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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관상기도, 레노바레라는 이름으로 위장 침투
본 기사의 출처는,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출간" "레노바레 운동 드디어 한국교회 중심부로 포진하다!!" 옥성호의 2009/5/20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관상기도 관련 영성을 비판하는 글을 인용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정보 제공, 본지의 모체인「기독교이단대책협회」는 관상기도(레노바레)에 대하여 비성경적인 것으로 구원이 없는 이방종교인들의 만트라 행각과 가톨릭의 관상기도를 교묘히 각색한 관상기도와 레노바레 신비주위 변신을 교회에 도입이나 적용을 절대 금하는 입장임을 밝힌다(편집자 주).

1.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1) 레노바레 성경?.
카페 : 샬롬방 신앙공동체
박문수 2006.08.31. 22:47 / htty://cafe.naver.com/shalom/7149
기독교출판소식 9월호에
레노바레 성경이 곧 출간된다고 광고가 있다.
집필 대표자는 리치드 포스터, 윌터 브르그만, 유진피터슨, 달라스윌라드, 강준민 목사님이시고 총인원50명의 학자, 신학자, 목사의 참여하에 5년의 제작 기간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중략...
:레노바레 :
레노바레는 침묵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스스로 변화되고, 이를 통해 교회와 이웃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는 기존의 통성기도와는 달리 침묵기도는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내면 여행'을 강조한다. 가톨릭의 관상기도와 유사한 것으로 설명된다. 라고 하네요.
저희 교회에서도 고독의 영성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레노바레 인듯...한국교회하면 통성기도인데-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2)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유진 피터슨, 리처드 포스터 저 | 두란노 | 2008.06.01
ISBN9788953110281 / 정가35,000 원

책정보 네티즌 리뷰책 소개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달라스 윌라드 외 50여 명의 집필진이 편찬한 성경책이다. 영성 개발을 돕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with-God life)에 대한 15개의 에세이가 실려 있으며 각 성경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각 권 개요, 성경 각 권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다룬 서론, 본문의 배경, 내용 설명과 함께 개인의 영성 개발을 구체적으로 돕는 본문 주해, 성경 중 만나게 되는 논제들의 통합과 깊이를 더해 주는 영적인 적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달라스 윌라드 외 50여 명의 집필진이 편찬한 성경책이다. 영성 개발을 돕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with-God life)에 대한 15개의 에세이가 실려 있으며 각 성경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각 권 개요, 성경 각 권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다룬 서론, 본문의 배경, 내용 설명과 함께 개인의 영성 개발을 구체적으로 돕는 본문 주해, 성경 중 만나게 되는 논제들의 통합과 깊이를 더해 주는 영적인 적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책소개 펼쳐보기 책 소개 닫기 저자 소개 유진 피터슨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에 독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리처드 포스터는 미국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versity), 미시건의 스프링아버 대학(Spring Arbor University)의 영성신학 교수이며, 개인의 영적 성장과 교회 갱신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는 “레노바레(Renova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리처드 포스터는 레노바레를 통해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모하고 갈망하도록 돕는 영성 운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청교도와 퀘이커의 영향을 받은 그는 개인의 영성만 추구하기 보다는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듯”(Deep calls out to deep, 시 42:7)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 서로 깊은 영성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깊은 영성으로 이웃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그의 저서 중에 [영 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은 영성 훈련 지침서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성장으로 이끌었고,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와 [돈, 섹스, 권력]은 각각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선정 올해의 책과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협의회(ECPA)의 골드 메달리언 대상을 수상했다.

 

2. 레노바레 운동 한국교회 중심부로 포진!!.


“2007.11.14 23:46 / http://blog.daum.net/cayman11/13769495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와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다일교회 최일도 목사 등 목회자 12명이 6일 서울 저동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회의실에서 ‘레노바레 운동’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레노바레 운동은 미국의 영성신학자인 리처드 포스터 목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창안한 묵상, 성결, 성령, 사회정의, 복음전도, 성육신 등 6가지 영성훈련 방법이다. 레노바레(Renovare)는‘새롭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간담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10월 14∼17일 영락교회 본당에서 열리는 ‘2007 레노바레 영성부흥 국제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직위에는 이들 외에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등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총 23명의 목회자가 참여하고 있다. 참가비를 일절 받지 않으며 사전 등록자에 한해서만 참석이 가능하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왜들 이러시는지요. 빈야드 운동, 알파코스, 뜨레스 디아스운동, G12, 신사도 개혁 운동, 프라미스 키퍼스운동, 임파테이션 운동, word-faith 운동( 노만 빈센트 펄,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릭 웨렌등), 뉴에이지 운동, 늦은비 운동..... 그만좀 멕이십시요.

