를 이어가도록 도와주시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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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감사 기도문 (어른)  

 

 

 

이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지으시고 오늘도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이 사간 주님께서 그 동안 사랑으로 삶을 인도해 주셨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의 생일을 맞이하여 온 가족과 친척들,

또 믿음의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고 늘 동일한 손길로 지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도님에게 ○○년 전 육신의 생명을 허락해 주신 것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성도님에게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영적인 성숙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가정이 사랑하는 성도님(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을 통해서

어려움 많은 이 세상 속에서도 늘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또 이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본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함께 머리 숙인 온가족과 친지들에게도

같은 복을 허락하셔서 주님이 주신 육신을 가지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곳마다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그들의 영혼도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영적 기쁨을 가진 영혼들이 되게 하옵소서.

 

앞으로 세월이 갈수록 이 가정이 주님을 섬기는 일과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며 하나님의 복음이

더욱 널리 증거 되는 아름다운 일들이 더욱 크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제 주님께서 친히 이 자리에 임재 하셔서 이 자리를 기쁘고

복된 잔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며 내년에 다시 생일을 맞이하는

시간가지 영육 간에 내내 주님의 친히 인도하심을 맛보는

귀한 성도님(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과 이 가정

또 믿음의 식구들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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