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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관상기도, 레노바레라는 이름으로 위장 침투
본 기사의 출처는,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출간" "레노바레 운동 드디어 한국교회 중심부로 포진하다!!" 옥성호의 2009/5/20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관상기도 관련 영성을 비판하는 글을 인용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정보 제공, 본지의 모체인「기독교이단대책협회」는 관상기도(레노바레)에 대하여 비성경적인 것으로 구원이 없는 이방종교인들의 만트라 행각과 가톨릭의 관상기도를 교묘히 각색한 관상기도와 레노바레 신비주위 변신을 교회에 도입이나 적용을 절대 금하는 입장임을 밝힌다(편집자 주).

1.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1) 레노바레 성경?.
카페 : 샬롬방 신앙공동체
박문수 2006.08.31. 22:47 / htty://cafe.naver.com/shalom/7149
기독교출판소식 9월호에
레노바레 성경이 곧 출간된다고 광고가 있다.
집필 대표자는 리치드 포스터, 윌터 브르그만, 유진피터슨, 달라스윌라드, 강준민 목사님이시고 총인원50명의 학자, 신학자, 목사의 참여하에 5년의 제작 기간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중략...
:레노바레 :
레노바레는 침묵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스스로 변화되고, 이를 통해 교회와 이웃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는 기존의 통성기도와는 달리 침묵기도는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내면 여행'을 강조한다. 가톨릭의 관상기도와 유사한 것으로 설명된다. 라고 하네요.
저희 교회에서도 고독의 영성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레노바레 인듯...한국교회하면 통성기도인데- 또 다른 변화의 물결이...

2) 레노바레 성경 개역개정판.
유진 피터슨, 리처드 포스터 저 | 두란노 | 2008.06.01
ISBN9788953110281 / 정가35,000 원

책정보 네티즌 리뷰책 소개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달라스 윌라드 외 50여 명의 집필진이 편찬한 성경책이다. 영성 개발을 돕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with-God life)에 대한 15개의 에세이가 실려 있으며 각 성경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각 권 개요, 성경 각 권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다룬 서론, 본문의 배경, 내용 설명과 함께 개인의 영성 개발을 구체적으로 돕는 본문 주해, 성경 중 만나게 되는 논제들의 통합과 깊이를 더해 주는 영적인 적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달라스 윌라드 외 50여 명의 집필진이 편찬한 성경책이다. 영성 개발을 돕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with-God life)에 대한 15개의 에세이가 실려 있으며 각 성경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각 권 개요, 성경 각 권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다룬 서론, 본문의 배경, 내용 설명과 함께 개인의 영성 개발을 구체적으로 돕는 본문 주해, 성경 중 만나게 되는 논제들의 통합과 깊이를 더해 주는 영적인 적용 등을 수록하고 있다.

책소개 펼쳐보기 책 소개 닫기 저자 소개 유진 피터슨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에 독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리처드 포스터는 미국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versity), 미시건의 스프링아버 대학(Spring Arbor University)의 영성신학 교수이며, 개인의 영적 성장과 교회 갱신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는 “레노바레(Renova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리처드 포스터는 레노바레를 통해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모하고 갈망하도록 돕는 영성 운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청교도와 퀘이커의 영향을 받은 그는 개인의 영성만 추구하기 보다는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듯”(Deep calls out to deep, 시 42:7)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 서로 깊은 영성 가운데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깊은 영성으로 이웃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그의 저서 중에 [영 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Discipline)은 영성 훈련 지침서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성장으로 이끌었고,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와 [돈, 섹스, 권력]은 각각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선정 올해의 책과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협의회(ECPA)의 골드 메달리언 대상을 수상했다.

 

2. 레노바레 운동 한국교회 중심부로 포진!!.


