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해당되는 글 2건

반응형

성도의 올바른 신분 (Correct identity of Saints)

고린도전서 7:18-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자녀를 삼아주신 참뜻을 알게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즉 유대인이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이방인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되었을 때 야기된 신분의 문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곧 비기독교인이 기독굥ㄴ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에게 일어난 신분적 변화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우리들에게 부르심의 참뜻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불러 주셨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세상의 신분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가야하는지 아니면 어떤 자세로 기독교인이 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여 오늘의 제목은 "성도의 올바른 신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큰 깨달음으로 은혜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할례를 받은 유대인도 있었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많이 들어왔으며 자유인도 복음을 받고 교회에 들어왔으며, 종들도 복음을 받고 교회에 많이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가지 신분이 다른 분들이 신자가되어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마도 서로 무엇인가 어색한 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신분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1. 할례를 받았던지 안받았던지 동일하다는 것(18-19)

즉, 유대인으로 할례를 받았던 사람이나 이방인으로 할례를 안받은 사람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옛날 아브라함때부터 시작한 것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표로써 할례를 행했습니다.

유대인은 남자로서 출행후 8일만에 행하였으며 이방인 중에서 돈을 주고 사온 사람이나 또 개종한 사람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은 분들은 자기들은 선민이라고 우월감을 가지고 뽐내며 살아왔고, 반면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천시되어 온 경향이 있는데 이 관습이 그대로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자는 할례 받았다고 우월할 것도 없고, 할례를 못받았다고 비굴할 것도 없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2. 종이든지 자유자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20-24)

그 당시 헬라의 정부나 로마의 정부는 종의 제도를 정해왔기 때문에 종이 많았습니다. 종들이 종으로 있으면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고, 또 자유자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다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죄에서 저들의 영혼을 꼭 같이 해방시켜 받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의 종도 그리스도 안에서 심령의 자유자가 되었고 육의 자유자도 물론 심령상 자유자임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종이니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의 종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할 그리스도의 종이요, 자유자도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그리스도의 종이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물론 육의 종된 사람이 남에게 매인바 되어 육신의 불편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을 섬기는 것 뿐이라는 직업의식을 가질 때 그 삶의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요 자유자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유를 옳게 사용해 나갈때 그분은 그분대로의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 들어와 사는 사람에게는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아무리 직업이 천차만별이라 하더라도 그 삶의 목적이 즉 직업을 지키는 목적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삶기위한 것이라 할 때 각기의 삶은 다같은 의의를 가집니다. T.V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 만개의 부속품을 끼우고 주부들은 셀수도 없는 자질구레한 집안 일로 하루 수 십리를 종종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될 때 그 삶은 다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사는 일이라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할례 받은자나, 무할례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양반이나, 상놈이나, 귀족이나, 천민이나, 부자나, 가난뱅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일합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인류에게 세가지 귀중한 진리(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사람의 신분의 고하, 직업의 귀천, 계급의 차별이 각각 있지만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다 같으며 인간적으로 차별이 없으며 다 같은 형제요, 자매요, 부모요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자들은 계급을 타파하고 계급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야단하지만 그들은 입으로만 동무로서 통일했을 뿐 그것도 김일성일가에게는 동지라 부르고 사실상 그 당 조직 중에는 계급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안에 들어오면 물론 목사, 장로, 집사가 있지만 이것은 봉사직의 직분으로 구별하였을 뿐이요 인간적인 면에서나 주를 섬기는 면에서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어느 교인 한분을 상대할 때 다 존중히 여깁니다. 조금도 하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야 말로다 같은 형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분도 교회에 와서는 다 같아 집니다. 오늘 민주의 국가의 법 앞에는 만민 평등이라는 기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평등주의의 정신을 기독교는 인류에게 제시했습니다.

2) 기독교는 보잘것없는 인간을 고귀한 인간으로, 인간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가치를 높였고

②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심으로 인간의 가치를 높였고

③ 옛 인간이 새로워짐으로 인간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④ 그뿐아니라 정신과, 인격과 생활의 품위를 높여서 인간 가치를 높였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 나오면 자유인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교회에 나오면 형제, 자매님, 선생님, 권찰님, 집사님이라고 불리우니 님자 벼슬을 다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람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3) 기독교는 인간의 도리를 보여줍니다.

19절,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

23절, "너희는 값으로 산것이니 사람들의 종이되지 말라"

24절,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은 다 하나님 중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여 살라고 하는 공통적인 뜻이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는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날의 무신론적 인본주의 자들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우대를 부르짖는데 그렇게 되는 인간 속에서 나오는 본능의 작용이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서 마음대로의 향락적 죄와 기타 결과적으로 인도주의에서 짐승주의로 전락될 것입니다. 오직 인간은 먼저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영광을 전제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데서 인간의 도리가 바로 수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인간의 도리가 전부 명시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고 안식일을 잘 지켜 하나님께 예배 드리라는 계명들로써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다음은 인간을 향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① 부모를 공경하고

②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③ 형제를 조금도 해하지 말고

④ 살인, 간음, 도적, 거짓증거, 탐내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듯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들의 자기 도리가 무엇인가를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교훈을 잘 지키고 살때 개인이나 국가나 온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아름답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진리의 교훈대로 만족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성도입니다. 성도란 하늘나라 즉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대로 행해야 하고,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기에 고난도 함께 받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과 같이 우리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은 위치에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올바른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스런 찬양과 설교를 원하시면
유튜브 미션스쿨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션스쿨 바로가기

 

직장을 다니면서 투잡(알바/부업)으로 월급 많큼 수익을 얻고 싶으시다면  

아래 접속하셔서 상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재택부업회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제목 : 낭비한 죄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영화 ‘빠삐용’은 앙리 살리에르라는 사람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실화 바탕의 영화입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기도한 이 작품은 ‘평론가들이 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1편’에도 선정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명장면이 나옵니다.
탈출이 불가능한 가이아나의 섬에 갇힌 빠삐용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는 꿈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나 심판을 받습니다. 빠삐용은 먼저 그에게 자신은 억울하게 잡혀 왔다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 올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살인, 강도, 절도,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너는 불법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생을 낭비한 죄, 그것이 바로 너의 죄목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큰 죄이지만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충성된 일꾼은 주인이 준 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주인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맡은 것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 받은 것들을 충성되고 지혜롭게 잘 사용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큐티/김장환목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