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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3월 넷째 주일 예배대표기도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도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주일을 맞이하여,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 드릴 수 있는 축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었던것들만 하였던것은 아니었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그리스도의 유니폼을 입지않고, 여전히 나 자신의 강한 개성의 옷을 입고 있는것은 아닙니까? 

자기라는 방어의 옷을 입고마는, 그리하여, 막상 나에게 불리하고 화가나게된 상황에 처했을때  단한번이라도 먼저 나의 용서를 구하고, 상대의 화해를 진심으로 받아 준적이 있었습니까?  난 용서 구할것도, 잘못한것도 없다는 자기 방어의 옷을 입고입는 저희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에 항상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에 동여 매지않으면, 자기 본성의 옷만을 고집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깨우치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볼 수 있게하여 주시고, 그 마음을 인정할 수있도록 ,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듬고 갈아 주실것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헌신을 삶의 실천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을 기억하시고,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함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증거가 있기때문에 주신 믿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말씀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를 통해 모든 믿음의 형제에게 성령의 섭리와 은혜를 깨닫는 관문이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차기 시무 장로/집사를 추천하는 사역을 섬기고 있는 공천위원들에게 , 신실된 마음으로 참된 곡식과 가라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것을 바로 깨닫고 겸손히 사역을 섬기는 바른 종들이 공천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가대의 찬양으로 준비된 마음과 정성을 예배에 드립니다.
드리는 찬양 만큼이나, 깊은 은혜의 체험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것 감사드리며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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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2월 세째주일예배 대표기도문 
Dec. 2020 Third Sunday Sunday worship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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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시간 우리를 이 은혜의 자리에 모이게 하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만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입술이 오직 주님만 찬양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이 회복되고 치유되고, 기뻐 춤추는 예배 되게 하시고, 하나님 지으신 모든 만물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한주간도 주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넘어지고 낙망하고 밟히고 억울함을 당하여도 붙잡을 곳이 없었을텐데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우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고난가운데서도 기쁨이 있고 참되고 진리되신 하나님을 붙잡으며 소망을 갖고 고난을 이겨내며 힘을 얻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의 삶이지만 우리가 숨쉬고 먹고 마시는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영광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어리석고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시고 죄가운데서 했던 모든 잘못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정결케하시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이 잘못들을 끊어지게 하여주소서.



순전한 어린양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우리들의 삶이 흠없게 하여주시옵고

부족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제물이 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게 하시며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갈줄 믿습니다.

연약한 우리들의 믿음을 더 정결시켜주시고 날마다 새로운 양식으로 우리를 채워주시고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여 주시어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 민족에게 복을 내려주심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나라 이민족이 다시한번 세계정상에 우뚝 설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대통령에게도 지혜와 명철을 부어주시고 힘들고 어려울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통령 되게 

우리하나님 역사하여주시옵소서.

그리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국민을 잘 보호할수 있도록 세계에서 1위가는 우리나라 되게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함께하는 교회를 친히 돌보아 주시옵소서.

또한 단위에 세우신 서윤석목사님 말씀을 통하여 은혜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즉시 순종할 때 더욱 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충성스런 사명자로 세워주시고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마음에 주님을 더욱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수 있도록 주님, 갈망하는 마음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작은 불씨가 큰산을 태우듯 주님을 찾고 부르짖을 때 주님의 불과 같은 능력이 드러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기억하시고 이들의 삶이 부족함이 없도록 차고 넘치게 채워주시고 성령충만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더욱더 섬기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시간 주님의 귀한 말씀 듣습니다.

귀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열매 맺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는 늘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아시고 행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영광의 주님 오실 때까지 맡겨진 삶에 충실하며 칭찬받는 주님의 자녀되게 하옵소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 주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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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주일예배대표기도문 

 

아름다운 계절과 수확의 절기를 주신 하나님!
   
자연의 모습을 보며 이 땅을 주관하시는 섭리를 찬양 드리며, 죄 짐을 지고 가는 저희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사 구원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날이 갈수록 믿음이 더해 가는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고, 영적 열매까지 더욱 알차게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는 늘 말하면서도 오히려 세상과 나 자신을 더욱 사랑했던 저희의 허물을 고백합니다. 
   
주님마저도 저희의 이기적인 사랑의 도구로 만들려 했던 저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용서의 주님! 
   
인생의 풍랑이 험해질수록 용서가 필요한 때인 줄 압니다. 나라의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정죄의 칼을 들고 같은 동료들을 심판하기에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정부부터 악을 선으로 갚으며 용서의 손길을 펴 보임으로써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부가 되게 하시옵고, 국민의 불안과 시름을 달래줄 수 있는 따뜻한 정부가 되게 하시옵소서.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같은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어떻게 사상과 이념이 다른 북한과의 통일을 이룰 수 있겠으며 여러 가지 대북 정책이 무슨 성과를 거둘 수 있겠나이까? 
   
