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주일낮설교 : 감사 충만한 삶
제목 : 감사 충만한 삶
말씀 : 신16:13-15
1.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을 갔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시고, 좋은 날씨 주셔서 구경도 잘하게 하시고, 또 때가 되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먹고 건강해서 더욱 하나님 일도 잘해서 해 주시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식기도가 좀 길었는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보아하니 시골 양반 같은데 촌에서는 다 그렇게 음식을 놓고 졸다가 먹습니까?’ 그러자 이 시골사람이 말했습니다. ‘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요. 우리 집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들은 음식을 갖다 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돼지와 같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가 너무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감사의 조건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약 내가 돼지로 태어나 돼지우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사육당하다가 잡혀먹는 신세가 되었다면 어쩔번 했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났다해도 저 헐벗고 굶주리는 땅 그래서 병들어 죽고, 배고파 죽는 그런 곳에 태어났더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비참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버젓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 그것도 이 복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에서 먹을 것, 입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이 자유, 이 평화, 이 질서, 사랑하는 가족들, 편히 쉴 수 있는 집, 수고 할 수 있는 일터,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 그 밖에 온갖 종류의 문명의 이기들, 게다가 나 같은 것이 어찌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는지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이 어찌 크나큰 축복이 아니며, 이 어찌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이 많은 은혜들 가운데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가진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요, 다 너무나 귀한 우리 가족이나 이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올바른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물론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내수가 침체되어 장사가 안되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그래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먹고 살기가 힘든 것입니까? 아니면 뭔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훌쩍 넘겼고, 무역규모와 GDP가 1조 달러가 넘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강타하여, 우리나라 드라마가 세계 여러나라의 안방을 차지하고, K팝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조차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많이 낙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정치적인 안정과 자유를 누리는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자유와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세계10대 교회중 절반 가량이 한국에 있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선진국수준에 이르고, 반만년의 역사 이래로 가장 융성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못 먹고 못살 때보다 더 불평과 원망이 많고 힘들어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까? 그럴 바에야 뭐하러 정치, 경제,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기를 쓰고 애를 써왔습니까? 아니, 정치 경제 문화 다 행복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렇게 발전시키려고 기를 썼고, 그래서 이만큼 해냈으면 행복해야지 왜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룬 부나 문화들이 너무 일부 계층에 편중되어 있고, 아직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인 풍요와 자유와 평화와 질서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전5: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특별히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초막절을 정해 주시며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여 창고에 저장한 다음에 일주일동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굳이 이런 절기를 일부러 제정해 주시면서 지키라고 하신 이유가 뭐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아름답고 복된 땅, 따사로운 태양과 신선한 공기와 때를 따라 내리는 비와 풍성한 열매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가꾸어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해도 하나님께서 그 씨앗과 땅과 태양과 비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우리가 그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생명과 지혜와 재료와 힘을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혹자는 그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하는데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으로서 그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은혜가운데 삶으로 도리어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는커녕 도리어 원망 불평속에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복해서 같은 자극을 받다보면 그 자극에 둔해 집니다. 그래서 너무 많으면 귀한 줄을 모르고, 좋은 일만 계속되면 좋은 줄을 모르고, 계속 향기속에 있으면 향기를 잘 못느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 소중한 줄을 잘 모릅니다. 평소에는 천지에 공기가 충만하니까 공기가 귀한 줄 모릅니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올 때는 물이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곳에서 5분만 있어보면 공기가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저수지가 말라붙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오면 물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때가 너무나 많아 하나님께서 일부러 감사의 절기를 정해놓고 감사를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내셔날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한 예닐곱 살 된 꼬마들이 한말쯤 들어갈 듯한 물통을 들고 물을 길러 맨발로 두 세시간씩 걸어갑니다. 그러면 소와 야생동물들이 목욕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그래서 더럽고 오염되고 기생충이 우굴거리는 물웅덩이가 나오는데 그 꼬마아이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물을 벌컥 벌컥 마십니다. 그리고 더러운 물통에 오염된 물을 담아 다시 두어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집에서 물을 사용할 때도 대야에 물을 떠서 한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한 사람이 씻습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씻은 그 물로 빨래를 합니다. 그리고 그 빨래한 물을 마지막으로 소에게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 장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진흙에다 설탕 같은 것을 약간 넣어 진흙 파이를 해 먹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그냥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어머니, 눈가에 파리 떼가 우굴 거려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수지에 물이 그득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어디를 가나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 이 풍성한 계절, 이 아름답고 복된 땅, 이 자유와 평화, 이 영원한 생명의 은총, 이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가족에게 감사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이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가족과 이웃간에도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4절 말씀 보겠습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즉 수장절에는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서로 사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가운데 사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고,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동시에 서로의 행복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조건없이 거저 주어야 하고, 동시에 내 가족이나 이웃이 불행해지면 나도 불행해 지고,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잘못되어 전부 지지리 못살고 그래서 거지와 도적이 우굴 거리고, 서로 빼앗고 속이고 싸우고 때리고 죽이고 하면서 살아간다면 난들 어떻게 평안하겠습니까? 