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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예배 설교 :: 진정한 성탄 준비 (Christmas Worship Preaching)

 


제목 : 진정한 성탄 준비

말씀 : 요17:14-17

1.예수님은 생명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오늘 대강절 넷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물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되새기며 주님을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에 온전히 모셔 들임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우리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고 주님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일 먼저 주님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만약 왕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그 분이 누구신지 모른다면 어떻게 왕의 예우를 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또 만약 왕이 나에게 높은 자리라도 하나 주려고 왔는데 난 높은 자리 따위는 필요 없고 돈이나 한보따리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돈이나 지위는커녕 왕의 분노만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지 못하면 바르게 영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신 참 뜻을 알지 못하면 엉뚱한 것만 바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실망과 좌절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성인군자라고 하고, 어떤 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려고 오신 분이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경우는 건강이나 물질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정말 주시려고 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자꾸 엉뚱한 것만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어도 집안이나 거리나 상점이나 교회에 여러 가지 장식도 하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행사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힘든 이웃을 도우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정작 생명을 주려고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되 생명의 은총과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누리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당연히 성탄축하프로그램도 하고 외부장식도 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도 도우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평화도 당연히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성탄절이웃초청잔치도 하고 어려운 분들을 돕기도 하며 성탄절 헌금의 거의 전부를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희망과 위로를 주고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유일한 참 구세주로서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천배 만배 억배 중요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요10: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또 마1:21절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보십시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즉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에서 사함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인류가 이 땅에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영원토록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지식과 문명과 과학이 발달해도 이 땅에서도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더더구나 영원한 고통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대강절을 맞아 성탄절을 준비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령이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의 은총이 넘침으로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그렇게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새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유일한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 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왜곡되고 악한 것들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우리 사이에 온전한 교통이 이루어져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15절 말씀 보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여러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고 온전히 보전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 마6:13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이것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어떻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을 행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진대 어떻게 악 가운데 머물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악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은혜를 바라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왜곡되고 악한 것들을 떠나야 합니다.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누리기 위해서도 모든 악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오늘 날 많은 인생들이 이걸 몰라서 진정한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그 안에서 사랑과 선과 의와 진실가운데 살아갈때에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인데 오직 돈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믿음과 진리와 선과 의 등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소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속이고 빼앗고 훔치고 하면서 악한 방법으로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설령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할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틈이 벌어져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도 점점 틈이 벌어져 갈등과 불신과 싸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기는커녕 갈등과 불화와 상처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성탄절을 준비하며 또 오늘 성찬식과 세례식을 행하면서 생명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그 다음에는 진정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 선과 의와 진실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도 오직 주의 말씀을 따라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충만함으로 누리며 주님의 향기 발하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거룩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악을 물리치고 믿음과 사랑과 의와 선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려면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그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달콤하고 교묘한 유혹과 도전과 왜곡된 가치관을 분별하고 그걸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래야만이 우리 심령 속에 성경적 가치관이 확립되어 세상의 왜곡되고 혼돈되고 악한 것들에게 휩쓸려 다니지 않게 됩니다. 마귀의 간계를 간파하고 즉시 물리치게 됩니다. 감히 마귀 따위가 장난치지 못하게 됩니다. 설령 겁 없이 대들어도 주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에 힘쓰지 않아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와 능력을 덧입지 못하면 세상의 유혹과 핍박과 환경과 왜곡된 가치관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길만한 분별력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만연된 인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이기주의와 종교다원주의와 향락주의에 끌려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래서 그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몸과 마음과 시간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게 되고, 악을 분별하며 거부하고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달려감으로 거룩한 인생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4: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대강절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의 대부분이 미동도 안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정말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고 계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만큼 모입시다. 기도합시다. 예배드립시다해도 꿈쩍도 안한다면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또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선과 의와 진리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아가겠으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절을 준비하며 또 오늘 성찬식과 세례식을 하면서 주님이 오신 참뜻을 바르게 알고 진실로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여러분 자신이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를 마음껏 누리며 동시에 이 왜곡되고 어두운 세상에서 거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의 모습을 통하여 생명의 빛을 비춤으로 아직도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여 저들도 우리와 같이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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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성탄절예배설교 (December 2018 Christmas Worship Preaching)

