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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수감사절 주일'은 11월 17일 추수감사절, 초막절

유태인들은 그들의 민족적 경험과 감사의 축제 전통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삼대명절은 모두 감사절이었다. 유월절은 민족해방에 대한 감사절로 기념하였고, 봄의 맥추절은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이었다.

초막절은 1년 중 가장 큰 절기로서 가을에 모든 곡식과 올리브, 포도를 거두어들이는 명절로, 또한 40년 동안 장막에서 살며 광야에서 유랑하던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감사절은 영국의 국교도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가 1621년부터 시작되었다. 온갖 역경을 겪고 첫 수확을 감사하며 지낸 감사절은 지방 행정관 브래드포드(Bradford,W.)가 언명하여 시작되었다. ​

1789년 11월 26일 워싱턴 대통령에 의하여 처음으로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1941년 의회에서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결정하여 공휴일로 되었다. ​

한국교회는 미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영향으로 행하여졌다. 한국교회가 감사일을 결정한 것은 1908년 예수교장로회 제2회 대한노회에서 양력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였다. ​

그 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외 제1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음력 10월 4일로 정하고 외국전도를 위하여 강도하며 기도하고 특별히 연보하여 선교비에 충당하기로 하였다. ​

1914년 제3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로 정하였다. 이는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을 의용(擬用)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 1921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협의회에서 한국교회의 감사일을 매년 11월 둘째 주일 후 수요일에 기념하기로 결의한 것을 제10회 총회에서 채용하여 전국교회가 실시하였다.

현재는 11월 셋째 주일에 감사절을 지키고 있으나 범교파적으로 정해진 날은 없고, 대체로 미국교회의 감사절 전통에 따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초막
초막절 절기 행사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성전 제단에 물을 붇는 것입니다. 물은 다윗성 아래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실로암에서 떠옵니다. 대제사장은 그 물을 성전 재단에 부으면서 "비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이사야 12:1-3절을 재단을 물을 부은 후 읽습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게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물을 붇는 의식을 통해 "비"를 간구하는 것을 성령의 임재로 바뀌어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9).  ​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

예수님은 생명의 물이 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올해는 11춸17일이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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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주일설교:감사의 축복(잠3:9,10)

 

말씀 : 잠3:9,10

제목 : 감사의 축복

 

여러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치안상태를 조사했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100만점에 83.1을 기록하여 1등이고 그 다음에 싱가폴, 카타르, 일본 등이고 서유럽이나 미국은 6,70점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은 2,30점대가 수두룩하고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는 베네수엘라인데 15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83점으로 당당히 1등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범죄율은 가장 낮고 범인 검거율은 1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에도 밤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어도 안전한 나라, 식당이나 편의점이나 심지어 술집에서도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두고 나와도 누가 가져가지 않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제법 오래전에 제 스마트폰을 식당에 두고 왔는데 제 안 사람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폰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제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아내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술에 취해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거나 길거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며 저 사람 저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저라나 싶어서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치안상태만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자유와 평화가 보장 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풍요로습니까? 올해도 농사가 대풍이어서 올해 쌀생산량이 약434만톤으로 최근 6년간 최고의 풍작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풍년이라 쌀이 남아돌아 정부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이 140만톤이나 되어 처치 곤란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즘에는 우유가 남아돌아 난리입니다. 그래서 젖소 수를 줄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젖소를 도축하고 그래도 안되어 분유를 만들어 처리하는데 분유 재고가 쌓여 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입니까? 어느 나라를 먹을 게 없어 난린데 우리는 남아돌아서 난리인 것입니다.

