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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순절)

 

 

 

제목 :주의 길을 예비하라
말씀 :마 3:1-12

대강절 둘째 주일을 맞아 저는 여러분에게 한편의 드라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드라마 제목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입니다. 그리고 대본을 쓴 사람은 마태, 각색은 임영수입니다. 장소는 약 3백명의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부채꼴형의 극장입니다. 부채꼴의 중심부에 아름다운 무대가 설치 되어 있습니다. 극장 안에는 관람객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잠시 후에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서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무대 배경은 사막입니다. 무대 배경이 드러나면서 고대 사회의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병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어떤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지휘관인 듯한 사람이 이것 저것 명령을 하자 병사들은 일사 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드라마의 서막인 이 장면은 거의 무언극으로 진행됩니다.

길 정비가 끝나자 병사들은 퇴장합니다. 그들이 퇴장하자 곧 우렁찬 행진곡이 울리면서 무장한 병사들의 호위에 둘러 싸여 고대 사회의 화려한 복장을 한 왕이 말을 타고 행차합니다. 왕의 모습은 매우 위엄있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왕의 행차가 지나간 후 폭풍이 지나간 후 처럼 무대에는 불이 꺼지고 정적이 무대를 뒤덮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무대 불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무대 배경이 드러납니다. 무대 배경은 역시 광야입니다. 그러나 왕이 지나가던 광야와는 다릅니다. 광야 한 쪽에는 강이 있고 여기저기 바위와 나무들이 있습니다. 막 뒤에서 나레이터의 낭낭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나레이터의 낭독이 있은 후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룬 매우 야생적인 인상을 풍기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등장한 후 무대 양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그에게 다가갑니다. 그들의 모습은 이 선지자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고 외침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의 앞으로 나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합니다.선지자는 무리들을 강가로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얼굴이 모두 밝아지고 그들의 몸 동작은 가벼워 보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어둠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들 처럼 보입니다.

그 무리들 가운데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낙타털 옷을 입은 선지자는 그들을 보자 격렬하게 꾸짓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맞는 열매를 맺어라"

그의 꾸지람을 들은 유대 지도자들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는 회개하지 않고 단순히 그에게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의 징벌을 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징벌 면제의 표식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태도를 본 이 선지자는 그들의 그릇된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의 설교는 좀더 진지하고 격렬해집니다.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선지자는 자신이 메시야라 든가 모세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뒤에 오시는 그 어떤 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은 그 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온 드라마의 처음 부분에 등장한 왕의 행차에 앞서 그 왕의 길을 준비하는 병사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선지자 자신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고 고귀한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선지자는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고 말합니다. 선지자가 선포하는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분이 이제 드디어 오실 것이라는 기대감 가운데서 무대에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높이 들고 무대 배경으로 되어 있는 광야의 하늘을 쳐다 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 기대 동시에 두려움의 빛이 감돕니다.

무대가 조용해지며 강림절의 찬송 소리가 울려나오면서 무대 불이 꺼지고 무대의 막이 내립니다. 이 무대에 선지자로 등장한 주인공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러나 실제 주인공은 요한이 가리킨 '오시는 그 분' 이였습니다.

드라마 첫번 째 장면 고대 왕의 행차는 본문 3절에 인용되어 있는 이사야 40:3-5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고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가까이 임하시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왕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서 왕의 도로를 준비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 가운데서 바벨론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있는 시리아 사막에 하나님께서 임하실 길이 준비 되어야 한다고 알림으로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묘사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작가 마태는 예언자 이사야의 이 예언에서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보고 있습니다. 마태는 세례자 요한을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로 등장시킵니다.

극작가 마태가 쓴 이 드라마는 논픽션입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마태가 관객들에게 분명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오시고 계신다.

다음은 오시고 있는 하나님을 위해 길을 준비해야 한다.

그 다음 암흑으로 뒤덮혀 있는 역사의 무대에 하나님이 오시는데 그 길을 준비하는 길은 곧 회개이다.

'새 우리들의 선생님' 의 저자 존 스토트 목사는 "새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칠 수 있다면 회개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고 했습니다. 스토트 목사의 관찰에 의하면 "가을에 먼 곳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은 이듬해 봄에 어김 없이 되돌아 온다" 고 했습니다.

