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 열려진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라 Friday Night Sermon

제목 / 열려진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라
본문 / 창세기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적인 삶을 살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은혜, 특권과 축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에게 주신 특권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적 통치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인간에게 있는 신적 능력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은 피조의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아야 하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오히려 지배를 받고, 굴복하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극도로 망가지고, 하나님의 피조세계가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타락한 인간에 의해 땅이 황폐해졌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만든 문명이 세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피조물들이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간의 범죄는 악독해지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만든 문명은 파괴적이고 퇴폐적이고 비극적입니다. 그래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퇴폐적이고 타락한 문화는 갈수록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비인격적이고 파괴적이고 음란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 속에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을 파괴합니다. 악한 것을 미화(美化)합니다.
인터넷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퇴폐적이고 타락한 문화가 그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격과 영혼을 망가뜨립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후에 만든 문화와 문명은 갈수록 절망적이고, 비극적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입니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참 악합니다. 어린 아이의 속에도 악이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세상이 악하고 어둡고 비극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을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점점 좋아져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점점 악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하므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악한 문화와 멸망의 세계로 달려가는 이 땅을 위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로 인해 망가진 우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이 구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masterpiece, ποιημα)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품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만드셨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만드시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걸작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므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 있는 포도나무에 접붙임 된 가지가 되었습니다. 포도나무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가지가 받아 열매가 열린 것처럼, 소망이 없던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살아갈수록 죄만 늘어났습니다. 악취만 더해갑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악한 존재였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자신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깨닫습니다. 자기 안에 선한 것, 의로운 것이 전혀 없음을 깨닫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고, 하나님 앞에 멸망해야 마땅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소망 없이 살던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캄캄한 가운데 살아가던 우리에게 소망의 빛이 비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에서 실패한 인간에게 재창조의 기회를 허락하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셨던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황폐하고 소망이 없는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바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다스리고 지배하여 악이 창궐하던 세상의 한 가운데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것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소망 없는 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 이 세상을 건져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그대로 두면,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죄악에 직면하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악한 궤계가 있습니다. 복음이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에서 실패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걸작품이 된 우리는 도피적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세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세상을 복음을 정복하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충만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생산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모든 생명은 재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에게 허락하신 독특한 힘입니다.
작은 물고기 속에 생명이 있으면, 그 속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자랍니다. 번식합니다. 번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체에 주신 비밀입니다.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재생산합니다. 생명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생명체든 생육하고 번성하는 힘을 부여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력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은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은 예수님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마른 가지와 같았습니다. 가만히 두면, 더 말라버립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점점 더 말라버립니다. 원나무에서 잘려졌기 때문에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요, 부활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봄에 물이 가득 차오른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봄에 물이 오른 나뭇가지를 보세요. 자르기도 힘듭니다. 생명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가지가 힘 있게 뻗어나갑니다. 잎사귀가 돋아납니다. 열매가 맺힙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생명의 힘이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땅속의 기운을 빨아올려서 가지 안에 생명의 힘이 충만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에 포도가 맺힙니다.

