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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율법(Shari'a of fslam)

  

이슬람교의 율법인 "샤리아(Shari'a)"는 모든 이슬람의 문화에 있 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의 구조는 일반적인 법(common law)이라기 보다는 시민법 (civil law)으로써, 이는 영국이나 미국에 서 실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인 교리가 강조되고 있는 샤리아(Shari'a)를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 포함돼 있는 "샤리아"의 문자적인 뜻은 "물의 장소에로의 길"(path to the watering place)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으로 적응되는 뜻은 신 에 의해서 명령된 명백한 것이나 혹은 암시적인 것으로서 생활의 모든 방법을 뜻한다. 이 단어 "샤리아(Shari'a)"는 코란(Koran)에 사용 된 용어인데 , 코란은 다른 종교에도 다른 샤리아를 가지고 있지만 모 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샤리아(Shari'a)"를 가지고 있다고 주 장한다. 샤리아는 모슬림 교사들에 의하여 형식화된 것으로써, 그 개 념은 신앙의 교리로 실행적인 것과 법에 대한 것이다 (Encyclopaedia Britannica, 5.v. "Islam" p. 664). 그러나 이러 한 법과신학을 위시한 논쟁과 샤리아(Shari'a)의 네 겹에 대한구분 은 이슬람교의 수니(Sunni)와 쉬이테(Shi'ice)파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하여 알프레드 구일라움(Guillaume, Alfred, p. 103)이 설명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니 파와 쉬이테 파의 다른점들은 이론적 견지에서. 그들의 법 안에 서 최고의 권위에 대한 쉬이테의 개념은 수니파의 개념과는 전연 다르지 만 그들이 실행하는 것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Shi'its) 네 개 의 학파(school)와 이즈마(iima)리를 부인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히든임암(Hedden Imam, 저자주: 수니파에 의해서 이슬람법과신학 혹은 기도를 인도하는 권위를 가진 한 모슬림으로 인정된 자)" 만이 오 직 신자가 무엇을 행하고 믿을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뢰하는 학자들은 "이즈티하드(ijtihad)"의 능력을 아직 연습하거나 혹은 그들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수니파는 이 미 수 천년 전이나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Qur'an)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코란(Qur'an)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케네쓰 보아(Boa. Kenneth, p, 52)는 코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란(Koran)은 이슬람교일 권위 있는 경전이다 신약 성경의 5분의 4정도의 분량으로서, 114(surahs)으로 되어 있다 상당 부분은 모 하메드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으며 . 나머지 부분은 모하메드가 죽은 후 에 그가 살아 생전에 한 말들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이 된 것이다(Boa. p 52)

   

코란은 수년에 걸쳐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한 말들을 모아 편집한 것과 그의 초기 제자들에 의해서 다시 편집된 것이다. 이것들 의 의미를 "하디쓰(Hadith)", '전통(tradition) '이라고 하며. 이 전통의 말들을 "수나(Sunna)", '풍습(custom)'이라고 한다. "하 디쓰(Haddith)"는 코란을 보충하는데, 이것은 마치 유대교 (Judaism)에서의 율법을 "탈무드(Talmud)"가 보충해 주는 것과 같 은 것이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코란(Qur'an)은 모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이다. 코란은 그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경전으로서, 신앙에 잔한 모든 일과 그들이 실행해야 하는 일을 안내한다. 코란은 인간을 위한 하나 님의 말씀으로서 모하메드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에 더하여 모세의 "토라트"(Torat), 선지자들의 책들인 "슈후프"(Suhuf), 다 원의 시편인 "자부르"(Zabur), 그리고 예수의 복음인 "인질"(Injil) 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코란은 어떤 계시된 책들보다 탁월한 것으 로서 오직 코란만이 정통성을 가진 책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다른 책들 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거의 인정할 수 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교는 기독교의 신약 성경을 예수의 복음, "인질"(injil)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것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다른 사람의 말이라 고 주장한다 이슬람은 예수의 본래 말들은 오염되었으며 또한 많은 부분은 잃어 버렸다고 믿는다. 오직 코란만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모하메드와 코란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코란은 114 수라하(surahs), 114 (chapters)으로 되어 있는데, 장의 길이에 따라 긴 장으로부터 짧은 장의 순서로 편집이 되어 있다. 이슬람은 코란이 아랍어로 계시되고 쓰여졌다고 믿는다.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되었기 때문에, 모슬림들은 코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코란을 다른 언 어로 번역할 권위가 연다는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다른 언어로 번역 된 코란을 읽는데 친숙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동정적이어 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랍어가 풍부한 언어인 만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본에 가깝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단순히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유효하다는 것으로 평가되어 야 한다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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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한 100가지 질문

 

1. 이슬람(Islam)이란 무슨 뜻인가?

 

신의 뜻에 절대 복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무슬림 (복종자란 의미로 이슬람교도를 통칭)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2. 알라(Allah)는 무슨 의미인가?

 

유일한 창조자라는 뜻이며 아랍어의 중성(中性) 보통명사. ‘알라신()’이라고 부르면 동어반복(同語反復)이다.

 

3. 이슬람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역사적 실체로서 이슬람의 원년(元年)은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해(헤지라) 신앙공동체를 만든 622년이다. 무하마드는 610년에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4.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이슬람은 어떤가?

 

평화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의 어원인 살라미(salami)는 평화란 뜻이다.

 

5. 무하마드는 어떤 인물인가?

 

서기 570년쯤 아라비아의 꾸라이쉬족()에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 어머니도 6세 때 죽었다. 삼촌 집에서 양육됐고 25세 때 40세 부자 과부 카디자와 결혼했다. 40세부터 알라의 계시를 받아 포교활동을 하다가 632년에 숨졌다.

