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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WCC

 

- 문병호 목사,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 원고는 2013년 합신총동문회수련회 특강 원고이며 “우리는 왜 WCC를 반대하는가?”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합니다. 1. 한국교회와 WCC. 2. 아홉 차례 총회를 중심으로 본 WCC의 정체성. 3. WCC 에큐메니칼 신학. 4. WCC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허구. 5. WCC의 가시적, 기구적 교회일치론 비판. / 편집자 주>

 

1. 제10차 부산 총회의 실상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10월 말부터 약 열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사 42:1-4)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부산 총회는 140개국 349회원 교회에 속한 5,0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모이는 명실상부한 기독교의 유엔총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임에서 150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차기총회 때까지 수행할 주요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마당’이라고 부르는 몇몇 행사들을 선보일 것이다.

 

 

부산 총회는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지구촌의 생태 문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극복할 경제정의 실현 문제, 새로운 동서간의 냉전 기류를 극복할 군비축소 문제 등을 다룰 것이다. 이러한 취지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의의와 준비”라는 그들의 문건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WCC에서는 폭력극복 10년 운동에 연이어 가난퇴치와 기후변화를 위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자는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부산총회는 이 새로운 운동의 발전과 함께 하나님이 주인이신 생명중심의 문명(Life-giving civilization)을 건설하기 위한 선교적 행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중심의 문명은 우주공동체를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의 생명공동체로 인식하는 아시아적 사고로 신학을 새롭게 조명하고 실천하는 기본 방향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부산총회가 주제로 삼고 있는 “생명의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명’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폭력을 뿌리뽑고, 가난을 퇴치하며, 기후변화를 되돌려 지구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능력에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롬 14:17; 고전 4:20).

 

 

그들이 말하고 있는 “우주공동체를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의 생명공동체로 인식하는 아시아적 사고”는 무엇인가? 혹시 그것이 서로간의 원한을 풀고 함께 살아가자는 일부 토속 종교의 상생해원(相生解寃) 사상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관계적이고 유기적인 상생”은 무엇인가? 혹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동양적 범신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WCC는 제10차 총회의 주제와 관련하여 2012년 5월 22-25일 ‘부산 커뮤니케이션 선언문’(Busan Communication Statement)을 채택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사역 전부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로 여긴다. 그리고 복음을 “커뮤니케이션(소통)”으로, 복음전파자를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전달자)”로 정의하고, 생명의 핵심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선언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창조는 커뮤니케이션의 행위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커뮤니케이션은 창조의 행위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모든 생명체들은 무수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세포들이야말로 자기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다. 동아시아와 여러 토착 민족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전체이자, 서로 연관된 하나의 유기체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우리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생명의 핵심인 것과 인간들은 모든 창조물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낯설고 급진적인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WCC는 “동아시아와 여러 토착 민족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거론한다. 여기에는 창조의 하나님도, 생명의 하나님도 없다. 다만 ‘세포’와 ‘유기체’로 표현된 자연이 있을 뿐이다. 성경은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가르치는데(요 1:4), 어찌 그들은 피조물의 ‘커뮤니케이션’이 생명의 핵심이라고 말하는가?

 

부산 총회가 다룰 주제인 “생명의 하나님”은 단지 자연적인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생명을 돌보시는 분일 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특별한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구원의 영생과는 무관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철학적 개념들인 ‘통전성’(通典性, wholeness)과 ‘공동 선’(common good)을 거론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의 방식을 따르는 커뮤니케이션이란 통전성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빌립보 2:7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을 비우셔서,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이 말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섬기셨으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 고난 받는 이들, 차별 받고, 연약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편드셨다는 뜻이다. 정의를 위한 의사소통자들은 자기 자신을 비워 복음의 종으로 행동할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을 뜻한다 하더라도.

 

WCC는 예수를 무리의 지도자로, 그 무리를 억압에 반항하여 일어나는 민중으로, 지도자와 민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복음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을 그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과연 여기에서 아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생명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WCC는 부산에서 총회를 열기로 결정하면서 그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교회가 “타종교와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을 해 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과연 이러한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가? 한국교회의 제일 특성은 일체 타협 없이 십자가의 도만을 믿는 성도의 믿음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부산 개최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교회와 오순절 교회가 공존하며 협력적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실상 개혁주의 보수신앙에 바로 서 있는 많은 한국교인들은 오순절 신앙을 오히려 거부해 오지 않았던가?

 

대다수 한국교회 성도들은 다른 신을 멀리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인정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굳게 믿는다(고전 1:18, 2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전혀 오류가 없음을 믿는다. 그리하여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WCC는 한국교회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버리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있는 몇몇 국내 회원교단들이 성경적인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정서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WCC는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것들을 부산 총회를 통하여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다. 물론 한국교회의 정서를 고려하여 어떤 것은 아예 감추고 어떤 것은 덜 드러내려고 하겠지만, WCC 본래의 색깔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일회적 행사와 의식(儀式)에 미혹되지 말고, 예리한 시각을 갖추어 모호한 언어에 숨어있는 그들의 사상을 꿰뚫어보도록 해야 한다.

 

2. WCC를 반대하는 한국교회의 입장

 

WCC는 처음에 147개 회원교회들로 출발했으며 현재 8개 권역으로(유럽, 아프리카, 북미, 아시아, 중동, 남미, 카리브지역, 태평양 지역) 나뉜 140개국 349개 교단에 속한 5억 7천만의 회원들을 두고 있는 초대형 단체이다. WCC에는 정교회를 비롯해서 성공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연합교회, 오순절 교회 등 20개 이상의 다양한 교파들이 회원교회로 참여하고 있다. 그 중 정교회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교회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속한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가입했다. NCCK에 속한 구세군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정교회한국대교구는 WCC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회원으로 가입은 하지 않고 있다.

 

WCC 문제는 한국교회 장로교 교단 분열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찬성하는 측과, 51인 신앙동지회를 중심으로 한 이를 반대하는 측의 대립으로 인하여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교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되었다. 합동측은 WCC가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단일한 교회를 추구하고,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며, 특정 정치 이념에 빠져있다는 사실 등을 들어서 반대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제44회 총회(1959년, 대전중앙교회-승동교회)에서 “WCC와 그 노선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우리 교회의 거룩함과 또 그리스도의 합일의 속성을 저해함을 확인하였음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이에 WCC에 항구히 탈퇴하고 그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계치 않기로 함을 총회에 선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45회 총회(1960년, 승동교회)에서는 “WCC를 탈퇴하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폐하고”라면서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교단의 목사들이 “WCC 및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고 위태로운 것”이라고 서약하게 한 후 목회하게 하였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 당시 보수신학을 대표했던 죽산 박형룡 박사는 WCC를 “자유주의 광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무분별하게 사회복음을 끌어들이고 경계를 넘어서 타종교와의 교통을 추구한다고 비판하였다. 죽산은 교회가 아닌 세속적 기구를 통하여 교회의 연합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비성경적이라고 간파하고 WCC가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하나 됨이 아니라 하나의 모양내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WCC 제10차 총회의 부산 개최가 결정되면서 한국교회에는 다시금 이 기구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의 회오리가 일고 있다. 행사를 유치한 측에서는 이를 한국교회 전체가 경사로 여길 “기독교 올림픽”이라고 자축하고 있으나, 반대편에서는 WCC 자체를 순수한 기독교단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부산 유치를 몇몇 교단의 합작품 정도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이 시점에 한국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더욱 굳건하게 세우고 이를 계기로 교회의 진정한 연합과 부흥을 도모하고자 “WCC대책위원회”(위원장 서기행 목사)를 구성해서 중앙위원회를 두고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었다.

