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Sunday night worship
제목 : 참으로 많아야 할 것

말씀 : 벧전1:1,2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의 서론적인 말씀. 1절에 송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2절에서는 수신자들의 정체성을 말씀해주며 축복하는 내용이다.

1.송신자와 수신자

1)송신자 : 사도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본명은 시몬이다. 그는 안드레의 형제로 갈릴리 벳새다의 어부출신이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신 후에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모든 생업을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마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후 야고보 요한과 함께 예수님 제자의 핵심인물이 되지만 그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여러 번 실패도 겪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고 하시자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나섰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마16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에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다가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마26장,요18장)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다가 험한 풍랑으로 고난당하다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풍덩 뛰어 들었다가 그만 험한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여 점점 가라앉을 때에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구원해 주시며 왜 의심하였느냐는 책망을 받기도 한다.(마14장)

가장 뼈아픈 실패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가자고 하자 예수님께서 오늘밤에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떠나도 나는 죽을지언정 떠나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결국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부인하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마26장)

그러나 이후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받고 예수님의 수제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된다. 그가 설교할 때에 하루에 삼천명 오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40년동안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에게 일어나 걸으라 하니 즉시 일어나 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운지 팔년이 되는 애니아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자 즉시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였으며, 욥바의 다비다(도르가)가 죽었을 때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또한 룻다, 욥바, 가이사랴를 비롯한 각처를 순방하면서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다가 사명을 감당하였다.

고대 문서들에 의하면 안디옥교회도 베드로가 설립하였다고 하며 소아시아 지역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후에 바벨론,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년에는 로마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는데 네로의 박해 시에 제자들의 간곡한 청원으로 로마를 떠나던 중 주님이 나타나 어디론가 가실 때에 베드로 쿼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네가 회피하는 십자가를 다시 지러간다고 하시자 베드로는 발걸음을 돌이켜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A.D. 68년경)

이런 베드로의 삶에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 실수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러한 뼈아픈 실수를 딛고 주님 앞에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정말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에 어떤 형태로든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약하고 부족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서 모든 약하고 부족하고 허물된 것들을 이기고 주님의 역사에 쓰임 받음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영원한 영광의 은총을 누리자.

2)수신자 :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1절)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이 지명은 모두 소아시아 지역. 흩어진 나그네라는 말씀은 실제로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단순히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을 의미하기도. 당시 흩어진 유대인 크리스천이나 현지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다. 유대동족들에게도 핍박을 당하고 특히 이 당시는 로마로부터도 박해를 당하기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그래서 본서에 보면 이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한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3절 산 소망이 있다. 4절 썩지 않은 유업이 있다. 6절 여러 가지 시험으로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도리어 크게 기뻐한다.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벧전1:24,25)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벧전2: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등등....

우리도 나그네들이다. 나그네 길은 고달프고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다. 우리에게도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도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하고,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게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다. 오직 거기에 생명이 있고 산 소망이 있다. 영광의 나라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휩쓸려가지도 말고, 나그네 길과 같은 세상의 삶에 목숨 걸지 말고 천성에 소망을 두고 나그네 길의 아픔을 이겨나가자. 더 나아가서 광야의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망위에 설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힘쓰자. 그래서 우리 모두 함께 여기서도 승리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자.

2.수신자들의 정체성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말씀에 보면 크게 두가지 주제가 나타난다. 첫 번째는 수신자들의 정체성으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내용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는 말씀이다.

먼저 정체성을 보자.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그럼 왜 그렇게 하셨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거룩하신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우리는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①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은 예정 교리 한 모습이 나타나나는데 솔직히 예정교리는 너무나 어려운 말씀이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도 딱 부러지게 정리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에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에 대해서는 그냥 하나님께 맡겨두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 나를 부르셨다는 것, 내가 부름 받고 선택받았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자부심과 긍지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지만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내 마음 내 생각대로 살 때가 많았다.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서 내 멋대로 살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고, 성령께서 감동감화를 주시고 역사하셔서 믿음을 주심으로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고 깨끗케 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그렇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야 한다. 그렇게 성령의 지배 속에서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진정 거룩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③우리를 깨끗케 하신 것은 순종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입었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죄 가운데 씻음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죄는 당연히 씻음받고 우리 생각과 목적과 방향과 가치관과 이성과 경험과 지성이 다 깨끗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더럽고 추하고 속된 생각들 속에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모습으로 회복된 것을 말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영과 육과 혼의 전인격이 거듭난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거듭나면 당연히 순종하게 된다. 주님의 말씀과 뜻과 삶을 따라 살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며 주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감격하고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며, 더욱 거룩하고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더욱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성령의 능력과 인도와 지혜가운데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말씀에 순존하여 죽께 영광을 돌리고 주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자.

3.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축복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택하신 백성들의 정체성을 말씀하신 다음에 사도는 그들을 축복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서신서는 대부분 서두에서 축복하고 말미에서 축복함으로 축복으로 시작하고 축복으로 마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있는 은혜와 그들이 잘못한 부분들, 고쳐야 될 부분들, 지켜야 할 들을 말씀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우선 성도는 항상 서로를 축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책망할 때도 있고, 강권할 때도 있고, 심지어는 징계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들은 성도를 축복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혹은 제멋대로 살아간다고 저주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성도에 대하여 축복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주고 축복해야 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축복의 내용은 더 중요하다. 물론 건강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고, 권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천배 만배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을 위하여 물질이나 육신이나 세상의 명예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인생에게 자유를 주고 행복을 주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없으면 행복한 인생이 못된다. 만약 그러고도 행복을 누리다면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으면 참된 생명을 얻는다. 자유와 평화와 감사와 기쁨 속에 살아간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자가 된다. 은혜가 내 영혼과 생각과 신을 감싸면 만사형통이다. 형통하지 않아도 형통이다. 하늘 평안을 누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조건과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정말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성령의 깨끗케 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성령 충만함을 받아 은혜와 평강 속에서 정말 세상의 모든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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