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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마지막 주일예배대표기도문 

온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 귀하신 뜻에 따라 섭 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거룩함과 존귀하신 손길을 인하여 만백성이 주님 앞에 경배와 감사를 올리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절망과 좌절과 비참 속에서 몸부림치며 멸망 을 받아야 했던 저희를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셔서 

기쁨과 환희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의 귀한 은혜를 이 시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주간도 저희를 지켜 주셔서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오늘 거룩한 성일을 허락하여 주선서 아버지께 나아와 
예배드리며 신령한 교제를 통해 주님과 만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니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각별한 은혜와 사랑 속에서 배려해 주셨지만 

저희들의 어리석음으로 주님의 귀한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말씀을 거역하는 못난 죄인들입니다.

주님을 믿노라 하면 서도 세상과 주님의 틈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보다, 하나님과의 신령한 사귐보다, 

오히려 물질의 풍요함에 더 마음을 쓰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이날까지 지내왔습니다.  

주여. 이 불쌍한 죄인들을 긍흘히 여겨 주시옵소서.


귀가 있 어서 듣긴 듣되 정말 들어야 할 주님의 권면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 보긴 보되 헛된 것에 사로잡힐 뿐 주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지 못하는 

저희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 시간 저희의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셔서 주님께서 죽어가는 영혼을 위한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는 주님과 죄악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부족하고 어리석으며 죄의 유혹에 

너무도 약하여 늘 넘어지고 실족할 수밖에 없사오니

저희들만 버려두지 마시고 주님의 영으로 저희를 감싸 주시어 새힘을 얻게 하시며 

모든 불의와 악을 능히 물리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시며, 주님의 고귀 하신 권능을 위하여 저희를· 건지시며,

간절한 심령으로 주께 아뢰는 저희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종되었던 저희를 구하사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성도로 불러주셔서

 이렇게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인도하신 주님, 
이 교회를 지키시고 이끌어 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께서 친히 당신의 영으로 세워주신 귀한 제단이오니,

이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합당한 교회로 꿋꿋이 설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제단으로 말미암아 노아 시대의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셔서,

말세를 살아가는 뭇 심령들이 혹암 과 어둠의 깊은 곳에서 참 빛이신 

주님을 발견하도록 일 깨워주는 교회가 되게 하시며,

꺼져가는 진리의 횃불을 다시금 불태우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들이 걸어야 할 참된 도리를 몸소 보여 주신 주님의 삶을 본받고 따르는 교회가 되어서

이 시대를 비추는 등불로서의 역할과, 불의와 악을 제하고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의 역할을 참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거친 세파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구원을 갈망하는 뭇 심령들이 이 제단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되어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하시며, 이 제단을 통해 

주님 앞으로 나온 성도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가득차서 위로 하나님을 참되게 경외하고 

아래로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읍소서. 

무엇보다도 은혜를 사모하여 갈급하는 심령들이 이 제단을 통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으로 배불리 먹고

시들어 가는 심령이 새롭게 소생함을 받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능력에 힘입어

이 세상을 믿음으로 헤치고 나가 승리하게 하옵 소서. 

이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 보내어 주시고 귀하게 들어 쓰시는 목사님에게 성령깨서

능력의 장중에 붙들어 주시며, 엘리야에게 주겼던 영력을 배나 더하여 주옵읍소서.

그가 눈물과 애끊는 심정으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거느려 나갈 때에 

주께서 지팡이가 되어 주셔서 힘 있는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능력의 주 하나님!
부활의 믿음으로, 구원에 대한 감사로 예배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을

 롭게 확인 하고 
아버지의 뜻에 맞는 인격과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믿음이 더욱 장성하게 하시고 저희의 심령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귀한 영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사랑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에 순종하게 하시고 저희를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하나님의 축복의 길에 온전히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선한 목자가 되게 하옵소서. 
양들이 당하는 환난을 내 것으로 느끼는 선한 목자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인생들을 돌아 보셨던 주님, 우리도 모든 인생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담당하게 하옵소서.

환난 중에도 다른사람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내자신을 고통속에서도 다른사람의 고통을 염려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힘이 다 빠지는 고난이 와도 사람들을 염려하고 안타깝게 여기며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 이 시간을 계기로 하나님의 부활의 사랑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저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위하여 영광을 
돌리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주님을 증거 하는 신앙을 갖게 하시고 저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연약함으로 범죄치 않도록 축복하시고, 저희의 어리석음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저희의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히 부르지 않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나의 주 여호와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이김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승리케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 위에 함께하사 저희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돕는 손길들이 저들이 몸을 드려 주님 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할 때마다 하늘의 보화가 넘 쳐나게 하시고, 부활의 주님이 
전파되는 곳에 저들의 이름도 기억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좀있,  

주님의 부활에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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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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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설교 <교회란 무엇인가? >

 

 

 


교회란 무엇인가?

