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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교사 헌신 예배 기도문

 

 
  교사 헌신 예배 때의 대표기도 
    (엡 4 :11-12)

   찬양과 감사
   저희를 교사로 불러주셔서 주님의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로 삼
 아주신 주님 ! 귀한 직분을 주셔서 주님께 헌신하며 주님의 몸
 을 세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찬양
 과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특별히 이 시간 저희 교사들을 한 자
 리에 모아주셔서, 저회가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동역자들로서
 저희 믿음을 돌아보고 지난 날의 저희 행적들을 돌이켜볼 수 있
 는 귀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회개
   그동안 저희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주님이 맡겨주신 직무
 를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또한 주님이 맡겨주신 이 귀한 직
 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죄인이옵나이다. 감히 이 자리에 나
 와서 헌신한다는 말을 입에 떠올리지도 못할 죄인들이 이렇게
 헌신 예배로 모였사오니, 지난 날의 죄악들은 성령의 불로 태워
 도말하여 주시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게 온전히 모든 것을 바
 쳐서 주님이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귀한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 옵소서

   교사들을 위하여
   주님, 저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어린 생명들을 주님게로 인
 도하는 귀한 것임을 깨달아 어린 생명들이 주님게로 가는 길을
 저희가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며,
저희들이 교사로서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할
 때 그 어린이들은 상처받고 낙심에 빠지기 쉬우니, 저희가 주님
 의 십자가만을 붙들고 나아감으로 그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
 그들의 신앙이 날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부장선생님과 각 교사들에게 영육간에 건강을 지켜주
 셔서, 결코 피로에 지치는 일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맡은
 일이 힘들고 고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날개 아래서 쉼을
 얻게 하옵소서.

    교회를 위하여
   주님, 저회 교회가 교육에 힘을 써서, 내일에 저희 교회를 어
 깨에 짊어지고 나갈 2세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여 주님의 일꾼으
 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앞장서게 하시사, 먼저 저희 교
 사들을 믿음으로 덧입혀주시고, 저회들의 심령을 주님의 사랑으
 로 가득채워 주셔서, 저희 입술을 통해 나오는 사랑의 말씀으로
 어린 심령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며 사랑 안에서 거듭나게 하옵
 소서 .

    예배를 위하여
   주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단에 서신 저희 목사님
 게 능력의 전신 갑주를 입혀주셔서 그 말씀으로 저회 심령을 사
 로잡아 주시사 교사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허
 락하여 주시 옵소서 .
    아직 미참한 성도들이 있사오니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이 자리
 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그들의 발걸음을 이 곳으로 인도
 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하옵
 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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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헌신예배] 내가 하리이다

 

 


