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설날)  /복된 동행, 복된 인생(Sunday Sermon)

제목 : 복된 동행, 복된 인생

본문 : 창5:21-24

 

1.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복된 인생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성도 여러분과 고향을 찾은 모든 성도여러분의 가족과 일가친척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귀한 설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정말 하나님 앞에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혈육간에도 진정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를 마음껏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저는 명절 때면 가끔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저희 집은 가난해서 초가 삼 칸에 살았는데 우리 이웃에는 안채는 커다란 ㄱ자 기와집이고 사랑채도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기와집인데다가 큰 대문이 있는 부잣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집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집에는 제 또래의 예쁜 소녀가 살고 있기도 해서 가끔 그 집 대문 안을 기웃거려 보곤 하였습니다. 그 집 안뜰에는 화단도 잘 가꾸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꽃나무도 심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대하게 제사도 지내는 등 그 집은 저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는 제가 어린 마음에 철도 없고 예수님도 몰랐기 때문에 부러워하긴 했는데 그게 정말 부러움의 대상일까요? 물론 뭐 그런 것도 좋은 것이긴 하지요. 가난하고 초라하게 사는 것보다야 기왕이면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것 먹으며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게 좋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외적인 환경들이 우리를 정말 아름답고 귀하고 가치 있고 복되고 위대한 인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답고 대단하고 멋있는 인생은 말할 것도 없이 완전히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며 그 뜻대로 바르게 아름답게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생의 가치가 있고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대궐같은 집에서, 명절이면 시커먼 승용차가 몇 대씩 몰려오고, 뭐 가문에서 장관이 나고, 판검사가 나고 그래서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는 것들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것들 정말 별거 아닙니다. 암만 그래봐야 그런 것들이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거짓과 편법을 행하기 쉽고 그래서 상처와 고통을 주기 쉽고,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것들 바라보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래서 결국 영원한 진노를 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떵떵거리며 잘먹고 잘사는 것이 멋있고 가치있고 위대한 삶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죄와 무지와 왜곡된 가치관속에 있는 인생들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녕 중요한 것은 우주 만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시며, 생명의 주관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 안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주님과 동행하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이라야 지금 여기서도 정말 아름답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이요, 나아가서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인 것입니다.

잠4:7~9절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보세요. 지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지혜를 얻고 지혜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영화로운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도를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복된 설명절에 오늘까지 하나님안에서 살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정말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 귀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귀하고 복된 인생이 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생명이시고 기쁨이시고 평안이시고 영광이신데 그 주님과 동행하면 그 은총을 누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총을 주지 못하는 것들과 동행하면 어찌 그 은총을 누리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에녹이라는 사람은 온전히 주님과 동행함으로 놀라운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인간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도 없습니다. 22절 말씀 보세요.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므두셀라는 그냥 보통 사람으로 밥먹고 일하고 결혼해서 아기 낳아 기르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오직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에녹과 선지자 엘리야, 이 두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너무나 영광스럽고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24절을 보겠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말씀그대로 에녹이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니까 그를 산채로 데리고 가셔서 세상에 있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황홀했겠습니까? 산채로 그 몸이 영화의 몸이 되어 두둥실 떠올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꿈속에서 가끔 새처럼 날아다닐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속된 말로 기분이 얼마나 째집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건 속된 말로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에녹은 더 이상 세상의 시간과 공간과 모든 힘들고 약하고 어려운 것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화의 몸이 되어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간 것입니다. 한번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황홀했겠습니까? 너무나 감격스러워 할렐루야! 할렐루야가 저절로 터져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에녹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그것은 앞에서 보았던 22절과 2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뭡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에녹은 365년을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특별한 은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면 분명히 은혜를 충만하게 받습니다. 당연하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와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다면 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이 안되는 것은 자꾸 세상에 뭐 다른 좋은 것은 없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 안에 정말 좋은 게 있는데 왜 한눈을 팔겠습니까? 그런데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들이 자꾸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즐거움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동행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면 곤란한 거예요. 이건 결국 하나님을 잘 못믿는 거예요. 안 그래요? 아니 하나님 안에 생명과 기쁨과 진리와 은혜와 사랑과 평안과 축복이 있는데 왜 그걸 놔두고 엉뚱한데 가서 기웃거리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이걸 잊지 말고 그저 갓난아기처럼 사나 죽으나 하나님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잘났다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경험이나 지식을 따라 내 눈에 보이는대로 살아가지 말고 주님이 가시는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까짓 별것 아닌 세상의 돈이나 명예와 권세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 따라가지도 말고 오직 우리의 유일한 생명이시며 길이시며 진리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답고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의 목표와 방향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표에 우리의 뜻과 우리의 뜻을 일치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려면 하나님과 뜻이 같아야 하고, 방향과 목표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이 목표인 사람과 부산이 목표인 사람이 함께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사가 되려는 사람과 축구선수가 되려는 사람이 같이 공부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표와 내 목표가 다르면 결코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목표와 방향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하나님의 목표와 방향과 뜻에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 안에 생명과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무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운 것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걸 일치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날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데,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의 뜻보다 높고 깊고 완벽하신데 하나님께 나를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요10: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목자이신데 거기에 생명과 평안과 안식이 있는데 무얼 따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말씀 듣고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목표와 방향을 고집하지 말고, 자꾸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목표와 방향에 맞추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과정과 방법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표와 뜻이 같더라도 방법이 다르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같이 제주도가 목적지라해도 한 사람은 비행기 타고 가고 한 사람은 배타고 가면 동행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백두산에 오르면서 한 사람은 중국 쪽에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은 북한 쪽에서 올라가면 동행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려면 목표와 뜻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방법까지도 하나님의 뜻과 동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물질만능주의, 과학지상주의, 개인이기주의 풍조가 만연된 세대에서는 우리는 이점을 특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하고, 권력도 얻고, 문명의 이기도 가능한 많이 누려야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문화적 혜택을 보다 많이 누리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권력을 얻고, 문화생활을 즐기되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고 누리는 과정이나 방법들도 하나님 뜻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만한 방법과 과정으로 돈과 명예와 권력도 얻고 또 얻은 것들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에서도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방법과 과정을 무시한 채 얻으려고 할 때가 많고 또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저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진정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고 시기와 질투와 갈등과 싸움을 유발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은 결코 성공할 수도 없고 진정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설령 인간적으로 성공을 한 것처럼 보여도 결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설령 많은 것을 가졌어도 물거품이 될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결국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11:9절을 보십시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목표와 방향을 하나님의 뜻에 맞춤과 동시에 그것을 이루는 방법과 과정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추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설령 돌아가는 일이 있어도, 설령 늦게 성취하는 한이 있어도, 설령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그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어떤 일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해서 얻은 것들을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또 하나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에녹은 무려 300여년 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연합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해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어떻게 동행이 가능합니까? 연합되면 가능한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 서로 한 덩어리로 묶여져 있으면 온전한 동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 기분이 좋고 사이가 좋고 상황과 환경이 좋으면 어느 정도 동행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뭔가 좀 상황과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둘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묶여져 있으면 기분과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절대 분리되면 안됩니다. 주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인과 종으로 연합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주인과 종으로 연합되었으면 이제는 당연히 주님이 생각하는대로 생각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말하고, 주님이 가시는 곳에 가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합된 관계요 그러면 자연히 동행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 15:5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과 온전히 연합되어 주님을 멀리하거나 따로따로 놀거나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엉뚱한 것과 동행하지 말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래서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주님께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오직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온전히 연합되어 동행할 때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기쁨과 감사와 위로와 평안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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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주일예배설교  어버이의 사랑(삼하18:31-33)