반대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잘 되어 서로 사랑하고 풍요롭고 그래서 서로 나누고 사회가 안정이 되면 나 또한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가정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되고, 기업이 잘되어야 취직이 잘 되고, 다른 사람이 잘 살아야 장사가 잘 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와야 나라가 잘 되고, 나라가 잘 되어야 복지혜택도 늘어나고 자유와 평화와 질서도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이야 어떻든 아니 남을 짓눌러서라도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데 특별히 가족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가족은 나와 가장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족의 행복과 불행은 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더구나 가정은 인류사회의 핵으로 가정이 깨지면 인류는 망합니다.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가 해체됩니다. 반대로 가정이 사랑과 은혜가 넘치면 사회가 살아납니다. 가정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 속에 든든히 서서 자녀들이 올바른 영성과 인성을 가지고 성장하고, 자녀가 부모를 바르게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고 하면 저절로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을 이루고, 가족 간에 진정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돌보며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밖에 나가서 무슨 큰 일을 하면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가사를 돌보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하찮은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녀 하나 잘 키우는 것이 밖에 나가서 100억원 벌어오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믿음과 사랑과 기도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감성을 가진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한다면 이 땅은 한세기 안에 천국과 같은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을 한다해도 가정이 믿음과 사랑과 기도로 바로서지 못한다면 갈등과 아픔과 상처투성이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5:8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되 특별히 세상 누구보다도 가깝고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 가족을 진실로 서로 귀히 여기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장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 명절에는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서로 감사하며 사랑을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번 해보겠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여보 고마워요, 아들아 고맙다, 딸아 고맙다. 사랑한다. 이렇게 가족간에 정말 귀히 여기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더욱 큰 은혜가 넘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이웃간에도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대상은 가족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도 동일하게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빚진 자들이고 동시에 이웃에게도 빚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웃이 행복할 때 우리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누리는 이 많은 은혜들을 어떻게 누리게 되었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대 우선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리 내가 힘쓰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여건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의 은혜도 그에 못지않게 많습니다. 우리 이웃이 없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의 만분 일도 못 누립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이웃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누리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저 무인고도에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친구도 학교도 직장도 병원도 공장도 교회도 정부도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쓸쓸라고 외롭겠습니까? 아니 외로운 것을 고사하고 먹을 것인들 제대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있겠습니까? 편히 살 수 있는 집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습니까? 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겠습니까? 냉장고가 있겠습니까? 영화를 보겠습니까?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뭐겠습니까?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이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들은 그저 경쟁하고 싸워 이기고 밟고 넘어가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막12:31절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완서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분의 남편은 그보다 23년 앞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불과 석 달 만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27살 된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위로 딸이 셋이 있고 이 아들은 늦둥이로 낳은 아들인데 하필이며 그 귀한 막내아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녀는 그야말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일기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그녀는 하나님께 나도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대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기에 남편으로도 모자라 그 귀한 막내아들까지 데려가느냐고 따지며 포악을 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도시간에, 때로는 산책하면서, 또는 길을 걸으며 도대체가 내 죄가 무엇이냐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하나님께 조용히 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화가 안 되어 화장실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하게 되었는데 이때 계시처럼 자신의 죄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는 타인에게 악을 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가족 외에 타인에겐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이것이 나의 크나큰 죄악이었구나.’ 하면서 그때서야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죄악임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토록 많은 것을 거저 받았는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웃과 함께 이룬 것들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웃에게 무관심하다면 어찌 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가위를 맞이하여 이 아름답고 복된 땅, 이 풍요로움, 이 자유와 평화, 이 모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간에 정말 서로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이웃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도 정말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또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도 서로 귀히 여기며 감사하며 사랑과 기쁨을 나눌때에 정말 행복이 넘치는 한가위,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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