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주일 수요저녁예배설교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제목/능력이 있는 기도는  

성경/빌1:3-5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 빌립보서를 살펴보고 있는데 빌립보서는 두 가지의 별칭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썼다 하여 “옥중서신”이라는 것과 그 주제가 “기뻐하라”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하여 “기쁨의 서신”으로 불리 웁니다. 신앙의 능력, 믿음의 능력은 바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에 있음을 빌립보서가 보여줍니다. 그 기쁨의 뿌리가 은혜와 평강임을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기도”라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계시록 5:8, 8:3을 보면 기도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라고 합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8:3)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능력 일 뿐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는 무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참 많은 부분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무기력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기도로 만들 수 있을까?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능력 있는 기도는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한 기도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이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서신서에서 갈라디아서를 제외하고는 서두에 인사말을 하면서 반드시 기록하는 것이 감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 3절“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인데,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향기는 감사의 향기입니다. 이 감사의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것들이 주어진 뒤에 하는 기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감사의 기도는 어떤 상황이든 관계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더불어 바울은 빌립보서4:6에서 반드시 감사로 기도할 것을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다니엘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사람이나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굴에 넣을 것이란 (다리오) 왕의 어인에 찍힌 금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도 여전히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그렇다고 사자 굴에서 벗어났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감사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막아 버리십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모든 상황들이 180도 바뀌거나, 문제들이 없어지고, 대적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의 기도는 나의 대적이 나를 넘어뜨릴 능력이 있어도 어찌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감사의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요? 내가 나를 너무 잘 아니까? 하지만 믿음의 눈을 나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면 감사의 내용들은 참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합니다.

 

 

▶▶ 이러한 감사의 기도를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들을 자꾸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어의 Think와 Thank의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들을 자꾸 생각해 냄으로 감사의 기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을 방황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요단강 가운데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길갈에 세우라고 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요단강에 건너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만드시는 것 아닙니까?

 

 

▶▶ 더불어 감사의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실 때에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 12바구니가 남은 다음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누어 주라고 하심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도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

 

 

둘째로 능력 있는 기도는 기쁨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능력 일 뿐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는 무기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기쁨으로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절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기쁨으로 간구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즐거움으로 한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하기 힘든 노동중의 노동입니다. 그것만큼 힘든 일도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라고 하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기도는 기쁨으로 기도할 때 나타납니다.

 

 

▶ 사도행전 16장에서 사도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행16:25) 합니다. 어떻게 기도하며, 찬미했을까요? 억울해하며? 가슴을 치고 분해하며? 아마도 그들은 기쁨으로 기도하며 찬미했을 것입니다. 매를 맞았기 때문에 온 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예수님 때문에 당한 고난은 기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 -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나를 믿어준 사건)

 

 

바울과 실라가 기쁨으로 기도한 기도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막았던 옥문이 열리고, 손과 발을 묶었던 착고가 풀려지는 기적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우리를 붙잡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열리고 풀려질 것을 믿습니다.

 

 

● 말씀 정리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참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 속에서 능력 있는 기도, 곧 응답받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본문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먼저는 감사가 있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감사의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고. 주실 줄로 믿고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능력있는 기도는 기쁨으로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즐거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능력있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늘 감사하며, 늘 기뻐하며 항상 기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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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저녁예배설교 예수님의 십자가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

마가복음 15장 11∼15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헤드린은 예수님께 신성모독죄를 적용해 처형했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고집한 산헤드린의 속사정을 살펴봅시다.

마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산헤드린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1절). 산헤드린의 주된 구성원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입니다.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운 주동자라면 가룟 유다는 결정적인 공모자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한통속이 된 것은 그들의 속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룟 유다를 도적이라 했습니다(요12:6).

산헤드린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위선자라 할 수 있습니다(마23:13). 재판장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죽일 만한 그 어떤 죄, 더구나 십자가에 처형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고 놓아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헤드린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요구를 따라야 했습니다. 산헤드린의 목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을까요.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대접 받고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고, 부자들과는 억지로라도 친구가 되려 했어도 가난한 자들과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했습니다.

누가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뿐인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눅10장).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위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약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할 저들은 오히려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주님은 어디를 가든 병자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한센병 환자도, 이방인도, 죄인이라고 비난받는 이들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유대인도 사마리안도 심지어 로마인도 찾아가 만나주시고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 곁은 언제나 인산인해였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감사하고 감탄하며 찬송하고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주님께서 감싸주시는 따스함은 저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산헤드린이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점점 커가는 데 자신들은 작아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산헤드린은 군중을 충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완결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19:30)입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 부활입니다. 2017년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소망하면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한 주 되길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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