 

1.들어가는 말


교회는 경건한 신앙인의 집단이기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설립되고 유지되며 갱신되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의지에 기초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을 닮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공동체는 '공동 체로 계신 하나님'을 닮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썼던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혼자로 계신 분이 아니라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유대교나 이슬람교인들의 하나님과는 달리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로 계시는 가운데서 통일성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코이노니아(사귐)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현대신학자 몰트만은 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사회적 삼위일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소중한 진리의 하나는, 바로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공동체를 향한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공동체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말로 표현해서,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교회, 즉 친교 혹은 사귐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더불어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하니까, 교단의 어떤 분은 제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좌익의 이데올로기로 설명한다고 비판하셨는데, 본래 이 용어는 개인주의와 대립된 의미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도 이 용어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와 동일한 어휘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단순하게 보면,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공동체적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면, 이 때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적 사회주의 혹은 사회적 민주주의와 유사하다고 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과 이데올로기는 유사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유한한 존재로서 늘 불완전한 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고, 불완전한 사회체제나마 이를 수용하고 신앙의 눈으로 늘 이를 개혁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양식입니다. 또 본인은 교회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이런 각도에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사귐'이라고 불립니다.

 


2.교회의 본질


1)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에게 무슨 임무를 맡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교회를 선택하시고 교회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셨을 때, 하나의 믿음의 백성과 이 백성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온 인류를 염두에 두셨는데, 이 때에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에게 복을 내릴 임무를 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아 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큰 복과 임무를 주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의 후손들인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세우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은 구약성서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신약성서의 시대와 교회사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 한복판에서, 이 세상의 백성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백성, 유랑하고 순례하는 백성입니다.

물론 그 나라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에서 나타났듯이, 어떤 저 먼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 한가운데로 내려오기 때문에, 바로 이 세상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계의 피안이 아니라 이 세계의 미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세워지고 경험되는 영원히 현재적인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저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운데' 있다",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바로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나 라를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있으며,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곳에 오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에서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반영(反影), 복사(複寫), 거울, 즉 피사체(被寫體)입니다, 교회는 그 나라의 여명(黎明), 전조(前兆)이요, 그 나라의 전위대(前衛隊) 혹은 돌격대(突擊隊)입니다.

보충설명: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신앙과 희망의 대상인 하나님의 나라는 1.정치적 독재-억압이 없는 민주주의적 정치, 2.경제적 독점-착취가 없는 사회주의적 경제, 3.차별-소외가 없는 평등주의적 사회, 4.자연의 지배-착취가 없는 공생주의적 생태계, 5.죄책감과 심판과 무의미로부터 해방된 하나님과의 교제 안의 영원하고 복된 생활을 지향하는, 성서의 중심되는 구원개념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신약성서 시대에서는 교회론에 하나의 큰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교회를 새롭게 소집하셨습니다. 그분은 옛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병들고 흩어져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백성을 치유하고 갱신하고, 이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온전히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새로운 무리를 모으셨습니다. 그 중에서 12명을 택하신 것은 바로 상실된 이스라엘의 사명을 회복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온 몸을 다하여 제자들을 부르시고 섬기시고, 끝내 는 그 몸을 십자가에서 깨뜨려 피와 물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시면서까지 인류의 구원과 교회의 소집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몸으로 다시 살아나셔서 인류와 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주시고, 또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교회를 새롭게 소집, 갱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형성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아낌 없이 내어 주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 구원받은 자들을 모아 자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그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사랑과 희생의 능력으로써 교회를 통치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온갖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 안에서 은혜가 충만하게 하시며, 교회를 날로 날로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새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자신의 몸을 주셔서 우리를 그의 몸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창설자는 능력있고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머리)도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를 유지, 갱신, 확장하시는 분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성서 시대에 와서도 교회는 여전히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선택으로 인하여 세워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충설명: 신약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임재)하는 곳 혹은 형식은 1.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사도적 생활(마태 28,18 이하), 2.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떼고 피를 마시는 성만찬 공동체(고전 11, 23 이하), 3.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사귀고 예배하는 형제-자매적 공동체(마태 18, 20), 4.헐벗고 주리고 목마르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곳(마태 25,31 이하; 교회 밖의 교회 혹은 보이지 않는 교회 혹은 익명적 그리스도인!), 5.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능력으로써 충만해진 그분의 몸, 하나님의 대성전이 된 우주(골로새서, 에베소서)입니다.

