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계절
인생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성장하는 봄의 계절이 있고,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가지며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여름의 계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가을이 오면 인생의 열매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허송세월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가을이 꼭 나이가 50세, 60세가 되어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서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뒤만 돌아보는 사람은 가을에 사는 인간입니다.
미래를 향하여 의욕을 가지고 추구할 것이 없다면, 나이가 20 이든 80 이든 그 나이와는 상관이 없이 가을에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젊은이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옵니다. 하는 일마다 좌절감을 느끼고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곧 인생의 겨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계절을 어떻게 하면 가을이나 겨울에서
봄이나 여름으로 돌이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계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가을이나 겨울인 인생의 계절을 봄, 여름으로 바꾸어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라
(이사야 55:6~7)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2. 어떤 병사의 희생
지금부터 십 몇년 전, 병원에 해산하러 간 한 산모가 복부수술을 하여
애기를 꺼내려 했으나 너무 허약해서 수술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수혈을 하려고 검사해보니까 그녀의 혈액형이 10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RH네거티브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이런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구하는 기사를 냈는데, 이 신문을 본 한 병사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곧 같은 혈액형을 가진 그 병사의 피를 뽑아 그 여인에게 수혈하였고 그 여인은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피를 너무 많이 뽑아 결국에는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희생한 이 병사의 죽음을 보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그 귀한 피(생명)를 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피 때문에 새로운 힘을 얻어 소생하게 된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날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 분을 믿고 영접하면, 그 약한 여인이 옥동자를 얻고 새로운 삶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큰 은혜를 내리실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3. 희망이 주는 가능성
1864년 1마일을 4분 50초에 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단축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1945년에 4분 1초까지를 기록하고 그 이상의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근 100여년 동안 4분의 벽을 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절대로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어느 외과 의사가 사람도 4분 이내에 1마일을 뛸 수 있다는
의학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근 100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번도 4분 이내에 뛴 사람이 없었는데 그 발표 후 만 2년 동안에
127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1마일을 4분 이내로 뛰고 말았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가능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십니다.
새로운 삶에의 희망은 누구도 깰 수 없다고 믿었던 죽음의 벽을 깨고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4. 네게 있는 것
미국에 햄크스라는 광부가 광산에서 일하다가 부상하여 두 눈이 멀게되고, 두 손이 다 떨어져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절망하여 금식 자살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던 때에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청하러 갔습니다. 그 때 설교자의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ꡓ라는 말을 듣고 설교가 끝난 후 그 교수를 만나 나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당신에게는 아직 입과 귀와 발이 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은 없을지라도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햄크스는 이 말에 희망을 가지게되고 하나님을 믿고 자기에게 입과 귀와 발을 남겨 준 것에 감사하며 스텐퍼드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이 없다, 가진 것이 없다,
배운 것이 없다는 등등의 이유를 대며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주어진 것이 많습니다.
정상적인 육체와 정상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친구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현재 닥치고 있는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감사하는데서 나오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5. 무얼 위해 일하세요.
우리의 인생을 24시간으로 볼 때 당신은 지금 몇 시쯤에 이르셨는지요?
잠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세요 과연 무엇을 위해 일해오셨습니까?
그래서 만족함을 얻으셨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ꡓ (시편 90:10)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만큼 살아왔듯이 그렇게 삶은 지나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날아가는 듯한 삶의 시간 속에서 정말 가치있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재물이나 명예나 성공 쾌락은 죽음과 동시에 소멸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것을 미루어 오셨습니까?
지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세요.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르니까요.
6. 자신 있습니까?
어이구... 정말 자신 있으세요. 옷 가를 살포시 적시는 가랑비라면
가뿐한 마음으로 맞을 수도 있겠지요. 좀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라도
그 정도쯤이야 충분히 피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예사로운 비 정도가 아니라 거대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풍우라면
그래도 자신있으신지요? 질풍노도와 같이 뇌성폭우와 같이 무섭게 달려들며 당신의 삶에 요구하는 수많은 어려움들, 고뇌, 죽음의 문제들을 당신의 힘과 노력으로, 지식과 재물로 해결해 보려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지혜와 지식과 재주로 얻은 소득을 지키기 위해 쉬지 못함과 근심함이 누구를 위함이 됩니까. 애씀과 수고로 얻은 돈도 명예도 건강도 사람들까지.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요.
이제 당신이 그렇게 의지하던 우산을 접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그분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면 밤낮없는 수고가 헛되지 아니하며, 미움없는
평안이 사는 날 동안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7.주저앉아 있을 겁니까?
병원을 눈앞에 두고도 힘이 들다고 불친절 하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고칠 수 있는 병을 그냥 포기하고 말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많은 상처 무거운
짐을 그대로 안고 그저 주저앉아 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1, 32)
너무 죄가 많아서 교회에 갈수 없다구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앞에 나와 당신의 모든 상처와 질병, 삶의 고통을 내어 맡기십시오. 정말, 깨끗하게 회복되는 기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8. 구경만 하실 겁니까?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왜 바라만 보고 계세요.
무언가 하고 싶지 않았던 일 또는 용기가 나지 않던 일을
힘을 내어 실행하고 마무리 짓게 될 때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어라고 말할 정도로 만족감과 보람을 느껴 보신 일 있으십니까?
어둡고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해 혹, 내키지 않는 걸음이라도
사다리를 오르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푸른 초장,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듯이
어둡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이 빛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참된 기쁨과 자유를 얻는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 긴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이
내키지 않는 일 일수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오십시요.
그분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소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9.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
인생은 나그네길?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 이니라ꡓ (잠언27:1)
인생은 급속히 무정히 왔다가 가버립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찬란한 기회들도 가버립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ꡓ (전도서12:1)
늦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10. 행복을 찾고 계십니까 ?
