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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아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부제: 남녀 평등에 대하여

오늘날, 비록 현실적으로는 차별적 요소가 있을 지 모르지만, 남녀 평등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만약 여기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런 점에서,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회들은 정말 큰 위기와 숙제를 안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 올 때만해도 교회가 남녀 평등을 선도하였는데, 이제는 그와 반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자신들을 성찰하지 않고 성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교회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것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더욱 성경에서 말하는 남녀 평등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현대적인 관점에 보았을 때, 성경이 남녀 차별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여자에게 교회 안에서 다스림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스림의 권한 속에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가르침의 권한을 제한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은 차별이 아니고 구별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오늘날 누가 보아도 이것은 차별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직 능력에 따른 차별만이 인정될 뿐이지 성에 따른 차별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자 중에서 지적으로 훨씬 탁월하고 리더쉽도 있는데, 금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숙제는 이러한 차별이 평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간 사회는 본질적으로 타락하여서 참된 평등의 사회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평등에 대한 올바른 개념도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평등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아마, 이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모습은 삼위 하나님 그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구분된 세개의 위격을 가지시면서도 동시에 본성에 있어서 단일한 이것 보다 더 평등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대단히 불평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순서에 있어서 성부는 항상 1위가 되신다.  더구나 성자는 단일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한다. 심지어 그분은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성령 하나님 역시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성자께서 주시는 말씀만 교회에 주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또 하나의 평등한 모습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와 지체로서의 교회는 한 몸을 이룬다. 이 속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머리로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께 순종한다. 비록, 교회가 고난가운데 있으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간구하고, 강청하고, 심지어 불평하고 원망할 수는 있겠지만(대표적으로 시편의 탄원시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되고 더구나 그리스도께 명령을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 역시 아무리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회를 사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삼위 안의 사랑과 복종의 관계가 여기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떻게 보면 아주 불평등한 모습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성경은 여자와 남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니까 남녀 간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녀간의 차별을 말하는 다른 구절을 무시하는 것도 정직한 성경읽기는 아니다. 문제는 남녀가 하나인데 어떻게 하나인가가 중요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머리 대 머리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머리와 지체로서 하나라고 말한다. 만약, 이것을 불평등의 관계로 본다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불평등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의 관계 역시 대단한 불평등의 관계이다.

문제는 왜 머리와 몸의 관계를 불평등의 관계로 보는가이다. 그것은 바로 머리와 몸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떼어 놓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사고 방식 속에는 이것은 조화와 평등이 아니라 차별일 뿐이다. 하지만, 성경은 머리와 몸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적이며 올바른 관계임을 가르친다. 즉, 사랑과 복종은 평등이나 하나의 개념과 상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평등의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까? 오직 사랑과 복종이라는 “차별”적인 요소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성경은 아내에게 대해서 말하기를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말한다(벧전 3장 7절).  그리고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들의 기도가 막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 생명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는 전혀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 때문에 교회 안에서 남성들은 특히 남자인 목사들은 여자를 귀히 여겨야 한다.  만약 그들이 귀히 여지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주님 역시 그들의 기도를 귀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즉, 아내를 귀히 여기는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생사가 걸린 영적인 문제이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은 아내 귀한 줄 모르는 남편이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남자들이 교회 안에서 여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수적인 교회들은 남녀 차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회들 보다 자신들이 더 성경적으로 옳다고 자만만 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서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른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아내를 구체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방법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아내에게 경어체를 쓰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것은 아내와 다툴 때,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두거나 갓 결혼한 젊은 청년들에게 권한다. 벧전 3장 7절에 따르면,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이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반말은 평소 사이 좋을 때는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지는 모르지만, 서로 다툴 때는 험한 말이 쉽게 나오게 되고 서로의 관계에 치명상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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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안수와 남녀 평등 성경의 여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녀평등은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만약 여기에 의의를 달면, 전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남녀평등 자체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성경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남녀 평등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을 문화적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의 큰 기준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성경을 읽을 수는 없지만, 성경자체가 최고의 진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앞에서는 인간의 이성이나 일반적인 상식 마저도 접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남녀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성경이 남녀평등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2000년 전에는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남녀 평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녀평등이란 잣대로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을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성경을 읽어 보면, 남녀가 평등하다는 말씀도 보이고 그렇지 않은 말씀도 보인다. 예를 들면, "남녀가 차별없이 하나다"라는 것과 "여자는 복종하라"라는 말이다. 자연히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전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후자를 강조한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이 서로 상충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둘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 본성은 타락해 있기 때문에 평등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말로 평등한 사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평등한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평등한 사회는 복종을 배제하는 사회일까?

 

일반적으로 평등이라고 하면, 친구와 친구 혹은 국가간의 연합과 같은 모델을 떠 올린다. 친구는 서로 각자가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면서 우정이라는 끈으로 연합한다. 국가간의 연합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평등한 사회는 바로 삼위 일체 하나님 그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삼위는 각각 온전한 하나님으로 절대적으로 하나이시지만, 성자는 성부께 철저히 복종한다. 얼마나 복종하는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성령님 역시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성자께서 주시는 말씀만을 교회에 주신다. 현대의 남녀 평등이라는 개념을 보면, 삼위 일체만큼 불평등한 사회는 없을 것이다. 왜 성자만, 왜 성령만 복종해야 하는가?

 

일반적인 가족의 경우에도 한 번 살펴 보자. 아버지와 아들이 평등한가? 이렇게 누가 묻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똑같으며 다름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권위를 갖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두셨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할 때 진정으로 평등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부부간의 관계가 친구 대 친구의 관계에 가까울까 아니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가까울까?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남녀 평등에 대한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모델 모두가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나인가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하나인가? 아니면 친구와 친구와의 관계처럼 하나인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이다. 어떻게 하나인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인 것처럼 하나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을 위해서 성경이 좀 더 쉽게 비유했듯이, 부부간의 관계는 오른 손과 왼손의 관계가 아니라 머리와 몸의 관계처럼 하나이다. 머리가 높은가 아니면 몸이 높은가라고 "평등"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실로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부부간의 관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논리를 교회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까? 확장시킬 수 없다고 본다면, 그는 현대의 개인주의라는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교회와 가정이 구분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두 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만약, 여자에게 다스림을 허용한다고 하자. 여자에게 가르치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아내가 목사이거나 장로인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게 다스림을 받거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이 명시적으로 금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여자에게 설교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이 글에서 적어도 이 금지가 남녀평등이라는 개념과 상충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참된 성도들은 세상이 가르치는 남녀평등에 따라 살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남녀 평등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 가야 할 것이다.

 

사실, 절대적인 남녀평등의 개념은 오늘날 현대사회에도 통하지 않는다. 물론 극단적 패미니스트의 경우에는 절대적인 평등을 추구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에게 군대에 갈 기회를 제한하는 것을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보지 불평등이라고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떤 이유(궁극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에서 여자 성도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제한시켰다. 그것은 여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임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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