말씀 : 요20:11-15

제목 : 내가 하리이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첫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몇 명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에 일어난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갔습니다.(막16:1) 왜냐하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 오후여서 안식일이 시작되는 그날 저녁까지 장례를 마치기 위하여 너무나 서둘러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에 향유도 제대로 발라드리지 못하여 너무나 안타까워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굴려낼 걱정을 하면서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는 어찌된 영문인지 무덤 문은 이미 열려져 있었고 깜짝 놀라 들어가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 울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그러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주님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해서 운다고 말하는데 이때 뭔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자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셨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마리아는 자기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게다가 예수님의 모습도 신령한 몸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곳을 지키는 동산 지기인 줄 착각하고 당신이 옮겼으면 어디 두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까지의 말씀을 보았는데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특별히 15절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을 진정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리아는 진정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예수님 무덤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이 말씀은 주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때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신성모독죄로 혹은 이단자로 몰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힐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성모독에다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준 권위에 도전하는 자로 간주하여 괘씸죄까지 추가되어 가장 극악한 죄수를 사형시키는 십자가의 사형을 언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을 파기하는 이단의 괴수요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자 취급을 받고 가장 끔직한 십자가의 처형을 받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잘못 보이면 자신도 무슨 봉변을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짐짓 예수님과 관계없는 사람 행세를 하면서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상황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다시 장례를 잘 치러준다는 것은 결국 반역자를 돕는 것입니다. 반역자를 돕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도 반역자 편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면 자신에게도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혹시 불이익을 당한다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용감하게 주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어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주님은 나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그 몹쓸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희롱과 고통과 아픔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그 끔찍한 고난을 당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지상명령으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한다면,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찌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마22:37,3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보세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주님을 진정 목숨처럼 사랑한다면 어찌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만났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면 정말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부인과 헌신과 섬김과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위하여 끔찍한 죽음을 당하셔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이기에, 그것이 주님이 생명을 주시면서까지 이루시기를 너무나 원하셨던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길이기에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생명의 능력과 은혜가운데 살게되고 주님의 역사는 아름답게 이루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주님께 대한 사랑과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대한 소망으로 주님의 거룩한 역사에 참여할 때에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그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또 생각해야 할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바 대로 그때의 정황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정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반역자요, 이단자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후환이 두려워서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다시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주님이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혹은 복음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무덤가를 찾아간다는 것이 큰 위협이나 걱정거리로 생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 무덤을 찾아갔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부활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서슬이 시퍼렇게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찾아 핍박하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례를 치러주고 돌본다는 것은 어떤 고통과 불이익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용기와 각오와 결단이 없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용기 있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시신을 내가 가져가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과 후환과 불이익이 있더라도 오직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오직 주님을 조금이라도 잘 모시기 위한 생각으로 내가 그 일을 하겠다고 용기 있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두려움과 걱정 염려를 물리치고 주님을 찾게 되었고 내가 가져가겠다고 말씀했고 그래서 결국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얻고 은혜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물론 당연히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로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진정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세상에서 혹시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는데요, 그 안에 영생복락이 있는데요, 거기에 진정한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는데요, 어찌 세상에서 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고 그걸 피하겠습니까? 어찌 세상에서 조금 불이익이 있다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한다면 진리를 위하여,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거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 그것이 복된 일이고, 그것이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일이고, 그것이 우리가 자신이 진정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만나 더욱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16:24,25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진정으로 나를 따르려면 자기의 생각과 이성과 환경과 상황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오직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진정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진정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사랑함으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진정한 용기와 결단력으로 주님의 거룩한 역사에 참여할 때에 주님의 역사를 이루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있어도 누가 뭐래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나는 내게 주신 이 귀한 사명,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내게 맡긴 이 일에 충성을 다겠다는 책임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과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하고 그래야 진정으로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15절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이와같은 책임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5절 하반절만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여기서 내가 가져 가겠다는 이 말은 곧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당신이 혹시 치웠다면 나에게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잘 모시겠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비록 시신이나마 제가 돌보고 안식하도록 최선의 조치를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주십시오하는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드물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정승이 살았을 때는 뭔가 잘 보여서 유익을 얻을까하여 조그마한 일에도 열심히 그 집을 찾아 가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자신에게 별로 득 될게 없으니 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 병든 자, 메시야 왕국을 바라는 자, 진리에 갈급한 자 등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반역자로 몰려 돌아가시게 되자 그 많던 사람들도 어디론가 다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자취를 감춰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 한패가 되어 예수님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도망갔을 때 그녀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남들이 별로 거들떠보지 않는 예수님의 시신을 친히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예수님의 이 시신을 자신이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겠노라, 곧 내가 책임지겠노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도, 남들이 잘 안하려는 일이지만 내가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일 자체로 보아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고 더더구나 자칫하면 커다란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데 누가 기꺼이 하려고 하겠습니까? 남 보기에 좋은 일, 고상한 일, 깨끗하게 차려입고 폼 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궂은일은 뒤로 빠지기 쉽습니다. 궂은 일, 어려운 일, 힘든 일을 남에게 미루고 무언가 그럴듯하게 자신이 드러나는 일만 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뭔가 폼나고 재미있고 대접받고 드러나고 영광받고 하는 일만 한다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그건 그저 자기 만족 자기 기쁨 자기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기 힘든 일, 남들이 꺼려하는 일, 궂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조건이 나쁠 때, 힘들 때, 부족할 때, 연약할 때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이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면서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조건을 보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 많은 것을 얻어 보려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에게 인간적으로 무슨 큰 영광이 되고 명예가 되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참혹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지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세상에서 혹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주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끗하고 폼나고 그럴듯하고 남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더라도 비록 인간적으로는 좀 꺼려지고 힘들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일에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헌신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러한 사명들을 감당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여러분의 삶도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주님의 거룩한 역사도 힘있게 이루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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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교사 헌신예배 대표기도(Prayer for devotion worship)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구별하여 불러 주시고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셔서 어린 생명들을 주님의 귀한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니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할 뿐이옵니다. 주일 저녁을 맞이하여 이 밤에 저희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욱 큰 헌신을 다짐하는 헌신 예배로 드리오니 주님 홀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회개와 고백>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지난날을 돌이켜 보건대 저희들은 세속과 육신에 관계된 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주님이 맡겨주신 귀한 직분과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게으르고 무익한 교사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어떤 때는 이 귀한 직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저희들이 감히 이 자리에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헌신예배를 드린다고 하니 양심이 찔려 얼굴을 들지도 못하겠나 이다. 오 주여! 지난날의 죄악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도말 하여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새로운 다짐을 갖고 충성할 수 있기를 소원 하오니 연약한 저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간구>
자비하신 하나님!
저희들에게 맡겨주신 어린양 떼들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게 하옵시며 어린 생명들이 주님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저희들이 되지 않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어린 심령들에게 언제나 신앙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교사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옵소서. 혹 부지 중에라도 보여진 저희들의 잘못된 모습으로 말미암아 어린 생명들이 상처 받고 낙심할 수도 있사오니 언제나 주님 앞에서 산다는 저희들의 신앙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게 도와 주시옵시고 먼저 우리 자신을 주의 말씀으로 잘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영혼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교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맡겨진 영혼들을 한 영혼이라도 곁길로 나가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는 교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간구 하옵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고자 힘쓰고 애쓰는 주의 종들이 있나이다. 성령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셔서 항상 기쁨이 넘쳐 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고 인정하시는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지도 전도사님을 위시하여 지도부장, 지도 교사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이 맡기신 어린 생명들을 잘 양육할 수 있게 하시고, 부흥하는 주일학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머리 숙인 모든 성도들도 영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온 성도들이 혼연 일치가 되어서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들고 단위에 서시는 강사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목사님의 선포 하시는 말씀을 통해 모든 교사들이 영적으로 재 충전하고 더욱 사명에 충실한 교사들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순서를 맡은 분들에게도 함께 하셔서 성령의 인도함을 밭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 하오며 어린 생명들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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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직자 헌신예배 대표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제직들이 헌신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불러 모아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지난해에도 우리는 사업과 가정을 핑계로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고 주님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지 못했는데,

 

주님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금년에 다시 직분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껏 게을렀던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금년에는 주님이 주신 귀한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본이 되는 제직들이 되게하소서

 

사랑의 주님, 믿음이 약해질 때 더욱 엎드려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이 맡겨주신 귀한 직분을 억지로 감당하거나 말과 지식만 앞서는 직분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희생과 섬김을 본받아

 

진정한 봉사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초대교회 집사들 같이 생명을 다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교만과 나태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겸손과 신앙의 덕을 겸비한

 

부지런한 일꾼이 되게 하소서. 맡겨진 일이 작든 크든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위해서도 구제와 봉사에 힘쓰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주님의 일꾼으로서 살아,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신실한 종들이 되게 하소서. 교회의 비전과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발맞추어

 

가는 제직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제직들이 되게 하소서.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서 어렵고 거칠고 소외된 일이라 할지라도

 

솔선수범 하는 자세를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평신도들에게도 모범과 기준이 되는

 

제직들이 되게 하시고, 교인들을 섬기는 제직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늘도 강단에 세워주신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꺠닫게 하소서.

 

말슴에 도전받아 다시 한 번 결단할 수 있는 이 밤이 되게 하소서.

 

오늘 헌신 예배 순서를 맡은 지젝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실수하지 않고 잘 감당하도록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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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교회 헌신예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불러 하나님의 귀한 백성을 삼아주시고,

 

죄가운데 방황하는 저희들에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신

 

극진한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남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바쳐 사명을 다짐하는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성령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헌신예배가 하나님께는 큰 영광을 돌리며 저희들에게는 한없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남선교회 회원들은 복음의 기수로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며

 

사랑이 메마른 이 땅위에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뜨거운 심정을 안고 모였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우리를

 

돌보시어 죄악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서 신앙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헌신예배를 드리는 귀한 복음의 역군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말씀 속에서 심령의 갈증을 풀 수 있도록 흡족한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이 은혜를 간직하고 증인으로서 사명을 다하는

 

모든 회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민족을 향하신 아버지여,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저희 남선교회 회원들이 이 땅의 복음화와 통일을 위해서,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믿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분 뿐이오니 꿋꿋이 전진하는 신앙인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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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도회 헌신예배 대표기도모든 믿는 자에게 안식이 되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안식이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항상 저희들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여주시고,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저희들을 구원하여주시어 영생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저희들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 아버지께서 섭섭하게 느끼시도록 행동한 것, 모두 용서하시고, 주님 주시는 새 힘을 공급받아,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한주간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원하며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신도 주일을 맞아 남신도 회원들 주님 앞에서 다시 한 번 믿음의 바른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하며 결단하고자 합니다.

