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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추수감사절 설교 (감사충만한 인생) Thanksgiving preaching

 

 

 
제목 : 감사충만한 인생

말씀 : 대상29:10~17

1.감사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54년에 미시시피 주의 어느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서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9살 때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14세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가출하여 마약을 복용하며 한동안 지옥같은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끝내 주저앉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며 책을 많이 읽는지 선생님이 더 좋은 학교의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어서 좀 더 좋은 학교에서 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열심히 성경을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나오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1983년에 시카고에서 시청률이 제일 낮은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 프로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이 프로그램이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그러자 이 토크쇼를 아예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방영되자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 되어 전 세계 140여개 나라로 배급이 됨으로 세계적인 토크쇼가 되었습니다.

이 후로 그녀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사가 되어 1985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 2004년 유엔이 주는 올해의 세계지도자상,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 100人 중 최고의 명사, 2010년 케네디센터 평생공로상,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 평생공로상, 2013년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중의 한 사람이 되는 등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명사 중 한명이 되었고 그러 사이에 재산도 불어나 7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불우한 처지를 이기고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습니까? 세가지 정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녀는 절망 중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입니다. 그는 그 서러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것입니다.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감사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몇 년동안 방황하긴 했지만 다시 시작하며 감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움과 원망과 절망이 점점 사라지고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녀가 계속해서 과거의 상처와 아픔과 미움 속에 빠져 있었더라면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로 방황을 바꾸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의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그녀는 그 바쁜 일과 중에서도 매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면 감사한 일 다섯가지를 적으며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감사의 조건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적어 놓은 감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①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②오늘은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③오늘 점심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④오늘 얄미운 짓을 한 동료가 있었는데 잘 참고 화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⑤오늘 책을 한권 읽었는데 너무 좋은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생각할 것은 감사 거리는 그렇게 먼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사거리는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사거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당연히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이 실상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하루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아무 걱정 없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군가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잠을 자며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길을 가다가 국수 한 그릇 사먹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게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이와 같이 우리가 마음껏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죽을 때까지 말해도 다 못할 만큼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 5: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와 이웃과 교회와 국가와 회사와 동료와 공무원과 농사짓는 분과 장사하시는 분과 여하튼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모든 환경에 감사하고, 밥 한 그릇에 감사하고, 냉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숨한번 쉬면서 감사하고, 따뜻한 잠자리에 감사하고, 일어날 때 감사하고 그저 앉아도 감사 서서도 감사 집에서도 감사 나가서도 감사 우리 곁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감사거리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감사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감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2.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료로 주셔서 마음껏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을 예물 드리기를 마친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장면 중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앞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들이 나타나 있는데 그 중 3,4절에 보면 다윗은 개인의 사유의 금 3천달란트와 순은 7천달란트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금 3천달란트와 은 7천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따지면 몇십조원 되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덩이를 주셔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금덩이를 드리고 너무 너무 감사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드리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좀 길지만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왕이 되어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그 동안 누린 것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을 주신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이 고귀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고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해서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지혜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삶의 터전들을 공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무료로 공급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걸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지혜를 짜내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뛰어 놀고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놀고 하는 그 모든 것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그냥 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조도 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자기 힘과 지혜로 된 것인양 여기며 살아가는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몸, 내 생명, 내 시간, 내 재능, 내 능력, 내 지혜,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땅,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따뜻한 태양, 쉴 수 있는 집, 먹는 밥,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온전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게 해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총과 능력과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주님께 드리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면 우리는 마땅히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 감사함이 있다면 드림도 늘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 엄청난 것들을 주셨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고, 이렇게 받은 바 은혜가 큰 줄을 알고 감사드린다면 어떻게 드리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14절을 보겠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나와 백성 즉 우리들 모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인데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까? 하면서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 들을 드리면서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예물을 드리면서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내 것을, 내가 노력하고 힘써서 벌은 것을 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을 바쳤을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바쳤을 뿐이니 그 많은 것을 주셨으니 감사할 뿐이요, 그걸 그동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할 뿐이요, 그걸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정말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많은 것을 주셨는데 어찌 감사가 없겠으며, 그런 감사가 있을 때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기쁨으로 드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기쁨으로 자녀에게 줍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줍니까? 그렇다면 주님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천지만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마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그 끔찍한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더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주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한다며 줄 수 밖에 없고 주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기쁨으로 줍니까? 주면서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드리겠으며, 드리면서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받는 게 행복합니까? 주는 게 행복합니까? 물론 받는 것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몇 배 더 기쁩니다.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뿌듯해집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생깁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아도 웬지 흐뭇해집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더구나 주님께 드리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주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너무나 귀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귀하고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더구나 우리 주님은 당신의 그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서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정말로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여러분 자신도 정말 더욱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정말 감사하면 정직하게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데 드릴 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직하게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지금 엄청난 예물을 드리면서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정직하게 드린다는 것은 원문의 뜻은 충만하게, 완전하게, 마음의 중심을 다해... 이런 뜻입니다. 즉 조금치의 거짓이나 불성실이 없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온전한 마음으로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정말 마음과 정성과 믿음을 담아서 드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생각이나 감정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고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따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진정한 정직이란 내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나 위선이나 변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 생각 처지 환경의 모든 주변적인 것들을 벗어던지고 다만 나와 하나님 사이에 일대일로 대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고 그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 속에 들려주시고 요구하시고 권면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내 생각이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내 생각을 첨부하거나 상황과 환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첨부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게 되고 그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잘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의 다른 것들을 섞어서 혼잡하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왜곡과 혼잡이 심각합니다. 자기 편의대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을 것은 크게 생각하고, 드릴 것은 적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더 많이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할 일은 내 믿음과 형편보다 훨씬 작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대로 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은 적게 생각하고 감사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받아야 할 것은 적게 생각하고 드려야 할 것은 크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넉넉해지고, 인생이 풍요로워 지고, 진정 자유하게 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의 신앙의 고백이며, 그럴 때 그 인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스러운 인생이 되며 잘했다 칭찬받으며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릴 줄 아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요 부요한 인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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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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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하나님의 은혜라 Thanksgiving Sunday sermon

