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1절: 인사말, 발신자와 수신자

1장 1절: 발신자, 야고보    

1. 우리는 이미 이 편지의 저자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야고보서를 읽으며 처음에 제일 놀라게 되는 지점이 바로 야고보가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생전에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붙잡아 말리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막 3:21). 사도 요한은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일러라”라고 분명히 밝힙니다(요 7:5).

​2. 야고보는 예수님과 형제였기에 오히려 예수님을 바르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형 예수님을 새롭게 이해했으며,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새롭게 받아들인 것은 참 놀랍습니다. 야고보는 열두 제자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초대교회에서 베드로와 함께 가장 주도적인 지도자로 섬겼습니다. 그는 의심 많은 남동생에서 예수님의 추종자요, 담대한 교회의 지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놀랍게 변화시킨 것일까요?

​3.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부활의 증인들을 나열합니다(고전 15:3-8). 거기에는 야고보의 이름이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야고보는 형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이 재회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후 그는 사도들과 마리아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고, 오순절 성경 강림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4. 야고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는 형제에서 종으로, 반대하던 자에서 변호하는 자로, 소극적인 관찰자에서 열렬한 추종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야말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영접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 주는 탁월한 예시입니다. 그저 주일에 교회에 나가주는 종교인들만 가득한 한국 교회야말로 야고보처럼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 강림을 통하여 진정으로 회심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5.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이라 소개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형제였기에 자신을 “주의 형제”라고 소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 싶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소개일 것입니다. 요즘에도 유명한 사람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유명한 사람인 듯한 착각을 주고, 또 착각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만일 그가 자신을 ‘주의 형제’라고 자신을 틀림없이 사람들 앞에서 더욱 권위가 세워졌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이를 마다했습니다.

6. 이는 단지 겸손해서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진정으로 형이었던 예수님을 전혀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존귀하신 그분의 본래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감히 예수님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강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로서 마냥 친근하게 대해도 되는 분이 아니라, 말씀하시면 죽을 때까지 순종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7. 당시에 ‘주’(퀴리오스)라는 호칭은 로마 황제에게 사용했습니다. 죽은 황제는 신으로 승격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주’라는 호칭을 로마 황제 가이사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주이실 뿐 아니라 야고보의 인생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자연스레 그는 자신이 종임을 받아들입니다. 즉 그는 이제 모든 일에서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8. 종은 노예를 뜻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은 종은 자신의 생각과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오직 주인에게 절대 순종만을 바치며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섬기는 존재라고 언급합니다. 즉 종의 존재 방식은 순종과 섬김입니다. 우리를 비롯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용어는 큰 지도자나 다윗 같은 왕에게 제한적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9. 즉 종은 그리스도처럼 더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명을 부여받아 하늘의 뜻을 대언하며 사역하는 영예로운 직분입니다. 따라서 종은 섬김과 다스림의 긴장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긴장이 깨어지면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코 ‘역설의 자리’에서 ‘외식의 자리’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주는 세상적인 혜택에만 관심을 빼앗김으로써 경건의 모양만을 갖추려고 애쓰는 자들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10. 오늘도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방식과 태도를 결정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에 근거해서 형성되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부러워하는 지위나 인맥입니까?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합니까?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종의 부르심에 순복하십시오. 이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깨어진 세상을 섬기는 좁은 길을 기꺼이 걸으십시오. 
[출처] 2024년 5월 20일(월요일) 매일 맛나 / 야고보서 1장 1절: (인사말, 발신자와 수신)발신자, 야고보|작성자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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