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요약-1

 <기독교 강요>는 신앙생활의 지첨서일 뿐만 아니라 성경적 경건의 이론과 실천을 명제와 변증을 통해 체계적으로 다룬 신학생들의 조직신학 교과서이다

이 번 포스팅을

 

소망이란 참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고 믿는 모든 것에 대한 기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심을 믿는다. 소망이란 하나님께서 미래의 적당한 때에 그의 진실하심을 나타내시리라고 기대한다.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항상 우리를 위한 아버지로서 행동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신앙이란 영생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을 믿는다. 신앙이란 소망이 그 위에 서있는 초석이요 소망은 신앙을 양육하고 유지시켜준다.


진정한 기도란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느낌이요 이 느낌을 가지고 하나님을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 우리 자신의 자존심 및 모든 자만심과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도란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엄청난 자비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주님께서는 그의 사랑으로부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는 바로 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에게 어떤 법이나 그 어떤 조건도 부과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 최종판(1559) 기독교 강요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2.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3. 그리스도의 은혜를 수용하는 방법,

4.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에로 부르시며 이 사귐 속에 있게 하시는 외적인 수단 혹은 보조자이다.

환언하면

1. 신론 2. 기독론 3. 성령론 4. 교회론 및 국가론이다.

그런데 교회론을 다루면서 끝에 국가론을 첨부한 이유는

국가 역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제 1 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인간은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없으며 성령의 경험도 할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조차 단편적이라는 뜻이다. 즉 인간은 자연계시에 의해서만은 ?구원의 신 지식?이나 구원의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 자연계시를 통해서 자연인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제 6 장에서 성경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길잡이와 선생 노릇을 하기위해서 꼭 필요하다“라는 제목을 다루고 제 13장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제 1 장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엄청난 명령과 요구들 앞에서 혹은 복음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와 닿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다. 특히 예배하는 공동체인 교회에서 말씀 설교와 세례와 성만찬  및 봉사활동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엄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낮은 신분에 대하여 결코 깨닫지 못한다.


제 2 장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성령으로 가능케 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칼반의 하나님 지식은 단순히 주지주의 적이거나 이론적인데 머물지 않고 양심, 의지, 감정 등 전인적인 신뢰와 경외 그리고 전인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신앙의 하나님의 지식이다.


제 3 장  인간의 지성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직관이 있다. 이는 자연적 본능이다. 종교의 씨앗이다. 이는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기 이전에 모든 인간이 지닌 종교성으로서 양심의 빛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양심의 자세를 가다듬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종교성이야말로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이 하나님 지식은 인간의 무지와 보도덕에 의하여 질식되고 있다. 이것은 타락의결과인 인간의 본성의 부패 때문이다. 이 하나님 지식은 결코 인간을 구원에로 인도할 수 없다.


제 4 장 경험에 의한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 속에 종교의 씨앗을 뿌리셨다. 그러나 백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도 그 씨앗을 그의 마음 속에서 잘 배양하지 않으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지 않는다. 이 뿐 아니라 어떤 이는 이 종교의 씨앗을 미신으로 표출시키고 또 다른 이들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악의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이 세상에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에서 떨어지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한 경건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제 6 장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다만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만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되었으며 성경 안에 들어와야 비로소 참된 길잡이요 선생은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이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참 모습과 아울러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말씀 혹은 말씀의 빛도 있다.  우리는 이 셩겅에 전하는 하늘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지 않고는 결코 참된 경건을 조명받을 수 없으며 이 성경의 학생이 되지 않고는 올바르고 건전한 가르침을 결코 추호도 맛 볼 수 없을 것이다.


제 7 장 칼빈은 기록된 말씀과 설교 말씀이 성령의 사역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주장한다. 이 성경 말씀의 진정한 증인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성과 교리 전승 보다 성령이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과 의지, 그리고 양심과 감정에 와닿는다. 성령을 통해서 전해지던 말씀이 기록된 후 다시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내용이 밝혀진다.