 

이 썩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내가 먼저 죽어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남신도 회원들이 되게 하옵소서!

 

참된 겸손과 순종으로 주님의 일에 충성 봉사하게 하시고,

 

주님의 일에 더욱 헌신하는 남전도회 회원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한 마음으로 단합되게 하시고, 성도간의 풍성한 교제가 넘치게 하시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파하는데

 

앞장서는 남신도 회원들이, 이 교회에 차고 넘치기를 원하며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금년도 저희 교회는 남전도회 서울1구 지역일을 담당하여,

 

이 두 기관을 이끌며 봉사하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예정된 행사들을 전 교인들이 합심하여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성령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오후 예배 후에는 교회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남전도 회원들간의 교제와 친교를 갖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주안에서 사랑하게 하시고, 이 제단의 남전도 총회가

 

더욱 부흥하여 일꾼들이 모여들며, 교회 일을 자원하는 일꾼들이

 

넘쳐나기를 원하며 간구합니다

 

남전도 회원들 모두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다 되게 하시고,

 

변화를 추구하며 새롭게 하시려는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신앙생활이 안전지대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이며 실천하는 일에, 헌신하는

 

이 제단의 남전도 총회가 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예배를 통해서 저희 모든 성도님들 자기의 삶을

 

온전히 주께 맡기기로 결단하는 믿음의 예배 시간이 되기를 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선한 싸움의 대열에서 앞장서기로 결단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단위에 세우신 주님의 귀한 사자 목사님, 주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성령 충만케 하시어서,

 

생명의 꼴로 저희를 먹이실 때,

 

은혜의 말씀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자리에 마음의 아픔과 고통 때문에 주님의 위로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직장 문제에, 자녀 때문에, 불신자인 가족 생각에, 건강 때문에,

 

그리고 세상적인 문제와 불안으로 저희들은 근심,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시간 능력 받고 치유되기를 원하며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예배를 위하여 교회 이 곳 저 곳에서 알게 모르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 봉사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주님 사랑받는 자녀들임을 주께서 확인시켜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 말씀에 은혜 받아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가벼운 발걸음들이 되도록 성령님 함께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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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헌신예배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주시는 하나님

 

우리들에게 귀한 배움의 시간을 주신 것을 감사드며

 

좋은 교회와 귀한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에 힘입어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으며,

 

키와 몸이 자랄 뿐만 아니라 믿음도 자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자라서 하나님 원하시는 인물들이 다 될 줄 믿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또한 우리들을 디모데처럼 기르시기 위해서 힘쓰시는 바울 사도와 같은 선생님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몸에 녹아서 뼈에 양약이 되게 하옵소서.

 

그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가 새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말씀의 전파에 힘쓰며 어릴 때부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사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창세기의 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도 밝고 아름다운 꿈을 허락하시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는 부흥하며,

 

우리 모두에게는 진실된 기쁨이 넘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에게는 진실된 기쁨이 넘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다니엘처럼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굳센 믿음의 인물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올지라도 주님 의지하여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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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의 예배학(禮拜學), 예배(禮拜)란 무엇인가?

 

Ⅰ.서언(序言)

예배란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라는 말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신약 용어는 ‘프로스쿠네오’인데 이것은 “~에게 키스하다, 손에 키스하다, 절하다, 엎드리다”라는 뜻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개념은 사람이 존경, 경외감을 갖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하나님께 적용한다. 우리2는 하나님 앞에 절하며 또 하나님께 최상의 성품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4:20~24절은 예배에 대한 연구의 시금석이다. 이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간의 대화인데 ‘예배’라는 말이 본문에서 여덟 번 나타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교회에 간다. 그런데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또는 설교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또는 축복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간다면 그것은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악과 설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데 그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드림으로써 행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드리기 위하여 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존경과 경의를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드릴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 우리의 마음의 태도 및 우리의 소유물을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

 

본 레포트의 목적은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둘째로, 실상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셋째, 그렇지 않다면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배의 중요성”, “예배의 근원”, “예배의 대상”, “예배의 영역”, “예배의 본질”, “예배의 결과”, “예배를 위한 준비”, “예배의 장애물”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예배의 중요성

 

Ⅱ-1.성경은 예배로 가득차 있다.

예배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성경이 예배에 대해 매우 자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백 번 거듭해서 예배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그 가운데 예배의우선권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의 몇 가지 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1.구약의 구절들

 

1) 제1계명의 강조(출20장)

하나님의 몇몇 표준, 원리 및 지침을 계명, 법규, 법령, 법률 및 신조의 형 태로 말씀하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애굽기 20장 2~6절까지의 제 1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제 1계명은 하나님을,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라 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성막의 설립(출25장)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에 우선을 두고, 예배하는 데 집중하기를 원하셔서 예배를 행할 장소를 설립하신다. 그것이 성막인데 하나님께서 이 예배의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모든 수치, 기 준, 설비를 논하는데 7장(총243절)을 할애하신 점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우 주를 비롯한 삼라만상의 창조를 묘사하는 데는 불과 31절만이 할애 되었을 뿐이다.

 

성소에는 지성소가 있었고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는데, 이 언약궤 맨 위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로 피를 뿌리 는 속죄소가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곳은 바로 속죄소인데, 출애 굽기 25장 22절을 보면 예배가 가장 우선적이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3) 성막주위의 진지(민1:52~2:2)

광야 방랑생활 40년 동안 매번 이스라엘 자손이 진지를 세우기 위해 멈춰 설 때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 가까이 있어야 했다. 제사장들 주위에는 레 위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열 두 지파가 바깥 쪽의 원을 이루었다. 제사장들 은 예배를 맡고 있었고, 다른 레위인들은 성막을 돌보는 봉사를 맡고 있었 다. 이것은 우선권이 예배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하여 준다.

 

4) 스랍의 예(사6:1~2)

이사야 6:1~2에서 날개 중 네 개가 예배와 관련이 있고, 두 개만이 봉사 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각각의 스랍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가렸으며, 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때문에 그의 발을 가렸다. 이는 천사들에게 있어서도 예배가 우선적이었음 을 나타내고 있다.