“2007.11.14 23:46 / http://blog.daum.net/cayman11/13769495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와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 다일교회 최일도 목사 등 목회자 12명이 6일 서울 저동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회의실에서 ‘레노바레 운동’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레노바레 운동은 미국의 영성신학자인 리처드 포스터 목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창안한 묵상, 성결, 성령, 사회정의, 복음전도, 성육신 등 6가지 영성훈련 방법이다. 레노바레(Renovare)는‘새롭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간담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10월 14∼17일 영락교회 본당에서 열리는 ‘2007 레노바레 영성부흥 국제 콘퍼런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직위에는 이들 외에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등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총 23명의 목회자가 참여하고 있다. 참가비를 일절 받지 않으며 사전 등록자에 한해서만 참석이 가능하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왜들 이러시는지요. 빈야드 운동, 알파코스, 뜨레스 디아스운동, G12, 신사도 개혁 운동, 프라미스 키퍼스운동, 임파테이션 운동, word-faith 운동( 노만 빈센트 펄,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릭 웨렌등), 뉴에이지 운동, 늦은비 운동..... 그만좀 멕이십시요.

미국 정통 교단과 이단 연구단체에서도 격렬히 비판되고 있는 이들 영성들을 왜 자꾸 끌어들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헨리 나우엔의 관상기도인가 쉽더니 리차드 포스터의 레노바레 운동을 들여오겠다고 유명 목사님들이 결의하셨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일생동안 성경을 다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영성 들여와 성도들에게 이익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 목사님들, 성경이나 제대로 가르쳐 주십시요. 딴데 한눈 팔지 마시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다고 교회가 더 분열되겠습니다.

지금 교계는 알파코스와 g12로 시끌 버끌한데 또 레노바레로 또한번 홍역을 치뤄야 합니까 ? 뭐 그게 그리도 좋습니까 ? 성경으로 돌아가자구요. 지발.

 

레노바레 운동은.

1) 리차드 포스터는 퀘이커 출신이며 퀘이커 주의자이다.
2) 리차드 포스터는 로마카톨릭의 지원을 받으며 초교파적이다.
3) 리차드 포스터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다.
4) 리차드 포스터는 프리메이슨 단체(CNP: COUNSIL FOR NATIONAL POLICY, FULLLLER THEOLOGY SEMINARY, WORLD VISION등)와 프리메이슨 인사들에 의하여 지지되고 그들의 종교 통합 운동에 협조한다.
5) 리차드 포스터의 레노바레 운동은 뉴에이지 운동 신비주의운동 은사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운동이다.
6) 레노바레 운동은 종교 다원적 운동이다. 이라고 미국의 정통 교단과 이단 연구 단체에서 비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 많은 프로그램을 들여와 교계를 한번 흔들어 보자는 것입니까 ?

▲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 김창수 미국제의 영성이 쉴사이 없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 영성들의 도입은 개혁교회들의 개혁정신과 개혁적 교리들을 급속도로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들을 개별적이나 전체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대개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사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것을 주창하는 자들이나 소개하는 자들이 로마카톨릭에 친화적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종교다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들을 자신의 교회에 접목하려는 목사님들은 자신의 교회를 개혁의 근원에서 탈피시키려 합니다. 알파 g12의 교회는 이제 장로교회가 아닙니다. 솔직히 시인하셔야 합니다. 어디 그게 장로교회의 모습입니까? 아순복음교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부터 매년마다 지키던 개혁주일 기념 예배도 없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개혁교회들의 근간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이제 종교 통합으로의 대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 이전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며 로마카톨릭은 명실상부한 큰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아마 10년후에는 개혁교회들이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뉴에이지 사상과 종교다원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3.“레노바레 영성세미나”옥성호의 비판.

묵상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
우리가 신이 된다는 가르침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들은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세미나가 다른 곳이 아닌 영락교회에서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포스터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저도 한 때 리처드 포스터와 달라스 윌라드에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할 얘기가 좀 있는 편이지요. 이 세미나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점은 대부분의 청중이 목회자였다는 점과 포스터와 윌라드 외에 여섯 번의 주제 강의를 한국의 대표적 목회자들이 진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여섯 번의 주제 강의를 테이프로 들었습니다.

이 세미나가 영성 세미나인 만큼 이 여섯 번의 강의에는 ‘영성’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제가 대충 살펴보니까 ‘무슨 무슨 영성’이 50가지 이상 나오더군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 교회는 성장 영성을 추구했다. 이제는 내면적 영성으로 바꿔야 한다.”“채움의 영성 대신 비움의 영성을 추구하자.”“부흥 영성보다는 각성의 영성을 갖자.”“방언기도 영성보다는 묵상의 영성을 갖자.”“한국의 새벽기도 영성은 참으로 훌륭하다.”끝이 없습니다. 여섯 개의 주제 제목 자체가 뒤에 ‘영성’을 붙인 것이니까요.

