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저녁설교] Sunday evening Service

제목 : 은혜에 굳게 서라

말씀 : 벧전5:12~14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베드로사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본 서신의 대필자를 소개하고 은혜에 굳게 설 것과 서로 문안 할 것을 권면한 후 축도로 마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몇가지 교훈들을 살펴보자.

1.신실한 조력자 실루아노

벧전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써서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앞의 말씀들은 베드로가 실루아노를 시켜 이 서신을 대필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늘 12절부터 14절까지만 베드로가 직접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직접 기록한 것은 본 서신이 베드로의 서신이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즉 베드로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자신이 직접 서신을 기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실루아노에게 대필케 하고 그를 통하여 편지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루아노는 실라와 동일인으로 사도행전에 자주 나오는 2차 전도여행시 바울과 함께 전도를 했던 신실한 동역자이다. 실루아노라는 이름으로는 고린도후서나 데살로니가전후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경로로 베드로를 돕고 있었는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여기서는 베드로를 도와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실라 즉 실루아노는 때론 처음에는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 있다가 지금은 베드로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무슨 일이든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곁에서 도와줄 조력자들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과 같은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고, 바울에게는 실라 디모데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뵈뵈 등의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어떤 공동체나 마찬가지다. 물론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사람이 잘해야 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잘 도와주고 협력해 주지 않으면 어떤 공동체도 바르고 힘있게 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종종 말씀드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기보고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데 이런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런 내조가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저도 물론 마찬가지다. 저의 목회사역의 반 이상은 아내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늘 고맙고 다른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도 물론 그렇다. 교회청소나 식사준비나 차량운행이나 예배위원이나 모두 너무 귀한 사역이다. 다시 말해 꼭 성가대나 교사나 구역장이나 무슨 선교회나 전도회의 임원이나 이런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 모든 일들이 교회를 세워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고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아름답게 유지하고 제 기능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구조가 아주 잘못된 것 중의 하나는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공부많이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대단한 것으로 알고 농사를 짓거나 작은 공장이나 식당이나 혹은 속된 말로 노가다 일을 하면 아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런 곳에 일하는 분들이 안계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겠나? 누군가는 청소도 해야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공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노가다도 해야 한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잠자고 타고 보고 듣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런 분들의 수고에 의하여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은 나 자신이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어떤 곳에서든지 어떤 일을 맡았든 성실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그렇게 수고하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귀히 여기자. 그래서 우리 모두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도 이루어가며 함께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은혜에 굳게 서라

벧전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서신의 대언자를 말씀한 베드로는 마지막 권면에 들어간다. 마지막 권면의 첫째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은혜가 뭐냐? 내가 지금까지 써서 보내는 것이 참된 은혜인데 바로 이 참된 은혜위에 굳게 서라는 것이다.

그러면 베드로가 써서 보낸 참된 은혜란 무엇인가? 물론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혜택들이다. 우리 생명,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물론 그 중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이 은혜이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은혜이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의 은총을 주신 것이 은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는 이 은혜란 그런 포괄적인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베드로전서에서 강조했던 내용들이다. 우리는 산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조금 힘들어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받으라. 그게 도리어 영광스러운 일이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선을 위하여 고난도 받으라.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 은혜위에 서라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중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진짜 은혜이다. 그냥 잘먹고 잘살고 만사형통하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물론 은혜이긴 하지만 그것은 온전치 못한 은혜이다. 그런 은혜에 빠지면 환난과 핍박이 오고 뭔가 일이 잘 안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하게 된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일이 잘 풀되고 알아주면 주의 일을 좀 하다가 일이 잘 안되고 알아주지 않고 상황이 힘들어지면 주의 일을 회피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무조건 편하고 좋은 것만을 찾지도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좌우되지 않으며,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관계없다. 주님 주신 은혜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고난이 오거나 누가 어떻게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감사하며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약하고 악하고 거짓되고 죄로 말미암아 어두운 곳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리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많은 시련과 유혹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들엔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히 주신 사명 감당하며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은혜, 진정한 은혜를 받자. 주님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생각하자. 그래서 어떤 상황과 환경과 조건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게 됨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모든 상황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주신 사명 감당하며 의연하게 천성을 향해 나아감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3.서로 문안하라.

벧전5:13,14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도는 마지막으로 서로 문안할 것을 권면한다. 여기서 바벨론이란 오직 육체적 물질적 유익과 기쁨과 만족만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세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계18:2절에서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래서 당시 교회에서는 오직 세속적 관점으로 나라를 통치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가장 큰 세력인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 아들 마가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하였다. 마가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상당히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 멋모르고 1차 전도여행 시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갔다가 너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2차전도 여행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이 사람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의견 충돌이 생겨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따로 전도여행을 하게 된다. 이후로 마가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바울에게도 인정받고 베드로에게도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로마교회와 마가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하면서 너희 끼리도 서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볼이나 이마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물론 이것은 친밀감의 표현이다. 그렇게 너희도 서로 친밀하게 문안하라는 것이다.

물론 문안한다는 것은 그저 서로 안부나 물으라는 것은 아니다. 믿음안에서 형제자매된 자들로서 마땅히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면서 형편을 살피며 기도해주고 축복해 주고 위로자가 되고 힘이 되고 도우며 좋은 교제 가운데 더욱 믿음 위에 굳게 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안에서 형제자매라는 것을 기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하자. 서로 가까이하며 위로자가 되고 힘이 되자. 그러기 위하여 더욱 친밀한 교제도 이루어가자.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진정한 가족으로써 서로 위로받고 힘을 얻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자.

4.축도

벧전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서신서의 마지막은 언제나 축도이다. 고전16:23,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빌4:23 골4:18, 살전5:28, 살후3:18, 딤전6:21, 딤후4:22, 딛3:15.....

이러한 축도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축복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축복의 내용이다. 그렇다. 우리는 무조건 서로 축복해야 한다. 예수님은 원수조차 사랑하라 하였고, 롬12:14절에서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물론 그 말씀대로 살 때에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자. 결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저주하고 하지 말라. 그건 마귀가 하는 짓이다.

그러면 축복하되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다. 물론 돈과 건강과 명예의 복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생명을 얻고, 물질도 육체도 명예도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고 모든 상황에서도 진정한 은혜를 누리게 되고 물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인하여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지키자. 아니 믿음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와 기쁨으로 기꺼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자. 이 일을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며 천성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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