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문제이길 수 있습니다

 

 


제목 : 문제,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 : 눅4:38,39


1.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조금 지저분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관심 갖는 것만 보인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대부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종북주의자들은 북한 정권을 고무 찬양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보다 북한정권의 발표를 더 신뢰한다고 합니다. 평양에 다녀와서 그들이 다같이 잘 먹고 잘살고 있다며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억압과 강제노동과 굶주림 속에 북한을 탈출하다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일부 정당에서도 북한 당국의 온갖 만행과 거짓과 유린당하는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없고, 우리 정부에서 조금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난리를 칩니다.

이게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관심 갖는 것만 보는 거지요. 그러면 내가 보고 싶고 관심 갖는 것이 뭡니까? 그게 바로 내 인격이고, 사상이고, 가치관입니다. 그 잣대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거지요.

이런 원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사상과 생각과 가치관 같으면 좋게 보이고, 좋게 보이면 허물은 보이지 않고 좋은 점만 크게 확대되어 보입니다. 반대로 좋지 않게 보면 좋은 점은 작아져 잘 보이지 않고 나쁜 점만 크게 확대되어 보입니다. 그래서 지난 대통령선거 유세시에 문재인 후보가 말하기를 이명박대통령은 빵점짜리 대통령이고 고 노무현대통령은 그래도 70점은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빵점이 뭡니까? 교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조금 잘못하는 것은 침소봉대시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며 난리를 치고, 잘하는 것에 대하여는 입 딱 다물고 아무소리도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문제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작은 문제도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를 단지 하나의 과정이나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작은 문제로 보는 사람은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얼굴이 좀 못났어도 아무 문제없이 당당하게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꽤 괜찮은 얼굴인데도 이리 저리 뜯어 고칩니다. 공부를 좀 못해도 당당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공부를 꽤 잘하는데도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맨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은 아니어도 감사하며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남을 도우며 사는사람이 있는가하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어떻게든지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를 문제로 보는 사람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을 때 열명의 정탐꾼들은 큰 일 났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가면 다 죽는다. 그러니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반대로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가자. 그 땅은 약속의 땅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생각과 말대로 되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가면 죽을 것이라면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본 사람은 실제로 문제가 되었고,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문제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결코 문제에 함몰되어서는 안됩니다. 상황, 현실, 조건, 문제에 끌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꾸만 문제의 눈으로 문제를 보며 맨 날 환경 탓, 상황 탓, 다른 사람 탓 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꾸만 남의 탓만 하면서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 될까하고 쉽게 이혼을 하기도 합니다. 직장을 바꾸면 해결될까 하여 이리저리 직장을 옮기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 문제가 많다며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문제 해결 못합니다.