생명의 힘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안에는 수많은 씨앗이 있습니다. 씨앗이 번식하면, 어마어마한 농장을 이룹니다. 신비롭습니다. 끝없이 번식하고 번성합니다.
씨앗 하나에 담긴 생명력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작은 씨 안에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생명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생명력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에는 얼굴에 핏기가 없었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삶이 힘들어 지쳤습니다. 생명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안에 생명의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면, 하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주어집니다. 하늘의 부요함이 우리 안에 찾아와 세상의 것들로 인해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적 생명을 공급받았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중생했다는 것은 구원 받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육체적 생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의 것과는 다른 생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 생명의 씨앗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고 있습니다. 물오른 인생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산불이 나서 나무가 다 타버린 것 같은데,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납니다. 생명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내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생명력이 분출되어 옆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있습니다. 집안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나중에는 가족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 속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세요.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폭발력이 있었습니다. 열두 명에서 120명이 되고, 120명에서 3천 명이 되고, 5천 명이 되고, 나중에는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생명의 특징은 번식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습니다. 재생산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으면, 그 한 사람을 통해 교회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별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안에 있는 생명이 터졌습니다. 부활의 능력이 임하여 바울이 탄생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불이 붙어 바울이 태어났고, 바울은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힘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소멸되는 힘이 아니고, 왕성한 확장력을 가진 힘입니다.
생명은 확장되고 번식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급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힘이 작동될 때,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은 생명의 힘의 지배를 받습니다. 생각 안에 생명의 힘이 역사하면, 생각이 팽창되어 풍성해집니다.
신자가 은혜를 받으면, 생각에 창의력이 생깁니다. 긍정적인 사고(思考)를 하게 되고, 창조력이 생깁니다. 생각이 쪼그라들지 않고,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자의 말은 소모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생산력과 창조력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을 가진 신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은 생명을 낳습니다. 죽은 언어가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가 흘러나옵니다. 죽은 언어는 절망적입니다. 원망하고 낙심하고 비판하게 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언어는 다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격려가 있고, 축복과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생명력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면, 사람이 살아납니다. 생명의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죽음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생명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압니다. 글을 쓰더라도 죽이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글을 씁니다.
생명의 언어를 통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삶에는 놀라운 열매가 맺힙니다. 생명의 힘을 가진 사람의 땀은 거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오늘날에는 헛된 땀을 흘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헛수고하다가 허무하게 삶을 마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번식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이후, 이 땅에 엉겅퀴가 나고,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힘은 힘대로 들고,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헛된 수고를 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다릅니다. 의미 있는 땀을 흘립니다. 수고한 만큼 열매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거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저주가 끝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속에는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생명의 열매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힘으로 일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의 힘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 때문에 나무에 있는 생명으로 인해 가지에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예수님의 안에 있는 생명에 접붙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면, 우리에게 극상품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교제의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주님께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면, 죽음의 권세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 중등부와 고등부의 학교기도회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30개의 중학교에서, 37개의 고등학교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기도회를 시작했는데, 수십 명의 학생이 모여 기도하는 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이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하는 학생이 점점 늘어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왕따 당하는 학교도 있고, 선생님들이 반대하는 학교도 있고, 교장선생님이 기도회를 방해하는 학교도 있지만, 학생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더 많은 학교로 번져나갈지 모릅니다. 학교 안에서 기도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 속에는 사망의 힘, 쇠퇴의 힘이 작동합니다. 죽이고 끌어내리는 힘이 작동합니다.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영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을 빼앗아갑니다. 사람들은 좌절하고 낙심하고 한숨지으며 살아갑니다. 힘을 빼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세상에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눌려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이 눌려있습니다. 사람들의 정신이 눌려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눌려있습니다. 환경과 사람의 말이 짓누릅니다. 어두운 세상의 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곳에서는 생명의 영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살려면, 생명력이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일으키는 힘이 일어나야 합니다.

화초는 밟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잡초 안에 있는 생명력은 굉장합니다. 그래서 콘크리트를 뚫고 나오기도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력은 잡초 안에 있는 생명력과 같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다시 일어납니다. 힘든 일이 있는데도 입에서 찬송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력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죽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생명력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왔을 때에 눌린다면,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있어도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에도 힘 있게 찬양해야 합니다. 힘 있게 찬양하면 마귀가 떠납니다. 어둠과 슬픔이 떠나고, 염려와 낙심, 한숨이 떠납니다.

누가 나를 욕한다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 몰려온다면,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힘 때문입니다. 내 안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련이 와도 끄떡없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생명력이 강하게 분출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력을 옮겨야 합니다.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집회는 수원지와 같습니다.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집회 시간에는 우울함이 찾아올 수 없습니다.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기뻐하기 때문에 우울증이 파고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력은 죽음의 흔적을 없애버립니다. 사망의 냄새를 사라지게 합니다.

여러분의 안에 생명의 힘이 넘쳐납니까? 죽음의 힘이 넘쳐납니까? 생명의 힘이 넘쳐나야 합니다. 생명력이 있으면 번식합니다. 생명력으로 인해 열매를 맺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잠재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능성입니다.
씨앗 하나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씨앗 하나가 심어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열매를 거두어서 그 속에 있는 씨앗을 또 다시 심으면,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흥분됩니다.

