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해당되는 글 23건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르침의 차이점>

구분

이슬람(무슬림)

기독교(크리스챤)

1. 믿음의 대상

유일신 알라(Allah) - 절대 자존하며 인간과 그 어떤 언약도 맺지 않음,

기독교의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신

삼위일체 하나님(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2. 구원에 이르는 길

(1) 선행과 알라에 대한 충성도

(2) 성전(Jihad)를 통해 죽어야 함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

3. 경전의 성격

가브리엘의 계시를 무함마드가 

구술함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4. 경전의 지위

무함마드를 통해 단 23년 동안 

주어진 알라의 메시지

유일무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진리

5. 선지자의 자리매김

독점적 지위를 갖는 선지자(Prophet) 이면서 단순한

 메신져로서의 무함마드

구원의 유일한 길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6. 삼위일체에 대한 시각

알라, 예수, 마리암

(Maryam 혹은 Marium)

성부, 성자, 성령

6. 죄에 대하여

알라의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요소. 회개의 개념은 단순한 실책에 대한 용서, 알라의 자비를 구하는데 초점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입음

7. 천국관의 차이

여자는 갈 수 없음. 선행이 무거울 때, 알라의 가르침에 성실했을 때, 성전(Jihad)를 통해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 죽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을 때

8. 신 앞에서의 사람의 지위

종(Servant). 언제나 신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종속적 존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림

9. 생활에서의 신앙

외식적이고 드러내는 경건생활

인격적 변화는 관심 사항 아님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중심이 됨

10. 남녀의 지위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는 종속물이자 소유물. 성적인 유희의 대상임

동등한 영적 지위를 누림

11. 신으로부터의 

사랑의 성격

조건적 물질적 자애로움

(알라-주인, 인간-종)

무조건적 영적 사랑

(독생자의 보혈로 인간을 구원)

12. 축복에 대하여

조건부 축복, 알라의 일방적 권위에 불과함

축복의 언약을 지키시는 거룩한 영

13. 사람에 대한 섭리하심의 정의

종에 대한 주인의 심판과 권세, 인간에 대한 절대적 권위 강조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인내하시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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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 비교

믿는 대상

기독교

이슬람

신은 하나의 신으로 통합되는 셋이다 . 이 한 명의 신은 소위 삼위일체라 불린다 .

삼위일체의 각 신들은 모두 동등하며 똑같이 영원하고 같은 존재다 .<o:p></o:p>

이러한 이유로 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써 설명된다 .

신은 오직 한 분이며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하며 기초적인 단어다 . 그 분은 자식이나 부모가 없으며 어느 것과도 동등하지 않으시다 . 이슬람에서 신은 알라 , 자비로우신 분 등  99 가지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 

예수

삼위일체의 두 번째 신으로 삼위 일체의 첫 번째 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

신의 사도 중 한 명으로 매우 높이 평가된다 . 

성령

삼위일체의 세 번째 신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 

천사 가브리엘을 가리킨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전지전능한 신인 예수를 낳았다 .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 중에서 선택되어 신의 명으로 아버지 없는 의로운 선지자 예수를 낳았다 . 

말씀

신의 일부분이지만 또한 완전한 신으로 신의 아들인 예수가 되었다 .

신의 말씀  '있어라 '는 마리아가 남성의 개입 없이 예수를 낳게 한다 .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 

성경

100% 모두 신의 오점 없는 말씀으로 여겨진다 . 

무슬림들은 모세에게 계시된 토라 , 다윗에게 계시된 자부르 , 예수에게 계시된 인질 ,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꾸란을 비롯하여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모든 성서의 존재를 믿는다 . 그러나 꾸란을 제외한 모든 성서들은 인간의 손으로 수정되었으며 성경은 오직 꾸란에 의해 확증되는 부분만 옳다고 믿는다 . 꾸란의 절과 확연히 상반되는 내용들은 인간의 손으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

무함마드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 어떤 이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거짓 메시아라고 믿는다 .

