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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4) - 우전도 전도사

 

 

우리의 삶은 세상에 한 번 왔다가

안개와 같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것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된 예복이 입혀집니다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1:6)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1:8)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오늘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증인이 된 것이나,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 하지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은 고난과 함께 전파되고,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정한 거듭남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고난 가운데 만났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편지를 쓰는 지금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고난 중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이 쉽지 않지만 복음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권합니다.

 
바울은 종종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가치를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즐겁게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님과 함께한 고난의 시간들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힘들고 피하고 싶었지만 주님과 함께 열매맺은 고난의 시간들!

그 고난의 열매는 곧 주님의 마음과도 같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욥기의 고백처럼 주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말씀처럼

그 고난의 열매가 우리의 내면에 정금같이 듬뿍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 동안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 고난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주님을 힘 써 알아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17:3 호6: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6:3)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고난으로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정욕적인 유익을 구하게 되고 정욕을 좇는 길은

욕심은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결국 사망의 길이요 멸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연단을 통하여

고난의 열매를 맺은분들이 이제는 당당히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고난으로 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받고 있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를 알려드리고 나눌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오시는 고난들을

인내로 받을 때마다 주님은 고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난 후에는

고난이 올 때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가를

또한 내가 죄인됨을 알고 바른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올 때는 잠간 근심과 고통이 눈물이 있었지만

고난 후에 맺힐 주님의 사랑의

열매를 생각하면 잠깐의 고통은 기쁨으로

넉넉히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오시는 고난의 의미를

이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으로 다가오셔서 사랑의 방법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1:6)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주님! 제가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사랑의 표현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도

모두 다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표현을 많은 분들이 알고 따르길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방법을 알고 따르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뀔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하는 법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의 방법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면 주님께서 주인으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자는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 십자가 도의 비밀을 알려주시려고

많은 눈물을 흘리시며 애통해 하신 것을 알게됩니다.(고전1:18)

그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지게하시는 십자가를 감사하며 지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면 지을 수록 주님의 사랑이

저의 내면에서 흘러 넘침을 감사드립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십자가를 왜 지라고 하셨는지

이젠 확실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있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이든 사도로서 감옥에 갇혀 있지만,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도 함께 받자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복음으로 인해 당하는

많은 고난들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곧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넉넉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을 순간순간 위로하시고 격려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도와주신다는 것과 모든 것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들이 영광의 왕관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복음으로 고난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로 구원받은 감격을 누리기 위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둠에 구원의 빛을 비추기 위해, 닥쳐오는 고난에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주께서 (바로 거기에서)나와 함께하심이라”(시23:4).
 
하나님께서 우리를 헤아리시고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스런 면류관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진 자들에게 아름다운 혼인 예복이 입혀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자기부인과 좁은 문, 좁은 길, 그 십자가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도록 은총을

넘치도록 부어주소서.

그리하여 자기부인과 좁은 문, 좁은 길로 그 십자가를 많은 사람들이 지게 하시고

주님 오실 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을 입혀 주시옵소서.

속히오실 영광의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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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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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명언]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십지가의 길이었다.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는 인생의 복잡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쇄가 들어 있고, 인생을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외롭고,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질 때에, 좌절할 때에, 죄를 짓고 숨으려 할 때에도 항상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찾아오신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하기 힘들지 않으며, 더구나 두려워할 대상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을 때에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주 높고, 아주 낮은 분이시다. 하나님은 무섭고도 인자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강하고 약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靈이시기에 형상화 될 수 없는 분이시다.
 

