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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기도만이 이슬람과 영적전쟁서 승리하게 한다”
루터, 기독교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 불러왔다고 판단 …
칼이 아닌 개혁이 진정한 무기임을 강조했다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현재 기독교 안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혐오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 입장이다.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 이후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둘째는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이슬람권 안에서 현지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대로 따르면서 은밀하게 마음 안에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내부자 운동(Inside Movement)적 시각이다. 셋째, 다원주의(pluralism)적 입장이다. 두 종교가 서로 공존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통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개혁주의적(reformism)입장이다. 이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떠나서 기존의 기독교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입장이다. 이슬람은 진화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불편한 관계의 역사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A.D.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쿠라이쉬(Quraish) 부족의 하심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슬람에 의하면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메카에서 2마일 떨어진 히라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쿠라이시 부족의 신(神)이었던 ‘알라’만을 섬기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70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그 가운데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것도 27차례나 된다. 무함마드는 칼을 들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했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62세로 메디나에서 고열과 폐렴으로 죽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무슬림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을 정복해 나갔다. 10년 후 이슬람 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후 70년 동안 서쪽으로 진군하여 북부 아프리카 전체를 정복했다. 그리고 15세기까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부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프랑스와 지중해 서부를 점령했다.

 

오스만과 터키의 술탄 메멧 2세(Mehmet II, 재위 1452~1481) 때인 1453년에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메멧 2세는 여세를 몰아 발칸 반도 안으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터키 제국의 경계를 넓혀 나갔다. 1475년에는 크림반도(the Crimea)를 탈취하였다. 나아가 1500년에는 알바니아(Albania)를, 1512년에는 몰다비아(Moldavia)를, 1516년에는 루마니아(Romania)를, 1517년에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복속시켰다. 1517년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34살의 나이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다. 1529년 비엔나에서 그 걸음을 멈추게 되기까지, 이들은 계속하여 유럽 중앙으로 전진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슬람 군대인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종교개혁의 다양한 배경을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저서들

마르틴 루터가 이슬람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그 다음 해인 1518년에 쓴 <사면의 능력에 대한 논쟁의 해답들>(Resolutione Disputationum de Indulgentiarum virtute)이다. 또한 서신 등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대하여 써서 출판한 작품은 1529년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전쟁에 대하여>(Vom Kriege wider die Turken) 이었다. 그 후 루터는 터키군대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또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군대설교>(Heerpredigt wider den Turken)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기도에 관한 훈계>(Vermahung zum Gebet wider den Turken). 이 작품을 총 세 번(1539년, 1541년, 1543년)을 썼다.

 

이와 함께 1530년 출판된 책 <터키의 의식과 윤리에 대한 책>(Libellus de ritu etmoribus Turcorum)의 서론을 썼다. 또 기억할 만한 것은 루터가 1542년에 편집 번역한 작품인데, 이 책은 1300년 경에 도미니칸 수도사인 리콜도(Riccoldo de Monte Croce)가 쓴 <꾸란에 대한 반박>(Confutatio Alcorani)이다. 본래 루터는 이 책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그가 꾸란의 라틴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그 후에 루터는 이 책을 편집하여 번역하였다. 또한 1530년 헝가리의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출판한 <무슬림의 의식과 도덕에 대한 책>에서 루터는 ‘경건한 독자에게’(Lectori pio)라는 서문을 썼다. 이 책은 도미니크 수도사인 게오르기우스가 1480년 터키에 사로잡혀서 오랜 기간동안 노예로 있으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다. 루터는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으로 여겼다.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작품의 서문이 있는데 1542년에 아랍어에 능통했던 취리히의 신학자 테오도르 비블리안더(Theodor Bibliander)가 독일어로 번역한 꾸란의 서문이다. 루터는 1543년 초에 나온 이 책의 서문을 썼다. 다양한 루터의 글을 통하여 루터가 이슬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이해

첫째, 루터는 이슬람의 침략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이슬람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루터가 반대한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슬람 군대를 보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슬람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이슬람을 향해 칼을 들고 벌이는 전쟁은 하나님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루터는 ‘이슬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들을 징계하시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기독교의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를 불러 왔다고 본 것이다.