어떤 단어에 대해 제대로 개념을 정리하지 않은 채 그 단어를 마구 쓰는 것은 그 단어에 대한 ‘폭력’입니다. 한 마디로 ‘언어폭력’이지요, 이런 식의 ‘언어폭력’은 한국 교회에서 수도 없이 발생합니다. 끝없이 난무하는 ‘은혜 받았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또 하나의 경우지요.

레노바레의 주제 강의 가운데 하나가 ‘묵상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강의 전체 내용을 해당 목사님은 이렇게 요약하더군요. “묵상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성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예수님이 항상 묵상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물론 농담 차원이었지만 행동파 베드로는 묵상을 별로 안 해서 빨리 죽었고 사도 요한은 묵상의 삶을 살아서 장수했다고도 부연했습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 우리가 신이 된다는 가르침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분들이 주장하듯이 소위 말하는 렉티오 디비나(라틴어로 ‘영적독서’라는 말로 주로 수도원에서 쓰인 묵상 방식-편집자 주)를 통해 성경 구절을 ‘주문화’하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렉티오 디비나를 너무 하면 ‘디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디 예수님이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신 이유는 그 분이 성삼위의 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이런 ‘헛소리’ 앞에서 ‘아멘’으로 화답하는 수천 명의 목회자를 보면 가슴이 뒤집어집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이 세미나에서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환상을 예로 들면서 교단이 나뉘고 교리 차이로 서로 갈라지는 현실을 개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더럽다고 생각한 그 동물들을 먹도록 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절규’하셨습니다.“당신이 뭔데 감히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까? 왜 서로 비판합니까? 당신이 무어라고 하나님이 인정한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까?”

위의 본문이 이 목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결국 이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성이란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벗어 던지고 나와 다른 모든 이와 하나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세가 되면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대세가 무엇입니까? 개인의 체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체험주의와 감정주의입니다. 내가 느껴서 좋고 내가 체험했다고 하면 거기서 모든 논의는 끝입니다. 이와 더불어‘각자의 체험에 근거해’서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 되자는‘아름다운’주장입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하늘의 언어』와 같은 책들을 놓고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거나 의문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의 주장은 오늘날 대세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대세가 되면 검증도 판단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세에 속하는 순간 상식도 사라집니다.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 속의 수많은, 말도 안 되는 가르침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게 바로 오늘의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왜 제가 쓴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반론들이 제기됩니까? 그 책은 대세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정치권이나 교회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경은 대세를 무엇이라고 표현했습니까? 바로 넓은 길입니다.

옥성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에 소재한 The 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특허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한국의 벤처기업 ‘위즈 도메인’에서 미국 지사를 맡아 현재까지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워싱턴에 있는 아이비엠(IBM)에 이르기까지 북미에 위치한 세계적 기업들을 상대로 국제적 세일즈 경험을 쌓았다. 20세기가 배출한 최고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를 통해 기독교 진리를 깊이 깨달은 후 세상에 물든 교회에 떨어진 폭탄으로 일컬어지는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부흥과개혁사)를 탈고 했다.

그 후 책 읽기 노하우를 정리한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세상과 교회 읽기 시리즈1,2』(부흥과개혁사)을 출간했다. 급변하는 21세기 속에서 복음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책을 쓰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는 옥성호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목사의 장남이기도 하다. (제14호 ?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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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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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슬람철학

 

알 파라비(950 사망)는 철학과 이슬람의 계시가 하나라고 주장했고 이 세계는 하느님이 思考를 통해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이븐 시나(1037 사망)는 하느님은 제일원인이며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지식 속에 본질적으로 선재한다고 했다. 그는 알-가잘리의 비판 을 받았다. 이 세상의 것들이 태초부터 하느님의 지식 속에 본질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의 영원성을 전제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불멸성 부정한 것도 비판

 

철학적 지식과 신적 계시가 일치한다는 사상

 

이븐 루쉬드(1198 사망, 서구에는 아베로에스로 알려짐)는 철학은 예언자가 전한 진리를 세련된 형태로 설명해야 하며, 인간은 각자 자신이 지닌 이해력에 따라 이 방법, 혹은 저 방법이든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의 진리'라고 잘못 번역되어 유명해지고, 그로 인해 비판받았다.

