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 Friday Night Sermon

제목 /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
본문 / 출애굽기 3:1~12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팔짱을 끼시고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시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부재(不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무지(無知)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도,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거리감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멀리 계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힘이 빠집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집요하게 인간에게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집요하게 우리의 곁에 다가오십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힘을 잃습니다. 주일도 잘 지키고, 교회의 활동에도 참여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바깥 세계에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하면,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됩니다. 신앙에 힘이 없습니다. 늘 제자리를 맴돕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거리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리의 신앙은 어려워지고, 우리의 삶은 딜레마(dilemma)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삶의 매 순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때, 우리의 삶은 사건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역사(役事)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순간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면 역사가 일어난 것을 발견합니다.
야곱이 홀로 외로이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 모든 것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하나님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하셨습니다. 모세가 나일 강에 띄워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가 왕실에서 자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잊힌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지나다녔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은 뭔가 다릅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을 직감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떨기나무가 불에 계속 타는데, 불이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불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불이 타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뚜렷하게 경험했습니다.
저 멀리 계신다고 생각했고, 자신과 상관없을 것 같던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애 가운데 아주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모세는 불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아주 뜨겁게 느꼈습니다.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멀리서 불을 구경하는 것과 불에 대한 그림책을 읽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불은 이론으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뜨겁고 강력합니다.
화재의 현장 근처에 가보면, 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는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문자로 이해하는 하나님과 실제로 온몸으로 경험하는 하나님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글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셨다는 것을 느끼면, 용광로 근처에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꽃 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불꽃보다 더 뜨거운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지 않으시는 불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고강도의 열기와 함께 빛으로 오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직감(直感)했습니다. 충격적이고 경이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찾아오실 때에는 용무(用務)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때는 매우 특별한 순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다가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거십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며 모세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실에 있을 때에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 후에 그는 은둔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이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저항할 수 없고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모른 체 하거나 딴청을 피울 수도 없었습니다. 매우 강력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가던 길을 멈춰 섰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을 경험하신 적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매우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매우 가까이 다가오시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고, 귀중한 일이 있다 해도,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신 하나님께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신 적 있습니까?
이런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시선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신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지나다녔을 뿐입니다. 양을 치며 풀을 찾아 다녔을 뿐입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강한 흡입력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끌려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가까이 다가오신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순간, 모세가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이때는 한눈 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한눈팔지 않으십니다. 모세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이때는 무조건 멈춰서야 합니다. 다른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가오실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멈춰 세우십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면, 세상에서 잘나가는 직장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사람도 꼼짝할 수 없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면, 그 앞에서 꼼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길을 열심히 걸어갔던 사울을 멈춰 서게 하셨습니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미션(mission)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현재와 만나는 순간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출 3:1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4). 이것은 하나님 외에는 쓸 수 없는 표현입니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지금 이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도 아니고, 미래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현재이십니다.
타고 만 잿더미 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떨기나무가 불에 타면, 잿더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떨기나무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계속 불이 붙어있었습니다. 불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떨기나무가 잿더미가 되어버리면,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나무가 잿더미가 되어버리면, 과거로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현재이시기 때문에, 불 가운데서 계속 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셔서 모세를 만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모세 앞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시간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현재입니다.

모세는 궁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8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과거의 시간입니다. 묻힌 시간입니다. 흘러가버린 시간입니다. 그 시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실패와 방황으로 점철된 시간입니다.

