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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의 심각성

 

기독교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유럽과 미국의 교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가 타종교도 기독교와 대등한 종교로 인정하는 정도이지만, 한국을 위시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다종교 사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가 혼합종교의 형성을 유발하고 촉진한다. 한국에 종교다원주의가 확산되고 혼합종교가 성행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심각하다.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 아래 열린 WCC 총회에서 무당굿을 하며 해방신학에 초점을 맞춰 읊은 정현경의 초혼문(招魂文)의 내용을 보면 실로 황당할 뿐이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검둥이 여종,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렁렁렁” 하는 말로 시작하여,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우리아의 영, 입다의 딸의 영, 헤롯의 군사들에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 다르크의 영, 마녀사냥으로 말미암아 불타 죽은 중세기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 기독교가 식민주의 시대와 이교도 세계에 대한 우월 의식을 지니고서 선교하던 시대에 학살된 토착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들인다(미출판된 자료집: WCC, 천주교, WEA 관련자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려), 7).

KNCC의 홈페이지 기도자료실에 버젓이 올려있는 모 기독교대학의 교수이며 서울 모 교회 교육목사가 작성한 “생명의 강 살릴 종교 여성 공동기도문”을 보면 혼합종교화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된다.

 

오, 하느님, 부처님!

살려 달라 매달려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인데,

거꾸로 당신이 우리를 향해 애원하시다니요?

무력한 당신, 한없이 작은 당신, 아직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당신,

한 중생이라도 더 구제하기 위하여 극락 언저리를 서성대는 당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래로 아래로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은 바로

당신의 눈물입니다.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

 

하늘에 계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조사님의 마음에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여성이 일심(一心)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
 

나무아미타불, 아멘.

 

그뿐 아니다. 2009년 6월 18일의 한 시국 성명에는 “부엉이 바위에 묻어 있는 핏자국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의 죽음을 봅니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1,024명의 목사들이 서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

 

지난 50년의 역사를 보면 WCC 지도부의 교회 통일에 대한 이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WCC 신학은 우리 선배 목사님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급격하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즉 탈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로 발전해 왔으며 그것이 세계 교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1960대 초반에 한국에서 선교적인 차원에서 토착화 신학을 주장하던 이들이 1990년대에는 종교다원주의 입장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의 입으로 종교다원주의는 토착화 신학의 종착점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그것은 혐오스런 일이긴 하나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역사적인 예수를 부정하고 칼케돈 신조를 폐기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WCC가 추진해 온 사회 참여와 사회봉사만 하더라도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견지에서 추진하는 것이어서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가진 교회들은 따르기 힘들다.

 

역사에 사신 나사렛 예수가 곧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지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면서, 그리고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경계하고 교회에서 축출함으로 교회의 성결을 지키라는 말씀은 외면한 채 교회더러 하나가 되라는 말씀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말씀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모순이다.

 

WCC의 회원이 되고 있는 교회에는 복음적이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WCC도 그러하지만 그 어떤 단체나 기관을 불건전한 신앙과 사상을 가진 개인이나 지도부가 관장했을 경우 그 단체나 기관은 대체로 지도자나 지도부의 지도를 받고 따르게 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 학교나 신학교의 경우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으로 학교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역사와 우리의 주변에서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우리는 안쓰럽고 통분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다.

 

오늘에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도 ‘성령 충만’과는 다른 개념인 ‘영성’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이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의와 교파 교회들이 가진 신앙고백을 외면하거나 폐기하고 그 대신에 모든 교회들에 통할 수 있는 막연한 ‘영성’을 강조하는 WCC 신학의 영향이다.