 

그 결실로 2010년과 2011년에 「WCC 신학 비판」과 「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을 출판하여 총회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2012년 총회를 통하여 「‘교회의 하나 됨’과 ‘교리의 하나임.’ WCC의 ‘비성경적,’ ‘반교리적’ 에큐메니즘 비판: 정통 개혁주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라는 제목의 책과 이를 쉽게 풀어 쓴 본서를 함께 배포할 계획에 있다.

 

본 대책위원회가 주도하여 2010년 1월 25일에 19개 교단이 서울 앰배서더 호텔에 모여서 채택한 다음의 결의문은 한국교회 전반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함께 동참한 교단은 다음과 같다: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고려), 예장(합신), 예장(대신), 기성, 예성, 예장(웨신), 예장(개혁국제), 기침, 예감, 예장(재건), 예장(합동중앙), 예장(합동진리), 예장(고려개혁), 예장(합동총신), 예장(합동동신), 예장(보수합동), 예장(합동보수).

 

1. 우리는 오직 성경, 오직 예수, 믿음만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진리라고 굳게 믿으며, 한국교회 보수 교단들은 힘을 합해 공동으로 한국교회 정체성을 사수하며, 한국교회를 보호할 것을 다짐한다.

 

2. 우리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는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본주의 신앙이므로 이를 단호히 배격하고, 초혼제 등 무당굿을 신앙의 행위로 정당화하며, 이를 용납하는 그 어떠한 단체나 기관과의 연합도 단호히 거부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3. 우리는 한국교회 극히 소수의 교파(NCCK)가 참여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 개최를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유치하는 대회로 과장 보도하고, 이를 한국교회 올림픽이라고 선전하는 것에 매우 유감을 표하며, 자제해 줄 것을 주최 측과 언론 등에게 엄중히 주문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말씀에 집중해서 교회를 회복하자는 소망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것을 거스르는 WCC 부산 총회가 세속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를 확산시켜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와 같이 몰락의 길에 접어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WCC 총회의 부산 유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WCC의 과거 행적이나 교리적인 성향이 비성경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반면에 유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시대적, 문화적, 인류적 필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WCC 가입 문제로 한국교회는 교단이 분리되는 큰 아픔을 이미 경험하였다. 금번 부산 총회 유치로 그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3. 마치는 말

 

에큐메니즘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교리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만 구현될 수 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모양과 다름없다.

 

‘에큐메니즘’(ecumenism)은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나온 말로서 헬라어 ‘코스모스’(kosmos)와 의미가 통한다. 그것은 ‘우주’ 혹은 ‘전 세계’를 뜻하는 공간적 개념뿐만 아니라 ‘진리’ 혹은 ‘질서’를 뜻하는 원리적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말뜻에 비추어 본다면, 에큐메니즘 혹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진리를 떠나서는 논의될 수도, 추구될 수도 없다.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말씀의 진리에 서서 하나님의 시대적 섭리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대다수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경무오(聖經無誤)를 믿고 참 교리의 터 위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WCC는 신학적, 신앙적 모호성에 물든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순수한 열심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입버릇 같이 ‘WCC 반대자들은 잘 몰라서 그럴 테니까 직접 와서 체험해 보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WCC의 실체를 바로 알게 되면 될수록 더욱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교회가 WCC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 기구가 성경의 진리에 바로 서 있지 못함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WCC 문제는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문제이다. 이를 먼저 해결하지 않은 채 그저 와보라고 재촉만 하고 그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마치 분파주의나 되는 듯이 매도하는 것 자체가 진리와는 무관한 WCC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들은 먼저 주님의 다음 말씀을 잘 새겨보고 자신의 입장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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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타종교 선교정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

NCCK1) 신학노선을 중심으로

소윤정 서울기독대학교

I. 들어가는 말

2010년 8월 31일 스위스 제네바 에큐메니칼센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2) (WCC) 중앙위원회가 7년마다 열리는 '2013년 WCC 10차 세계총회’의 개최지를 부산으로 결정하자, 한국 교회는 크게 환호하는 그룹과 크게 우려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자명한 입장을 포명하고 있다.

세계 110여 개국 350여개 개신교회의 대표들 5,000여 명이 부산 벡스코에 모여들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세계 속에서 한국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일부 교단은 일찍부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으나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신', '예장백석'등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교단들은 한국교회의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한국교회에 종교다원주의가 만연해지고 혼합주의가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다각도에서 WCC 총회를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010년 5월 31일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을 비롯한 160개 보수주의 교단들과 28개 보수적인 선교단체들이 연합하여 'WCC 총회유치 반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2013년 WCC 부산 총회 개최를 저지하기로 결의한 후 결의문과3) 성명서를4) 발표하였다.5)

그리고 2010년 8월 31일 WCC 부산 총회유치가 결정나자 보수성향의 한기총은 반대입장을 명확히 하고 가시적 활동을 펼치기 위해 최근 범교단적인 '한국기독교 WCC 대책위원회(위원장 홍재철, 이하 대책위)'를 구성했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복음주의적 성격이 강한 4개 교단을 중심으로 연합해 만들어진 대책위는 얼마 전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대책위는 WCC 신학의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일치주의, 신앙고백 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 등을 10가지 반대이유로 들었다.6)

이미 1959년 WCC가입 문제로 한국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되고, 이어서 1960년 대한예수교성결교회가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체험했다. 무엇보다도 WCC가 선교적 차원에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타종교를 선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1963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선교사파송을 중지한 것은 한국교회의 분열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WCC를 반대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에 필자는 WCC의 타종교 선교정책에 관하여 NCCK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II. WCC의 타종교 선교정책

1. ‘모라토리움’ 선언

1973년 방콕 선교대회는 ‘모라토리움(Moratorium)’이라는 선교정책을 내놓은 첫 번째 선교대회이다. 1972년 12월 29일부터 1973년 1월 9일까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96개국 330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CWME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세계선교와전도위위원회)7) 제2차 회의가 열렸다.

특별히 1973년 방콕대회의 명칭은 “오늘의 구원에 관한 세계대회(World Conference on Salvation Today)”였다.8) 이는 시대적 상황이 필요로 하는 교회론과 선교론에 따른 사회구원을 강조한 대회였다.