사랑을 모르는 정치인들, 용서를 모르는 정치인들, 주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용서의 무제한성을 배우게 하시고, 그런 마음으로 시련에 허덕이는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업도, 단체도, 가정도 서로 용서하는 미덕이 필요할 때인 줄 압니다. 용서의 대상을 한정하지 말게 하시옵고,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용서를 베푸는 기업, 단체, 가정들이 되어서 인간의 한계를 주님의 사랑으로 극복하는 가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어려운 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서로 용서하고 손을 붙잡고 힘차게 나아가야만 될 줄로 압니다. 이제는 온 국민이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드시고, 생명의 말씀을 증거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예배를 돕는 손길들을 붙드시고 주님의 음성 듣는 복된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용서와 사랑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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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은혜의 생명말씀 (Dawn Prayer Meeting  Word of Grace)

 

 

 

누가복음3;1-17

 

찬송가 ; 315장(512)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215장(354)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가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누가복음 3 ; 1 - 17

 

***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시는  주의길을 예비하는 사명자로 사명을 받아 빈들에서 주의 오실날을 준비하며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임하게 되었을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는데

세례베풂을 통하여 단순히 세례만 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40;3절의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인 주의 길을 준비하고 예비하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었을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약속을 믿고있었다.

세례를 받으러나온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강하게 책망하며 꾸짖었는데 이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것이 아니고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으러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는것은 내면의 진정한 회개가 아니고 겉과속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민 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방민족에게 구원을 베푸실것이며  그들이 모든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좋은 열매를 맺지않는다면 서둘러 돌이며 좋은 열매를 맺는  자리에 서야할것이며 만약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즉시 모두 불에 던져버리실 것이다.

모든 불의와 악한일에서 돌이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할때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될것이다.

세례요한의 외침은 시대가 너무 힘들고 암울하여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사람들이 생각할정도였지만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데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받들며 혹시 메시아가 아니냐고 했지만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때문에 장차 오실이와는 비교조차 할수 없는 미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행하실일을 증거하며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며 주님의 오시는 길을 철저히 감당한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과 일을 잘 감당하며 주님보다 앞서가거나 높은 생각을 하지 말고 오늘 하루도 오직 주님만 생각하며 주님 뒤를 따르며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는 하루가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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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Sunday worship preaching

주일낮예배설교 마음을 옥토로 만듭시다
 
 

 


말씀 : 마13:3-9

제목 : 마음을 옥토로 만듭시다

1.풍성한 열매의 관건은 밭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풍성한 수확을 얻으려면 여러 가지 구비 조건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밭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아무리 품종이 좋고 기후나 기술이 좋아도 토질이 형편없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면 밭을 갈아 부드럽게 하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퇴비도 넣고 토양 소독도 하면서 밭을 장만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밭이 깨끗하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지혜로워야 인생의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려면 우리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인간의 심령이 너무 왜곡되어 있어서 복음이라는 너무 귀하고 복된 생명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마저도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든지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속에 있습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나라와 동시에 이 땅에서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화와 소망을 주는 복음의 씨앗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의 밭에 뿌려 졌고 또 얼마든지 그것을 믿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릴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거부하고, 어떤 이는 겨우 받아들이긴 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거나 심지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생명의 열매를 맺으며 그 은총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같은 생명의 씨앗이 들어갔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당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자라다가 말라죽고, 어떤 사람에게는 근근이 목숨만 부지하고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것입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의 밭이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밭이 완고하고 단단하게 굳어져 있거나 돌밭과 같이 얄팍하거나 세상의 온갖 잡초들로 무성하여 복음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지 못하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 중에도 어떤 이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어떤 이는 복음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에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은 감히 세상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엄청난 능력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군중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능력을 본 사람들 중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따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생명의 복음을 받아들여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지만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자기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이성대로 살아가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겨우 받아들인다해도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감으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마음의 밭을 잘 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으로 인해 단단해지고, 세상의 온갖 잡초로 가득하고, 자신의 힘과 지식과 이성을 의지하려는 완고하고 교만한 마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깨트리고 부드럽고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옥토가 되어 생명의 말씀이 싹이 트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어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들 수 있습니까?