 

 

 

제목: 하나님의 은혜라.

성경: 고전 15:9-10

1517년, 마틴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한 이후 그 영향은 곧바로 인근 유럽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지 약 20년뒤인 1534년부터 종교개혁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신교와 구교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558년에 즉위한 엘리자스(Ⅰ세)여왕에 의해 영국국교회제도가 기틀을 잡게 됩니다. 영국국교회는 제도적으로는 로마카톨릭교회를 따르고,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는 개신교를 따르는 신교와 구교의 절충형 형태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영국국교회의 모습에 반대하여 일어나 운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청교도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과거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패한 잔재를 완전히 버리고 루터와 칼빈의 정신을 따라 철저히 영국교회를 개혁하려고 일어났던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중생과 성화를 중시하며, 가정에서의 기도생활, 사회에서의 엄격한 도덕생활과 절제의 생활로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국국교회의 탄압을 받게 되어 일부는 국내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유럽대륙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들이 꿈꾸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을 향하여 출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1620년 9월 16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몇 개월간의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621년 1월 미국의 동부해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신마고 끝에 도착한 그땅에는 그들을 반겨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 반겨주기는커녕 그들은 그해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러니까 불과 2-3개월동안에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반수 이상이 죽고 마는 불행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조건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에서 필사적인 개척자정신을 발휘하여 그 해 가을에는 어느 정도의 농산물을 수확하게 됩니다. 그들은 첫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나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울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감사제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날 교회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수확을 할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청교도의 정신을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잘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울의 감사의 내용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때, 걸어온 자취자취 돌아볼 때, 그리고 현재 자기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하는 감사와 감격에 벅차 외친 영혼의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러한 바울의 감사가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바울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했을까, 왜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같이 생각해보고자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애창하는 찬송가 405장의 작시자는 죤.뉴턴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죄라는 죄는 안지어본 죄가 없을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던 탕자였습니다. 노예상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후 후에 목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엄청난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격에 벅차 읊은 시가 바로 저 유명한 “Amazing grace”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와

