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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넷째주일오전예배대표기도문 
 

주님을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부족한 입술이지만 입을 열어 주님의 성호를 찬양하게 하시고, 

세상욕심에 가득했던 우리의 마음을 오늘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영광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어 

주님의 복된 날에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하시니 영광돌리나이다. 

아직도 어둠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사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적당한 양심으로 살아오며 저희가 소유한 것으로 보장을 삼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이 출세해야만 행복을 느끼는 주님 자녀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기를 힘쓰며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갖게 하옵소서. 

저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의 무능함이나 연약함을 내세워 게을러지지 않게 하시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열매 맺게 하심을 기대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주님을 위하여 더욱 충성하며 저희 모든 것을 

다스려 헌신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적인 전도생활이 계획있 게 진행되어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전도의 대상을 만나게 하시고, 

한사람에 대한 관심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 교회를 이끄시는 주님, 

이 지역에 주님의 뜻과 경륜이 계셔서 이 교회를 세워주신 줄 믿사오니,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사랑이 더욱 뜨거워지고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생명을 살리는 데 부지런한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하나님 앞에 저희들이 섰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목사님을 통해 들을 때에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권세 있는 말씀이 저희 모두에게 주님사랑 받으며, 주님 충성에 임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찬양을 드리거나 예물을 드릴 때에도 정결한 마음으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주님,교회위에 계신 주님의 일을 위해 수고하시는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목회자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예배를 돕는 손길들도 기억하시고,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모든 목회자분들의 고백이 되게 하나님 붙잡아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여러 가지 질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성도 형제자매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일일이 다 고하지는 못하지만 저희가 아는 대로 몸으로 마음으로 병들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셔서, 몸의 약함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료의 손길을 베푸사 질병이 점점 호전되어 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오늘예배가 저희 성도 모두가 여러 통로를 통해 갖게 되는 교제 가운데서 

귀중한 말씀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서로 깊은 은혜 나누는 시간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허락하옵시고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 하옵시고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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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예배 대표기도문 (Christmas prayer)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사망과 어둠의 그늘에 눌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경배, 영광과 존귀를 올립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평화와 승리를 주시옵소서
어둠이 땅을 덮을 때,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 울 때에 영광의 빛을 오신 주님!
주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시고, 생명으로 오시어서 저희 같은 죄인을
짊어지심에 저희를 추하고 죄악 속에 구원하여 주시었는데
아직도 흑암에서 깨닫지 못하고 헤메이는 영혼들이 있나이다.
이 백성 가운데 오셔서 불의의 횡포와 무력과 오만함을 알게 하시고,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에게 오신 주님, 영원히 함께 동해하여 주시므로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기쁨, 나의 생명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또한 흑암을 비추는 생명의 빛이심을 고백하게 하시옵소서.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오신 주님!
우리 마음과 가정, 교회와 사회를 참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시므온이 주의 구원을 보고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찬송했듯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어 이 땅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신
주님을 만방에 알리고 찬송하며 선포하게 하옵소서.
요셉과 마리아의 찬미와 순종과 믿음을 저희들도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오신 이 날, 구원의 날이요 생명의 날인 이 날, 이 기쁜 소식이
특별히 가난한 자와 병든 자,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전파되게 하시옵고, 저들에게 구원의 소식, 평화의 소식,
영원한 소망의 소식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오신 이 날은 바로 구원이 선포된 날이요 생명의 날이요
평화의 날이며 암흑이 사라진 복된 날인줄 믿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기뻐하게 하시고 모든 만민이 찬송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나이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처럼 진실하고 값진 정성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받아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여 감사가
강물같이 흘러넘치는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찬양으로 영광돌리는 성가대 위에도 동일한 은혜를 주시옵소서.
천군 천사의 찬송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찬양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맞아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주의 영광과 크신 이름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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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물을 창조하신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오늘 이 시간 부활의 첫 열매로서 부활의 근거가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일 아침 무덤에 계신 주님을 만나러 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인들처럼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해 주옵소서.

 

 

부활의 영광을 알고 있건만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죄와 어두움의 궈넷를 이기지 못해

 

 

죄를 범했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에게 부할의 생명을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옵소서.

 

  

 

 

무덤 문을 여시고 사망 권세를이기신 주님, 우리의 소망을 주님께 두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연약하게 하는 사탄의 권세 앞에 두려워 떨지 않게 하시고,

 

 

죄가 가져오는 유혹 앞에 넘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자신을 쳐서 이기고 죄를 멀리하며

 

 

어두움의 세력 앞에 십자가의 군사로 가력히 맞서게 하소서.

 

 

때로는 주변의 복잡한 정세로 인해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고,

 

 

악한 사람들이 가하는 공격 앞에 무기력하기도 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 분노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모든 염려를 주님 앞에 맡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심을 잊지 않게 허옵소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리지 않고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이유는 우리 믿음이 작은 탓인 줄 압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큰 믿음을 주옵소서.