전 인류에게 보내진 신의 마지막 사도다 . 그 분이 신의 첫 계시를 받기 전에는 진실되며 신뢰받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 그 분은 모든 생명체에 신의 자비로써 보내졌다 . 

꾸란

성경의 복사본이라는 믿음에서 무함마드가 쓴 책이라는 것까지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 또 어떤 이는 무함마드와 공모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작품으로 믿기도 한다 . 

신이 인류에게 계시하신 마지막 성서다 . 꾸란은 신으로부터 보호받아 인간의 개입으로 수정되지 않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 꾸란의 문학적 위치는 어느곳에서도 그 비등함을 찾을 수 없다 . 오늘날까지 아랍어로 쓰인 어떤 위대한 작품이라 해도 꾸란에 견줄 수 없다 . 꾸란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의 지도서로써 심판의 날까지 인간의 개입으로부터 안전히 보호될 것이다 . 

예수의 메시지

신에 의해 보내진 예수는 아담의 죄로부터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 그의 희생 없이는 전 인류가 아담의 죄로 파멸되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선행 없는 믿음이다 .

예수는 신에 의해 유대인에게 보내진 한 명의 사도이며 모세의 순수한 참종교를 회복시키고 고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규범의 일부를 경감시켜 주고자 했다 . 예수는 유대인에게 믿음 뿐만 아니라 선행도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 

예수가 

죽은 자를 

살리고 장님과 나병환자를 치료한 것

모두 믿는다 . 예수는 이 기적들 모두를 행했다 . 신의 아들이며 또한 동시에 완벽한 신이며 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

모두 믿는다 . 이 기적들은 신의 뜻으로 행해졌다 . 마치 모세나 노아 , 고대의 다른 예언자들이 신의 뜻에 의해 기적을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

십자가 죽음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 . 유대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굴욕을 주며 십자가에 못박았다 . 예수는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다 .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학대당하고 살해되지 않았다 . 단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보이게 꾸며졌을 뿐이다 . 신은 예수를 그 분 가까이로 승천시켜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구제했다 .  

예수의재림

현재 예수는 세기말 무렵에 도래할 것이라 기대된다 . 

예수는 죽지 않고 신에 의해 승천했다 . 그는 심판의 날 직전 지구에 내려와 거짓 메시아를 없애고 평화와 정의를 설립할 것이다 . 예수는 돼지를 죽이고 십자가를 부수며 전 인류를 이슬람으로 초대할 것이다 . 

원죄

전 인류는 아담의 죄를 안고 태어난다 . 오직 신의 죄 없는 자손의 죽음만이 원죄를 제거할 수 있다 . 단 하루만을 살았던 사람이라도 깨끗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 오직 예수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세례만이 원죄의 운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 

원죄 따위는 없다 . 인류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인간이 불신하여 신의 자비를 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국으로 가도록 운명지어졌다 . 인간의 죄가 하늘의 높은 곳을 전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 해도 신은 쉽게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 신에게 있어 용서의 문제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 신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그 이상의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 신은 피조물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기 좋아하며 가장 사소한 선행에도 커다란 보상을 주신다 . 신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갖고 선행을 해야 한다 . 

아담의 회개

아담의 죄는 너무나 큰 것으로 신은 단순하게 그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았다 . 아담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히려 죄없는 순수한 신인 예수의 피를 필요로 했다 . 

아담은 그의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개했다 . 주여 저희가 저희 스스로를 욕되게 하였나이다 당신께서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지 아니 하시고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아니 한다면 저희는 잃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o:p></o:p>

신은 아담을 용서해주셨다 .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모두 임종 시까지 용서의 문이 열려있다 . 인간과 신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있을 수 없다 . 사람들이 신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에 악행을 멀리한다면 신은 그들을 용서하신다 .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만큼 신이 좋아하시는 것은 없다 .  

