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요약 (Instruction in Christianity)-2
제3장 회 심
제1절 회심의 성서적 용어
[1] 구약의 용어
구약은 회심을 묘사함에 있어서 두가지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그 첫째 말 nicham 은 “후회하다.”를 의미하는 말로, 이는 흔히 계획과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회개를 가리킨다. 그 둘째 말 shubh 는 “돌아오다.” 특히 떠났다가 “돌아오다.”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회심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2] 신약의 용어
신약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metamoeo, metanoia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를 가리킨다. 이 변화는 전적으로 지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변화로도 생각되어야 한다. 둘째로 중요한 말인 epistrepho, epistrophe는 “방향을 돌리다.”혹은 “되돌아가다.”를 의미한다. 이말은 능력적 생명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회심의 최종적 행동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세째로 metameiomai라는 말은 신약에 다섯 번이나 나타났는데, “후에 사람에게 걱정거리가 되다.”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은 회개의 요소를 강조한다.
제2절 성서의 회심관
[1] 국민적 회심
성서는 사사시대의 이스라엘과 열왕시대의 그리고 니느웨등의 국민적 회심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말한다.
[2] 일반적 회심
성서는 또한 마음의 변화를 표시하지 않고 다만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는 회심에 대하여도 말한다. 이러한 회심은 잠시 동안은 진정한 회심인 것처럼 보인다.
[3] 진정한 회심
이 회심은 중생의 외부적 표현 혹은 죄인의 의식생활에서 일으켜지는 변화인 것이다. 이 회심에는 두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능동적인 면이요, 하나는 피동적인 면이다. 전자의 견지에서 볼 때, 회심이란 하나님께서 중생자로 하여금 자기의 의식생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4] 반복적 회심
새 생명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중생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심도 또한 반복될 수 없다. 동시에 반복되는 회심에 대하여도 말할 수 있다. 새 생활의 활동력은 세속, 부주의 관계심등을 통하여 가리워지게 된다. 그렇게되면 다시 여러번이라도 부름 받고 다시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제3절 회심의 요소
앞에서 이미 회심은 두 요소 곧 회개와 신앙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나타났다. 전자는 성화와 직접 관련되어 있고, 후자는 절대적은 아니지만 칭의와 관련되어 있다.
[1] 회개의 요소
(a) 지적요소
과거의 생활이 죄와 오염과 절망을 안고 있는 죄의 생활이었음을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b) 감정적 요소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한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
(c)결의적 요소
이 요소는 죄에서 떠나는 내적전환, ?죄와 정화를 추구하는 성향을 뜻한다.
<2> 로마 교회의 회개의 개념
로마 교히는 고해성사에서 회개의 관념을 전적으로 형식화하였다.
(a) 통 회
이것은 죄에 대한 진정힌 비애를 말한다. 이것은 생득적인 죄에 대해서가 아니고, 개인적인 과실에 대하여 슬퍼함을 말한다.
(b) 고 명
이것은 고해성사에서 신부에게 고배하는 회개이다. 회개자가 만족한 고백을 할 때, 심부는 선언하기를 하나님께서 회개자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것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c) 보 속
죄인의 행동의 회개이다. 고통스러운 일을 인내하거나 혹은 어렵고도 불유쾌한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는 회개이다.
[3] 회개의 성서적 견해
회개의 성서적 견해는 로마는 캐톨릭의 그 외형적 회개관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성서는 회개를 전적으로 내적행위, 다시 말하면 통화의 행위, 혹은 죄로 인한 비애로 간주한다. 성서는, 진정한 회개는 항상 참된 신앙을 동반한다고 말한다.
제4절 회심의 특성
[1] 회심은 칭의와 같이 하나님의 법적 행위가 아니라, 중생과 같이 도덕적이며 재차조적인 행위이다.
[2] 회심은 중생과 같이 잠재의식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의식생활에서 된다.
[3] 그것은 원리상 옛 사람을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새 사람을 옷입음을 뜻하기도 한다.
[4] 만일 우리가 “회심”이란 말을 그 특수한 의미에서만 생각하게 되면, 이것은 순간적인 개변을 가리키는 것이요, 성화와 같이 한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니다.
제5절 회심의 창시자
하나님만이 회심의 창시자이시다. 성령의 조명적이며 결실적인 감화를 통하여서만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 간접적인 사역도 있다.