2.단단히 굳어진 마음을 깨트려야 합니다.(3,4절)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려면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말씀묵상하며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심령속에 들어있는 단단하게 굳어진 것들을 깨트려 버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속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3,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으로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씨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길가란 단단하게 굳어져 있는 인간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해졌건만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완전히 굳어져 있어서 생명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의 심령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으로 너무나 단단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은 대부분 물질적으로 많고 좋은 것을 누리며 높은 자리에 올라가 대접받으며 육체적 물질적으로 평안하고 부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위하여 기를 쓰고 공부하고 일하고 힘쓰고 애쓰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과 정열을 거기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육체적 물질적 사고로 심령이 완전히 굳어질 수 밖에 없고, 그러한 물질적 사고로 심령이 굳어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도 못함으로 이를 거부하고 영원한 멸망의 길로 치달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복음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아직도 그 심령 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물질적 육체적 가치관으로 인하여 말씀 따라 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 감으로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단단하게 굳어진 심령을 깨트려 부드럽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다른 방법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는 존재인지,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이성과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너무나 왜곡되게 굳어진 옛자아가 깨트려 주심으로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왜곡된 가치관들이 깨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 속에서 말씀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어 그야말로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찌 하든지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며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죄인이요 어리석은 자요 완고한 인생임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충만하게 임함으로 세상의 것으로 굳어져 있던 마음이 활짝 열려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온전히 심겨지고 그래서 그 말씀이 여러분 심령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그 은총을 충만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말씀이 심령 속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5,6절)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마음이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온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5,6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여기서 돌밭은 돌이 많은 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 위에 약간 흙이 덮여있는 밭을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싹이 텄으나 가뭄이 들자 땅속의 습기를 공급받지 못함으로 금방 말라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령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령에 말씀의 씨가 겨우 들어가긴 했는데 그 마음속이 아직도 세상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물질주의와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말씀이 그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주님 안에 있는 진정한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세상의 복이나 기쁨이나 평안을 위해서 다니고, 그래서 뭔가 믿는 흉내를 내기는 내는데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만 실족하여 넘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10년 20년 30년 교회에 다녔다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의 가치관으로 굳어진 심령이 깨지지 않음으로 그저 세상 기쁨이나 평안이나 위로나 복을 위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별일 없이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교제할 때는 그 재미로 교회에 다닙니다. 또 뭔가 어려움이 없고 일이 잘 되면 좋다고 교회에 다니고 어떤 때는 은혜를 받은 것처럼 눈물 흘리며 기도하기도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교인과 뭔가 관계가 틀어지고 뭔가 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만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뭔가 좀 자기에게 서운하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여기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나도 왕년에 세례를 받았다, 성가대를 했다, 교사를 했다고 하면서 교회에 안 나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그건 그냥 교회에 왔다갔다 한 것이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속된 말로 때려 죽여도 교회에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생명의 주를 만났는데, 천국과 지옥을 아는데 어떻게 교회를 안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다름 아니라 마음이 돌밭이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 심령 속에 아직도 인간적인 생각과 가치관과 경험과 이성이 바위처럼 굳어 있어서 그냥 인간적인 생각으로 교회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교회생활하면 안됩니다. 정말 나 자신을 깨트려 부수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고, 오직 그 말씀만이 진리이며 생명이라는 걸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냥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돕고 위로하는 것은 직장이나 마을이나 동호회나 계모임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도 사랑도 나눌 수 있고 서로 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인간적으로 교제하는 곳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래서 이 땅에서도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다가 무엇보다도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진리이고 이것을 아는 사람은 죽어도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교회생활하면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어려움이 오고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만 졸업해 버립니다. 교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조금 서운하게 하면 그만둡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우리 심령 속에 바위처럼 굳어져 있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지식의 단단한 것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깨트려 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인간적인 기쁨이나 평안이나 욕구 충족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며, 오직 말씀안에서 주님과 동행함으로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살다보면 인간적인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화와 사랑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심령속에 굳어진 왜곡된 생각들을 하루속히 버리고 오직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가운데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권능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과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먼저는 나 자신이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마음속의 잡초를 뽑아버려야 합니다.(7절)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들로 완고하게 굳어져 있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그 다음에는 마귀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뿌려놓는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의 밭을 부드럽게 해도 온갖 못된 잡초들이 무성하면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7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말씀을 겨우 받아들이긴 했는데 그래서 뭔가 자라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만 마음속에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 같은 것들로 가득차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밭을 아무리 부드럽게 하고 퇴비를 넣고 씨앗을 뿌려도 잡초가 무성하면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겠습니까?