성경에서는 씨앗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씨앗 안에 가능성을 숨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집에 텃밭이 있었습니다. 유실수도 심고, 온갖 작물을 심었습니다. 씨앗이 자라 열매가 맺히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온 이상,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그냥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시간은 우리의 심령에 씨를 뿌리는 시간입니다. 설교자가 가진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은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심령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통해 무슨 역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리다 보면, 어느 날 말씀이 믿음과 만나 말씀을 확실히 믿게 됩니다. 그때 말씀의 씨앗이 자라 열매 맺게 되고, 말씀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말씀 자체가 강력한 것입니다. 믿음이 말씀과 만나 작동되면, 말씀이 폭발해버립니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던 것들이 일어나 우리 안에 있던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들이 사라지고, 인생이 꽃피우게 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가 자신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능성을 가두어버립니다. 열등감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직업이 어떠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대가로 지불하시며 우리를 기막히게 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의 귀중함을 깨닫는 순간,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놀라운 것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것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적 역사를 대행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엄청난 가능성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가능성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심성으로 말미암아 죽어있던 것들이 다시 위대한 작품으로 살아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꽃피우게 됩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나이를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는 8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까지 대작을 그렸습니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80세에 불후의 고전 〈파우스트(Faust)〉를 썼습니다.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90세까지 지휘를 했습니다. 피카소(Pablo Picasso)는 92세까지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92세까지 발명에 몰두했습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95세까지 하루에 6시간씩 연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특징은 자신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살아갈 때, 자신감이 회복됩니다.

우리는 외적인 조건이나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주눅 들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답게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 의욕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 무엇입니까?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소망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절망과 좌절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을 경험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 자신감이 회복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역하는 것이 신납니다. 설교하는 것이 신납니다. 제 안에 열정이 있습니다.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생각하면, 기대가 됩니다. 복음의 영광과 광휘(光輝)에 빠지면, 세상의 것들로 인해 주눅 들지 않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고백했습니다(빌 1:21). 바울은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신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갈렙처럼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영역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 14:9).
기적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사용하기만 해도 충격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중에도 엄청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중에도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라는 기막힌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안 돼”라고 결론 내렸다면,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의 삶에 있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마음껏 표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의욕이 넘치고, 자신감이 넘쳐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다스리는 권세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통치권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각 생물의 이름을 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의 문화에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다스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치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통치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우리는 왕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권세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명령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에게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했습니다(행 3:6). 명령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치유하실 때 “아이야 일어나라(눅 8:54)”,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명령권과 통치권을 사용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라고 말했습니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명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통치권을 베드로가 동일하게 사용했을 때, 못 걷게 된 이가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사건 이후, 성령으로 충만한 그들에게 영적 권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통치권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다스리는 권세를 구체적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권세 잡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권세로 제압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가운데 큰 권세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를 제압하려면, 성령의 검을 가지고 선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복종하고,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명령권자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세를 잘 쓰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선포해야 합니다. 돈의 권세가 나를 지배하려고 하면, 명령해서 내쫓아야 합니다. 어두운 생각과 근심도 명령해서 내쫓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릴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를 다스릴 자가 없습니다. 어떤 환경도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어두운 환경이 나를 누르면, 어둠의 영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물질의 세계를 다스리기만 해도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질에 끌려 다니면, 신자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세계에 끌려 다니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줄에 매인 개와 같습니다. 줄에 매여 있는 개는 주인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갑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돈이 주인이 된 인생,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주 적게 가진 듯이 살고, 아무리 적게 가졌어도 엄청난 것을 가진 듯이 사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엄청나게 많아도 아주 적게 가진 듯이 사는 법을 배우세요. 아무리 적게 가졌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을 가진 듯이 사는 법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별 것 아닌 것에도 행복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통치권은 기도를 통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다스림의 영역에 속합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하세요.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 그곳에 빛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이 어두워지면, 진리의 빛이 영혼을 지배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불의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선포하세요. 불의하고 어둡고 더럽고 악하고 음란한 것이 떠나가도록 선포하세요. 무너지고 깨어진 것이 수축되고 재건되도록 기도하세요.

우리가 다스려야 할 영역이 매우 많습니다. 세상 주관자인 마귀가 다스리도록 방치되어있는 세상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마귀들의 무대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 전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두움이 떠나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선제공격해야 합니다. 반전의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명령권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이 땅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사용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스릴 때, 그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면, 그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수세에 몰려 전전긍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다스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서든 왕의 권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직급과 상관없습니다. 신분과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의 대행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통치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번식력과도 같습니다. 번성하는 힘입니다. 확장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분출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해 잠재력과 가능성이 깨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마음껏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다스림의 권세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지배 받지 마세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여러분 모두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망의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 소망을 일으키는 일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이 땅은 소망 없는 땅이 되어버립니다. 버려진 땅, 사탄의 권세 아래에 지배 당하는 땅이 되어버립니다.
그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꾸어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생명력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잠재력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왕의 권세를 아낌없이 사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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