우리가 방황하고 고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실하게 쥘 수 있는 현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금방 지나가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해서 과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흘러가버린 시간은 후회로 남습니다. 미래는 아직 우리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내일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내일은 낯섭니다. 그리고 내일은 언제나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는 모두 염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4). 이것은 내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는 늘 염려스러워합니다. 그렇다고 내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현재의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시간도 눈 깜빡할 사이에 과거로 흘러가버립니다. 우리는 달력을 넘기느라 바쁩니다. 지금도 순간순간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가 과거로 끝나버리지 않고, 현재가 현재가 되려면, 지금 이곳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원히 현재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모세는 지금 그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양떼를 치며 호렙 산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고, 과거로 흘러가버릴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곧 과거가 되어버릴 한 시점에서 현재적인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그 순간의 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현재와 만나는 시간이 됩니다.
특별한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로 인한 충만함이 현재의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올 때, 내 삶의 시간은 특별한 현재가 됩니다.
단 한 시간이라도 내 삶을 바꾸어놓습니다. 과거의 40년, 80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질량이 폭발해버립니다. 마치 핵이 분열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히 현재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시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8편 24절에 보면,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때, 이 시간은 흘러가버릴 과거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현재와 만나서 시간의 질량이 폭발하면서 인생에 특별한 사건이 벌어질 때, 내 삶은 단순히 과거가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현재적 사건이 됩니다. 그 시점부터 내 인생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게 됩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생명이 밀고 들어오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은 거대한 사건입니다. 애굽의 바로를 꺾는 힘이 여기에서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출애굽하게 만드는 힘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폭풍 같은 힘이 나옵니다. 영원히 현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 속으로 찾아오시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 속에 찾아오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를 묶고 있던 아픔과 상처를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시간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면, 이때부터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역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전혀 새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곳은 특별한 장소가 아닙니다. 모세는 양떼를 몰고 다니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은 매우 평범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 속에 다가오시면, 그곳은 특별한 곳이 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직함을 가져야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신 그 순간은 특별한 현재가 됩니다. 그 순간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면, 우리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빠르게 움직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순간에 선택해야 합니다.

모세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전에는 양떼들을 거느리고 광야를 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가오신 순간, 평범했던 삶이 비범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때 기회가 온 것입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면 됩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을 하나님께서 선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 가라. 고통하고 신음하는 내 백성들에게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삶을 흔들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순간과 나의 선택이 만나면,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건이 터집니다. 모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살았던 세월을 청산하고, 구원사(救援史) 속으로 들어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마치 핵이 분열하여 폭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택의 순간에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립니다. 순간으로 끝나버립니다.
시간은 매정합니다.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나가버린 시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나가버린 파도로는 서핑(surfing)을 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할 때, 우리의 인생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응하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안타까운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과거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말을 거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오셨고, 모세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이미 40년간 광야를 떠도는 목동의 생활에 익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반응하기를 주저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제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반응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세요.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힘들지만 그런 대로 살 만합니다. 이제 익숙해졌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미래는 항상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때, 우리는 그 순간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위기의 순간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힘들고 어려워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상황 속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모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히브리 민족들은 애굽의 압제 속에서 고통이 극에 달해있었습니다. 고통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의 순간에 다가오십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욥 42:5).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실제적으로 경험했다는 의미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은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경험하게 됩니다. 단순히 은혜 받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순절에 불과 바람 같은 경험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흔들어놓습니다. 모든 경험보다 뛰어난 경험입니다.
어떤 위기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환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염려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에 사로잡혀서 시간을 보냅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보며 불평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든 보려고 할 때에 보입니다. 사람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해도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주님께서 가까이에 다가오셔서 말을 거시는데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면 앞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시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위기가 다가왔을 때, 하나님이 다가오신 것을 모든 사람이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감각이 무디어지고, 생각이 좁아지고, 마음 문이 닫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사건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다가오신 것을 확실히 알려주시려고 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한 일입니다. 모세는 가까이에서 보려고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며 모세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인생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에 중요한 것은 폭풍이 잠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폭풍 속에 다가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에 중요한 것은 폭풍이 아닙니다. 폭풍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헷갈리면 안 됩니다.

폭풍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폭풍에 정신이 팔려서 폭풍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인생에 폭풍과 같은 문제가 몰아닥친다 해도 하나님을 만나면, 폭풍은 잠잠해집니다.
하나님은 실재(實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폭풍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현존(現存)하십니다. 지금 이곳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폭풍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놓칠 때, 우리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시편 23편 4절에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임재는 더욱 빛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바깥에서 점잖게 무게 잡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의 한가운데서 함께 고통하고 계십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문제에 빠져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 가운데 찾아오시고, 고통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찾아오실 때, 더 이상 인생의 아픔으로 인해 시달리지 않습니다. 내 삶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 속에 가까이 다가오셔야 일이 시작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스스로 하려고 했던 것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에 불이 사라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불’은 파워(power)를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3장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힘도 다루실 수 있는 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떨기나무가 계속 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이라는 엄청난 힘을 계속해서 다루고 계시니까 불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파워를 다스리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불은 계속 타고 있습니다. 떨기나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불을 계속해서 붙이려면,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불을 태울 수 있는 원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는데도 불이 계속 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타고 있는 불과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충분하시고, 자원이 전혀 고갈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충분하고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은 에너지가 영원히 넘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불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불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능력을 주셔서 새 일을 행하시기 원하셨습니다.