 

 

 
제목 : 기쁨의 성탄절
말씀 : 눅 2:8-14


요즘 우리 사는 세상에 너무 슬프고 아픈 소식이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사상 최대의 홍수가 나서 5만명 이상이 희생될 것 같다고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여객선이 침몰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종교분쟁이 일어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엊그제에는 영국에서 우리 대한항공 화물기가 폭발과 함께 추락하여 기장과 승무원등 4명이 죽었습니다. 21세기를 즐겁게 맞이하려는 우리들에게 이런 소식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슬프고 아픈 소식들 틈에서 21세기에 희망의 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8절에 보면 한 밤중에 밖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20세기 마지막 성탄절입니다. 21세기를 닷새 앞둔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험악하고 불안한 소식들을 다 잊게 하고 새로운 시대의 새 희망을 주시기 위해 구주 성탄의 기쁜 소식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이 시간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에게 참 빛으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천년의 희망이 넘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께서 탄생하신 소식"은 온 우주에 가장 큰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목자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 그 외에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기뻐 찬양했으며, 하늘의 천사들까지 기쁨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merry christmas"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20세기 마지막 성탄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에게 첫 번째 성탄절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탄의 기쁨은 어떤 것입니까? 첫 번째 성탄을 맞이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진정한 성탄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목자들의 기쁨


8절-1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000년 전 당시 구세주의 탄생의 첫 증인이 된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이 거룩한 일에 목자들이 그것도 첫 번째로 참여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신뢰받지 못했던 계층의 하나가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신뢰받지 못했다기보다는 멸시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직업 속성상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의무를 행할 수도 없었고, 또 이리저리 떠돌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던 사람들로 인식이 되어 법정에서 증인 노릇 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그렇게도 멸시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구세주 탄생의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멸시받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존귀한 자리에 두시기를 좋아하십니다. 미련한 자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강한 자를 놀라게 하십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택하셔서 권세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대로 된 권리 하나 없는 목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탄생하신 것을 증거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온 세상이 영적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웠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던 서기관들조차도 구세주의 오심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겠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소망 없는 세상 한 구석에서 멸시받고 천대받는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구세주를 집적 목격하게 함으로 세상의 모든 유력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부끄러운 자들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목자들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 이 말씀은 "오늘(today)구주가 나셨으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약속의 성취됨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소식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소식입니다. 멸시가 사라지고 고통의 날이 끝나고 흑암이 물러가고 밝은 빛 속에서 새 삶이 시작된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기쁨의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소식을 목자들이 들었고, 2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그들이 들은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영접한 기쁨에 찬송과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불편했던 모든 관계가 새롭게 될 때 얻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맛보고 하늘의 평안을 얻었을 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어떠한 염려나 근심이라도 초월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쁨의 일 번지입니다. 그분만 있으면 즐겁습니다. 그분만 생각하며 기쁨이 넘칩니다. 빼앗길 수 없는 기쁨 그분 안에서 샘솟는 기쁨이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누리는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우리의 구세주로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들에게도 목자들과 동일한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2. 마리아의 기쁨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그는 요셉이라고 하는 청년과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정혼을 하였다는 것은 함께 살지는 않지만 완전한 부부가 되기로 약속된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율법에 따라 돌로 쳐서 죽이는 무서운 형벌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하는 말이 마리아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가 바로 예수라고 했습니다. 처녀에게 이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분명히 나쁜 소식입니다. 지금 당장에 보기에는 엄청난 비극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온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기쁨은 어떤 것입니까?