 

6. 이슬람의 예언자(預言者)란 무슨 뜻인가?

 

알라의 말씀을 인간에게 설명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이슬람에선 모두 124000명의 예언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중 28명이 코란에 기록되어 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의 성경(聖經) 인물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무하마드가 주요 예언자다.

 

7. 헤지라(Hijra)란 어떤 것인가?

 

무하마드가 지역 부족들의 탄압을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추종자 70여명을 데리고 622년에 이주한 사건으로 성스러운 이주를 뜻한다.

 

8. 무하마드는 메디나에서 움마(Ummah)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가?

 

무하마드가 신도들을 모아 만든 형제애적인 신앙공동체. 그후 이슬람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명을 지닌 신도들의 공동체란 의미로 움마란 단어가 사용됐다.

 

9. 무하마드는 부인을 몇 명이나 두었나?

 

모두 11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4명 이상은 두지 않았다. 코란의 규칙을 지킨 것이었다.

 

10. 무하마드의 후계자라는 칼리프는 어떻게 선출되었나?

 

무하마드는 아들이 없었고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후계자는 신도들이 협의해 투표로 선출했다. 1대 칼리프는 무하마드의 동료이자 장인이었던 아부 바크르였다.

 

11. 코란은 언제 완성됐으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무하마드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의 제자들이 모아 644~656년에 완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두 114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을 수라라고 한다. 알라가 1인칭으로 말하는 형식을 취했다.

 

12. 코란은 왜 아랍어로만 읽어야 한다고 하는가?

 

알라가 내려준 언어인 아랍어만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13. 하디스(Hadith)는 무엇인가?

 

무하마드의 언행 및 전승을 기록한 책으로 종교예식과 일상생활 세칙을 모두 담고 있다.

 

14. 술탄은 무엇인가?

 

칼리프의 위임으로 이슬람 세계의 일부 내지 전역을 지배하는 세속적 권력자의 칭호.

 

15. 이슬람은 특히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보나?

 

이슬람은 예수(이사라고 부름)가 훌륭한 예언자지만 신성(神性)은 없으며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본다.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16. 교리적으로 보아 이슬람은 유태교 및 기독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무하마드는 초기 시리아와 아라비아 쪽으로 흘러나온 기독교 이단인 단성론(單性論)과 유태교 이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쪽 교리를 채택했다. 상당수 주변부 교리나 풍습도 유태교와 기독교에서 가져간 것으로 본다.

 

17. 기독교에서는 이슬람을 어떻게 보는가?

 

사이비 기독교 종파가 아랍 토착종교와 결합하여 발생한 전혀 별개 종교로 본다. 알라는 아라비아 부족의 월신(月神)에서 유래됐으며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다르다.

 

18. 예루살렘과 이슬람의 관계는?

 

이슬람의 3대 성지(聖地)중 하나. 코란엔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무하마드가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천상(天上)여행을 다녀왔다는 전설에 따라 성전산에 바위사원이 세워졌다.

 

19. 이슬람에도 원죄(原罪)의 개념이 있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란 개념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죄없는 선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말한다.

 

20. 이슬람의 종파에는 어떤 것이 있나?

 

수니(Sunni)파가 다수파로 초기 칼리프들을 무하마드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한다. 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등에 널리 퍼져 있다. 시아(Shiite)파는 2대 종파로 암살당한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를 정통 후계자로 본다. 이란이 본거지이고 이라크, 시리아 등에 분포한다. 이밖에 타 종교와 혼합한 드루즈파,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이스마일파 등이 있다.

 

21. 이슬람의 율법이라는 샤리아는 어떤 것인가?

 

법적이면서도 종교적인 내용이 많아 결혼이나 식사방법, 기도 방법이나 기도 시기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22. 이슬람의 율법은 법을 공개 집행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보복법 집행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정의를 실천한다는 이유로 전통적으로 그렇게 실시해 왔으나 최근에는 종파와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23. 이슬람 사회에서 일반법률은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

 

사우디 아라비아, 수단, 이란 등에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헌법이다. 하지만 터키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 이슬람 제국에서는 샤리아를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폐지하고 유럽이나 다른 국가의 법 제도를 채택했다.

 

24. 이슬람교도(무슬림)들에게는 육신(六信)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인가?

 

유일신이자 창조주인 알라를 믿는다. 예언자들을 믿는다. 거룩한 책들(코란 포함)을 믿는다. 천사들을 믿는다. 심판과 부활을 믿는다. 알라의 법칙과 정명론(定命論)을 믿는다.

 

25. 무슬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5가지 기본적인 의무는 무엇인가?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다라는 신앙고백(샤하다), 하루 다섯번의 기도(사라트), 구제(자카트), 메카 순례(하지), 라마단 금식(禁食)(사움)이다. 시아파는 여기에 성전(聖戰)(지하드)을 추가한다.

 

26.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를 할 때 메카를 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하마드는 처음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라고 했다가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이 구약도 제대로 모른다며 자신을 비웃자 630년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을 기도 방향으로 정했다.

 

27. 예배는 꼭 정해진 시간에 보아야 하나?

 

태양의 위치에 따르도록 돼 있기에 정확한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28. 모스크는 어떤 곳인가?

 

아랍어로 엎드리는 곳이란 뜻의 마스지드에서 나온 말로 이슬람의 예배당을 일컫는다.

 

29.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엔 반드시 몸을 씻는 이유는?

 

예배 전 몸을 씻는 것을 우두(wudu)라 하는데, 알라에 대한 예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코란에도 청결하지 않은 몸으로 행하는 예배는 받지 않겠다고 되어 있다.