여러분, 마14:30절의 말씀을 보세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님에게로 가다가 일어난 일입니다. 처음에 주님을 보고 갈 때는 잘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 성난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난 파도라는 문제를 보지 않고 주님을 보았을 때는 성난 파도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를 바라보니까 문제가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 저 너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이기게 하시고 해결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여러분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올바른 가치관과 시각을 가지고 다가오는 모든 문제들을 이기고 승리하려면 예수님을 우리의 심령속에 온전히 모시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시각과 가치관을 갖게 되고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문제가 생긴 베드로의 가정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 집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38절의 말씀처럼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열병도 그냥 열병이 아니라 중한 열병 즉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심한 열병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 이 때 예수님이 이 집에 오시게 되어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39절의 말씀이지요.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문제가 생긴 베드로의 가정에 예수님이 찾아가셨을 때 문제가 해결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적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무슨 마술사나 그저 엄청난 능력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계신 곳에 문제가 사라지고, 문제가 사라진 곳에 생명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그렇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인 죄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대로 마귀는 문제를 만드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사랑하게 만들고 화해하게 만들고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을 갈라 놓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과 미움과 분열을 조장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길로 치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계신 곳에 반드시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습니다. 난 주님을 모셔 들였는데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유는 셋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아직 온전히 만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미 해결이 되었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즉시로 해결 주십니다. 바로 오늘 베드로의 장모와 같은 경우입니다. 복음서에는 이렇게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가 부지기수로 나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오래 걸릴 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손을 하늘의 별과같이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도 25년이 지난 뒤 겨우 이삭 하나를 달랑 주셨는데 바로 그 이삭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근 10년 동안이나 사울왕의 끈질긴 추격을 받으며 쫓겨 다니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의 최고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 문제를 제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 곧 큰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복음 사역에 큰 장애물이 될 만큼 큰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고후12:9절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무슨 뜻입니까? 너는 그 약함으로 나를 더욱 의지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내 능력이 더욱 너와 함께 하여 복음의 역사를 더 잘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게 주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 즉시로 주님의 뜻을 받아드리고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니 도리어 자랑거리로 여겼습니다. 문제는 제거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해결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주님앞에서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습니다. 때로는 즉시 문제를 제거하시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소망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시켜 문제를 서서히 해결해 나가게도 하십니다. 때로는 문제를 그대로 놓아두고 그 문제를 통하여 주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 해결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 여러분의 삶속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두려워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해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상황과 환경과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이 여러분과 더욱 함께 하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문제를 이기는 또 하나의 적극적인 방법은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삶입니다. 죄와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기쁨과 희망과 생명을 주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문제가 다가오지도 않고, 혹 다가와도 얼마든지 이기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을 만나 문제를 해결받고 나서 전혀 다른 삶으로 인생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됩니다. 39절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여기서 수종든다는 것은 ‘시중들다, 섬기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어에서 이 말은 과거미완료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미완료시제란 과거에 어떤 동작이 시작되어 아직 완료되지 않은 그러니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여인은 예수님께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섬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그때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따라가며 주님을 섬겼던 많은 여인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눅8:2,3절에 보면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소유를 가지고 주님을 섬겼는데 그 들 중에는 이름이 알려진 여인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여인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여인들가운데 틀림없이 베드로의 장모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수종든다는 것이 그 당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작한 순간부터 후에 그 사실을 기록한 그 시점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예수님 곁에는 이렇게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그 놀라우신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 곁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곁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섬길 때 그들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게 되었고 그러니까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문제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고, 문제가 와도 넉넉히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곁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의 응답임과 동시에 은혜와 능력을 덧입는 비결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 다니라 하면 이런 저런 이유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에 다니면 하고 싶은 일도 맘대로 못하고 구속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놀러도 못가고, 술도 못 먹게 하고, 화투도 못치게 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 많고 그래서 재미도 없고 구속받기도 싫다며 교회에 오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중에도 심지어는 일이 바빠서, 혹은 산에 가기 위하여 교회에 못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모습은 인생의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진짜 보람과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그까짓 것 놀러 다녀봐야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흡족하겠습니까? 그까짓 것 먹고 마시며 놀아봐야 그게 뭐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더군다나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공허할 뿐이고 후회만 남는 일입니다. 물론 건전한 쉼이나 놀이마져도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 때문에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된다면 단연코 배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여러분, 설령 세상적으로 건전하게 보낸다고 할지라도 그저 나하나 편하게 재밌게 먹고 마시고 즐긴다면 그게 무슨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무슨 큰 보람이 있겠으며, 무슨 큰 가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부모에게 유산을 받든지 아니면 복권에 당첨에 되든지 아니면 투기를 하든지해서 힘 안들이고 편히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사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쉽게 궂은 일, 힘든 일 안하고 먹고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건 결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편하게 무사안일하게 호화스럽게 사는 인생은 육체는 조금 편할지 모르나 무가치한 인생입니다. 세상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나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하는 그런 인생에게 무슨 진정한 기쁨이나 보람이나 가치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섬기는 삶에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 뿌듯함이 있습니다. 뒷맛이 개운합니다. 자존감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도 인정을 해줍니다. 그런 인생에는 문제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혹 문제가 온다해도 그런 사람은 의연히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문제 저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은총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도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섬김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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