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3장]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3~11)
복음성가 158장 ‘날마다 숨 쉬는 순간 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린도후서 1장 3절로 11절 말씀을 가지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모든 위로의 하나님”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다 그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적치유세미나’라고 마음에 상처 입은 주님의 백성들을 치료하는 그런 세미나가 있는데 가서 얘기를 나눠보면 참석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상처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상처의 기억들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 나이가 50세가 다 된 분이 3살 때, 4살 때 상처 받은 걸 기억해요. 7살 때, 8살 때 받은 상처, 다 30년, 40년 지난 상처들인데 그 상처들을 잊지 못하고 그 마음 한 구석에 갖고 있다가 그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자라날 때 부모에게 받은 상처, 또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잘해야 되겠다’ 그러한 생각을 했어요. 또 부모님들도 어린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상처받을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부모가 화났을 때 막 쏟아내는 얘기들이 아이들 마음에 그대로 다 상처로 남아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화났을 때는 정말 우리가 말을 잘 다듬어야 되겠다. 말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성장해서 믿던사람에게 배신당한 상처, 결혼생활에서 온 상처, 뭐 많은 상처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누군가 와서 이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고 치료해 줄 분이 필요한데, 세상 사람들의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치료자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께 나아올 때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을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살입니다. 자살문제입니다. 대통령 직속의 사회통합위원회 201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요 OECD국가 가운데 인구대비 지금 자살률 1위를 8년째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우울증 통계를 보니까 4년 사이에 우울증 환자가 12.4 퍼센트가 증가했고요, 특별히 젊은 층 가운데에 우울증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지금 또 하나의 사회 가운데 큰 문제는 고등학교 중퇴한 학생들이 28만 명입니다. 어디선가 지금 사회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나니까 갈 길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쉽게 타락의 길로 갑니다. 이런 많은 문제를 우리가 안고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그 마음에 가진 깊은 상처 때문에 그들은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와 방황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올 때만이 이 같은 치료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함 받을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1. 위로의 하나님
먼저 위로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할렐루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저는 성경을 묵상하다가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몰라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아시는 우리 주 하나님. 염려할 것이 없어요. 걱정할 것이 없어요. 복음성가에도 있잖아요. “내 눈물 씻어 주시는 예수 복된 예수”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어요, 걱정할 것이 없어요, 슬퍼할 것이 없어요. 사도 바울이 평생 주님 일 하는 동안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서른 살 까지는 승승장구, 정말 전도유망한 청년입니다. 좋은 가문에, 좋은 학벌에, 좋은 배경에, 그래서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에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 같은 기관인데, 그 당시 유대 나라를 통치하는 최고 기관입니다. 거기서 아주 차세대 주자로, 지도자로 뽑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을 앞세워서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그 일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를 무너뜨리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사건이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됐어요. 그때까지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었는데, 그날 이후 남은 여생을 주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보통 그가 60세를 살았다고 보는데, 처음 30년은 자기를 위해서 살았고, 나머지 30년은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 유대교 지도자들이 볼 때는 변절자입니다. 배신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 바울의 일을 얼마나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고, 계속 사람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하는 모든 일을 방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환란 가운데, 모든 절망 가운데, 사도 바울이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어요. 1장 4절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본인이 환난 당하는 것에서 긍정적으로 해석을 했어요. 이 환난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 주위에 우리처럼 고난당하는 사람, 슬픔 당하는 사람을 우리가 위로할 수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요, 우리를 대신해서 미리 고난을 다 당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가 있어요. 고린도후서 1장 5절에, 성경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나니까 주님이 주신 위로가 풍성하여서 그 위로함으로 새 힘과 용기를 얻고, 믿음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섬길 때, 때때로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믿지 않는 집에 시집 가가지고 핍박을 당하고, 제삿날 되면 늘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었지만은, 때가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고난이 변하여서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게 되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복된 가정으로 변화되는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뒤에 다가올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토요일만 되면 우리 성도님들 자제분 주례를 많이 하는데, 그 웨딩마치 딴딴따단 하면 이제 신부가 들어오잖아요. 그 웨딩마치를 들을 때마다 “아, 고난은 웨딩마치 같은 것이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다.” 그 뒤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그날 제일 아름다운 거예요. 그날 이후론 또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신부가 들어오는 모습을 신랑이 흐뭇해가지고, 어저께 그 신랑은요, 기다렸다가 맞이해야하는데 중간까지 데리고 들어오더라고요. 아직 걸어 들어올 시간이 있는데도, 버적버적 가가지고 가서, 급하긴 참 급해요. 뭐 좋아서 뭐 빨리 가서 손을 잡고 들어오는 거니까 결혼식 때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중요한 것은 고난은 그런 웨딩마치같이 우리에게 축복을 예고해주고,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의 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낙심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절망하지 마세요. 고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기적이 있습니다. 누가 와서 흔듭니까? 누가 와서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다줍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가보다.” 주님 앞에 감사하세요. 영광을 돌리세요. 그 믿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고난을 당한 사람이, 고난당한 사람을 이해해요. 병원에 누워 본 사람이, 환자의 마음을 압니다. 오래 병중에 있으면요, 사람 성격이 예민해져요. 