1973년 방콕대회의 주제 선정에 있어서 이미 1971년 토마스 위서(Thomas Wieser)에 의하여 발표된 논문 “오늘날의 구원체험(The Experience of Salvation Today)”에서 토마스는 성경과 다른 종교들의 전통들을 인용하면서 교회의 구원 기능적 역할은 오늘날 구원의 매개체 중 단지 한 집단으로써 이해된다고 하였다.9)

이처럼 1973년 방콕 선교대회의 ‘구원’개념은 1971년 토마스 위서에 의해 재 정의된 사회적 구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적 상황만을 중시한 비복음적 구원관인 것이다.

비록 방콕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개인의 회심과 교회의 성장, 교회의 다양성 속의 일치성이 강조되었지만 ‘모라토리움’ 선교정책을 내놓은 배경 또한 ‘바르바도스(Barbados)’섬에서의 인디언 해방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3년 방콕대회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구원관을 제시하였다.10)

1972년 “중국혁명가운데 나타난 구원관 (Salvation in the Chinese Revolution)”등 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콕대회가 이야기 하고 있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이 아닌 무비판적 상황화에 근거한 ‘구원’이었다.

그러므로 방콕대회가 제시하고 있는 ‘구원’은 전혀 비성경적이며 인본주의적 인간화를 위한 것 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는 인간화를 소망하고 있지만 참다운 인간화는 신본주의적 구원의 결과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11)

1952년부터 WCC내에서 팽창된 새로운 선교사상(Missio Dei)아래 선교비를 해방운동보조비나 제3세계 유학생 교육비등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선교사 파송과 후원을 위한 선교비 지원을 중단한 것이 ‘모라토리움’이다.12) 1971년 1월 ‘바르바도스’섬에서 인디언 해방을 목표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이들은 선교에 대하여 “식민주의 이념이 종교적 가면을 쓰고 인디언 문화를 배척하고, 인디언을 선교 대상으로 굴복시키고 과소평가하며, 선교사들은 오히려 물질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자기를 실현하고, 식민주의를 행했다.”13)는 내용으로 ‘바르바도스’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하여 1973년 방콕 대회에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여 피선교 교회들의 우위성과 동질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선교비 및 선교사 보내기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1973년 방콕대회에서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배경으로 우리는 남미의 해방신학적 배경을 간과 할 수 없다. 해방신학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밝혀야 할 것이 ‘해방’이란 무엇인가이다.

해방신학적 범주에서 ‘해방’이란 전인과 만인의 포괄적 해방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외됨이 없이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서 모든 차원의 억압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14)

여기서 ‘해방’이란 개념은 성경과 기독교 교회가 전통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구원관과 동떨어진 상황 중심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가 해방 개념 또는 해방 운동에 대한 세 가지 차원을 정의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구티에레즈가 정의한 첫 번째 단계의 해방은 압제받는 대중과 사회계급의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써 강대국의 제국주의적인 지배와 그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단계의 해방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인간을 자기 운명을 의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써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인간성, 그리고 질적으로 변혁된 사회를 추구하는 노력의 주체라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해방’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불의와 압제와 근본적 죄로부터 해방되므로 이기심을 극복하고 참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이웃과 진정으로 교제할 수 있게 하는 의미로서의 해방을 뜻한다.15)

그러나 구티에레즈가 정의하고 있는 세 번째 단계의 성경적 ‘해방’이란 구티에레즈가 전제하고 있는 ‘죄’의 개념과 성경적 ‘죄’의 개념이 다름을 이해할 때 구티에레즈가 정의 하고 있는 ‘해방’이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신학 태동의 배경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분석의 이론적 도구와 역사 철학으로써 해방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 억압자와 피억압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석했다. 해방 신학은 현실 분석을 통해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도입했다.

해방 신학이 이분법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계급 투쟁이나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인정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었다.16)

마르크스는 인간이 본래 악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우리는 악하게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인류의 악은 계급 투쟁에 의해서 형성된 속박적인 사회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을 괴롭히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계급 투쟁이 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계급 투쟁은 인간이 서로에게 과하는 모든 살인, 원한, 증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범죄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17) 마르크스의 첫 번째 핵심 이론은, 모든 사회는 계급 투쟁에 의해서 얽혀 있으며, 이 계급 투쟁이 인간 죄악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해방신학의 정의를 내려보면 다음과 같다. 해방신학은 197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치, 경제적인 자유를 박탈당한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신학이론이다.

전통신학이 개인의 영혼구원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보고 있는데 반하여, 해방신학자들은 현실사회를 조직적인 억압사회로 규정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말한다.18)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와 제3세계 나라들에서 발생한 운동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준거점으로 삼는 신학운동이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제3세계의 빈곤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신학적 과제의 새로운 급진주의적 접근법으로써, 억압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그들의 투쟁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신학이다.19)

이처럼 해방신학,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WCC는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7년 동안 약 250만 불을 ANC, SWAPO, PAC20)와 같은 반백인통치 투쟁단체들에게 지급하였고, 전세계 30개국의 100개 이상 기관에 모두 700만불을 지급하였다.21) 원

조를 받은 나라들과 단체들은 마르크스주의 영향권 아래 있는 행동주의 단체들이었으며 이막대한 재정은 WCC의 예산과 후원기금과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 결정한 ‘모라토리움’의 결과로 축적된 선교비로 지불된 것이다.22)

2013년 제10차 WCC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사42:1-4)” 이다.23) 우리는 WCC의 지난역사와 신학적 입장을 고려하여 2013년 WCC총회가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분명한 입장규명이 필요하다.

해방신학적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선교사파송과 지원을 중단했던 WCC가 교회일치와 연합을 앞세워1910년 에딘버러에서 시발된 순수 교회연합운동인 에큐메니칼 정신을 계승하고자 나선다는 것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적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많은 복음주의적 교단들이 우려의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주제선정과 관련하여 중앙위원들은 ‘정의’ ‘평화’ ‘생명’ ‘일치’를 WCC 총회 주제에 넣기 위해 다양한 제안을 내놨다.

필리핀의 한 중앙위원은 “WCC가 설립된 1948년부터 지금까지 총회 주제에 정의나 평화란 이름이 사용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올라프 트베이트 WCC 총무가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됨으로의 부르심”이라고 중재해 합의를 이끌었다.