 

‘영성’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종교성’과 같은 말로 모든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이다. 좀 더 좁혀서 기독교에 국한하여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이해하려고 하더라도 ‘영성’은 성령에 호응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이 가진 영적 속성이라거나 영적 상태 혹은 영적 분위기 정도의 개념을 가진 말이다.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이 즐겨 쓴 말이다. 그러므로 ‘영성’은 ‘우주적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과 함께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종교로 유도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박형룡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이 일찍이 WCC의 신학과 목적을 직시하고 경고를 발해 준 데 대하여 우리는 그들의 혜안과 신앙을 높이 평가하며, 그들의 지도력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분립의 아픔을 무릅쓰고 그들의 경고에 호응하여 WCC에 대치하는 선을 구축함과 동시에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보수해 온 선배 목사님들을 치하하며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노략하는 이리떼들로부터 지키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씀(행 20:27-31)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 8)고 하는 경고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선배들이 구축한 방어선을 확고히 지켜야 한다.

 

문화를 배경으로 기독교 교파 교회들을 넘어서서 모든 종교들과 연합하여 엄청난 세력으로 몸을 불리고 있는 WCC에 대항하거나 그것과 경쟁하려면 연합 전선을 펴야 하고,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통적인 정통 신앙을 표방하는 동일한 신앙고백을 가진 교단들은 명분 없는 분열과 분립을 지양하고 교단들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선교에서 협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 출처: 기독교 개혁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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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기

 

2세기의 초반 70년은 교회 역사상 가장 모호한 시대이다. 주후96년 도미티안 황제가 죽음으로 박해는 점차 줄어들었다. 도미티안은 말년에 의심이 많아지고 포악해 져서 그를 가리켜 제 2의 네로라고 하였다.

 

♡♡ 초대교회의 문서들 ♡♡

 

* 로마의 클레멘트 서신.. 이레니우스의 글에 의하면 클레멘트는 로마의 제 2대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의 편지 내용에는 자신의 교회 이외에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가톨릭에서 말하는 것 같이 전 세계의 교회를 관할하는 권위를 내세우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열두 사도의 교훈집=디다케.. 유대적 관점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비영적이며 육체적인 욕망을 억제하는 금욕적 관습과 금식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 시대부터는 선지자들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선지자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 그가 보낸 7교회의 편지에는 가현설이라고 불리우는 초대교회의 이단과 관련하여 반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현설에 의하면 세상에 사실 때의 그리스도는 참 육신이 아니라 환상적인 육신을 가졌으며 그러므로 그의 고난도 환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그나티우스는 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감독의 권위에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그나티우스는 여러 감독들의 대표격인 장로를 감독(bishop)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감독은 한 사람의 장로이지만 영구적인 목회자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서머나의 폴리갑.. 2세기에 알려진 최고 성자요 순교자이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으며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때에 서머나에서 화형을 당하였는데 그의 인내와 유명한 말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한 지방총독에게 한 그의 답변이다. "86년 동안 나는 그 분을 섬겨왔으나 그 분은 나에게 잘못한 일이 없으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한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 져스틴 마터.. 그는 초기 변증가라고 한다. 그의 변증서에는 철학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의 사상체계는 아주 독특하였다. 그의 글을 통한 예배의 형식을 보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경낭독,사회자의 강론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의한" 즉석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장관 쥬니우스 루스티쿠스에 의하여 사형성고를 받았는데 "너희들은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살 줄로 상상하느냐?"라는 질문에 져스틴은 "나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 초기 이단들 ♡♡

 

2세기에는 여러 이단들이 일어났다.

 

* 나사렛파.. 이들은 바울을 몹시도 괴롭히던 초기 유대주의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예루살렘 멸망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관습을 버린 후에도 끝까지 집착하던 자들이다. 4세가경 까지 존재하였다.