 


제 8 장 칼빈은 성경의 표현양식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아하고 장엄하며 명쾌하고 빛나는 것이라고 하나 경우에 따라서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스타일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문장보다 내용이라고 못박았다.


제 11장 칼빈은 출 20: 4을 근거로하여 모든 우상들을 금한다. 즉 나무, 돌, 금, 은 등 생명없는 혹은 썩어질 물질로 만든 우상은 물론 태양숭배, 별숭배, 동물숭배 등을 철저히 배격한다. 결국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나타나셨다. 이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결코 우상이 아니시다.

 

제 13 장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무슨 형상이나 우상이 아니라 무한한 본질이요 영적인 본질로서 단순하고 나누어질 수 없으며 통일성을 지닌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한 분 하나님은 세 위격을 지니셨다.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해석의 열쇠라고 해야 한다. 즉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말씀하셨다. 이 그리스도의 영은  말씀의 영으로서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이 말씀이 창조의 중보자요,계시와 구 속의 중보자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의 세계를 지탱하신다.  

  인간과 우주 만물은 성자의 작품인 동시에 성령의 작품이기도 한다. 즉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구속 역사 및 섭리와 종말 사건에 있어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제 14 장 성경에 의하면 거짓 신들과 구별되는 참 하나님의 모습은 이 창조주의 우주와 인간 창조를 통해서 나타났다. 창조주 하나님은 천사를 포함한 모든 인간과 우주만물 위에 군림하시는 주님이시다.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다.

   마귀들은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불화를 가져다 주고, 피곤케 하고, 공포와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신다. 그러므로 믿는자들은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대적 악마가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대고 우리를 삼키려할 때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대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보호하신다고 하는 사실도 있으나 악마를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는 명령도 있다.

 


제 15 장 인간은 몸과 영혼 내지는 정신으로 구성된다. 대체로 영혼과 정신이 개별적으로 사용될 ?에는 동일시뙤나, 양자가 함께 사용될 때는 정신이 영혼보다 우월한 기능을 갖는다.

한 인간안의 인격적 통일성, 한 인격 내에서의 두 본성의 교류를 칼빈은 보고 있다. 영혼은 몸이 아니고 몸은 영혼이 아니다. 그래서 영혼의 고유한 특성은 모에 적용될 수 없고, 몸의 고유한 특성은 영혼에 적용될 수 없 다. 그리고 전인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며 몸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마음의 특성이 몸으로 이월되고 몸의 특성은 영혼으로 이월된다.

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은 주로 두가지 능력과 기능을 나타낸다. 곧 지성과의지이다. 그런데 지성은 영혼 혹은 정신의 지휘관 내지는 통치자요, 의지란 항상 저 지성의 지시와 정보에 따라 움직인다. 칼빈은 또한 주로 지성을 Mind로 의지를 heart로 표현한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은 주로 이 두가지 기능에 해당된다. 지성없는 의지는 맹목적이 되고, 의지없는 지성은 행함이 없다. 의지는 지성의 손을 잡고 길을 가야 한다.

 

제 16장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는 세계를 자신의 능력으로 양육하시고 지탱시키시며 그의 섭리에 의하여 이 세계? 각 부분을 통치하신다.


제 18장 칼빈은 하나님이 그가 창조하신 우주를 통치하시고 그의 작품에 대하여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신다고 한다. 성부와성자는 처음부터 함꼐 일하신다. 고 할 때 이성부와 성자의 명령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찾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섭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특수섭리를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계획 뜻, 노력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선택의 의지에 의하여 자기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들을 섭리하신다고 믿는다. 믿는 자들은 제 이차적 원인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즉 어떤 사람을 통해서 큰 유익을 얻었을 때 이는 하나님이 이들을 통해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이 이 선행하는 원초적 원인임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찬양해야 한다.

 

제 2 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구약에 계시되었고 그 다음 신약에서 계시되었다.


