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최후의 만찬 갈3장13~14절

 

어느 날 영국의 북부도시 에딘버러 시립공원에 12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두제자의 이름을 따서 나무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그리고 맨 마지막엔 가롯유다의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나무들은 모두 다 잘 자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 나무들은 제법 무성하게 가지를 드리우고 그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지나가면서 나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베드로 나무야 많이 자랐구나. 좀 더 무성해 지거라.”또는 “요한 나무야 잘 있었느냐. 너는 사랑스럽구나. 그래, 어서 더 자라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지” 그런데 사람들은 가롯유다의 이름이 붙은 나무를 보기만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예끼 이 몹쓸 가롯유다야! 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지? 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지. 저주를 받아라.”하고 침을 뱉으면서 지나갔습니다. 그런지 3년이 못되어 가롯유다 나무는 시들시들해지더니 끝내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저주와 욕설에 그 나무는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저주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주일 넷째 날인 성목요일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마 26:26~28). 예수님은 그 밤에 감람산에 올라가셔서 밤새워 기도하시고 원수들에게 붙잡혀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옷을 벗은 채 가죽 채찍으로 피가 쏟아지도록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아니라 저주의 십자가였습니다(신 21:22).

 

예수님은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무도 지려하지 않는 치욕의 십자가를 나를 위해 기꺼이 짊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마저 얼굴을 돌려버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_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통곡하며 부르짖던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욕심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거짓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불순종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정욕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자존심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맞아야할 그 매를 대신 맞으시고 예수님은 내가 써야 할 가시관을 대신 쓰셨으며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와 여러분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죄 값을 치를 능력이 없습니다. 그 죄 값을 치러 주시려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저주에서 풀려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음의 저주에서 풀려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 모두가 마귀의 저주에서 풀려났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과 근심의 저주에서 풀려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 때문에 저주에서 풀려 진정한 자유함을 얻은 우리가 된 것입니다.

 

한 주간동안 고난주간이 계속됩니다. 갈보리 언덕에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내가 져야할 저주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봅시다. 그리고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다시 바라봅시다. 그리고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받을 때, 아브라함에게 신령한 복과 기름진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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