 

그는 물질에는 시작이 없으며 창조는 매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인간존재의 목적은 물질적 이성이 능동적 제일 이성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서, 앞서가는 정신들은 이렇게 불멸성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사회학자라 불리는 이븐 할둔(1406 사망)은 아사비야(무리의 혼, 공공의 호라기, 혹은 집단정신) 개념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사회,심리학적 요소로, 이것이 종교적 열정과 결합되면 한 민족으로 하여금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학과 의학

 

그리스 유산을 번역, 재구성, 확장하여 근대적 정밀과학의 초석을 놓았다. 아비센나의 의학서는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사용되었다. 수많은 과학용어, 별자리 이름, 수학용어 들을 정립했으며, 광학, 기하학도 이슬람의 유산이다.

 

신비주의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논리적 입장보다는 직접적, 현실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다섯기둥의 실천과 종교의식의 거행, 예배의식과 일상생활에서 알라의 '약속 및 위협'을 통해 알라의 현존을 신비적으로 체험하는 것, 알라를 진정으로 믿는 인간의 삶과 인격 속에서 이슬람의 생명력과 현실성을 확신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인격적, 감정적 체험의 욕구룰 반영한다.

 

초기 신비주의자들

초기의 신비주의자들은 이슬람이 시리아로 확산될 무렵 출현했다. 신약의 영향을 받았으며, 초기 신비주의자들은 금욕주의적 측면이 강했다. 수피 Sufi(수프, 양모)란 양털로 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는 금욕적 성격의 운동이었음을 반증하는 명칭이다. 수피들은 8세기에 출현했는데, 지옥의 공포에 대한 영향으로 참회, 금욕의 기풍을 진작시켰다. 중심 개념은 나프스(저급한 영혼)와 끊임없이 씨름하는 지하드(聖戰)였다. 이 나프스와의 투장은 가난, 단식, 침묵, 지속적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일일이 또 끊임없이 통제하는 기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과학으로 연마되어 개인의 삶 전체를 완전한 이흘라스(순수한 헌신)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체계적 명상을 실천했으며, 금욕주의는 메소포타미아, 이란 동부 호라산 지역에서 발전했다. 동부지방 최초의 금욕주의자는 이브라힘 이븐 아드함(777년 사망)이다. 그는 종교적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타와쿨)라고 믿었다.

 

청빈주의도 중심주제였다. 파크르(가난)에 대해 "나의 가난은 나의 자랑이다."(파크리 파흐리) 라고하면서 지상적인 어떤 것에 대한 소유도 멀리할 것을 요구했다. 후대에는 이 타와쿨, 파크르 모두 내면화된다. "가난이 완벽해지면 곧 하느님이다."라는 관념이었다. 따라서 파크르는 모든 좋은 것을 포기하는 의미로, 더 나아가 저승에 대한 바람과 희망을 포기하는 의미가 되었다. 절대적 가난 속에 있는 피조물은 그의 모든 것이 되어주는 창조주의 영원한 풍요로움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신비주의자들은 명예와 칭송에 대한 애착도 부정했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신경 쓴다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리다(만족), 즉 무엇이 주어지든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 되었다.

 

수피즘은 쿠란에 근거하지만 철학적 면에서는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 조직적 면에서는 기독교 수도원 제도의 영향을 받았다. 정기적 명상과 철야기도, 금욕적 생활 하다가 12세기에는 독특한 음악과 의식 갖춘 공동의 종교의식을 행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이들의 관심은 현세에서 알라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무슬림 둘-눈 알-미스리 Dhul-Nun al-Misri(859 사망)의 영향도 컸다. 그는 "이집트에서 온 어부"라 불렸는데, 인간은 신비적 합일에 의한 결혼으로 알라에게 먹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스리와 추종자 수피들은 영혼이 알라에게 먹히기 위한 준비단계를 상정했다. 수피는 진리로 향하는 길을 가는 순례자이다. 회개,금욕,자제,가난,인내,알라에 대한 신뢰,만족의 단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진리와 지식의 초월적 영역에 도달하면 알라의 자비를 확신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도취의 체험을 한다.