제 1 장 원죄론 전인류는 아담의 타락과 반항에 의하여 저주를 받았고, 원초적인 상태에서 떨어졌다. 인간의 소외는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식된 인간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 인간의 모습이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회복을 표준으로 하는 인간의 비본래적인 모습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죄란 인간의 육체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보다 고상한 부분인 지성, 양심 및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칼 빈 역시 이런 의미에서 노예의지론을 주장한다.


제 3 장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따라 움직이며 선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인간의 의지를 묶어버린 죄의 쇠사슬 때문에 인간은 선을 향하여 지향할 수도 없고, 이 선을 성취하지도 못한다.

 

제 4 장  인간의 자유의지의 성취가 추호도 구원에 공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은혜의 선행에 의한 인간의지의 회심을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제 6 장 이처럼 인간은 구원과 거룩한 삶에 관한 한 전적으로 타락하였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은 중보자 예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 맺어야 구원에 이른다.

  구원에 통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모든 예배는 유익이 없다. 심지어 구약성경까지도 중보자를 떠나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산앙이없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해석의 열쇠요 구약은 신약의 빛에서 풀이되어야 하고, 또한 신약은 구약의 빛에서 풀이되어야 한다.

 


제 7 장 구약에 주어진 율법은 옛 언약의 백성을 이 안에서의 소망을 그리스도의 오심까지 키워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십계명은 모든 하나님의 요구를 대변한다. 양심법과 실정법 역시 결국 이 십게명에 내포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이 십곕명의 묘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부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대한 종교적 의무에 대한 것이요, 둘째 부분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의무에 관한 것이다.


제 8 장 칼빈은 십계명의 기능이 우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 분의 자비와 거룩하심을 경외하면서 예배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요, 그 다음 인간이 얼마나 불의하며 의를 행하기에 얼마나 무능하고 불완전한가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을 올바로 의식하고 자기의 무능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십계명의 명령 사항을 결코 아름답게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의 순결의 원형에 의하여 우리의 생을 숭응시켜 형성시켜야 할 의의 완성에 있다. 하나님은 그의 모습을 이 율법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동화할 경우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그의 삶의 나타내는 것이다.

성도의 완전함은 사랑에 있으며 사랑은 율법의 성취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사람이다.


제 9 장 그리스도는 이미 율법 하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알려지셨으나 급기야는 오직 복음 안에서 명쾌하게 계시되셨다.

칼빈은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신비의 분명한 계시라고 하아였다. 구약에서 발견되는 바 하나님과 인간의화해를 약속하는 은혜로운 속죄들은 복음의 한 부분으로 신앙의대상이라고 한다. 칼빈은 이 복음 신앙을 공로주의와 율법 주의에서 오는 위협과 공포와 대조적으로 나타낸다. 넓은 의미에서 복음이란 하나님꼐서 족장들에게 베푸셨던 그의자비와 그의 아버지다운 호의에 대한 증거를 포함한다. 그러나 보다 높은 의미의 복음이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은혜의 선포라고 칼빈은 말한다. 사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교하셨고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는 말로 시작하였다.

 

제 10 장 첫째로 육적인 번영과 행복은 유대인들이 갈망하는 바 유대인들 앞에 놓여있던 목표가 아니였다. 이들이 영생에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자되었다는 확신이, 신탁, 율법, 그리고 예언자들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두 번째로 저들이 주님과 맺은 언약과 사귐은 저들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저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세 번째로 구약의 하나님의 계약백성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지녔으며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알았다. 이들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연합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에 동참활 수 있었다.

 

제 11 장 구약은 영적인 축복을 지상적인 축복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다른 점은 구약의 진리는 형상들과 의식법에 의하여 전달되었으나 신약에서는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등장하셨다. 세 번째 다른 점은 구약은 다분히 율법적이고, 신약은 다분히 복음적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다른 점은 구약은 인간을 속박하며 신약은 인간을 자유케 한다는 것이다.다섯번째 다른 점은 구약은 하나의 민족을 지향하며 신약은 모든 민족을 포함한다.