 

30. 모스크에 딸려 있는 미나렛의 역할은?

 

예배시간을 육성으로 알리는 역할(아잔ㆍadhan)을 하며, 이를 행하는 사람은 무에진(muezzin)이라 한다.

 

31. 무에진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크고 청아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32. 모스크 안에서도 남녀는 따로 앉아 예배를 보나?

 

남녀가 따로 앉되 남자가 앞에 앉는다. 좁은 공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편한 점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33. 이슬람에는 성직자를 두지 않는다고 하는데, 탈레반의 최고지도자인 오마르를 물라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신과 인간 사이에 중매자를 두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중매자만 보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슬람에선 성직자가 없다. 물라는 종교지도자, 율법학자란 뜻이다.

 

34. 이슬람을 흔히 정교(政敎)일치 종교라고 하는데, 왜 그러한가?

 

코란은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 전반을 망라하기에 성속(聖俗)을 구별하지 않는다. 성과 속을 구별할 경우 정신생활이 물질생활에 종속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5. 이슬람에서 모든 사람은 알라 앞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슬람은 지위나, 명성, 부와 같은 세속적인 것들이 알라와의 만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36. 이슬람 사회의 슈라(shura)는 무엇인가?

 

협의를 뜻하는 말. 무하마드도 무슨 결정을 할 때는 슈라를 거쳤다. 지금도 쿠웨이트, 아프간 등 이슬람국가 중에는 슈라를 국회와 같은 기구로 활용하고 있다.

 

37. 이슬람 종교학교(마드라사)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이슬람의 고등교육 시설을 말하나 전통적으로는 울라마(율법사) 양성이 주목적이다.

 

38. 이슬람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유는?

 

알라가 유일신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 금지이기 때문이다.

 

39. 이슬람교도들은 금요일에 예배를 보는데 왜 그런가?

 

이슬람에선 금요일에 태양이 떠올랐고 아담이 창조됐으며 심판이 일어나기 때문에 금요일을 가장 훌륭한 날로 여긴다.

 

40. 지금도 아랍지역에서 기독교가 활동하고 있나?

 

일부 아랍지역에서 극소수 기독교 신도가 있으나 계속되는 탄압과 사회적 소외로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다. 그마저 대개 단성론자나 정교회(正敎會) 계통으로 서방 기독교와는 차이가 난다.

 

41. 무슬림들이 많이 쓰는 인샬라는 무슨 뜻인가?

 

신의 뜻에 따라라는 아랍어로 무슬림들이 일상 생활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한다.

 

42. 이슬람에선 하루를 무엇으로 기준하여 계산하는가?

 

유태인과 같이 하루 해가 지면 새로운 날로 간주하고 아랍쪽도 그런 관행이 있어 결혼식 등 중요 행사를 밤에 열곤 했지만 지금은 대체로 하루 계산이 서구와 비슷해졌다.

 

43. 라마단은 무엇이고 왜 단식(斷食)을 규정하고 있나?

 

무하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은 달(대략 음력 9월경)을 라마단으로 정하고 단식을 한다. 초기엔 24시간이었으나 10일로, 다시 한달로 연장됐다. 올해 라마단은 1117일에 시작한다. 단식으로 지옥의 문이 닫히고 천국의 문이 열린다며 속죄의 의미를 강조한다 

  

44.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슬람교도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면 안된다. 부부관계를 해도 안되며 남을 비방하는 말을 삼가야 하고 향수 냄새를 맡거나 화를 내서도 안된다. 다만 13세 미만의 어린이, 노약자들, 여행자, 생리 중인 여자 등은 단식이 면제된다.

 

45. 무슬림들은 반드시 메카순례를 해야만 하나?

 

모든 무슬림들은 자유로운 성인으로 온전하고 건강하며 적당한 재산이 있다면, 그리고 순례하는 동안 가족의 생계에 지장이 없다면 일생에 한번 메카 순례를 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서 예외이면 면제가 되기도 하고 대리인을 보낼 수도 있다. 기업체에는 메카 순례를 위해 회사가 돈을 적립해주기도 한다.

 

46. 메카의 카바 신전이란 어떤 곳인가?

 

원래 아라비아 다신교(多神敎)의 우상숭배 장소였으나 무하마드가 아브라함과 그의 서자인 이스마엘이 알라에게 예배드린 곳이라며 이곳을 성지(聖地)로 삼았다. 카바란 입방체란 뜻.

 

47. 성지순례시 메카에서 하는 의식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보통 카바 신전을 7바퀴 돌고 내부의 검은 돌에 키스한 뒤 잠잠이란 우물 주변에 있는 99개 예언자들 무덤과 성자들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블리스(사탄)라고 하는 돌기둥에 돌을 던지며 코란 구절을 외운다. 또 메카에서 25떨어진 아라파트 언덕을 오르고 6떨어진 미나에서 양과 낙타로 희생제사를 드린다.

 

48.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서로 어떤 관계인가?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자 여종 하갈에게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 나중에 본처인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이 이삭이다.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은 쫓겨나아랍인의 조상이 됐고, 적자(嫡子)인 이삭은 유태인의 조상이 됐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49. 이슬람교도들은 왜 턱수염과 구렛나루를 기르나?

 

예언자 무하마드가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 하여 그에 따르려는 행동인데, 여기에 유목민 고유의 연장자 우대 전통과 어울려 더욱 확산됐다.

 

50. 이슬람권 국가의 여성들이 집 밖에 나설 때마다 차도르(머리를 덮어싸는 보자기로 이란에서는 히잡이라고 함)를 쓰는 이유는?