 

둘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외적인 전쟁보다는 먼저 내부의 적(敵)인 ‘기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외부의 적인 이슬람보다 내부의 적인 교황청이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의 사기꾼들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이슬람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슬람 군대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거짓과의 싸움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즉, 기독교인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회개가 이슬람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루터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전쟁은 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오스만 터키 이슬람 군대와의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확신하였다. 루터는 이슬람의 신(神)을 사탄으로 보았고, 이 영적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슬람이라는 채찍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로써 이슬람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 루터는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敵)으로 인식하였다.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를 포위한 소식을 들으면서, 루터는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로, 이슬람을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종교개혁 당시의 이슬람 군대의 침략은 온 유럽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족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루터는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신학적, 정치적 눈을 가지고 교회와 세속권력이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조언한다.

 

이 조언은 지금의 한국교회에게도 유용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루터의 조언에 따라서 내부적으로 말씀과 거룩을 따르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싸움은 루터의 견해처럼 영적인 전쟁이다. 따라서 회개와 인내가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속정부의 영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역할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혼돈될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모습으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가 변질되고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중동이 그랬고, 유럽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곁에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다시 개혁을 논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이슬람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던 마르틴 루터의 말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내 말은 이슬람에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더 개선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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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슬람 포비아 현상과 문제점, 대처방안을 살펴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이슬람대책활동과 이슬람에 대한 교회의 종합대책 방향을 천수연, 고석표 두 기자가 잇따라 전해드립니다.

[천수연 기자]

한국교회가 이슬람대책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 피랍사건 이후부텁니다. 

여기에 이슬람계 외국인 유입이 늘고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 발행이 시도되면서 교계의 이슬람교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조직이 구성된 건 2008년 무렵. 예장통합과 합동총회가 당시 정기총회를 통해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이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교단에서는 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등 대책활동을 강화하는 분위깁니다. 

[인터뷰] 노재경 목사 / 예장합동 교육국 
"이슬람대책위원회가 그동안은 이단대책위원회 안에 분과로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독립적이고 파워풀한 활동을 할수 없게 구조적으로 돼 있었죠."


이슬람대책위의 주된 활동은 이슬람의 실체 알리기. 세미나 등을 통해 이슬람의 폭력적 종교성과 국내 이슬람화 전략 등을 한국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전화인터뷰] 김정만 목사 /예장백석 타종교대책위원장 
“취업을 가장해 이슬람화 하려고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결혼과 출산 고지를 점령해서 한국 모든 여성을 이슬람화하려고 대책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활동은 이슬람을 경계하는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국내 무슬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현수 대표 / 한국프론티어스 국제선교회 
"또 한국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정체감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때론 정치학적이고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구체적 데이터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예요."

또 국내 무슬림을 놓고 국내선교부와 이슬람대책위가 선교정책과 대응방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협력적으로 움직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채성수 편집 서원익] 

[고석표 기자]

2015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슬람 인구는 약25만 명. 

전문가들은 그러나 10년 안에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외국의 무슬림 인구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약 72억 명 가운데 무슬림이 약 22%로 약 16억 명.

외신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2001년 무슬림 인구는 150만명, 10년이 지난 2011년엔 280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80%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고 알려져 있어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김군이 IS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제2의 김군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무슬림 바로 알기 교육도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무슬림의 확장은 경계하되 이로 인한 공포증 즉 이슬람포비아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이슬람포비아는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혜롭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이에 따라 신학적, 종교적 편견을 넘어서서 무슬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CBS 뉴스 고석표입니다. 

천수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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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의 거짓 홍보에 현혹되고 속고 있다"

 

한 때 한국교회에는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그러자 이에 반발,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공포증)라며 이를 반박하는 세력도 존재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의 변화와 유입되는 무슬림들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한국교회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방임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란 선교사였고 이슬람 전문가인 이만석 선교사(한국이란인교회, 사진)가 "이슬람 포비아의 정체"란 글을 발표했다.