미국 정통 교단과 이단 연구단체에서도 격렬히 비판되고 있는 이들 영성들을 왜 자꾸 끌어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헨리 나우엔의 관상기도인가 쉽더니 리차드 포스터의 레노바레 운동을 들여오겠다고 유명 목사님들이 결의하셨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일생동안 성경을 다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영성 들여와 성도들에게 이익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 목사님들, 성경이나 제대로 가르쳐 주십시요. 딴데 한눈 팔지 마시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다고 교회가 더 분열되겠습니다.

지금 교계는 알파코스와 g12로 시끌 버끌한데 또 레노바레로 또한번 홍역을 치뤄야 합니까 ? 뭐 그게 그리도 좋습니까 ? 성경으로 돌아가자구요. 지발.

 

레노바레 운동은.

1) 리차드 포스터는 퀘이커 출신이며 퀘이커 주의자이다.
2) 리차드 포스터는 로마카톨릭의 지원을 받으며 초교파적이다.
3) 리차드 포스터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다.
4) 리차드 포스터는 프리메이슨 단체(CNP: COUNSIL FOR NATIONAL POLICY, FULLLLER THEOLOGY SEMINARY, WORLD VISION등)와 프리메이슨 인사들에 의하여 지지되고 그들의 종교 통합 운동에 협조한다.
5) 리차드 포스터의 레노바레 운동은 뉴에이지 운동 신비주의운동 은사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운동이다.
6) 레노바레 운동은 종교 다원적 운동이다. 이라고 미국의 정통 교단과 이단 연구 단체에서 비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 많은 프로그램을 들여와 교계를 한번 흔들어 보자는 것입니까 ?

▲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 김창수 미국제의 영성이 쉴사이 없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 영성들의 도입은 개혁교회들의 개혁정신과 개혁적 교리들을 급속도로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들을 개별적이나 전체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대개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사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것을 주창하는 자들이나 소개하는 자들이 로마카톨릭에 친화적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종교다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들을 자신의 교회에 접목하려는 목사님들은 자신의 교회를 개혁의 근원에서 탈피시키려 합니다. 알파 g12의 교회는 이제 장로교회가 아닙니다. 솔직히 시인하셔야 합니다. 어디 그게 장로교회의 모습입니까? 아순복음교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부터 매년마다 지키던 개혁주일 기념 예배도 없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개혁교회들의 근간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이제 종교 통합으로의 대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 이전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며 로마카톨릭은 명실상부한 큰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아마 10년후에는 개혁교회들이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과 종교다원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3.“레노바레 영성세미나”옥성호의 비판.

묵상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
우리가 신이 된다는 가르침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들은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세미나가 다른 곳이 아닌 영락교회에서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포스터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저도 한 때 리처드 포스터와 달라스 윌라드에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할 얘기가 좀 있는 편이지요. 이 세미나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점은 대부분의 청중이 목회자였다는 점과 포스터와 윌라드 외에 여섯 번의 주제 강의를 한국의 대표적 목회자들이 진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여섯 번의 주제 강의를 테이프로 들었습니다.

이 세미나가 영성 세미나인 만큼 이 여섯 번의 강의에는 ‘영성’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제가 대충 살펴보니까 ‘무슨 무슨 영성’이 50가지 이상 나오더군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 교회는 성장 영성을 추구했다. 이제는 내면적 영성으로 바꿔야 한다.”“채움의 영성 대신 비움의 영성을 추구하자.”“부흥 영성보다는 각성의 영성을 갖자.”“방언기도 영성보다는 묵상의 영성을 갖자.”“한국의 새벽기도 영성은 참으로 훌륭하다.”끝이 없습니다. 여섯 개의 주제 제목 자체가 뒤에 ‘영성’을 붙인 것이니까요.

어떤 단어에 대해 제대로 개념을 정리하지 않은 채 그 단어를 마구 쓰는 것은 그 단어에 대한 ‘폭력’입니다. 한 마디로 ‘언어폭력’이지요, 이런 식의 ‘언어폭력’은 한국 교회에서 수도 없이 발생합니다. 끝없이 난무하는 ‘은혜 받았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또 하나의 경우지요.

