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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방언과 각나라의 언어

 

 

 

 

(1) 마가복음 16장 17-20절의 방언(tongues)

 


이 부분은 은사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으로 방언과 병자에 대한 안수기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구절들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6장 17절의 "새 방언(New tongues-KJV)"이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 명령을 주시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각 민족의 방언들도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실 것임을 뜻합니다.

 


이 구절에 쓰인 "방언"에 해당하는 헬라어 성경의 원어는 "글로사이(Glossai)"입니다. 그 뜻은 전 세계에서 쓰는 민족의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서 "글로사이(Glossai)"는 1개 이상의 언어를 가리키는 복수명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방언기도(Unknown tongue)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2) 사도행전 2장, 사도행전 10장의 방언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 10장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안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 함께 마가복음 16장의 명령과 예언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첫째로 이스라엘에서 교회의 탄생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에 쓰인(행 2:8-11, 10:46) 방언은 헬라어로 디알렉토스(Dialektos)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각 민족의 언어를 가리키며 흠정역(KJV)에서는 "텅스(Tongues)"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적대관계였으나 위 두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결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3) 사도행전 19장의 방언

 


이 부분 역시 사도행전 2, 10장에 이어서 세 번째 성령의 역사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19:2-3)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니 성령의 세례를 받아 방언과 예언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의식만 알던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메시아로서의 의미를 모르고 단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를 뜻하는 것에 불과하나 성령의 세례는 회개는 물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국한되나 성령의 세례는 신약 교회시대에 전체적으로 유효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tongues)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물론 이 방언 역시 복음전파를 위한 외국어 방언입니다. 여기에 쓰인 "방언"(19:6)의 헬라어 원어는 해태라이 디아렉토스(Heterai Dialektos)로 "다양한 민족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이 성령 세례의 사건이 일어난 에베소 지역은 그 당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 무역 도시였기 때문에 다양한 종족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러한 외국어 방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4)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구절은 은사주의자들이 잘 인용하는 방언기도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기도하신다는 것이지 우리의 입술로써 뜻모를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라는 용어는 성경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고 하여 성령께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주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훈련으로 이뤄지는 은사주의자들의 방언기도는 로마서 8장 26, 27절의 성령에 의한 기도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 자신에 의한 기도는 성령 스스로 하는 기도이지 결코 인간의 소리로 표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5) 에베소서 6장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이 구절에서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안에서 기도(Praying in the spirit)"를 방언기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도움을 받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도의 방법과 요령이 무수히 많지만 그 모든 기도는 성령을 무시한 인간적, 인본적, 이기적인 기도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가 세속적이고 육신적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뜻에 따르는 기도가 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를 달리 말하면 "성령의 권능과 능력 안에서의 기도"(In the power and energy of The Spirit)를 뜻하는 것입니다.

 


(6) 유다서 1장 14-20절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은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은사주의자들이 "방언기도"라고 하는 곳이 바로 "성령으로 기도하며"입니다. 그러나 유다서의 이 부분의 문맥은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며, 당을 지으며, 육에 속하며, 성령이 없는 자들"과 달리 "그리스도 위에 믿음을 건축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살라"는 것이지 방언기도를 하는 것으로 비약될 수는 없습니다.

 

 

 


< 방언(方言-tongues)은 각 나라의 언어였습니다. >

 