우리들의 삶은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 여정입니다. 십자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물론 찾는 사람도 있고 영영 못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른 목표를 정하기는 쉬워도, 거기로 가는 바른 길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에도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창조주를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을 보고서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봄으로써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았고, 전지전능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가시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접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귀의 유혹은 목표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길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리스도나 우리들이나 목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길은 바른 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가 유혹하는 길들을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빵, 권세, 능력을 뽐내는 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 이외로는 하나님나라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전에는 우리들처럼 시험을 겪으셨다. 고통스럽게 겪으셨다. 그러나 주님은 생전에 모든 일들을 십자가적으로 처리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 사역, 일들 모두에 십자가가 담겨져 있었다. 산상수훈의 팔복도 십자가의 길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사람은 마귀이다. 내 삶의 길이 십자가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현실적인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목표가 아니고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 영적 성장과 승리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끈기를 가지고 길을 걸어가면 변합니다. 크게 변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가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이해, 용기,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성령의 도움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입니다. 어떤 생명도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모든 생명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다고해서 십자가의 길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어렵다고 피한다면 이 땅위에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른 길이라면 당연히 어렵습니다. 거짓된 일이라면 쉽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마음먹기가 두렵고 싫은 것일 뿐입니다.
 

어렵다는 말은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의미가 있다는 말이고,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십지가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십자가는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길을 한 발자국도 걸어가지 못합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자기부인은 자기포기, 자기 버림이 아니라 더 큰 뜻을 위해서 자신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즉, 헌신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면 이 땅에서 죄악이 무너져 내립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을 포기하라. 보복(심판과 징벌)은 하나님만의 고유 영역이다. 혈기, 감정을 부리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그 대신에 온유한 사람이 되라! 악을 다스리고 악과 대적해서 악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라. 인내 하십시다! 우리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셔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셨다.
 

자기부인, 자기 포기 없이는 십자가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밝히는 것은 서로 함께 하자는 의미이다.
 

마르지 않는 생수는 예수님의 생명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한 사라마리 여인에게 자신의 생명을 받쳐서 돕겠다고 말씀하셨다. 저주받은 생명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명으로 바뀌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신다. 사람들의 소망은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십지가의 길이었다.
 

십자가는 위대하고, 생명을 살리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 할 것도 아니고, 우리가 용기 있고 당당하게 그리고 영광스럽게 걸어가야 할 길이다.
 

십자가의 길만이 하나님나라에 이르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형상이 변화되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기에 여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길이기에 여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 좁은 길이라도 영생과 진리의 길이라면, 하나님 백성의 길이라면, 이 길을 용기 있고 끈기 있게 걸어가게 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보내주신 구원자이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삶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 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속에서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생명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명이다.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귀중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해야 한다.
 

복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소식이다. - 하나님은 화해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은 세상과도 화해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生과 死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느냐?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느냐?” 의 차이이다. 신앙의 목표는 사는 동안에도 “시간과 공간”에 무관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일 것 같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은 본능과 이기심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죄와 허물을 범할 수밖에 없고, 구원자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는 동안 저지른 죄와 허물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이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시지 않았는가?
 

책임감이라는 것도 이기심이고 욕심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우리들의 일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일인 것이며, 우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하나님이 모르거나 관계가 없는 일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당사자이시며 주관자이시다!
 

하나님께 어떻게 해달라는 기도는 가급적 하지 말자. 모든 일은 어차피 우리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 뜻대로 되는 데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자!
 

죽음이후를 모르는 것과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을 모르는 것은 같은 것이다. 아마 “시간, 공간”과 무관한 상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셔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구원은 내 욕심만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잊지 말고 생각해주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걸고, 시간을 내어주며,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해주고, 잘못을 용납해주자.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을 진심으로 회개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과 그 결과를 이미 용서해 주시고 수습해 주셨음을 알고, 죄책감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회개하고도 죄책감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전인적이고 전면적인 구원이다. 즉, 우리들이 전인적으로, 전면적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제공해주시고 보증해 주시는 확정된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방법임이 확실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은 이 땅에도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데에 쓰임을 받는 데에 있다. 즉, 우리가 먼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쓰임을 받는 데에 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이런 깨달음으로부터 비로소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며, 특출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남다른 노력을 한 사람인 것이다. 이기심, 남과 비교하는 사고방식, 질투심, 얕은 생각이 열등의식이라는 착각을 만들어 낸다.
 

믿는 것은 진심으로 아는 것이다! - 우리는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섭리해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항상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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