또한 총회 주제와 관련해 WCC 중앙위원이자 기획위원인 시리아정교회 소속 모르 로함 교부는 “이번 주제는 전 세계와 관련된 것”이라며 “이 주제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까지 다양하게 읽혀질 것”이라고 말했다.24) 이번 WCC총회 주제선정에서 중앙위원들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정의와 평화를 통한 연합과 하나됨”이 2013년 제10차 WCC 총회의 목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주제선정과 관련하여 다루어진 내용들과 언급들을 살펴보면 WCC의 연합정신은 지금까지 WCC가 추구해왔던 사회적 ‘교회연합’으로써2010년 에딘버러에서 주창된 순수 교회연합정신의 범주를 넘어 사회연합적 성격임이 확실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분열을 부산 총회 성공희생 제물로”25)라는 낙관적인 한국교회의 대응은 실로 내실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가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2013년 WCC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함으로 한국교회의 복음의 능력을 WCC에 전하고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설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 있으며, 또 다른 입장으로는 이미 결정된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하여 번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회개최를 방해할 수는 없으나 대회참가는 거부하겠다는 입장이 복음주의 내에서 정리되지 못 한 채 한국교회의 내적반응으로 보고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NCCK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단체로써 WCC신학의 문제점들을 간과하고 성공적인 대회를 위한 조직구성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장 백석의 경우에는 “WCC 부산총회 비판적 지지”를 공개 표명하고 나섰는데, 장종현 백석학원 설립자는 “한국교회는 WCC가 주도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개인구원을 약화시킨 사회복음주의,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란 원리의 포기와 인본주의 성경관과 각종 비평학설의 수용, 성찬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이해의 포기, 이신칭의 교리의 로마 가톨릭적 이해, 선교무용론에 대한 혐의 등에서 벗어나도록 개혁을 유도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26)

2. “대화” 프로그램

WCC의 종교다원주의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1971년 사마르타에 의하여 시행된 “Dialogue Program” 이다.27)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는 1928년 폴(Paul)과 차우(Chao)에 의하여 제2차 IMC(세계선교협의회)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1928년 거론되었던“대화”는 타종교와의 대화가 아니라 서양의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힌두교, 불교, 유교의 종교들이 연합하여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1938년 탐바람 선교대회에서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는 클래머(H. Kraemer)와의 충돌로 잠시 주춤하다가 1950년대에 다시 활발하게 거론되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가 1961년 인도신학자 데바난단(P. Devanandan)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는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세상과 화목하시려고 오셨으므로 더 이상 인간 사이에도 분쟁과 다툼이 없는 평안만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원주의적이 입장에서 기독교 진리를 다양한 타종교의 종교철학적 체계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데바난단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된 종교다원주의적인 “대화”는 1967년 스리랑카에서 막스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본격적으로 WCC 내에 "Dialogue Program"이 형성되기 이전에 1970년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아잘톤, 베이루트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종교 의식을 갖았다.

이 의식을 통하여 그들은 말하기를 “아시아의 범신론적 영성에 기독교의 진리가 용해됨을 느낀다.”라고 하였다.28) 데바난단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성을 아시아의 혼합주의적인 범신론적 영성에 희석시키고 기독교의 진리의 유일성을 거부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본격적으로 WCC내에 대화프로그램 (Dialogue Program)이 생긴 것은 1971년이다. WCC는 인도신학자 사마르타(S. J. Samartha)에게 대화프로그램을 일임하였다. 사마르타 역시 힌두교의 범신론적 입장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하나님을 해석하였다.

그는 “경계선이 불안해 진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하여 타종교와의 연합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기독교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타종교의 철학 속에서도 얼마든지 계실 수 있으므로 선교는 타종교의 철학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사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을 확대하여 잘못해석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인간개인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화목하고 또 인간 사이에 화목케 하여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평화 -“샬롬”-이 오게 하는 것이 곧 종교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기독교는 진리의 유일성을 배제하고 타종교와 주체대 주체로서 다양한 대화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종교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선교라는 것이다.29) 사마르타는 이와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진리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대화 방식을 거부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배제한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포괄적 성령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에 대한 정면적인 대응이다. 그가 말하는 성령은 아시아의 범신론적 혼합주의 영성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영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는 타종교의 다양한 영적 체험을 성령으로 간주하여 “포괄적인 성령론”의 입장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이끌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 하고 “샬롬”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모두가 평안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운동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유동식 박사에 의하여 1990년 1월 19일 20일에 걸친 세미나를 통하여 “한국종교와 신학적 과제”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타종교의 존재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의 문제가 다루어 졌다.30)본 학술대회의 서문에는 이에 대한 변선환 박사의 글이 발표되었는데 종교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이었다.

변선환 박사는 더 이상 한국교회는 타종교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대화를 통하여 타종교와 연합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타종교를 대화의 주체로 보아 서로가 진리를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종교철학적 체계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31)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적 “대화”는 197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WCC 총회에서 혼합주의적 성향으로 더욱 부각되어졌다.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총회에서 현경32)은 주제 강연을 맡았는데, 한국무속의 모티브를 빌려 마치 무당처럼 십자군 전쟁에서 죽은 무슬림, 정신대에 끌려가 죽은 할머니,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군인 등인류 역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을 부른 다음 해원을 시켜주는‘초혼제’를 지냈다.

그러면서 “성령은 바로 이렇게 한에 맺혀서 울부짖는 울음을 듣고 그 울음을 치유하고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끌어주는 삶의 에너지이자 생명력”이라고 메시지를 건넸다.

기독교의 성령이 보통 서양미술사에서 보면 서양 남자의 얼굴로 그려지잖아요. 저는 아시아 여성이 보는 성령의 얼굴을 ‘관세음보살’로 잡았어요. 어짜피 성령은 눈에 잡히지 않는 것이고 사람은 자기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가장 자비로운 치유자의 얼굴로 성령을 표현하잖아요. 제가 여성적인 관세음 보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내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느끼는 성령의 아이콘이다.’라고 선언하니까 그런 불교 이미지를 본 기독교인들이 모두 뒤로 넘어갔죠.33)

이와 같이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대화 프로그램”은 WCC의 혼합주의를 태동시켰다. 타종교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타종교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러한 다원주의는 1968년부터 1975년까지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 이었던 인도 신학자 토마스(M. M. Thomas)의 혼합주의에서 더욱 확고해졌다.34)

이미 1973년 방콕대회에서 힌두교인은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해 갈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 안에 그대로 있으면서 ‘기독교적 힌두’가 될 것35)이라고 주장했던 토마스는 2년 후 나이로비총회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를 주장했다.

이에 정현경은 토마스가 주장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를 아주 잘 실현한 에큐메니칼 학자인 것이다.

정현경은 그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경계를 넘나드는 자’ ‘다리를 놓는 자’ ‘문화 통역가’로 정의를 내리고 이러한 것들을 통털어 ‘살림이스트(Salimist)’라고 하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살림이스트’란 순수한 한국말 명사 ‘살림’에서 온 말이다. ‘살림’은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한다는 말이다.36)

“무당 같다고요? 전 그 말이 최고로 영광스런 찬사라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는 모두 ‘신적인 생명력’ 즉 우주의 창조력이 있어요. 그리고 신적인 생명력의 씨를 싹트게 해야 할 의무도 있고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神)나게 사세요!’ 하고 인사하는데요. 마음껏 신기를 발휘하면서 살아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거든요. ‘꼴리는’대로 살라는 말도 방

종이 아니라 ‘존재이유’를 찾으라는 그런 의미죠.37)

현경은 미국 케임브리지 젠 센타에서 숭산스님을 만나 ‘대광명’이라는 불명을 받고 계룡산 신원사에서 삭발 동안거에 들어가는가 하면 히말라야 산속에서 ‘옴 마니 반메 훔’만트라를 외우고 베트남의 틱낫한에게서 명상을 통한 수행을 배우는 등 신학자로서의 자기만의 정체성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제단(altar)을 만들것을 그의 책에서 제안하고 있다.