레노바레의 주제 강의 가운데 하나가 ‘묵상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강의 전체 내용을 해당 목사님은 이렇게 요약하더군요. “묵상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성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예수님이 항상 묵상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물론 농담 차원이었지만 행동파 베드로는 묵상을 별로 안 해서 빨리 죽었고 사도 요한은 묵상의 삶을 살아서 장수했다고도 부연했습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 우리가 신이 된다는 가르침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분들이 주장하듯이 소위 말하는 렉티오 디비나(라틴어로 ‘영적독서’라는 말로 주로 수도원에서 쓰인 묵상 방식-편집자 주)를 통해 성경 구절을 ‘주문화’하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렉티오 디비나를 너무 하면 ‘디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디 예수님이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신 이유는 그 분이 성삼위의 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이런 ‘헛소리’ 앞에서 ‘아멘’으로 화답하는 수천 명의 목회자를 보면 가슴이 뒤집어집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이 세미나에서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환상을 예로 들면서 교단이 나뉘고 교리 차이로 서로 갈라지는 현실을 개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더럽다고 생각한 그 동물들을 먹도록 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절규’하셨습니다.“당신이 뭔데 감히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까? 왜 서로 비판합니까? 당신이 무어라고 하나님이 인정한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까?”

위의 본문이 이 목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결국 이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성이란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벗어 던지고 나와 다른 모든 이와 하나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세가 되면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대세가 무엇입니까? 개인의 체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체험주의와 감정주의입니다. 내가 느껴서 좋고 내가 체험했다고 하면 거기서 모든 논의는 끝입니다. 이와 더불어‘각자의 체험에 근거해’서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 되자는‘아름다운’주장입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하늘의 언어』와 같은 책들을 놓고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거나 의문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의 주장은 오늘날 대세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대세가 되면 검증도 판단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세에 속하는 순간 상식도 사라집니다.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 속의 수많은, 말도 안 되는 가르침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게 바로 오늘의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왜 제가 쓴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반론들이 제기됩니까? 그 책은 대세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정치권이나 교회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은 대세를 무엇이라고 표현했습니까? 바로 넓은 길입니다.

옥성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에 소재한 The 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특허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한국의 벤처기업 ‘위즈 도메인’에서 미국 지사를 맡아 현재까지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워싱턴에 있는 아이비엠(IBM)에 이르기까지 북미에 위치한 세계적 기업들을 상대로 국제적 세일즈 경험을 쌓았다. 20세기가 배출한 최고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를 통해 기독교 진리를 깊이 깨달은 후 세상에 물든 교회에 떨어진 폭탄으로 일컬어지는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부흥과개혁사)를 탈고 했다.

그 후 책 읽기 노하우를 정리한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세상과 교회 읽기 시리즈1,2』(부흥과개혁사)을 출간했다. 급변하는 21세기 속에서 복음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책을 쓰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는 옥성호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목사의 장남이기도 하다. (제14호 ?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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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예배를 향하여

 

개혁주의 예배관 / 개혁주의를 말하다

이성호 교수

 

1. 서론: 예배의 대상이신 삼위 하나님

예배의 현장에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그의 백성이 존재한다. 둘 중에 누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온전한 예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한 논의가 없으니 예배학이 하나의 인간학이 되어 버린다. 예배학이 범주 상 신학에 속한다면 예배의 주된 관심사도 예배를 받는 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예배와 나쁜 예배를 나누는 기준도 내가 얼마나 예배 속에서 은혜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는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예배학에 있어서 핵심 질문도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받으시는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거짓 종교와 구분 짓는 핵심교리이다. 이 교리가 이해하기 힘든 교리라고 해서 아예 제쳐 놓아서는 안 된다. 비록 이해하고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체험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예배는 그것을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다. 예배의 부름 속에서 삼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당신이 베푸신 잔치로 초대하시고, 우리는 송영을 통하여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삼위 하나님은 설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분에게 찬송과 기도로 응답한다; 삼위 하나님은 성찬 속에서 굶주리고 배고픈 우리의 영혼에게 참된 양식과 음료를 주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양식을 받아 먹는다; 삼위 하나님은 축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는 아멘으로 화답한다. 예배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예배는 왕이신 삼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함께 누리는 언약적 친교(covenantal communion)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신학과 예배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에 대해서 질문한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고신교회의 진정한 고백이라면 예배는 교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다. 참된 예배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소교리문답이 가장 첫 질문에서 예배가 신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교회에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교리문답은 교리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교리 혹은 신학은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

 

신학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예배가 신학이고, 신학이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을 테오로기아(theologia)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theos)’(logos)’의 합성어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혹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로 번역될 수 있다. 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예배야 말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와 찬송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신학은 이성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예배는 경험적 혹은 체험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보다 분명하고 풍성한 이해를 가지고 예배에 임하게 되고, 그 예배의 결과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신학에 대하여 보다 굳건한 확신을 얻게 된다.