뭐 그밖에 감사할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만8천불 약300배나 부자가 되었습니다. GDP 그러니까 국민총생산량이 세계 11위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고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해도, 혹 힘든 일이 있다해도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고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비록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귀하고 복된 삶의 터전을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그래서 이렇게 자유와 평화와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추수감사주일을 제정해 두시고 이를 지키며 살라고 하신 이유는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확실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50:23절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일단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주시고, 예수님은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으로 저 흉악한 마귀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할 때에 어찌 기쁘지 아니하며 어찌 감사 찬양하지 않으며 어찌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당연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의 은총과 감격가운데 살다보면 당연히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또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볼 때에 세상의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됩니다. 무슨 원망 불평 미움 질투 시기 따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평안과 소망과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게 바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욱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능력으로 채워주심으로 그 삶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돈과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과 시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망과 한탄 따위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믿음과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감사가 넘쳐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점점 은혜가 넘치고,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 할수록 은혜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니 원망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정말 감사하며 그것을 잘 사용해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며 산다면 준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얼마나 더 주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맨 날 받기는 받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꾸만 더 달라고만 하고 도리어 적게 준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준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면 준 것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더 주고 싶겠습니까? 아니 더 주기는커녕 주었던 것마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19:24~26절 보십시오.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며 그래서 자신도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너무 좋아서 더 많은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것에 감사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활용할 줄도 모르면서 자꾸 불평이나 하고 더 달라기만 하는 사람은 준 것도 아까워 주었던 것도 도로 빼앗아 감사와 기쁨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욱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에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사하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사탄을 이기고 대적자들을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감사가 뭡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찌 능력있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하20:21절을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 말씀은 여호사밧 왕때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족속이 연합군을 이루어 침공했을 때의 일로 이때에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적국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자멸해 버리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전리품만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찬송하며 감사할 때, 감사하며 찬송할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인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감사하며 찬양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해결하지 못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하고 부족한 것들과 모든 도전과 유혹과 모든 어둠의 권세와 기타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은총을 고백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더욱 많은 은총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물질적으로도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영혼의 복도 주시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그러면 육신도 더욱 건강해 지고, 더불어 물질의 복까지도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할수록 자꾸만 감사한 일이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기뻐하는 하는 사람에게 기쁜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불평 불만하는 사람에게는 자꾸만 불평 불만할 일이 생깁니다. 원망하면 자꾸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미워하면 미워할 일이 생기고, 투덜거리며 투덜거릴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도 한번 두번 안오면 자꾸 교회에 못 올 일이 생깁니다. 마귀사탄이 자꾸만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고 하면서 가지 못할 일만 보이게 만듭니다. 교회에 오려고 하면 꼭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회 못 올 일이 생긴 게 아니라 얼마든지 교회에 올수 있는 상황인데 내가 교회에 가지 못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열심히 오면 자꾸만 교회 갈 일이 생깁니다. 이래서 가야 되고, 저래서 가야 되고 그러면서 교회에 계속 가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한번 두번 안하다보면 자꾸만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래서 할 수 없고, 저래서 할 수 없고... 그런데 실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점령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가서 똑같은 장소를 보고 왔는데 10명은 거기 들어갈 수 없는 상황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못 들어가고 저래서 못 들어가고...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들어갈 조건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가고..... 그래서 그들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실컷 고생만하다가 다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간다며 들어갈 조건만 헤아렸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자꾸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자꾸 사랑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교회에 올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헌금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사랑하고 주고 드리며 자꾸 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자꾸 은혜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믿음이니까요. 그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9절,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니까,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네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찰 것이다.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농사가 잘되고, 곡식이 풍성하고, 장사가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릴 줄 아는 인생에게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늘 감사하며 사는 인생에게 어찌 복이 찾아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죠. 부모님께 감사하죠. 이웃에게 감사하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대하겠습니까?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아니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동안 모든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감사한다면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축복거리를 하늘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 여러분의 삶에 더욱 은혜가 쌓이고 기쁨이 쌓이고 축복이 쌓여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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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설교 /  감사의 축복(잠3:9,10) 