 

사랑의 신비주의

바스라의 라비아(801년 사망)로 대표된다. 그는 물동이와 횃불을 들고, 사람들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나 천국에 대한 희망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기도하도록, 지옥에는 물을 붓고, 천국에는 불을 질르겠다고 선포했다. 즉 지옥의 형벌이나 낙원의 기쁨과 무관한 절대적 사랑을 추구한 것이다. 라비아 사후 1세기 반 경과하며 사랑의 이론 더욱 정교화되고 확대되었다.

 

다양한 신비주의자들

 

바그다드의 심리학자 무하시비(857년 사망)는 냉철하게 자신의 영혼(무하시바)을 탐색했고, 하라즈(896년 사망)는 신비주의적 신앙고백으로 "오직 하느님만이 ''라고 말할 권리를 지니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포괄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후기의 타우히드(하느님의 유일성 고백), "하느님 외에는 달리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말의 기초를 닦았다. -(859년 사망)은 마리파(그노시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를 언급했고, 자연을 하느님의 놀라운 활동을 증거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피조세계의 가치를 부여한 최초의 수피였다. 바예지드 비스타미(874년 사망)는 페르시아 출신으로 수브하니(나에게 찬미를, 나의 위엄은 얼마나 위대한가!)를 외쳤다.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결별한 인간의 神化를 표현한 것인데 인도 베단타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브라흐만과의 합일에 이르기까지 아트만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적인 모든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한편 자신이 체험한 황홀경을 묘사함에 있어 천상으로의 여행이라는 상징을 최초로 사용했고, 파나를 향한 갈구, 자신의 체험끝의 알 수 없는 실망감을 시적 언어로 그려냈다. 여기에서 파나는 우선 윤리적 개념이다. 즉 인간적 요소가 점차 소멸하고 영성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윤회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아니다. 즉 니르바나와 무관하다. 오히려 자신이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피조물의 노력과 관련된다. 바그다드의 주나이드(910년 사망)는 정신의 신비주의를 주창하여 이란과 후기 수피주의, 특히 마그립(북아프리카) 지역의 수피 전통에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불교의 영향으로 무신론적 신비주의도 존재했다. 이런 입장은 자아 헌신이나 진정한 존재에의 완전한 몰두를 궁극의 목표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보수적 무슬림들은 무신론적 신비주의자들 zindig 과 극단적 수피들 ecstatics 까지 이단으로 취급하여 박해했다.

 

-할라즈 al-Hallaj

페르시아의 수피로 922년 체포되어 "나는 진리이다" al-Haqq 라고 외치며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알라와의 신비적 합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하느님과 자신 사이의 베일 거두어주기를 청했다. '키탑 앗-타와신'이라는 시에서 등잔불에 자신을 던지는 나방의 비유를 구사했다. 그는 드디어 "나는 신이다, 나는 진리(하크)이다."라고 외쳤다. 할라즈의 죽음은 主意主義的 신비주의라 할 수 있는 1기 고전적 수피주의 시기를 마감한 사건이었다. 그후 온건한 수피들은 다음 2세기동안 수피의 입장이 쿠란과 하디스에 근거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정통주의자들과 타협을 추구하며 수피즘을 체계화했다.

 

 

후기

 

잘랄 알-딘 루미 Jalal al-Din Rum는 쿠란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 그는 알라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생각했고, 어떤 종교이든 근본적 문제는 종교적 체험이라고 확신했다.

 

-가잘리 al-Ghazali

 

신비주의자들이 내재성과 편재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정통주의자들이 알라의 초월성 전능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상반되므로 절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것을 대표한 사람은 알-가잘리이다.

 

무이 알-Muhyi al-Din(종교부흥가)이라고 불리우기도 한 알-가잘리는 페르시아에서 1058년 출생하여 샤피 학파의 법학을 공부했고, -아샤리를 추종하는 이맘의 지도 아래 신학을 공부했다. 아샤리의 사상이 지배적인 니잠이야 Nizamiyah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4년간의 강의 중 정신적 위기 맞아 회의주의를 거쳐 수피즘에 빠져들었다. 그후 대학을 떠나 시리아로 가서 2년간 명상과 기도를 했으며, 정통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수피 신비주의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헸다.