나처음 믿은 그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아봅시다. 지금 우리의 주위를 둘러 봅시다. 목석이 아니라면, 소나 말과 돼지같은 짐승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머리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자녀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습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절이 있습니다. 저 눈부신 태양이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그저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이웃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웃이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더더구나 사랑하는 주의성도들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하십시오. 감사함으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저 무인도에 혼자 살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며칠도 못 살고 미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들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땅에 이렇게 서 있는것, 나혼자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사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설령 여러분곁에 별로 달갑지 않은 이웃이 있더라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비 신앙인들과 다른 차원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한단계 높은 차원의 감사입니다. 그저 우리가 복받고, 물질적으로 무언가 척척 풀려 나갈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남들처럼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해도, 돈이 남들처럼 많지 않다고 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의 주위에는 감사해야 할 일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도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속에 나타난 바울의 감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고전 9:19-22에 고백했던 것처럼 때로는 자존심도 다팽개치고 살았습니다.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주변도 없고 고집도 없고 속도 없는 무골충과 같이 살았습니다. 억울하게 핍박당하며 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며 살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무엇이 그 똑똑했던 바울을 그렇게도 바보로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은총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그는 “내까짓게 뭔데...”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죽어라고 자기를 포기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고마우심에 비해본다면 억만분의 일도 보답되지 않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너무 고마와 “어떻게 하면 보답하고 살까?”그것만 생각하고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는 다 죽어 없어지고 주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고후 11:22-27까지 자기의 좋은 조건을 다 열거하면서 그러나 “이까짓게 뭔데...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고마우심을 생각하면 이제는 자신이 박살이나고 가루가 된다해도 아무런 여한도 없었습니다. 억만분의 일이든 보답할 수만 있다면 자기 한 몸 불속에라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요?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망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못박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감사찬양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간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불평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감사할일이 이렇게도 많은데, 감사할 것을 찾아도 다 찾지 못할판에 왜 불평거리를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지금 저 밖을 잠시 내다 보십시오.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보십시오. 저 신비로운 산천을 한 번 둘러 보십시오.돌아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것이 없습니다.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신비한 경륜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한 번 보십시오. 저 에머랄드빛 하늘을 창조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저 화창한 봄날을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꽁꽁 얼어붙은 땅에 묻혀 있던 그 작은 씨앗하나에 다시금 싹을 틔우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주시는 분을 누구십니까? 누가 저 따사로운 태양빛을 주고 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저 대자연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아니 들을려고 하지 않아도 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이성이 구원받은 이성이라면, 우리의 감성이 구원받은 감성이라면 우리는 한 마리 작은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찬미소리를 듣습니다. 들녁의 한 작은 들꽃을 보며 거기서 하니님의 신비로운 솜씨를 발견합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할때는 어머니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고마움도 모릅니다. 밥 한그릇의 소중함도 모릅니다. 그러나 허랑방탕하다가 있는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탕자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허랑방탕할때는 밥은 그냥 밥일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도 그냥 그저 입혀 있는 옷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허비하고 돌아와서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어머니의 밥 한 그릇에 눈물겨운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 입히는 그 옷을 입으며, 그는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때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고마움도 제대로 알수 없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 태양이 저 물이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품에 안긴 사람은 압니다. 구원받은 이성은 거기서 하나님의 찬양소리를 듣습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어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나보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보다 점잖고 잘나고 지위 높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와 같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내가 무엇이 그렇게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이기 당신의 아들을 주십니까? 무엇이 내가 잘한 것이 있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주신단 말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입이 있어 겨우 한마디 할수 있다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 뿐이 아니겠습니까?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복음전도대회’가 세계 4,000여명의 대표가 모여서 “성경이 말씀되게 하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째 저녁 예배에 특별찬송을 위해 한 맹인 여가수가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는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 맹인 가수가 조용히 찬송을 부르는 동안 4,000여 청중들은 감사의 감동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듯 한사람 한사람씩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대표들은 감사로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 여가수는 6.25전쟁때 두눈을 잃고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하여 가수가 된 한국인 킴 스윜양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맹인가수가 가졌던 그런 감사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왔다간 사람은 수천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인 나,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수천억원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 1원이라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수천억원중에 1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나 하나쯤 이 세상에서 없어 진다 해도, 세상은 눈하나도 깜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나를 사랑하셔서 이 아름다운 대 자연을 우리게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수천억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의 형벌에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가 있단 말입니까?

한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사형날자가 잡혀 이제 철장안에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제는 땅도 하늘도 봄 여름도 부귀 영화 권세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제 그 사형수에게 있어서는 전혀 무용지물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특사로 무죄방면되었다고 합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마도 엎드려 땅에 입이라도 맞추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그에게 펼쳐지는 모든 것에는 이전에는 그가 미쳐 몰랐던 엄청난 의미가 부여 될것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가 한 사형수였습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후에는 모든 것이 다른 의미다 부여됩니다. 아니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성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을 구원받은 이성의 활동으로 비로소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이제는 구받은 지성의 눈으로 생각하십시오. 이제는 구원받은 감성의 눈으로 기쁨을 누리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지금까지 여러분의 감사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돈벌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돈 잃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건강하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건강 잃었을 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성공했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실패하면 감사 못합니다. 내 소원들어주셨다고만 감사하는 사람, 내소원이 안이루질때는 감사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단순히 풀한포기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끼의 밥을 먹으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래서 그 희생을 통하여 나를 살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화된 감사를 통하여, 진정한 감사를 통하여 기쁨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감격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를 정말이지 마음속에 깊이 되새기며 진정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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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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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 -  감사하는 삶    Thanksgiving preaching

