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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오늘의 말씀  - 술의 해독

 

 

 

(주)01         술의 해독
               찬송 559장 (통305장)   말씀 : 잠 23;29-35
오늘의 말씀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나의 발견(제목):  
 본문 요약 : 지혜자는 여러 가지 행실에 관한 교훈의 끝부분에서 술의 해독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술 마시는 것에 대해 강한 언급을 하고 있다.
 본문 살펴보기 :  본문은 술로 인한 비극적 재앙에 대하여 아주 신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는 자는 자신을 감각의 지배에 맡김으로써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격적 품위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본문에는 술 취한 자의 여러 가지 악덕과 해독이 제시되어 있고 술이 어떻게 인간을 파렴치하게 만들며, 이성을 어떻게 마비시키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술은 재앙과 악덕의 원인이 됩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29 절). 술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원흉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까닭 없이 다른 사람과 시비를 걸어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전혀 자신과 관계없는 분쟁에 말려들기도 합니다. 술로 인하여 이미 이성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분별력을 잃고 횡설수설하며 감정의 흥분을 제어할 능력이 없어 광포해집니다. 이유 없는 살인, 파괴 등의 광태가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술은 인간을 범죄자로 만들며 의지 박약자로 만들며 인격 파산자로 만듭니다. 술은 모든 악덕의 원흉입니다(32 절).

 

  2. 술은 인간을 파렴치하게 만듭니다.
  감각과 이성을 붕괴시킵니다.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33 절). 술 취한 자는 소뇌와 대뇌 모두가 마비되므로 감각 기능의 혼란을 가져오고, 사고 기능과 언어 기능 등의 착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소뇌의 기능은 자신을 위해 있으나 대뇌의 기능은 타인을 위해 봉사할 지식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소뇌와 대뇌가 마비되어 정상 기능이 불가능해지면 인간은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혀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되고 성적 욕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로 인하여 인격이 파산되고 무례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3. 술은 인격을 해체시킵니다.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34, 35 절) 술에 취하면 신체의 조정 기능이 마비되고 피부의 감각 기능마저 마비되므로 정상적인 인격 활동이 불가능해집니다.
 나의 이해(본문요약) :

 

◐은혜의 나눔 - 모라비아 교단의 창시자인 '진젠돌포' 백작이 젊어서 어느 미술관에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그 중의 많은 그림 중 한 그림 앞에서 우뚝 서고 말았다. 얼마 후 그는 무릎을 꿇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을 그린 '스텐벅'의 그림이었다. 박물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도 그가 일어나지 않자 관리인이 그를 흔들어서야 그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그 후부터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오로지 성경 한 권만을 들고 전도하러 다녔던 것이다.

◐적용 – 혹간에 성령의 충만함을 원하면서도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위해 필요한 간절한 회개나 육신의 일을 포기함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것을 계속 사모하는 한 성령의 충만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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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다 지옥에 있을까?

 


 

복음이 전파되기 전이나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과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의 선행자와 악행자를 구별하셔서 그 심판대로 행하신다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무릇 율법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2~15)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17:30)
 

십계명에는 하나님께 지켜야 할 계명 3가지와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지켜야 할 나머지 계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이든 현재이든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든 비록 계명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사는동안 살았던대로 심판을 받게되어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시대는 그시대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는 분명 복음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예수님에 대해 수없이 들어왔고 또 들어오고 있으며 복음에 대해서도 들으며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땅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땅에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착하게 살더라도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100년도 채 못사는 이세상에서의 삶은 매우 짧은 시간임에 틀림 없습니다.
 

여러분, 지나간 과거들을 한번 회상해 보십시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도 못할뿐더러 무슨일들이 일어 났는지 아주 미세하게만 기억되어 쏜살같이 흘러가기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100년이 아니라 1000년란 시간이 저희 삶에 주어 졌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며 보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단 하루도 선을 행하고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은 결단코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은 절대적이며 불변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구원받기 위해 노력하며
죄를 짓고 회개하려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선한 일을 하고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과 함께 살면 영원히 천국에 갈 것은 마귀들도 아는 진리일찐대
어찌하여 영원히 고통받을 장소인 지옥에 들어가려고만 하시는지요?
 