①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기쁨입니다. 누가복음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선택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는 한 이름 없는 처녀를 선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도 똑똑한 사람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갈릴리의 작은 동네 나사렛에 천사를 보내셨는지 우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해 한 여자를 선택하셨는데 그 여인이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를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 일로 모진 수모와 멸시를 받을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 적인 선택의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마리아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바로 이 은혜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거나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원수 마귀가 내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듣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어쩌다가 나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또 어떻게 내 마음이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생겼는지,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기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을 소유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마리아가 기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하는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고 선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소망이나 바람이 아니라 지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들의 생애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그 엄청난 과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밀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지금 마리아에게 함께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가 그 힘든 상황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비밀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비밀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마리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왜 우리에게 성탄절이 기쁨의 절기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여러분과 나의 삶에 참 기쁨이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동방 박사들의 기쁨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하고 경배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동방의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페르시아(이란)아나 아니면 인도 같은 이방 나라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하늘의 이상한 기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큰 빛 하나가 나타나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분명히 만왕의 왕이 나실 징조라고 깨닫고 왕을 만나면 바치려고 몰약과 황금과 유향을 선물로 준비하고 급히 그 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별을 따라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한 아이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것을 보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장 10-1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의 기쁨은 참 빛을 발견한 기쁨이었습니다. 어둡고 암울한 세상, 당시 로마의 거대한 세력이 마구 세상을 짓밟고 있어 로마에 식민지가 된 나라마다 배고픔과 가난으로 힘겨운 삶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지역이 모두 그랬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암울한 역사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어디에서 그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동방의 박사들이 그 희망의 빛을 찾은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은 1장 9절부터 읽겠습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참 빛 곧 세상에 비추는 빛이 있었으니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 어둡고 칙칙한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열어 가실 영원한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과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세상의 정부도 로마도 희망이 없으나 온 세상을 비추는 큰 빛을 따라 달려와 만난 아기 예수가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보화를 드려 왕 되심을 천하에 선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 생명의 주님,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이제껏 세상에서 누려보지 못한 엄청난 희망이 열려질 것이며, 동시에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그러면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목자들과 마리아와 동방박사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은 그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늘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그야말로 기쁜 성탄절입니다. 이 기쁨이 영원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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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25일 성탄절예배 설교 (Christmas Worship Preaching) 
 

 


제목 :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

말씀 : 요1:9-14

1.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이 거룩하고 복된 성탄절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함께 인사 나누시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과 사랑과 은혜와 평강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세상의 그 어떤 날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기쁜 날이고, 가장 복된 날이고, 가장 거룩한 날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사건도 감히 갖다 댈 수 없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도대체 성탄절이 어떤 날이기에 그렇게도 위대하고 복되고 기쁜 날입니까? 물론 너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주님 오신 참뜻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때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 9절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말씀그대로 주님은 이땅에 참빛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이 뭡니까? 말할 것도 없이 빛은 생명, 은혜, 기쁨, 사랑, 희망, 소망, 평안 등의 모든 긍정적인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어둠은 죽음, 미움, 절망, 불안, 염려 등등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주님을 참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빛은 진짜 완전한 빛이라는 뜻입니다. 진짜 빛이란 영적, 정신적, 물리적, 질적으로 영원히 완전한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고 은혜를 주는 빛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영적, 정신적, 물리적, 질적으로 완전고도 영원하게 생명을 주고 기쁨을 주고 은혜를 주는 유일한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참빛이십낟. 세상에 많은 빛이 있지만 그 어떤 빛도 이런 완전한 참빛이 없습니다. 태양도 좋은 빛이긴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을 소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나 학문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문명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도 인간의 정신적, 이성적인 무지와 어둠을 깨우쳐 주는 빛이긴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서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물리적, 정신적, 영적인 빛을 100% 완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빛을 받으면 모든 어둠이 걷히고 참된 진리를 알게 되고 영혼이 살아나고 마음이 살아나고 육신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빛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성탄예배를 드리면서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빛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을 더욱 온전히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빛이 가져다주는 그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은혜와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그렇다면 여러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참 빛이란 어떤 빛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은 생명의 은총을 가져다주는 빛입니다. 먼저 요8: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므로 이 빛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든 자연인은 누구나 죄와 무지와 어둠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고 어둠속에 방황하다가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두운 영혼 속에 예수님의 빛이 임하는 순간 사태는 완전히 반전됩니다. 그 완전한 생명의 빛, 은혜의 빛이 임하는 순간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죄와 더럽고 추한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죄를 보게 되고, 무지를 알게 되고, 인생의 출발을 알게 되고, 종착역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가야할 길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과 권세로써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와 무지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던 천국이 보이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더욱 온전히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그 생명의 빛을 더욱 듬뿍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어둡고 칙칙한 것들을 다 몰아내고 더욱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소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으면 죄와 무지속에 있던 영혼이 살아나 영광의 나라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과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류의 소망이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합니까? 왜 이만큼 잘 살게 되었는데도 자꾸만 힘들다, 어렵다, 못살겠다고 합니까? 왜 자꾸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합니까? 왜 있는 자들이나 없는 자들이나 맨날 그렇게 싸우고 빼앗고 속이고 죽이고 합니까?

