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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 바리새인과사두개인

 

 

 

 

예수님 초림때 하나님을 믿는 선민은 유대인들 뿐이였지요

당시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있었는데요. 그중에

서기관 바리새인과사두개인에 대해 알려드릴께요~

사복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서기관 바리새인과사두개인 알아두면 성경읽으실 때 도움이 되실겁니다

서기관


기록된 율법을 보존하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법을 관리하며

백성에게 가르치는 사람들로, 율법사라고도 하며 랍비(선생)라고 부릅니다

성경 말씀을 학문적으로 발전시켰지만 형식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모습 때문에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았답니다


바리새인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파라는 가장 큰 유대 종파를 이루던 집단입니다

‘바리새’란 ‘구별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처럼 경건함이나 도덕성, 율법 준수 같은 것들에 있어서

이교도들과는 철저하게 구별된 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들의 엄격한 행동은 백성의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열심이라고 책망하셨답니다


사두개인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제사장을 위주의 귀족층입니다

‘사두개’란 말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

‘사독’에서 유래되었는데,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로마와 결탁하여 정치적 힘도 갖고 있었답니다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바리새인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는데,

위선적인 태도 때문에 바리새인과 더불어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 되었지요

게다가 성전에서 장사판을 엎어버린 성전 청결 사건 등으로 인해

예수님을 무척이나 미워했답니다


에세네파


유대교의 분파 중에서도 가장 경건하고 엄격한 삶을 실천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재산도 공동으로 사용하며,

특히 몸을 청결히 하는 정결 예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답니다

열심당


말 그대로 ‘열심’에 열심인 사람들로, 특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마카비가 에피파네스에게 대항하여 싸웠던 것처럼

로마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에 열심을 내는 유대 민족주의자들입니다


여러 교단 교파가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 초림때도 오늘날과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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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있는 자는 들어라


세례 받으러 나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종교 전문가들에게 요한은 지체 없이 폭언을 퍼 붓는다. 독사의 족속들아!(마 3:7) 질책을 한다. 화인(火印)맞은 얌체 양심으로 뻔뻔하게 몰려온 저들의 외식을 갈기갈기 찢은 것이다. 거룩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을 향하여 인자하시고 온유하신 품위와는 달리 독사의 새끼들아! 뱀 같은 자들이라 하시며(마 12:34) 회개할 여유까지 이미 포기한 저들에게 천둥소리로 심판을 선언하셨다. 섞인 것이 없는 진품 후레자식(토끼가 여우를 비꼬는 말: 두껍전)들일 것이다. 친히 그의 피로 세워진 소중한 일곱 교회를 상세히 진단하신 우리 주님은 마지막 결론을 어김없이,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계 2:7)로 끝을 막음하신다. 이기는 자가 받는, 귀 듣는 그대로 실천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진귀한 천국상품을 나열하시면서 꼭~들으라는 한 품으신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귀를 지으신 하나님(시 94:9), 창조자의 말씀을 피조물은 정녕히 경청하는 순리로 따라야함에도 불구하고 슬프게도 그의 택함 받은 자녀들까지 정로를 빗나가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어지는 가슴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전달한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 1:2) "내 종과 같은 소경이 또 있으랴? 내가 보낸 심부름꾼과 같은 귀머거리가 또 있으랴? 나의 사명을 띠고 가는 자와 같은 소경이 또 있으랴? 야훼의 종과 같은 귀머거리가 또 어디 있으랴?"(사 42:18) 아침마다 경건하신 자의 경고를 들으면서도 배짱 내밀고 불쾌한 싸움을 지속하는 으뜸 귀머거리가 자기 종들이란 지적이시다. 버나드 쇼가 생전 자기 묘비명(墓碑銘)으로 말한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를 같이 써야 할 사람들이다. 허탄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세속적인 귀(딤후 4:4), 옛 삶에서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여 육정에 묶인 할례 받지 못한 귀(렘 6:10), 영성을 키우는 말씀에는 느리고도 둔한 귀(마 13:15), "주께 등을 돌리고, 뻣뻣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느 9:29) 성경 곳곳에 주님의 탄식이 장엄한 추수의 날까지 지속될 것만 같다. 하나님께서 닦달하시는 데도 꼼짝 않기로 맹세한 것 같다.

아담아! 탈선했구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으면서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속삭이며 회복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아담과 그의 핏줄 가인 모두가 잡아떼기로 일관한, 살벌한 대가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은, 만일 돌이키지 않으면 내 입에서 너를 뱉어 버리겠노라 하셨다. 땅에 뱉어버린 더러운 침! 맛 잃은 소금을 길가에 흩어버려 사람들에게 밟히며 창피스럽게 살아야 하는 기구한 신세! 그러나 이것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날에,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는 준엄한 심판주의 말 한마디에, 하염없이 문 밖에 서서 이를 갈고, 가슴 치며 통곡할 무궁한 그날을 감히 상상해 보았는가. 당신의 진짜 하나님은 누구신가 묻고 싶다.