여러분, 인간의 마음의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심령에는 너무나 많은 잡초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근심과 걱정이 잡초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향락과 즐거움이 잡초가 됩니다. 어떤 이는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욕심이 잡초입니다. 어떤 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잡초가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잡초는 얼마나 질기고 강하고 잘 자라는지 모습니다. 밭에 곡식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잡초가 먼저 납니다. 조금만 방치하면 잡초가 곡식을 완전히 덮어 버려 곡식은 약해져 죽거나 겨우 살아남아도 열매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인간 심령도 그렇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강렬하게 역사하는지 조금만 방심하면 온갖 왜곡되고 추하고 부정적이고 악하고 불신앙적인 것들이 우리 심령을 차지해 버립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영광과 향락과 원망과 불평과 증오와 미움과 같은 잡초들이 말씀을 덮어 버립니다. 그래서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걸 제거하고 이겨야 합니다. 이걸 이기는 방법도 다른 게 없습니다. 더욱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덧입어 마귀가 잡초의 씨앗을 뿌리지 못하게 하고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니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음으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8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말씀으로 채우고 잡초들을 제거하면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속에 있는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들을 제거하고 진정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되고 귀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얼마나 자신의 삶이 윤택하고 부요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주님은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이러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온전히 뿌리박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심령의 밭에 있는 모든 잡초들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진정 주님의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오직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생명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면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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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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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설교 참 지혜자

 

 


제목 : 참 지혜자의 삶

말씀 : 엡5:15-18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 잠시 들러 복음을 전한 뒤 다시 3차 전도여행시에 와서 3년간이나 눈물로 목회 하여 세운 교회였다.(행20:31) 그리고 당시 에베소는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항구도시로 해상교통의 요충지기도 했고, 이 에베소에서 소아시아 전역으로 도로가 나 있어서 인근의 교통의 요충지기도 했다.

따라서 상업과 무역업이 발달하였고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했으며, 어마어마한 아데미 신전이 있어서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에베소 교회도 소아시아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교회도 여타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가 있는 교회이기도 했다. 물론 에베소교회만의 어떤 특별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대부분의 교회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었고, 또한 신분적으로도 자유자와 종된 자들이 혼재해 있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었고, 이방인들은 헬라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세속으로부터의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보면 1장에서 3장까지는 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적인 말씀을 한 다음에 4장에서 6장까지는 주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성도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주신 말씀이다. 우리가 이제 주님을 믿고 거듭난 존재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 악하고 혼탁한 세상속에서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세상 속에 살아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세상 속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세월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사도는 오늘 말씀의 첫 부분에서 우리가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지혜롭게 사용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15,16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그런즉」이라는 말은 이유접속사로써 바로 앞부분의 말씀들이 이제부터 논하고자하는 말씀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즉 앞부분에서는 세상은 어두움이고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에 참예한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런즉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것이다.

즉 이제는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살펴서 빛의 자녀처럼 살아가라는 말인 것이다. 세상을 따라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말고 참된 지혜를 따라 삶으로 말미암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 세상의 사람들은 어두움 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1차원적인 욕구 속에 살아간다. 1차적인 욕구란 먹는 욕구이다. 좀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2차적인 욕구를 위하여 살기도 한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좀더 고상한 사람들은 3차적인 욕구까지도 추구한다. 이것은 남을 위한 삶이다. 선을 베풀며, 남을 도우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추구해야할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한가지 더 추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과 관계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할 부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야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추구해야할 첫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만이 진실로 세월을 아끼는 삶인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생을 온전하게 준비하는 행위이다. 그것만이 인간으로써의 진정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삶이다.

먹고 마시는 문제에 얽매여 있는 삶이나 좀더 고상하게 문화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나 더 나아가서는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까지도 거기에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다면 그것은 부족한 삶이다. 그것은 온전치 못한 삶이다. 반쪽 인생이다. 설령 돈과 명예와 부귀와 세상적인 영광을 누린다해도 그것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자. 물론 1차적인 욕구나 2차적인 욕구나 3차적인 욕구도 추구해야 되겠지만 거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며, 살아가자. 그리하여 여기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가운데 미래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되자.

2.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뜻을 살피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지금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주님은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시는가? 오늘의 시간들을 주님은 어떻게 보내시기를 원하시는가? 나에게 재능이 있다면, 나에게 물질이 있다면, 나에게 건강이 있다면, 나에게 지식이 있다면, 나에게 권력이 있다면 주님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가, 이것을 살펴서 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트루엣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만이 온전한 것이다. 변함없는 진리이다. 영원한 것이다. 그 곳에만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그 뜻대로 살 때만이 진정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와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온 우주까지도 진정한 기쁨과 영광을 받으며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한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깨어 기도해야 한다. 물론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외롭고 고독한 길일 때도 있다. 고난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살길이기에 그것만이 생명의 길이기에 그것만이 궁극적인 승리의 길, 축복의 길이기에 우리는 가야만 하는 것이다.