말씀 : 삼하18:31~33

제목 : 어버이의 사랑

제법 오래전에 부모의 재산을 갈취하고 부모를 해외에 방치한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가 방송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딸만 둘이 있었는데 결혼해서 둘 다 캐나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부모님에게 캐나다로 와서 함께 살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 재산을 다 정리하고 정리한 돈을 캐나다에 있는 큰 딸에게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딸을 찾아도 딸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공항경찰의 도움을 받아 큰 딸이 보내준 주소지를 찾아 가게 되었는데 딸이 적어준 주소지에는 딸은 없고 엉뚱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시 둘째 딸이 살고 있다는 주소지를 찾아갔는데 역시 둘째 달 부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찾았지만 끝내 딸을 찾지 못한 부부는 오갈 데 없는 국제미아가 되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이 노부부는 교회에서 쪽방에서 지내며 교회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돈과 폐지와 깡통 등을 주워 조금씩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이 부부만이 아니라 해외에 살면서 늙은 부모를 모시겠다는 말로 부모의 재산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 버리는 사례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야말로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인생을 다 쏟아 부으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은 못할망정 노후대책으로 남겨놓은 재산 마져 빼앗아 버리고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있다니 이건 정말 같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인데요, 사실은 어버이 주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서글픈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잘하면 이런 날을 만들 필요가 없는데 잘 못하기 때문에 좀 잘해보자는 의미로 무슨 날, 무슨 날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평소에 자녀들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올바르게 양육한다면 어린이날을 굳이 만들 이유가 없지요. 평소에 부모님을 공경하고 바르게 섬기면 어버이날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가정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가족 간에 진실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그러면 가정의 달을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일부러 이런 날들을 만들어서라도 가정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잘하며 바르게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 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 다시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에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다시한번 되새기며 부모님을 바르게 섬김으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결국은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부모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오늘 말씀은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다윗이 통곡하고 있는 장면인데 이 말씀을 보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됩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압살롬은 제일 잘생기고 영리하고 용기 있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왕이 되려는 야욕에 사로잡혀 눈이 뒤집혀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이 되기 위하여 4년 동안 몰래 군대를 훈련시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민심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게 되는데 다윗은 이미 민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간 것을 알고 급히 예루살렘에서 도망가게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환을 없애고 왕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계속 아버지를 추격합니다. 세상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다니 이런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요? 결국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반역자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큰 잔치를 베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에게 포상도 하고 치하도 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럴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비록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했던 천하의 몹쓸 자식이었지만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몹쓸 자식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말씀인 것입니다. 33절 같이 읽겠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여러분, 다윗은 지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면서 목놓아 울고 있는데 이 자식이 어떤 자식입니까?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 했던 천하에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는 몹쓸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식의 죽음 앞에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패역부도한 자식이라도 그래도 내 몸에서 나온 내 핏줄이요, 내 분신이기에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했던 천하의 나쁜 자식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목 놓아 울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요 동시에 바로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인 것이지요. 자신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자식만은 어떻게든 잘먹고 잘살게 해주려고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부모님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잊으면 안 되는 거지요. 이걸 잊는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우선적인 의무이며 도리이며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부모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과 부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렇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총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부모는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여깁니다.

여러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이 없어서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늘 부족하게 여기며 그래서 혹시 자식이 뭔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마치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 같아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다윗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압살롬이 그렇게 못된 자식이 된 것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아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일생일대에 지울 수 없는 너무나 커다란 과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만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십니다. 그러자 다윗은 불행 중 다행으로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참회를 하게 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용서는 받지만 그 심각한 범죄에 대한 징계까지 면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그를 용서하셔서 왕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게 하시되 범죄에 대한 징계는 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하12:1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집 안에서 혈육간의 죽고 죽이는 비참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말씀대로 큰 아들 암논이 압살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죽임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의 이런 패륜아적 행동이 자신의 범죄의 결과라고 여기고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가정에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모도 물론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죄 가운데 빠질 때도 많습니다.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잘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자식이 뭔가 좀 힘들어지고 잘못되고 엉뚱한 길로 가고 하면 다 나의 부족함과 무지와 허물과 죄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미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식은 설령 부모님이 부족하고 자식에게 잘못 할 때가 있다해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는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심지어 죄가운데 빠질때도 있고 혹시 자식에게 해준 것이 없어도 그래도 자식에게 만큼은 공경 받고 섬김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잘 났건 못났건, 인품이 훌륭하든 훌륭하지 못하든, 사회적 지위가 있든 없든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오,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우리를 양육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와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귀한 생명을 주신 것만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 비록 부족한 것이 많았다 할지라도 그래도 주어진 환경과 상황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희생하며 우리를 양육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부모님이 부족한 것이 많아도, 혹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어도 생명주시고 이제껏 양육해 주신 그 한가지만으로라도 감사하며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결국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생명보다 사랑합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반란 사건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다윗의 관심은 온통 자기 아들 압살롬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요압이 이 말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이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게 전령이 와서 승전보를 전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다윗의 관심의 초점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는 압살롬의 안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승전보를 전하러 온 사람에게 제밀 먼저 묻습니다. 오늘 32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은 승전보를 가지고 온 사람인데 다윗은 그에게 다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압살롬의 안부를 먼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몹쓸 불효자식이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에 나온 자기 생명과 같은 존재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목놓아 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어버이의 사랑과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풍조를 보면 안타깝게도 부모님께 대해 소홀히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는 저도 사실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자녀에게나 아내에게나 부모님께나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20여년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올해 88세이신데 사실 저희 어머니는 그런대로 노년을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 편입니다. 형님 내외분과 살고 계신데 형님 내외분도 살만 하시고 특히 제 둘째 여동생이 남편은 읍장이고 자기는 건강보험공단 차장으로 있어 살만하여 어머니께 용돈도 많이 드리고 딸 들 다섯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뵈며 잘해 드려서 저의 어머님은 노년을 평안하게 보내시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멀리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로, 그리고 어머님이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지내고 계시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해서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내가 바보 같아서 아무 것도 못해 주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니까 더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물론 저의 부모님 뿐 아니라 모든 부모들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식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며 자식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하고 많은 것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러한 당연한 가치관이 자꾸 퇴색해져 가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해 드리지 않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선거 때에 보면 어떤 돼먹지 못한 젊은이들이 무식한 꼰데들 때문에 나라가 제대로 안된다며 선거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4년전 국회의원 선거 때는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작자가 꼰데들은 방해만 되니까 투표하지 말라고 말했다가 된통 혼이 난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안 늙습니까? 제 혼자 태어나서 제 혼자 잘나서 제 혼자 공부하고 제 혼자 잘나서 나라 세웁니까? 모두가 우리 부모와 선조들의 덕분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뛰고 날아도 하나님이 안 해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지혜와 힘과 능력과 은혜를 주시고 상황과 환경과 여건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시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혼자하시지 않고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부모들의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또 우리가 이렇게 부족함 없이 살게 된 것도 우리 부모님들이 못 먹고 못 입고 못 자면서 수고하신 덕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을 무시하지 말고 공경하고 받들어 모시고 대접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본분이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롤 공경하고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축복도 약속하신 것입니다. 출20:12절을 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당연하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데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우리를 양육하셨는데 어찌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알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인간의 본분을 다할 때에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어버이 주일을 보내며 다시 한번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길 때에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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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내 아버지 집 (Sunday Sermon)
제 목 : 내 아버지 집

말 씀 : 요2:13-17

 

1.세상에서 가장 귀한 교회

올해 우리교회는 창립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워주시고 지난 55년간 인도하시고 역사해 주셔서 오늘의 우리 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사람들 보기에, 심지어 우리 자신이 보기에도 대단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숫자는 많지 않지만 그러나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므로 한 영혼만 구원해도 천하보다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걸 정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너무나 귀한 공동체이고, 우리가 하는 일들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복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이곳에 이 귀한 교회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 교회가 있기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겨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같이 박수 한번 칠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이 귀한 생명의 역사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수고하고 헌신하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너무나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물론 무슨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나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 것도 그런대로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아무리 대단한 시설이 있다해도 귀한 영혼을 살리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고, 그래서 영원한 천국의 은총은 물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도 참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교회와는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이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참된 자유와 평화를 줍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참 행복을 준다면 선진국은 벌써 파라다이스가 이루어졌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먹을 것도 제대로 없던 시절보다는 백배도 더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보다 100배도 더 잘살고 있는데 도리어 과거보다 더 달라고 아우성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빼앗고 난리를 칩니다.