"귀를 기울여 내 소리를 들어라. 정신 차려 내 말을 들어라."(사 28:23) 하신다. 주님의 음성이 지금 우리 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스스로 농아가 되지 말라. 중요한 것은 복음의 진보이지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순종이 제사(예배)보다 급선무란 원칙을 잊으면 ‘지옥불’만이 대기될 뿐이다. 귀 달렸거든, 지금 바로 듣고 돌이켜야 한다는 주님의 애원을 묵살치 말아야 한다. 할렐루야!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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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환상 -옥한흠 목사-미션스쿨 




(요한 복음 12장 18절-27절)


18.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찌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20.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27.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오늘의 설교 


내일을 위한 환상 -옥한흠 목사-





오늘의 추천 찬양 (미션스쿨)


순례자의 길 찬양전도사 이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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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신분 변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 설교)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15절)


예수 믿을 때 상상 뛰어넘는 변화 다가와
그리스도를 모시면 새로운 피조물·국적·생명 돼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계시면 평안과 행복 얻어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보는 아주 매섭고 사나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지위가 높았고 그로 말미암아 돈도 많고 부자였습니다. 또 성경은 그가 유대인의 선생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요,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율법을 지키고 관원생활을 하고 유대교의 선생이었지만 그 마음속에 황량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비었습니다.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데 앉은뱅이가 걸어 나가며 장님이 눈뜨고 귀머거리가 듣는 것을 보고 그는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 그는 밤이 어두울 때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랍비여, 랍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는 이런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사람은 아무리 잘 먹여도 육이고 잘 입혀도 육이고 교육을 잘 시켜도 육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소는 언제나 소입니다. 닭은 닭이고, 개는 개고, 말은 말입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언제나 육입니다. 성령으로 나지 않고는 하늘나라와 통하지 않습니다. 육과 영이 어떻게 통합니까? 안 통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죽은 영이 살아나면 하나님과 통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니고데모가 물으니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서 뱀에 물린 사람마다 바라보고 낫게 한 것처럼 나도 너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높이 들려서 속죄제물이 될 터이니 나를 보고 믿는 자마다 거듭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새로운 피조물


 우리는 모두 피조물로서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데 아담과 하와는 영혼이 죽었습니다. 영혼이 죽고 나니까 이제는 육체가 온 몸과 마음을 다스립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육적인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상태로 육은 감각적인 세계에 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캄캄한 밤 속에 사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는 “인생에는 목적이 없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전기가 흐르지 않는 텅 빈 전구와 같다”고 말하고 사냥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감각적으로 살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의 가장 중심인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쾌락을 다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체험한 것이 그것입니다. 유대교의 율법도 지키고 관원이 되어 높은 지위도 얻고 돈도 가지고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도 텅 빈 마음, 공허한 마음, 무엇인가 잃어버린 심정, 고독한 마음, 이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노벨상을 타도 마음에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우리 본체인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결코 평안함이 없습니다. 돈을 가져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가져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명예를 가져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쾌락을 가져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체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평안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고 입술로 시인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과 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육은 영과 통하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언제나 육이요, 하나님과는 절벽으로 담이 쌓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우리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굽니까? 우리의 고향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비로소 행복합니다. 돈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쾌락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권력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명예가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옛날 삶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옛사람은 장례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영적으로 통한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것도 영의 세계와 통하기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영적 세계로 통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고 강한 사람이 있겠지만, 약하면 약한대로 강하면 강한대로 하늘나라와 통합니다. 교통이 있습니다. 교제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혀 모르던 하늘나라를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술 먹고 담배 피고 부인을 때리고 마약 중독자인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고 변화됐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이 그를 찾아와서 조롱했습니다. “야! 너 교회 가고 가정 중심으로 됐다는데 한번 물어보자. 성경은 누가 적었느냐?” “몰라” “교회는 누가 세웠느냐?” “몰라” “목사님은 무슨 설교를 하더냐?” “몰라” “봐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무슨 교회를 간다고 야단하냐?” “한 가지는 내가 알아” “뭘 아는데?” “술과 마약이 싫어졌어. 그리고 마누라를 때리고 애들을 겁주던 그 생활이 사라졌어. 마누라하고 애들하고 있는 시간이 좋아. 그리고 교회 가는 날이 기다려져. 나는 그것이 변화된 것을 알아. 그 이외에는 아직 아무 것도 몰라” 그렇습니다. 교리를 모르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남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국적 


