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 광채나는 얼굴(전8:1)
하강교회 조학환목사 주일낮설교
제목 : 광채 나는 얼굴
말씀 : 전8:1
1.얼굴이 밝아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설교를 하려니까 좀 위축이 됩니다. 왜냐하면 ‘광채 나는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면 얼굴에 광채가 좀 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얼굴이 예수님 믿고 정말 많이 좋아진 겁니다. 옛날에 거의 그랬지만 저도 솔직히 어렸을 때에 가정이나 마을이나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서 사회에 대한 불만도 많고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많아 얼굴에 그늘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고 정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깨닫고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게 굉장히 밝아지고 좋아진 거니까 그런 줄 아시고 설교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여러분, 우리는 밝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믿음 안에서 거듭났어도 과거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또 현재의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거듭났다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와 긍정의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도 감사와 사랑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지고 사는 모습이 밝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과 은혜와 평안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렇게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가 있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의 얼굴에 밝고 기쁘고 은혜로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해도 예수님을 믿고 5년 10년 20년 30년 40년 지나면 사는 모습이 환하게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6:15절을 보십시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여러분, 이때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스데반에게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씌워 산헤드린공회 법정에 세웠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때의 스데반은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끌려와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니라 그는 이 종교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실제로 돌에 맞아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법정에 앉아 있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성령께서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영광의 나라를 환하게 보여주시니까 그 심령 속에 기쁨이 넘쳐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 있는데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면 뭔가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근심 걱정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받고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빛과 같이 밝은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온갖 좋은 것들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로서 얼굴에 밝은 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세상의 유일한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은혜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따라가면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들로 충만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 모습이 밝고 깨끗하고 희망차고 소망이 넘치게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히12:2절에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믿음의 주시오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믿음과 삶이 점점 온전케 되어 생명의 기쁨과 능력과 은혜 가운데 살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답도 멋있고 빛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자꾸 나쁜 것, 안 좋은 것, 악한 것, 부정적인 것, 어두운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바라보면 결국 부정적이고 어두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열악하고 부족하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현실만 바라보면 자꾸 불평불만만 생기고 의욕도 없어지고 그러면 인생이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늘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이미 가지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소망이 있는 그것을 바라보면 긍정적이고 밝고 활기가 있고 의욕적이고 적극적이 되어 그 삶이 점점 정오의 빛과 같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주고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물론 온 인류의 유일한 생명이며 소망이며 위로이며 희망이며 빛이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빛과 같은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요8: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 보십시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뭡니까? 모든 어둠을 밝혀주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 믿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는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없이 오직 생명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만이 넘칩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현재적인 천국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긍정적이고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여기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세상 즐거움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국은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망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본래 죄와 무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요 연약한 자요 부족한 자요 허물투성이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 어떤 세상의 부귀영화도 결국은 다 썩어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돈이나 권세를 바라보면 자꾸 욕심이 생기고 그러면 결국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미움 싸움이 생기고 그래서 얼굴이 어두워지고 삶이 어두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서도 기쁘고 즐겁게 산다면 그건 마약이나 환각제나 술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감각이 무디어져서 누리는 왜곡된 기쁨이요, 순식간에 사라질 가짜 기쁨인 것입니다. 아니 그냥 가짜 기쁨만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만을 초래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목적을 두고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삼아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그 생명 기쁨 은혜 사랑 소망 위로를 사모하며 주님을 가까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진짜 참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소망과 위로 가운데 할렐루야 찬양하며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감으로 해처럼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정오의 빛과 같이 빛나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주님을 바라본다면 주님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목적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주님께 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렇게 주님을 소망과 목적으로 삼고 달려가려면 주님의 뜻을 늘 생각하며 그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목적지에 잘 도착하려면 일단은 목적지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올바른 방법과 코스로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라톤에서 승리하려면 골인지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올바른 코스를 따라 정해진 규칙대로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열심히 달려가 일찍 도착을 했어도 그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실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주님을 목표로 삼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뜻과 방법을 따라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목표만 주님으로 정해 놓고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목표지점을 향하여 잘 가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잘난 경험과 이성과 지식을 따라 왜곡된 길로 가기 십상이고 더 적극적으로는 악과 불의를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주님을 향해 가도 주님께 인정받지 못해 실격패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3:1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그러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라. 그래서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과 방법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되고 그럴 때 주님을 닮아가며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그 주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돈만 생각하면 돈 따라 갑니다. 명예를 생각하면 명예 따라 갑니다. 술을 생각하고 도박을 생각하고 향락을 생각하면 결국 그걸 따라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고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면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생명의 사람, 진리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23:7절에서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렘6:19절에서는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생각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좋은 것을 생각하고, 의를 생각하고, 진리를 생각하고 거룩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식도 생각해야 하고, 부모님도 생각해야 하고, 농사일도 생각하고 연구도 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생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뜻대로 자녀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공경하고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고 농사도 짓고 사업도 하고 직장생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을 지혜롭게 성실하게 은혜 가운데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고, 그럴 때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래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얼굴에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온통 세상의 것에 집중되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깨끗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할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기 욕심을 따라 하게 되고, 시기와 질투에 빠지기 쉽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가 생기기 쉽습니다. 심지어 악을 행하고 남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빛이 나지 않고 어둠이 깔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전8:1절을 보겠습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지혜는 얼굴에 광채를 내게 한다. 사나운 것을 비롯한 모든 어두운 것을 물러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뭡니까? 지혜는 하나님이 지혜이고 그 말씀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생명이시며 빛이시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빛과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오 빛이신데 우리가 그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 인생이 어찌 밝게 빛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그렇게 밝게 빛나는 사람은 사나운 것이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데 어떻게 사납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불평 불만하면 안됩니다. 추한 말, 악한 말, 독한 말, 모진 말을 하면 안됩니다. 자꾸 싸우려고 대들면 안됩니다. 어찌 하든지 부드러운 말, 사랑의 말, 은혜의 말, 깨끗한 말을 해야 합니다. 갈등을 유발시키지 말고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당연하잖아요.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과 빛과 은혜와 생명과 기쁨과 평안이 있는데 어찌 추하고 악하고 독하고 모질고 싸우려고 대들겠습니까? 여러분, 마5:5절을 보십시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또 마5:9절을 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정 믿음과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살아감으로 자신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남에게도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주는데 가운데 얼굴에 광채와 윤기가 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의 왜곡되고 부패한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주님의 방법을 생각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점점 주님을 닮아감으로 진실로 여러분의 심령이 밝아지고 얼굴이 밝아져 생명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세상에 빛을 비추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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