 


제 12 장 누가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할 수 있으며 화해시킬 수 있을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위엄의 보좌에서 내려오신 인간이어야 한다.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함꼐 하심으로 인간에게 구원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절대 역설적 위격이 우리를 위한 구 속의 사업을 펼치셨다.

 


제 13 장 축복의 약속을 받은 자는 하늘의 씨앗도 아니요 환상적인 인간도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의 씨앗이다. 영원한 중보자를 약속받은 자는 다윗의 아들이요 그의 허리에서 나온 열매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인간이라고 하는 말로 만족하시지 않고 종종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으니 그 뜻은 인간의 씨에서 탄생하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제 14 장 칼빈은 정통 기독론을 따라 신성과 인성의 교류를 말하는데 그의 공헌은 이 신비한 교류를 한 인간의 인격 안에서 영혼의 특질과 육체적 특질이 서로 교류하는 것에 유추하였다. 즉 영혼은 육체가 아니고 육체는 영혼이 아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가 전인을 이룬다. 이 전인으로서의 한 인간의 인격 안에서 영혼의 특질과 육체의 특질은 서로 교류한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나뉘어질 수도 없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해도 안되며 이 둘은 서로 혼돈되어도 안된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관계와 비슷하다.

 


제 15 장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목적을 알기 위하여 그리고 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3 중의 직책을 이해하여야 한다. 즉 예언자적 직책, 왕의 직책 및 제사장의 직책이다.

 


제 17장 칼빈은 인간의 소외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다. 따라서 영원한 사망의 저주를 받아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다. 하난미의 축복은커녕 사탄의 노예와 죄의 멍에 아래서 무시무시한 파멸 속에 떨어져있다. 이와 같은 때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변호자로서 하나님과인간 사이에 개입하셨다. 즉 하나님과 의로운 심판 하에 모든 죄인이 위협받고 있는 모든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홀로 감수하시어 하나님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모든 죄악을 그의 피로써 씻어버리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화목제에의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잠잠케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와 화해는 바로 이 사건에 근거한다.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만족되었으며 그의 저주는 제거되었고 죄의 값이 완전히 지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부활을 통해서 중생하고 영생의 소망을 갖는다고 말하지 그의 죽음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으로 죄가 제거되었고 그의 부활에 의하여 의가 다시 살아났고 회복되었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빌라도는 하나의 죄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사형수나 되는 것처럼 이 빌라도의 법정에 나아가셨다. 그는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간의 아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우리는 그의 부활을 통해거 중생했으며 나아가서 살아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제 3 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수용하는 방법

 


제 2 장 남녀가 결혼하여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 된다. 이 둘은 하나가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와 연합하신다. 이 성령의 은혜와 능력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에 예속되고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유한다. 인신칭의, 회개, 성화, 기도, 교회와 성례는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령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릿도와 연합했으나 장차 종말의 날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남아있다.

 


신앙이란 성령의 주요 일이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일하신다. 신앙이란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을 조명시키시고 우리의 의지를 선택과 결단,확고부동한 신뢰에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신앙에서 신뢰가 나온다고 말하며, 여기에서 담대함이 생긴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신앙은 양심의 평화라고도 일컬어진다.

 


제 3 장 나는 신앙의 결과로서 따라오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회개는 신앙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확실하다. 복음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고는 과거의 죄악된 삶으로부터 올바른 삶에로 옮겨갈 수가 없으며 회개를 실천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

칼빈은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들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요, 우리의 옛정신을 벗어버리고 새 정신을 입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란 우리의 육 혹은 옛사람의 죽음과 성령의 소생케 하심에 있다.