많은 사람들은 돈, 쾌락, 건강, 명예, 권력들을 도구로
삼아 행복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길은 ......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돈을 가지고 보면, 돈으로 인한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재산상속으로 형제가 싸우며 친구를
버리는 것을 보십시오. 그럼 쾌락에 있을까요?
쾌락 속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뒤따르고 더 큰 쾌락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권력과 명예도 아닙니다.
권력자들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불안과 초조 속에 지냅니다.
세상의 명예를 얻어도 마음의 공허를 메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평화와 만족과 기쁨, 그리고 생명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십시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너의 행복과 기쁨을 너로부터 앗아갈 자는 없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
11.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
지금 당신은 이러한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내세는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양심껏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착각 속에 계실런지 모릅니다.
당신의 그 착각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선행과 철학, 미신등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두가 헛된 것이며
어리석은 행동인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이미 예수께서 당신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영생을 주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 )
12. 당신의 인생버스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버스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을까요?
죄악과 절망,그리고 분노와 고통으로 점철된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인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 부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껏 타고온 버스가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면
영생으로 달려가는 인생버스로 즉시 갈아타십시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13.되돌아 오는 것
어느날 저녁 아빠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엄마에게 핀잔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옆에 있는 형에게 1달 전에 깬 유리창 값을 용돈에서 빼겠다고
하십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형으로부터 꿀밤 한대를 맞았습니다.
어휴, 신경질 나!나는 밖으로 나가, 잠자고 있는 바둑이를
발로 한대 차 주었습니다. 나에게는 동생이 없거든요.
다음날 아침,어? 이 구두가 왜 이 모양이야?"
바둑이가 마구 물어 뜯은 구두 한 짝을 들고 아빠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서 계셨습니다. 당신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당신은 과연 무엇이 되돌아오길 바랍니까?
당신이 선택하고, 실천했던 것. 바로 그것이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선택해 보십시오. 영생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가복음 12:20)
14.병아리를 살리고 죽은 암탉
옛날 어떤 농가에서 닭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마침 닭들이 마당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날고 있던 독수리가 닭을 채가려고 쏜살같이 내려와 닭을
움켜 쥐었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가 놀라서 막대기를 들고 달려왔습니다.
독수리는 암탉을 채어가려다 그냥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암탉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농부가 암탉을 들어보니
그 날개 아래에 병아리가 살아 있었습니다. 병아리의 머리에는 어미닭의
피가 묻어 있었지만 병아리는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암탉이 죽음으로 보호하여 병아리를 살린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우리를 모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편 116: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니라. (요한 복음 3:16)
15 . 오해
키씽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 물고기는 이름 그대로 자주 뽀뽀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ꡒ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이가 좋은 모양이야." 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두마리의 물고기는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사실입니까? 사람들의 세계에선 애정표현의 한가지인 뽀뽀가
물고기의 세계에선 공격과, 위협의 표현이 될 수 있다니 말입니다.
사람들의 오해는 물고기에 관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만물,모든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듯합니다.
특히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오해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오해를 인정하고 진실을 알고자 노력할 때에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원하십니까? 가까운 교회를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
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한일서 4: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7-8)
16. 영혼의 오아시스를 찾으십시오 .
사막지역의 오아시스는 生의 귀한 도구입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의 모래와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광풍과 태양열에 둘러싸여 있으나 그 곳은 안전한 안식처입니다.
당신은 영혼의 사막지대에서 헤매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 염려와 근심, 불안 때문에 평온한 내적 평화를 잃어버린 적은 없으십니까?
영혼의 오아시스를 찾으십시요.
참 평안과 기쁨 그리고 참된 안식을 제공하는 영혼의 오아시스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기십시요. 당신이 오아시스를 찾아 다니기 보다 당신을 찾고 부르는
오아시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4)
17. 행복만들기
에덴 동산에 신혼 살림을 차린 아담과 하와. 낮이든 밤이든 함께 하는 금슬 좋은 그들의 모습은 모든 동물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느날 밤, 아담은 하와의 출생 비밀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하와, 당신은 하나님이 내 갈비뼈로 만드셨어.
뭐, 뭐예요. 그럼 나는 당신의 갈비뼈? 그래요. 내가 잠든 사이에
갈비뼈 하나를 꺼내 당신을 빚어 주셨다오.
예?......
이 말을 들은 하와는 다음날부터 안절부절 했습니다.
아담의 일거수 일투족에 깊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산책만 다녀와도 항상 아담의 갈비뼈 수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혹시나 다른 하와가 또 만들어졌을까봐서 라나요.
신뢰감은 관계형성의 제1조건입니다. 서로 믿고 신뢰하며 인정해주는 것은
큰 행복과 큰 기쁨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사람은
행복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고 싶으십니까? 예수께로 오십시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편 86:4-5)
18. 소년과 강아지
한 소년이 엄마와 함께 애완용 개를 파는 가게에 갔습니다.
주인은 귀엽고 털이 보송보송 한 예쁜 강아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주인이 보여준 강아지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가게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만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사랑스런 손짓을 하자 강아지는 주인을 만난 듯 뛰어왔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이 강아지 사주세요.그래, 이 강아지가 그렇게도
갖고 싶니?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 강아지는 다리가 아파서 너와 같이 뛰어 놀 수 없을 거야.
전 그래도 이 강아지가 사랑스럽고 좋아요, 아저씨.
소년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절름발이 강아지를 안고 가는 그 소년의 뒷모습을 보는 주인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 역시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하는 여러가지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예수께 나오십시오.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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