꾸준히 이슬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일깨워 왔던 이 선교사는 이번 글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곁을 파고들어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과 문화를 파괴시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공포"라고 주장했다.

 

이만석 선교사가 개척한 한국이란인교회도 7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29일(화) 저녁 교회 본당에서 열린 기념예배를 통해 "20C 후반부터 다문화정책을 시작했던 유럽에서

스스로 실패를 선언했는데, 한국이 유럽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유럽은) 이슬람이 기독교 문화를 포용하지 않고 동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며

"이슬람은 교의적으로 동화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이런 것들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선교사는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에 대해 속아 왔고 속고 있는지,

그리고 이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지적했다.

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깨어 이슬람 정책을 봐야하는데,

이슬람의 거짓 홍보 목소리가 너무 커지다 보니 기독교인들 조차 그것에 현혹되어 속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를 통해서 사도바울처럼 민족을 바꾸고 대륙을 바꿀 그런 일꾼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만석 선교사의 글 "이슬람 포비아의 정체" 전문이다.

 

이슬람포비아의 정체

최근에 들어서 포비아(phobia)란 단어가 종종 눈에 띈다.

포비아란 헬라어 포보스(φοβοσ:공포, 두려움)를 임상심리학에서 차용하여

주로 ‘염려장애(anxiety disorder)’를 규정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거미나 쥐 바퀴벌레 등을 무서워한다든지,

높은데 올라가는 것 혹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등을 두려워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포비아가 있다.

이들 포비아 현상들의 특징은 실제로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일종의 비현실적 정신적 장애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슬람포비아’라는 단어는 포비아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매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슬람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지역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나 북부 나이지리아 혹은

수단 등지에서는 거의 매일 무슬림 폭도들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오직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비 이슬람권에서도 9.11테러 사건이나 영국의 지하철 폭파테러 혹은 마드리드의 열차 폭파 테러 등을 보면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이 있다.

 

필자가 이슬람을 이렇게 혹평하는 것에 대해서 “무슬림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데

일부 몰지각한 광신자들을 기준으로 이슬람 전체를 평가한다”고 억울해 하거나

혹은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착한 무슬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또한 우리 사회의 유명한 정치인이나 저명인사들이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이라고 부른다.

정치인들은 세계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무슬림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고는

정상적인 정치활동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슬림들은 착한 사람들이 많지만 착한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꾸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권에서 이슬람의 율법에 대해 궁금해서 질문하는 무슬림들에게 답변한

샤리아 학자들의 유권해석(Fatwa)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http://islamqa.info)가 있다.

거기에 들어가 보면 비무슬림들의 생일잔치나 송별회식 자리에도 참석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친구로 사귀면 안 된다고 꾸란 구절과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를 인용하여

유권해석을 내려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비무슬림들을 돕거나 존경해서는 안 되며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는

알왈라 왈바라(Al Walaa, Wal Baraa)라는 이슬람 율법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유럽의 무슬림들이 과격하게 변해가는 이유는 일부 성질 고약한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의 경전(Quran) 꾸란과 무함마드의 지침인 하디스(Hadith)’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영국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우리가 보호해 주는 동안

그들은 우리 가운데서 원리주의를 키워하고 있었다.”고 한 말은

영국의 이슬람화 과정에서 겪은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깊이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들의 경전과 율법은 타종교인들과의 평화공존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헌신된 테러범들이 끊임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테러범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 참무슬림들이라고 자처하며

무든 무슬림들이 자신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꾸란에 의하면 생명과 재산을 바쳐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서 싸우면서

절대 의심하지 않는 자들만이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꾸란49:15)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은 지하드(Jihad: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를 영적 전쟁이며

불의 및 타락과 싸우는 내면의 투쟁(inner struggle)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란의 어떤 구절도 그런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무슬림들은 어디서 발견되든지 죽이라(꾸란9:5)고 명령하는 구절들은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꾸란4:89, 꾸란4:91 등)

 

이런 꾸란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불특정다수의 비무슬림들을 죽이고자 하는 헌신된 무슬림들이

전체 무슬림들 16억 중에 1%만 있어도 1600만명이나 된다.