 


제 5 장 고해성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를 위한 잘못된 메카니즘이다. 그가 죄를 지을 때 마다 1.신부 혹은 사제 앞에 나아가 죄를 통회하며 2. 죄를 항목화하여 낱낱이 신부 앞에 고백하고, 3. 죄책은 용서받으나 형벌은 면제받지 못하여 어떤 선행이나 여러 종류의 보상하는 고행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만족을 드려야 하며 4. 끝으로 사제는 미사행위를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의 모든 죄책과 형벌을 면제시켜 준다.

칼빈은 이 교리에 반대하였다. 죄의 용서는 인간인 신부가 아니라 복음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조명으로 그리스도 자신에 의하여 사죄받는다.

 


제 7 장 칼빈에게 있어서 성화는 삶의 현장, 직업의 현장, 혹은 세상 한 복판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인 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생애를 불 태울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기자신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확신 때문이다. 칼빈은 자기 부정이 먼저 일어나야 남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에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제 8 장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것은 자기부정이다.

 


제 10 장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칼빈은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들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감이니라.를 인용함으로써 초월적 하나님과 관계하며 은혜와 신앙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초월적인 사랑과 공의로 살아가야 할 기독교인들의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초월이면서도 내재이시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초월의 영역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제 11 장 이신칭의 : 이 말의 정의와 그 주제 칼빈은 이신칭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의 판단에 의하여 의롭다고 여겨진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용납받은 자가 바로 칭의받은 사람이다. 행위의 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신앙으로 포착하고 이 의로 옷입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여겨지지 않고 의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다.

칭의란 하나님께서 그의 호의로 우리를 의인처럼 용납하시는 용납이다. 그리고그것은 죄들의 속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이다.

 


제 13 장 이신칭의에 있어서 두 가지 유의할 사항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주님의 영광이 감소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즉 주님의 영광의 손상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평화로운 안식과 평온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제 14 장 이신칭의의 시작과 그 지속적인 진전 결국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없이는 결코 성화는 있을 수 없다. 자연인은 나쁜 나무이다. 이들은 보기에 아름답고 맛좋은 열매를 맺으나 이것들이 결코 좋은 열매는 못된다. 여기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기 이전의 자연인이 하는 계획, 생각 및 일들은 모두 의를 위해서 쓸데없는 짓이요, 저주와 정죄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있다.

 


제 15장 우리들이 행위의 공로를 자랑하고 자만할 경우 우리는 은혜로 베풀어주신 의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지신 것은 우리가 의를 성취하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분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함이었다. 진실로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정하셨다.

우리 자신이 아직 어리석을 때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지혜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요, 우리가 아직 더러울 때 그는 우리의 깨끗하심이요, 우리가 연약하여 사탄의 힘에 노출될 때 하늘과 땅의 권세를 부여받으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의 것이요.

 


제 17 장 율법의 요구가 무조건적 사죄를 선포하는 복음으로 대치되었을 때 이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게 하며 우리의 선행까지도 기뻐 받으신다.    따라서 나는 주님께서 그의 율법에 기록한 바 의와 거룩함을 성취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바가 믿는 자의 선행의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 18 장 상급을 받는 다는 것 때문에 행위에 의한 의가 가능할 수는 없다. 상급이라는 개념은 결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 19 장 칼빈은 기독교적 자유를 3 가지로 본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멍에를 벗은 자만이 율법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유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자유.

 


제 20 장 기도 : 그것은 신앙을 훈련시키며 우리는 기도에 의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꼐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기도란 하나님의 계명 중에 하나로서 구원론적 근거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은혜와 신앙과 무관한 불신자들이 기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를 지탱하시는 그의 능력의 현존을 부르는 것이요, 죄에 눌린 우리를 은혜로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현존을 부른다.

 


칼빈은 4 가지의 기도의 법칙을 제시한다.

1) 우리의 지성 양심 의지 및 정서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성향을 갖추어야 한다.

2) 곤궁을 절감하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3)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겸허하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4) 확고부동한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담대하고 확신있게 하나님 앞에 나간다. 이처럼 신앙과 소망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기도할  때 꼭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해야 한다.