3.성령 충만하여 사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가 참된 지혜의 삶을 사는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래서 오늘 사도는 오늘 18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당시 에베소는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소아시아의 중심적인 도시 중의 하나로 상업이 발달하고 농업 역시도 번창해 있었다. 아데미 여신의 커다란 신전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그에 따라 향락의 문화도 번창해 있었다. 그래서 사도는 특별히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술이란 우리 인간의 정신을 빼앗아가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술은 인간의 윤리, 도덕성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많은 죄악들이 술과 연관되어 있다. 또 평상시에는 얌전하던 사람도 술만 들어가면 떠들어대기도 하고, 난폭한 짓을 하기도 하며,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또한 술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육체적인 제어 능력도 상실하게 한다. 그래서 술은 인간의 혼미케하는 주범이다. 뿐만아니라 건강을 해치고 시간을 빼앗는다. 그래서 사도는 정상적인 인간의 활동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존재인 술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엉뚱한 것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물론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술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술은 사람을 어둠속에 빠지게 하는 주범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므로 꼭 술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혼미케하며 육체와 시간과 건강에 해로운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 의미에서 배격하라는 의미이다. 여하튼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영혼을 엉뚱한 것에 빼앗기게하는 모든 것들을 다 배격하고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영생복락의 길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으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중에는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도 많다. 술, 노름, 담배, 마약, 향락 등은 우리를 결국은 파멸의 길로 이끈다. 심지어는 그 자체로서는 건전한 것들이 거기에 취해버리면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도 많다. 건전한 취미생활, 돈, 명예, 사랑, 지식, 문화, 과학 등등은 그 자체로서는 건전하고 유익한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으니 그러한 것들에 취하게 되면 우리의 정신을 빼앗겨 버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결국은 생명의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요청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모든 악한 것들은 배격할 수 있고, 건전한 것들은 올바르게 사용하며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은 단 한번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세례는 단일회적인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지속적인 것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다시는 성령의 세례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그렇지 않다. 지금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가도 내일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언제나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께서 내주하신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가 성령을 외면하고 성령과의 관계에서 멀리가고자 할 때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허용하신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보통의 경우에는 우리의 이성과 의지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하여 애써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하기를 힘쓸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고넬료의 가정은 베드로 사도를 초청하여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의 말씀을 따라 성령 충만함을 받기위하여 말씀을 묵상하며, 깨어 기도하자.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이다. 이것이 진실로 승리하는 삶이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삶이요,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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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말씀 /주일낮설교 : 감사 충만한 삶

 

 

 

제목 : 감사 충만한 삶

말씀 : 신16:13-15

 