 


3) 교회는 '성령의 교제'입니다.


셋째로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또한 성령이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공동체, 성령 안의 사귐, 성령의 코이노니아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고 부르시고 모으신 것입니다만, 아버지와 아들의 활동 속에는 언제나 성령도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교회는 온전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 시대에서 성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고, 신약성서 시대에 성자 예수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셨지만, 성령이 오심으로써 비로소 교회는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능력을 얻고 구체적인 모습, 즉 '성령의 교제'라는 모습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학적 출발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공동체 의지(천지 창조와 이스라엘의 선택)에 있고, 교회의 역사적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 사(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새로운 백성의 선택)에 있지만, 교회의 사회적 출발점은 바로 성령강림(오순절 사건과 선교적 파송)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 풍성한 성령의 은사들을 선사하시고, 그리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통하여 교회를 생기있고 활기차고 능력있게 하시고, 이 세상의 어두운 거짓 영들의 한복판에서 참 증인, 세상의 빛과 소금, 변화의 누룩으로 만드십니다.


보충설명: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은사들 간에 아무런 차이나 구별이 없으며,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과 차별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들 간의 구분은 존재합니다. 바울에 의하면 세 가지 종류의 은사가 있는데, 1.'선포의 은사'에는 사도, 예언자, 전도자, 교사, 권고자가 속해 있고, 2.'봉사의 은사'에는 병고치는 자, 사랑을 베푸는 자(집사)가 있고, 3.치리의 은사에는 감독(장로)이 속해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심지어 고난도 하나님의 은사이며, 남 모르는 사랑의 행위, 기술적 봉사, 결혼, 순결(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독신적 삶) 등도 은사로 인정됩니다.이처럼 주님이 부르신 자에게는 모두 은혜의 분량대로 은사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독점이나 획일화, 횡포나 지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것대로, 서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써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과 그 은사들의 코이노니아(사귐, 교제), 즉 카리스마적 공동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자신 안에서 이미 공동체를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떻게 각기 교회를 이루시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삼위 안에서 일치를 이루시듯이, 이 삼위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 의 몸-성령의 교제가 서로 조화와 일치를 이룰 때, 비로소 교회는 온전한 모습을 이룹니다. 카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주로 강조해 왔고, 개신교 회의 대다수 교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성령의 교제'를 특히 강조해 왔습니다. 이 세 가지 교회론의 공통요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 하 나님의 주도권에 있습니다만, 각기 독특한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백성은 교회의 역사성-시간성-세상성을 나타내고, 2.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의 영원성-공간성-구별성을 나타내며, 3.성령 교제는 교회의 구체성-사회성-초월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역사 안에 있으면서도, 영원하며,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모임임을 알아야 합니다.

2.그리고 교회는 시간대(성부 시대- 성자 시대-성령 시대 혹은 구약 시대-신약 시대-교회사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공간성(예수 그리스도와의 수직적 일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지니며, 그러면서도 사회적인 모임임을 알아야 합니다.

 

3.교회의 사명


교회가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해야 하는 역할, 임무 혹은 사명과 봉사는 무엇입니까? 교회가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결국에는 이 땅에서 복음(하나님의 나라)을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유일하고도 독특한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오직 이 증언으로 요약되며, 교회의 모든 봉사는 이 증언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증언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증언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와 치유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였듯이, 교회도 말과 행위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증언합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교회가 말로써 증언하는 형태에 찬양, 설교, 교육, 전도, 선교 및 신학(6개)을 포함시켰고, 행위로써 증언하는 형태에 기도, 목회상담(영혼치유), 그리스도인의 모범적 생활, 봉사, 예언자적 행동 및 친교(6개)를 포함시킨 적이 있습니다(12개). 그러나 본인은 교회가 하나의 교회이지만,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둘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교회의 사명을 설명해 볼까 합니다.


먼저, 교회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어원인 '에클레시아'는 바로 세상에서 불러 모여진 자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룩한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도의 교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받아 모인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런 모이는 교회가 해야 하는 사명은 예배와 찬양, 설교, 교육, 신학, 목회상담 및 친교입니다(6개).

그리고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모이는 것은 흩어지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결국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신학자 본회퍼도 "교회는 남들을 위해 존재할 때에만 교회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남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깥을 향해 존재합니다. 교회가 남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기능에는 기도, 전도, 선교, 봉사, 모범적인 생활 및 예언자적 행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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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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