여러분, 정말 영원히 그리고 지금 여기서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참된 행복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위로를 누리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고 바르게 누리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의 은총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을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곳이고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다른 어떤 공동체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이 귀하고 복된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84: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상사병이 난 것처럼 성전 즉 교회를 너무너무 사모한 나머지 그만 상사병이 날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거기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가운데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가운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오늘 교회 창립55주년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교회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교회를 가까이 하며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진정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자유와 평안이 넘쳐나는 복되고 아름답고 귀하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열심히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공동체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의 일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하고 복된 일인데 어찌 이 귀한 일에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 온갖 멸시 천대 조롱 핍박 고통 심지어는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까지 당하심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입어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그 귀한 생명의 역사에 어찌 열심히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에도 보면 주님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교회를 섬기셨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유대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한 자들이 제물을 팔고 로마화폐를 유대화폐로 환전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상적으로 장사를 하는게 아니라 정상가의 두 배는 비싼 값에 팔아 폭리를 취하면서 집에서 가지고 온 제물은 트집을 잡아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성전에 와서 비싼 값으로 제물을 사서 드렸습니다. 또한 로마 화폐를 유대화폐로 환전을 해주면서 과도한 수수료를 받으며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무너무 화가 나셔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십니다. 오늘 15절을 보겠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 온유하시고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이 오죽하면 채찍을 휘두르시고, 상을 둘러엎고, 돈을 쏟아버리시기까지 했겠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 이유는 16절 말씀에 있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즉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그래서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곳인데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할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셔서 우주공간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세우신 공동체로 특별하게 임재하셔서 은혜를 주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섬김과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를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며 섬김으로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사람들이 자꾸만 개인주의와 편의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도 않고 적당히 그냥 자기 편한대로 종교생활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고, 심지어 주일날도 시간 되면 나오고 바쁘면 안 나오고, 심지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교회에 나오지 않고 혼자 하나님 믿으며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와같이 어리석은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 영어공부하지 않고 영어잘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일하지 않고 잘 먹고 잘사는 방법 있습니까? 열심히 피아노를 치지 않고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신앙생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우리 영성이 풍성해 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헌신과 수고와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열심히 교회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비판하기 전에 나는 교회가 인정받고 신뢰받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힘쓰며 거룩한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선은 나 자신이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고 교회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주님의 역사를 힘차게 이루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와 여러분이 오늘 교회 창립55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면서 우리 다같이 한마음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교회의 행하는 모든 일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물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며 또한 각자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향기가 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자신이 먼저 생명의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고 우리가 교회가 주님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 가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교회의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소중한 곳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기본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프로그램과 시스템과 외적인 조건들이 좋아도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기초 없는 빌딩과 같고 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넘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을 지키고 풍성하게 하며 교회가 힘있게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기초이며 근본이며 핵심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통하여 생명력을 공급받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잖아요? 우리 육신이 튼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적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문화생활도 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이 찌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소홀히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충만하게 덧입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그저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과 세상의 풍조대로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4:23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보십시오.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왜요? 예배가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은혜를 덧입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행위이고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기본적으로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게 여러분의 신앙과 교회를 지키는 기초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는 비결입니다. 그게 더욱 풍성한 영적 생명력과 더욱 온전한 분별력을 갖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본에 더욱 충실하여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어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려면 그저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대로 당장 편하고 즐겁고 좋은 것만을 따라가려는 편의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죄와 무지 가운데 있어서 이러한 편의주의에 빠지면 결국은 믿음이나 선이나 진리나 의 등의 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당장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을 따라감으로 결국은 생명의 길을 떠나 죽음의 길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전에서 제물을 팔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과 오순절, 장막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와서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오는 사람은 200리도 넘는 길을 와야 했기 때문에 그 먼길을 제물을 가지고 오려면 불편하니까 그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성전에 사서 드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환전도 마찬가지지요. 로마의 화폐는 드릴 수가 없어 유대화폐인 세겔로 드려야 하는데 돈을 바꾸기 위하여 일부러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고 성전에 오면 바로 바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환전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시작했던 일이 나중에는 변질되어 기득권자들의 치부수단으로 전락하고, 결국 성전을 도둑놈의 소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가 편의만을 추구하다보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편한 것, 재미있는 것, 육체적 물질적으로 유익한 것, 간편한 것, 현실적인 필요만을 생각하다보면 상황논리에 빠지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결국에는 알맹이도 생명도 없는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서양교회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녁 예배가 오후 예배로 바뀌고,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져서 오후예배를 없앴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것도 귀찮아 그냥 집에서 드리거나 주일날 어디 놀러갔다가 잠깐 예배드리고, 그러다가 꼭 예배드려야 믿나? 마음속으로 믿으면 되지. 꼭 기도해야 되나, 기도 안 해도 다 아시는데. 꼭 십일조 드려야 되나? 마음만 드리면 되지? 그러면서 주일성수와 예배와 기도와 헌금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도 이미 그걸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오래지 않아 오후예배와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를 없애자고 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없앤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꼭 교회에 가야하나? 꼭 주일성수해야 하나? 십입조 드려야 하나?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사탄이 던져주는 달콤한 미끼입니다. 그걸 물면 마귀에게 낚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영혼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롬12: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죄와 무지 속에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져 만들어 놓은 왜곡된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자유가 있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창립55주년을 보내면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이 교회를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교회를 섬기는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왜곡된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인생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 하며 교회를 섬기고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여러분이 더욱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우리 교회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더욱 힘있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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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예식  

유아세례 예식문 

세례의 교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회중 여러분,
 거룩한 세례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는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의식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예식에서 우리의 영혼의 불결함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정결함과 구원을 우리 밖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인(印)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성부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어 주심을 선언하시고 인을 쳐 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은 피하게 하여 주시거나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자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신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신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모든 언약은 약속과 의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셋째,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순종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는 순종할 의무를 짊어집니다. 즉 우리는 이 한 분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신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우리의 옛 본성을 죽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그냥 죄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인이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근거
 비록 우리의 자녀들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들을 세례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치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아담이 받은 정죄에 참여한 것처럼, 그들이 알지 못하여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의 자녀에게도 내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동일한 말씀으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것은 언약의 인이고 믿음의 의에 대한 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손을 얹어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새 언약 아래에서는 할례 대신에 세례를 제정하여 주셨으므로 어린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언약의 상속자로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을 따라서 부모는 그들의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 알도록 가르쳐 줄 의무가 있습니다.

 

세례 전의 기도
 이 성례를 거행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의 믿음이 굳세어지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의로우신 심판 가운데 믿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으나 믿는 노아와 그의 가족은 주님의 크신 자비로 구원하여 주시고 보존하여 주셨나이다. 주님께서는 강퍅한 바로와 그의 백성은 홍해에 수장(水葬)시키셨으나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곳을 마른 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심으로써 이미 세례를 예표(豫表)하여 주셨나이다.
 이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의지하여 기도하오니, 주님의 이 자녀를 은혜로 하감(下鑑)하시사 주님의 성신으로 사랑하시는 아드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시기를 간구하옵나이다. 이 아이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아이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가게 하여 주시며 참된 믿음과 굳은 소망과 열렬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 붙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삶은 계속되는 죽음일 뿐이지만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에서 위로를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하여 주시며, 마지막 날에 주님의 아드심이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성부와 성신과 더불어 한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살아 계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부모에게 하는 서약 문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부모 여러분,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을 치려고 제정하신 것임을 그대들은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례를 그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습관적으로나 미신적으로 행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러한 뜻에서 세례를 원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려고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하니 신실하게 대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의 아이들이, 비록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여서 모든 비참함을 겪고 심지어 영원한 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으며, 따라서 교회의 회원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십니까?
 둘째, 그대들은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이 구원을 위한 참되고 완전한 교훈이라고 고백하십니까?
 셋째,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그대들은 이 모든 말씀대로 서약하시겠습니까?
 대답: 예, 그대로 서약합니다. (부모가 함께 대답한다.)