아주 성품이 유하고 좋은 사람도, 6개월, 1년만 병실에 있다 보면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한 분이 되요. 이해해야 되요. 그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만 낸다고, 아픈데 짜증까지 낸다고. 그게 아니에요. 아프면 짜증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게 되니까, 고난을 당했을 때 고난을 당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봐야, 실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거예요.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내 잘못도 아닌데, 부도가 나가지고 연쇄반응으로 내 사업이 무너질 때 그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까? 실패의 경험들, 우리나라는 또 입시라는 게 있어가지고 참, 한번 시험 쳤다 떨어지면 재수한다고 그래가지고, 그 1년 동안 그 마음의 고통을 누가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고난당하면, 고난당한 이웃들을 기억하고 주의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일생 당하는 모든 고난을 우리 예수님이 앞서서 미리 당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히브리서 4장 15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 없으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대신 당하셨는데,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멸시받는 모습으로 주님이 고난 당하셨어요. 이사야서 53장 2절, 3절에요, 우리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사셨는가 보세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이 얼굴을 가렸다는 표현은 뭐냐 하면요, 예수님을 나환자, 문둥병자같이 취급을 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예수님이 그 모습이 상했던지, 예수님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 상한 모습은 모든 사람이 다 고개를 돌렸습니다. 온 몸이 채찍으로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져 온 몸에서 피가 흐르고, 얼굴은 부어서 멍이 들고 피멍이 들고, 머리부터 머리 면류관에서 피가 쏟아지고, 그 비참한 모습,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 그 고난을 우리를 위해 당하신 예수님.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고난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사야서 53장 4절로 5절에, 이어서 설명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일찍이 많은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끼친 헨리 나우웬이라고 하는 교수님은 예일대학교의 그 교직을 내려놓고 정신박약아 공동체에 들어가서 그들은 섬기다가 1996년 9월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상처 입은 치유 자에 대해서 책에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상처 입은 치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뭇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제자들의 배신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으며 가족들로부터 거절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이 찢겨지는 상처를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커다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받았던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원망불평하지 않고, 자학하지 않았으며, 상처받은 사람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치유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온 인류의 상처를 홀로 체험하신 그 분이 온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 받은 인생을 이해하십니다.”우리의 모든 슬픔, 아픔, 상처를 우리 주님이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시편 기자가 119편 71절에 고백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2. 고난을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감사한 것은 둘째로, 하나님께서 고난을 견디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1장 6절로 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아멘. 누구만 의지해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고난이 심했던지 죽기 직전까지 이른 사형 선고받은 모습이 되었다고 그랬어요.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너무나 고난이 심하면, “주님 좀 빨리 데려가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가 있어요. 엘리야를 보세요. 갈멜산 상에서 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멸하고 난 다음 3년 동안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고 비가 쏟아지게 만들었는데, 아합왕의 왕비인 이세벨이 “너 내일 그 사람들처럼 죽을 거다”라는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진 거예요. 그래가지고 바로 광야길 들어가서, 로뎀나무 밑에서 이런 기도를 했어요. 열왕기상 19장 4절에,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 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이제 내가 일을 다 했고, 저는 이제 피곤하고 지치고, 더 이상 무엇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거둬가 주세요. 모세도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민수기 11장 15절 보니까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이같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우리가 처했을 때, 그때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이대로 나는 그저 죽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시고 이 절망의 자리에서 저를 건져주시옵소서. 이 슬픔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내 맘에 평화와 위로함이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옵소서.”여러분, 온 몸에 암이 가득 차도요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주님이 치료해주세요. 그러나 몸에 조그마한 병이 들어와도 “아이고, 나 죽네.”하고 쓰러지면 그것이 큰 병이 되는 거예요.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주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주여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고난당한 것이 우리의 유익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할 수 있게 되고 우리의 자신의 잘못된 모든 모습을 고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믿음이 더 자라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그 심한 환란을 다 통과하고 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기 23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할렐루야. 고난을 통과한 다음에 욥이 자신의 스스로 의롭다 한 그런 영적 교만을 회개했어요. 욥기 42장 5절로 6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여러분, 고난당할 때 회개하세요. 그러면 더 큰 은혜 가운데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고난은 우리를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다 같이 보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아멘. 미국 휘트워스 대학의 종교철학 교수인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 목사님이 계신데, 아 참 이 목사님 얘기하려면 마음이 아파요. 고속도로에 가족이 차를 타고 나갔는데 역주행하는 차와 정면충돌해서 그 차에 타고 있던 아내, 장모, 자녀들을 다 잃었어요. 여러분, 이러한 충격, 이러한 고난은 보통 믿음 갖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왜 그 고속도로에 미친 사람이 뛰어 들어와서 그 차를 거꾸로 몰고 들어와서 정면 충돌해가지고 아내, 장모, 아이들이 다 한꺼번에 죽으니까 그 충격, 그 고난은 괴로워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참 위대한 분이예요.“삶이란 평탄치 않다. 그것이 본연의 모습이다. 오히려 삶은 어렵고 냉혹하고 잔인할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은 잘될 것이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구속하고 세상을 당신이 본래 의도했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지금도 신비롭게 일하고 계신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대단한 믿음이에요. 