 

 

5)시편 기자의 권고(시편95:6~7상)

시편95:6~7절 상에서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 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예배할 것을 권고하는 많은 시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시5:7; 29:2; 45:11; 66:4; 86:9; 96:9; 99:5,9; 132:7; 138:2)

 

2.신약의구절들

 

 

1) 로마서12:1~2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11장에 걸쳐 그리스도인과 그의 모든 유익을 정의 하는 교리를 논한 다음에, 로마서12장1~2절을 통하여 예배에 관해 논하 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받으실만한 영적 예 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산 제사로 몸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런데 그것은 육체적 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영적 예배의 행위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그의 위대한 자비 때문에 영적 예배의 행 위로 그에게 우리 자신을 드릴 것을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께 참되고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2) 베드로전서 2장5절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에서 구속적 은혜의 기사들을 담고 있다. 그 리고 2장 2~3절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갓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제 구원 받은자로서 베드로전서 2:5절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손으로 만든 집에 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산 돌로 만든 집에서 사신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제사를 드려야 한다. 받으실만하고, 참되고, 영적인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의 변혁시키는 사역을 기초로 하여 드려진다.

 

그러므로 예배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성경이 예배로 가득 차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예배가 중요한 둘째 이유는 운명이 예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Ⅱ-2. 영생은 예배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배는 생활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생활의 핵이다. 받으실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영생에 들어간다. 시간과 영원이 예배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1.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

1) 거짓 신들의 예배세상의 물질적인 신이나(욥기31:24~28), 하늘의 초자연적인 신들(신명기 4:14~19)에 대해 예배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그들 자 신이 창조한 우상들에게 예배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받지 않으 신다.

 

2) 잘못된 형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하나님을 형상으로, 물질적인 표현으로, 우상으로, 또는 자신의 사고의 결 과 및 산물인 어떤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3) 자기 방식대로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예배활동을 개인적 정의에 따라 격하시키는 것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제 멋대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몇 명의 성경적 인물을 예로들면 “나답과 아비 후(레10:1~2)”, “사울”(삼상13:8~14절상), “웃사”(삼하6:1~9), “바리새인 들”(마15:1~9; 마23:23~28)등이 있는데 예배는 분명히 성경의 규정에 따라 드려져야만 한다.

 

4) 그릇된 태도로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우리 마음의 태도가 옳지 못하면 그 예배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즉, 거짓 신을 예배하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하지도 않고 우리 자신이 고안한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올바른 태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관련 성경 구절을 보면 “말라기1:6~14; 3:13~15; 4:1~6”, “아모스5:21~27”, “호 세아6:4~7”, “이사야서 1:11~20”, “마가복음 7:6”등이 있다.

 

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1) 참된 예배자들의 모습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자들은 “깨끗한 손”(하나님께 복종하며 청결히 하는 자)과 “청결한 마음”(동기와 욕구가 올바른 자)을 갖고 참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이다. 시편 24편 3~6절은 참된 받으실만한 예배자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2) 참된 예배자들의 산출

구원의 목적은 참된 예배이며, 복음서와 바울 서신의 기록은 사람들이 예 배할 목적으로 구속받는 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3) 참된 예배자들의 자세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서 구원받았다. 히브리서12:28절을 보면 “섬기다”라 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헬라어 동사인 ‘라트레우오’로서 “예배하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의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받으실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우리를 예배하는 자들로 만드 신 하나님께 은혜롭게 반응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받으실만한 예배는 구원의 결과이므로 우리는 받으실만하게 예배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 예배를 확장시키고 그것의 충만함에 따라 사는 것은 그의 몸을 영적인 예배의 행위로 -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 기꺼이 드리는 신자의 순종하는 태도에 의 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을 적절하게 예배하지 않는다면 염려스런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

 

 

4) 참된 예배자들의 개인적인 특성매일의 삶 가운데서 참되고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① 동료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롭게 행하고(로마서14:28) ②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 도께로 인도하며(로마서15:16) ③ 필요를 따라 물질을 드리고(빌립보서 4:18) ④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며(에베소서 5:8~10) ⑤ 의의 열매로 충만하고(빌립보서1:11) ⑥ 경건하고 단정하며(디모데전서2:3) ⑦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히브리서13:15~16)하여야 한다.

 

 

5) 참된 예배자들이 모이는 목적

우리의 예배가 생활 방식이 되어야 할지라도 우리는 또한 매 주 공동 예배 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나머지 육일 동안 예배하도록 고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하여 세상 가운데서 나눔과 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배드릴 목적으로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행하도록 격려 받는다.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의인들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 시는 그 백성 가운데 우리는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과 선행 을 하도록 격려받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에 그 격려가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끼칠 때, 우리는 “선을 행하고 나눠주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히 13:16). 그리고 다시 그 모임에 돌아올 때 우리는 계속적인 감사의 마음 을 갖고 충만하게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Ⅱ-3. 영원과 구속사가 예배에 의해 묘사된다

예배는 영원과 구속사의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1.창조전의 역사

사람이 창조되기 전 영원한 과거에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사들이 존재했는데, 느헤미야9:6절과 욥기38:4~7절 까지를 보면 그 영원한 과거에도 예배가 진행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타락 전의 역사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었을 때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러나 이 브가 사단을 예배하기로 결정하고, 아담이 이브를 예배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중단 했을 때, 그들은 타락했다.

 

3.타락 후의 역사

1) 가인과 아벨

아벨은 받으실만한 제물을 드렸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못하여 사람 사이의 최초의 분열이 일어났다.(창세기4:5)

 

 

2) 족장들

족장들이 올바르게 하나님께 예배했을 때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릇되이 예 배했을 때에는 징벌을 받았다.

 

 

3) 이스라엘 국가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세대가 죽고 말았다(민14:22~23). 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예배받기 원하셨던 대로 예배하여 축복을 받았으나 결국 올바르지 않게 예 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전세계에 흩어 버리셨다.

 

 

4)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예루살렘에 가셔서 예배 처소에 들어가 그 처소를 정결케 하셨다(요2:13~17). 또한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들을 부르셨다(요한복음4:23~24). 이와같이 예배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로 구 속사의 중심 주제였다.

 

 

4.현재의 역사

교회가 생겨날 당시 그것은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빌립보서 3:3은 성경에 나온 예배에 대한 위대한 진술들 중의 하나로서 교회에 대한 정의를 잘 내려주고 있다. 교회는 독특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영으로 하나님 을 예배하며, 그리스도로 자랑하는 것을 그 구성으로 한다.