그러나 중생에 있어서는 하나님만이 역사하시고 인간은 전적으로 피동적이지만, 회심에 있어서는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능력은 항상 인간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행적 사역에서 오는 것이다.
제6절 회심의 필요성
성서는 중생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가장 절대적인 언사로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회심에 대하여는 이같은 절대적인 표현은 발전되지 않는다. 이것은 어려서 죽은 아이들의 경우, 회심에 관하여는 말할 수 없고, 다만 중생에 관하여서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어른들의 경우에서는 회심이 필요하다는 것일 것이다. 회심의 요소, 곧 진정한 회개와 진정한 신앙은 전생애에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이다.
제4장 신 앙
제1절 신앙의 성서적 용어
구약 성서에는 신앙 행위를 여러 면에서 표시하는 말이 특히 셋이 있으나, 사실상 신앙을 위한 용어는 없다.“믿는다,”를 뜻하는 가장 공통적인 말은 지적요소를 강조하는 말로, 다른 사람의 증명하는 것에 대하여 참된 것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신약성서는 신앙을 위한 매우 중요한 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이말은 한 인물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 이러한 신뢰를 근거해서 그의 증거를 쉽게 받아 들이는 것.미래를 위해서 그를 의뢰하는 것 등이다. “믿는다.”란 이 공통적인 용어는 여러가지 형태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어떤 경우에서는 지식의 요소를, 또 다른 경우에서는 신뢰의 요소를 각각 강조하고 있다.
제2절 성서에서 말하는 신앙의 종류
[1] 역사적 신앙
역사적 신앙이란, 어떤 영적 목적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성서의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이 신앙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는 역사라도 받아들이는 것처럼 성서의 진리를 받아들이나 진지하게 받지 않고 실제의 관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2] 이적의 신앙
이적의 신앙이란, 이적이 자기에 의하여 또는 자기를 위하여 일으켜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개인의 확신을 말한다. 이 신앙은 구원적 신앙을 수반할 수도 있고,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로마 교회에 의하면 우리는 아직도 이 신앙을 시행하는데 보증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면에 프로테스탄트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부정한다.
[3] 일시적 신앙
이 신앙은 양심의 어떤 자극이나 애정의 분발을 수반하고 있기는 하나 중생된 마음에 뿌리를 박지 못한 종교적 진리에 관한 확신이다. 이것이 일시적 신앙이라 불리워지고 있는 것은, 영속적 신앙이 없어서 환난과 핍박의 날에 그 자체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위선적 신앙이라 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일신적 신앙은 감정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참된 구원적 신앙 참된 구원적 신앙이란 그 자리를 마음에 두고, 중생한 생활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 신앙을 말한다. 이 시낭의 의식적인 활동은 점진적으로 하나의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아가서 신앙활동에 강력한 도움이 되어 준다. 구원적 신앙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일으켜진 바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며,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실한 신뢰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제3절 신앙의 요소
[1] 지적 요소
구원적 신앙이란 단순히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까지아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된 진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한 영적동제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들 진리는 죄인의 마음 속에서 응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감정적 요소(찬동)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앙의 이 요소를 구별짓지 않는다. 이것이 “찬동”이라 불리워지는 것은, 사실은 구원적 신앙의 지식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구원적 신앙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식의 특징은 그것이 그 대상에 대한 최대의 확신을 지닌다고 하는데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찬동”이라 부른다. 진리에 대하여 인격적인 관심에서 의식하고, 그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찬동하는 것이다.
[3] 결의적 요소(신뢰)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 최고의 요소가 된다. 신앙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나, 또는 지식과 감정을 결합한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지의 문제요, 영혼이 그 대상으로 나아가서 그것을 붇잡는 영혼의 행위인 것이다. 이 제3의 요소는 구세주요, 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뢰를 의미한다.
제4절 구원적 신앙의 대상
[1] 일반적 의미의 구원적 신앙
일반적인 의미에서 구원적 신아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속에 포함되어 있는 신적 계시의 전체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연택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바로 이 의미에 있어서의 신앙에 속한다고 말한다.
[2] 특수적 의미의 구원적 신앙
성서를 하나님의 말슴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필요하나,그렇다고 이 사실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직접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앙의 특수 해위라고 보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구원적 신앙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인 것이다.
제5절 로마 캐톨릭의 신앙관
로마 캐톨릭은 신앙을 단순히 진리에 대한 찬동으로 보고, 충분한 신앙 또는 구원하는 신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사실상 신앙에 있어서 지식의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지식을 소유하고 안하고를 막론하고 진리에 대한 이 찬동은 그것이 선한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ㅅ랑으로 역사하게 될 때에만 참된 구원적 신앙이 되는 것이다.