 

세례
 예수 믿는 자의 아이 ○○○을(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감사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와 우리 자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성신으로 주님의 독생자의 지체로 삼아 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옵나이다. 또한 이 사실을 세례를 통하여 인을 쳐 주시고 확정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해 비옵나니, 이 아이를 주님의 성신으로 계속 다스려 주셔서 이 아이가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양육을 받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께서 이 아이와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신 아버지와 같은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우리의 유일한 선생이시요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죄와 마귀와 그의 모든 통치에 대항하여서 용감하게 싸우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아이로 하여금 아버님과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님, 곧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영원히 찬양하고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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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  성찬식예배절차 성찬식예순서

 

성찬식의모범

      성 만 찬  예 배 순 서 

 

    * 한 곳은 일어선다.
     11시
   1.전  주(묵상기도) -------------------------------------------------- 반 주 자
* 2.입 례 송  ------------------------ 1 3 장 ------------------------- 다 같 이
                   담임목사, 부목사를 비롯한 예배 위원들과 성가대원들이
                   예배당 입구에서부터 행진하여 강단으로 나아간다.
* 3.인   사
        목 사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회 중 : 목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4.예배에의 부름 ----------------------------------------------------- 집 례 자
              (인사를 하고 종을 치면 모두 눈을 감고 부름의 말씀을 듣는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1-2)


* 5. 찬  송 -------------------------- 2 7 장 ------------------------- 다 같 이
* 6. 죄의 고백 ------------(다함께 고개를 숙인채 기도한다)------------- 다 같 이 
         오늘도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 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2,000년전 갈보리 언덕위 십자가에서 당신의 두 손과 발에 못을 박는
        그 둔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당신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였건만 우리는 우리의 온맘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였나이다. 우리가 지은죄가 너무나 크고 무거우오니
        하나님이시여 용서하여 주옵시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께 날마다 영광 돌려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


* 7. 용서의 선언  ----------------------------------------------------- 집 례 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 8. 사 도 신 경 ------------------------------------------------------ 다 같 이
* 9. 성 시 교 독 -------------------- 54 성 례 식 --------------------- 다 같 이 
  10. 찬       송 ------------------------ 4 5 3 ----------------------- 다 같 이
  11. 대 표 기 도 ------------------------------------------------------ 맡 은 이
*12. 구약말씀 봉독 ------------------- 시 23: 1 - 6 ----------------- 남자 집 사   
*13. 신약말씀 봉독 --------------------요 5 : 19 - 29 --------------- 여자 집 사 
  14. 찬       양 ------------------------------------------------------ 성 가 대 
  15. 설       교 ------------------푸른 초장에 대한 그리움 ------------ 설 교 자 
  16. 기       도 ------------------------------------------------------ 설 교 자
  17. 주 기 도 문 ------------------------------------------------------ 다 같 이
  18. 성찬 찬송과 봉헌 ------------------------------------------------- 다 같 이
                 찬송가 3장을 회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부르면서 장로들이 강단에
                 미리 준비된 상의 상보를 걷는다.
 
성만찬의 예전
  19. 처 음 기 원 ----------------------------------------------------- 집 례 자
       목 사 :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가 언제나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회 중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을 바르게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못한 것 용서 하옵소서.
   20. 권 면 ---------------------------------------------------------- 집 례 자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성찬은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사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우리로 악한 죄를 이기게 하시고
          모든 고난에서 더욱 굳세게 하사,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책임을 감당케 하며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시고 마음의 평안함과 영생의 소망을 확실하게 하
          여 무한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베푼 상을 통하여 그리스도 앞
          으로 나갑시다.
   21. 성경봉독및 간구 ----------- 고전 11 :23-29 ---------------------- 집 례 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생자를
           보내시어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께서 온몽으로 온세상의 죄를 사하시고
           완전하고 거룩하신 희생 죄물이 되사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여 죽으심을 기념
           하는 성례를 세우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을 행하라고 분부하셨나이
           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간구하옵나니 우리으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이 떡과 잔을 축복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이 세우신 성례대로 이루게 하
           여 주시옵소서. 이제 부족한 저희들이 주님의 보혈을 기념하여 영생의 떡과
           구원의 잔을 받고자 하오니 생명과 은총을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주님의
           베푸신 상에 같이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2. 성 찬 ------------------------------------------------------------- 위  원
            1. 떡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말씀을 성취하옵소서.
               (고린도전서 11:23-25)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시고(집례
               목사는 전병을 눈 높이 위에까지 높이 쳐들어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한다)감사 드리신 다음에 떼시며(집례목사는 전병을 쪼갯 성반위에
               올려 놓는다)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습니다. 찢기신 몸을 기념하며 주의
               떡에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합시다.
                 ‘이것은 나의 몸이라. 너희를 위하여 준 것이니 행하여 나를 기념하
               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세우신 이 성찬을 베풀고 우리도 떡을
               떼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을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들이 나누     
               는 이 떡이 영생의 떡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
               니다. 아멘.
                (목사가 받고 교인에게 나눈 후 빠진 자의 유무를 확인하고 장로들에게
                 나누어 준다.)
            2. 잔
              식후에 주께서 잔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
             이니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림이라 하시었습니다. 우리가 이 잔
             을 받을때 합당하게 믿음으로 언약의 축복이 새로와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저희가 주의 잔을 나누어 가지려 합니다. 흘리신
             보혈이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옵소서. 주의 사랑 본받아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잔이 언제나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 아멘.
               (목사가 받고 교인에게 나눈 후 빠진 자 유무를 확인하고 장로들에게
                 나누어 준다.)
    23. 감사와 축복의 기도 --------------------------------------------- 집 례 자      
                오 !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세례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이 성만찬에서 기쁨으로 충만케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께서
               우리들을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살려 주셔서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살
               아 계셔서 세상 끝날까지 성령과 함께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 이
               름으로 기도합니다.  
* 24. 찬      송 --------------------- 3 5 1 -------------------------- 다 같 이
* 25. 파송의 말씀
          목 사 :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으로 선교와 봉사를 위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회 중 : 주여!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 26. 축      도 ------------------------------------------------------ 집 례 자     
   29. 후      주 ------------------------------------------------------ 반 주 자


    * 성찬 준비
         성찬예식은 당회가 작정하고 적어도 1주일 전에 회중에게 알려서 마음에
        준비를 시켜야 한다.
    * 성찬후 처리
         성찬에 쓰고 남은 떡과 포도즙은 목사의 책임하에 신중히 처리하되
        가급적 땅에 묻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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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설교

주일낮설교   

제 목 :