너의 방이나, 네 방이 없다면 공원의 한 구석이나 어는 한 장소를 너의 성지(Holy Place)로 정하고 그곳을 네가 성스럽게 여기는 ‘파워 오브젝트(Power Object)'들로 꾸며봐.성경책, 불경, 예수님, 부처님, 여신들의 사진, 혹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닮고 싶은 사람들의 사진, 아니면 아름다운 조약돌, 깃털, 꽃, 초, 향물, 음악 등, 무엇이든 네게 힘을 주는 오브젝트들로 성스러운 제단을 만들고, 그 구석에 앉아 네가 되고 싶은 너 자신, 너의 가장 와일드한 꿈들,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며 너 자신에게 마술을 걸어봐. 그래서 그 가장 이상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네 모습을 관찰하는 거야. Enjoy it!38)

이처럼 정현경이 보여주고 있는 WCC신학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선교의 본질인 복음전도가 전혀 요구되지 않는 종교다원주의적 혼합주의 신학인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NCCK는 2013년 WCC 부산총회가 성황리에 모든 교단과 교회가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 선교적 차원에서 거론되어졌던 교회연합차원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 의미를 상실한 채세계선교가 아니라 교회연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류연합 운동 즉, 세계 평화공동체 형성 그 자체가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2013년 WCC 부산 총회를 위하여 취해야할 NCCK의 입장은 손님을 맞는 한국교0회로서 예의를 갖추어 손님접대에 최선을 다하되WCC의 신학동향과 문제점을 바로 인식하고 한국교회가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적 경향에 편향되는 일이 없도록 WCC 신학 알리기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교회들은 아직까지도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무시한 채 대회유치와 성공만을 기원한다면 대회이후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신학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혼동과 분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NCCK와는 별개로 일부 보수교단의 WCC 총회 비판 움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국내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WCC 대책위원회(위원장 서기행 목사)는 30일 ‘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란 책을 전국 총대, 교회, 주요 기관에 발송했다.

이 책은 기독론, 교회론 등 WCC의 실체를 비판하는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 12명의 논문을 실은 것이다. 서기행목사는 논문집에 대해 “WCC 신앙노선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논문집을 통해 교단 소속 목회자들부터 WCC가 신앙적·신학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39)

III.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앙 간증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40)

2011년 1월 28일 스위스 제네바 WCC본부에서 WCC와 WEA41)와 로마교황청이 공동의 선교 문서를 발표했다. 2013년 WCC 총회의 한국유치와 더불어 2014년은 WEA의 한국대회가결정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WCC와 WEA의 공동 선교문서발표는 향후 한국선교신학의 방향에도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또한 지난 2011년 10월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WCC 총회 준비위원회 모임에서 롤프 힐레(64)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에큐메니컬위원회 위원장과 박성원 WCC 중앙위원(영남신대 석좌교수)이 만나 보수교단이 우려하는 WCC의 신학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았다. 튀빙겐대 신학대 학장을 역임한 힐레 위원장은 1986년부터 2008년까지 WEA신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이 WEA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과 복음주의 운동은 상호 보완적이며, 세계적으로 양 진영이 서로의 합치점을 찾아가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 있다”면서“전혀 새로운 운동에 직면해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과거의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되지 말고 대화에 나서는 게 좋을 것” 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그는 “WCC의 신앙고백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42) 그러나 실상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로 교단의 분열과 신학적 분리를 일찍이 경험한 한국복음주의 교단이 받아들이기에는 힐레 위원장의 이같은 견해가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에큐메니칼 진영과의 대화는 이전에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복음주의도 다양한 입장중의 하나로 받아드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복음주의적 입장은 성경에 근거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기에 신학적 검증단계를 거치지 않고 대화를 통한 상호보완을 논의하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

또한 힐레 목사는 “70년대와 달리 오늘날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는 양극단을 달리던 구도에서 상당히 다른 상황에 와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에반젤리컬화 되고, 에반젤리컬이 에큐메니컬화 된 성향을 보이고 있다. 상당한 방향 전환이 있었고 배움으로 서로 많이 융합이 된 상태다. 과거의 에큐메니컬 운동과 전혀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해도 좋다.”43)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WCC의 신학노선은 WEA의 신학노선과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앞서서 보았듯이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WCC의 많은 프로그램들과 WCC 홈페이지 웹사이트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타종교를 통한 구원의 개연성은 절대적으로 복음주의 선교신학에서는 받아드려질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특별히 지난 1월 28일 공동으로 WCC와 WEA와 로마교황청이 발표한 선교 문서이다. 다음은 선교 문서 지침사항중 제 2, 3조항이다.

2. 모든 종교인들과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정립하고 특별히 교회와 다른 신앙 공동체들과 단체적 차원에서 계속적인 타 종교 간의 대화를 다른 기독교적 활동과 더불어 해 나가야 합니다. 수년간의 긴장과 대립 속에 깊은 의혹을 쌓고 신뢰를 잃은 단체 간의 상황에서는, 종교 간의 대화가 대립을 완화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상처를 치유한 기억과, 화해와 평화 증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두텁게 하고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도 받아들이되, 기독교의 주체성과 신앙을 강화하도록 기독교인들을 격려합니다.

위의 내용에서처럼 필자가 선교문서 내용 중 제 2, 3조항을 언급하고자하는 것은 특별히 제2조항은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제3조항은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화’의 전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WCC의 입장에서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입장에서 대화를 하게 될 것이고, WEA의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대화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3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는 ‘타종교가 지지하는 시각’이 무엇인지 구원관에 관한 시각이라면 WCC의 종교다원주의적 혼합주의 구원관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WEA(The World Evangelical Alliance)의 기원을 살펴보면, 1846년 EAG(The Evangelical Alliance of Great Britain)이 창설되고 이와 함께 영적 일치와 기도에 합심하여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격려하며 부흥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WEF(The World Evangelical Fellowship)으로 시작하였다. 그 후 특별한 동기가 없었고 미국 남부 노예제도에 대한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활동이 멈추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자들의 교제권을 다시 형성하려는 바람이 있게 되어서 1951년에 EAG와 새롭게 만들어진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U.S)와 21개 국가의 대표자들이 모여 WEF를 다시 구성하게 되었다.44)