불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사라지지 않으시는 하나님, 영원히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충분하신 하나님, 영원히 넘쳐흐르시는 하나님, 에너지가 충만하신 하나님, 스스로 능력을 통제하시고 조절하시고 다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에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아주 흔한 나무입니다. 사막에는 떨기나무만 자랍니다. 다른 나무는 사막에서 살 수 없습니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떨기나무는 잎도 나지 않습니다. 사막에서 물이 있는 낮은 지역에서만 자랍니다.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잎도 나지 않는 거친 나무, 그늘도 만들지 못하는 쓰임새 없는 나무입니다. 불에 타면, 재가 한 줌도 남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떨기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볼 품 없는 존재입니다. 불이 붙으면, 한 줌의 재 밖에 되지 않을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존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멸되지 않는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붙으면,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떨기나무와 같이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척박한 땅에 심겨 있다 할지라도 영원한 불이신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어떠한 경우에도 망하지 않고 살아날 것입니다.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드러내는, 멋진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거대한 힘에 의해 이끌려갑니다.
그때는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광야에서 모세와 출애굽의 모세는 전혀 다른 인생입니다. 영원한 현재로 다가오신 하나님을 만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것은 모세의 인생 가운데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인생에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을 만난 순간, 그의 인생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과거와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새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찾아오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면,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스펙과도 상관없습니다. 모세는 살인자의 딱지가 붙은 사람입니다. 그는 양치기였습니다. 도피하는 삶을 살았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가오시는 순간, 하나님의 현재와 만났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간이 우리의 삶에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다가오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경험한 적이 언제입니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의 발걸음을 멈추고, 나의 존재를 흔들어놓는 경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의 떨기나무를 이용하셔서 모세를 집중시키셨습니다. 아무리 둔하다 해도 알아차릴 수 있는 확실한 사인(sign)을 통하여 다가오셨습니다.
우리가 깨어있고 민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임합니다.
이런 일은 특이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사막은 모세가 늘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늘 다니는 곳,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우리에게 익숙한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언제 체험해보셨습니까. 길을 걷다가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강력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데,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설교하다가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설교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그런 경험을 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을 거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을 거십니다.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으십니다. 우리에게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하십니다.
이 사건 이후, 모세는 과거회귀형의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미래의 시간으로 갔습니다.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상황은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후회로 점철됩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 뿐입니다.

40년 동안 모세의 인생은 광야에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맸으니 얼마나 쪼그라들었겠습니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만 반복되었습니다.
사라질 운명이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타지 않는 불 되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반전(反轉)을 일으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다가오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인생은 그냥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지는 인생이 많습니다. 사라져서 한 줌의 재가 되고 맙니다.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버립니다. 초라하게 쪼그라듭니다.
사라지지 않고 불꽃 같이 일어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 시간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시간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나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가 겹쳐질 때, 우리의 삶은 기적이 되고, 인생의 특별한 스토리가 쓰여집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간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경이를 만나게 되고, 놀라운 기적과 특별한 사건들이 하나님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가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간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을 노크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나에게 다가오시고, 나와 마주 앉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시간은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40년 광야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버릴 수 있는, 80년의 세월이 한 줌의 재로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시점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인생에 위대한 반전을 일으키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마주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데려가시는가에 대해 온전히 반응하고 순종하면, 색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후회로 가득 찬 과거형의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현재이십니다.
영원히 현재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후회로 점철된 인생이 아니라,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가까이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놓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마주 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밋밋하지 않습니다. 강력합니다.
오순절에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셨던 성령의 충만함이 사도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던 것처럼, 역사를 새롭게 썼던 것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과거에 빠져서 과거에 묻혀 살아가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이끌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는 불이 됩니다.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에너지가 우리 속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충만한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매우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파묻히거나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끊임없이 충분히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끊임없이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불은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시련과 환난도 이겨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사건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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