 

* 에비온파.. 나사렛파와 유사하나 훨씬 더 급진적인 사람들이다. 유대의 율법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는 단지 세례시에만 성령이 함께하였으며 십자가상에서는 성령이 떠났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 영지주의.. 이들의 영향력은 광범위하여서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많이 퍼졌다. "영지"라는 말은 지식을 뜻하는 헤라어 그노시스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비의적이고 신비한 영적인 사람들만이 이 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물질을 악으로 여겼다. 이들의 도덕적인 생활은 처음에는 엄격하였으나 종종 방종과 방탕으로 빠져들곤 하였다. 이들중에 유명한 이들로는 발렌티누스와 바실리데스가 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는 시노페의 말시온이다. 그는 열심있는 사람이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정통 기독교의 입장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구약성경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였다. 구약의 신은 비토스라고 하는 말로 다 할수 없는 거룩한 존재로 부터 유출되어지는 30개의 유출물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마지막에 해당되는 물질의 창조의 신 데미우르지라고 한다.

 

* 몬타누스 주의.. 몬타누스 주의가 나타날 때의 교회적 상황은 최악이었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없었고 교회는 안이한 형식주의에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몬타누스는 성령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열광적인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천년왕국시대는 감각적인 쾌락이라고 말하여 교회의 재림교리를 부인하게 되었다. 점차로 감정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시보다 인간의 사색과 감정에 치우치게 되었다.

 

3. 초기 교부들

 

2세기의 교회는 영지주의에 의한 환상적인 사변과 다른 편으로는 반지성적인 환상적 극단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 시기를 이끌고 나간 여러 교부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세 가지의 과제가 부과되어 있었다.

1) 신약의 정경..당시까지는 신약의 목록이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서신들도 정경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많은 편지들이 사도가 썼는지 아니면 사도와 적어도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이 썼는지를 알아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글들을 가리켜 "성경"이라고 불렀으며 터툴리안은 구약의 위치에 신약을 올려놓았다.

2) 신앙의 규범.. 영지주의자들이 가짜 복음서와 가짜 서신들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교회는 이런 것들로부터 보호하여야만 했다. 이렇게해서 간략한 신조 혹은 신앙의 규범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도신경이다. 이레니우스는 참된 교리의 발견을 위해 사도시대에 있었던 교회들의 신앙에 의존하였다. 이 것이 교회들의 "전통"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가자 이 전통은 모호한 것이 되었고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3) 사도권 계승..이레니우스는 전통의 거룩한 수탁자로서 사도직 계승 사상을 강조하였다. 이 식부터 점차로 장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감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3세기에 이르러 터툴리안과 클레멘트에 이르면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교회가 감독직 아래서 그 통일성을 발견하게 되고 전해내려오는 전통에 비중을 두게된다. 그 결과로 전통이 성경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 골의 이레니우스 ♡♡

 

180-250 년경의 위대한 교부들 중에 첫째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의 제자이다. 그는 영지주의자와의 논쟁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그가 전통에 호소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로는 가장 유명한 이단논박이라는 책을 남기고 있다.

 

♡♡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

 

복음이 북아프리카에 전해진 이후 유명한 이들로는 바로 터툴리안과 키프리안 그리고 어거스틴을 들 수 있다. 여기서 기독교 라틴 문학이 발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크고 아름다운 도시 카르타고가 라틴 문화의 뛰어나나 중심지 였기 때문이다.

그는 법률가로서 훈련을 받았다. 그후 그의 신학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신격을 나타내는데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있다. 그의 변증서는 그야말로 걸작이다. 그는 이단을 물리침에 있어서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닥호 주장하였다. 이 이론은 더 나아가 사도권의 계승과 전통의 강조와 접목되어져 로마 가톨릭의 권위와 전통을 주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의 사상에는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 카르타고의 키프리안 ♡♡

 

그는 감독직에 대한 폭넓은 주장때문에 그리고 성직자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교회의 예배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유명해 졌다.