구원의길

물려받은 아담의 죄에 대한 예수의 보혈의 피를 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 오직 믿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

신을 믿고 그 분의 사도들을 믿고 그 분의 명에 순종한다면 신은 사람들이 행하는 조그마한 선행을 몇 배로 늘려주시며 악행을 지워 주신다 . 심판의 날까지 신의 자비는 사람들의 선행이 악행을 압도하도록 이끌어 주시며 천국과 기쁨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다 . 천국은 상상을 뛰어 넘는 훌륭한 곳으로 영원히 그 곳에서 거주하게 된다 . 천국에서는 더 이상의 선행은 필요 없고 오직 보상만이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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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

 

 

 

회심할 때 성도들은 의로운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이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침례에 의한 거듭남을 믿어온 이단들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단지 두 구절만을 제시하며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려는 것은 그들이 이 책들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내용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용하는 두 구절은 로마서 6:3과 갈라디아서 3:27이다. 로마서 6장은 성령침례를 다루고 있으며, 갈라디아서 3장은 물침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구원받지 못한 목사들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마치 무슨 죽음의 전염병인 것처럼 다루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절만 발췌하여 인용하는 이들은 결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치지 못한다. 이 두 책은 믿음에 의한 의, 믿음에 의한 구원, 믿음에 의한 구원의 영원한 보장 등을 분명히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가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내용을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행위와 물침례에 의한 중생을 믿는 이들은 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소유했다고 선언되어지는 ‘믿음에 의한 의’를 어떻게 피해서 빠져나갈 것인가이다(롬4:5). 이런 이유로 모든 구원받지 못한 로마 카톨릭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쓰여진 야고보서 2장을 선호하는 것이다.

 

  리빙바이블은 야고보서 1:1-2을 변개시켜 야고보서 2장이 믿는 성도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였다. 이 거짓 교리를 교회 역사가들은 “이단”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성경번역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이들이 성령님께 대해 저지른 모독은 참으로 크나큰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켜 거짓말을 가르치도록 하는 죄를 짓는 사람들보다 더 웃기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다. 야고보서 1:1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도 쓰여지지 않았다. 이 구절을 변개시킨, 살아있는 성경이라고 하는 리빙바이블은 “죽은 번역”을 한 것이다.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는 의로운 위치에 서게 되며 의롭다고 선언되어진다. 그 다음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고전6:19-20). 우리는 구속받았다. 우리는 “노예”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의지를 주님께 복종시킨다(롬12:1-2). 이것은 우리가 악과 이기적인 요소를 벗어던질 때 “비어진 삶”으로서 가능하다. 이 “비어진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어 주님 안에서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가 되지 않는다면 구원받은 삶이 아니다. 진공상태에서는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에베소서 5:18의 명령이다. 『술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라는 명령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모든 성도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라.”가 아니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간 후에(이것이 성령침례의 정의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에는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죄는 술 취하는 죄와 같다. 같은 구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고 역시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은 마치 술 취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구원받은 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다.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골2:9-10). 구원받았다면 삶 속에서 부족한 것은 없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다음 두 가지 잘못된 사실 중 하나에 해당된다.

 

  1) 성령 충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거나 2) 하나님께 구했더라도 삶 속에서 성령님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침례에 관하여 말한다면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다.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신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여러분의 몸에 들어와 살기 위해 오셨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성령님은 주님이시다. 『이제 그 영은 주시니...』(고후3:17). 하나님께로 회심할 때 모든 믿는 성도는 성령님을 소유하게 된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인쳐진다(고후1:22,엡1:12-13).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죄 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입으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을 포기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더욱 더 자신으로 채우신다. 이것이 바울이 갈라디아서 4:19에서 믿는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 기도한다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를 주관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특정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수십 종의 서로 다른 성서 번역본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적인 경험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 왔다. 이들은 교회연합운동을 하는 자들과 은사주의자들, 그리고 경험을 중시하는 불안정한 사람들로 항상 자신들의 느낌으로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리석고 현명치 못한 짓이다. 성경은 모든 책들을 심판한다. 성경은 그 교리와 함께 여러분의 태고적 조상이 태어나기 전에 확립되었고 만일 주님이 지체하신다면 여러분의 가장 나중 후손이 죽을 때까지 동일한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은 후에 당신이 경험한 몇 가지 느낌으로 사도행전이나 야고보서, 히브리서를 판단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는 참으로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사탄이 하는 일이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의롭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님께 순종하여 여러분의 삶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일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한 사람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때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가 아니고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자신을 드릴 때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경험하게 되는 가장 큰 위험은 의지를 굴복시킬 때 발생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의 의지를 통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위험스런 경험은 구원받은 후에 다가온다. 이 때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을 믿는 체하는 이단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은 감정적인 경험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새로 태어난 영적 갓난아이의 삶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이때가 대부분의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죽는 시점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고 성경을 인용하는 이단들이 결코 죄인들에게 갑자기 덤벼들지 않고 그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이다. 만일 당신이 구령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전략을 알아야 한다.