 

 

 


제 목 : 감사하는 인생

말 씀 : 시100:1~5

1.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대를 ‘더(more)의 시대’라고 합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많은 지식, 더 날씬한 몸매, 더 젊고 예쁜 얼굴 등등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더, 더, 더’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더 더 더’가 언제 나오는 소리인지 아십니까? 음주 측정할 때 하는 소리입니다. 술 먹은 사람은 어찌하든지 음주측정기를 안 불려고 하지요. 어쩔 수 없이 불때도 알콜 농도가 적게 나오게 하려고 살짝 불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찰 아저씨가 더 불라고 더 더 더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더 더 더와 음주측정 할 때 더 더 더는 좀 다른 차원의 더더더이긴 합니다만 여하튼 ‘더, 더, 더’하는 소리는 결코 좋은 소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건 뭔가 모자란다는 뜻이거든요. 뭔가 모자라니까 자꾸 ‘더 더 더’하게 되고 그렇게 자꾸 더더더하다보면 결국 감사도 기쁨도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과 갈등과 싸움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꾸 더 더 더 하며 살아가니까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쌀밥만 먹을 수 있어도, 아니 때로는 죽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멋지고 근사한 곳에서 진수성찬을 먹으면서도 감사 할 줄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맛이 있네 없네 하면서 타박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또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다녀도 얼마나 근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우리 집 앞 신작로로 한 멋쟁이 신사 아저씨가 삐까뻔쩍 빛나는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곤 했는데 저는 그게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녀도 감사가 없고 더 좋은 것을 바라봅니다. 옛날에는 초가삼간에 살아도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30평 40평 50평 호화주택에 살면서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런 바보같은 인생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주어진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만 더 더 더 하는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늘 불만 불평 속에서 자신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 마음도 아프게 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6: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보십시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받은 바 은혜가 얼마나 많은 지를 되새겨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데 오늘 말씀을 함께 되새겨보며 저와 여러분은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할 줄 아는 삶을 통하여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만들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교회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지금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만큼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 안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문이란 물론 성전 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갈 때에 큰 감사와 기쁨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교회 문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서 주님의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보다 더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교회가 세워졌어도 우리가 마음이 완고하고 강퍅해서 복음을 거부했다라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러면 영원한 고통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인생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알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찬양해야 할 일입니까?

제가 제법 오래 전에 대구의 한 큰 마트 같은데 들어갔다가 물건을 좀 사 가지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회원권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다고 하니까 여기는 회원권이 있어야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야, 이 놈들아 물건만 팔면 되지 무슨 얼어 죽을 회원권이냐? 회원권 없으면 내 돈 주고 물건도 못 사냐?’ 그러고 그냥 놔 둬 버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좀 창피하기는 했습니다.