1.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을 갔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시고, 좋은 날씨 주셔서 구경도 잘하게 하시고, 또 때가 되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먹고 건강해서 더욱 하나님 일도 잘해서 해 주시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식기도가 좀 길었는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보아하니 시골 양반 같은데 촌에서는 다 그렇게 음식을 놓고 졸다가 먹습니까?’ 그러자 이 시골사람이 말했습니다. ‘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요. 우리 집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들은 음식을 갖다 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돼지와 같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가 너무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감사의 조건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약 내가 돼지로 태어나 돼지우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사육당하다가 잡혀먹는 신세가 되었다면 어쩔번 했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났다해도 저 헐벗고 굶주리는 땅 그래서 병들어 죽고, 배고파 죽는 그런 곳에 태어났더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비참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버젓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 그것도 이 복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이 자유, 이 평화, 이 질서, 사랑하는 가족들, 편히 쉴 수 있는 집, 수고 할 수 있는 일터,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 그 밖에 온갖 종류의 문명의 이기들, 게다가 나 같은 것이 어찌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는지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이 어찌 크나큰 축복이 아니며, 이 어찌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이 많은 은혜들 가운데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가진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요, 다 너무나 귀한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올바른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물론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내수가 침체되어 장사가 안되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먹고 살기가 힘든 것입니까? 아니면 뭔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훌쩍 넘겼고, 무역규모와 GDP가 1조 달러가 넘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강타하여, 우리나라 드라마가 세계 여러나라의 안방을 차지하고, K팝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조차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많이 낙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정치적인 안정과 자유를 누리는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자유와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세계10대 교회중 절반 가량이 한국에 있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선진국수준에 이르고, 반만년의 역사 이래로 가장 융성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못 먹고 못살 때보다 더 불평과 원망이 많고 힘들어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까? 그럴 바에야 뭐하러 정치, 경제,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기를 쓰고 애를 써왔습니까? 아니, 정치 경제 문화 다 행복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렇게 발전시키려고 기를 썼고, 그래서 이만큼 해냈으면 행복해야지 왜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룬 부나 문화들이 너무 일부 계층에 편중되어 있고, 아직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인 풍요와 자유와 평화와 질서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전5: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특별히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초막절을 정해 주시며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여 창고에 저장한 다음에 일주일동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굳이 이런 절기를 일부러 제정해 주시면서 지키라고 하신 이유가 뭐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아름답고 복된 땅, 따사로운 태양과 신선한 공기와 때를 따라 내리는 비와 풍성한 열매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가꾸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해도 하나님께서 그 씨앗과 땅과 태양과 비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우리가 그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생명과 지혜와 재료와 힘을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혹자는 그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하는데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서 그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은혜가운데 삶으로 도리어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는커녕 도리어 원망 불평속에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복해서 같은 자극을 받다보면 그 자극에 둔해 집니다. 그래서 너무 많으면 귀한 줄을 모르고, 좋은 일만 계속되면 좋은 줄을 모르고, 계속 향기속에 있으면 향기를 잘 못느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 소중한 줄을 잘 모릅니다. 평소에는 천지에 공기가 충만하니까 공기가 귀한 줄 모릅니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올 때는 물이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곳에서 5분만 있어보면 공기가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저수지가 말라붙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오면 물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때가 너무나 많아 하나님께서 일부러 감사의 절기를 정해놓고 감사를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내셔날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한 예닐곱 살 된 꼬마들이 한말쯤 들어갈 듯한 물통을 들고 물을 길러 맨발로 두 세시간씩 걸어갑니다. 그러면 소와 야생동물들이 목욕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그래서 더럽고 오염되고 기생충이 우굴거리는 물웅덩이가 나오는데 그 꼬마아이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물을 벌컥 벌컥 마십니다. 그리고 더러운 물통에 오염된 물을 담아 다시 두어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집에서 물을 사용할 때도 대야에 물을 떠서 한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한 사람이 씻습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씻은 그 물로 빨래를 합니다. 그리고 그 빨래한 물을 마지막으로 소에게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 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진흙에다 설탕 같은 것을 약간 넣어 진흙 파이를 해 먹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그냥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어머니, 눈가에 파리 떼가 우굴 거려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수지에 물이 그득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어디를 가나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 이 풍성한 계절, 이 아름답고 복된 땅, 이 자유와 평화, 이 영원한 생명의 은총, 이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가족에게 감사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이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가족과 이웃간에도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4절 말씀 보겠습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즉 수장절에는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서로 사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가운데 사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고,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동시에 서로의 행복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조건없이 거저 주어야 하고, 동시에 내 가족이나 이웃이 불행해지면 나도 불행해 지고,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잘못되어 전부 지지리 못살고 그래서 거지와 도적이 우굴 거리고, 서로 빼앗고 속이고 싸우고 때리고 죽이고 하면서 살아간다면 난들 어떻게 평안하겠습니까? 