 제가 며칠 전에 프랑스 여인으로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이다도시 자매님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프랑스 여자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교육받았지만 한국 남자하고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얻었다. 나는 국적이 한국이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눈도 파랗고 얼굴도 하얗고 머리도 노랗고 완전히 프랑스 사람인데 국적이 한국인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 모양새나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국적이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분은 더 이상 프랑스 법에 적용받지 않습니다. 한국 법 아래 살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키가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이 말라서 빼빼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귀 나라 백성이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나라 백성일 때는 동물적인 인본주의로 살기 때문에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세상이 가는대로 따라 살고 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부패하고 부정하고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옛사람과 얼굴도 같고 옷도 같이 입고 말도 같이 하고 몸무게도 같고 키도 같지만 국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 백성이 되면 예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고 세속과 마귀에서 자유를 주고 병에서 고쳐주고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고 죽음과 절망에서 건져내주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면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꿈을 얻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고 자화상을 갖게 되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어느 경매장에 낡은 바이올린 하나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껄껄 웃었습니다. “다 낡은 바이올린이 줄도 다 헐었으니 누가 사겠느냐?” 그런데 어느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좀 달라고 하더니 바이올린을 켜는데 기가 막힌 음악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전부다 감탄할 정도의 아름다운 연주가 있은 뒤에 경매장 주인이 “이 바이올린을 살 사람은 손드세요”하니까 가격을 따지지 않고 사겠다며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바이올린도 줄도 다 낡았지만 실력있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잘 타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소리가 난 것입니다. 우리는 낡은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낡은 바이올린입니다. 우리를 마귀에게 맡겨 놓으면 도둑질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받아서 멋지게 연주하는 이가 누굽니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일류 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에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일류이기 때문에, 일류의 손에 우리가 들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학교 교육을 잘못 받았어도 집안이 좋지 않았어도 사회적인 지위가 없어도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고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군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 되신 예수님은 무력한 분이 아닙니다. 저 하늘과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3. 새로운 생명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날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나의 불의와 추악을 걸머지고 내 병을 짊어지고 내 저주를 짊어지고 내 죽음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체험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함께’입니다. 나 혼자 죽고 나 혼자 장사지낸바 되고 나 혼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하늘에 앉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은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오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셔서 그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의 짐을 같이 짊어지심으로 함께 시련도 통과하고 고난도 통과하고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내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값 주고 나를 사셨으니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마귀에게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보혈로 죄 없는 분이 죄를 대신하고 부패하지 않는 분이 부패한 우리를 대신하고 병 없는 분이 병 있는 우리를 대신하고 저주받지 않은 그분이 저주를 대신하고 죽지 않은 그분이 죽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주인은 누굽니까? 우리를 위해서 값을 지불하고 살려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마귀가 주인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남편도 주인이 아니고, 아내도 주인이 아닙니다. 날 위하여 죽으시고 날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대로 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의로움이 됩니다. 내가 값을 지불하고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없어도 값도 없어도 그냥 주님이 의로움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성결입니다. 나는 깨끗하지 못합니다. 항상 더러운 생각을 하고 더러운 말을 하고 더러운 수렁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성결하게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건강이 되시는 것입니다. 내가 병이 들었든 불구자든 아프든 그것은 나의 체험이고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예수님은 나의 건강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말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건강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잘나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는 가난이 물러가고 저주가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영생이 되십니다. 영생은 예수님이 영생이기 때문에 예수를 내 구주로 모셔 들이고 내 구주라고 입으로 시인하면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부활이므로 예수를 마음에 모신 사람은 부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나와 같이 계시면 나는 이미 부활과 생명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꽃바구니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무슨 바구니니?” 그러니까 애들이 “꽃바구니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바구니에 꽃 대신 비린내 나는 생선을 잔뜩 집어넣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바구니니?” “생선 바구니에요” “똑같은 바구니인데 왜 전에는 꽃바구니라고 하고 이제는 생선 바구니라고 하니?” “전에는 내용물이 꽃이고 지금은 비린내 나는 생선이니까요” 맞습니다. 세상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사람이고 천국을 가지고 있으면 천국 사람인 것입니다. 쓰레기를 담고 있으면 쓰레기 같은 인간이고 깨끗하게 만들었으면 정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어야 우리가 중생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예수가 있어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예수가 있어야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을 알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됐으니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났으니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니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야 하고 새로운 국적을 얻었으니 새로운 국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 중에 살게 됩니다. 예수를 꼭 마음속에 깊이 모시고 사십시오. 예수를 놓치면 천국도 놓치고 생명도 놓치고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텅 비고 공허하고 허무하고 맹랑한지 체험을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지옥에 떨어지고 난 다음에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고통 가운데 빠진 사람은 살아있을 동안에 예수를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없을 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거칠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은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고 비가 올 때 우산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아버지,
 예수 믿고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예수님,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가 예수의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아직 예수를 모시지 않은 사람은 이 육체를 떠나기 전에 예수를 빨리 모셔서 절망적인 고독과 허무와 공허와 좌절과 고통 가운데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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