말씀 : 잠3:9,10

제목 : 감사의 축복

여러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 나라를 대상으로 치안상태를 조사했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100만점에 83.1을 기록하여 1등이고 그 다음에 싱가폴, 카타르, 일본 등이고 서유럽이나 미국은 6,70점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은 2,30점대가 수두룩하고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는 베네수엘라인데 15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83점으로 당당히 1등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범죄율은 가장 낮고 범인 검거율은 1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에도 밤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어도 안전한 나라, 식당이나 편의점이나 심지어 술집에서도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두고 나와도 누가 가져가지 않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제법 오래전에 제 스마트폰을 식당에 두고 왔는데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폰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제 폰에 저장 되어 있는 아내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어떻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술에 취해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거나 길거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며 저 사람 저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저라나 싶어서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치안상태만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자유와 평화가 보장 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풍요로습니까? 올해도 농사가 대풍이어서 올해 쌀생산량이 약434만톤으로 최근 6년간 최고의 풍작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풍년이라 쌀이 남아돌아 정부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이 140만톤이나 되어 처치 곤란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즘에는 우유가 남아돌아 난리입니다. 그래서 젖소 수를 줄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젖소를 도축하고 그래도 안되어 분유를 만들어 처리하는데 분유 재고가 쌓여 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입니까? 어느 나라를 먹을 게 없어 난린데 우리는 남아돌아서 난리인 것입니다.

뭐 그밖에 감사할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만8천불 약300배나 부자가 되었습니다. GDP 그러니까 국민총생산량이 세계 11위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고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해도, 혹 힘든 일이 있다해도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고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인데 추수감사주일은 바로 그런 절기입니다. 비록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귀하고 복된 삶의 터전을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그래서 이렇게 자유와 평화와 풍요로움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로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추수감사주일을 제정해 두시고 이를 지키며 살라고 하신 이유는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구원의 기쁨과 능력을 확실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50:23절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일단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주시고, 예수님은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나 같은 것을 위하여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으로 저 흉악한 마귀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할 때에 어찌 기쁘지 아니하며 어찌 감사 찬양하지 않으며 어찌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살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당연히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의 은총과 감격가운데 살다보면 당연히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대한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또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볼 때에 세상의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됩니다. 무슨 원망 불평 미움 질투 시기 따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평안과 소망과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게 바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더욱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능력으로 채워주심으로 그 삶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돈과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과 욕망과 시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망과 한탄 따위는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믿음과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감사가 넘쳐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녕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마음껏 맛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점점 은혜가 넘치고,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 할수록 은혜는 점점 멀어집니다. 아니 원망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자녀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정말 감사하며 그것을 잘 사용해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며 산다면 준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얼마나 더 주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맨 날 받기는 받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꾸만 더 달라고만 하고 도리어 적게 준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준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면 준 것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더 주고 싶겠습니까? 아니 더 주기는커녕 주었던 것마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19:24~26절 보십시오.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며 그래서 자신도 남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너무 좋아서 더 많은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것에 감사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활용할 줄도 모르면서 자꾸 불평이나 하고 더 달라기만 하는 사람은 준 것도 아까워 주었던 것도 도로 빼앗아 감사와 기쁨으로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이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와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가 더욱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에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사하는 자는 세상을 이기고, 마귀사탄을 이기고 대적자들을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감사가 뭡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찌 능력있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하20:21절을 보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 말씀은 여호사밧 왕때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족속이 연합군을 이루어 침공했을 때의 일로 이때에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적국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자멸해 버리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전리품만 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찬송하며 감사할 때, 감사하며 찬송할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인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감사하며 찬양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해결하지 못할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감사가 곧 믿음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이후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임재하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약하고 부족한 것들과 모든 도전과 유혹과 모든 어둠의 권세와 기타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은총을 고백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으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더욱 많은 은총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물질적으로도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영혼의 복도 주시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그러면 육신도 더욱 건강해 지고, 더불어 물질의 복까지도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할수록 자꾸만 감사한 일이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기뻐하는 하는 사람에게 기쁜 일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불평 불만하는 사람에게는 자꾸만 불평 불만할 일이 생깁니다. 원망하면 자꾸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미워하면 미워할 일이 생기고, 투덜거리며 투덜거릴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도 한번 두번 안오면 자꾸 교회에 못 올 일이 생깁니다. 마귀사탄이 자꾸만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고 하면서 가지 못할 일만 보이게 만듭니다. 교회에 오려고 하면 꼭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회 못 올 일이 생긴 게 아니라 얼마든지 교회에 올수 있는 상황인데 내가 교회에 가지 못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열심히 오면 자꾸만 교회 갈 일이 생깁니다. 이래서 가야 되고, 저래서 가야 되고 그러면서 교회에 계속 가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한번 두번 안하다보면 자꾸만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래서 할 수 없고, 저래서 할 수 없고... 그런데 실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아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점령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가서 똑같은 장소를 보고 왔는데 10명은 거기 들어갈 수 없는 상황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못 들어가고 저래서 못 들어가고...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들어갈 조건만 보았습니다.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가고..... 그래서 그들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실컷 고생만하다가 다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래서 들어가고 저래서 들어간다며 들어갈 조건만 헤아렸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자꾸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자꾸 사랑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교회에 올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헌금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사랑하고 주고 드리며 자꾸 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자꾸 은혜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믿음이니까요. 그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신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9절,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본래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니까,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네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찰 것이다.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농사가 잘되고, 곡식이 풍성하고, 장사가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래서 물질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릴 줄 아는 인생에게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늘 감사하며 사는 인생에게 어찌 복이 찾아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죠. 부모님께 감사하죠. 이웃에게 감사하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대하겠습니까? 또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아니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동안 모든 은혜로 채워주신 하나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감사한다면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축복거리를 하늘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 여러분의 삶에 더욱 은혜가 쌓이고 기쁨이 쌓이고 축복이 쌓여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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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대표기도 <추수감사> sunday worship service