즉 세상에서도 뭔가 그럴듯한 곳에 들어가려면 출입증이나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와대나 안기부나 기타 중요한 공공 기관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웬만한 큰 회사에도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되고, 무슨 큰 아파트에도 들어가려면 무슨 카드 같은 게 있어야 들어가고, 골프장이나 기타 그럴듯한 곳에 다니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출입증이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뭐 좀 잘난 곳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든지 무슨 시험을 치든지 뭐 이것 저것 따져 묻고 난린데 하나님께서는 그저 우리 믿음 하나 보시고 천국 출입증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시민권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세상의 무슨 출입증, 허가증, 회원권 그까짓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뭐 대단한 특권이라고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그래서 뭐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까짓것 하루 아침에 다 다 날아갈 것들인데.. 그것만 믿고 까뿔다가는 영원한 진노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보장합니다. 그 어떤 어둠의 세력으로부터도 완전히 보호해 줍니다. 그야말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초특급 출입증, 허가증,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들어와 앉아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고 할 수 있는 이 일이 얼마나 굉장하고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늘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우리를 길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선 감사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다음에 감사할 것은 좋으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 뿐 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하나님은 신,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만이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참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비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주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베풀어 주시는 은총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께 지으시지 않고는 우주만물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때를 따라 채워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존재하고 나아가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 존재가 가능한 것입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쉬고 활동하고 하는 모든 행위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좋은 옷에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것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물론 우리도 힘써서 일 했지만 우리가 힘써 일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생명도 지혜도 능력도 없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태양과 물을 주시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입니다. 땅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까마귀가 어미가 늙으면 다 큰 새끼들이 먹이를 먹고 돌아와서는 도로 뱉어서 어미에게 먹여 준다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까마귀는 어미새가 늙어 힘이 없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면 다 자란 어른이 된 새끼 새가 먹이를 잡어 먹고 와서 도로 뱉어서 어미의 입에 넣어 준다고 합니다. 이게 반포(돌이킬反, 먹일哺)입니다.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서 먹여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끼가 먹었던 것을 도로 뱉어 어미 새에게 먹여줄 만큼 지극 정성으로 부모님을 섬기는 반포지효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갓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도 이렇듯 부모를 섬길 줄 아는데 인간이 부모님을 섬길 줄 모른다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성장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온갖 사랑과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도 당연히 정성으로 섬겨야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리를 직접 창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사실 육신의 부모는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육신의 부모는 우리가 다 성장할 때까지만 키워주시면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장을 하고 백살 천살 만살이 되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은혜가 없이는 단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육신의 부모에게 감사하며 섬기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이라면 모든 인류와 우주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모든 동안에 아니 지금 여기서 살아 있는 동안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감사하며 극진히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론 육신의 부모님께도 감사드리며 잘 섬기시되 특별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우리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주시고 섭리하심으로 이와같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감사하고,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러나 감사할 것이 그 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사람에게도 감사하고, 동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식물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그밖에 땅, 태양, 물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모두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가족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아니 가족이 없으면 내가 있지도 못하지요. 또 이웃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입니까? 내 주변에 이웃이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적막하겠으며,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혹시 사람들 보기에 번듯하지 못하다해도 직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밥은 얼마나 고맙습니까? 마시는 물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어디 가다가 음식 한 그릇 사먹을 때 그 식당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입니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마음 놓고 볼일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와같이 감사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의 습관은 자신도 기쁘게 하고 남도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건강과 행복도 가져다 줍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함으로 힘차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불평의 습관은 자신도 남도 어둡게 만듭니다. 부정과 어둠의 에너지를 방출하여 자신도 힘들게 하고 남도 힘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살전5:16~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은총 속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기억하며 정말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 이와 같이 마음껏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출입하며 예배드리며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은총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되새기며 우리를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여러분 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주변의 모든 물건들에게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령이 그야말로 감사로 넘쳐날 때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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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주일  추수감사절설교  감사생활(합3:16-19)

 

 

 

말씀 : 합3:16-19

 

제목 : 전천후 감사생활

 

1.감사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도 없고, 꾀도 없이 힘만 믿고 살아가려면 육신이 고달프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물론 이 말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저는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이렇게 고쳐보았습니다. 「마음이 나쁘면 평생을 고생한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사실 지식이나 꾀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또 설령 지식이나 꾀가 좀 부족해도 마음만 바르게 먹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낙원을 창조하셔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사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었고, 뼈빠지게 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니까요.

 