그리고 이세상속에서의 그것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리려 하시는 지요..

오직 이세상을 살고있는 동안에만 구원을 얻을수있는 시간이 있음을
또한 회개의 시간도 이 세상에서 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선 이미 그 기회를 주시고 계시며 그 기회는 죽음 바로 직전까지 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 위해 제사장들을 만나고 도모할 때에도 그 분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가롯 유다가 사단에 빠져들게 하는 악한 영을 내어 쫓고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꿇고 용서해 달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너의 고뇌와 마음을 내가 보았고 네가 능히 이겨 냈음을 기뻐한다" 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비록 가롯 유다가 아니였을지라도 어떤 누구로 인해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것을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이 있고 선악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살인자나 강도가 되는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 생명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미래를 아십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바뀌어지는 것도 아십니다.
미래의 길이 2가지라면 악한 길을 택했을때의 미래와 선한 길을 택했을때의 미래를 둘다 알고계신 것입니다.

언제라도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심은 저희를 사랑하시는 증거 입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며 느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애굽의 10대 재앙과 홍해를 갈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 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어 그들을 먹이시며 암반에서 물을 끌어 내시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마다 예수님을 잊고 불평 불만을 하며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에서 나온 초기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기만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도 자신의 불만과 생각으로 인해 그 분의 존재하심과 능력을 잊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암이나 질병으로 인해 죽음의 끝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세상에서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하고
운이 좋다 조상이 지켜 준거야..부적이 살렸네..행운아! 라며 넘겨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보살핌에 감사를 드리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운과 다른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임하셔서 영적체험을 하게 하시고 느끼셨던 것을 그 사람이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가 보고 듣고 말한 모든 것을 이 세상에 알리고 나를 믿고 사랑하라고 얘기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예수님께서 그의 아들을 재물로 바치라고 하셨을때 그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으며 온갖 생각이 들고 시험에 빠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시험을 이기고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자녀를 제단위에 눕히고 칼을 내리 꽂으려 하는 순간..
"아브람아!! 아브람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아브람은 죽이더라도 필요하면 다시 살리시는 분이신 줄 믿고 그 명령을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육신의 세상에는 온갖 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에 맞닥 들였을때 예수님을 믿고 행하느냐
아니면 타협하고 외면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선 우리가 당해왔고 앞으로 당할 시험을 이미 다 아시는 분이라 믿습니다..
그 시험때마다 믿고 순종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때
그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진정 승리의 기쁨으로 노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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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바라본 꾸란의 오류와 모순들(2)

 

1. 성경의 변형들

 

1) 남자 갓난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칙령: 꾸란은 이스라엘의 남자 갓난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이 모세의 사역 도중 내려졌다고 말한다. “파라오 백성들의 우두머리들이 말하더라 폐하(파라오)는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지상에 해악을 퍼트려 폐하와 폐하의 신들을 우롱하도록 둘 것입니까?’라고 말하니 그(파라오)가 대답하였더라. ‘그들의 아이가 남아이거든 우리는 살해하여 단지 그들의 여자만 살아남게 하여 그들을 지배할 것이니라”(꾸란 7:127) 그러나 성경은 이 명령이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려진 것이라고 말한다(1:16; 2:1-2).

 

2)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 꾸란은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신 재앙들에 대해서도 성경과 다르게 말한다. 첫째, 10가지 재앙 중 일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둘째, 언급된 일부의 재앙들마저 성경과는 다른 순서로 등장한다. 셋째, 성경에 없는 재앙인 홍수를 언급하고 있다. 아랍어 타와판”(tawafan)은 문자 그대로 홍수를 의미하며, 다른 어떤 뜻도 담고 있지 않다.

