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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으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신앙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첫째날 ;

 

 예루살렘 입성 ;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 마가복음 11 ; 1 -11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성으로 공공연히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셔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 등의

죄악이 가득 차 있음을 보셨습니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이처럼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습니다.

 

묵상 ; 1.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 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둘러 보신다면 무엇을 느끼실까요?

 
 

둘째날 ;

 

성전을 청결케 하심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마가복음 11 ; 15 - 19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 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인들, 돈 바꾸는 자들과 결탁한 제사장들은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벽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이것은 성전 뿐아니라 온세계를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묵상 ; 1. 나의 신앙은 혹시 이기주의, 상업주의에 젖어 있지 않나요?

         2.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셋째날 ;

 

과부의 두 렙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마가복음 12 ; 41 - 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지켜보셨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에서 실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강조되어 있는 점에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는 질을, 형식보다는 중심을 중요시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실 만한 것입니까?

 

묵상 ; 1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고후9;7. 8;12)

         2. 다음의 말씀을 명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 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넷째날 ;

 

한 여인의 헌신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마가복음 14 ; 3 - 9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그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보통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이 향유는 무척 비싼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묵상 ; 1.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따라야 할 자기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함"과 같이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의 말씀에서 '봉사의 기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봉사해야 할 일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섯째날 ;

 

최후의 만찬 ;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가복음 14;22-25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찢기실 자신의 몸과 흘리실 피로 속죄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께서는 한 사람의 제자장으로서 그의 영원한 영혼을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묵상 ; 1.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제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2.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여셧째날 ;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 마가복음 15;16-41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3.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대신 지신 죄 때문에 고통당하시고 버림 받으시는 예수의 거룩한 절규를 보게 됩니다.

5. "내가 목마르다."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입니다.

6.:다 이루었다."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하나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입니다.

7. "아버지, 내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예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묵상 ; 1. 용서함 받은 우리는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2. 훗날 우리가 남길 유언을 생각해 봅니다.

 

일곱째날 ;

 

무덤 속의 예수 ;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 마가복음 15;42-4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릎 쓰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게 되셨습니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버리셨습니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했지만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2. 기독교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여덟째 날 ;

 

부활의 주를 만난 삶 ;

 

금요일에 장사지낸 바된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은 에수 부활 사건이 전해진 그날 오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실의에 빠진 그들이 부활의 주를 만나 용기를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그날 아침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 사이에 동행하시면서 구약성서를 풀어주셨습니다.

메시아가 고난받으셔야 할 것과, 고난 후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니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누가복음 24;25-35

 

그후 그들의 목적지까지 도달하여 떡을 떼실 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활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는데 왜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까요?

마가복음 16장12절에는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24;16)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사 저희에게 떼어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아라" 보게 되었습니다.

 

 

묵상 ; 1. 예수의 부활의 사실을 의심할 때가 있나요?

         2. 부활 신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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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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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명언]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십지가의 길이었다.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는 인생의 복잡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쇄가 들어 있고, 인생을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외롭고,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질 때에, 좌절할 때에, 죄를 짓고 숨으려 할 때에도 항상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찾아오신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하기 힘들지 않으며, 더구나 두려워할 대상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을 때에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주 높고, 아주 낮은 분이시다. 하나님은 무섭고도 인자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강하고 약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靈이시기에 형상화 될 수 없는 분이시다.
 

우리들의 삶은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여정입니다. 십자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물론 찾는 사람도 있고 영영 못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른 목표를 정하기는 쉬워도, 거기로 가는 바른 길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에도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창조주를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을 보고서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봄으로써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았고, 전지전능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가시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접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귀의 유혹은 목표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길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리스도나 우리들이나 목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길은 바른 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가 유혹하는 길들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빵, 권세, 능력을 뽐내는 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 이외로는 하나님나라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전에는 우리들처럼 시험을 겪으셨다. 고통스럽게 겪으셨다. 그러나 주님은 생전에 모든 일들을 십자가적으로 처리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 사역, 일들 모두에 십자가가 담겨져 있었다. 산상수훈의 팔복도 십자가의 길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사람은 마귀이다. 내 삶의 길이 십자가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현실적인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목표가 아니고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 영적 성장과 승리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끈기를 가지고 길을 걸어가면 변합니다. 크게 변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가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이해, 용기,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성령의 도움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입니다. 어떤 생명도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모든 생명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다고해서 십자가의 길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어렵다고 피한다면 이 땅위에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른 길이라면 당연히 어렵습니다. 거짓된 일이라면 쉽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마음먹기가 두렵고 싫은 것일 뿐입니다.
 

어렵다는 말은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의미가 있다는 말이고,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십지가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십자가는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길을 한 발자국도 걸어가지 못합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자기부인은 자기포기, 자기 버림이 아니라 더 큰 뜻을 위해서 자신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즉, 헌신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면 이 땅에서 죄악이 무너져 내립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을 포기하라. 보복(심판과 징벌)은 하나님만의 고유 영역이다. 혈기, 감정을 부리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그 대신에 온유한 사람이 되라! 악을 다스리고 악과 대적해서 악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라. 인내 하십시다! 우리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셔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셨다.
 

자기부인, 자기 포기 없이는 십자가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밝히는 것은 서로 함께 하자는 의미이다.
 

마르지 않는 생수는 예수님의 생명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한 사라마리 여인에게 자신의 생명을 받쳐서 돕겠다고 말씀하셨다. 저주받은 생명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명으로 바뀌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신다. 사람들의 소망은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십지가의 길이었다.
 

십자가는 위대하고, 생명을 살리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 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용기 있고 당당하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걸어가야 할 길이다.
 

십자가의 길만이 하나님나라에 이르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형상이 변화되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기에 여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길이기에 여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 좁은 길이라도 영생과 진리의 길이라면, 하나님 백성의 길이라면, 이 길을 용기 있고 끈기 있게 걸어가게 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보내주신 구원자이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삶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 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속에서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생명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명이다.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귀중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해야 한다.
 

복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소식이다. - 하나님은 화해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은 세상과도 화해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生과 死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느냐?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느냐?” 의 차이이다. 신앙의 목표는 사는 동안에도 “시간과 공간”에 무관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일 것 같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은 본능과 이기심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죄와 허물을 범할 수밖에 없고, 구원자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는 동안 저지른 죄와 허물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이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시지 않았는가?
 

책임감이라는 것도 이기심이고 욕심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우리들의 일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일인 것이며, 우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하나님이 모르거나 관계가 없는 일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당사자이시며 주관자이시다!
 

하나님께 어떻게 해달라는 기도는 가급적 하지 말자. 모든 일은 어차피 우리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 뜻대로 되는 데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자!
 

죽음이후를 모르는 것과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을 모르는 것은 같은 것이다. 아마 “시간, 공간”과 무관한 상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셔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구원은 내 욕심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잊지 말고 생각해주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고, 시간을 내어주며,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해주고, 잘못을 용납해주자.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을 진심으로 회개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과 그 결과를 이미 용서해 주시고 수습해 주셨음을 알고, 죄책감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회개하고도 죄책감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전인적이고 전면적인 구원이다. 즉, 우리들이 전인적으로, 전면적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제공해주시고 보증해 주시는 확정된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방법임이 확실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은 이 땅에도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데에 쓰임을 받는 데에 있다. 즉, 우리가 먼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 데에 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이런 깨달음으로부터 비로소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며, 특출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남다른 노력을 한 사람인 것이다. 이기심, 남과 비교하는 사고방식, 질투심, 얕은 생각이 열등의식이라는 착각을 만들어 낸다.
 

믿는 것은 진심으로 아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섭리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항상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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