제6절 신앙과 확신
신앙에는 항상 구원의 확신이 수반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문제가 일어 난다. 로마 캐톨릭파와 17세기의 알미나안파는, 신자는 아주 희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더우기 그들은 이러한 확신은 대체로 요구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 웨슬레주의 알미니안파, 혹은 매도디스트파는 회심이 곧 직접적인 확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그가 은혜에서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것은 메도디스트파가 일치하게 달성할 수 없었던 확신이었다. 정당한 견해에의하면, 참 신앙은 필연적으로 하나님 신뢰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은 비록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안전과 보증의 의식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확신은 기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명상함으로써, 또는 성령의 열매가 입증해 주는 참된 신앙생활의 발전에 의해서 가꾸어지는 것이다.
제5장 칭 의
제1절 “의롭게 하다”의 성서적 용어
구약성서에서 이 말들은 두 귀절을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인간속에서 이루시는 도덕적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인간에 관한 신적 선언을 정식으로 지적해 주는 말이다.
신약성서의 말도 꼭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서의 “의롭게 하다”라는 말은, 의롭게 만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의를 선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 매우 명백하다.
제2절 칭의의 본질과 특징
칭의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라 정의 할 수 있다. 칭의는 죄책을 제거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영원한 유산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의 모든 권리를 갖도록 회복시켜 준다. 칭의는 그것이 신앙에 의하여 통용되는 것이지망,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칭의는 단 한번만 일어난다. 그것은 반복되지 않으며, 또한 한과정도 아니다. 그것은 즉시로, 또는 영원히 완성된다.칭의와 성화는 다같이 그리스도의 공력이지만, 칭의의 사역은 특히 성부에게 돌려지고, 성화의 사역은 성령에게 돌려진다.
제3절 칭의의 요소
[1] 소극적 요소
칭의의소극적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기초로 해서 죄를 용서 해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또한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서의 제60문에 대한 답변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죄함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성서의 성도들이 자주 용?를 기원하여 실제로 사죄함을 받았다는 사실과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생각될런지 모른다. 이에 대한 해석은, 신자의 죄가 그 자체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죄책을 구성하여 고백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2] 적극적 요소
(a)자녀로 되는 것
칭의에서 하나님은 신자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다. 곧 신자를 자녀의 지위에 두시고 자녀의 모든 권리를 그에게 주시는 것이다. 양자로 디는 이같은 자녀의 자격은, 중생과 성화에서 오는 신자의 도덕적 자녀의 자격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b) 영생에의 자격
이 특권은 사실상 위에 포함되어 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때, 그들은 자녀의 모든 법적 권리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되는 것이다.
제4절 칭의의 영역
[1] 능동적 칭의
능동적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되어진다 하늘에서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으로 나타나시어 죄인을 그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전가된 사실에 비추어서 이롭다고 선언 하신다.
[2] 피동적 칭의
피동적 칭의는 죄인의 마음이나 양심에서 일어난다. 죄인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 칭의는 그 목적에 응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되는 무죄선방의 판결은 죄인에게 전달되어 믿음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제5절 칭의의 시간
[1] 영원으로부터 오는 칭의
구속의 계획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피택자에게 확실히 전가되었다고 하는데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서가 죄인의 칭의를 말할 때, 이것이 바로 성서의 이미하는 바라고 하는데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단순히 이상적이었던 것과 역사의 과정에서 실현되는 것을 분명히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오는 칭의
피택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미 의롭다함을 입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오는 칭의를 말하는 개혁파신학자들도 이것을 죄인의 칭의의 전체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총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오는 그의 몸(교회)의 칭의가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것이어서 죄인의 개인적 칭의와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3] 신앙으로 말미암는 칭의
성서가 이 칭의에 관하여 말할 때에느 흔히 그것은 하나님의 칭의적 은혜의 주관적 적용과 통용을 말한다. 성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라 말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그것은 흔히 칭의의 기구 혹은 기구인으로 불리워 진다. 그것은 또한 자주 통용하는 기관이라 불리워 진다.