정흥호 교수는 2010년 12월 13일 한국연합선교회 주최학술대회에서 “WEA의 신학노선과 방향”에 대하여 발제를 바치면서 결론에서 “크게 복음주의란 차원에서 본다면 WEA의 신학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로잔 1차 선언(1974)인 Lausanne Covenant나 2차선언 (1989)인 Manila Manifesto, 3차 로잔대회의 The Cape Town Commitment(2010)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5) 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1월 28일 WCC와 WEA와 로마교황청이 공동으로 발표한 선교 문서에서는 무엇보다도 선교문서 작성 배경 중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면서 1번 조항46)에서 “타 종교 간의 기도 (1997-1998)”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WEA가 크게는 복음주의적 선언문들과 같은 맥락에서 있는 듯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활동면에서 좀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V. 결론

한국교회는 지금 WCC 2013년 부산 총회를 맞아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진영의 우려와 NCCK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축제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물론 이미 총회개최가 확정된 마당에 총회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은 없지만 WCC신학의 문제점들을 매스컴과 교회교육들을 통해 알리면서 WCC신학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고 한국교회가 WCC신학의 유입으로 인하여 복음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선교의 열정이 식는 일이 없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이에 최근 1월 28일 WEA와 WCC, 그리고 로마교황청이 공동발표한 선교문서는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공동문건이라는 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본론 부분에서 다룬 ‘모라토리움’선언과 ‘대화 프로그램’은 WCC의 선교정책을 대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선교정책들이다. 해방신학적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모라토리움’ 선언은 WCC의 ‘일치와 화해’ 혹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외면적인 용어 사용만 보아서는 WCC가 추구하는 내용들이 성경적이고 복음적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WCC의 과거 활동사를 통하여 종교다원적이고 혼합주의적인 WCC의 선교정책을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비판하였다. 무엇보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전제로 한 ‘대화 프로그램’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의 ‘대화’에 대한 선입견을 낳았으며 마치 복음주의자들이 전혀 타종교인들과 대화하지 않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공동발표한 선교문서에서는 타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 지지가 촉구되었다. 그러나 타종교 간의 대화에 관한 전제조건이 구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데 있는 것인지 어떤 지가 불명확하고 무엇을 위한 대화인지 WCC 홈페이지에서 보여주고 있는 WCC의 대화프로그램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디 2013년 WCC부산 총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의 영향으로 표류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이번기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WCC의 실체를 알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복음주의, 에반젤리칼, 교회연합주의, 에큐메니칼, WCC, WEA,대화, 모라토리움, 해방, 구원

각 주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 이하 WCC

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764408&cp=du, 2011년 10월 2일. (결의문)

1. 오늘 모인 160개 교단 지도자들과 28개 선교단체장들은 12개 항목의 성명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WCC의 비기독교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2. 36년간 일제침략과 6.25 사변의 격동기에도 오직 예수로 순교자적 피흘림의 발자취를 지켜온 우리 개혁주의 신앙의 지도자들은 WCC의 한국진출을 철저히 배격한다.

3. WCC의 부산총회 유치가 마치 한국기독교 전체의 축제인양 언론매체를 통하여 홍보하여 1,200만 성도들의 복음의 열정을 꺾어 버리려고 우롱한 극소수의 몇몇 교단과 한국교회 분열을 가져온 몇 몇 목회자들은 철저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바라며 향후 한국교계 분열의 책임은 그들과 그들의 교단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라며 오늘 모인 우리 개혁주의 보수교단 지도자들은 끝까지 WCC 부산 총회를 반대하기로 결의한다.

주후 2010년 5월31일

한국 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160개 교단장 및 28개 선교단체장 일동

4)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출판국, 『WCC 무엇이 문제인가?』(서울: 총회출판국, 2010),

241-243.

(한국 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성명서)

복음적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가 기독교 복음전파에 역행하고, 교회건설 사명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반성경적, 비기독교적 단체이기에, 이 단체의 한국총회(2013년) 개최를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제시하는 바이다.

1. WCC는 성경이 신앙의 행위의 유일한 최종적 규범이라는 것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2. WCC는 성경의 기본 교리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의 일치를 추구하며, 이단과 적그리스도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규제하지 않고, 교회의 변증적 사명을 무시한다.

3. WCC는 개신교회의 토대인 전통적인 구원관, 특히 이신칭의 시낭을 약화시키거나 상대화하며, 인간 해방과 혁명을 구원 행위로 본다.

4. WCC는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다고 하며,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당위성을 포기한다.

5. WCC는 성령을 정령과 동일시하는 초혼제를 용납하고, 성령을 물활론적으로 해석하는 비기독교적 사상을 방조하였다.

6. WCC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선교에 도입하여 인간화, 화해, 사회참여 등을 선교의 지상과제로 보며,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전도의 긴박성과 구령사업을 저해한다.

7. WCC는 통전적 선교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빈곤퇴치와 사회활동과 구조악 철폐 등에 치우친 선교를 하고 있다.

8. WCC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일치를 추구하고 정교회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선교유예를 시행하도록 하여, 성경적 복음 진리 전파를 방해한다.

9. WCC는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과 궤를 같이하는 좌파 성향의 용공주의 태도를 지녀왔고, 공산권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생명 박탈, 신앙의 억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10. WCC는 교회의 연합체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성찬중심의 교제단체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실상 교회의 본질인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포기한다.

11. WCC는 신학적 다원주의와 신앙무차별주의를 지향하며, 교리는 분열시킨다고 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교회의 생명력을 쇠퇴시킨다.

12. WCC의 외형적 기구 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진리안에서 일치된 신앙고백 공동체, 즉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분열시킨다.

2010년 4월29일

한국기독교 WCC 반대 대책위원회

5)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764408&cp=du, 2011년 10월 2일.

6) 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98520&thread=01r02r01, 2011년 10월 1일.

7) 이하 CWME.

8) 본 논문의 1차 자료는 WCC의 홈페이지 (http://www.oikoumene.org) 를 참조하였음.

9)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India, Bangalore : Theological Book Trust, 2nd. edition, 1993), 258.

10)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259.

11) Hassing, "Salvation Today", 256. Roger E. Hedlund revised and enlarged, Roots of The Great Debate in Mission : Mission in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에서 재인용.

12) P. Beyerhaus, Bangkok'73, Anfang oder Ende der Weltmission? (Neuhausen- Stuttgart, 1973), 102, 108. 이동주, 『현대선교신학』(서울 :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8), 201에서 재인용.

13) K. Bockmuhl, Herausforderung des Marxismus (Giessen, 1979), 128.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201에서 재인용.

14) L. 보프,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서울 : 분도출판사, 1984), 131.

15) 구르사보 구티에레즈,『해방신학』성염 옮김, (서울 : 분도출판사, 2000), 57-58.

16) 목창균, 『현대신학 논쟁』,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5), 337.