스토트 목사는 "일반적으로 거의 50만 마리의 황새가 매년 봄. 가을에 중동 지방 위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새들은 갔다가 돌아오는데, 하나님의 백성(인간)의 비극은 하나님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다는데 있다." 고 했습니다.

스토트 목사는, "새가 육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한 귀소 본능 만큼 우리 인간도 영적으로 강한 귀소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이야 말로 인간의 영이 쉴 수 있는 진정한 집이며 그 분 없이는 우리가 부랑자요, 미아라는 생각이 강해 질 수 록 우리는 하나님과 약간 떨어져 있는 것도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가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회개의 반대 말은 죄입니다. 죄의 뜻은 과녘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는 것입니다. 사수가 화살을 활시위에 먹여 과녘을 향해 쏘았을 때 과녘에 맞지 않고 빗나간다는 뜻이 죄의 어원입니다. 빗나간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ㅇ. 무지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

ㅇ. 그릇된 생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

ㅇ. 나쁜 습관으로 계속 빠져들어 가는 것.

ㅇ. 유혹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ㅇ. 자기 개선없이 살아가는 삶

ㅇ.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것

ㅇ. 죄의 삯은 결국 죽음입니다.

한편 회개의 뜻은 돌이킨다는 것인데, 그 뜻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ㅇ. 깨어나는 것.

ㅇ. 깨달음.

ㅇ. 판단을 더디하고 이해를 신속히 하는 것.

ㅇ. 위기를 알아차리는 것.

ㅇ.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는 것.

ㅇ. 새로운 생의 출발을 하는 것.

ㅇ.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

우리가 대강절을 맞이 할 때마다 생각해 볼 문제는 "내가 오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오시고 계시는 그 분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돌이킬 것인가?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입니다.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켄 가이어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영혼의 창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분의 다가옴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다가감은 들음으로 시작 된다. 그분의 찾음은 자신을 보이심으로 시작되고 우리의 찾음은 봄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은 일상 생활의 창에서 서로 만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창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시하시는 곳입니다. 그 곳이 병상, 고난의 자리, 독서하는 시간, 기도,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는 순간,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켄 가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햇빛보다 더 밝은 놀라운 순간, 우리가 평생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씀, 멀리서 메아리처오는 가느다란 메아리까지 놓치지 않으려 가장 가파른 절벽까지 오를 가치가 있는 너무나 소중한 말씀. 영혼의 창은 바로 그 말씀을 듣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생의 여정은 새롭게 시작된다. "

"그 창은 단순한 깨달음의 순간일 때이기도 하고 판단을 더디하고 이해를 신속히 해야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간혹 그 창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에 들려오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 인생의 여정을 준비시키는 말씀, 위기를 알아차리게 하거나, 인식의 장소로 인도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며 지금 왜 여기에 있으며 인생의 이 여정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주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켄 가이어-

"한편 영혼의 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해주는 지혜의 안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안목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모든 대상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작됩니다. 존중하는 마음은 다시 보는 눈을 통해 전해집니다. 눈으로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건의 이면을 보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오시고 계시는 그 분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돌이킬 것인가?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입니다.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영혼의 창 즉,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 그리고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해주는 지혜의 안목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너무 멀리 떠나 있습니다. 이렇게 멀리 떠나 있을 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꼬이고, 뒤틀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문화, 정치,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역사의 무대에서 요한과 같은 역할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됩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절대 필요하다.' 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 돌이켜 그들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안내가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한 책임을 오늘의 교회가 담당해야합니다. 

출처/임영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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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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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감사한 마음)

 

제목 :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8:7-18, 17:11-19, 고후9:6-15

 

우리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 마음에 기쁨

 

이나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감사한 마음이 없는 행

 

복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감사

 

한 마음을 갖게 될 때, 그 순간 행복하다는 느낌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은, 그 마음에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

 

려야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편집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노미숙이라는 분이 어느

 

잡지에 올린 글을 읽어 봤습니다.

