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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저녁예배설교] 말씀에 순종하면

 

 

 

 

제목 :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 : 잠3:7-10

 


우리는 누구나 다 복을 받기를 원한다. 부요한 삶을 원한다.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복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하면 윤택한 삶이 될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복의 근원, 복의 주관자와 함께 하는 것이다.

백성은 폭군을 만나면 괴롭다. 고단하다. 아내는 무능하고 사납고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면 그 삶이 심히 고단하다. 근로자는 악덕 기업주를 만나면 피곤하다. 그러나 성군을 만나면 백성이 평안하다. 유능하고 인자한 배우자를 만나면 그 상대방이 평안을 누린다. 선한 기업주를 만나면 근로자는 평안하다. 모든 인생이 동일하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가까이 하느냐에 의하여 그의 삶이 좌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완전한 성군은 누구인가? 가장 큰 능력자는 누구인가? 말하나마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복의 근원자는 하나님이시다.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이생에서도 그렇고 저생에서도 그렇다.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심판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가까이 해야 한다. 가까이하며 섬기며 의지하며 맡기며 그분의 말씀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복이 온다. 반드시 형통한 삶이 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바라보라. 나를 의지하지 말라.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 세상의 지식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복이 온다. 반드시 온다. 안올래야 알올 수가 없다. 내가 복을 마다해도 온다. 복을 주신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1.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7절 上)

오늘 7절 상반절에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는 말씀이 있다. 즉 자기가 똑똑한 것처럼 생각하며 제 고집대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자기 생각대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상 사람들의 목표가 옳은 것인양 여기며 그러한 가치관과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도리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지혜의 근원이시며, 하나님만이 참 능력자이시며, 하나님만이 참 구원자이시므로 오직 그분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분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솔직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다고 내 놓을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비록 피조물들 중에서는 제법 지혜롭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우리 인생이 아는 게 얼마나 될까? 우리 인생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될까? 우리 인생에게 선한 모습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인생에게 아름다운 모습은 얼마나 될까? 우리 인생에게 의로운 모습은 얼마나 되는 걸까? 거룩한 모습은? 너무나도 부족한 존재가 아닌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가 아닌가?

그러므로 참으로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이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철저하게 낮아져야 한다. 이것이 안되면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이것이 안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다. 은혜받지 못한다.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엎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겸손에 대하여 누누히 말씀하고 있다. 약4:6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다. 또 잠16:18절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고, 겸손은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망할 것이고, 겸손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섬길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빌3:7,8의 말씀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 즉 똥오줌과 같이 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서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비교해보니까 그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지식, 재물, 권세, 학벌, 가문들이 다 똥오줌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겸손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앞에서 비추어볼 때, 하나님의 은혜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은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야말로 똥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때 엎드러지고 깨어지고 부서져서 주님을 온전히 따르게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전적으로 엎드러져서 주님을 따를 때 복을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겸손하라. 엎드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철저하게 그분 앞에서 낮아지라. 그리하여 진정 하나님을 만나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자. 그래서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자.

2.악에서 떠나야 한다.(7절 下)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앞에서 겸손해야 하고 또한 동시에 악에서 떠나야 한다. 오늘 7절하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진실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에서 떠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은 복을 안받을래야 안받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정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을 멀리할 수 밖에 없다. 왜?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존경심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훌륭하고 능력있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기 때문에 내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그 엄청난 모습 앞에 완전히 압도되어 완전히 주눅이 들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압도되어 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외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면 어떨까? 말할것도 그분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어찌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어찌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의 하나인 악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서워서라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악이란 무엇일까? 물론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통합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악이다. 반대로 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선이다.

즉 남에게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입히거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가져다 준다거나, 육체적으로 큰 상해를 입히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악만이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악이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악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은가? 선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임으로 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되새기며 살아가자.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하는 행위일까?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일일까? 혹시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안타깝고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정말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향하여 나아가자. 그렇게 할 때 결국 하나님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자.