17) 계급 투쟁은 수세기 동안 사회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접전을 일으켜 왔다고 말하며, 그는 자신이‘생산 관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구분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계급의 분류가 역사의 장을 따라 분명하게 구획되어진 것은 아니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이 선들이 명백하다. 자본가 - 소유자는 부르주아 계급이고,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규정되며, 이것이 모든 악을 조장하고 모든 사회 관계들을 규정하는 투쟁을 일으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18) 박영호, 『해방․민중신학 문답』(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19.

19) 스탠리 그렌츠․로저 올슨, 『20세기 신학』신재구역, (서울: IVP, 1997), 341.

20) ANC (African National Congress0, SWAPO (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zation), PACC (Pan Africanist Congress on Azania).

21) E.W. 레훼버,『암스텔담에서 나이로비까지』전호진 역,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원, 1981), 201.

22) 이동주,『현대선교신학』, 202.

23) 국민일보 2011년 10월 7일자 29면.

24)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673524&cp=du, 2011년 10월 2일

25) 국민일보 2011년 10월 7일자 29면.

26)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542828&cp=du, 2011년 10월 2일

27) http://www.oikoumene.org/en/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html 참조

28)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0-12.

29)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2-14.

30 이동주,『현대선교신학』, 9.

31)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0..

32) 현경의 본명은 정현경 이다. 한국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저자는 그의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출간을 계기로 그녀의 이름을 현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어머니가 세 분이므로 그 성들을 이름 앞에 붙이면 오강장정현경이 되기 때문에 아예 더 평등한 방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다 빼기로 했다.

33). 박윤희, “파격적인 언행과 새로운 여성신학관으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신학자 현경”「여성동아」, 2002. 7.

12. newsroom@donga.com. 소윤정, “정현경의 혼합주의적 신론에 관한 비판적 연구 - 성령론을 중심으로 -”,『복음과 선교』Vol.9 (2008), 217에서 재인용.

34) 이동주,『현대선교신학』, 15.

35) K. Bockmuhl, Herausforderung des Marxismus (Giessen, 1979), 142.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15에서 재인용.

36). 현경,『미래에서 온 편지』,(서울: 도서출판 열림원, 2003), 232, “살림이스트 선언”. : 살림은 한국여성이 매일 하는 가정일을 일컬음. 예를 들면 나무하기, 물긷기, 음식하기, 빨래하기, 베 짜기, 아이 키우기, 병간호, 노인 돌보기, 꽃․나무 가꾸기, 우물 지키기, 소․닭․개 키우기, 그리고 집의 영(靈)들을 돌보기 등. 살림은 또한 망가지는 것(냄비, 신발, 그리고 가슴 등)을 고치는 일을 일컬음. 한국 사람들이 “저 여자 살림꾼이네”하고 말하면 그것은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기술, 예술 전문성이 있음을 말함.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을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이는 것,가족의 평화, 건강, 풍요함을 끌어내는 것(이때의 가족은 모든 종류의 생명을 포용하는 큰 가족 개념을 의미), 아름다운 삶의 환경을 만드는 일 등.

37). 박윤희, “파격적인 언행과 새로운 여성신학관으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신학자 현경”『여성동아』,newsroom@donga.com, 2002, 7, 12.

38). 현경『미래에서 온 편지』,, 28.

39)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308981&cp=du, 2011년 8월 31일

40) http://www.worldevangelicals.org/resources/source.htm?id=288, 2011년 10월 8일, 공동 선교문서 <부록> 참조.

41) 세계복음주의연맹

42)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22579&cp=du, 2011년 10월 8일

4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22579&cp=du, 2011년 10월 8일

44) David M. Howard, "World Evangelical Fellowship",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s. ed. by Scott Moreau (Grand Rapids, Mich, : Baker Book House, 2000), 1027-28. 정흥호, "WEA의 신학 노선과 방향“,『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 한국연합선교회 학술대회 자료집 (2010.12.13), 11.

45) 정흥호, "WEA의 신학 노선과 방향“,『WEA와 WCC의 신학과 선교』, 21.

46) 1. 오늘날 세계에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간에 협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PCID와 WCC 내 종교 간 대화와 협력(IRDC)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협력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PCID 와 WCC-IRDC 가 과거에 협력한 문제들의 예로는 타 종교인들 간의 결혼 (1994-1997), 타 종교간의 기도 (1997-1998), 그리고 아프리카의 종교성 (2000-2004) 등이 있습니다. 본 문서는 이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부록>

한국어 번역본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앙 간증

(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수행 지침

서론

선교는 교회 존재의 중심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세계에 증거하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일을 모든 인류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복음의 방식에 따라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거나 기독교 신앙 간증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진 인종과 집단들 간에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인

식 하에, 교황청 종교간대회평의회(PCID), 세계교회협의회 (WCC), 그리고 WCC가 초청한, 세계복음연맹(WEA)은 지난 5여년간의 교류를 통해 기독교인의 신앙 간증 행동 지침으로써 사용될 본 문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문서의 목적은 선교에 관한 신학적인 선언을 하고자 함이 아니며, 다종교 세계에서 기독교 신앙 간증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습니다. 이 문서의 목적은 교회와, 교회 협회들, 그리고 선교 단체들이 현재 행하는 선교 방식들을 회고하고, 이 문서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무종교인들을 향한 그들의 고유의 전도와 선교 방식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는 데 활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서가 그리스도의 신앙을 증거하는 그들 고유의 행동 양식에 있어 말과 행동 모두로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 간증의 기초

1.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그들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를 온유함과 경외를 가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요, 기쁨이다. (베드로전서 3:15)

2.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최고의 간증이다. (요한복음 18:37) 기독교인의 신앙 간증은 하나님나라, 이웃에 대한 섬김,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지라도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는 자기 비움의 선포 형식을 띄는 간증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힘으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신자들도 말과 행동에 있어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선교지에 보내진다.

3. 예수 그리스도와 초기 교회의 본보기와 가르침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 가이드가 되어야 마땅하다. 200여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좋은 소식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것을 추구해 왔다. (누가복음 4:16-20)

4. 다종교 세계의 기독교 신앙 간증은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참여 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도행전 17:22-28)

5. 어떤 상황들에서는 복음을 실천하고 선포하는 것이 힘들거나, 이러한 활동이 박해받거나 심지어는 금지되어 있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있어 서로가 연합하고, 신실하게 증거

를 계속해나가는 것이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마태복음 28:19-20; 마가복음 16:14-18; 누가복음 24:44-48; 요한복음 20:21;사도행전 1:8)

6. 기독교인들이 속임수와 강제적인 수단에 의지한 부적합한 방법으로 선교를 행하고 있다면 그들은 복음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회개를 요하며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가 필요한 것을 상기시킨다. (로마서 3:23)

7.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간증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지만, 개종은 온전히 성령에 의한 것 임을 확신한다. (요한복음 16:7-9; 사도행전10:44-47) 기독교인들은 성령이 인간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칙

기독교인들은 적합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루는 것을 추구하며, 다음의 원칙들을 고 수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는 특별히 다종교 간의 맥락에서 더욱 그렇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라고 믿으며 그들의 신앙 간증의 행위 안에서도 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믿는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 삼는다. 기독교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과, 그리고 특별히 신앙 간증의 행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가르침을 따를 것이 요구된다.