 

남녀가 상대의 육체(겉모습)만 보고 인격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남자의 경우도 맨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공중목욕탕에서도 꼭 팬티를 입는다.

 

51. 흔히 성전(聖戰)으로 일컬어지는 지하드(jihad)는 무엇을 의미하나.

 

지하드는 외부의 공격에 대한 항거 등 자기 방어의 목적을 갖고 있다. 또 내부적으로도 부패에 찌든 사회, 도덕적으로 황폐해져 가는 자신을 지키는 일도 이에 포함된다. 지하드가 악용 내지 남용될 소지가 있으나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52. 아프간 여성들이 외출할 때면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부르카는 어떻게 생겼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감싼다. 내놓는 것은 손 뿐인데 그것마저 망사로 쳐 외부에선 누구인지를 알아 볼 수 없다.

 

53. 이슬람 지역 여성들은 어릴 때 할례를 해야 한다는데, 그 이유는?

 

할례란 성기의 일부를 도려내는 작업으로 그걸 하면 성에 대한 욕구가 절제된다고 한다. 아랍이나 아프리카의 토착 풍습.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성에게만 요구한다는 차원에선 여성 차별이라 말할 수 있다.

 

54. 이슬람 사회에는 명예살인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지나?

 

여성이 혼전에 순결을 잃는다거나 결혼 후에 간통을 하게 되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 해서 그 아버지나 오빠가 당사자를 죽이거나 병신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명예살인이라 부른다. 따라서 명예를 더럽힌 남자도 이 사회에선 발을 붙이지 못한다.

 

55. 이슬람 지역 여성들이 손발을 치장하는 헤나(henna)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헤나란 꽃가루와 나뭇가루, 식물성 기름 등을 한데 섞어 만든 검은 색 계통의 안료를 말하는데 이를 이용해 아랍, 인도 여성들은 손등과 손바닥, 발등에 식물의 줄기나 잎, 나비 등을 예쁘게 그려 치장한다. 남성의 시선을 끌기 위해생겨난 풍습.

 

56. 아랍지역에도 찻집이 있나?

 

물론 있다. 서양의 오픈 카페처럼 주로 길거리에 있는데, 남성들만 출입한다. 여기서 물담배, 체스 등을 즐긴다.

 

57. 아랍과 이슬람, 중동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아랍은 인종, 언어 등 문화적인 요소를 일컫고, 이슬람은 알라를 믿는 종교를 말하며, 중동은 지리적 개념으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지칭한다.

 

58. 중동 평화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팔레스타인은 어디인가?

 

현재 이스라엘 영토 및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합친 지역.

 

59.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종종 벌어지는 인티파다(Intifada)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에 저항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땅을 되찾기 위해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벌이는 무차별 과격 무장 봉기를 뜻한다.

 

60. 아프간의 실질적인 정부인 탈레반은 어떤 조직인가?

 

구도자란 뜻. 이슬람학교에서 코란을 공부하는 학생을 가리키기도 한다. 199410월 동남부 칸다하르의 이슬람학교 학생운동가들이 세웠다. 969월 이슬람 조직간의 내전에서 승리, 국토의 90%를 장악했다. 종파간 자치형식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지만 UN은 합법적인 정부로 간주하지 않는다.

 

61. 이슬람의 교리에 폭력을 인정하거나 찬미하는 부분이 있나?

 

공식적으로 폭력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원리주의자들은 지하드(聖戰)를 언급한 코란 구절들을 자주 동원한다. 하디스에는 지하드가 두 차원에서 진행되는데 첫째 순수한 포교활동이며 둘째 신앙의 방어로 필요하다면 물리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62. 이슬람 부흥운동은 무엇인가?

 

이슬람의 정신적 쇠퇴를 비판하고 무하마드의 움마 정신, 즉 순수 이슬람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반서구적, 반체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63. 이슬람 원리주의 또는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현재의 사우디 왕국을 세운 와하브의 와하비주의(主義)가 이슬람 원리주의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사우디는 친()서방적이지만 국민들은 와하비주의에 기반한 엄숙주의, 배타주의, 그리고 혁신을 반대하는 극도의 보수주의를 지킨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샤리아가 지배하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이란이나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 사례가 될 수 있다.

 

64. 원리주의자들은 왜 테러를 일삼고, 서구에 증오감을 갖고 있나?

 

서구의 물질주의가 이슬람 정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서구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를 분쇄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테러리즘이 증폭됐다.

 

65. 이슬람교에서는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을 용인하고 있는가?

 

테러리스트로 이슬람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반 이슬람 사회에서는 지하드와 관련해 그들이 공개적 또는 잠재적으로 존경받기도 한다.

 

66. 이란에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부패한 친미(親美) 팔레비 정권이 이란을 서구화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전통과 정신이 훼손되자 호메이니를 비롯한 물라(율법학자)들이 왕정을 끈질기게 비판, 왕정 타도로 이어졌다.

 

67. 이슬람권 반미(反美)의 뿌리는?

 

터키의 경우 근대화와 세속화에 어느 정도 성공해 세계체제에 순조롭게 편입했다. 하지만 나머지 중동 국가들은 이교도(異敎徒) 국가인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끌려 다니는 것이 못마땅한 데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페르시아만 전쟁 등으로 반미운동이 확산됐다.

 

68. 서구의 이슬람공포증은?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은 유럽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이전부터 형성되었다는 게 정설. 강한 군대를 몰고 다니며 코란이냐 칼이냐를 외치는 이슬람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적대의식과 두려움이 생겨났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1세기 십자군이 일어났다.

 

69. 이슬람 무장단체에는 어느 지역에 어떤 것이 있나.