반대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잘 되어 서로 사랑하고 풍요롭고 그래서 서로 나누고 사회가 안정이 되면 나 또한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가정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되고, 기업이 잘되어야 취직이 잘 되고, 다른 사람이 잘 살아야 장사가 잘 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와야 나라가 잘 되고, 나라가 잘 되어야 복지혜택도 늘어나고 자유와 평화와 질서도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이야 어떻든 아니 남을 짓눌러서라도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데 특별히 가족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가족은 나와 가장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족의 행복과 불행은 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더구나 가정은 인류사회의 핵으로 가정이 깨지면 인류는 망합니다.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가 해체됩니다. 반대로 가정이 사랑과 은혜가 넘치면 사회가 살아납니다. 가정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 속에 든든히 서서 자녀들이 올바른 영성과 인성을 가지고 성장하고, 자녀가 부모를 바르게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고 하면 저절로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을 이루고, 가족 간에 진정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돌보며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밖에 나가서 무슨 큰 일을 하면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가사를 돌보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하찮은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녀 하나 잘 키우는 것이 밖에 나가서 100억원 벌어오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믿음과 사랑과 기도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감성을 가진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한다면 이 땅은 한세기 안에 천국과 같은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을 한다해도 가정이 믿음과 사랑과 기도로 바로서지 못한다면 갈등과 아픔과 상처투성이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5:8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되 특별히 세상 누구보다도 가깝고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 가족을 진실로 서로 귀히 여기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장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 명절에는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서로 감사하며 사랑을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번 해보겠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여보 고마워요, 아들아 고맙다, 딸아 고맙다. 사랑한다. 이렇게 가족간에 정말 귀히 여기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더욱 큰 은혜가 넘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이웃간에도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대상은 가족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도 동일하게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빚진 자들이고 동시에 이웃에게도 빚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웃이 행복할 때 우리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누리는 이 많은 은혜들을 어떻게 누리게 되었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대 우선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리 내가 힘쓰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여건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의 은혜도 그에 못지않게 많습니다. 우리 이웃이 없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의 만분 일도 못 누립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이웃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누리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저 무인고도에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친구도 학교도 직장도 병원도 공장도 교회도 정부도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쓸쓸라고 외롭겠습니까? 아니 외로운 것을 고사하고 먹을 것인들 제대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있겠습니까? 편히 살 수 있는 집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습니까? 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겠습니까? 냉장고가 있겠습니까? 영화를 보겠습니까?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뭐겠습니까?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이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들은 그저 경쟁하고 싸워 이기고 밟고 넘어가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막12:31절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완서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분의 남편은 그보다 23년 앞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불과 석 달 만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27살 된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위로 딸이 셋이 있고 이 아들은 늦둥이로 낳은 아들인데 하필이며 그 귀한 막내아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녀는 그야말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일기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그녀는 하나님께 나도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대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기에 남편으로도 모자라 그 귀한 막내아들까지 데려가느냐고 따지며 포악을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도시간에, 때로는 산책하면서, 또는 길을 걸으며 도대체가 내 죄가 무엇이냐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하나님께 조용히 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화가 안 되어 화장실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하게 되었는데 이때 계시처럼 자신의 죄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는 타인에게 악을 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가족 외에 타인에겐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이것이 나의 크나큰 죄악이었구나.’ 하면서 그때서야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죄악임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토록 많은 것을 거저 받았는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웃과 함께 이룬 것들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웃에게 무관심하다면 어찌 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가위를 맞이하여 이 아름답고 복된 땅, 이 풍요로움, 이 자유와 평화, 이 모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간에 정말 서로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이웃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도 정말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또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도 서로 귀히 여기며 감사하며 사랑과 기쁨을 나눌때에 정말 행복이 넘치는 한가위,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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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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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기다림과 인생 