 


제 21 장 영원 전의 선택 :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도록 택정하셨고 또 어떤 사람들은 멸망받도록 택정하셨다.

 


제 24 장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확인된다. 유기된 자들의 멸망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다. 칼빈은 성도들의 견인에 관하여 말했다. 하나님은 그의 택정하신 성도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끝까지 참고 붙드신다.

 


제4권 하나님께서 우리를그리스도와의사귐에로초대하시고 이 사귐에 머물게하시는 외적인 수단

 


말씀 설교 세례 성만찬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매개시키는 수단인 바,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에로 초대하며 이 사귐 안에 머물러 있게 한다. 그런데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가장 끝 부분에 국가론을 다루는데 국가 역시 원칙상 하나님의 은혜를 매개시키는 기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 1 장 참 교회 : 우리는 모든 믿는 자들의 어머니인 이 참 교회와 하나되어야 한다. 칼빈은 루터와는 달리 신앙고백과 삶의 모범을 요구한다. 즉 이것이 교회의 표지에 가산되고 있다. 우리는 신앙고백과 삶의 모범으로 우리와 더불어 동일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사랑의 판단에 의하여 하나님의 교회라고 판단한다.

 


제 2 장 참 교회를 분별하는 표준은 즉 말씀을 순수하게 설교하며 세례와 성만찬을 주님이 제정하신 의도대로 베풀며 이에 대한 반응으로써 순종, 성화, 혹은 삶의 모범이 있어야 참 교회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제 3 장 교회의 교사들과 교역자들 및 이들의 선출과 직책 칼빈은 하나님의 봉사자들을 가리켜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절, 하나님의 성전들, 주님의 전언자, 그리스도의 봉사자들 혹은 하나님의 신비를 맡은 청지기 등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통하여 그의 말씀을 설교하신다. 따라서 사람의 입술이 마치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인양 우리는 이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의 보물이 이 연약한 질그릇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제 5 장 폭군적인 교황주의는 고대교회의 교직체제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제 6 장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의 지상권. 칼빈은 베드로의 수위권에대하여 반론한다.

 


제 8 장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 결정권 : 이 권한에 의하여 교회는 그동안 모든 교리의 순수성을 얼마나 타락시켰던가? 저들은 성경 이외에 전통(교리들, 교황의 칙령들)을 말한다. 사도들의 글 이외에 전해지는 구전도 말한다. 종교개혁 당시에 이들은 이 전통을 거의 성경과 같은 비중으로 보았다. 즉 기록된 말씀인 신, 구약 성경만이 진리의 표준은 아니라고 이들은 본다.

 


제 9 장 칼빈은 종교회의들이 성경으로부터 떨어졌으며 심지어 니케아 회의와 칼케돈 회의 역시 논쟁과정에서 목사들이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칼빈은 어느 종교회의의 교리 결정이든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며 그 회의가 언제 어디에서 모였고 무슨 문제로 모었으며 누가 무슨의도를 가지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신앙의 내용 중 중요한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결정한 니케아 회의(325), 콘스탄티노플 회의(381), 에베소 회의(431)칼케돈 회의(451) 같은 종교회의의 교리 결정은 성경의 순수하고 진정한 해석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칼빈은 교리 문제 혹은 성경 해석의 문제로 교회가 싸울 때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결정하되 말씀과 성령을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위의 회의등의 존재 이유와 존재 의미를 인정하였고, 아타나시우스 등 많은 고대 교회의 교부들의 역할을 칭찬하였다.

 


제 10 장 교황은 그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더불어 법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뭇 영혼들이 야비한 폭정과 유린 하에 억눌리고 신음하고 있다.

 


제 11 장 칼빈은 교회의 권한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특징지우면서 국가가 지닌 칼의 권한과 구별한다. 그리고 교회의 치리는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합법적인 회중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출교는 구형이니 투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칼빈은 카톨릭 교직자들의 경우 영적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 국가권력의 일까지 했다고 지적한다.