말 씀 : 시103:1-5

1.너무나 큰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우총사진 보여주기) 주일날 아침부터 그것도 감사주일 아침부터 웬 무덤이냐고 하시겠지만 이게 무슨 무덤인지 아세요. 의우총이라고 소의 무덤과 묘비입니다. 이 의우총은 상주에 있는데 이 의우총이 세워진 유래는 이렇습니다.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의 서상모라는 분이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다 기르게 되었는데 이웃에 사는 김보배라는 할머니가 이 소를 너무 예뻐해서 오고가며 늘 쓰다듬어 주고 배추나 고구마나 옥수수 등 먹을 것을 종종 갖다 주곤 했답니다. 그렇게 송아지때부터 어미소가 될 때까지 아니 그 후로 약10년간 그렇게 이 소를 사랑해주다가 8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다음날 이 소가 없어져 동네 사람들이 나서 찾았는데 글쎄 이 소가 김보배 할머니의 무덤에 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무덤은 외양간에서 2km 정도 떨어진 산 중에 있었는데 어떻게 찾아갔는지 거기에 가 있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소가 할머니의 산소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아들이 이 소가 하도 기특하고 고마워서 막걸리와 두부와 배추 등을 접대하며 조문객으로 예우를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이 소가 19살의 나이로 늙어 죽었는데 마을사람들이 이 소를 극진한 예를 갖춰 장례를 치러 주었고, 상주시에서는 그 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의로운 소의 무덤 ‘의우총’을 만들어 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약간은 과장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 소를 통해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됩니까? 사실 이 소뿐만 아니라 우리는 은혜 갚은 동물 특히 은혜 갚은 개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동물도 이와같이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얼마나 더 해야 하겠느냐 그런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요? 만물의 영장인 우리가 동물만 못해서야 어떻게 체면이 서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은혜를 안다면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할 줄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가 잘나서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우리는 은혜가 아니면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고, 이차적으로는 사람의 은혜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일단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는 것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생명은 어디서 왔습니까? 물론 부모님이 주셨지요. 그럼 그 부모님은 어디서부터 오셨습니까? 물론 조부모님이십니다. 그러면 그 분들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진화론을 사실로 생각하는데 사실이 아니라 가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찌해서 단세포 생명체가 생겨나더니 점점 진화해서 무슨 벌레 같은 것이 되고 좀더 진화해서 어류도 되고 파충류도 조류가 되고 그러다가 짐승이 되고 그 중 하나인 원숭이가 점점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학의 법칙에 의해서도 생명체는 결코 저절로 생겨날 수 없습니다. 설령 만에 하나 단세포 생명체가 생겼다해도 그 단세포 생명체가 이 신비하고 오묘하고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사람까지 진화가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 그래요? 벌레의 어디에 인간의 이 신비하고 오묘하고 지혜롭고 영광스러운 유전자가 있기에 그게 사람까지 진화가 됩니까? 우주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빅뱅론이니 뭐니 어쩌구하는데그것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이든 자연이든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면 그 어떤 방법으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이든 인간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물질, 생명, 육체는 물론 이성, 지성, 감성, 능력, 지혜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숨쉬고 하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지혜와 능력과 지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태양과 공기와 물과 양식을 먹고 마시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1분 1초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대상29:14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부모님의 은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만 아닙니다. 교회가 있기 때문에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알고 생명을 얻고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고 입고 잠자고 하는 것은 물론 자동차, 스마트폰, 텔레비전, 냉장고, 문화시설, 체육시설, 이 부요함, 평화, 자유, 질서 이 모든 것들에 이웃이 함께 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우리가 누리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오로지 혼자만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 맥추감사주일인데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물론 매일 매순간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걸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제 잘나서 저 혼자 사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은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걸 알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이웃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또 최선을 다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의 삶속에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늘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너무나 많은 은혜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많은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안다면 언제나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당연하고 그게 내가 네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습니까? 여러분, 지금 한번 눈을 감고 감사거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있습니다. 몸이 온전치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껏 활동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하고 편히 쉴 집이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와 질서가 있습니다. 태양이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고 그 태양아래서 온갖 식물과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새들은 노래하고 마실 물이 있고, 숨쉴 수 있는 공기가 있고,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고 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고..... 여하간 있고 있고 있고 계속해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게도 자꾸만 없는 것, 부족한 것만 생각하며 가난뱅이처럼 삽니다. 자꾸만 남의 탓, 환경 탓, 상황 탓하며 불평불만을 터트립니다. 세상을 향해 에이 망할 놈의 세상, 에이 도적놈들 하면서 비난을 퍼붓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못난 것, 잘 못하는 것만 생각하며 부모 탓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미련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하고 자꾸만 더 달라고만 하면 도대체 어쩔 셈입니까? 그런 사람은 암만 많이 줘봐야 소용없습니다.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줘도 누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문제는 상황이나 소유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가능한 것을 먼저 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것을 먼저 봅니다. 똑같이 믿음 생활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이미 주신 것,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그저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없는 것만 생각하며 맨날 달라고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살전5:16~1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정말로 감사할 일이 많고, 또한 감사하는 자가 은혜를 아는 자요, 또한 그렇게 감사할 때에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더구나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죄와 무지로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3,4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그러니까 우리가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우리의 죄악을 사해주시고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모든 인생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죄와 무지 속에 있고 심히 연약하고 한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모르고 그저 제 잘난 멋에 살다가 그 죄와 무지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만다행히도 우리가 죄와 무지와 한계속에 있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할렐루야 찬양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엊그제 우리 교회 가까이에 계신 이웃분이 위암으로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고해서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위 전체를 절제해야 할 만큼 엄중한 상황이었는데도 그래서 자칫하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천만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아 수술이 잘 되어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고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물론 육체적인 생명도 너무나 귀한 것이니까 너무나 기쁜 일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암을 고침 받은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을 조금 연장시킨 것일 뿐 얼마 있으면 결국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또 죄와 고통과 아픔 속에 살아야 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릴 영생복락의 세상은 그야말로 고통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아픈 것이나 죽음의 그림자는 눈꼽만큼도 없는 나라입니다. 오직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행복과 사랑과 은혜만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인정을 하든 말든 그건 인간의 죄와 무지와 한계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결론에 불과하고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죄씻음의 은총을 입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그런 혜택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생명과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도 늘 서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잘났건 못났건 능력이 많건 적건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녀가 최곱니다. 예수님이외는 이보다 소중한 존재가 없습니다. 세상의 누가 내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보다 나를 더 아껴주고 더 사랑해 주겠습니까? 어떤 다른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가 나를 위해서 그토록 수고해 주고 아껴주고 하겠습니까? 누가 내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보다 더 의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교회도 그렇습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최곱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었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양육해 주었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위하여 그렇게 애타게 기도해 주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가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위하여 맨날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해서 전해 드리겠습니까?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직장에 있든지 감사하며 일해야 합니다. 직장이 있어 일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일 할 수 있는 건강과 지혜와 능력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직장을 통하여 내 가정의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농사를 짓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농촌 환경이 많이 열악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농사지을 땅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농사지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통하여 가정을 꾸려오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아가 농사를 경영하여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먹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나 교회에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나 우리가 정말 받은 바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기억하며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동시에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과 교우들과 직장동료들과 심지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이웃들에게도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감사를 표하며 어떤 형태로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삶의 자리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천국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축복이 오고, 감사하는 마음 속에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불평불만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립니다. 여러분 같으면 안 그러겠습니가? 줘도줘도 감사는커녕 투덜거리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평불만하면 줬던 것도 빼앗아버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그 은혜와 사랑을 알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는 사람에게는 더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 5절을 보십시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능력과 은혜와 평강과 위로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가까이하는데 어찌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어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리며 사는 자들에게 분명히 좋은 것들로 충만케 채워주십니다.

 

또한 그렇게 감사하여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여 찬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과 은혜를 주어 창공의 지배자인 독수리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나 염려없이 창공을 누비듯이 그 삶이 힘차고 능력이 있고 자유와 평안이 넘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로서 그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명히 힘과 능력과 은혜와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삶에 힘이 있습니다. 생동감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이기게 됩니다.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미움 질투 시기 욕심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둔 것들이 대들지 못하고 설령 대들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넉넉히 이겨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여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욱 충만하게 덧입어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가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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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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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충만한 인생

말씀 : 대상29:10~17

1.감사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54년에 미시시피 주의 어느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서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9살 때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14세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가출하여 마약을 복용하며 한동안 지옥같은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끝내 주저앉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며 책을 많이 읽는지 선생님이 더 좋은 학교의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어서 좀 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열심히 성경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나오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1983년에 시카고에서 시청률이 제일 낮은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 프로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이 프로그램이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러자 이 토크쇼를 아예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방영되자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되어 전 세계 140여개 나라로 배급이 됨으로 세계적인 토크쇼가 되었습니다.