 

5.미래의 역사

역사가 그리스도 재림의 영광 가운데 완성될 때, 그것은 예배에서 절정을 이 룬다. 왜냐하면 예배는 천국과 영광의 주제이기 때문이다.(계시록4:10~11; 계 시록 5:14; 계시록 11:15~17; 계시록 14:6~7; 계시록 15:4; 계시록 19:4; 계시 록 19:10; 계시록 22:8~9)

 

6.그리스도께서 예배를 명하셨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예배를 명하셨다(마4:10하). 이 말씀은 창조된 모 든 것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Ⅲ.예배의 근원(基礎)

구원의 목표는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속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15에서 결국 예배를 낳기 위하여 모든 노력이 기울여짐을 말씀하고 있다.

 

 

받으실만한 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주님은 누가복음 19:10절에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요한복음 4:23절하와 연관시키면,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예배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통하여 예배하는 자들이 된다.

 

Ⅲ-1.그리스도의 죽음(시편22:22~27)

시편 22:1~21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는 묘사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는가에 대한 답은 22절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시편22편은 구속의 목표가 예배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구원이 예배의 기초라는 것이다.

 

 

Ⅲ-2.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린 이유(출20:22~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백(출19:7~8)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기초하거나 그들의 자기 의(義)에 기초해서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20:1~17에서 십계명을 주신 후에 출22:22~26을 통하여 은혜로운 규정을 주신 것이다.

 

출22:22~26에 나타난 은혜로운 규정은 예배의 기초로서 제단과 그 위에 놓을 수 있는 제물들을 설정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제사로 궁극적인 교제를 가능하도록 만드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만날 때, 우리의 죄가 처리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깨끗하게 되며, 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자가 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의해 가능하게 된 구원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근원이다.

 

 

Ⅲ-3.이사야의 예언(사66:22~23)

이사야서는 놀랄만한 방법으로 구속사를 한 눈에 훑는다. 이사야서의 초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위대한 미래 - 메시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 - 로 옮아간다. 52장과 53장에서는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하는 고난받는 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66장에서 는 그 이유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영원한 예배자들을 낳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천년왕국을 넘어 영원한 상태로 나아간다.

 

Ⅲ-4.한 회심한 죄인의 반응(고전14:23~25)

고전 14:23~25는 어떤 사람이 회심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바울식 표현이다. 진실로 어떤 사람의 마음을 열기를 원한다면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 그가 죄를 깨닫고 책망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가 죄를 선고 받고, 책망을 받고, 깨달으면, 그의 반응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로 나타날 것이다. 구원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예배이다. 이와 같이 구원은 예배의 근원 또는 기초가 된다.

 

 

Ⅳ.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의 대상이 두 가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영으로서의 하나님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이는 그분의 본질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본질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참된 예배의 기본적인 것이다.

 

Ⅳ-1.영이신 하나님(하나님의 본성)

 

1.하나님의 영성

요한복음4:24절상은 헬라어로 ‘영’이라고 읽는다. 영과 하나님이 용해되어 동등한 것으로 만든다. 즉, 하나님은 하나의 영광스러운 영이신 하나님이시 다.

 

1) 하나님은 형상으로 전락될 수 없다.

이사야서40:18~26의 말씀을 보면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가운데 18, 19, 25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암시하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과도 비길 수 없으며 세상에 서 가장 중요하고 강한 자도 하나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또는 신학적 관점에서 또는 성경적 관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자칫 하나님을 형상으로 전락시 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으로서 예배되어야만 한다.

 

 

2) 하나님은 한 장소에 제한되실 수 없다하나님은 한 장소에 제한되는 우상이 아니시다(예레미야 23:23~24).

하나님은 특별한 장소 또는 시간에 제한 받으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간에 특별한 정소에만 계시다고 생각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시간과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신다.

 

2.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예배를 받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거 룩하심은 “하나님의 독특한 타자성” 또는 “인간 피조물과 하나님의 상이성” 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은 흠이 없으시며, 오류가 없으시며, 죄가 없으 시며, 실수가 없으시며, 또 완전히 의로우시며 전적으로 거룩하시다. 그러므 로 참된 예배를 위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선의의 노력과 또 하나님을 거룩하게 존중하지 않으며 진행 되는 - 그러므로 잘못된 - 많은 예배들이 있다. 많은 멋진 노래가 불려지고, 멋진 감정들이 느껴지며, 멋진 생각들이 떠오르고, 또 멋진 정서들이 표현되 고 있다. 구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기에 이 러한 “멋진”것들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정서 활동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당연히 수반되 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이해로 경건한 두려움의 반응을 낳는다는 것이다.

 

1) 경건한 두려움의 반응

시편 96:2~9까지의 말씀을 보면 모든 예배와 찬양후에, 9절에서 핵심 진 술에 이르는데 여기에 예배의 태도 또는 관점이 있다. 결국 거룩하심은 두 려움과 분리되어 이해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매우 거룩한 존재 이심을 인식하게되면 자신이 매우 부정적인 존재임도 분명히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룩한 경외감을 낳는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피조물에 대해 거룩한 반응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 정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압도적인 부정함을 느끼 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개념이 단지 구약의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히브리서 12:28절 하~29, 이사야서 6:1~8, 디모데후서 2:22등과 같은 성경 말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2) 감사의 반응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 하심이 우리에게 감사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에 따라 보 응하시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는 이러한 하 나님의 자비조차도 우리에게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롬2:4).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보여주 셨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 개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롬6:23). 즉 우리가 죄를 지닌 채로 하나님의 임재 가 운데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발 하실 날이 온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권리를 갖고 계신다. 우리 는 은혜와 자비에만 익숙해져서 하나님이 의로운 것을 행하실 때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실 수가 있는 가?”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삶이 어렵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실 수가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생각이 반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죄에 가득찬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실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한 저주와 사망의 사건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 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부정함에 대 하여 거룩한 방법을 행동하셨던 것이고 또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께 약속했던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을 때 왜 우리가 죽지 않았나? 하는 은혜와 자비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당하신 분이 아니라 자비로운 분이시다. 그러므로 때때 로 하나님께서 의로운 것을 행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생각나게 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기 위하여 그것 을 예 또는 표지로 행하신다(고전10:5~12).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부당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침해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자비로우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요, 초점인 것이다.