제 12 장 치리는 왜 필요하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한 가정이나 사회가 살아가는데도 치리(Discipline)가 반드시 필요한데 교회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더욱 이 치리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이 치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세가지 목적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기 위함 둘째로 고전 5:6,11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 중 악한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온 그리스도의 몸이 더럽혀지므로 이 치리가 필요하다. 셋째로 결국 최종의 목표는 악한 자들을 회개시키는 데 있다. 치리의 의도와 목적이 죄인을 회개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이것이 죄인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금식과 기도에 대해서 논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어거하기 위하여 금식해야 하는데, 이는 공적인 금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조건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로 개인이든 교회 공동체 전체이든 이 금식은 기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필요하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기를 낮추어 참회하기 위하여 금식이 필요한데 이는 기독교인 개인으로서 교회나 국가의 차원에서까지 타당하다. 왜냐하면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에 모두 금식하며 통회 자복해야 하기 ?문이다.

제 13 장 서원 : 누구든지 무모하게 서원하면 비참한 자승자박에 말려든다. 서원에 있어서 오류를 피하려면 3 가지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1. 우리는 누구에게 서원을 해야 하나 2. 이 서원을 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다. 3.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는 서원을 하는가?

 


  1. 하나님이 그의 말씀 안에서 인정하는 서원 이외에 다른 서원을 감히 하나님께 올리는 방종스러운 일을 행하지 말자. 2. 우리는 우리의 능력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명심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능력 한계를 벗어나서 혹은 그의 소명에 배치하여 서원을 일삼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그로 하여금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멸하는 사람은 배은망덕하다. 3. 서원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도가 중요하다. 만약에 여러분이 술을 끊는 서원 그 행동 자체가 거룩한 것인양 생각한다면 그것은 미신적이다.

 


제 14 장 성례란 정부문서나 다른 공문에 찍힌 도장이라고 하면서 도장 그 자체보다 그 문서에 기록된 글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한다. 내용인 즉 아브라함의 은혜의 언약을 신앙함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나서 받은 할례는 저 언약을 인치는 도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를 언약들의 보증이어서 하나님의 복음 말씀의 신빙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보이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성례전은 풍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연상케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떡과 즙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우리의 능력에 알맞는 매체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제 15 장 세례는 물 자체가 깨끗케 하고, 중생시키며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피가 우리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었는데, “ 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성화시키는 메시지가 위리에게 와닿는다. 이 때에 세례는 이 메시지가  와닿았다는 것을 인치는 것이다.

 


제 17 장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 :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란 무엇인가? 성만찬의 중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떡과 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듯 그리고 손으로 만져지듯 제시된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회적으로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 떡과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류 혹은 그리스도에 참여함으로 영혼이 생기를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심이라는 표현으로 이 관계를 나타내셨다. 마치 떡을 보는 것만으로는 몸에 유익이 없고 먹어야 유익이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어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영생에로의 생기를 얻게된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성만찬 교리에서 성화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제 18 장 교황주의 교회의 미사 :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속되게 할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것으로 만든다.

 


제 19 장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5 개의 성례(저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더해 7 성례전을 사용한다.) : 이것을 성례라 함은 성경적이 아니다.

 


제 20 장 국가와 정부 (교회와의 관계) 칼빈은 물과 태양과 공기가 필요하듯이 국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각 개인이 재산 소유의 권리를 갖도록 하며, 인간 상호간에 사귐을 갖게 하고, 덕망과 근엄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게 한다. 즉 인간성의 확립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 중 둘째 돌판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첫째 돌판에 속하는 의미도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공직자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요 모든 국가의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상급을 주고, 악행을 범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구원론

제 1장 성령의 일반적 사역

 


제 1절자연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

성령께서는 자연의 영역에서 유기적이며 지적이며 도덕적인 모든 생명에 생을 주시며 ㅁ든 변화속에서도 그것을 보존하시며 또는 그것을 이끄어 발전하게 하시고 자신의 운명의 길에서 걸어가게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일반적 사역은 자연과 인간생활의 기성질서에 속한다.다시 말하면 그것은 창조에 근거를 두고 피조물의 성장과 완성을 보증하는 것이다.성령의 일반적 사역 없이는 그의 특별 사역을 위한 진정한 영역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제 2절 보통은혜

성령의 일반적 사역의 열매 중에서 특히 고려할 만한 것은 보통은혜이다.

