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 행동보다 기다림이 먼저다 Friday Night Sermon

제목 / 행동보다 기다림이 먼저다
본문 / 시편 62: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것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급한 상황에 코앞에 닥치면 기다리기 어렵습니다. 그때의 기다림은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실패, 파산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을 망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 참을 수 없을 것처럼 압박감이 밀려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다리는 것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끝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조기(早期)에 무너져버립니다.

본문은 다윗이 인생의 역경 가운데서 절박한 상황 속에서 기록한 시입니다. 사람들의 추측에 의하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 이 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피해 다니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기록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죽음의 위기를 느꼈던 때에 이 시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 가운데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죽음이 몰아닥쳐 왕권과는 멀어져가던 때와 왕이 되었음에도 아들의 반역으로 인해 쫓겨 다니던 이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혹독한 시기를 보내며 이 시를 기록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바란다는 말에는 기다린다(wait)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믿음은 기다림을 통해 단련되고, 기다림을 통해 증명됩니다. 믿음이 있다면 기다립니다. 기다림을 통해 믿음이 정금(正金) 같이 다듬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통해 믿음을 입증합니다. 노아는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굉장한 시간 동안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7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까지 계속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지겹도록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 어려움이 언제 끝날 것인지를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자들은 기다림을 통해 훈련을 받습니다. 시련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에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기록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 있습니까? 본문 3절에 보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잠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 입을 열면 안 됩니까? 입을 열면, 원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일제히 공격합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인들은 다윗을 흔들려고 입을 엽니다. 독설(毒舌)을 퍼붓습니다. 겉으로는 축복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가장 힘든 것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악담을 듣는 것입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헷갈립니다.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속을 파고듭니다.
욥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좋은 말을 해줬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쓴 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에 귀 기울이면 정신없습니다. 내가 힘들 때에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가 오히려 더 힘들게 합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자신이 기다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움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할 말이 많아집니다. 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말하면 기다리는 것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큰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기력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다리는 것을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제가 있을 때에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을 사람들은 무기력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자로 여깁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침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는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는 우리도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은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떠들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해도 침묵해야 합니다.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네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 왜 기다리고 있냐, 뭐하는 거냐.”라고 다그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무기력하고 게을러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다윗은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을 의지할 필요도 없으니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입방아도 끝나는 날이 옵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넋을 놓고 막연히 있는 무기력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것에는 고도(高度)의 영적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집중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 속에서 이슈(issue)는 끝없이 일어납니다. 세상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것이 매일매일 수없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전쟁과 같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삶에 사고가 끝없이 터지고,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갑니다.
은혜 받았을 때에는 좋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아가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갑니다. 마치 그 문제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사건이 삶에서 중심부를 차지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영적 집중력을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만 바라볼 수 있겠니? 나만 바라보고, 나만 기다릴 수 있겠니?”라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우리가 만난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고정할 수 있겠는지 하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신앙의 여정(旅程)에서 실패한 순간을 더듬어보세요.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것에 실패했을 때, 우리의 인생은 무너집니다.
문제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고정시켰던 시선을 문제 때문에 놓칠 때에 삶이 무너집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리다가 문제가 인생 가운데 크게 찾아와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회오리바람이 부니까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면, 우리의 삶은 요동칩니다. 세상이 요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고개를 돌리게 하는 유혹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방법을 찾습니다. 묘수(妙手)를 찾아다닙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외에 많은 길이 우리 앞에 펼쳐져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란다는 것은 다른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에서 실패합니다. 중도(中途)에서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자기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길을 잃어버립니다.
다윗은 광야 속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힘든 것은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다리고 바라고 있는데, 상황은 더 악해집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좋겠는데, 상황이 악해질 때,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때 자신이 무엇인가 하려고 액션(action)을 취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죄악의 고비를 수없이 통과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막바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한 막바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을 바랄 때, 승리하게 됩니다.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흩어집니다. 흩어지고 떠나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과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비를 넘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시선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기다린 사람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기다린 자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린 자들을 결코 무시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눈을 고정하고 기다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거절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스토리(story)입니다. 다윗이 기름 부으심을 받고 왕이 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칠 만한 사건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의 시선에서 하나님이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끝이구나,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이제 벼랑 끝이구나, 이제 죽음이구나라고 생각될 만한 자신을 죽일 듯한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그에게 닥칠 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칠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다림에 반응하실까? 자칫하면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수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을 향해 사람들은 욕할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기다렸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오히려 네 삶은 힘들어지지 않았느냐?”라고 공격하려고 합니다.

