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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울 때를 많이 경험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경험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이나 영적인 비유로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의아스러움을 갖기도 하고,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벧후 1:20)고 하신 사도 베드로의 경고 말씀을 대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제 성경은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경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모국어로 성경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내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
1) 성경 자체가 성경이 해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여러 곳에서 교훈하고 있다.
사도들께서는 성경의 의미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을 여러 차례 교훈하셨다. 사도 바울께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것, 즉 성경의 의미를 잘 해석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나(딤후 2:15), 사도 베드로께서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하시면서 성경에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있으므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교훈이 있기에 앞서, 친히 성경(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해석하여 가르치심으로서, 성경은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몸소 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 27)고 한 말씀이 이를 증거해준다. 빌립 집사께서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라고 말하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해석하여 예수를 가르치신 일이 있었다(행 8:35).
2)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나 차이점들이 성경의 해석을 필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 문화, 세계관 등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시대나 문화적인 배경이나 세계를 보는 눈(세계관 또는 철학)이 다른 시대에 기록된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기에 예를 들어, 신부되는 성도들이 졸지 않고 깨어서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 문화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미혼인 사람에게 ‘언제 국수를 먹여 줄 것인갗하고 묻는 말을 할 때, 역사나 문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의 단어는 혹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것을 보아서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표현방법에서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같은 말의 반복이나(예: 진실로 진실로), 비슷한 말의 반복(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대구적(對句的) 표현(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등 여러 가지 언어적 유희 등은 적절한 해석이 없이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3) 성경에는 그 뜻이 서로 상충되는 듯하여 보이는 구절들이 있어, 성경 전체의 조화로운 이해를 위한 해석을 필요하게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내용과 순서상의 차이, 예수님께서 ‘천국(하늘나라)’ 교훈을 하셨다는 마태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는 누가복음 기록의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며”(요 5:31)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요 8:14)라고 하셨다는 요한복음 내용의 차이, 사도행전에서 세 차례 반복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발견되는 차이(행 9:3~18, 22:6~16, 26:12~1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갈 3:24)는 말씀과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약 2:24)는 말씀의 차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얼핏 보아 서로 상충되는 듯해 보이기 때문에, 그 문맥이나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 전체와 조화 되도록 해석되어야 할 필요를 생기게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방법과 기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2. 성경 해석의 원리들
성경은 사도 베드로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자기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사사로이)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들이 사용되어진다.
1) 문법적 해석
글은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저자가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 단어와 구절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나 그 단어의 배열순서, 문법, 문맥, 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 등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자의 성격, 경험, 교육수준 등을 아는 것이나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본문은 오직 한가지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한 본문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내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역사적 해석
대부분의 성경은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던 저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역시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자나 그것을 받는 수신자(受信者)가 살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 예언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서들이 기록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복음서나 신약 서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역사나 전통 또는 초대교회 각 지역의 형편들을 고려해야 그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3) 신학적 해석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딤후 3:16).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뜻이 점점 더 확실해지도록 점진적으로 주어졌다. 이 때문에 성경 66권은 각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여러 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가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한 구절 한 단어를 해석할 때도 성경 전체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혈통 등에 관한 말씀들은 성경 전체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해석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4) 문학적 해석
성경에는 앞에서 말한 언어적 유희 이외에도 과장법, 반어법, 의인법, 직유법, 은유법, 완곡어법 등 매우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각각 그 문학적 기교를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해석을 해야 한다. 또 성경에는 영적인 진리를 실제적이나 비실제적인 경험들을 들어 설명하는 비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문맥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 의도나 목적에 합당한 한 가지의 교훈만을 찾아내는 해석을 해야 한다.
5) 상징적 해석
성경에는 예표나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역사적인 실제 인물, 사실, 사건, 제도, 행위 등으로 미래에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을 예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것과는 관계없이 저자가 물건, 숫자, 형태, 행위, 환상, 색깔 등을 통해서 자기가 의도한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예표나 상징의 해석은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상징적 해석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저자의 본 의도와는 달리,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인 해석을 하기 쉽다.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그러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다가 그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성경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하여, 지나친 상징이나 영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때는, 먼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상징적 해석의 원리들이 적극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서, 그것으로 신앙의 표준을 삼고 영혼의 풍성한 양식을 삼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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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1.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서설

 

1) 칼빈은?