 

 

 
말씀 : 눅2:25~27

제목 : 기다림과 인생

1.기다림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 나다니엘 호손이라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대표작인 주홍글씨를 비롯한 많은 교훈적 소설을 남겼는데 그중에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고향마을 앞산에는 인자한 사람얼굴 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이 땅에 큰 소망과 위로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기다리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니스트는 한편으로는 그런 분을 꼭 만나보겠다는 기대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도 큰 바위 얼굴을 닮아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진실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갑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장성하였을 때 그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돈을 많이 벌어 거부가 된 사람, 위대한 장군이 된 사람, 유명한 정치가나 학자가 된 사람 등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큰 바위 얼굴처럼 환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그들이 큰 바위 얼굴이 아님을 알고 실망합니다.

그러는 동안 어니스트는 전도사가 되어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는데 이 설교를 들은 한 시인이 이 분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치게 됩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임을 인정하며 그의 삶과 말씀을 통해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니스트는 자신은 큰 바위 얼굴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큰 바위 얼굴처럼 살기를 힘쓰며 그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기다림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어니스트는 인자한 얼굴의 성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기에 그를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또는 그 자신이 큰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큰 바위 얼굴 닮기 위하여 힘썼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그 모습을 닮기를 힘썼을 때 마침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죽자사자 돈만 바라는 사람은 죽자사자 돈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는 돈 냄새가 날 것입니다. 그저 세상 즐거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서는 결국 향락에 찌든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일에 파묻혀 살게 되고 결국 그 얼굴이 일에 찌든 모습이 나타날 것입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를 힘씀으로 주님의 모습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설렘으로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예쁘게 단장을 합니다. 그래서 겉모양뿐 아니라 말도 예쁘게 하게 되고, 행동도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몸도 마음도 예뻐지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설렘을 가져다줍니다. 동시에 기다림은 그 기다림의 대상과의 기쁨의 재회를 위하여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고 가다듬게 만들고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이 되기를 힘쓰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희망과 소망과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8:34,35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주의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며 가까이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받기 위하여 더욱 힘쓰게 되고 그럴 때 결국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에게 정말 생명의 은총과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다림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유일하고 완전한 스승이시며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영광과 은총을 가져다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완전한 생명이시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기대와 소망과 기다림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주실 참된 평안과 위로와 영원한 천국에 대한 기다림속에 살아갈 때에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더욱 은혜와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기다림의 대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암만 기대하고 기다리고 힘을 써도 엉뚱한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힘쓰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아니 그냥 아무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공연히 시간과 돈과 정열을 헛된 곳에 사용하게 되고 정작 반드시 해야 할은 하지 못하게 됨으로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을 기다리며 그런 분을 만나고 그 안에 있는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렇게 우리가 유일하게 기다리고 사모해야 할 분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던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시므온이라는 할아버지였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고, 경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형식주의와 외식주의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류의 위로자시며, 구원자이신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그 나라와 백성을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그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므온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과 위로와 자유를 가져다 줄 참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 참 생명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25,26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무엇을 기다렸다고요? 이스라엘의 위로입니다. 그러면 그 위로라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정치적으로 로마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습니까? 헐벗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까? 더 웅장한 예배당에서 멋진 프로그램과 그럴듯한 예배의식 속에서 폼나게 종교생활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어떤 것을 통한 위로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그는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신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렸고 그러자 성령께서 죽기 전에 꼭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 말씀대로 그는 죽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 큰 위로와 기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와 안식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돈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됩니다. 정치가 안정되면 어느 정도 평안을 줍니다. 경제가 활성화되면 어느 정도 사람들의 삶속에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압제를 당하던 사람들이 압제에서 풀려나면 그것도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의 완전한 위로와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은 결코 참된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돈이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와 평안이 된다면 왜 대기업 총수들이 무슨 비자금이다 사기성 어음이다 하면서 툭하면 검찰에 불려 다니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겠습니까? 권력과 명예와 지식이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줄 수 있다면 왜 많은 정치인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뇌물이다 향응 제공이다 하면서 불려 다니고 망신을 당하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위로와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 안에 참 생명과 기쁨과 행복과 자유가 있습니다. 요8:32을 보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까?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와 유혹과 욕망과 어둠과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세상의 모든 돈과 권력과 명예와 영광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27절에는 또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나의 평안을 주겠다. 세상이 주는 것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하고 결국은 사망에 삼킴을 당하는 것이지만 내가 주는 평안은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고 심지어는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소망이나 기다림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확실히 현실화된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현실화된다해도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요, 한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개처럼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기대와 소망과 기다림은 너무나 확실하게 우리 현실 속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에게 대한 완전한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모든 시대 모든 공간 모든 사람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과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대한 소망과 기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완전히 충족시켜 주는 완전한 소망이요, 완전한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 풍성한 은혜에 대한 소망이나 기다림도 물론 가져야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온전한 위로와 자유와 평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완전한 소망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님이 주실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한 기다림속에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주시는 주시는 풍성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기다리는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데 우선은 기다림의 대상이 올바르게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기다리는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헛된 것을 기다리면 소용이 없고, 또한 아무리 옳은 것을 기다려도 기다리는 자세를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기다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승진을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며 열심히 자기를 계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기다림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사람이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가꾸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기대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좋은 성적표를 원하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사실 꿈이라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허황된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올바르고 건전한 꿈이라해도 열심히 꿈만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25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이라는 분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주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즉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올바른 기대 즉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기 때문에 더욱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에 성령이 함께 하셨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기전에는 죽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받게 되었고, 결국 그 약속대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래서 감사와 기쁨으로 영광을 돌리고 할렐루야 찬양하며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만이 진정한 생명과 평안과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위로와 소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주님 안에 있는 위로와 소망과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의롭고 경건한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다가 마침내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롭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말그대로 옳은 것입니다. 그러면 옳은 게 뭡니까? 무엇이 정말 옳은 것입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옳습니까? 정치인들이 말하는 게 옳습니까? 경제적 논리에 부합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다수가 가는 길이 옳습니까? 물론 그 중에는 옳은 것도 많은 있습니다. 그러나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설령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 의가 아니라 상대적인 의에 불과합니다.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절대적인 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바르고 확실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오직 거기에 영원한 생명과 자유와 평강과 은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의로운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은 뭡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이 말씀도 의롭다는 말씀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옳고 그 안에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자유가 있음을 믿고 그래서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을 따라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말씀에 비추어 정말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인지 아닌지, 이것이 그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인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길인지를 따져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따라 행동하는 것이 경건한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의롭고 경건한 삶입니다. 오직 그 안에 생명과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십니다. 진리이고 생명이십니다. 완전한 거룩과 의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의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은총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의요 경건이요 진리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죽으나사나 주만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안에 진정한 소망 생명 기쁨 은혜 자유 평안 행복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대한 소망과 기대속에서 그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를 기다리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대강절 첫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을 맞으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입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 심령을 성결하게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강절을 맞이하여 더욱 우리의 유일한 참 생명이요 기쁨이요 은혜와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주님이 주실 평안과 위로와 영광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기 위하여 의롭고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주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 속에 찾아오실 때에 주님 안에 있는 그 생명과 기쁨과 희망과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마음껏 맛보며 더 나아가 세상에 주님 안에 있는 그 생명과 기쁨과 소망과 위로와 평안을 보여줌으로 세상에도 생명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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