1) 감독의 위치를 높이려는 그의 줄기찬 주장.. 박해때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자를 어떤 회개의 증거없이도 다시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로 크게 두 파벌이 나뉘어졌는데 키프리안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감독의 위치에 대한 절대적 우월성에 대한 굉장한 주장을 하였따. 그후 그의 이 주장은 받아들여져서 거의 완전한 독재적인 교회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2)제사를 드리는 사제로서의 성직자 개념.. 그는 주의 만찬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제단에 바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변화는 중대한 것으로 후에 화체설과 미사희생을 남용을 초래한다. 당시까지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제단이나 제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이었으나 이후로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3) 감독 각자의 자치권에 대한 그의 신념.. 로마의 감독이 자신의 의견에 자신의 반대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복종을 요구하는 교령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키프리안은 전에 폴리갑과 이레니우스의 경우처럼 로마의 권리침해에 대하여 싸우게 된다.

 

여기서 아프리카의 다른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보자!알렉산더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인구 250만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 헬라문화가 아테네 다음으로 꽃피운 도시이다. 여기서 구약성경이 번역되었으며 이곳의 교회에서 배출한 지도자로는 판타이누스,클레멘트 그리고 오리겐을 들 수 있다. 이 곳에서는 교리문답학교가 있어 신학뿐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교육도 이루어졌다.

 

♡♡ 클레멘트 ♡♡

 

클레멘트는 문답학교의 교장이었다. 그는 철학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그는 모든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인 성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오리겐 ♡♡

 

당시까지 교회가 알고 있던 가장 위대한 인물은 오리겐이다. 그는 18살에 교장이 되엇다. 또한 학교의 이름을 최고로 높여놓은 것도 그였다. 그는 성경의 신적인 영감을 강하게 믿으면서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전형적인 풍유적 해석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이단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의 교리를 강조하였다.

2세기말에 나타난 단일신론(Moanrchianism)이 있다. 이 말은 헤라 신학자에게는 하나님의 신성에는 하나의 위격만이 있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1)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 예수에게 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역동적 단일신론이라고 한다.

2)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리스도안에 거했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양태의 표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주장을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라고 한다. 즉 어떤 때는 성부로 성자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항상 같은 위격이라는 것이다.

이들 이론에 의하면 성부계서 십자가에서 수난당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성부수난설자라고 한다.

 

이 상들에 대한 오리겐의 역할은 중요하였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그는 성부와 성령과 구별되는 인격을 가졌으나 그들과 하나라는 것이다. 오리겐의 성자의 영원출생에 대한 해설은 325년의 니케아 회의의 결정과 4세기의 교회 공의회의 선언에 기초가 되었다.

 

4. 시련과 승리

 

교회에 대한 박해가 250-260 정도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데키우스(249-251)와 발렌시안(254-260)의 통치기간에는 가혹한 박해가 있었다. 이 시기는 로마에 있어 큰 재난의 시기이다. 사방에서 침입해 오는 야만족들의 침입이 심각했는데 그중 고트족의 침입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박해의 대표적인 희생자는 키프리안을 들 수 있다. 3세기로 접어들기까지 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 디오클레티안때에 기독교의 예배장소와 모든 종교서적을 파괴하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 이들이 아름다운 교회당에 들어갔을 때 아무런 신상이 없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서방황제 막시미안도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에서 이 칙령을 준수하였는데 그의 부제로 골과 브리테인 그리고 스페인을 다스리던 콘스탄티우스는 하나님의 성전인 육체가 그렇게 가혹하게 학대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박해로 인헤 사람을 죽이는 일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의 아들 콘스탄틴이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었다. 그는 밀비안 다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기전에 특이한 영적체험을 하게 된다. 헬라어 문장이 새겨져 있는 불타는 듯한 십자가를 본 것이다. 그는 공동황제였던 리시니우스를 물리치고 전 지역의 황제가 되었으며 3133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하였다. 기독교에 몰수되었던 재산을 돌려주고 무조건적인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그는 후에 매우 사치해져서 이교도의 예복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감독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교회에서 예복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4세기말에 이르러 거의 모든 이교도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자체내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길한 전조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성직자의 세속적인 야심과 성례가 사상 그리고 수도원 제도등이 자라나고 있었다.