입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요? 벌거벗고 살았으니까요. 물론 먹거리도 사방 천지에 쌓여 있었고, 잠자리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데나 누우면 거기가 안방이었습니다. 지나다니다가 과일 몇 개 따서 먹으면 거기가 곧 주방이었습니다. 아무데나 앉아서 이야기하면 거기가 곧 응접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완전한 환경속에 살던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그만 그 아름다운 낙원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많은 은혜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하고 감히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다가 그만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고생하는 것은 지식이 없거나 문명과 과학의 혜택을 받지 못해서 일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은 인간의 잘못된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4:23에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옳게 하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이 항상 진리를 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네가 비로소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을 올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성실과 진실과 진리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심령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진리와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이 지식과 돈과 명예와 권력과 건강을 얻는 것보다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여러분은 마음을 바르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진실과 성실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던 삶을 잠시 멈추고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은혜를 새삼스레 떠올리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기쁨과 은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더욱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때에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감사로 충만하게 채워지고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의 삶이 진정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미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것입니다.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것을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많든 적든 그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 편안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집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바람을 피하고 따뜻하게 누워서 잠잘 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맑은 공기가 있습니다. 태양이 있습니다. 강물이 있습니다. 산이 있습니다.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혹은 부모님이 계십니다.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입을 옷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습니다. 과일도 있고 야채도 있고 감자도 있고 고구마도 있고 우유도 마실 수 있습니다. 승용차가 있는 사람, 승합차가 있는 사람, 트럭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토바이 자전거도 있습니다. 텔레비젼도 있습니다. 냉장고도 있습니다. 컴퓨터도 있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저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없고 없고 없고 안되고 안되고 안되고 하면서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정말 가지고 있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없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기죽고 불평하며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 없는 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배우지도 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 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지질이도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을까? 남의 집 자식들을 잘만 되던데 우리 자식들은 왜 잘 안될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안다녀도 잘먹고 잘 살던데 우리는 왜 이럴까? 어떤 이들은 못된 하면서도 건강하게 잘 살던데 나는 왜 이렇게 건강이 좋지 않을까, 나는 왜 촌에 자리를 잡아서 이 고생을 하면서 살까하면서 자신의 좋지 않은 환경을 탓하기 시작하면 자신은 정말 지질이도 복도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빈곤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농촌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옛날 부자집 대감보다 오히려 더 잘먹고 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힘들어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보다 많이 가진 자들에 비해서 자기가 없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초라하고 비참해 보이고, 그래서 자신을 패배자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와같이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불평하다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성경 딤전6: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있어도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께서는 먼저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한량없는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기쁨의 삶, 은혜의 삶,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장차 받을 것을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과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받은 것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은혜가 더 크고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참으로 놀라운 감사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감람열매도 없고, 채소와 곡식과 소와 양도 없었습니다.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흉년이 들어 농산물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하고, 사업이 부도나서 망하고, 직장을 잃어버려 실업자가 되었을지라도 그는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라도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상황을 이기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의 어려움은 곧 사라지고 기쁨의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같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내적으로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부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해 있었습니다. 백성들 역시도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도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내우외환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답변하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고 말입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의 범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건져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심지어는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러나 종내는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면서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민족의 앞날에 어두운 먹구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먹구름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나면 화창하게 갤 그 날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러한 어려운 현실이 닥쳐오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에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죄로 인한 경우도 있고, 직접적인 나의 죄와는 관계없이 세상속에 침투되어 있는 보편적인 죄로 인하여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나 상황속에서건 우리는 그러한 어려운 현실속에서 원망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원망과 불평과 절망은 어려운 상황 그 자체 보다도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모습도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더욱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무언가 때로는 우리가 잘 알수 없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서 결국은 우리를 승리케 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요즘 새벽시간에 시편을 묵상하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는 정말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봅니다. 시편은 절반 이상이 다윗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다윗의 시편을 보면 다윗을 놀라운 신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실 다윗만큼 많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드뭅니다. 10여년간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엄청난 고난을 당합니다. 여러번 죽임을 당할 뻔하고,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겨우 빠져 나오기도 하고 왕이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심지어는 아들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편의 절반 이상이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위대한 점은 그렇게 극난한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앞에 호소하면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의와 진리와 선과 믿음이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확신하면서 그 처절한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놀라운 칭호를 받게 되었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위대한 성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취적 신앙 즉 앞에 주실 것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더더욱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합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혹시 오늘 현실 속에서 좀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까짓 것은 사실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닥치면 다 이겨 나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곧 지나가버리면 그만입니다. 저도 이래뵈도 웬만큼 많은 고난도 당해봤던 사람입니다. 안해 본 것 없이 거의 다해봤습니다. 어렵게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새벽에 신문도 돌려보고, 노가다도 해보고, 겨울에는 산에 나무도 하러 다녀보고, 농사도 좀 져 봤습니다. 그러나 그까짓 고생은 별거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옥의 고난은 별거 아닌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지옥의 고통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그 고통의 강도에 있어서나 그 고통의 시간에 있어서나 세상의 것은 고통도 슬픔도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은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세상에서는 고통속에서도 무언가 낙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눈꼽만큼의 기쁨과 즐거움도 소망도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의 즐거움은 별거 아닙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한참 지나면 시들해 집니다. 세상의 즐거움의 한켠에는 고통도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만 구하다가는 결국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의 즐거움은 영원합니다. 거기에는 고통과 슬픔과 절망은 그림자도 없습니다. 거기는 죽음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곳의 기쁨은 100%의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100% 완전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성경 롬8:18에서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영생복락의 세계를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보증인이 되시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100%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세상에서 어떤 극한 상황이 온다고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은 바로 그런 고백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다 빼앗겼어도, 그래서 정말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워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주실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인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진실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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