제6절 칭의의 근거
칭의의 근거에 관하여는 로마교회와 개혁자들 사이에 매우 중대한 의견의 차이가 있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죄인은 중생에서 그 마음에 주인되는 자기 고유의 의를 기초로 하여 의롭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칭의의 참 근거는, 칭의에서 죄인에게 전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이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제7절 칭의교리에 대한 이의
[1] 성서는 죄인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으나, 칭의는 일종의 법적 가치이기 때문에 은혜를 배제한다고 말한다.
[2] 어떤 사람은 칭의를 하나님의 아무 쓸모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죄인은 사실상 의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3] 이 교리는 자주 사람을 방종하게 만든다고 한다.
제6장 성 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영적 갱신의 관념을 넣어주며, 또한 인간에게 도덕적, 영적 특질을 부여한다는 관념을 전달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적인 관념은 아니다. 그 성서의 용어들은 마음 속에 일으켜진 영적 특질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위치와 관계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성화된 인간은 원리상 생활의 죄악적 관계를 떠나서,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되다. 이러한 관계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되는 것이다.
제2절 거룩함과 성화의 성서적 개념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분리되신다고 하는 관념은 모든 불결에서, 특히 죄에서 분리된다고 하는 관념에 이르게 되었다.
다음으로 거룩함의 관념은 하나님과 더불어 특별 관계를 가지는 이물과 사물에도 적용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한 자만이 참으로 주앞에서 거룩한 것이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성화란 성령께서 죄인을 죄의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제3절 성화의 특징
[1] 성화의 창시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라나 이것은 인간이 그 과정에서 전혀 피동적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2] 성화는 칭의와 같이 하나님의 법적 행위가 아니고 도덕적, 재창조적 행위이다.
[3] 성화는 오랜 기간의 과정이어서 현세에서는 결코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4] 성화의 과정은 그것이 영혼에 관한 한, 죽을 때 완성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음 직후에 완성된다.
제4절 성화의 성질
[1]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이다.
사실상 그것은 영혼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며,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중생에서 심어진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그 거룩한 실천이 증대되는 것이다.
[2] 그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a)성화의 소극적인 면은 죄에서부터 온 인간성의 불결과 부패가 점진적으로 제거된다고 하는 여기에 있다.
(b)성화의 적극적인 면은 영혼의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그 거룩한 실천이 증진되어 생활의 새로운 과정이 일으켜 진다고 하는 여기에 있다.
[3] 그것은 전인에게 영향을 준다.
성화는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전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특별히 죽음의 위기에서 완성되며, 또한 죽은 자의 부활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성서의 교훈에 의하면, 성화는 오성, 의지, 감정 그리고 양심에 영향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다.
[4] 그것은 신자가 협력하는 사역이다.
인간이 성화의 사역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악귀와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하는 반복적인 경고에서 알 수 있다.
제5절 현세에서의 성화의 불완전성
성서는 죄없는 생활에 이른 신자의 실예를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비참한 죄에 빠져 허덕이는 실례로 언급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범죄치 않는다고 하는 요한 서신의 그진술은, 이같은 새 사람은 범죄하지 않든가, 혹은 신자는 죄에서 살지 않는다든가 어느 한쪽을 명백히 의미하는 말이다.
제6절 성서와 선한 일
[1] 선행의 성질
우리가 선행을 말할 때, 그것은 완전한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원리상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는 일이요, 또는 영적 의미에서 선한 일을뜻한다. 이 선행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외부적 일치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에 대한 의식적 순종에서도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행의 가장 가까운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2] 선행의 공로적 특징
신자의 선행은 엄밀한 의미에서 공로적이 아니다. 곧 그것은 보?에대한 정당한 요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한 일에 상을 주신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의무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가 찬동할 수 있는 일에 상을 주시기로 은혜적으로 약속한 때문인 것이다.
[3] 선행의 필요성
선행은 구원을 공로있게 하는데 필요하지도 않고 또한 구원의 피요한 조건은 더욱 아니다 성서는 선한 일을 떠나서는 구원받을수 없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선행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써 성인신자의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제7장 성도의 견인
견인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속하여, 마침내는 그것을 와성케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라 하겠다.
제2절 견인교리에 대한 증거
이 선택의 교리란, 단순히 구원의 어떤 수단이나 혹은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어떤 방법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의 목적에 대한 선택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의 효력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신자는 어떠한 때에도 은혜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제3절 견인교리에 대한 이의
견인의 교리는 거짓 평안과 태만과 방종과 부도덕으로 이끌어 간다는 비난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비난이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희가 우리에세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는 함께 거하였으려니와”(요일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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