 

5. 주요 회의들,주요 인물들,주요 사건들(325-500)

이 시기는 단적으로 격렬한 신학적 논쟁의 시기다.

 

아리우스 논쟁 ♣ ♣

 

아리우스의 견해에 의하면 아들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앞서고 고귀하기는 하지만 본성과 위엄에 있어서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던 알렉산더는 동일본질임을 주장하였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더와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의 노력이 실패하자 324년 니케아에서 회의를 소집한다.

토론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동일본질(Homousius)인가 유사본질(Homoiousius)인가였다. 결국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에 의해 그리스도는 동일본질임이 주장되었고 아리우스는 파문당하였다.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사벧리우스 주의에 반대하여 성령의 신성을 특별히 주장한 회의였다.

431년 에베소 회의는 콘스탄티노플의 웅변가적인 감독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여 내쫓았다. 그가 단성론자들에 반대하여 지나치고 양성론을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인격이 아니라 두 인격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당시 마리아에게 데오토코스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이 뜻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말이다. 여기에도 반대하여 그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지 그의 신성의 어머니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회의는 불공종했으며 그는 유배되었다. 그후 네스토리안 교회는 페르시아와 아르메

니아에서 확장됴으며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에베소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를 반대하던 유티케스가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의 본성 신성만을 가르친다고해서 정죄당하였다.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449년 에베소회의에서 그를 인정하였으나 이 회의는 난장판이었으며 일명 강도회의라고 부른다. 그후 칼케돈회의에서 다시 정죄당하였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결론은 이렇게 났다. "그리스도가 변화나 혼합됨없이 두 본성을 지니고 있으나 한 위격속에 연합되있다고"고 확인되었다.

 

탁월한 인물들 ♣ ♣

 

1) 포이티어스의 힐라리.. 아리우스에 대항한 서방의 위대한 투사

2) 밀라노의 암브로스.. 황제 발렌티니안2세의 어머니가 아리우스파를 위하여 예배처를 요청했을 때 거절한 사람이며 서방제국의 왕좌를 탈취한 막시무스에게 성찬정지시켰고, 데살로니가의 반란군에게 학살을 명한 데오도시우스대제에게 8개월간의 교회출입을 금지시킨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3)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그의 신학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며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쳤다.

4) 세 사람의 카파도기아인.. 가이사랴 감독 대 바실, 그의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 그들의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를 들 수 있다. 동방교회의 위대한 인물들이다.

5) 존 크리소스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로 이름나 있으며 "황금 입의 존"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6) 제롬..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역을 내 놓은 사람이다. 그는 은둔생활을 하며 수도원주의와 독신주의자이다.

7) 레오대제.. 451년 칼케톤 회의에서 그와 로마의 그의 계승자에게만 "교황"이라는 명칭을 쓰기로 합의했다. 그후 그는 로마의 감독이 세계의 감독권을 갖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칼케톤회의에서 그의 주장은 거부당했다. 그러나 교황 지상권에 대한 주장은 후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격변하는 세계(400-500) ♣ ♣

 

이 시기에 야만족들의 침입이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서고트족의 알라릭은 410년 로마를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다행인 것은 이 야만족들이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란 점이다. 그래서 다행히 기독교의 피해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410년 로마의 마지막 군단은 골과 이탈리아를 방어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다. 그러나 쥬트족,앵글족,색슨족등이 북부독일로부터 건너와 동부 잉글랜드와 남부 스콜틀랜드의 교회를 파괴하였다. 서부의 켈트 교회만이 살아 남았다. 이로서 로마 문화는 크게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꿋꿋한 튜튼족은 무력한 문명을 대체하기 위하여 새로운 힘과 활력을 심었다. 이 시기가 기독교에 있어서는 어려운 시기였다. 비록 이교도들이 개종을 하기는 했지만 각종 미신과 오류가 유입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로마의 감독들에게는 개인적인 위치를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교도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귀족들은 도망갔으며 감독의 도덕적인 권위가 크게 증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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