1517년 로마 카톨릭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란 종교개혁이 있은 후,

칼빈(1509-1564)은 이를 더욱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확립했다.

 

따라서 ‘루터 없이 칼빈 없고, 칼빈 없이 루터 없다’는 평가가 따르는 것은

“루터는 바위산을 폭파한 사람이라면 칼빈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이란

찬사를 받는다. (Philip Schapp)

 

그의 작품으로는 <기독교 강요>(1536초판과 1559년의 최종판; 평생 보완)

<주석> <설교> <신학논문> <편지> <예배서> <교리문답> 등이 있다.

 

이같은 저술에 나타난 칼빈의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상, 칭의관, 교회관,

성례론, 기도론, 목회원리 등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

신앙고백, 존 낙스 등에 영향을 끼치고 네덜란드에 최초의 개신교 국가가 세워지며

17세기 교리 지상주의에, 18세기 영성운동에, 19세기 자유주의에 영향을 준다..
 

2) 칼빈주의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1884년 최초로 이 땅에 미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1885년 미북장로 목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목사인 아펜젤러가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 후 1890년 평양신학교 마포삼열이 세워지고, 주기철, 이기선, 손양원, 박관준

안이숙 등 시대적 환경에 따른 순교자들이 잇따랐으며,

칼빈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로 박형용, 박윤선, 명신홍 등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3) 칼빈주의 교리는

⓵ 오직 말씀 (Sola Scriptura)

⓶ 오직 은혜 (Sola Gratia)

⓷ 오직 믿음 (Sola Fide)

⓸ 오직 그리스도 (Sola Christo)

⓹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a Deo Gloria) 이었다.
 

2.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와의 비교
 

1) 신학의 2대 사조

기독교 역사 속에서 논쟁이 되고 정의되어 왔던 어울릴 수 없는 2개의 신학사조가

존재한다. 오늘날은 칼빈주의는 정통, 알미니안 주의는 이단으로 치부되어 있다.

2) 2개 사조의 비교


칼빈주의 5대교리 (TULIP)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
 

전적 부패 혹은 전적 무능력

Total Depravity
 
자유의지 혹은 인간의 능력

1)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지. 정. 의

모두가 무력해져 전적 부패하게 되었다

(롬3:10-12, 엡2:1-3)

2) 전적으로 부패하여 무능력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요8:44)

3)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구원함을 얻을 수 있다.(엡2:4-9)
 
1)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전적 무력해진 것은 아니다.


2) 인간의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진다.


3)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택할 수 있다.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2. 조건적 선택
 

1)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여하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예정되고 결정된다.

 

2)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3)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신 것으로

예정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진다.

 
 
1) 인간이 하나님의 소명에 의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

특정한 개인들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되며

제약된다.

 

3) 믿음은 오직 인간 의지의 결과이다.

4) 구원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하므로 이루어진다.
 

3. 제한 속죄 혹은 특별구속

Limited Atonement
 
3. 일반 속죄 혹은 보편구속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절대적 예정으로 선택된 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2) 그리스도의 속죄는 특별히 택한

자들의 죄를 사하신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모든 택한 백성에게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도록 한다.

(마1:21, 10:5-6, 눅19:10)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에게

해당된다.

2)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때에 유효하다.

4. 불가항력적 은총 혹은

성령의 효과 있는 부르심

Imesistible Grace
 
4. 성령은 실제로 거스러질 수 있다.
 