3. 기독교인들의 도덕성. 기독교인들은 성실, 자비, 연민, 그리고 겸손으로 행동할 것이며, 모든 종류의 교만과, 타인을 업신여기는 행위, 그리고 차별을 극복할 것이 요구된다.

4. 섬김과 정의 실천. 기독교인들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일에 부름 받았다. (미가 6:8)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그 섬기는 형제 자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교육의 제공, 의료 제공, 구제, 정의의 실천, 시민단체 활동 등의 섬김의 실천은 복음을 증거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기독교인들의 전도 활동에 가난과 노동 착취의 현장이 있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섬김에 있어 금전적인 동기나 보수를 미끼로 사용하는 모든 방식들을 철폐해야 한다.

5. 치유사역에 있어서의 분별력. 복음 선포의 중요한 부분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치유의 사역을 실천한다. 치유사역을 행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경외함을 가지고 사람들의 연약함과 치유에 대한 필요가 남용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6. 폭력의 배제. 기독교인들은 신앙 간증의 힘을 남용한 모든 종류의 폭력, 심지어는 심리적인 또는 사회적인 폭력들을 배제해야 한다. 예배당,종교적 상징 또는 경전의 파괴를 포함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권력에 의한 폭력, 불공정한 차별과 억압을 배제해야 한다.

7. 종교와 믿음의 자유. 공공 장소에서 자신의 종교를 선포하고 행하고 전파하고 전도하는 권리를 포함한 종교적 자유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데에 근거한 인간의존엄성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동일한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정치적인 목표에 종교가 사용되는 곳 또는 종교적 탄압이 일어나는 곳에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들을 규탄하는 예언적 증거에 참여해야 한다.

8. 상호 존중과 협력. 기독교인들은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헌신하는 것이 요구되며, 정의,평화와 공동의 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종교 간의 협력은 이런 노력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9.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 기독교인들은 복음이 문화에 도전을 주는 동시에 문화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직시한다. 복음이 문화의 어떤 부분에 도전을 줄 경우,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기독교인들은 또한 자신의 문화에서도 복

음에 의해 도전 받는 부분들을 잘 분별해야 한다.

10. 거짓증거의 철폐. 기독교인들은 진지하게, 또한 책임감 있게 말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 양식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많이 들어야 하고, 그들 안에 진실되고 좋은 것들을 인정하고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의견과 비판적인 자세는 상호존중의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하며, 다른 종교에 관한 거짓 증거를 피하도록 분명히 해야한다.

11. 개인적 분별력 의 확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의 종교를 바꾸는 일은 중대한 일이며, 이는 개인의 자유를 확신하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회고와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12. 다른 종교간의 관계 증진. 기독교인들은 보다 더 깊은 상호 이해, 화합과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종교인들과 존경과 신뢰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지침

WEA, PCID의 도움으로, 그리고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 (가톨릭, 정교, 기독교, 복음주의와 성령주의) 의 참여로 WCC가 주최한 본 제3차 컨설테이션은 에큐메니컬 협력의 정신으로 이 문서를 교회, 국가와 지역의 신앙 고백적 공동체와 선교 단체들, 그리고 특별히 종교 간 관계에서 사역하는 이들에 의해 고려되도록 준비해 왔으며, 다음을 권면합니다:

1. 각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이 서류와 기독교 증거에 관한 정식 행동 지침 상의 이슈들을 연구하십시오. 가능할 경우 이는 다른 종교 대표들의 자문을 통해야 하며 초교파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2. 모든 종교인들과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정립하고 특별히 교회와 다른 신앙 공동체들과 단체적 차원에서 계속적인 타 종교 간의 대화를 다른 기독교적 활동과 더불어 해 나가야 합니다. 수년간의 긴장과 대립 속에 깊은 의혹을 쌓고 신뢰를 잃은 단체 간의 상황에서는, 종교간의 대화가 대립을 완화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상처를 치유한 기억과, 화해와 평화 증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두텁게 하고 타 종교가 지지하는 시각도 받아들이되, 기독교의 주체성과 신앙을 강화하도록 기독교인들을 격려합니다.

4. 다른 종교 단체들과 함께 정의와 공익을 위한 범종교적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갈등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는 일에 협력하여야 합니다.

5. 많은 나라들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 억제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종교 자유가 적당하고 포괄적으로 존중되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에 요청하도록 합니다.

6. 주변 이웃들과 그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기도가 기독교인들의 선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에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 중요한 부분임을 인지합니다.

부록: 본 문서의 배경

1. 오늘날 세계에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인들 간에 협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PCID와 WCC 내 종교 간 대화와 협력(IRDC)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협력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PCID 와 WCC-IRDC 가 과거에 협력한 문제들의 예로는 타 종교인들 간의 결혼 (1994-1997), 타 종교 간의 기도 (1997-1998), 그리고 아프리카의종교성 (2000-2004) 등이 있습니다. 본 문서는 이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2. 오늘날 세계에도 다른 종교 간 폭력, 인간 생명의 상실을 포함한 갈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다른 원인이 이러한 긴장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때로는 본의가 아니거나 또는 본의를 가지고 핍박하거나 폭력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도 이런 갈등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PCID 와 WCC-IRDC 는 기독교 신앙증거 행위에 관한 지침을 공동으로 만드는 협력 과정에 참여하여 이 문제들에 대해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IRDC 는 이 과정에 WEA가 참여하도록 초대하였고, 이 초대는 기꺼이 수락됐습니다.

3. 처음에는 두 번의 컨설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첫번째 모임은 이탈리아의 라리아노에서 2006 년에 ‘현실의 평가(Assessing the Reality)’라는 주제로 각기 다른 종교의 대표들이 그들의 개종에 대한 관점과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이 컨설테이션의 성명서의 한 부분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의 이해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종교적 감성을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을 확실시 한다. 종교의 자유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종교 외의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자신의 신앙의 우월성을 확증하는 목적으로 다른종교를 부정하거나, 비방하거나, 잘못 전하지 않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타협해서는 안되는 책임을 포함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4. 두 번째 모임은2007년 프랑스 뚤루즈에서 기독교인들 간의 공동의 이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개최됐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Family and Community), 타인 존중 (Respect for Others), 경제 (Economy), 마케팅과 경쟁 (Marketing and Competition), 그리고 폭력과 정치 (Violence and Politics)에 관한 질문들이 상세하게 토론됐습니다. 이 주제에 관련된 목회와 선교적인 이슈는 신학적인 회고의 배경과, 또한 본 문서 안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된 원칙을 세우는 데 배경이 되었습니다.

5. 세 번째로는 2011년 25일부터 28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기독교인 들 간의 컨설테이션에 참석한 이들이 이 문서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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