 

이분은,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서, 네 살 된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생활전선에 직접 뛰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꿈

 

을 안고 결혼했는데, 이제는 그 꿈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

 

뭇가지에 걸려버린 것처럼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피곤하게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로 남편과 자

 

주 말다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써 씩씩한 척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일하고 일터에서 만난 40대 여성

 

을 통해서, 그녀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

 

. 이분이 일하던 곳은 보건소였는데, 이분이 보건소에서 만

 

난 그 40대 여성은 혼자 힘만으로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

 

기 때문에 항상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 여성은 1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혼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간병인이 24시간 돌봐주어야 했습니다. 노미숙 씨는 그 여성

 

에게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

 

, 그 여성이 말하기를 걷고 싶어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걸

 

어서 집 앞을 왔다 갔다 할 정도만 되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노미숙 씨의 코끝이 찡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태로 봐서는,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여성이 바라는 그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소

 

망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노미숙 씨는, 걷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숨 쉬는

 

, 이런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

 

. 그런데, 40대 여성이 간절한 눈빛으로 걷고 싶어요.”

 

라고 말하자, 그 말이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니, 40대 여성에 비해서, 노미숙 씨는 너

 

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

 

는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누리지 못하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 여성의 처지에 비하면, 노미숙 씨가 현재 괴로워하고 있

 

는 문제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너무나

 

하찮은 문제라서,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

 

러운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걷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그 40

 

여성의 간절한 외침을 떠올리곤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에베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5:20)’

 

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5:18)’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처지에 있든

 

, 아니면 여유롭고 넉넉한 형편에 있던지, 어떤 형편에 있

 

든지 간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려

 

, 우선 감사의 씨를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씨가

 

싹이 트고 자라서 102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

 

.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감사할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게 된다면, 그 불평과 원망이 불행의 씨가 되

 

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불평하고 원망할 일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마음에 불평

 

과 원망의 가시덩굴과 엉겅퀴가 무성할 경우, 가뜩이나 연약

 

한 감사의 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

 

씨앗을 적게 뿌린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린 자는 많

 

이 거둔다.’고 하면서 진정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베풀어주시고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을 사랑하

 

신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시

 

고 또 풍성하게 주신다. 그래서 그가 필요한 것을 다 채울 수

 

가 있고, 풍성하게 되며, 그 남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이다(고후9:7-8)’

 

요컨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자신이 풍족하

 

게 살아갈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남는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서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곡간에 곡식이 넘쳐나도 늘

 

가난한 생활을 면할 수 없습니다. , 다른 사람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통장에

 

잔고에 쌓여 있어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

 

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은 재산이 아무리 넉넉해도,

 

제로는 늘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주신 덕분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줄 수 있는 것이

 

.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 그들은 감사하여 하

 

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그

 

들의 감사가 넘쳐흐르게 하는 좋은 결과를 낳게 해준다(고후

 

9:11-12)’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의 감사가 또 다

 

른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를 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

 

사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

 

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라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

 

,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언제

 

나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

 

. 그런데, 우리가 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허물

 

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처럼,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면, 혹시 일이 뜻대

 

로 잘 풀리지 않더라도 그다지 불쾌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경우, 사탄의 세

 

력이 아무리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고 싶어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이 잘 안 된다고 해

 

서 불평을 하거나 원망할 때에는, 마귀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은 사람은, 어김없이 사탄의

 

밥이 되어, 그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8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

 

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세가 그의 백성에게 일러준 교

 

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그 땅에서 어떤 자세로 하나님

 

을 섬겨야 할지에 대해서 가르쳐준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서 살면, 그곳에서 그들은 부족하거나 아쉬운 것 없이 풍족하

 

게 먹고 살면서 행복한 인생을 지내게 될 텐데,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을

 

정확하게 잘 지켜야 한다고, 모세는 엄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될 가능성이 많

 

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지는 경우는, 그 형편이 어

 

렵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신상 아무 문제가 없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

 

며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

 

로 사람들은, 그 형편이 여유롭게 되면, 자신이 잘나서 그렇

 

게 된 줄 착각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의 백성이 그렇게 될까봐 염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배불리 먹고, 아름다운 집을 지어 행복하게 살면