 

-가잘리는 무함메드가 받은 계시에 근거하고 있는 한 법과 이성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성과 역사, 실천의 용어로 표현할 수 없으며 오직 시적 상징적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통찰력의 타당성도 주장했다. [-문키드 민 앗-달랄](과오로부터의 구원자)은 철학, 스콜라학, 바티니야 등 당대 신학사조와의 정신적 투쟁이었으며, [이흐야 울룸 앗-](종교학문의 부흥)은 하느님 보시기에 바람직한 삶울 제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절대복종(이슬람)과 이만(신앙) 외에도 이흐산(하느님을 대면하듯이 그분께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고, 극히 비종교적 행위에 몰두할 때도 하느님께서 항상 자신 앞에 계시다는 느낌을 가져야 함을 주장했다. 마지막 40장은 죽음을 맞이하는 구도자의 자세에 대해 가르침이다. 한편 [미슈카트 알-안와르](빛을 위한 벽감)은 기존 수피주의에는 다루지 않았던 이슈라크()의 신비주의를 표방했다. -가잘리의 빛의 신비주의는 1191년에 처형당한 수흐라와르디에 의해 명료화되었다. 그것은 영혼이 자신의 망명지인 서방 물질세계로부터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진 동방의 정신세계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슬람사상의 부흥]에서는 우주는 영원한게 아니라 알라의 창조적 의지를 통해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인간과 창조주, 인간이 사는 세상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체험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논리적 이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겸손한 영혼은 쿠란의 상세한 해석이나 신학을 몰라도 충분히 종교적일 수 있다고 했고, 수피들의 자기 훈련과 명상의 방법이 적절히 수행되면 대단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했다. 다섯가지 기둥도 올바른 정신상태와 올바른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서 준수되어야만 하며, 그 때 비로소 최후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다. 그는 쉬아의 비의 사상과 철학자들의 합리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순니 주류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의 사상은 지성우월주의와 보수학풍에데 비판을 담고 있었고 주관적 종교체험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종교에 대한 지식 일므 ilm 과 실천적 행동 amal 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지식과 정서, 행동의 인과적 상호작용 주장한 것이다. 이는 순니의 형식주의를 공격함과 동시에 수피적 영적 상태가 이단으로 향하는 것을 방지했다. 알 가잘리에 의해 수피 사상은 순니 신학의 공인을 받게 되었다.

 

수피교단(타리카)

 

수피즘의 교단은 압둘 카디르 알-질라니(1166 사망)와 더불어 시작했다. 그는 한발리파 설교가로 그의 제자들이 형제단을 조직했다. 공식적 이슬람의 교리주의와 율법주의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한 무슬림들이 갈구하던 감성적 종교성이 수피교단으로부터 얻어졌다. 수피 교단은 공동예배, 음악행사를 실천했으며 엄격한 스승(피르) 제자(무리드) 관계를 특징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디크르 전통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일정한 양식의 말을 정기적으로 수천 번씩 반복하는 영적 기술이었다. 예를 들면 '알라'라는 단어나 신앙고백문, 주에대한 찬미, 주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이다. 스승의 의무는 제자에게 그의 영적 수준에 적합한 디크르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성한 명칭을 수천번씩 반복하는 경우 심리적으로, 심한 경우 생리적으로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수피 교단의 종교적 실천은 대중운동으로 성장했다. 대중은 교단 창시지의 기일-성인의 영혼이 하느님과 하나 된 '결혼 기념일'-에 열리는 축제(우르스)에 참여했다.

 

수많은 교단이 압둘 카디르 질라니를 기원으로 하는 카디리야 교단을 모형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카다리야 교단은 현재도 가장 많은 지역에 분포한다. 그 창시자는 49명의 아들을 두었다는 점에서 금욕주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라 쉬코흐(1659년에 처형) 는 무갈제국의 후계자로 카다리야 단원이었다. 그는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이슬람과 힌두교의 만남을 제시했다.

 

리파이야 교단의 창시자는 아흐마드 알-리파이(1183년 사망)이다. 이 교단은 디크르를 큰 소리로 외치는교단이어서 '괴성을 지르는 더비쉬들'로 알려져 있다. 자해행위와 기괴한 기적행위를 주로 실천했다.