시편 69편 6절에 보면,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찾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거나 욕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적들이 둘러싸고 있을 때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에게 신앙은 기다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다림은 비활동적인 것입니다. 활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활동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활동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활동적인 사람이 인정 받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너의 실력을 입증해봐”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에 약해지신 주님께 사탄은 “너의 실력을 보여 봐”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우리를 다그칩니다. 우리를 정신없이 몰아갑니다. 능력을 드러내라고 합니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문제를 만났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 왜 기도만 하고 있냐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무엇인가 해보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라고 활동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귀가 아프도록 듣는 이야기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넣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인가 노력하라고 우리를 부추깁니다. 기도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살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충동질에 막 몰려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마치 지금 하지 않으면 망할 것처럼, 마귀는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새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움직여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압니다. 액션을 취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영적 센스(sense)입니다.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은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자가 세상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을 구분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학생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만 잠잠히 바람이여, 내일 시험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진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는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저의 미래를 주님께 맡깁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부는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길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시험 문제에 대한 답은 책에 있지만,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은 교과서에 있지 않습니다.
공부는 잘했어도 인생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알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지면, 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풀 수 있는 문제보다 풀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추격했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왕을 죽일 수도 없습니다.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윗 스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반역하여 아버지의 권좌(權座)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교과서에 없는 문제입니다. 교실 안에서 출제되지 않는 유형의 문제가 세상 속에는 매우 많습니다.
다윗만 이런 문제를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난제(難題)들이 오늘도 끊임없이 밀고 들어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수시로 닥칩니다.

세상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해보라고 합니다.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우리의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시편 46편 10절에 보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신자가 경험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레슨(lesson)입니다.
이것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것만 배운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 이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 열심히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가를 기다리고, 그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면, 인간의 노력과 재능으로 만든 세상이 대단해보입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빌 게이츠(Bill Gates)가 만들어놓은 것은 세상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만 해도 설교를 준비할 때 원고를 종이에 손으로 썼습니다. 쓰다가 틀리면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타자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컴퓨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태블릿PC를 보며 설교합니다.
과학 문명은 끝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시대가 올 것입니다. 음식을 주문하면, 사람이 철가방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철가방을 들고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과 신속함과 생산성은 놀랍습니다. 앞으로 로봇 산업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이미 굉장히 많이 진화되었습니다. 앞으로 지능이 있는 로봇이 인간이 하던 일을 다 빼앗아갈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은 어마어마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문명을 보세요. 인간이 열심을 다해 만들어놓은 것으로 인간이 만족해하고 행복해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히 해서 인간은 오히려 절망에 빠집니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한계를 만납니다. 인간이 가진 문명끼리 충돌을 일으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집니다.

우리가 노력하여 얻은 것에 만족하는 순간, 곧 절망에 빠집니다. 한평생 심혈을 기울여 직장에서 높은 성과를 내며 최선을 다했는데, 은퇴한 이후에는 ‘이 일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는가.’하는 실망과 좌절에 빠집니다. 허무가 밀려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세상에서는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평가받은 사람들도 마지막에는 허무에 빠집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에 있나, 내가 어디에서 왔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성과를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토록 몸부림치며 업적을 쌓았는데,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그럴수록 인간의 능력과 활동이 더욱 강조됩니다. 조급해집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빠집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더 큰 미궁(迷宮)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 사람의 도움을 얻으려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태도는 분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액션과 자기 방법,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왜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보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상반(相反)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의 편에서 보면, 지체(遲滯)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는 지체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때에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아무리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에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만드시는 시간입니다. 다윗을 다윗답게 빚어내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활동보다 하나님의 활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가 신뢰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훨씬 더 크고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1년, 10년, 20년, 한평생 쏟아 부은 것보다 하나님의 1분이 더 낫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오류가 있습니다. 불완전합니다. 허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 역사하셔도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다리면서 초조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히 약속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의 기다림을 통해 마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우뚝 세워주신 것입니다.