 

예배가 본질적으로 체험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신학적 작업이 없다면 원래의 순수성에서 벗어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이것은 성경 자체가 그렇게 증거하고 있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입증되어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늪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였으며, 신약 이후의 교회에서도 순수한 예배 속에 세속적인 누룩이 항상 침투해 들어 왔다. 중세 로마 교회가 교리적으로 타락했을 때, 문제는 교리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만약 교리 자체만이 신*구교 사이에 문제였다면 종교개혁은 단지 교리의 개혁으로 끝났을 것이고 교회의 분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개혁파 교회가 출현하게 된 결정적이 이유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싶은 거룩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전의 예배 형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예배가 교회에서 드려지게 되었고, 참 성도는 그 예배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3. ‘오직 성경과 예배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과 개신교의 근본적인 교리의 차이를 이신칭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성찬에서 찾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그룹의 본질적인 차이는 권위에 관한 것이 분명해졌다. 개신교의 교리가 맞는지 아니면 로마교회의 교리가 맞는지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최종 권위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사소한 교리적 문제도 해결될 수가 없었다. 두 그룹이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최종 권위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으나 카톨릭은 성경의 충분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인정하였다. 반대로 개신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충분하며, 모든 종교적 논쟁에 있어서 최종적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데, 언뜻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원리 때문에 두 교회가 결국 분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직 성경은 특별히 예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개혁교회는 이전에 전통의 이름으로 관습화되어 왔던 예전들을 비평적으로 검토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개혁을 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개혁교회의 예배는 철저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개혁교회의 예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성경에 충실한 예배라고 할 수 있겠다. 개혁교회의 역사는 바로 이 예배를 교회 안에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긴 투쟁의 역사였다.

 

4. 규범적 원칙(Regulative Principle): 개혁교회 예배원리의 독특성

 

오직 성경의 원칙을 교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특히 이것은 예배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개신교 교회가 모두 오직 성경의 원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교파들 사이에 예배는 다양성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루터파와 개혁파의 예배가 다르고, 개혁파와 재세례파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각 교파마다 달리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파의 경우 성경의 명시적인 가르침과 충돌하지 않는 한 성경이 허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 결과 루터파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하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은 거부하였지만 로마 교회의 성만찬 예식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재세례파의 경우에는 성경이 직접적으로 명령한 것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성경에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가르침이 없는 유아세례는 예배에 있어서 거부되었다. 반면, 개혁파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명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의 전체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고,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추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필연적이고 선하다면 성경의 가르침으로 인정하였다. 유아세례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 특히 언약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배에 대한 논쟁은 영국교회에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영국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은 예배의 일치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영국교회는 영국 안의 모든 교회들이 따라야 할 공동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작성하였다. 이름과 달리 이 책 속에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예배 형식에 관한 세세한 규정을 담고 있는데 영국교회의 머리라고 불린 영국 왕들은 모든 영국교회 회원들이 이 책의 규정에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엄하게 명하였다.

 

공동기도서는 내용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반성경적 혹은 비성경적 예배를 배척하였고, 심지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대륙의 개혁교회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기도 하였지만, 보다 더 철저하게 예배가 개혁되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이들은 청교도라고 불렸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공동기도서의 가장 큰 문제는 개 교회의 자유가 박탈당하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청교도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만이 신자의 양심을 구속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개 교회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규범적 원칙이라고 하는데,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가 예배의 영역에 적용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직자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는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는 비본질적인 영역(아디아포라)이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각 교회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각 교회에 주신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영국교회 지도자들은 각 교회에 그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게 되면 교회의 가시적 일치가 상실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 성경과 명백히 상충하지 않는 한 비본질적인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 보다 구체적으로 주교회의에 의해 결정되어 통일성 있게 실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예배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을 하였고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예배모범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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