 

1928년 이집트에서 시작한 무슬림형제단이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현재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집트의 자마아트 이슬라미야, 알제리의 무장무슬림그룹,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 빈 라덴의 알 카에다 등이 있다.

 

70. 이슬람에서 음주와 돼지고기의 식용을 금지하는 이유는?

 

음주는 정신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로 이집트를 제외한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된다. 돼지고기는 불결한 음식으로 보고 있으며 다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허용된다.

 

71. ()은 어떤 방식으로 잡는가?

 

이슬람법에 따라서 희생제를 맡는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고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말한 뒤 단숨에 양의 목을 자른다. 피는 동맥을 통해 완전히 뺀 다음 고기를 도려낸다.

 

72. 이슬람권에서 술을 마실수 있나?

 

음주는 코란에선 우상숭배·도박과 함께 금지하고 있는 사항 가운데 하나다. 마실 수도 없고 제조할 수도 없다.

 

73. 이슬람에서는 남자에게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인가? 왜 여성은 4명의 남편을 둘 수 없나?

 

코란의 규정에 의해 경제적 능력과 부인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자에 한해서만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복수의 남편을 거느릴 수 없다. 여자는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보아 그랬을 것이다.

 

74.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신부가 될 여자에게 마흘이라는 것을 지불한다고 하는데, 이는 무슨 의미인가?

 

신랑이 결혼과 함께 신부집에 지불하는 돈으로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증명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돈은 이혼을 하더라도 여성의 몫이다.

 

75. 코란에서 별도로 금지하고 있는 결혼도 있나?

 

어머니, 여형제,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이모, 고모, 형제 자매의 여아, 유모,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여자, 장모 등과는 결혼할 수 없다.

 

76. 이슬람사회에서도 이혼은 가능한가?

 

남자는 언제든지 이혼 청구가 가능하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다.

 

77. 이슬람사회에도 창녀가 있나?

 

순결과 가정을 중시하는 이슬람이라 원칙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주 은밀하게 존재한다.

 

78. 이슬람의 남녀 분리 사회생활은?

 

원칙적으로 남녀의 공간이 분리돼 있다. 공공장소에서는 물론 집안에서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접촉이 많은 직종은 그래서 남자들이 한다. 그러나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그러한 전통이 허물어지고 있다.

 

79. 왜 이슬람 국가에서는 손으로 밥을 먹는가?

 

이슬람만의 습관은 아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러하다. 손은 남의 것과 섞일 염려가 없어 가장 위생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80. 왜 무슬림들은 오른손을 신성시하나?

 

하늘에서 알라의 오른쪽이 왼쪽보다 높은 곳이며, 순교하면 바로 그 오른쪽에 앉을 수 있다고 믿는다.

 

81. 아랍인들의 주식은 무엇인가?

 

쿠브즈라 부르는 우리의 빈대떡 크기 만한 식빵이다.

 

82. 이슬람 지역에도 대중목욕탕이 있나?

 

큰 도시의 시장에는 반드시 함맘(hammam)이라 부르는 대중목욕탕이 있다. 둥근 천장에는 구멍이 뻥뻥 뚫려 있고 바닥은 대리석이다. 그러나 욕조는 없다. 물을 수조에서 받아 씻을 뿐인데, 때를 벗기지 않는다. 팬티 차림으로 목욕한다.

 

83. 이슬람 전통 도시를 흔히 메디나(medina)라 부르는데, 어떤 특성을 갖고 있나?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 모스크와 마드라사(종교학교), 함맘(대중목욕탕), 수크(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길가의 집은 대개 가게를 겸한다. 메디나의 외곽은 외부 공격에 대비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84. 이슬람 지역의 시장은 어떠한가?

 

수크(souq, 페르시아나 터키에선 바자)라고 하는데, 없는 게 없다. 매력은 흥정에 있다. 따뜻한 정이 오고 가는 매우 인간적인 만남의 공간이다.

 

85. 유태인, 화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상인이라고 하는 아랍인들의 상술은 어떠한가?

 

돈을 버는 일에 종사하나 돈버는 데만 급급하지 않는다.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 않으며 대체로 향락산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86. 이슬람교는 초기부터 포교가 빨랐다. 그 비결은?

 

우선 이들에 맞설 만한 세력이 없었고 단순한 교리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데다 종교적 열정이 매우 강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87. 아라베스크 문양이란 어떤 것인가?

 

살아 있는 것들은 그리지 말라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식물의 형상, 기하학적 도형, 코란의 서체(書體) 등을 이용하여 문양을 그렸는데 이를 아라베스크 문양이라 부른다.

 

88. 모스크가 대체로 돔 구조로 되어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반구형(半球形)의 돔은 천상의 하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알라에 바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89. 이슬람교도들은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짓나?

 

아이가 태어난 뒤 7일째 되는 날에 일가 친지들을 모아놓고 코란을 낭송한 다음 축하연을 베푼다. 이름은 맨 앞쪽이 그 아이 이름이고 뒤로 갈수록 먼 조상의 이름이나, 이름의 길이는 가문에 따라 다르다.

 

90. 이슬람의 장례는 어떠한가?

 

유족들은 사자를 위해 매장하나 대개의 경우 묘는 작게 만든다.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치른다.

 

91. 이슬람에선 3개의 시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무슨 뜻인가?

 

그들은 원래 헤지라 역()을 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선 서력을 무시할 수 없게 돼 두 개의 시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일출과 일몰에 의해 시간이 결정되는 예배 때문에 또하나가 필요하다.

 

92. 이슬람교도들은 금요일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나?

 

금요일은 이들에겐 안식일이다.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문도 닫는다. 모스크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남는 시간은 코란을 읽으며 하루를 지낸다.