그들 중 한두 사람 정도만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해도

2005년 7월7일 런던에서 했던 것처럼 서울의 지하철역 몇 군데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는 지하드를 행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상존한다.

 

대한민국보다 훨씬 인권 보장이 잘 되어 있는 유럽이

왜 이슬람에 등을 돌리고 그들과 싸우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선진화된 인격의 상징처럼 홍보되던 다문화 정책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첫 해인 2001년 무슬림들에 의해서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슬림들은 민주사회의 자유와 평등과 관용을 역이용하여

인권법 혹은 종교차별 금지법 등을 만들어 놓고 그 법을 무기삼아

자신들을 도와주고 보호해준 사회의 뿌리를 흔들어 가면서

다출산 정책을 통해서 인구를 늘려가고 있어 이제 유럽의 이슬람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불신자들을 친구로 삼는 위선자들은 지옥의 맨 하층에 간다.(꾸란4:144-45)

무함마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불신자들에게는 잔인하지만 무슬림들끼리는 인정이 많더라(꾸란48:29)

불신자들 및 위선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라.(꾸란9:73)

이웃에 있는 불신자들과 싸워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게 하라(꾸란9:123)

종교가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라(꾸란8:39)

너희가 알라를 믿을 때까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영원한 증오가 있다.(꾸란60:4)

너희에게 다른 종교를 권하는 자들은 ... 어디서 발견하든지 죽여라(꾸란4:89)

 

이슬람에 헌신된 사람들은 위의 꾸란 구절들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9.11 테러로 온 세계가 통곡할 때 이슬람권에서는

거리에 나와 축포를 쏘며 춤을 추는 무슬림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서 확인했을 것이다.

필자는 무슬림 출신의 지인들로부터 꾸란의 그런 구절들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이를 과감하게 실천한 용감한 무슬림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입장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이슬람권에서는 공영방송과 매스컴을 통해서 혹은 이슬람 사원에서 공개적으로 테러를 부추기고

서양문화의 파괴를 명령하고 있다.

 심지어 쿠웨이트의 ‘압둘라 나피씨’라는 대학교수는

아랍어 TV설교를 통해서 “용감하고 헌신된 무슬림 청년 한 사람이면

1시간 동안 최소한 미국인 33만명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성공하면 그들의 통곡의 외침이 우리의 진정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설교하고 있으며

“미국 미시간 호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인터넷 동영상 싸이트인 유튜브(youtube.com)에서 ‘kwaiti professor anthrax'를 검색하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약9분짜리 동영상으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아랍권 22개 국가에 동시에 방영되며 54%의 평균 시청률을 자랑하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슬람의 테러는 동굴 속에 숨어있는 일부 몰지각하고 무식한 광신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의 이런 종류의 설교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꾸란의 구절들과 이슬람 성직자들의 설교를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문화권에 가서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과연 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품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슬람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이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잠시라도 그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충격적인 것은 빈라덴을 키워낸 원리주의 이슬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싸이드꾸틉의 마일스톤스(Milestones: 진리를 향한 이정표: 서정민 역, 평사리, 2011)’가 한국어로 출판되어 누구라도 사서 볼 수 있도록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이드 꾸틉은 이집트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었으나

그가 쓴 이 책이 테러의 원리를 제공했다는 죄로 사형을 당했으며 이 책은 판매가 금지되었던 위험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곁을 파고들어와 우리 문화와 삶의 방식과 문화를 파괴시키고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공포이기에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잘못 만들어진 단어임으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이 단어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테러 덕분에 자신들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자들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붙이기 위하여 이슬람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제작해 놓은

테러범들의 보호 장치라고 표현함이 옳다고 본다.

이만석 선교사(한국이란인교회, 4HI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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