 

Ⅳ-2.아버지이신 하나님(하나님의 본질적인 관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아버지라는 용어를 볼 때, 사람들은 즉시 하나님을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광대하시고, 편재하시고, 영원한 영으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친밀하시고, 사랑하시고, 개인적인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고 또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요한복음 4장에서 토론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고, 또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계신 강조점도 아니다. 그 강조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하나님의 삼위일체 칭호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그분은 하나이신 세 인격 즉, 삼위일체 (三位一體, TRINITY)이시다. 이 삼위일체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이 여기서 “아버지”로 불리워 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를 우선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자의 아버지시다. 그리고 성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 므로 우리가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모든 인류의 아버지(자 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를 모호하게 예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칭호와 별개로 예배되실 수 없다.

 

1) 예수님께서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신 의미

신약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논의될 때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 리스도의 아버지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언급하셨을 때 예수님이 그의 신성, 하나님과의 동등성을 진술하고 계신 것이다.(요한복음 5:17~18; 요한복음10:29~33; 요한복음 17:1~5; 마태복음 11:27; 요한복음14:6~11)

 

 

2) “아버지”란 용어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

서신서(書信書)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에 배되고 동일시 된다.(에베소서1:3상; 에배소서1:17상; 고린도후서 1:3; 빌립보서2:9~11; 로마서 15:6; 베드로전서 1:3상; 요한 2서 3절)

 

 

2.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예배

1) 아들에 대한 예배

요한복음 5:23은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동등성에 대한 논리적 결론을 내 려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에배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아 들을 예배하여야 한다. 이는 아들의 이름으로 나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예배할 수 없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연합가운데 정의 되며, 초대교회 내에서 나타났고, 요한복음 20:38에서 사도 도마에 의해서 선언 되었다.

 

 

2) 성령에 대한 예배

성령님을 예배하라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 아무데에도 없다. 하지만 모든 에배는 성령의 권능 가운데 고무된다. 우리에게 하나님 의 임재 가운데 나아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다(롬8:15; 갈4:6).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권 능과 임재 가운데서 이다. 그는 에배의 중요한 부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실재를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삼위일체적으로 성령님은 아들과 아버 지와 동등하시기 때문에 그 또한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그러면 요한복음 4:20~24에 따르면 예배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영이신 하나님이다. 어떤 모호하고둥둥 떠다니는 정의되지 않은 영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다. 누구의 아버지이신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하나님과 본질에 있어 하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게 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고 소중한 것이다.

 

 

Ⅴ.예배의 영역(場所)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히 성전, 성막 그리고 매우 특별한 지리적 장소에서 예배했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 4:20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래 그녀는 예배드려야 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21절에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이 곧 모두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장소도 예베 처소가 되지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Ⅴ-1.옛 언약의 상징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는 더 이상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에서 드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성막이나 성전 또는 의식 및 희생 제도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셨던 모든 상징, 표상 및 그림들을 부인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모든 상징들이 사라지고 물질적인 성전, 제물 및 제사장들이 필요하지 않게 될 때가 노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 살아있는 성전과 살아있는 제사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제물은 단 하나의 완전한, 최종적인, 영구적인 - 모든 다른 제사들을 종식하는 - 제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에는 잘못된 것은 없었지만 그것들은 그저 상징일 뿐이었고 하나님은 결코 성막이나 성전에 제한되거나 한정되실 수 없는 분이시기에 상징은 마음의 자극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서 상징들은 실제가 되었고 또 외적인 것으로부터 내적인 것으로 옮아갔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어떤 사람이든 지성소로 곧바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막15:38)

 

- 그렇다면 이와 같이 前制度가 끝나고, 성전이 있지 않다면 그리고 특별한 물질적 건물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예배를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다음에 있다.

 

Ⅴ-2.새 언약의 실재

1.우리의 개인적 몸인 성전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은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들이다. 이는 사도 바울도 고 린도전서 6:19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해변에서, 산에 서, 시골에서 또는 당신의 거실에서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또한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나무 아래 앉아서, 숲 가운데를 걸으며, 베 란다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면서, 아침에 신선한 꽃 내음을 맡으면서 하나님 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그러면 이로인해 내가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의 문이 생기게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에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차 원을 분명히 살펴보아야 한다.

 

2.우리의 집단적 모임의 성전

오늘날에는 예배 처소 -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그분의 백성을 만나는 건물 - 가 있다. 이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매우 생생한 용어로 묘사하고 있다. 그 리고 그는 그들을 연결되지 않은 개인적 성전들로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권속에 속해 있어 공동 시민권에 의 해 연결되어 있고 또 가족으로 공동 혈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 라 건물로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에배소서2:19~22). 하나님은 특별한 건물을 갖고 계신다. 그것은 구속된 성도들의 가시적이 고 살아있는 모임이다. 함께 모일 때에 우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구성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개인적 성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집 단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의 거대한 성전인 것이다.

 

2)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산 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함께 모일 때 하나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시는 예배 처소를 구성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그 자신을 나타내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에 게 움직이시기 때문이다(베드로전서2:5)

 

3)바울은 고린도후서 6:16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 가운 데서 움직이신다고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다고 권면하고 있다(고린도전서 3:9; 3:16~17)

 

4)우리가 함께 모여야 하는 이유는 놀랄만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 님의 살아있는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로 만들어진 성전이 아니 라 살아있는 육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히브리서10:24~25).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에배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혼자서 예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의 모임 가운데서 예배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집단적인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오는 자극과 확인,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취하시는(우리가 혼자있을 때는 성취하실 수 없는) 독특하고 놀라운 사역에 대해 반드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주일 하나님을 에배하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Ⅵ.예배의 본질(本質)

 

Ⅵ-1.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서 벗어난 것들

 

1.사마리아인의 예배(진리없는 신령)

요한복음 4:22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 을 예배하고”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하나님 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몇몇 진리들을 알 만큼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구원 의 계시를 전부 알 정도로 충분한 지식은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이 드리는 예배는 적절한 지식이 없는 열광적인 예배였다. 그 들이 드리는 예배는 정열적이고, 열광적이고, 흥분되어 있었고, 충성된 것이 었지만 그들에게는 올바른 내용이 없었다. 즉, 그들은 신령으로 예배했지만 진리로 예배하지는 않았다.

 

 

2.유대인들의 예배(신령없는 진리)

요한복음 4: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유대인)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유대인들의 태도는 사마리아인들과 정반대이다. 그들은 구약의 39권 모두를 받아들이며 구원의 가르침에 대한 전체계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 나 그들에게는 신령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차갑고 율법적이며 위선적이었고(마태복음6:1~8), 예배 동작을 모두 행했으나 그 안에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의 예 배는 생명이 없는 것이었고 그들은 진리는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비어 있었다.