 

93. 물에 대한 특별한 원칙 같은 것이 있나?

 

물은 알라가 준 것으로 개인이 독점할 수 없으며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청결하게 이용해야 한다. 도시의 길거리에 설치된 물독의 물도 절대 헛되이 쓰지 않는다.

 

94. 이슬람교도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세계 180여 개국에 12억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무슬림인 국가 수만도 55개나 된다.

 

95. 현재 서구에서도 이슬람은 포교되고 있는가?

 

아랍 및 아프리카인들의 유럽 또는 미국으로의 이주에 따라 서구에서도 이슬람교도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인구 5800만의 프랑스의 경우, 개신교도가 70만명인 데 비해 이슬람교도는 300만명이나 된다.

 

96. 한국과 이슬람 지역은 언제 어떻게 교류하기 시작했나?

 

이슬람과 우리와의 교류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세기 때의 아랍측 기록에 신라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데다 서역인이라 부르는 석상이 신라인들에 의해 세워지기도 했다. 교역에 따른 인적 교류인 것으로 보인다.

 

97. 현재 한국의 이슬람교 사원과 신도는 어느 정도인가. 언제 들어왔나?

 

625 때 터키군의 파병으로 이슬람이 우리에게 다시 알려졌는데, 최초의 모스크는 오일쇼크 때인 1976년 서울 이태원에 세워졌다. 현재는 전국 5곳에 사원이 있으며, 신도는 주로 이슬람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근로자들이다.

 

98. 현재 한국에서 이슬람교 포교활동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나?

 

적극적인 포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슬람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99. 한국에서도 이슬람 또는 아랍음식을 맛볼 수 있나?

 

서울 이태원동의 해밀튼호텔과 중앙성원 주위에서 아랍·인도음식을 즐길 수 있다. 차와 향료 등도 구할 수 있다.

 

100. 덕수 장씨가 아랍인의 피를 물려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13세기 원나라 제국공주의 시종관으로 고려에 와서 높은 벼슬에 올랐던 아랍인 삼가(三哥)가 고려 여인과 결혼하여 한국사회에 동화되었는데, 덕수 장()씨가 바로 그 후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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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꾸란 외에도 무함마드의 언행이 담긴 하디스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꾸란에서 알라는 무슬림들에게 무함마드의 말에 따를 것을 명령하고 있기에

무슬림들은 하디스의 가르침에 복종한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를 다스리던 시절, 사람들은 논쟁을 해결하려면 무함마드에게 갔다.

어느 날 한 무슬림 남자가 유대인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문제를 판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유대인 남자가 말했다.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갑시다. 그가 판결해줄 것이오." 

 

 

무슬림 남자는 이를 거부하고 무함마드의 군대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자 유대인을 싫어한다고 알려진

우마르 이븐 알-카탑에게 가서 판결을 구하자고 말했다.

우마르가 말했다. "나한테 오지 말고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가시오."

무슬림이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판결해주십시오."

  

그러자 우마르가 "잠깐 기다리시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 칼을 갖고 나와서 무슬림 남자의 목을 베어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는데,

그 이유는 무슬림들은 다른 무슬림을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도 슬퍼했다.

우마르는 무함마드가 가장 아끼는 충직스런 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무함마드는 또 다른 계시를 받는다.

  

 

"그들이 그들 사이에 일어난 모든 분쟁을 그대(무함마드)에게 가지고 와서 판결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대의 판결에 아무런 불만 없이 전적으로 그 판결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참된 무슬림이 아니다. (꾸란 4:65, 4:59)

  

다시 말해 무함마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판결을 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사람이므로 그는 무슬림이 아니다.

따라서 우마르가 죽인 사람은 무슬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여도 괜찮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알라의 계시를 직접 들을 수 없으므로

무함마드의 말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만일 무슬림들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와 같은 내용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전승에 의해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라면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부정확한 묘사를 하는 이유는

하디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대표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무슬림의 시각에서 이런 태도는 이단이다. chw

 

- 마크 A. 가브리엘 <이슬람과 유대인 - 그 끝나지 않은 전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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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확산

 

무람마드 사후 예언자의 지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예언자들의 '봉인'으로서 마지막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후계자 Caliph는 무함마드로부터 예배와 전쟁에서 공동체를 이끄는 일, 계시에 따라 판결하는 일을 집행한다.

 

아부 바크르와 아라비아의 통합

 

무함메드 사후 칼리프 선정 문제 논란이 있었다. 무함메드의 가까운 동료들인 Muhajirin(이주자) 또는 Ansar(돕는자)들은 자신들이 칼리프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통주의자들은 계승의 세습 원칙 지지하며 파티마와, 사촌이며 사위인 Ali지지했고, Ummayads(무함메드 부족의 지도자들)는 자신들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nsar 들이 주도권 잡고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로 선출했다. 무함마드 사후 자유분방한 베두인들이 이슬람의 조세제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아부 바크르가 진압했다. 아부 바크르(632-634 재임)2년간 칼리프로 있다가 사망했다.

 

그 후 전투를 통한 부족 통합이 이루어졌고, 통합을 기반으로 외부 세계 공격이 이루어져 시리아를 공격하고, 이라크와 팔레스틴 남부까지 진출했다.

 

우마르와 정복

두 번째 칼리프 우마르(634-644 재위, 이븐 알-하탑)Khalid ibn al-Walid를 보내 635년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정복했다. 이 정복은 헬레니즘 지배체제에 불만 가졌던 지역민의 협력에 힘입었다. 638년에는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640년에는 가이사리아를 정복했다. 639-641년에는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1세기 후에는 스페인까지 진주했다. 동쪽으로는 사산조의 페르시아까지 정복(640-649)했다.