여러분,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이런 절대긍정의 믿음을 갖고 주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3.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셋째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1장 10절에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어제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건지셨고, 오늘도 건지시고, 일생 다가도록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저는요 절대긍정, 절대감사를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너무나 감사해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결국 잘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마라.” 엎드려 기도만 하면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사람들은 몰려와서 얘기를 합니다. “어휴, 큰일 났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네네” 속으로는 ‘별 일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절대로 별일 없습니다. 왜?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갑자기 뭐 큰일이 나서 뭐가 다 안 되는 것 같고 무너지는 것 같고,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잘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두운 세력이 교회를 흔든다고 하면 오히려 교회는 더 부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부정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 없습니다.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잘 될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지, 어렵다는 소문이 들어올 때마다 더 부흥을 주시고 더 우리 성도들이 잘되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시편 71편 20절에 이와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예수님은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고 난 후에 부활의 영생 그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고린도후서 4장 14절에,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도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광에서의, 저 천국에서의 새 출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환란과 핍박과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슴을 피고 주님의 그 영광의 내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뿐인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괴로움도 우리는 넉넉히 싸워 이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고난의 때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고린도후서 1장 11절에,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성도님들이 교회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 주의 종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교회를 붙드시고, 주의 종을 붙드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염려할 시간에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보세요.
베드로가 붙잡혀 사형집행 당하기 직전에 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행전 12장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옥에서 베드로를 꺼내신 것입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사형집행 하려고 보니까 베드로가 없어요. 그래서 그를 지키던 모든 그 간수들을 다 사형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와 같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십시다. 고린도후서 4장 15절에,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전신마비 장애가 와서 참 절망의 삶을 살았던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기적을 노래하는 ‘바퀴달린 성악가’로 불리는 이남현 씨. 키가 192센티미터 이구요,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의 건장한 성악을 전공하는 한 청년이었습니다. 2004년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떨어져서 수영장 벽에 목을 부딪쳐 목뼈가 부러지면서 목 아래로는 쓸 수 없는 ‘전신 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다가온 고난 앞에서 ‘하필이면 왜 저입니까? 왜 내가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합니까?’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근데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버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남현아, 너는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이야. 너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돼.” 부모님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로 다시 믿음을 갖고 자기가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고 도전해 나갔습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니 내가 찬양을 통하여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겠다.’ 전신마비가 온 장애인이 노래를 부른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제대로 복식호흡 하기는커녕 기침이 자꾸 나오고 온 몸이 경련이 나서 노래가 안돼요. 그러나 재활치료를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한참 재활치료 하고 난 다음에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옥타브를 노래를 할 수가 있어요. 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숨이 차서 한 곡을 끝까지 잘 못 부르는데도 온 몸에 힘을 다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노래하고 노래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온 몸에 장애를 갖고도 대학교, 대학원을 전공해서 졸업을 하고 이제는 여러 곳에 나가 찬양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참 귀한 분이에요. 이런 간증을 했어요. “비록 풍부한 성량이나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저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그리고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제 인생의 목표를 좌절시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선물로 주셨으며,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제 삶에 ‘감사’하며, 저를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가 먼저 흘러나옵니다. 참 신기하면서도 이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것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쉽지 않아요. 목뼈가 다쳐서 온 몸 다 마비가 돼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그런 장애인이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보면 우리들은 참 문제가 좀 있어요, 그쵸? 문제가 많다고 하진 않겠지만, 이렇게 멀쩡한 몸을 가지고 감사보다 불평이 먼저 나올 때가 많잖아요. 제가 오늘 손들어보라고 하지 않겠지만 마음속으로 회개하셔야 돼요. “주님 내가 아무 것도 아닌데 불평했습니다. 원망했습니다. 짜증냈습니다. 남 탓 했습니다.” 꼭 문제만 생기면 누구 때문에 그랬다고, 누구 때문에 그랬다고. 그 옛날에 노래에도 “그건 너” 그런 노래가 있는데 밤낮 남 애기만 하고요. 여러분, 따라하세요. “다 내 탓입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오래참고 살겠습니다.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그러면 기적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축복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은혜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감사하며 살게 하시고,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용서하며 살게 하시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잘 견디고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는데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이 계절에 주님 우리 삶 속에는 감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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