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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저녁설교] Sunday evening Service

제목 : 선을 행하다 낙심치 맙시다.

말씀 : 살후3:13-18

1.끝까지 선을 행합시다.

옛날에 수리시설이 잘 안되어 있어서 농사짓기가 힘들었던 시절에는 가뭄이 들면 논에 물을 대는 문제로 곧잘 싸움이 벌어지곤 하였다. 바로 그런 시절의 이야기인데 한 농촌교회의 한 집사님이 밤 늦게까지 수고해서 논에 물을 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을 나가보니 자기 논에는 물이 하나도 없고 바로 아랫 논에만 물이 있었다. 아랫논 임자가 자기 논의 물을 훔쳐간 것이다. 집사님은 당장 달려가서 멱살을 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이기에 한번 꾹 참고 다시 밤늦게 까지 논에 물을 대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논을 살펴보니 또 아랫논 임자가 논둑을 터서 물을 훔쳐갔다. 그래서 집사님은 화가 치밀어 당장 달려가서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목사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다. “집사님, 예수님께서는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이번에는 그 사람의 논에 먼저 물을 대어주고 그 다음에 집사님의 물에 대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집사님은 한번 더 참기로 하고 먼저 그 원수 같은 사람의 논에 몰을 대준 다음에 자기 논에 물을 대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다음 날 아침 일찍이 그 고약한 사람이 이 집사님을 찾아와서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달려와서 내 멱살이라도 잡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논에 물을 대주다니 예수님 믿으면 그렇게 됩니까? 그러면 나도 예수님 믿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집사님의 선행으로 귀한 영혼을 구원하고 이후로 좋은 친구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게 되었다.

그렇다. 선을 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론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아니 열매는커녕 도리어 손해를 보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동시에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설령 열매를 맺지 못해도,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해야 한다. 그게 선이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알고 계시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고 선을 택하여 선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6:9절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고, 오늘 13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셨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 말씀을 주신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으나 여전히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전1:6절을 보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많은 환난 속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사도 바울과 주님을 본받는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힘든 현실들이 계속되다 보니 점점 낙심도 되고, 심지어 회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 어려움 없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게다가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니 낙심하는 자도 생기고 회의를 갖는 자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라. 믿음을 따르라.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라. 그것만이 살길이고 그럴 때 분명 열매가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선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그러나 문제는 선을 따라 사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어 낙심하기 쉽고 포기하기 쉽다. 그건 나나 세상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 죄와 무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어렵고 힘들고 당장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도 참고 기다리며 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그 열매를 누리게 된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약속을 받고 25년 만에 얻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사울에게 쫓겨 다니기를 10년 이상 도망 다니다가 결국 왕으로 등극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하여 애굽에 팔려가서 10년 이상을 노예와 같은 삶을 살며 온갖 억울한 일을 당했으나 참고 선을 따랐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며 선을 따랐다. 그럴 때 결국 전세계에 복음의 역사를 이루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말씀따라 살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잘 몰라도 그저 기다리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2.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태도(14,15절)

그러나 이런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가운데 든든히 서 있어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살후3:14,15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여기에 보면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세가지 태도가 있다. ①지목하라. ②사귀지 말라. ③부끄럽게 하라.

지목하라는 것은 대상자를 밝히라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밝히지 말아야 할 때도 있겠지만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밝힘으로 그런 잘못된 사람이나 태도에 대한 분명한 경계심을 가지고 그런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사귀지 말라는 것도 결국 같은 의미이다. 그들과 절교하고 내치고 함께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함께 교제함으로 그들의 잘못된 태도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부끄럽게 하라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고 창피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깨져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과정에서 사랑을 전제로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을 미워하고 정죄하고 내치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마음이 아프지만 이런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게 그 개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악을 그냥 묵인하고 감싸주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분명히 악을 악이라 말하고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만들어야 한다. 죄를 지으면서도 당당하게 수치도 모르고 살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자신도 망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의 문을 막는다. 교회 공동체에 죄를 누룩처럼 퍼지게 하여 교회 공동체마져도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우리는 그냥 무조건 감싸주고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싸주는 것은 실수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지혜와 능력이 모자라는 것 등을 덮어주는 것이다. 고의적 악의적 의도적으로 행하는 악한 죄나 습관을 덮어주는 것은 감싸는 것이 아니라 악에 빠져 죽게 만드는 것이다. 용서도 그렇다. 죄와 악을 행하고도 아무런 반성이나 회개나 돌이킴이 없는데 무조건 없는 것처럼 여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죄와 허물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죄와 허물에 대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그것을 벗어던지고 선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쓰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는 당연히 백번 천번이라도 용서해야 하지만 그런 과정도 없이 그냥 무조건 죄를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용서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를 징계하실 때는 징계하신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책망할 것을 책망하라고 하신다. 아이를 훈계할 때도 때로는 매도 들라고 하신다. 교회에서도 분명히 징계할 것을 징계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다. 왜냐하면 이것이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잠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마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러므로 가족이든 교회 안에의 형제자매이든 진정어린 사랑을 가지고 대하되 그러나 윤리적 도덕적인 죄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바로잡아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함으로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자.