간단합니다. 진짜 소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 즐거움을 소망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많이 가져야 행복할 줄로 압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많이 더 크게 더 좋게 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좇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얻기는 얻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1인당 국민소득 이만불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약50년전만해도 국민소득이 몇백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보다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졌습니까? 국민소득 천불 할 때보다 이만불하는 하는 이 시대에 왜 오히려 범죄율과 자살률과 이혼율이 훨씬 높아졌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결코 우리의 소망이나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좋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동물이라면 몰라도 전인격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것들이 결코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가 그런 썩어 없어질 것들에 소망을 둘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기쁨과 은혜를 보장해 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완전한 소망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썩지 않고 변치않는 생명과 은혜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완전하고도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보장받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그 나라를 알고 누리며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도 완전한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집이나 이런 것들의 많고 적음이나 크고 작음은 관계없습니다. 언제나 소망과 기쁨과 평안과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1:1절에서는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완전한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어둡고 절망적인 것들을 다 이기고 소망과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치유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 인생의 완전한 치유의 빛이십니다. 죄와 무지와 어둠속에 있는 세상에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온갖 종류의 질병과 상처와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질병과 상처와 고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름대로 많은 질병과 상처와 고통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학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해도 결코 인류는 질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다며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 가축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관계당국을 긴장시키고 많은 축산 농가에게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암을 정복하는 일도 아직은 요원하고 심지어 감기 바이러스에는 약도 없습니다. 정신과적인 병은 여간해서 고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영적인 질병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그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치유의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강력한 치유의 빛을 받으면 모든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영적 질병과 상처와 고통이 다 치유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세포가 완전히 파괴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명령 한 마디로 치유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귀먹은 자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근 이만명이 되는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영적으로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어둠과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 주시는 완전한 치유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4:2절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인류를 완전히 치유해주셔서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처럼 마음껏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기뻐 춤추며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인격의 치유자이십니다. 그분앞에서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는 물러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질병과 약한 것들과 어둠과 상처와 고통은 다 물러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완전하게 물러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는 완전하게 100% 치유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절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온전히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그 온전한 치유의 빛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있는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과 상처와 약한 것들과 부정적인 것들이 온전히 치유되어 더욱 생명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사랑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요, 소망의 빛이요, 치유의 빛이심과 동시에 사랑의 빛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해져서 우리도 진정한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갈등과 분쟁과 불화 속에 미워하고 증오하고 분개하며 살아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와 무지 속에서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어찌하든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대해서도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을 위한 도구로 여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역시도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화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면 주님의 사랑의 빛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빛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면 우리의 심령속에 자리잡고 있는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들과 원망과 미움과 증오와 불평이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세상 속에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3:3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감사하고 기쁘고 복된 성탄절을 맞이해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소망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치유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온전히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속에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분명히 반드시 여러분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속에 생명의 은총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소망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모든 영적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어둠과 약함과 죄악들을 물리치고 승리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생명의 빛, 소망의 빛, 치유의 빛, 사랑의 빛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때에 우리 모두가 진정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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