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흠없이 서기 위하여 Sunday night worship
제목 : 흠 없이 서기 위하여
말씀 : 살전3:11-13
1.아름다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참 아름다운 교회, 복된 교회.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에 불과 3주일 동안 말씀을 가르치고 세운 교회. 그런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가운데 든든히 선 교회. 믿음의 소문이 퍼진 교회. (행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리고 곧 핍박으로 데살로니가를 떠남.(행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그리고 이후로 오랫동안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함. (살전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즉 불과 3주일 가르쳤다. 물론 거기서 쫓겨나다시피 한 것이 3주일 후 곧바로는 아니라할지라도 불과 한 두 달. 그런데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바울과 주를 본받은 교회(살전1:6) 그래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가운데 든든히 선 교회.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 당연하지 않겠나? 불과 3주일. 그런데 믿음의 소문이 난 교회. 환난과 핍작을 잘 견뎌내는 교회. 그러니 얼마나 애정이 가고, 얼마나 대견하고, 얼마나 그립겠는가? 그런데 무언가 모를 특별한 사정으로 갈 수 없는 상황.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통해서 서신으로 안부를 전하여 가르치고 감사의 마음을 표함.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보기를 간절히 원한 것은 물론 인간적인 사랑과 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말씀으로 위로하고,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었다.(살전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즉 그들이 다른 어떤 것들 즉 육신의 건강이나 물질적 축복이나 세상의 명예나 뭐 이런 것들을 얻은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위에 굳게 선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에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을 주려고 가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굳게 하고 믿음으로 위로하고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성도에게, 자녀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눅10:20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요이1: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오늘은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감사와 기쁨의 안부를 전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장면.
2.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할 수 있기를 기도함(11절)
살전3: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여기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얼마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즉 데살로니가에 가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그 길을 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 이것은 이미 2:17절에서도 말씀한바 있다. 살전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개역개정 성경에는 직행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직행한다는 것은 걸림돌 없이, 장애물 없이, 신속하게, 다른 것은 생각지 않고 곧바로 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보고 싶은 열망을 말함.
이 기도는 후에 실현. 고후2: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린도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보다 2년 정도 뒤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2년 뒤에 마게도냐에 갔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이때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했을 것.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도시인데 마게도냐에 가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는 정말 사도 바울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했는지, 또 데살로니가 교회는 얼마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가운데 든든히 서있었는지 되새기며 우리 모두가 정말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든든히 서서 위로 주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자.
3.사랑이 더욱 넘치기를 기도함(12절)
살전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이미 그들은 사랑으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사랑으로 성도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수고가 있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사랑을 말한다. 그만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성숙할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즉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신자나 불신자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나, 나에게 뭔가 은혜를 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마음에 맞는 사람이나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 생각할 것은 사랑을 넘치게 한다는 것이다. 그냥 어느 한 구석에 조금 있는 게 아니라 사랑이 흘러넘치도록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랑이 흘러넘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이 조금만 있다든지, 제법 많은 정도 가지고는 진정한 사랑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자기와 관계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대로 사랑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다. 그리고 상황이 좋으면 그런대로 사랑하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랑하기 어렵게 된다. 더더구나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이 흘러넘치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마음에 들든 말든, 나를 좋아하든 말든, 교인이든 말든, 친구이든 말든, 은혜를 주었든 말든,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5:44절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물론 우리는 완전히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넘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사랑하고 그런 가운데서 함께 기쁨과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심령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우리는 좀 더 사랑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령이 역사하시고 주님이 내 심령을 사로잡아 주시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더욱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덧입어 사랑하고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자.
4.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도함.(13절)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기도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제를 발견한다. 하나는 마음을 굳게 하기를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다음은 반드시 주 예수님이 강림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때까지 우리는 흠이 없는 삶의 모습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굳게 하신다는 것은 지지하다, 고정시키다, 강하게 하다는 의미이다. 지지한다는 것은 넘어지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고정시킨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이것도 말 할 나위 없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 세월따라, 세상따라, 사람따라, 상황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 안 그러면 흔들린다. 우리는 믿음도 마음도 의지도 부족하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강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도도하게 흐르는 왜곡되고 악한 가치관에도 휩쓸리지 말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 오직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믿음과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다. 주님의 강림이 이루어져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는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목적지도 여기가 아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는 삶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현실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 올바르게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 서야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나버린다면 되는대로 살아도 되겠지만 우리는 주님 앞에 서서 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을 모습에 대하여 말씀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흠이 없다는 것은 비난할 것 없는, 질책할 것이 없는, 잘못이나 결점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결점이나 흠이나 비난거리는 세상적인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에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말한다.
우리는 무엇에 흠이 없어야 하나? 말씀에서 흠이 없어야 한다. 세상적인 가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기준에서 흠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 그래야 생명의 기쁨, 그래야 기쁨으로 주님과 만난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서로를 진정 애틋한 사랑으로 사랑하자. 누구나 사랑하자. 어렵겠지만 그러기 위해 더욱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자.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우자. 그렇게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자. 더욱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충실하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더 나아가 주님 다시 오실 때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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