후손을 얻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족장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합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다윗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레슨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훈련된 사람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라이센스(licence)를 가졌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태도를 견지(堅持)해야 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먼저 액션을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고백을 살펴봅시다. 다윗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우리가 행동하기 이전에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비활동적인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열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급하다 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먼저 일을 시작하여 다 망쳐놓은 후에 하나님께 책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내 뜻대로 다 망가뜨려놓습니다.
기다리지 못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망쳐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 가운데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잠잠히 기다려보셨습니까. 남편에 대해, 아내에 대해, 자녀에 대해, 주변의 환경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기다려보셨습니까.
우리는 기다리기 전에 답답한 현실 앞에 '문제를 확실히 고쳐놓고야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먼저 칼을 들어버립니다.

아이를 부모의 마음대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까? 아이가 사춘기만 되어도 부모가 아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남편을 아내의 마음대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까? 아내의 마음대로 남편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난 후에야 손을 듭니다.

다윗은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다윗은 지독스럽게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황무지로, 굴로 계속해서 옮겨 다녔습니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블레셋까지 도망가서 미친 체 하고 살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그를 반역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4).
120명의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과 노력과 재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본문 1절에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120명의 사람들이 기다린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더 나은 상황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당하면, 그것이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은 환경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면, 늦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산 것은 허송세월한 것이고, 후회만 남습니다.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그곳에 인생의 해답이 다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의 고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본문 5~7절에 보면,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몰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있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시기를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광야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광야에서 반석과 힘과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은 요동칩니다. 불완전합니다. 갈수록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항상 흔들립니다. 요동치지 않는 순간은 한 순간도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 담을 치지만 무너져버립니다. 높은 울타리도 흔들립니다. 그렇게 되면 공격자들이 침입해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답을 말해줍니다. 답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문제에 휩싸이지 마세요. 하나님께 사로잡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압도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려고 하면, 오히려 더 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위기의 순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꼬이고 복잡할 때,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실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실적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쌓아도, 우리가 쌓는 것은 쌓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쌓으시는 것은 쌓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제력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인간의 재능과 실력은 우리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뚜렷한 음성은 하나입니다. 하나님만 우리의 의지가 되시고, 우리가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삶의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망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 만들어 가시려는데, 괜히 끼어들어 망가뜨리게 됩니다.

여러분의 노력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 해도, 기다리는 것은 마이너스(minus)가 아닙니다. 믿음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인생의 노정(路程)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리는, 세상의 소리가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합니다. 무언가 하라고 합니다. 움직이라고 합니다.
요란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먼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기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에게 담대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기분이 나아지는 법을 찾지 마세요. 상황이 완화되는 길을 찾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 찾으세요.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세요.
먼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면, 삶의 어떤 순간에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황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만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합니다.

삶 속에서 어려운 문제를 당한 분이 계십니까? 스스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기다리세요. 결코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결코 후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고비를 넘으면, 상황을 넘어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46편 10절에 보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삶에 어떤 문제가 찾아와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놓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문제가 터지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터져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에 빠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길이 없습니까? 그때야말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chance)입니다. 다른 길을 찾지 마세요.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문제 때문에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막힌 순간입니다.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가를 보십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보십니다.

본문 시편 62편에 보면, ‘그만(He alone)’라는 문구(文句)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도의 줄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일한 줄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가 그만둬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그만두는 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줄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기도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의 자리에 앉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무시하지 않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제 삶에서 그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호주에 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그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길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왜 여기에 왔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정말 암울했습니다.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막다른 길에 놓인 것 같았습니다. 비상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머니에 돈도 없었습니다. 이역만리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액션을 취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많은 줄을 잡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묘수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방법을 찾고 싶은 욕망이 목까지 차올랐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보면, 사울이 굴에 들어왔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대로 하면,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실력이 있고, 재주가 많아서 우리의 열심을 펼쳐나가는 것을 먼저 배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딜레마(dilemma)에 빠집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액션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때, “하나님,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놀라운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그 후로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문제들 앞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을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문제가 오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우리 스스로 방법을 찾으라고, 우리의 실력을 보이라고 우리를 충동합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활동하는 이 시대 속에서 믿음은 비활동적인 것입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야말로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먼저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액션이 발달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자기가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뒤로 돌려놓습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의 실력으로 살려는 행위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으십니다. 모든 소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완성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찾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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