 

Ⅵ-2.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1.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1) 의미

신령으로 드리는 에배는 인간의 영 - 속 사람을 뜻한다. 우리는 안에서부 터 밖으로 에배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적절한 장소, 적절한 시간, 적절한 말과 적절한 태도, 적절한 의복, 적절한 형식, 적절한 행동, 적절한 음악, 적절한 분위기 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부 - 영혼에 무엇이 있는가 의 문제이다. 바울과 다윗은 심령과 내부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회개하는 예배와 마음 속이 찬양으로 가득차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로마서1:9; 시편103:1; 시편51:15~17)

 

 

2) 방법

어떻게 하면 신령으로 예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찬양으로 가득차서 우리 입이 열려질 때 찬양이 쏟아져 나오게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냉 랭한 마음, 즉 지루하며 무관심한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원리를 제시해 보면

 

 

(1) 성령께 사로잡힘

성령께 사로잡히는 것(고린도전서2:11; 고린도전서12:3)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으로 예배드릴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성령께서 거기 계셔 그것을 고무해야 한다. 즉, 성령께서 예배를 북돋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원 받은 것이다. 일단 구원을 받으 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촉구하고, 찌르 며, 밀어부치고, 가르치며, 우리를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 그것이 성령님의 사역이다.

 

 

(2)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함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새로워진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다. 하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는 것은 예배를 시작하는 방아쇠가 된다. 즉, 온 마음을 한 가지 주제인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 다. 효과적인 예배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온 마음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해 묵상 할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묵상함

묵상은 지식에 기초하는 것인데 만일 어떤 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 한다면 생각할 주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순 수하며, 가장 참되고, 가장 멋지고 복된 묵상은 발견에 기초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우리의 모든 사 고과정을 완전히 사로잡을 때까지 그 진리를 묵상하라는 것이다. 이러 한 묵상이 진정한 예배를 하도록 한다.

 

 

(4)나누이지 않는 마음

우리 심령을 예배에 집중시키려 애쓸 때, 한 가지 주된 방해거리가 나 타날 것이다. 그것은 자아(自我)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예배는 방해를 받는다. 우리에게는 종종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어서, 발견이나 기도, 묵상, 예배 등을 위한 시간이 없다. 또한 나누이지 않는 마음을 갖기도 어렵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계획, 우리의 행동, 우리의 필요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自我)는 항상 예배를 방해한다. 우리가 자아를 완전히 제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에 빠져들 때까지는 진정 하나님을 자유롭게 에배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진정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너무 게으르다 는 사실로 귀착되어진다. 찬양이 고정되고, 견고하며 하나님의 기사에 집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 이익, 축복 등 보다 항상 하나님을 위에 모시고 그분을 우선해야 한다.(시편86:5~ 11; 요일2:27; 요한복음16:13; 시편108:1~3; 시편112:7~8; 시 편57:7~11)

  

⑤ 열리고 회개하는 심령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접근할 때, 우리는 열리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다 가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탐조등을 켜서 당신께서 한구석에서 발견 한 것들을 드러내어 주소서”라고 기꺼이 말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예배하는 것이 어렵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면 분명 그 사람의 삶에는 오랫동안 간과되어졌고 하나님 만 알고 계시는 영역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그러한 영역들을 찾아 그것을 보여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 상 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 죄들을 고백하고 그 죄를 처리하여 야 한다(시편139:23~24; 사6:6~7)

 

2. 진리로 드리는 예배

모든 예배는 진리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느낀 감 정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세워진 반응이다. 만일 우리가 진리로 예배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가운데 예배드 려야 한다.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신 곳은 그분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한복음17:17;시편119:142,160)

 

1)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피조 세계와 양심 속에서 드러내셨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명백하게 자신을 게시하셨다. 우리가 진리로 예 배하려면 우리는 성경에서 규정된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창조와 양심의 하나님에 대해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 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분의 계시와 떨어져서 예배를 받으실 수 없다(로마 서1:18~19,25)

 

2) 모든 예배는 반드시 진리에 근거해야 한다(시편 47:7)

예배는 단지 손을 모아쥐고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아니면 아무 의미나 내용 없는 황홀경에 빠진 경험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심지어 좋은 감정도 아니다. 물론 감정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예배는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드리는 찬양의 표현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 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이는 참된 예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임은 어떤 모임이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 - 하나 님을 예배할 수 없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령으로 또 진리에 따라 예배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3) 예배에 있어 모든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결코 속 임수로 성경을 오용해서는 않될 것이며 또 우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정직하여서도 안된다. 우리는 오직 진리 가운데로 행하여야 한다.(고린도후서4:2)

 

4) 초대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것은 사도들의 저술과 가르침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였 다. 그것은 진리의 실체로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예배드렸다 (사도행전2:42)

 

5)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가르쳤다(디모데전서4:13)

 

6) 초대교회가 예배드릴 때 그들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이용했으며 찬양과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 의 찬양이 규정되며, 우리의 예배는 신적 기준에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골 로새서3:16~17)

 

7) 무지(無知)한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사도행전17:23)

 

예배의 특성은 찬양과 기도, 노래, 헌금 그리고 생활 가운데서 우리 속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항상 그분의 계시된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 교회가 항상 그렇게 되도록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감상 적이고 광신적이며,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편의 한 가 운데가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받으셔야하기 때문이다.

 

 

Ⅶ.예배의 결과(結果)

 

Ⅶ-1.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시편50:23). 우리 삶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레위기10:3)

 

Ⅶ-2.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된다

예배하는 교회는 정결한 교회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우리의 죄됨에 대한 인식과 그 죄됨을 포기하려는 기꺼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에는 깨끗하고 정결하게 되려는 불타는 열망이 있다(시편24:3~4).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죄에 더욱 더 압도되어 다윗과 같이 이렇게 외치게 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시편139:23~24절상)

 

교회에 있어서 성찬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우리의 죄된 모습에 직면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바로 이 때문에 초대교회는 그토록 자주 성찬식을 행했던 것이다.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된다.

 

 

Ⅶ-3.교회가 세움을 받는다

초대교회가 예배를 드렸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칭송 또한 받은 것을 알게 된다(사도행전2:47). 그리고 그들은 성읍을 완전히 그들의 교리로 가득차게 했다(사도행전5:28)

 

예배하는 교회는 쌓아 올려지는 교회 - 즉 세움받은 교회이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고자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세워지고, 강해지며, 변화되어 진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배가 거룩한 기대와 함께 시작하는 것처럼, 그것은 거룩한 기대로 끝을 맺는다. 예배의 결과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되며, 교회가 세움받는 것이다.