존귀와 찬양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저희들을 주님의 날개 안에 품어 주셨다가 주의 거룩할 날

주의 전에 나와 예배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단풍과 결실의 계절 가을에 저희들도 단풍과 같이 아름다운 알알이 열매를 맺도록 성숙함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기도하기 좋은 가을에 그동안 소원해져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게 하옵소서.

 

또한 이 가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공기도 세상의 음란과 냄새남과 구별되는 정결함을 더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와 밝은 빛과 신선함을 늘 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 부족하지만,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으로 우리를 또한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심령을 정결하게 하옵소서.

습관적으로 범하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의로 옷을 입어 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받아,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저희들을 화평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사간 말씀을 증거하는 담임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늘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말씀의 능력과 비전으로 충만하며

예수님 사랑으로 늘 넘치게 하셔서 한국 교계를 이끄는 귀한 목사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받는 저희들의 마음 문이 활짝 열려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시고,

저희들의 숨겨져 있던 죄악들,

잘못된 삶의 태도들을 고칠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예배를 통하여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귀한 시간 될 수 있게하여 주옵소서.

  

앞으로 있을 새 가족 환영회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시고,

추수감사주일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저희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귀한 감사절기가 되게 하옵소서.

새 생명 축제를 통하여 교회를 찾은 분들의 심령에 은혜주시어 복음이 그 심령 안에 싹트게 하옵소서.

 

새 성전을 이곳에 세우신 주님,

저희 교회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주님,

이 교회를 통하여 이 시대의 잃어버린영혼을 찾기를 원하시는 주님,

저희 교회와 저희들의 영혼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애타게 한 영혼을 찾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이 나라 대한민국이 여러 면에서 회복되어

세계 만방의 복음을 증거하고 영향력을 주는 나라로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나아가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될 수 있는 역사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찬양대의 찬양을 받아 주시며,

이 시간 저희들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복된 예배 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생동감 있게 체험하며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과

찬양 중에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복된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 주시옵소서.