3.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9절)

오늘 9절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첫 열매는 모든 소산물에 대한 대표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첫 열매를 드리라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우리가 수확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먼저 드림으로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하라는 그런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가 비록 열심히 수고해서 얻었지만 사실인즉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터전을 주시고,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때를 따라 햇빛과 비와 공기와 토지와 건강과 시간과 이 모든 것을 주시기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서 무슨 소득을 올릴 수 있겠는가? 아니 무엇인가 할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마땅히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얻든 가장 먼저,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고 하는 신앙 고백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모든 것의 원소유자는 하나님이시다. 내 생명도 내 건강도 내 재물도 내 삶의 터전도 내 자녀도 내 지식도 내 형상도 내 재능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가장 먼저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 또 대상 29:14..“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

그러므로 기억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중에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내 생명도, 경작하는 토지도, 산도 들도 강도 태양도 공기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영혼도 건강도 지혜도 감정도 지성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활용하여 만든 집도 차도 모든 문화와 과학의 이기도 다 원소유권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든 물적,지적소유권자이시다.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겸손한 모습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아름다운 자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모습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때에 더욱 하나님께는 영광을 우리에게는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자.

4.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결과(8,10절)

이렇게 겸손히 하나님을 섬길 때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는 오늘 8,10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즉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는 말씀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손히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인줄 알고 그분앞에 드리는 삶을 사는 자에게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더 부요한 삶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먼저 8절 말씀을 보면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보자. 여기서 이것이란 물론 앞부분에서 말씀하고 있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 사는 삶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약이 된다는 것이다. 약이 되어 우리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건강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모든 고통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르려는데서 비롯된다.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부조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후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너무나 많은 부조화가 생겼다. 그래서 생명의 원천이신,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멀어짐으로써 영적, 육적, 정신적 고통이 왔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겸손히 섬기라. 그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따르라. 그러면 평안을 누린다. 위로를 받는다. 영혼도 정신도 육체도 평안을 누리게 된다.

또 10절의 말씀을 보자.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무슨 말씀인가? 앞절에서는 처음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다. 첫 번째 것으로 가장 먼저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니까. 이렇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면 더 많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도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며,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태도이며 믿음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드리는데 어찌 하나님이 감동하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감동하시면 어찌 더 큰 은혜로 주시지 않겠는가?

이제 말씀을 정리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자신을 신뢰하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라. 인간은 별 것 아니다. 약하다. 부족하다. 미련하다. 어리석다. 허물이 많다. 곧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전능자이시다. 생명의 주권자이시다. 구원자이시다.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다.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겸손히 그 앞에 엎드리라. 완전히 그분을 인정하라. 신뢰하라. 경외하라.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그 분의 뜻을 따르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줄 알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라. 시간도 몸도 재능도 물질도 능력도 그 모든 것의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나님앞에 드리는 삶을 살라. 그러면 반드시 복된 자가 된다. 복이 저절로 온다. 은혜가 온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강건하고 평안한 은총을 누린다.

우리 온 성도들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앞에 엎드리며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갈때에 오늘 말씀에서 약속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영적,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인 부요함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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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저녁예배설교] 악의 세력

 

 

 

말씀 : 잠9:13-18

제목 : 악의 유혹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오후 예배 시간에 예배당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것이냐, 아니면 좀 바쁜 일이 있는데 그것을 처리해야 할 것이냐, 지금은 매우 나른하고 곤한 시간인데 내 육신의 피곤함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앉아 졸 것이냐, 아니면 비록 나른한 시간이지만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냐 여하튼 우리는 언제나 선택 앞에서 살아가게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처럼 보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실상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똑같이 나른하고 곤한 시간에 예배를 드려도 어떤 사람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어떤 사람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땅으로 떨군다. 똑 같은 설교를 해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무덤덤하게 앉아 있다.

사실 모든 선택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내가 선과 진리와 은혜의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는 은혜와 생명으로 다가올 것이요,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말할것도 없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어떤 상황이나 어떤 여건가운데서도 다른 어떤 것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통하여 내 인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죄된 육신의 본성과 무지로 말미암아 판단력이 흐려져 있다. 우리의 지혜나 지식이나 경험도 온전치 못하다. 더구나 지혜의 소리와 악의 소리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세상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된 지혜의 소리를 버리고 악의 소리에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많은 착각과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는 잠9장의 말씀도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의 말씀을 주신다. 지혜의 소리와 악의 소리가 오늘도 바로 우리 곁에서 들려오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하여 어떻게 응답하며 살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지혜자의 초청을 살펴보았다. 지혜가 최상의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부른다는 것이다. 지혜안에는 최상의 잔치가 준비되어 있으니 모든 어리석은 초청을 뿌리치고 지혜의 초청에 응답하여 생명의 은총을 누리라는 말이다.