 

승리의 원인은 우선 피정복지 거주자들이 전쟁을 싫어하고 내적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능수능한한 기마술과 재빠른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사들의 강한 열성과 종교적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리품의 5분의 4는 전사들의 몫이며, 전투에서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권력투쟁

정복으로 인한 아라비아의 무슬림들은 경제적 부를 누렸다. 이에 따라 권력 투쟁이 가열되었다. 우마르가 기독교인 포로에 의해 644년 살해된 후 정치적 분쟁이 시작된다. 무함메드의 동료이자 사위인 우스만 Uthman(우스만 이븐 아판)이 칼리프로 선정(644-656)된 후 대다수 고위직에 자기 부족원(우마이야 가 : 원래 우마이야가는 무함마드 탄압에 앞장섰던 가문) 임명으로 물의를 빚어 반대파 무슬림들에 의해 메디나에서 656년 쿠란 읽고 있던 중 살해된다. 이 우스만은 쿠란의 편집 완결지었다.

 

Ali(무함마드의 백부 아부 탈립의 아들이자 파티마의 남편)656년 다음 칼리프에 선출되었다. 그는 우미이야가의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와 대결에서 피동적 자세를 취하다 반대파들에 의해 살해 되었다. 시핀 전투에서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무아위야가 제의한 평화협정을 수용해서 격분한 무슬림 일파(이들이 하와리즈파(이탈자들))가 분리하고, 661, 하와리즈파 무슬림이 알리 살해한 것이다.

 

개괄적 정치사 661-1900

알리 살해 후 우마이야 부족이 칼리프직 장악하고 무아위야가 자신을 알리의 계승자라고 선포(661)하고, 우마이야조 the Ummayad caliphate를 설립했다. 이것은 아랍적 통치술과 기사도 정신이 주도한 왕조였다. 우마이야조 통치자들은 시리아에 거주했으므로, 메디나는 독실한 신자들이 모이는 도시가 되었다. 691년 우마이야조 무슬림 군대는 대서양 해안까지 진출했고, 711년에는 지브랄타 해협을 건넜다. 그리고 같은 해 트란스옥시아나 지방(파키스탄 남부)과 인더스 계곡 하구 신드 지방을 정복했다.

 

680년 무아위야의 아들 야지드 즉위한다. 이에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패권에 도전했다가, 정월 10일 이라크 남부 카르발라 전투에서 살해 되었다. 쉬아파는 오늘날까지 그의 기일을 추모하고 있고, 이 전투에 대한 추모에서 마르티야(悲歌)가 생겨났다. 쉬아파는 자기 몸 채찍질하며 행진하는 추모행렬, 수난극 공연을 하고 있다.

 

한편 우마이야조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같은 시기 메카에서 칼리프 도전자 나타났는데, 무함마드의 동료 주바이르의 아들 압둘라(684 사망)가 우마이야조에 반기를 들었다. 알리의 당파(쉬아트 알리)가 강력한 정치세력 형성하고 있던 이라크에서는 새로운 교리가 나타났다. 알리 가문의 인물이 장차 돌아올 것이라는 사상이다. 아랍 정복자들과 마왈리(비아랍계 무슬림)들 사이의 갈등이 이라크에서 싹텄다. 쿠란이 보장한 신자들 사이의 평등을 요구했고, 이러한 흐름이 하나의 정치적 운동 형성하고, 칼리프 위는 무함마드 가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라크, 이란 지방의 친 알리 정서를 이용한 혁명을 성사시킨 이 운동의 주도자들은 예언자의 삼폰인 압바스의 한 후손에게 넘김(749)으로써 압바스조 the Abbassids가 우마이야조를 스페인으로 몰아내고 바그다드 천도를 단행한다. 이에 알리 가문 추종자들은 다시 실망하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움마야드 후손들이 독자적 칼리프제를 확립했다. 우마이야 가의 마지막 생존자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도주하여 756년 그곳에 왕국을 세우고 아랍문명을 꽃피웠다. 스페인 우마이야 왕국은 압두르 라흐만 3세 재임시(921-961)에 전성기를 이룬다. 이 시기 무슬림, 그리스도인, 유대인 사이의 문화적 협력 이루어졌으나, 그 후 수많은 소왕국으로 분열된다.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 이곳을 지배했다. 존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슬림 왕국은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바누 아흐마르 왕국뿐이었다.

 

압바스조는 종교적 율법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노력했다. 우마이야조가 아랍적었다면, 이들은 이슬람적 제국을 지향했다. 756년 바그다드 천도 이후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이 침투했다. 9세기 말 칼리프 권력 쇠퇴하게 되자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터키 출신 용병과 전쟁 노예(맘룩)이 정부를 보호하다 결국 각기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바그다드의 전성기는 천일야화로 알려진 하룬 알 라쉬드(786-809) 재임시였다. 하룬의 아들 마문(813-833)은 그리스 철학서와 과학서적의 번역 사업을 장려했다. 후에 이 학문적 유산이 스페인 번역사들의 소개로 다시 유럽으로 역수출되었다.

 

압바스 제국 변방 영주들이 독립하여 각각 통치 지역을 차지했다. 이들은 술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처음 사용한 통치자는 페르시아계 쉬아파 왕조인 부이조를 건국한 무이즈 앗-다울라로 945년 바그다드의 실질적 통치권을 장악했다. 이로써 칼리프는 상징적 존재로만 명목을 유지했다.

 

이집트에서는 두 개의 터키계 왕조가 압바스가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쉬아파 파티미조에 의해 969년 멸망했다. 동쪽에서는 터키계 술탄 가즈나의 마흐무드가 인도, 아대륙으로 확장되었다. 1026년 라호르는 인도 가즈나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이로써 페르시아 문명이 벵갈, 데칸 지역까지 진출했다.