새 힘을 공금하여 주옵소서. 기도응답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감사하오며 이 모든말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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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는 은혜  (데살로니가전서 5:18)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한해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인간다운 삶은 영위하게 하시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은혜를 돌이켜보면서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이런 주일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지 돌이켜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건강지수와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의 행복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의 마음 속에 감사하는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다. 부디 다른 공부보다도 먼저 감사하는 공부를 배우라." 그만큼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인간의 근성은 감사에 인색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쉽게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거절하지 아니하고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자식일수록 나중에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말세가 가까워 질수록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없어진다고 예언하신바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에 보면, 말세에 나타나는 삭막한 인간성 중 하나가 감사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50년 전, 100년 전 그 혹독한 가난가운데 힘들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훨씬 감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점점 감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교훈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할 때, 영과 육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범사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판티'(en panti)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영어 성경에서는 크게 3가지로 번역합니다. 곧 '어떤 형편에서든지', '모든 일에',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다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범사에'라는 말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보면 3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안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큰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의 양지에 있을 때도 감사할 뿐 아니라 음지에 있을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하나도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참뜻입니다.

실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줍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의 내용을 알면 그 고민은 한층 더 무거워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는 막연히 느끼는 고마운 감정이 아닙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2-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에는 적어도 3가지 요소가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감사에는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께서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담긴 감사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을 담는 것이 감사요.