 

수흐라와르디야 교단은 정치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했고, 낙슈반디야 교단은 디크르를 침묵 속에 행했다. 쿠브라위야 교단의 창시자 는 나즈무딘 쿠브라(1220/21 사망)로 수피들이 수행 중 체험하는 색깔에 관한 심리학적 해석을 시도했다. 메블레비야 교단은 잘라루딘 루미(1273 사망)의 아들이 조직하여 오스만 제국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활동한 교단이다. 회전무 더비쉬로 알려져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음악적 디크르였다. 하지만 체제순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도시민, 중상층을 주 추종자들로 삼았다. 벡타쉬야 교단은 쉬아적 요소를 수용했는데 오스만 정예군(예니체리)의 종교적 대들보 역할을 했다. 이 교단은 단순하나 강렬한 음률적 시를 특기로 했고 회합에 여성들의 참여를 허락했다. 치슈티야 교단은 무이누디 치슈티(1236 사망)가 창시했는데 현재 인도에서 가장 활동적 교단 중 하나로 음악과 시에 뛰어나다.

 

이처럼 다양한 수피 교단들은 이슬람 지역 변두리에서 이루어진 개종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13세기의 수피주의는 몽골 침략과 그로 인한 재난에도 불구하고 수피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후기 수피주의

 

후기 수피즘의 최고의 거장은 스페인 태생의 이븐 아라비(1240 사망)이다. 그는 메카에서 영감 얻어 [푸투하트 알-마키야](메카의 계시)를 저술했다. 그는 와흐다트 알-우즈드(존재의 융합) 개념(본인이 직접 사용한 용어는 아님)으로 유명하다. 그를 범신론자로 보는 경향도 있었지만 아라비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의심한 적이 없다. 하느님의 본질은 단일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숨겨진 보물이었으니, 알려지기를 원했느니라. 그래서 이 세상을 창조했느니라.", "우리 자신은 하느님을 묘사하는 속성이며,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존재가 객체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하느님이 필요한 반면, 하느님에게는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

 

신비주의의 체계화

 

잘라루딘 루미(1207-사망연도 불명)는 신비주의 신학자였던 아버지 바하우딘 왈라드 사망 후 아버지의 한 제자를 통해 신비주의 전통에 입문했다. 그후 1244년 동년배의 더비쉬 샴수딘 만나 신비적 사랑을 체험했다. 그러나 샴수딘은 루미와의 관계를 시기한 루미의 측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후 금은세공가 살라후딘 자르쿠브(1258 사망)과의 우정을 나눴고, 제자 후사무딘 첼레비(1284 사망)과 교류했다. 그는 첼레비의 요청으로 26,000 소절에 달하는 신비적이고 교훈적인 이행시 [마트나위]를 남겼는데, 13세기 모든 신비적 관념과 사상 총망라한, 예언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신비주의 시들이었다.

 

수피주의의 특징

 

수피주의는 쉬아파와는 달리 순니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았고,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수피즘은 순니 신앙의 엄격함과 울라마들의 냉담한 율법주의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신의 계율을 준수하는데 소홀함을 조장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셀주크조와 오스만 제국 통치 아래서는 수피들의 반란이 있기도 했다.

 

쉬아의 분파

 

 쉬아파 the Shiites

   

657년 시핀 전투는 이슬람 교리 발전의 출발점이자 여러 종파 출현의 계기였다. Shia"알리 추종자의 무리"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무함메드의 직계 자손만이 합법적 칼리프이며 이슬람의 최고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입장에서 출발했으나, 알라는 알리와 그 자손을 후원하며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어서 언젠가는 쉬아파를 승리로 이끌 메시야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또한 알리에게 초자연적 지위를 부여했다. 쉬아파의 교리는 알라와 무함마드와 그의 가르침, 쿠란이 창조되지 않았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쿠란의 오류없는 해설자로서의 이맘의 존재를 믿었다. 쉬아파는 알리에 반대하던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을 지금도 금요예배 의식에서 저주하고 있다. 쉬아파는 우마이야조에 대항한 압바스조의 반란을 지원했지만 압바스조는 쉬아파를 우대해주지 않았으므로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6대 이맘 Jafar al-Sadiq 시기에는 이맘들은 법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순결성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스 nass의 원칙에 입각해 선임 이맘이 다음 이맘을 임명했다. 한편 일름 ilm의 원칙은 권력을 행사하고 규율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지식이었다. 쉬아파에는 메시야 기대가 있다. 이맘 가운데 한 사람이 알라의 명으로 메시야 mahdi로 출현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만큼 이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쉬아파는 박해나 탄압에 대한 taqiyah(신앙을 감추는 행위)를 인정하며, 순니파와의 적대관계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동조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쿠란의 영원성을 믿지 않으나 자유의지는 인정했다. 또한 알라는 정당하며 인간은 오직 자신의 행위에만 책임지면 된다고 믿었다.