지금까지 위에서 살핀 (4), (5), (6)의 로마서, 에베소서, 유다서에서 말한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성령의 권능 안에서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unknown tongue)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로마서, 에베소서, 유다서는 모두 고린도 전서가 쓰여진 후에 나온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고린도 전서 12-14장에 나오는 방언의 내용들이 방언 기도를 권장하는 것이라면 로마서, 에베소서, 유다서에도 방언기도를 권하는 것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결코 고린도 전서 12-14장의 문제를 재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은사(恩賜)를 총체적으로 언급한 로마서 12장에는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함, 구제함, 다스림,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언급되었어도 방언의 은사는 더 이상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제 고린도 전서 12-14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전술하였듯이 고린도 교회는 언쟁과 분쟁이 많았고, 이교풍습과 신비주의가 만연되어 있어서 이 교회의 혼탁함을 교정시키기 위해 쓰여진 "교정의 서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모범적이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먼저 고린도 전서 11장에서는 그들이 갈등을 벌이던 공중예배, 교회 안에서 여자의 수건 쓰는 문제, 그리고 성만찬 문제를 교정시키고 12장으로 넘어 갑니다. 12장에서는 여러 은사와 지체의 원리에 대해 설며하면서 성령은 하나로되 은사는 다양하며 직임도 여러 가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은사를 말하는 중에 "각종 방언(different kinds of tongues-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언어-KJV)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10)라고 하였는데 "각종 방언"은 헬라어 원어로 글로사이(Glossai)로서 이방인들의 여러 언어를 가리킵니다.

 


12장 28절에도 "각종 방언(varieties of tongues-KJV)"이라 하여 역시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the tongues of men-KJV)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고전 13:1)에서의 "방언" 역시 사람들이 사용하는 외국어를 말합니다. 13장 8, 9, 10절에도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에서 "방언"은 역시 글로사이(Glossai)로 외국어 방언을 뜻합니다.

 

 


14장 2절에서는 은사주의자들이 "방언기도"의 증거 구절이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방언(an unknown tongue: 알 수 없는 언어-KJV)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Mysteries)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이 구절은 방언을 하나님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맥이 아니라 당시 고린도 교회의 사이비 방언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한다고 하는 잘못된 방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쓰인 방언은 그 원어가 글로사(Glossa)로서 앞에서 나온 방언들인 글로사이(Glossai)의 단수형입니다. 흠정역(KJV)에는 이 방언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각국 언어가 아닌 "알 수 없는 언어-an unknown tongue)"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복수형인 글로사이(Glossai)는 이방인들의 언어들을 가리키나 이 단수형인 글로사(Glossa)는 뜻 모르는 중얼거림,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가리킬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는 당시 고린도 교회에 흘러 들어온 이교도 신비주의와 델피 신전 사제들의 주문과 같은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글로사이(Glossai, 고전 12:10, 13:1, 8)는 "외국어 방언"이고 글로사(Glossa, 고전 14:2)는 "뜻모를 소리"라는 것을 바울이 엄격히 구별한 것은 그가 외국어 방언들과 이교주의의 "알 수 없는 소리"를 구별한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14장 2절의 방언을 "이교 신비주의 방언"으로 구체적으로 번역하여 대입시켜 해석해 보면 문맥이 보다 분명해집니다.

 


"이교도(델피신전)의 신비주의 방언(주문, 알 수 없는 언어)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성경이 말하는 외국어 방언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하나니(자기들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하면서 알 수 없는 신비주의 방언을 말하나) 이는 그들의 헛소리를 알아듣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한다고 하며 은폐하는 것이다"

 


14장 3절 역시 14장 2절과 비교하면서 그런 사이비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우지만(자신이 무슨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내세우지만) 예언의 은사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므로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예언하기를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낱말이 바로 "예언하다(prophesy-KJV)"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예언의 의미를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알아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물론 그런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언하다"의 뜻은 그런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런 의미로 기록되었다면 예언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점쟁이들이 더 잘할 것입니다. 이 예언하는 은사는 바로 기록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풀어서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잘 해석해서 그것을 가르치는 능력을 예언하는 능력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4장 3절에서 "예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때문에 교회의 덕을 세우고 사람들을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방언(알 수 없는 소리: an unknown tongue-KJV)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

 


이 말씀은 "사이비 방언하는 자들은 신령한 척,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림으로 자기의 교만을 드러내지만(과시하지만) 예언하는(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이는 자기 과시가 아니라 교회를 돕고 교회의 덕을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14장 5절의 "나는 너희가 다 방언들을(tongues-KJV)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에서의 "방언"은 다시 Glossai, 복수형으로 외국어 방언을 뜻합니다. 따라서 외국어 방언의 은사는 누구나 다 받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희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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