[1]보통은혜의 서술

보통은혜와 특별은헤의 구별은 하난님의 속성으로서의 은혜에는 적용되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사역에 또는 이 사역이 자연과 인간 생활에서 나타나는 결과에만 적용된다.보통은혜를 말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a.이 사역에서 성령께서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감화시켜 죄를 제재하시며 사회질서를 유지하시며 시민의 도덕을 증진시킨다.b.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 축복이다.모든사람에게 구별없이 자기에게 선하게 보이시는 대로 그 축복들을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파가 주장하는 만큼 영적 회개까지는 가져오게 하지 않는다.보통은혜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제거하기에 불충분하며 인간을 영적 갱신의 길로 인도하기에도 충분하지 못하다.

보통은혜와 특별은혜와의 상이점 a전자는 사람의 마음속에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 없으나 후자는 가능하다.

b 전자는 이성적 도덕적 방법으로 역사하며 후자는 영적 창조적 방법으로 역사하여 인간의 전성질을 갱신 또는 영적 과실을 맺게 하는 것이다.c 전자는 반항적이며 항상 다소 저항을 받지만 후자는 불가항력적이어서 사람이 자발적으로 굴복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변화시킨다.

 


[2]보통은혜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아마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진노를 발하시지 않으시는 그 선하신 뜻이 곧 보통은혜의 축복들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축복들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어느 면에서 관계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서 간접적으로 결과한 이들 일반적 축복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을 뿐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축복으로 계획하기도 하였다.

 


[3]보통은혜의 방법

(a)하나님의 계시의 빛

이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자연계에서 사람을 비추어 주며 자연인의 양심을 인도해 주는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

(b)정부

하나님께서는 악마의 세력과 인간의 방탕을 억제하기 위하여 또는 선한 질서와 단정함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정부를 제정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c)여론

자연계에서 비치는 하나님의 빛이 특히 특별계시의 빛으로 보강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는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d)하나님의 형벌과 상급

하나님은 현세에서도 인간의 죄악을 벌하시고 율법과 외면적으로 일치한 행위에는 상급을 주신다. 이같이 현세에 있는 도덕적 선은 무엇이든지 크게 격려를 받는 것이다.

 


[4]보통은혜의 효과

[a]형의 집행유예

하나님께서 죄인에 대하여 죽음의 선고를 즉시 집행하지 않으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의 자연적 생명을 유지 연장하여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보통은혜에 의하는 것이다.

[b]죄의 제재

죄는 그 부패의 요소가 그 파괴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 제재를 받는다.

[c]진리 도덕 종교의 의식

인간은 보통은혜에 의하여 진,선,미에 대한 의식을 다소 가지게 된다.진리와 외부적 도덕성 나아가서는 종교의 어떤 형태에 대해서 까지도 욕구를 나타내게되는 것이다.

[d]세속적 의

보통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능히 세속적 의 혹은 자연적 선이라 불리워지는 것들을 실행케한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과 외면적으로 일치한 것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물론 그것들은 참된 영적 성질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자연적 축복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자연적 축복은 보통은혜로 말미암는다.비록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지만 그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풍부하게 받고있는 것이다.

 


[5]보통은혜의 성서적 증거

하나님께서 죄를 여러 방법으로 제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창 20:6,31:7;욥1:12;2:6등

아직 중생하지 못한 자가 선과 의를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왕하 10:29,30;12:2 롬 2:14

마지막으로 어떤 귀절들은 하나님께서 과분한 축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 차별없이 내리신다고 표현하고 있다.시145:9,15,16;마5: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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