이 후로 그녀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1985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 2004년 유엔이 주는 올해의 세계지도자상,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 100人 중 최고의 명사, 2010년 케네디센터 평생공로상,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 평생공로상, 2013년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중의 한 사람이 되는 등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명사 중 한명이 되었고 그러 사이에 재산도 불어나 7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불우한 처지를 이기고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습니까? 세가지 정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녀는 절망 중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입니다. 그는 그 서러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것입니다.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사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몇 년동안 방황하긴 했지만 다시 시작하며 감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움과 원망과 절망이 점점 사라지고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미움 속에 빠져 있었더라면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로 방황을 바꾸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의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그녀는 그 바쁜 일과 중에서도 매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면 감사한 일 다섯가지를 적으며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감사의 조건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적어 놓은 감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①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②오늘은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③오늘 점심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④오늘 얄미운 짓을 한 동료가 있었는데 잘 참고 화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⑤오늘 책을 한권 읽었는데 너무 좋은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생각할 것은 감사 거리는 그렇게 먼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사거리는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사거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당연히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이 실상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하루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아무 걱정 없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군가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자며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길을 가다가 국수 한 그릇 사먹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껏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죽을 때까지 말해도 다 못할 만큼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 5: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와 이웃과 교회와 국가와 회사와 동료와 공무원과 농사짓는 분과 장사하시는 분과 여하튼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모든 환경에 감사하고, 밥 한 그릇에 감사하고, 냉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숨한번 쉬면서 감사하고, 따뜻한 잠자리에 감사하고, 일어날 때 감사하고 그저 앉아도 감사 서서도 감사 집에서도 감사 나가서도 감사 우리 곁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감사거리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감사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감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2.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료로 주셔서 마음껏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을 예물 드리기를 마친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장면 중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앞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들이 나타나 있는데 그 중 3,4절에 보면 다윗은 개인의 사유의 금 3천달란트와 순은 7천달란트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금 3천달란트와 은 7천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따지면 몇십조원 되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덩이를 주셔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금덩이를 드리고 너무 너무 감사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드리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좀 길지만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왕이 되어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그 동안 누린 것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을 주신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이 고귀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고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해서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지혜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삶의 터전들을 공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무료로 공급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걸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지혜를 짜내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뛰어 놀고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놀고 하는 그 모든 것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그냥 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조도 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자기 힘과 지혜로 된 것인양 여기며 살아가는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몸, 내 생명, 내 시간, 내 재능, 내 능력, 내 지혜,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땅,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따뜻한 태양, 쉴 수 있는 집, 먹는 밥,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게 해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총과 능력과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주님께 드리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면 우리는 마땅히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 감사함이 있다면 드림도 늘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 엄청난 것들을 주셨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고, 이렇게 받은 바 은혜가 큰 줄을 알고 감사드린다면 어떻게 드리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14절을 보겠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나와 백성 즉 우리들 모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인데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까? 하면서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 들을 드리면서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예물을 드리면서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내 것을, 내가 노력하고 힘써서 벌은 것을 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바쳤을 뿐이니 그 많은 것을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요, 그걸 그동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할 뿐이요, 그걸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정말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많은 것을 주셨는데 어찌 감사가 없겠으며, 그런 감사가 있을 때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기쁨으로 자녀에게 줍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줍니까?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천지만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마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그 끔찍한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주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한다며 줄 수 밖에 없고 주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드리겠으며, 드리면서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받는 게 행복합니까? 주는 게 행복합니까? 물론 받는 것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몇 배 더 기쁩니다.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뿌듯해집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생깁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아도 웬지 흐뭇해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더구나 주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주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너무나 귀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더구나 우리 주님은 당신의 그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정말로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여러분 자신도 정말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정말 감사하면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데 드릴 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직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정직하게 드린다는 것은 원문의 뜻은 충만하게, 완전하게, 마음의 중심을 다해... 이런 뜻입니다. 즉 조금치의 거짓이나 불성실이 없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온전한 마음으로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정말 마음과 정성과 믿음을 담아서 드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생각이나 감정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고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따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진정한 정직이란 내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나 위선이나 변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 생각 처지 환경의 모든 주변적인 것들을 벗어던지고 다만 나와 하나님 사이에 일대일로 대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고 그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려주시고 요구하시고 권면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내 생각이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내 생각을 첨부하거나 상황과 환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첨부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게 되고 그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잘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의 다른 것들을 섞어서 혼잡하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왜곡과 혼잡이 심각합니다. 자기 편의대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을 것은 크게 생각하고, 드릴 것은 적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더 많이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훨씬 작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대로 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은 적게 생각하고 감사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받아야 할 것은 적게 생각하고 드려야 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넉넉해지고, 인생이 풍요로워 지고, 진정 자유하게 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의 신앙의 고백이며, 그럴 때 그 인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스러운 인생이 되며 잘했다 칭찬받으며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릴 줄 아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요 부요한 인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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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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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영성(시100:1-5)  


제 목 : 감사의 영성

말 씀 : 시100:1~5

1.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대를 ‘더(more)의 시대’라고 합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많은 지식, 더 날씬한 몸매, 더 젊고 예쁜 얼굴 등등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더, 더, 더’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더 더’가 언제 나오는 소리인지 아십니까? 음주 측정할 때 하는 소리입니다. 술 먹은 사람은 어찌하든지 음주측정기를 안 불려고 하지요. 어쩔 수 없이 불때도 알콜 농도가 적게 나오게 하려고 살짝 불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찰 아저씨가 더 불라고 더 더 더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더 더 더와 음주측정 할 때 더 더 더는 좀 다른 차원의 더더더이긴 합니다만 여하튼 ‘더, 더, 더’하는 소리는 결코 좋은 소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건 뭔가 모자란다는 뜻이거든요. 뭔가 모자라니까 자꾸 ‘더 더 더’하게 되고 그렇게 자꾸 더더더하다보면 결국 감사도 기쁨도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과 갈등과 싸움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꾸 더 더 더 하며 살아가니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쌀밥만 먹을 수 있어도, 아니 때로는 죽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멋지고 근사한 곳에서 진수성찬을 먹으면서도 감사 할 줄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맛이 있네 없네 하면서 타박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또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다녀도 얼마나 근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 집 앞 신작로로 한 멋쟁이 신사 아저씨가 삐까뻔쩍 빛나는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곤 했는데 저는 그게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감사가 없고 더 좋은 것을 바라봅니다. 옛날에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30평 40평 50평 호화주택에 살면서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런 바보같은 인생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주어진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만 더 더 더 하는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늘 불만 불평 속에서 자신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 마음도 아프게 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6: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보십시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얼마나 많은 지를 되새겨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데 오늘 말씀을 함께 되새겨보며 저와 여러분은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할 줄 아는 삶을 통하여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교회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지금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만큼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문이란 물론 성전 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갈 때에 큰 감사와 기쁨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교회 문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서 주님의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보다 더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교회가 세워졌어도 우리가 마음이 완고하고 강퍅해서 복음을 거부했다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러면 영원한 고통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찬양해야 할 일입니까?

제가 제법 오래 전에 대구의 한 큰 마트 같은데 들어갔다가 물건을 좀 사 가지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회원권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다고 하니까 여기는 회원권이 있어야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야, 이 놈들아 물건만 팔면 되지 무슨 얼어 죽을 회원권이냐? 회원권 없으면 내 돈 주고 물건도 못 사냐?’ 그러고 그냥 놔 둬 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좀 창피하기는 했습니다.