1) 인간의 외적 소명은 때때로 거부될

수 있으나, 효과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내적으로 부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2) 성령의 내적 소명은 인간에 의해

거부되어질 수 없다.


3) 성령은 인간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며,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케 한다.


4) 이와 같은 성령의 은총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이며, 마땅히

순종하기에 이른다.
 
1)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성령의

부르심을 거스릴 수 있다.

2) 성령은 죄인이 믿을 때까지

그를 중생시킬 수 없다.

3) 우리가 믿음으로 중생이 가능하게

된다.

 
4) 인간의 자유의지는

성령의 구속사역을 제한한다.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5. 은총으로부터의 타락
 

1) 하나님에 의해 책정되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때때로 시험에 빠질 수는 있으나, 영원한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없다.(한번 구원은 영원구원)

 

2) 성령의 사역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르도록 하며,

성도는 이와 같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끝까지 인내하게 한다. (딤후4:18)


 
1) 참 믿음을 소유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못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타락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

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다.


3) 과연 칼빈주의는 무오한가?

 

칼빈이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지는 몰라도 하나님 곧 예수님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 당시의 선지자들에 의해 쓰여짐으로써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에 그 무오성이

인정된다.(딤후3:16)
 

하지만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주의 등 시대흐름에 따른 신학과 사상은 하나님 말씀을

대신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에는 하나는 정통이고 또 하나는 이단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성경에 비추어 진정 성서적 교리로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뜻에 합당한지를, 무엇을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고전1:18),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7-8)


3.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한 성서적 고찰

 

1) 제한 속죄와 무조건적 선택---> 예정론과 결부된 논쟁

당시 예수님은 예정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제한적 속죄론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도한 ‘타락 전 예정설’에 대해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 계속이요, 마침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선택에 의하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존 웨슬리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로 인하여 비록 어두워지고 약화되어

스스로 선을 택하고 의를 행하기에는 무력하게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임할 때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항변하였다.

 

2) 도르트 종교회의-개혁교회의 종교재판이라 칭한다.

1610년 알미니우스를 지지하는 46명의 개혁교회 목사들은 5개 신조를 공인해줄

것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에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즉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3) 성서적 고찰과 사견

 

로마서 8장 말미에 ‘미리 정(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요 지혜이시며 긍휼하심이다.

 

또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합2:4, 롬1:17

갈3:11, 히10:38) 「믿음에서 난 의」요(롬9:30-32) 선택이기에, 그에 따른 선한

행위가 있음으로 온전해지는 것 아닌가!? (약2:22)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시37:3) (롬12:2) (엡2:10)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극단적인 예정론을 고집하여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은 성도를 견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을(롬9:13)

극단적인 하나님의 선택(예정)이고 유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린 성경을 읽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련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자기 관점에서 자기를 위해 읽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칼빈의 5대 교리는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고,

알미니안의 5대 사조는 실제 하나님의 예지와 은혜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창조주로부터 자유의지를 허락받은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인본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미니안 주의에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속이고, 이를 믿고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4. 결어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해서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에 그분께서 자신이 예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도 확신한다. (롬8:30)

 

다만 지나친 칼빈주의자들로 자신들만 옳고 정통이며, 나머지는 다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것은 현 한국 교회에 은혜와 덕이 되지 못한다.

 

지금도 OOO에 의한 세월호 사건으로 아직도 피해자들은 농성 중이고

​5대 교리 중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이라는 무조건적인 구속과 구원 후 죄를 지어도

끝까지 견인해 영광에 이르도록 한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더더욱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타 종교에 본이 되지 못하고,

나만 예수 믿어 천국 가면된다는 이기적 논리는 이제 맘먹고 믿어 보려고 교회에

발을 들여 놓는 초보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여

믿음의 뿌리도 내리기 전에 떠나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WCC 등 다원주의에 동참하고 특히나 예수회 학자들의 기독교학계의

침투와 물타기 작전에도 영적 분별력을 키워 철저히 대비하고 척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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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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