 

 

어떤 상황에도 절망을 이기신 주님을 붙잡게 하시고,

 

 

포기하여 모든 것을 얻으신 주님처럼 우리도 희망의 찬가를 부르게 하옵소서.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

 

 

절망적인 상황에 둘러싸여 주눅들어 있는 우리를 굽어 살피소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시지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자꾸 환경을 바라보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환경에만 고정된 우리 눈을 들어 생명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비록 죽을지라도 다신 산다는 확신을 갖게 하시고, 이 세상 마지막 날에

 

 

하늘 아버지와의 영원한 교제에 들어갈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잠시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현재의 불편한 여건에 낙담하지 않고 내일 새로워질 환경을 바라보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주님, 시들어가는 영혼이 회복되고, 상한 마음이 고침을 받으며 ,

 

 

깨어진 관계가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키셨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통스러운 여건들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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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전도서를 중심으로-

 

법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개개인은 행복추구권이 있으며, 누구나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목표를 세우고 살아간다. 개인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양하며, 행복을 느끼는 조건도 다양하다.

 

자본주의적 현대사회의 행복의 중심 조건은 돈, 쾌락, 권력, 명예로 특징지워지며, 그 밑으로 파생되는 행복의 조건은 경제적 여유로움을 통해서 기반으로 얻을 수 있는 상대적 우월감, 욕망의 분출, 사회적 성공, 자아실현 등이다.

특히 성경에서 죄악으로 규정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통해서 쾌락과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왜나하면 이러한 죄악과 탐욕과 욕망은 자극적이고 큰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정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A)먼저 죄, 부패, 욕망, 탐욕, 사망을 품고 있는 세상은 허무하다 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은 허무하다. 욕망과 부패와 탐욕의 결국은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허무주의는 아니다.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가 없는 삶에 한정된다. 즉 성경은 세상에 대해 조건적 허무주의를 표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하나님이 없는, 또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욕망을 목표로 하는 모든 수고와 행위들은 허무한 것이다.

각자가 야망을 꿈을 가지고 삶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은 허무한 것으로 결론되어 진다. 헛되고 헛되며 너무나 헛된 것들이다.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3 사람이 해 아래서(하나님이 없는 죄 아래의 세상을 의미)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2:1 내가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2)인간은 유한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노력과 추구하는 것은 허무하다.

내가 지금은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결국 서서히 약화되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가? 인간의 생명을 저 광대하고 유구한 자연과 비교해 보라.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자연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으며 마치 자연의 주인인척 자만해 하지만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고, 저 자연은 훨씬 오랫동안 지속된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관찰하여 학문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자연이 인간 역사를 보고 기록한 진정한 관찰자인걸 알고 있는가? 자연만이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부분적으로 관찰하였지만, 자연은 인간 역사의 전체를 관찰하여 왔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과 우주의 삼라만상에 비교하면 한 줌의 재와 같다.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3)인간의 욕망은 채울 수 없고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허무하다.

오늘 그대에게 최상의 행복을 주었던 조건들이 내일 가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어쩌면 마약처럼 더욱 자극적이고 강한 행복의 조건들을 추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은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그대에게 주는 행복의 쾌감은 너무나 짧고 허무와 공허는 너무나 길게 지속된다.

인간의 행복의 조건은 늘 상대적이다. 상대방과 비교하여 우위를 가질 때만이 행복을 느낀다(우월적 행복감). 내가 가지고 있거나 누리는 조건들이 좋을 지라도, 상대와 비교하여, 상대보다 못하고, 상대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 내가 가진 조건들이 나쁘지 않지만 상대적 빈곤을 느끼기에 공허하고 허무하다.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2:1 내가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4)인간이 추구하는 학문과 지식의 결론은 인간이 허무하다는 것으로 도달한다.

왜 허무로 결론되어질까? 파면 팔수록 더 어려워지고, 연구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지만 결국 인식론적 한계를 느끼고 더욱 절망하게 된다.

인간의 학문과 지식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이치를 다루는 것이기에, 결국 하나님의 시각으로 결론되어 진다. 인간은 학문과 지식발전을 통해 신으로부터 도피하여 인간의 자유와 능력을 갈망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능력은 더욱 제한되어진다.

인간의 학문과 지식은 자연과 우주 앞에 인간의 무능과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인식론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학문을 하는 자들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우주와 이 세상에 대해 거만한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학문과 지식이 만능이며 신적 능력에 도전하여 결국 이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만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B)하나님이 없는 세상, 죄 아래의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허무하다. 그러나 성경은 새로운 낙관적 희망을 제시하며, 참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1)이 세상은 허무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낙관적 희망이 보인다.