 

3) 모세가 내리친 바위와 열두 개의 우물들: 꾸란은 모세가 돌을 치자 열두 개의 우물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는 열두 지파와 상응하는 수의 우물이었다(꾸란 2:60; 7:160). 그러나 엘림에서 있었던 일을 호렙에서 있었던 일과 섞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엘림에서 묵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12개의 우물과 70그루의 야자나무를 발견했다(16:1). 그리고 그들은 신광야에 도착할 때까지 여정을 계속했다. 그곳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16:1). 그들은 르비딤에 도착할 때까지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그들은 물이 필요했다(17:1). 그들은 목이 말랐고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모세가 바위를 쳤을 때, 그 바위는 물을 뿜어냈다(17:5-6). 열두 개의 우물은 엘림에 있었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난 것은 호렙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4) 언약의 궤: 꾸란은 언약궤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꾸란 2:248). 먼저 꾸란에는 언약궤 안에 사키나”(Sakinah)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키나라는 뜻의 아랍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그러나 이 아랍어 단어는 히브리어 쉐키나”(Shekinah)를 그대로 음역한 것일 뿐이다. “쉐키나”(Shekinah)는 언약궤 위에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 영광의 임재를 일컫는 단어이다. 두 번째로 꾸란은 언약궤가 모세와 아론의 가족들의 유품들도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언약궤는 십계명이 적혀 있는 두 개의 돌판을 담고 있었다(왕상 8:9). 또한 히브리서 94절을 보면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로 꾸란은 언약궤가 천사들에 의해 운반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성경의 내용과 다르다.

 

3. 꾸란 안에서 모순되는 내용들

 

1) 사람이 어떤 물질에서 창조되었나?: 꾸란은 사람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모순이 있다. “알라는 흙에서 너희를 창조하사 정액에서 너희를 재창조하셨으니”(꾸란 35:11) 어떻게 알라가 인간을 먼저 흙으로 만든 후에 정액으로 다시 만든단 말인가?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우리(알라)가 인간을 창조하사 검고 묽은 진흙으로 만드셨고”(꾸란 15:26) 그런데 다른 구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알라)는 그들을 진흙으로부터 창조하였느니라”(꾸란 37:11) 그런데 진흙에서 추가된 다른 구절에는 그분(알라)은 도기를 만들듯 인간을 흙에서 창조하였으며”(꾸란 55:14). 인간이 한 방울의 정액 또는 응혈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다(꾸란 16:4). “또한 인간이 물로 만들어졌다.”(꾸란 25:45) 그렇다면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정액으로만 만들어졌는가? 흙으로 만든 다음에 다시 정액을 혼합해서 만들었나? 진흙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묽은 진흙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물로 만들어졌는가? 이에 대한 혼란이 꾸란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 이집트의 파라오는 바다에서 익사했나, 아니면 살았나?: 꾸란은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로 간 파라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 어떤 구절들에서는 파라오가 그의 군대와 함께 수장당했다고 말한다(꾸란 17:103; 28:40; 2:50). 반면 어느 한 구절에서는 이상하게도 파라오가 알라에 의해 살았으며, 다른 이들에게 알라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 우리(알라)가 너를 구해 줌으로써 네 이후에 오는 자들에게 예증이 되도록 함이라”(꾸란 10:92) 그러나 사실상 꾸란에 기록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꾸란은 아랍어로만 기록되어 있는가?: 꾸란에는 꾸란이 순수한 아랍어로만 기록되었다고 돼 있다. “한 인간이 그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우리(알라)는 알고 있나니 그들은 외래인이 그(무함마드)를 가르친 것이라 하더라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아랍어이라”(꾸란 16:103) “우리(알라)는 꾸란을 아랍어로 계시하나니”(꾸란 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많은 비()아랍어를 담고 있다(꾸란 16:103; 12:2; 41:44). 여러 예를 들 수 있다: “파라오”(Pharaoh) 이집트어; “아담, 이브”(Adam and Eve) 아카드어; “아브라함”(Abraham) 시리아어; “하루트(Haroot), 마르트(Marroot), 시라트(Sirat), 후르 안인(Huwariyeen), (Jinn), 피르다우스(Firdawa)”모두 페르시아어; “히버(Heber), 투라트(Turat), 게한님(Gehannim)” 모두 히브리어; “인질”(Injeel) 그리스어 등, 아랍어가 아닌 외래어가 이 외에도 꾸란 안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유해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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