 

아랍어가 이슬람 세계의 신학 용어로서 지위를 유지했지만, 발칸반도에서 벵갈만에 이르기까지 주로 페르시아어가 의사소통 수단으로 통용되었다. 그후 무슬림 제국이 여러 자치지역으로 분열되며 쇠잔 시작했다. 팔레스틴과 이집트 인근에서는 무함메드의 딸 파티마에 연원을 둔 시아파 Shiite의 파티마조 Fatimid909에서 1171까지 통치했다. 11세기에 셀주크 터어키인들 Seljuk Turks가 페르시아, 이라크, 시리아 장악 후 이집트, 비잔티움 국경까지 진주했다. 1055년 셀주크족 영주 투그룰 벡은 쇠퇴한 압바스 칼리프의 수호자로 군림했다. 이들은 철저한 순니 무슬림으로 근동에서 가장 중요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1071년 비쟌틴군을 대파하여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진출할 길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 십자군이 침입하여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무슬림의 반격이 이어졌다. 순니파 Sunnute 살라딘 Saladin이 이집트 파티마조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1187)했다.

 

1220년 몽골인들이 침입 이슬람 문명 파괴하고, 압바스 제국을 굴복시켰다. 마지막 칼리프는 1258년에 목숨을 잃고, 바그다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몽골인들은 이집트의 맘룩조 the Mamelukes에 의해 추방되고, 이들은 1세기 남짓 이라크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살다가 주로 수피즘을 통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몽골 세력 쇠퇴 후 4개의 이슬람 제국이 출현했다. 옥서스 Oxus 강 분지의 우즈백조 Uzbek, 페르시아의 사파이조 Safawi, 인도의 무갈조 Mughal, 소아시아의 오토만조 Ottoman가 그것이다.

 

13세기 소아시아에서 흥기한 오토만 터어키인들은 1453년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점력후 16세기에는 비엔나까지 진격하였다가 퇴각,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장악한 후 1차 세계대전까지 존속했다.

 

초기의 무슬림 사상

 

Hadith의 편찬

하디스는 무함메드 자신, 또는 동료들이 보고한 무함메드의 언행 수집한 것이다. 이 외에 여러 가지 전승들이 무함메드 생존시 확립된 관습, 관례, 선례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무함메드 사후 2세기가 지나면서 신빙성 있는 전승(순나) 편찬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기준은 전승의 전달자가 지닌 권위에 의해 순수성, 정당성, 빈약성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어었다. 이스나드(연결고리)는 전승 자료 전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무함마드나 그의 동료까지 연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를 통해 여섯 개의 전승집 편찬 후 보편성을 인정했다. 예언자의 전승은 그 자체로 일종의 쿠란 해설서가 되었다. 이중 가장 권위있는 것은 페르시아 무슬림 알-부크하리 al-Bukhari(870 사망)의 전승집이다. 7,300여 편을 선별했는데 실제 숫자는 약 3000편이었다. 부크하리와 동시대 인물 무슬림(875 사망)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이 두 학자가 작성한 하디스 모음은 사히흐(건전한, 흠없는) 하디스로 불리우며 쿠란 다음가는 권위를 누렸다. 이 외에도 귄위있는 전승집들이 다수 존재(Ahmad ibn Hanbal[무스나드]Musnad )했다.

 

하디스는 '일화', '이야기'의 뜻으로 다양한 하디스가 나왔다. 9세기에는 수만 편의 하디스가 유통되었다. 현대 무슬림 중 일부는 쿠란의 절대적 권위 강조하며 하디스를 부정하기도 한다. 순나에 반하는 것은 비다(혁신)로 불리우며 공동체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것으로 사고되었다.

 

첫 번째 논쟁

확고한 정통의 기준이 없음으로 인해 생겨난 질문들이 있었다. 죄를 짓고도 여전히 무슬림일 수 있는가? 신앙과 행동 사이의 괴리는 허용될 수 있는가? 정치적 동기로 편법을 사용해도 괜찮은가? 이슬람의 원칙을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가, 알라의 뜻에 맡기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등이다.

 

분리자들, 암살자들 the Kharijite은 칼리프는 꼭 어떤 집단에서 나올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움마야드 부족은 극단적 청교도 운동을 탄압했다.

 

the Murjites는 추후의 판정을 옹호한다. 진정한 무슬림과 그렇지 않은 무슬림의 판단은 알라만이 할 수 있다. 이들의 입장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SunnisSharia

 

이슬람의 확산으로 인해 주로 아라비아 이외의 지역에서 복잡한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원칙을 수립하게 된다. 우선 메디나에서 무함메드가 했던 행동, 실천 sunna,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 의존하고, 이것이 불충분한 경우 무함메드 죽은 직후의 sunna와 메디나 공동체의 의견 ijma 참조하며, 그래도 결정이 안 날 경우 쿠란이나 하디스의 선례에 명시된 원칙에서 유추 qiyas해서 적용하거나,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사유(라이)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 아래 행동하는 무슬름들을 순니파 Sunnis라고 부른다. 일반적 입장 결정시 순니파들은 알라의 가르침에 근거하는 한 법과 종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법을 지칭하는 sharia는 종교의 진정한 길을 의미한다. 대신 일반적인 법 지칭은 fiqh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ulama (학자들)는 법 준수를 감시한다. mufitis (법학자)는 재판관(qadis)의 법적 견해를 조정한다. 쿠란에 합당한 법적 결정 불가능할 경우 이성과 상식 ijtihad에 의해서 결정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계시와 전승을 연구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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