 

자이드파 the Zaidites

 

순니파와 가장 비슷한 입장이다. 나스의 원칙이 초자연적 의미 지닌다는 사실을 부인했고,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가 칼리프로 선출 된 것 당연한 처사였다고 주장햇다. 무함마드에 의한 알리의 후계자 지명을 부정하고, 이맘위는 상의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알리가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맘위의 세습권과 이맘의 완전무결성을 부인했다.

 

12이맘파 the Twelvers

 

쉬아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파이다. 12대 이맘 무함메드 알-문타자르 Muhannad al-Muntazar에서 유래했다. -문타자르는 878년 다섯 살 때 바그다드의 강 상류의 사마라 Samarra의 모스크에 있는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12이맘파는 '숨은 것'으로 이해하며, 마흐디로써 도아올 것이라고 믿음. 그의 대리인은 샤 shah 라고 생각한다. 12이맘파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숨은 이맘에 대한 믿음에 바탕해 있다. 그가 부재중인 동안 그의 신학적 입장은 종교학자(무즈타히드)들에 의해 해석된다고 믿는다. 12이맘파는 이즈마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스마일파 the Ismailites 또는 일곱 이맘파

현재는 온건한 집단이다. 과거에는 여러 분파를 파생시켰다. 여섯 번째 이맘의 첫째 아들 Ismail에서 유래했다. 이스마일은 폭음을 이유로 다음 이맘직을 박탈당했는데, 이를 이스마일파는 음모라고 믿는다. 이들은 이스마일은 죽은 것이 아니라 숨었으며 마흐디로 다시 나타날 것이며, 이스마일은 알라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의 근거를 찾기 위해 쿠란을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비의적 교리를 도출했다. 이스마일파는 페르시아나 기독교 및 유대교 배경을 가진 마왈리 Mawali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이들은 정통주의, 칼리프를 부정했고 산발적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에서 파생한 분파들로는 멕카를 공격하고 유혈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 콰르마트파 Qarnatians, 무슬림 통치자들을 암살한 암살단파, 11세기 알-다라지 al-Darazi가 조직한 드루즈파가 있다. 드루즈파는 파티마조의 칼리프 al-Hakim이 알라의 마지막 화신이며, 곧 마흐디로 출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쉬아파에 속한 모든 종파는 일반적으로 초대에서 3대까지의 칼리프를 거부(타바라)한다. 그 이유는 알리에게 예정된 칼리프 위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순니파와의 지속적 분열의 핵심 원인이다.

 

쉬아파 요약

 

쉬아파의 특징은 한편으로는 교의의 정착을 위해 순니파보다 더 광범위하게 철학의 범주 개념과 변증법을 필요로 한 반면, 한편으로는 이맘위에 대한 믿음과 같은 형이상학적 선결조건을 내세운 대한 다른 모든 종교공동체와 마찬가지로 매우 과민하여 피해의식 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맘에 대한 지나친 숭배와 순교자의 무덤을 성지로 받들어 순례지로 격상시킨 점은 순니파 모두에게 아직까지 반발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쉬아파는 순니파의 신조(알라의 전능성과 쿠란의 영원성)에다 진정한 신앙의 보증자로서 이맘을 세 번째 신조에 포함시켰다. 그것은 쿠란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영원하다는 두 번째 신조를 밀어내기 위함이었다. 현재 쉬아파가 중심인 국가는 이란으로 사파위조 시대(1501-1722) 이란족 절대 다수가 순니에서 쉬아로 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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