이렇게 지혜의 초청에 대하여 말씀한 다음에 오늘 말씀에서는 악의 초청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13-17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다.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우매자의 소리에 현혹되는 이유

먼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내용은 미련한 자의 특징이다. 미련한 계집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방탕한 여인을 말하지만 꼭 방탕한 여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유혹하여 죽음의 나락으로 몰고 가는 모든 악의 세력을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먼저 그들은 떠들며 어리석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떠든다는 것은 아무 생각없이 되는대로 천박하게 지껄이는 모습을 말한다. 그저 먹고 마시며 욕망의 노예가 되어 방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멋대로 생각없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무지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심령속에 자리잡고 있는 심각한 무지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떤지도 알지 못하는채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인생이 무엇인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명의 은총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인생의 결국이 무엇인지, 천국과 지옥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기에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죄로 인한 무지가 인생을 완전히 어둠의 나락 속으로 빠뜨려 아무런 죄의식이나 두려움이 없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며 먹고 마시며 방탕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먼저 무지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기억하자. 무지가 큰 죄다. 무지가 사람 죽인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또 호6:3절에는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므로 더욱 힘써 말씀을 상고함으로 진리의 길로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2.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악의 세력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미련한 인생들이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가 추구하는 쾌락적인 삶이 마치 자유나 즐거움이나 기쁨으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까지도 그러한 방탕한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다른 모든 사람을 유혹하여 함께 향락을 누리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함정에 빠뜨릴 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미련한 계집으로 대변되는 악의 세력이 집문과 성읍의 높은 곳에 앉아서 지나가는 행객들을 불러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집문 앞과 성읍의 높은 곳에서 부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혹은 대상을 불문하고 유혹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집 문은 자기가 기거하는 집을 말하고, 성읍 높은 곳은 모든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문에서 그리고 성읍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 유혹을 한다는 것은 자기 집 문앞으로 스스로 향락을 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읍의 대로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유혹의 소리는 장소불문, 인간불문이라는 것이다. 유혹의 손길은 모든 장소에 모든 사람의 곁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도시나 농촌이나, 교회 밖에나 교회안에나, 가정이나 학교나 여하튼 어느 곳에도 죄의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3.악의 달콤한 유혹

특별히 이 음녀의 유혹의 소리를 들어보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17절)“ 도적질한 물, 몰래먹는 떡, 이것은 물론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남의 이목을 피하여 행하는 악한 행동을 말한다. 악의 세력이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결국 악의 세력마져도 그런 행위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더 달고 맛이 있으니 같이 먹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옳지 않은게 뭐 대수냐 달고 맛있기만 하면 되지, 진리가 다 뭐냐 선은 또 뭐냐 그저 내 육신 편하고 즐겁고 만족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주 교묘한 사탄의 전술이다. 그야말로 양심에 화인 맞은 소리인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죄된 인간의 본성과 죄된 인간의 욕구를 부추기는 전형적인 사탄의 전략인 것이다. 달콤한 유혹으로 인간의 본성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죄의 욕망을 자꾸 부추겨서 결국은 죄의 나락 속으로 빠뜨리려는 것이다.

4.악의 초대에 응한 결과

정말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떳이 맛이 있을까? 물론 미련한 자의 소리다. 사탄의 소리다. 유혹의 소리다. 그 결과는 오직 죽음 뿐이다. 오늘 18절의 말씀을 보라.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말인가? 죽은 자가 그곳에 있다, 그의 객들이 그곳에 음부에 있다. 모두 같은 말이다. 한마디로 그곳에는 곧 그들이 좋다고, 즐거움이 있다고, 쾌락이 있다고 하는 그곳에는 오직 죽음의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시체만이 즐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객들 즉 그들과 함께 동료가 되어 함께 쾌락 속에 잠겨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갈 곳은 음부 깊은 곳 곧 지옥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오직 죽음뿐이다. 죄의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오직 멸망뿐이다. 그런데 대단히 안타깝게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육신의 욕망을 자극하는 죄의 소리에 너무 약하다. 그 길이 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 길이 당장은 더 달콤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자의적으로 때로는 타의적으로 그러한 길로 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죄는 지금도 우리에게 쾌락과 즐거움과 기쁨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사실 거기는 죽음뿐이라는 것이다. 거기는 후회와 절망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선택은 자유이나 결과는 결코 자유가 아님을 기억하라. 오직 진리의 소리,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 살아갈 때에 더욱 은혜의 풍성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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