즉 세상에서도 뭔가 그럴듯한 곳에 들어가려면 출입증이나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나 안기부나 기타 중요한 공공 기관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웬만한 큰 회사에도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되고, 무슨 큰 아파트에도 들어가려면 무슨 카드 같은 게 있어야 들어가고, 골프장이나 기타 그럴듯한 곳에 다니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출입증이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뭐 좀 잘난 곳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든지 무슨 시험을 치든지 뭐 이것 저것 따져 묻고 난린데 하나님께서는 그저 우리 믿음 하나 보시고 천국 출입증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세상의 무슨 출입증, 허가증, 회원권 그까짓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뭐 대단한 특권이라고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그래서 뭐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까짓것 하루 아침에 다 다 날아갈 것들인데.. 그것만 믿고 까뿔다가는 영원한 진노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보장합니다. 그 어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도 완전히 보호해 줍니다. 그야말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초특급 출입증, 허가증,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들어와 앉아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할 수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굉장하고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늘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우리를 길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선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다음에 감사할 것은 좋으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 뿐 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하나님은 신,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만이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참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비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주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베풀어 주시는 은총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께 지으시지 않고는 우주만물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때를 따라 채워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존재하고 나아가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 존재가 가능한 것입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쉬고 활동하고 하는 모든 행위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좋은 옷에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것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물론 우리도 힘써서 일 했지만 우리가 힘써 일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생명도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태양과 물을 주시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입니다. 땅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까마귀가 어미가 늙으면 다 큰 새끼들이 먹이를 먹고 돌아와서는 도로 뱉어서 어미에게 먹여 준다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어미새가 늙어 힘이 없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다 자란 어른이 된 새끼 새가 먹이를 잡어 먹고 와서 도로 뱉어서 어미의 입에 넣어 준다고 합니다. 이게 반포(돌이킬反, 먹일哺)입니다.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서 먹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끼가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 어미 새에게 먹여줄 만큼 지극 정성으로 부모님을 섬기는 반포지효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갓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도 이렇듯 부모를 섬길 줄 아는데 인간이 부모님을 섬길 줄 모른다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성장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온갖 사랑과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도 당연히 정성으로 섬겨야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리를 직접 창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사실 육신의 부모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육신의 부모는 우리가 다 성장할 때까지만 키워주시면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장을 하고 백살 천살 만살이 되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은혜가 없이는 단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육신의 부모에게 감사하며 섬기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이라면 모든 인류와 우주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모든 동안에 아니 지금 여기서 살아 있는 동안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감사하며 극진히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론 육신의 부모님께도 감사드리며 잘 섬기시되 특별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우리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주시고 섭리하심으로 이와같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감사하고,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러나 감사할 것이 그 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사람에게도 감사하고, 동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식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그밖에 땅, 태양, 물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모두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가족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아니 가족이 없으면 내가 있지도 못하지요. 또 이웃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내 주변에 이웃이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적막하겠으며,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혹시 사람들 보기에 번듯하지 못하다해도 직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밥은 얼마나 고맙습니까? 마시는 물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어디 가다가 음식 한 그릇 사먹을 때 그 식당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와같이 감사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의 습관은 자신도 기쁘게 하고 남도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건강과 행복도 가져다 줍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함으로 힘차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불평의 습관은 자신도 남도 어둡게 만듭니다. 부정과 어둠의 에너지를 방출하여 자신도 힘들게 하고 남도 힘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5:16~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은총 속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기억하며 정말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 이와 같이 마음껏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출입하며 예배드리며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되새기며 우리를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여러분 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주변의 모든 물건들에게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령이 그야말로 감사로 넘쳐날 때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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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설교 /  감사의 축복(잠3:9,10) 


말씀 : 잠3:9,10

제목 : 감사의 축복

여러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치안상태를 조사했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100만점에 83.1을 기록하여 1등이고 그 다음에 싱가폴, 카타르, 일본 등이고 서유럽이나 미국은 6,70점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은 2,30점대가 수두룩하고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는 베네수엘라인데 15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83점으로 당당히 1등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범죄율은 가장 낮고 범인 검거율은 1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에도 밤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어도 안전한 나라, 식당이나 편의점이나 심지어 술집에서도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두고 나와도 누가 가져가지 않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제법 오래전에 제 스마트폰을 식당에 두고 왔는데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폰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제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아내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술에 취해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거나 길거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며 저 사람 저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저라나 싶어서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치안상태만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자유와 평화가 보장 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풍요로습니까? 올해도 농사가 대풍이어서 올해 쌀생산량이 약434만톤으로 최근 6년간 최고의 풍작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풍년이라 쌀이 남아돌아 정부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이 140만톤이나 되어 처치 곤란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즘에는 우유가 남아돌아 난리입니다. 그래서 젖소 수를 줄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젖소를 도축하고 그래도 안되어 분유를 만들어 처리하는데 분유 재고가 쌓여 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입니까? 어느 나라를 먹을 게 없어 난린데 우리는 남아돌아서 난리인 것입니다.

뭐 그밖에 감사할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만8천불 약300배나 부자가 되었습니다. GDP 그러니까 국민총생산량이 세계 11위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고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해도, 혹 힘든 일이 있다해도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고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비록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귀하고 복된 삶의 터전을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그래서 이렇게 자유와 평화와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추수감사주일을 제정해 두시고 이를 지키며 살라고 하신 이유는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확실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50:23절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일단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주시고, 예수님은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으로 저 흉악한 마귀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할 때에 어찌 기쁘지 아니하며 어찌 감사 찬양하지 않으며 어찌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당연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의 은총과 감격가운데 살다보면 당연히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또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볼 때에 세상의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됩니다. 무슨 원망 불평 미움 질투 시기 따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평안과 소망과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게 바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욱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능력으로 채워주심으로 그 삶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돈과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과 시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망과 한탄 따위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믿음과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감사가 넘쳐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점점 은혜가 넘치고,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 할수록 은혜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니 원망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정말 감사하며 그것을 잘 사용해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며 산다면 준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얼마나 더 주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맨 날 받기는 받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꾸만 더 달라고만 하고 도리어 적게 준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준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면 준 것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더 주고 싶겠습니까? 아니 더 주기는커녕 주었던 것마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19:24~26절 보십시오.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며 그래서 자신도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너무 좋아서 더 많은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것에 감사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활용할 줄도 모르면서 자꾸 불평이나 하고 더 달라기만 하는 사람은 준 것도 아까워 주었던 것도 도로 빼앗아 감사와 기쁨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욱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에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사하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사탄을 이기고 대적자들을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감사가 뭡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찌 능력있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하20:21절을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 말씀은 여호사밧 왕때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족속이 연합군을 이루어 침공했을 때의 일로 이때에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적국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자멸해 버리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전리품만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찬송하며 감사할 때, 감사하며 찬송할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인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감사하며 찬양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해결하지 못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하고 부족한 것들과 모든 도전과 유혹과 모든 어둠의 권세와 기타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은총을 고백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더욱 많은 은총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물질적으로도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영혼의 복도 주시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그러면 육신도 더욱 건강해 지고, 더불어 물질의 복까지도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할수록 자꾸만 감사한 일이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기뻐하는 하는 사람에게 기쁜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불평 불만하는 사람에게는 자꾸만 불평 불만할 일이 생깁니다. 원망하면 자꾸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미워하면 미워할 일이 생기고, 투덜거리며 투덜거릴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도 한번 두번 안오면 자꾸 교회에 못 올 일이 생깁니다. 마귀사탄이 자꾸만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고 하면서 가지 못할 일만 보이게 만듭니다. 교회에 오려고 하면 꼭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회 못 올 일이 생긴 게 아니라 얼마든지 교회에 올수 있는 상황인데 내가 교회에 가지 못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열심히 오면 자꾸만 교회 갈 일이 생깁니다. 이래서 가야 되고, 저래서 가야 되고 그러면서 교회에 계속 가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한번 두번 안하다보면 자꾸만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래서 할 수 없고, 저래서 할 수 없고... 그런데 실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점령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가서 똑같은 장소를 보고 왔는데 10명은 거기 들어갈 수 없는 상황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못 들어가고 저래서 못 들어가고...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들어갈 조건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가고..... 그래서 그들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실컷 고생만하다가 다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간다며 들어갈 조건만 헤아렸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자꾸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자꾸 사랑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교회에 올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헌금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사랑하고 주고 드리며 자꾸 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자꾸 은혜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믿음이니까요. 그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9절,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니까,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네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찰 것이다.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농사가 잘되고, 곡식이 풍성하고, 장사가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릴 줄 아는 인생에게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늘 감사하며 사는 인생에게 어찌 복이 찾아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죠. 부모님께 감사하죠. 이웃에게 감사하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대하겠습니까?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아니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동안 모든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감사한다면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축복거리를 하늘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 여러분의 삶에 더욱 은혜가 쌓이고 기쁨이 쌓이고 축복이 쌓여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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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십자가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까?