성경의 낙관주의는 죄 아래 세상의 허무주의를 뼈저리게 느끼고 통탄할 때 비로소 다가오며 느낄 수 있다. 성경의 낙관주의는 허무주의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영구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신적 목적을 품고 있으며,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신의 의지와 신의 목적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물질적 세계는 유한하고, 영적 세계만이 영원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플라톤적 이원론)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물질과 영적 세계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 아래 있을 때 영원함을 갖는다고 말한다(예를 들면 주님의 재림시에 있을 새로운 부활의 몸과 이 세상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것이 충족되어질 때 행복을 느낀다.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부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부인하면서, 무신론적 물질적 세계관을 갖거나, 또 다른 일부는 타종교의 신앙으로 방향을 돌리고 만족을 추구한다.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2)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무한경쟁을 통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싸움을 할 때 공허함을 느끼지만 좋은 일, 선한 일을 할 때에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남이 모르게 선을 행하여 보라. 그대에게 진정한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 올 것이다.

3: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하나님은 각자에게 몫을 할당해 주셨다(분복). 이러한 자기의 분복에 만족해하는 자는 행복하다.

어떤 이는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어떤 이는 더 유명해 질 수 있듯이 각자의 분복 즉 할당된 양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남이 없는 것이 나에게 있을 수 있으며, 나에게 없는 것이 남에게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각자의 고유의 몫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서는 안되는 고유의 영역이다.

각자 개인은 하나님이 주신 분복-할당된 몫-에 만족해 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비교하여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기에, 마땅히 이를 지양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각자의 이러한 분복을 누리고 수고해서 만족해야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 몫에 대하여 자기만족을 해야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분복-할당된 몫-을 넘어서는 과도한 욕심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5:18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4)인간은 인식론적 한계, 지식과 학문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학문과 지식의 발달과 연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학문과 지식을 연구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짜피 인간의 학문과 지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결국 학문과 지식의 결국은 하나님을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학문과 지식을 통해 인간이 만드는 유토피아적 세상을 세울 수 있다고 낙관적 희망을 갖지만, 세심히 보면 아직 많은 문제가 남아있으며, 그러기에 더욱 겸허해지는 자세를 배워야 행복해 질 수 있다(20세기 초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낙관적 유토피아를 꿈꿔왔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더 많은 식민지가 건설되어 생명을 유린하고 자본을 약탈하였으며, 영토확장과 정치적 충돌은 과학기술로 말미암아 가속화되었고, 이로 인한 1,2차 세계대전은 오히려 인간의 잔인과 무지, 파괴적 본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8:17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5)참다운 행복은 수많은 성적 파트너와 성적 탐욕을 추구하지 않고 부부와의 온전한 관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할당된 몫은 배우자이지 또 다른 성적 파트너가 될 수는 없다. 세상의 무료함에서 일탈하고자 성적 탐닉에 빠져 수 많은 파트너와 쾌락을 즐기는 것은 결코 행복을 줄 수 없으며 육신의 질병과 심한 심적 공허함을 더할 뿐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또 다른 파트너와 모텔에서 광난의 시간을 보냈는가? 그러나 마음은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6)참다운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들을 지킬 때 온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은 인간을 결박하고 옥죄어서 자유를 빼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감시하는 분이 아니며, 오히려 죄악과 사망과 욕망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원하신다.

하지만 세상의 죄악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신의 속박으로 부터 해방을 누리기 위해 신을 부정하며, 신으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을 가지만 결국 그들이 얻는 것은 죄악의 쇠사슬로 묶여 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박당하고 구속당할 때 찾아오며,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는 오히려 절망과 허무, 공허함을 더 할 뿐이다.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7)참다운 행복은 종말론적 심판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종말론적 심판을 부정하는 자들은 인간은 죽으면 끝이며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물질론적 세계관이다. 인간은 물질이기에 인간이 죽으면 물질은 사라지며 더 이상 아무것도 없고, 아무 것도 느낄수 없는 의 세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만의 존재가 아니며 비물질적 존재이기도 하다. 비물질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간의 물질부분(육체)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영구히 지속된다. 영구한 비물질이 존재한다는 세계관에는 선과 악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이 있다. 종말의 심판을 준비하는 자는 마치 회계(accounting 會計)하는 자처럼 철저하고 꼼꼼하게 자신의 삶을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음 안에서 철저히 준비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상의 종말은 파괴가 아니라 새롭고 완전하게 되는 회복이며, 그러한 회복에 앞서 먼저 선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종말론적 심판의 의미는 하나님 만이 절대기준이며, 이러한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은 공정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대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갈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심판을 부인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고 싶어하지만 안타깝게도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결론

인간의 행복은 허무주의와 낙관주의의 긴장관계에 있다. 인생사는 허무하면서도 낙관적이다.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 허무한 것이 인생사이지만, 어떻게 보면 희망과 낙관이 있다. 행복은 세상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와 행동, 그리고 얻어지는 부와 명예와 탐욕과 쾌락은 너무나 공허하며 허무하다.

진정한 행복은 이처럼 죄 아래의 세상은 허무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하나님 아래서 주어진 각자의 몫을 발견하고 각자 수고하며 그 결과물에 만족하고 누릴 때 찾아온다. 각자의 분복-할당된 몫-은 절대적 가치를 지녔기에 타인과 절대 비교불가이다. 어떤 사람은 죄악 가운데서 부를 누리지만 허무한 인생을 살고, 어떤 이는 하나님 안에서 가난하지만 참다운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과연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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