 

Ⅶ-4.안 믿는 자들이 구원 받는다

예배하는 공동체의 심오한 증거는 어떤 단독적인 설교가 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예배하는 사람들은 안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린도전서 14:23~25)

 

예배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인이 깨끗하게 되며 교회의 품성이 높아지고 잃어버린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Ⅷ.예배를 위한 준비(準備)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때, 문제는 성가대나 설교가 얼마나 잘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의 한 구절인 히브리서 10:22절 말씀이 성경전체에서 예배에 대한 가장 위대한 최종 변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Ⅷ-1.부르심

“…나아가자…”

이는 예배에 대한 부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라, 지금은 예배할 때이다. 하나님께로 향해서 가까이 나가자”

 

 

Ⅷ-2.점검표

1) 진지함

“…참마음…”

우리는 진정으로 진지한가? 우리의 마음은 모아져 있고 온 마음을 다해 예 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2) 충성됨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가 더 이상 노력이나 의식의 체계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 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고 나온다고 하는 충분한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는 것이 충성을 의미한다.

 

3) 겸손함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악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겸손과 무가치함을 위식하게 된다. 주 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죄로부터 우리를 뿌려서 깨끗하게 하셨다는 사실 외에는 하나님 임재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깨끗함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것은 십자가에서 우리 마음을 씻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날마다 씻는 것이다. 예배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고백을 통하여 생활 가운데 짓는 죄 를 처리해야 한다. 비록 우리 마음은 십자가에서 깨끗하게 되었지만 우리 의 발은 여전히 이 세상의 먼지를 묻히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고백해야 한다.

 

 

Ⅸ.예배의 장애물(障碍物)들

 

Ⅸ-1.회개의 예배

만일 우리의 삶속에 죄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죄를 고백해야 한다. 사무엘상 12장을 보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후, 또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죽은 후의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모든 일 후에 20절을 보면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회개의 예배이다.

 

다윗은 비극적인 상황 - 자신의 어린 아기를 잃음 - 한 가운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예배했다. 이는 그 자신이 마땅히 받을 것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개의 예배란 징벌의 와중에서마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죄를 고백하며, “나는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를 결코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 회개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내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진솔한 회개가 없는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방해하는 첫번쩨 장애물이다.

 

Ⅸ-2.받아들임의 예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가져오신 환경들 중 일부를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한다. 그러한 환경들은 그들을 비통하게 만들고 결국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욥’을 보면서 분명한 받아들임의 예배를 배울 수 있다(욥기1:20~22). 또한 ‘죠지 뮬러’의 말을 상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죽는 날이 왔다. 인간의 칭찬과 인간의 비난에 대해 죽는 날,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해 죽는 날이 왔다.” ‘욥’ 역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고 있다.

 

받아들임의 예배는 우리의 상황 - 지위, 경력, 노력, 배우자, 자녀 - 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사랑하는 자를 잃는 것, 자녀를 잃는 것, 직업을 잃는 것, 질병의 고통 등)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저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는 마음이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번째 장애물이다.

 

Ⅸ-3.헌신의 예배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자기 아들을 이삭을 데리고 간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생명을 기꺼이 취하면서 여전히 그것을 예배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창세기22:4~5). 이것은 그 댓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을 예배에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러므로 헌신적인 마음과 정신이 없는 우리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X.結言(맺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에배의 정의와 중요성, 근원, 대상, 영역, 본질, 결과, 준비, 장애물등을 살펴 보았다. 본 결론에서는 참된 예배를 위한 자기 점검을 위에 기술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매번 예배 드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진지한가? 나의 마음은 모아져 있는가? 내 온 마음은 하나님께 바쳐져 있는가? 나는 그분께 집중하고 있는가? 나는 발견과 묵상을 통해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분을 봄으로써 갈급한 마음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있는가? 이것이 오직 믿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분명히 믿는가? 나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피흘리신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내 삶에 있는 모든 죄를 처리하고 깨끗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조금만 성의를 갖고 성경을 펴서 히브리서 10:22를 읽고 점검표대로 살펴 보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배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진지한가? 나는 새 언약이라는 진리에 전념하는가? 나는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사역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권리를 평가하고 있는가? 나는 순수한가? 나의 삶에 있는 죄를 처리해 왔는가? 이렇게 해나간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절상)고 말할 수 있게될 것이고 이를 근간으로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參考文獻

1.죤 맥아더(한화룡 옮김) , 참된 예배, 도서출판 두란노, 2000

2.벧엘 성경 편찬위원회, 벧엘 성경, (주) 종로서적출판, 1997

 

3. 기타 논문자료 다수
 출처 : http://kcm.kr/dic_view.php?nid=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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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헌신예배 대표기도 ♡온전한 교사 ♡ devotion service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것이라 하셨사온데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바로 지혜임을 깨닫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교회학교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모여 삶의 참 의미를 알게 해주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이 시간 헌신을 다짐하고자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한데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해주시고

교사의 임무를 다시 한 번 새기게 하옵소서.

어린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온전한 교사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로 우리 모두의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어린 심령을 진리가운데로 이끌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주 성령께서 각 교사들마다 담임교사가 되어주시고 멘토가 되어주셔서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어 주님의 지경이 넓혀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귀하신 목사님을 사랑하여 주시어 우리를 말씀가운데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의 말씀에 갑절의 은혜를 받는 모든 교사와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교회학교 교육국을 이끌어 가시는 서병훈 목사님과 국장인 조규왕 장로님,

그리고 세우신 모든 사역자들과 교사들에게 더 큰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저희 평화교회가 하나님 나라에서 매일 칭찬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진리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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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기도문 ♡ 축복의손길 ♡offering parayer

 

 

자비롭고 인자하시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귀한 남전도 헌신예배를 허락하시고 김애남목사님 말씀을 통해 큰 은혜 받게하시니 감사드립 

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시절을 쫓아 적당한 물질을 허락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의 부족한 손을 통해 귀한 물질을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는 이 예물을 기뻐받아 주옵시고 늘 축복의 물줄기가 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바치는 손길을 축복하셔서 저들의 가정과 사업장이 날로 더욱 번창하게 하옵소서 

야베스의 축복을 허락하사 저들의 지경이 나날이 넓어지게 하옵소서! 

 

마음은 있으나 물질이 없어서 바치지 못한 자에게는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믿음이 약하여 바치지 

못한 자에게는 바칠 수 있는 믿음을 허락 하옵소서!

이 예물이 쓰여지는 곳곳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일어나게 하옵시고 주님의 영광만 온전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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