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철야예배설교

 

제목 /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본문 / 에베소서 3:20~21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본문은 우리가 많이 본 구절입니다. 에베소서 3장 14~19절에는 바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울의 기도 후에 본문
20~21절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송영(頌榮)’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면서 결론적으로 끝내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등식(等式)입니다.

신자(信者)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평생 기도로 먹고살아야 합니다. 신자는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할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배우지 못하면, 일평생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하면 주신다는 기본적인 등식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하면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구한 것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도 응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매우 적극적인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까? 그렇다면 큰 일 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다 응답된다면 큰 일 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다 응답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정욕적인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평소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우리의 기도에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담대함이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바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때에 꺼림칙하다면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할 때에 담대함이 생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확신이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바른 관계에 있을 때, 우리의 생각은 귀한 것입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는 생각들은 예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에 우리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거룩한 생각입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에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 살까, 어떻게 하면 영혼을 구원할까’하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까지 들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 이상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것을 생각한다 해도 하나님의 생각에 미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능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아내 사라가 많이 늙어서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상태와 같은 자신에게 자식을 주신다는 것은 경험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생각을 넘어선 것입니다.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의 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불행은 상상력이 심각하게 결여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게으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을 일으키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장막에서 나와서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5:5).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의 상상력을 자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을 바라보게 하시며, 아브라함의 상상력을 자극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거룩한 상상력이 일어나게 합니다. 믿음이 커지면, 상상력이 풍성해집니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꿈꿔보지도 못한 일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생기면, 그렇게 됩니다.
현실은 암담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어둠 속에 갇히지 않고, 어둠을 뚫고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상력이 일어납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현실에 갇힙니다. 답답한 현실에 갇혀버립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상상의 날개, 생각의 날개를 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문제를 뚫고 새 역사를 펼치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단조로운 언어 속에 갇혀 계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언어 속에 갇혀 계실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신다는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에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가 구해야 할 것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읊조리는 기도의 틀 안에 갇혀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훨씬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문구(文句)를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말로 표현된 기도보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중(心中)을 헤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생각까지 넓혀야 합니다. 믿음으로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 너머의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넘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끝은 아닙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단어에 유념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넘치도록’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
이것은 넘치고 있는데, 그 위에 더 넘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매우 많은데, 그 위에 더 부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시대의 특징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到來)한 것입니다. 율법 아래와 은혜 아래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율법 시대는 정확합니다. 자칫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길 수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모든 것은 불완전합니다. 정확해야 합니다. 넘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다릅니다. 은혜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말한 것은 그냥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들이부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넘치도록’ 이 표현은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무제한적으로 부어주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복음이 주는 은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흘러넘치는 것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끼지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은 참 멋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낌이 없으십니다. 아끼면 넘치지 못합니다. 넘친다는 것은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지 않으셨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냥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입증한 사건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아끼셨으면, 죽이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실 때에 항상 아들 예수님이 기준이 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아들과 견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을 쏟아 부으시는 것을 느끼면서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롬 8:37).

상한가(上限價)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상한선(上限線)이 갑자기 뛰어올랐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바치는 대가를 지불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3장 18~19절에 보면,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한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최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덧붙일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충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세상 어디에나 결핍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다 해도 무엇인가 모자랍니다. 아주 멋진 집에 이사를 가도, 뭔가 결함이 있습니다. 아주 멋진 곳에 여행을 가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와 같이 사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충만이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커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은 무엇입니까? 계산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계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을 의미합니다. 넘치도록 흘러 부어지니까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닫혀있으면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부어지니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불만족입니다. 풍요의 세상을 살고 있지만, 결핍 증세를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 채워지지 않습니까? 잘못된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부족한데, 돈이 더 생기면 채워집니까? 채워지지 않습니다. 돈이 부족해서 돈으로 채워진다면 좋은데, 돈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이 더 마릅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체득(體得)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무제한적 공급, 은혜를 알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넘치도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 더하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관점이 있다면,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결정적인 문제는 주인에 대해 오해한 것입니다. 주인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는 주인을 매우 인색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신앙에 매우 치명적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뒤틀려있으면 힘듭니다. 아버지는 부자인데, 자녀가 아버지께 용돈을 받을 때마다 눈치를 본다면, 얼마나 한심합니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매우 답답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는 돼지 죽통을 훑다가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제자들은 어린 아이의 손에 있는 오병이어 그 이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5천 명을 먹이시고도 남게 하셨습니다. 열두 바구니에 차게 남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에도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부인할 수 없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적극적으로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예외 규정을 만들고, 축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 속에서 이것을 실제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간증이 담긴 고백입니다. 모든 필요(all needs)를 채우시리라는 의미입니다.
구하지 않는 것도 불신앙이지만, 축소하여 구하는 것도 불신앙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하는 것에 더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영역 속에서 무제한적으로 부어짐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의미입니다.
염려하는 삶은 바닥을 긁는 삶입니다. 은혜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흘러넘칩니다. 율법은 우리가 행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고, 은혜는 우리가 행한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편에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늘 주눅들어있습니다. 눈치보고 끙끙거리며 살아갑니다. 율법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도 기도 내용이 다릅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라지도 않습니다. 생각이 늘 부정적입니다. 하나님을 인색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실 리 있나’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율법적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복음 안에서 은혜에 흠뻑 젖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아들이라는 대가(代價)를 지불하시고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지만, 예수님의 공로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우리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당당해야 합니다.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바닥을 긁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고, 주님 앞에 강력하게 부르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넘치도록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편에서 전혀 계산하지 않으시고 부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사랑에 빠져 실성한 아버지처럼 우리를 대하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돌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모든 것을 더하여주시는 은혜, 모든 것에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노력해도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산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일들이 우리의 삶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가 쪼그라들지는 않습니까? 생각이 초라해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제한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구하는 것의 지평이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더하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까지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에 갇혀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훨씬 넘치도록 풍성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초점은 두 가지여야 합니다. 하나는 본문 21절 말씀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제한적으로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결론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생각의 초점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정욕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둘째,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생각의 방향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앉으나 서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넘치도록 부어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목적과 방향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의 뜻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맞추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신경 쓰십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직장에 들어갈 때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로 여기에 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흘려보내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갈 방향을 바로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십니다.

무슨 생각이 좋은 생각입니까? 나누고 베풀려는 생각이 좋은 생각입니다. 착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착한 일에 넘치도록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이웃과 나눌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것을 나누기로 생각하는 것이 부요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생각을 기뻐하십니다.
이 생각 위에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부어지고 흘러넘치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은 하나님은 능하신 분이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으면, 반드시 주십니다.
여기서 ‘능히’라는 말은 100% 가능함을 의미합니다. 사안(事案)에 따라 되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power that is at work within us)’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능력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거룩한 상상력의 날개를 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세요.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겨우 걱정 염려하지 않는 수준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견뎌내는 삶이 아닙니다. 지루한 기도생활로 근근이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격파하고, 내가 만든 울타리를 걷어내고, 경계선 없이 무제한적으로(unlimitedly) 역사하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원을 축소시키지 마세요. 하나님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제한적으로 부어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축복이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풍성한 분이신지, 우리가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시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끼지 않으십니다. 아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대가를 지불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아끼실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목표와 방향이 정확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기도하는 것,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충만한데 더 부어주시고, 계산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가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생활하면서 자신을 축소시키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겨우 버티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거룩한 상상력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상상력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제한 없는 기도를 거침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율법의 시대가 아닙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우리를 통해 흘러넘쳐서 우리 주변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그 은혜를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흘러넘치게 하시고, 더하여주시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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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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