3.하나님의 평강과 은혜를 기원함(16-18절)

살후3:16, 18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데살로니가 후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교인들을 축복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축복의 내용인데 그것은 평강과 하나님의 은혜이다. 평강의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는 무슨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축복해 줄 때 가장 기쁜가? 물론 돈, 건강, 물질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이다. 즉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기쁨, 위로, 소망, 믿음, 사랑, 보호, 인도 등의 인생에게 진정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주는 것들이다. 먼저 이것을 누려야 한다. 설령 세상의 것은 조금 못 누려도 이것만은 누려야 한다.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가장 불쌍한 인생이다. 세상의 것을 아무리 적게 받았어도 은혜를 충만히 받은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가장 행복하게 산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된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다 가졌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한다. 진짜 자유 평화 기쁨 은혜 소망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자. 그래서 모든 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자. 사랑으로 책망할 것은 책망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기도해주고 이끌어가자.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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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한 칭호

 

말씀 : 요일3:1~6

 

1.가장 위대하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칭호

 

여러분, 세상에서 뭔가 특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칭호가 붙습니다. 성왕 다윗, 지혜의 왕 솔로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또 일반적으로도 음악의 아버지, 축구의 황제, 가왕 누구누구, 요샌 뭐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여신, 얼짱, 몸짱 그러면서 그럴듯한 칭호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복되고 거룩한 칭호는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과 예수님께 대한 칭호로서 하나님, , 그리스도, 구세주 등의 칭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인류의 구속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예수님,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실 분 등등의 의미이지요. 세상에 이렇게 거룩하고 복되고 위대한 칭호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훌륭하고 능력과 지혜가 뛰어나고 인품이 좋고 엄청난 업적과 공로를 남겨 대단한 칭호를 얻어도 하나님께 적용되는 칭호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도 안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인간에 붙여진 칭호 중에 그래도 어느 정도 하나님께 대하여 붙여진 칭호에 근접하는 칭호가 있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성도라는 칭호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 누구누구, 성도 누구누구 이런 칭호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물론 하나님, ,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칭호에는 어림도 없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는 세상의 다른 어떤 위대한 칭호나 타이틀이나 지위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물론 이 땅에서도 어느 정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지만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갔을 때 어떻게 됩니까? 거의 예수님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됩니다. 물론 능력과 지혜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지만 거룩과 의와 선과 사랑 등의 영화로운 속성에 있어서는 거의 예수님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영화로운 몸을 입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영광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칭호가 얼마나 굉장하고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냐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도 뭔가 특출 나서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멋진 칭호를 얻는 것도 귀한 일이고 복된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일진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칭호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가진 우리들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 들이냐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1절을 보십시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보라.’ 너무나 엄청난 일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것인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만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의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칭호를 가지고 있는 자로서 늘 자부심과 긍지 속에 감사와 기쁨과 거룩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은총 풍성하게 누리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리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자녀가 된 과정

 

1절을 다시 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컴을 받게 하였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엄청나고 놀랍고 경이로운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경이로운 사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만해도 엄청난 사랑인데 게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일반적인 인간이라도 그런 일을 하면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과 사람과는 그 비중이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물론 사람도 생명을 바쳐 다른 사람을 살린다면 대단한 일이고 칭찬과 상급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죄와 무지 속에 있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심지어 더럽고 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숭고한 헌신도 그 가치가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물론 그 결과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여 몇 사람을 살린다해도 숫자적으로 얼마 안될 뿐 아니라 그 영혼을 살릴 수는 없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못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없고 흠없으신 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수적으로도 예수님의 헌신과 희생은 수억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 사랑과 헌신과 섬김을 우리가 어디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놀랍고 크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사랑을 받은 자인지를 늘 기억하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엄청나고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나서 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여기서 그가 나타나시면 그와 같을 줄을 안다는 것은 마지막때에 주님이 오실 때 우리도 변화되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되어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직접 보게 됨으로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가를 확실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장래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거룩하신 영광에 참여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주님이 재림하시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는 확연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주님과 같이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그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능력과 지혜와 권세가 주님과 똑같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신령하고 영화로운 몸을 덧입어 주님처럼 거룩하고 영화롭고 선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없는 빛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엄청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무슨 권세와 능력과 지혜가 이런 특권을 주겠습니까? 우리가 감히 주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특권이요, 주님처럼 되기 때문에 주님 안에 있는 그 온전하고 영원하고 영화로운 은총들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실을 기억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엄청나게 귀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만큼 거기에 어울리는 삶 또한 있어야 합니다.

 

오늘 3~6절의 말씀이 그 말씀인데요,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라는 것은 장차 주님과 같이 되어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영광을 누릴 소망이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는 이 소망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물론 어느 정도 소망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건 별거 아니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는 불법, 즉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결코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 질 수 없다.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않고, 만약 범죄한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고 있어야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입니까? 물론 겸손 사랑 자비 긍휼 용서 의 선 지혜 등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물론 거룩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께 받쳐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구별되고 분리되어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고 분리되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방향과 목적에 부합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은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왜곡되고 혼돈된 가치관과 목적과 방향을 버리고, 그래서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의 의미이고 그러면 세상에서 모든 욕심 욕망 미움 저주 시기 질투 불법 악 폭력을 버리고 그야말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날 우리가 힘이 없고,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를 크게 짓고 시스템을 멋지게 하고 재미있게 유쾌하게 편안하게 해 준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봉사하고 선을 행해도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교회는 결코 신뢰성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을 그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에 대하여 뭐 그렇게 칭찬하지 않습니다.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진실하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살아가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우선 자신의 심령속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게 되고, 동시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래서 인정받고 신뢰받게 되고 그러면 복음의 역사도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서 섰을 때 큰 상급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랍고 귀한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로써 한편으로는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동시에 거룩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으로 주님의 향기를 발함으로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고,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과 동행하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상급도 받아 누릴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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