 

, 소 떼와 양 떼도 불어나고, 은과 금도 많아지고, 여러분의

 

모든 재산이 많아졌을 때, 여러분은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

 

시오. 그리고 그럴 때, 여러분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으

 

,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명심해야 합니다(8:12-14)”

 

모세는 17절에서 다시 한 번 거듭 말하기를 여러분은 아

 

무 탈 없이 잘 살게 되더라도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

 

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하고 착각하지 말

 

.”고 경고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경고한 것도 결국은,

 

람이 그처럼 착각하거나 교만해지게 될 경우, 반드시 사탄이

 

찾아와서 그런 사람을 넘어지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베풀어주신 은혜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우리의 감사가 넘쳐서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교만에 빠지

 

게 될 경우, 거의 100%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 빠지면, 우리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와 고통

 

을 안겨주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2.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어려운 이

 

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소설가가 가장 좋은 것은 다 공짜다.’라는 제목으로

 

월간 좋은생각’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읽어봤습니다.

 

이분이 지난봄에 하와이에서 두 달 정도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말한다

 

, ‘하와이의 가장 좋은 것은 다 공짜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텔에서의 생활을 비롯하여, 맛있는 음식이나 쇼

 

핑 등은, 하와이 관광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달콤한 공기, 화려한 꽃과 나무

 

, 맑은 바다와 수많은 물고기 등. 이처럼 좋은 모든 것은

 

다 공짜였다는 것이죠. 이런 것은, 그 누가 그만 보라고 간섭

 

을 하거나, 봐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키는 일도 없습니다.

 

래도록 감상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공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댓가 없이 모든 사

 

람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하와이에만 그런 공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보니,

 

리나라에도 그런 공짜가 너무나 많더라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붉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주 멋

 

진 광경을 구경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조금만 더 일찍 일어

 

난다면, 동녘에 붉은 노을이 지면서 동트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광경이 얼마나 멋있고 황홀한지 모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공짜로 얻어서 살고 있는 것이 얼

 

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임플란트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 임플란트 하나에 23백은 주어야 하는 줄 알고 있습니

 

. 그런데, 우리는 오래 전부터 돈 한 푼 안 주고서도 많은

 

치아를 제공받아 살고 있습니다. 모두 28개이니까, 적어도

 

5600만원치를 공짜로 얻은 셈입니다. 사랑니까지 따진다면,

 

모두 6400만원 치입니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우리가 하나

 

님께로부터 공짜로 얻은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어쩌다가 먹는 물까지도 사먹게 되는 세상이 되었

 

지만, 아직 공기만큼은 돈 한 푼 내지 않고서도 무한정 호흡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기만큼 귀한 것은 이 세상에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기는 공짜입니다. 저는 그래서

 

아직도 가장 귀한 것은 공짜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공기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

 

사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공기가 귀하다고 해도, 그 공기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공기가 귀한 줄을 모르고 지

 

낼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만큼 더 귀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

 

이지 못한다면, 믿음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을 보면, 아주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사할 줄 알게 될 경우, 주님의 구

 

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나병환

 

자 열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했습니

 

. 이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

 

한테 가는 도중, 그들의 몸이 깨끗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 큰소리로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다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사람

 

밖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이냐?”

 

시고,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한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구원했다.’는 말을, 어떤 번역본에서는 낫게 했다.’라고 번

 

역했습니다. 분명히, 나병환자들은 그 이전에 다 깨끗이 되었

 

는데, 다시 돌아와서 감사하다는 말을 한 그 사람에게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인적(全人的)인 치유를 말씀하신 것으로 여겨

 

집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의 그 몸만 깨끗하게 된 것이 아

 

니라, 그의 영혼까지도 깨끗하게 되어서 진정한 구원을 받았

 

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전인격적(全人格的)인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전인격적으로 구원을 받

 

도록 노력합시다. 그렇게 되려면, 언제나 항상 감사한 마음으

 

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어떤 처지와 형편에 있게 되든지,

 

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에 진심으로 항상 감사

 

함으로써, 지금보다 더욱 풍성한 인생이 되어 살아갈 수 있기

 

,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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