둘째로 궁극적인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물론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할 수 도 있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일컬어서 감사라고 합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사장을 찾아가는 도중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9명은 "우와! 내 병이 나았네. 아이고, 고마워라." 하며 고맙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그 이상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1명, 바로 사마리아 사람은 병이 낫자,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에게로 다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면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감사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물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소원이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응답해주시면 너무나 감사해서 자기가 서원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 정말로 아들을 얻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평생 기도한 것을 다 받고 나니 너무나 감사해서 말년에는 자신이 쌓아 놓았던 모든 재산을 성전을 짓는데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할 때 그 감사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감사의 예물을 들고 나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고맙다고 느끼는 것으로 머물면 안되고, 감사하다는 말로 끝나서도 안됩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로 드려지는 감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범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이처럼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첫째는 좋은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악해도 좋은 일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무더운 여름에 소낙비를 주시듯 가끔 우리에게 삶의 기쁨을 주십니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엄청난 수고요, 희생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좋은 일을 자주 맛보곤 합니다. 평생 부부로서 사는 것이 굉장한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좋은 일을 주십니다. 한 생을 살면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각자에게 좋은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경험하게 된 좋은 일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감사헌금을 잘하시는 것에 늘 하나님 앞에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헌금을 보면 감사에 대한 성도들의 정성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몇 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입니다. 그런데 몇 백 명 모이는 교회에 비하면 감사헌금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감사할만한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좋은 일 하나하나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뜨거운 심정으로 손에 헌금을 들고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좋은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긍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땅히 감사해야 될 좋은 일을 감사 없이 넘겨버릴 때가 많이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나쁜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3:4) 바울은 전도하면서 이제 예수를 믿게 되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언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 믿고 나니 엄청난 환란과 핍박이 그들에게 덮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핍박이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해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중국에 가보면 정부와 결탁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삼자 교회는 버젓하게 교회 문을 열어놓고 예배를 드리지만, 공산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복음을 들고 투쟁한 지하교회들은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공 셍리앙(Gong Shengliang) 목사님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종입니다. 그분을 따르는 신도만 해도 2, 3만 명에 이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구원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면서 집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자 중국 정부에서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핍박의 구실을 만들고자 그 교회에서 예수 잘 믿고 인물이 있는 여 집사 몇 명을 끌고 가, 공 목사가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하도록 고문을 해서 허위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공 목사를 잡아 들여 재판을 치루고는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세계인권위원회는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사형선고에서 종신형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핍박이란 예수 한번 바로 믿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핍박 받는 것도 감사하고, 매 맞는 것도 감사하고, 가족들이 끌려가서 죽는 것도 감사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것도 감사하고, 굶는 것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보고 마음에 원치 않는 일을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핍박을 받는 사람에 비하면 가벼운 것입니다. 핍박 받는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언짢은 일에도, 손해 보는 일에도, 내 몸이 망가지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일찍 죽는 것을 보고도 감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쉬운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숨쉬고 있는 공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시는 물,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내 몸의 모든 기능, 하나님이 주신 내 자녀, 일용할 양식, 어느 것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날마다 풍성하게 주시니까 우리가 소중한 것을 받고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가 쉽습니다. 당연하게 여길 때는 감사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무엇이든지 당연하게 여기도록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빚진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1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에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빚진 의식 또는 의존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서 서구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든 나라들이 이제는 빚진 감정 대신 권리 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의존 의식보다도 자율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나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인기 있는 만화 작가 바트 심슨(Bart Simpson)이 한번은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 기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이 모든 음식을 위해서 친히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감사합니다." 얼마나 방자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입니까? 내가 누리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내 능력으로 얻었는데, 무슨 감사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범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았기 때문에 일일이 감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이다." 입니다. 그 어느 것을 보아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너무 풍족한 세상을 살아서 많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진 의식보다 권리 의식에 은근히 더 오염된 것 같습니다. 70년 전만해도 우리는 식민지에서 겨우 벗어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6·25전쟁이라는 끔찍한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불과 반세기도 되기 전에 OECD에 가입할 정도로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보다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냉랭한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를 보면 60억 인구 가운데서 1/10에 해당하는 6억 인구의 하루 생활비가 1달러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 없는 사람들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식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데서나 퍼 마시는 사람들의 수는 10억이 넘습니다. 인간다운 삶은커녕 이렇게 끔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우리가 이만큼 먹고 마시며 여유를 가지고 살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히 여겨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한번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과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의사가 다루고 있는 병이 몇 가지나 되는지 살펴 보십시오. 병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병에 걸리지 않고 이렇게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정범진이라는 사람은 교통사고로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브루클린 검찰청의 부장검사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단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다." 그는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데 2시간동안 사투를 벌일 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절대로 당연시 하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체스터튼(G. K. Chesterton)이라는 사람의 말에 공감합니다.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려면 이와 같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나쁜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누리는 당연한 것들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허황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런 근거 없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할 수도 없는 일인 줄 뻔히 아시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반드시 그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은혜까지 준비하십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은혜의 산물이지,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일을 앞에 놓고 "할렐루야" 할 수 있는 은혜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오를 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노력하고 결심하고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읽어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핍박 중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난후 이렇게 변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 말하니."(살전1:9-10)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과거에 우상숭배하던 것을 다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배후에는 이런 구원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힘입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자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시며 광대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을 동안 너희들이 어디에 가든지 내가 동행해주마. 불 가운데로 지나갈 때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마.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도 내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너를 안위하리라. 원수들 앞에서 너희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높여주리라.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마. 그리고 너희들이 어려울 때마다 나에게 기도하여라. 그러면 내가 언제든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마. 환란 중에 내가 너희를 건져주리라. 악한 자가 와서 만지지도 못하도록 내가 너희를 보호해주리라."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셔서 나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날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기만을 간절히 고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핍박을 받기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황홀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눈 앞에 그려보면서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장차 그 나라에서 누릴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이런 일 저런 일이 땅에서는 중요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나라의 영광에 비추어 보면 잠깐 지나가는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난 3월에 6가족을 포함한 25명의 탈북자들이 북경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 몰려들어가 한국행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은 엄청난 절망에 빠져있었고, 처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니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사관 안에서 기다리면서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서 죽을지, 아니면 한국으로 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한국행이 결정되었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에 제일 먼저 찾아온 감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살았다. 이제는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 동안 마룻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면서 자던 것도 감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던 과거의 모든 일도 다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행기가 늦어져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도 오히려 감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가게 되니까 모든 것이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한국이 아닌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으며 살기에 세상에서 좋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고, 나쁜 일에도 감사할 수 있고, 하찮은 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샘 솟을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구원의 은혜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충만하게 주시옵소서. 구원 받은 은혜에 취해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예수님 때문에 얼마나 큰 구원을 얻었는가를 알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흥분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이런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세상에서 겪는 어려운 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로는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의 은혜에 우리가 흠뻑 젖어 있을 때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를 향해서 명령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 큰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값없이 얻었기 때문에 이 은혜 안에서는 좋은 일도 감사하고 나쁜 일도 감사하고, 큰 일도 감사하고 작은 일도 감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구원 받은 자의 행복과 기쁨을 다시 한번 회복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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