(막15:16-32)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 16:24).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배의 주제입니다. 모든 정상적인 목회자들은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릅니다. 그러나 목회자마다 십자가를 지는 느낌은 다릅니다. 십자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1. 억지로 지는 십자가(막15:16-25).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막15:21-22).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를 대신하여 얼마동안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져야 했습니다. 군인들의 창과 칼 앞에 자존심을 다 구기고 마지못해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날은 시몬에게 "개 같은 날의 오후"며 재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시몬에게 원치 않았던 굴욕이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며, 빨리 던져버려야 속이 시원한 불편한 짐이었으며 그가 비방하고 조롱한 형벌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위협에 시달리다 더 버티면 어쩐지 뒤끝이 좋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보게나, 내가 피 흘려 산 교회를 위해 그렇게 불평과 원망의 느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게나. 내 마음이 편치 않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16:24). 십자가의 감격을 회복하도록 주님, 도우소서! 십자가를 하나 더 얹어주실지라도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십자가의 은혜로 채워주소서!


  2. 마취제를 거절한 십자가(막15:22-25).


  “내가 목마르다!” 예수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를 지는 삶에는 목마름과 고통이 있습니다. 갈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고통과 갈증을 면하기 위해 마취제 같은 쓸개 탄 즙은 거절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목회자가 되어 한 없이 양보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려 할 때 고통과 목마름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피곤해지는 순간이 있으며,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 십자가의 목마름을 성스러운 목마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런 저런 목마름을 환영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께는 십자가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으나 쓸개 탄 마취제를 거절하심으로 온 몸 그대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비통한 희롱과 조롱, 외면이 주는 정신적 고통도 감수했고 무서운 저주도 온 몸과 영으로 받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향하는 가파르게 보이는 해골의 언덕을 오를 때 사람들이 제공할 고마운 마취제를 고대하며 십자가를 등에 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위로인 마취제가 필요 없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하나님, 사람들의 비난과 비평에 몸서리치고 있는 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이나 죽을 준비가 되었다고 큰소리치고는 잽싸게 달아나 버린 제자들을 향한 원망의 느낌, 버림받았다는 서러움의 느낌을 못 박아 버렸기에 마취제를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기 연민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 때문에 마취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원했습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여, 우리들을 축복하소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위로며 영광으로 들어가는 감격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3. 죽어야 사는 십자가(막15:30-32).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했으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할 때까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막고 있던 휘장을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버리심으로 구원의 새롭고 산 길 을 열어 놓으시기까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죽어서야 십자가에서 내려 왔습니다. 저주를 받은 뒤에야 내려 왔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완성한 뒤에 내려 오셨습니다!

“주님 오늘도 제 몸은 당신께 드리는 희생제물입니다. 명령을 기다립니다.”

  서 아프리카 선교사로 사역했던 테일러 스미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교회 사임을 생각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교회사역을 그만 둘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린 애써 기도하며 개척했던 사역지를 떠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들은 사명을 중단하려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더 이상 헌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죽기살기로 헌신하더니 10년도 못 채우고 사역지를 떠나려는 것일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성령님께서 나에게 물으십니다. "육신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세상에 대해 죽었는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길 원하는가?"(고후 4:10)  "아닙니다. 성령님, 내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목회 못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네. 네 자존심이 죽고, 네 욕심이 죽어야 교회가 살지 않겠나!"

   

  지금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다면?  ‘사람들의 칭찬, 명예, 자존심, 대우’에 대해서 전보다는 더 적게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에 대해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좋게 말하느냐 아니냐가 우리들의 헌신의 질을 결정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죽는 순간에 이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열심히 추구하던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죽음의 자리에선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혹독한 비판에 대해 죽은 자입니까? 사람들의 불친절에 대해 죽은 자입니까? 오늘도 나 자신을 향해 죽고 하나님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 살려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인준하지 않으신 욕심에 대해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열매 맺기 위함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십자가에서 자아를 단호히 처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가(眞價)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게 함이니”(빌3:8-9). 오늘도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4:10).  하나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실망해도 분노가 치밀고, 조금만 나의 지도력이 손상 당해도 견딜 수 없어하는 나를 철저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주십시오! 내 눈물은 주님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서러워서, 속상해서,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뿐이니, 주여 이 상한 마음마저도 십자가를 못 박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당돌한 십자가(막 15:42-47; 요 19:38-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taking courage)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막15:42-47)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실패자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는 그 당시에 아무런 사회적 권리나 힘이 없는 여성들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요, 실패자의 자리에 나서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며 밝히며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해 가겠다고 한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그는 주변에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없고, 믿는 사람들이 다 넘어진 것 같을 때 실망하지 않고 나서서 당돌히 십자가를 졌습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마지못하여 십자가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용기있는 태도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요셉을 당돌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한 행동은 홀로 죄악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반역자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반역자의 시신은 가족들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스스로 반역자의 제자라고 공개하는 일이므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예수의 제자임을 밝힌 신앙이 바로 빌라도와 세상이 볼 때 당돌한 신앙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 용기 있는 신앙입니다.  “반역자로 몰아가도 좋다. 아니 예수는 반역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심을 내가 믿는다. 빌라도 당신도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라는 담대함이 이 시신을 달라는 요구에 담겨있었습니다.

 

  요셉이 용기있게 십자가를 지는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요 19:39). 자신의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서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 예수님이 비난당할 때 드러내 놓고 변호하지 못했던 니고데모, 드디어 그도 요셉을 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당당히 자신이 예수의 제자임을, 예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동료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100근이나 되는 값비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이 양은 왕족의 장례를 치를 때에 사용하는 만큼의 많은 분량입니다. 내가 용기있게 십자가를 지고가는 삶이 어둠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가는 수많은 니고데모들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게 되도록 도와주소서! 

 

  5. 자랑의 십자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6: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고 사신 분 중에 최초의 미국 침레교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이 있습니다. 그는 미얀마에서 7년 동안 열심히 사역했지만 7년이 지나도록 예수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변의 냉대 속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마저 병으로 잃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한 친구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저드슨 형제, 너무 낙심치 말게나.”

그러자 저드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낙심이라고? 예수 안에서 소망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네!”  

  25년의 세월이 흘러 저드슨은 미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선교하면 영국이 대표였습니다. 미국이 아직 선교에 미약할 때였는데 위대한 사역을 마친 저드슨이 돌아오자 전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환영하고 그의 보고하는 자리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선교사의 입에서 나올 흥미진진한 선교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저드슨 선교사는 첫째 날 우리 죄인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설교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하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둘째 날은 저드슨이 번역한 미얀마-영어 사전과 미얀마 번역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했습니다. 또 7년 동안 열매가 없다가 그 후 20여 년 동안 3,000명이 넘는 미얀마 원주민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고 침례를 베푼 영웅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또 감옥에 끌려가서 죽을 뻔한 고비를 수없이 넘긴 일화도 자세히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저드슨은 둘째 날도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 사람들은 셋째 날엔 틀림없이 선교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죄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목사님이 기다리다 못해 안타까워서 말했습니다.

“저드슨 선교사님, 성도들은 오늘 다른 설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 말고 선교사님이 겪으신 재미있고 극적인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또 선교사님이 회중교회 선교사의 신분으로 출발했다가 배를 타고 가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왜 침례교회 선교사로 바뀌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길 들려주십쇼”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드슨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더 감격스러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감격스럽습니까? 자랑의 십자가가 우리 마음을 꽉 채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십시다. 하늘에서 드리는 예배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합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2:2). 아멘.

 

  어떤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주님에게 나아가겠습니까?   (김택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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