 

  모든 성도에게는 성령님이 계시지만 성령님이 모든 성도를 주관하시지는 않는다. 성도들은 아직도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의지와 옛 성품이 있다. 기도할 수도 있지만 안할 수도 있다. 주님을 증거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순종할 수도 있지만 불순종할 수도 있다. 즉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항하거나 성령님을 슬프시게 할 수도 있다. 믿음에 의한 가장 훌륭한 행위는 성도가 그의 삶을 포기하고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때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당신 삶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고자 성령님을 흉내 내는 것이다. 성도가 구원받고 성령님께 헌신할 준비가 되자마자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성령님을 흉내 내는 일이다.

  성도가 성령님께서 그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고 모든 작은 일이라도 완전하게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성령의 충만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성령님은 자신의 영감으로 기록하고 보존하신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어긋나게 성도를 인도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38을 기록하셨고 그곳의 모든 대상은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었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에서 5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없고 사도행전 11장까지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성령님께서는 사도행전 2:38을 구원계획으로 받아들이라고 인도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결한 영이 하는 짓이다. 성령님께서는 오순절 때 어떤 회심자도 그의 일생에 단 하루라도 방언을 말한 적이 없으며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이 회심의 표적이거나 성령 충만의 표적이 아니라고 보여주신다.

 

  성령님은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하셨고 그 장 전체에서 방언에 관해 한 번도 침례를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 장을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성령님께서 “알지 못하는 방언”이 성령침례와 관계가 있다고 인도하시지 않는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을 기록하셨고 보존하셨으며 거기에 어떤 알지 못하는 방언도 없다고 분명하게 해 주신다. 알지 못하는 방언이 성령침례의 표적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의 삶을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신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신 분께 내어드린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다른 영과 관련되어 일하는 것이지 성령님과 연관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충만 하라는 것은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해야 한다. 에베소서 5:18은 선택적인 명령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되는 명령이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4; 4:8; 4:31에서 성령으로 충만했다. 사도행전 4:8에서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그는 방언을 말하지 않은 것에 유념해야 한다. 사도행전 4:31에서도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방언을 말하지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사도행전 4:8과 4:31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의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적들에게 선포한 것이다. 강단에서만 설교하고 공개적으로 거리에서 설교하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 충만의 사실을 알지 못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문 밖으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곳곳에 전하게 된다. 결코 강대상 뒤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필요가 있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도 성령 충만은 필요하다. 성령으로 충만 되지 않고서는 주님의 뜻과 축복을 바랄 수 없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개인의 축복이자 주위 사회의 축복이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 사회에서 악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성도는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집을 방문하고, 공장에서, 가게에서, 호텔로비에서, 식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께서 스스로를 말하기 위해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오셔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교회연합운동이나 “사랑” 혹은 성령을 증거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 죽으심, 장사, 부활하심을 증거 한다. 교회연합, 사랑, 경험을 나누는 것 등만을 말하는 사람은 불결한 영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성령님께서 증거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지성을 밝혀 주시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시며 우리가 순종할 때까지 의지를 격려하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순종하도록 하신다. BB

 

 자료제공 : http://www.biblemaster.co.kr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2월호  (통권 35 호)   page : 34

 

 

성령 찬양으로 은혜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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