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님의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답변
오래전 고 이병철 삼성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카톨릭교 신부에게 질문한 내용이 중앙일보에 보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회장님께서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사춘기 청소년 같은 솔직하고 평범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질문을 하셨기에 이에 대해서 나도 나름대로 답해보고 싶었다. 물론 고 이회장님께 답해드리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나도 이회장님과 같은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 자신에게 답해보고 싶은 것이다.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으며 신은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
세상사(섭리)를 보면 신이 있고, 신은 이미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세상사를 통해서) 있다.
따라서 신은 보고자 하면 보이고, 보고자하는 마음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에 공기(하나님)와 바람(섭리)이 부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세상사)을 보면 공기(하나님)의 존재와 바람(섭리)이 부는 것을 보는 것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 데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時. 空. 靈魂의 한계물)은 없을 것이다.
창조주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피조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창조주 즉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창조주 외에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존재하는 피조물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3. 창조와 진화 중에 어느 것이 맞는가?
창조는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다. 성경자구에 묶여서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창조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 나는 창조과정에 진화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진화는 변화이지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비유와 상징의 표현이다. 몇십만년 전의 원시인류의 화석이 발견되는 데에 성경처럼 6천년 전에 인류가 창조되었다고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과학의 시대에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다. 비록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것 또한 신의 창조인 것이다.
4. 과학이 발달하면 무병장수의 시대가 올 것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피조물의 한계를 넘지는 못한다.
무병장수는 축복이아니라 끔직한 재앙이다. 사는 목표가 죽음인데 죽음을 없애면 무엇을 목표로 해서 진지하게 살겠는가?
죽음을 근본적으로 의식하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며 자식들을 사랑하고 잘 키우려고 애쓰며 희망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다행인 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이 죽을 날을 비밀에 부쳐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죽을 날을 미리 안다면 이 또한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어 갈 것일 텐데...
아무튼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마치 ‘하급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계기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5.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왜 고통과 불행과 아픔을 주었는가?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아픔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주인이 되시는 신의 마음대로이다. 이것은 현실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고통과 불행과 아픔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지 원래 고통과 불행과 아픔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 신의 관점과 피조된 인간의 관점이 정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이 여실히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이 바로 고통과 불행과 아픔 자체이지, 신은 자신의 자식인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과 아픔을 주지 않으신다. 이런 문제는 신과 자신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고통과 불행과 아픔은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이다.
이런 것들이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교향곡을 구성하는 악보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바로 인간에 대한 신의 신묘막측한 사랑(배려)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어야 진정으로 원숙한 인간이라 할 것이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선.악을 포함한 신의 창조와 섭리는 인간이 따질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부모님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는 것보다 더 불경스럽고 어리석은 질문이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이다. 선과 악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神은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춰가며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오늘도 섭리하고 계시며 그 와중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행.불행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히틀러도 어린 시절에는 하나님을 갈망했던 믿음을 동경한 신실한 소년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신의 섭리에는 선.악이 그리고 선인과 악인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 우리가 죄를 짓도록 버려두다가 결국 예수의 대속에 의지해야만 하게끔 만들었는가?
時空안에 있는 피조물은 원천적으로 죄의 소산이고 죄를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이 제일 우선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하나님도 예상하시고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피조물들 간의 조화를 원하셨지만 그 사랑의 뜻이 인간의 상징인 아담의 욕심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구원책으로 신이 친히 예수의 형태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들의 죄악의 환부를 수술하여 주시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죄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며 그러므로 예수의 대속에 의해서만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과 일심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다시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받을 수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다. 인간이 혼자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스스로 구원받을 만한 의인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8.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성경은 원래 수많은 사본이 존재하고 원본은 없는 책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어떻게 관여(섭리)하고 계신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쓴 신앙의 기록들 가운데서 가장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들만 추려서 발간한 것이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자는 따로 있지만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이회장님 같은 탁월한 분들도 의심을 가지는 인간과 인생에 관해서 명확한 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출현한 책이 성경이다.
9. 종교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종교에 대한 몰이해에서 묻는 질문이다. 종교는 진리이고 현실이다. 종교라는 말 대신에 ‘현실의 진리’라는 말을 쓰면 이해가 될 것이다. 종교는 현실과 동 떨어져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현실문제 자체이다. 종교(신)가 가장 1차적이고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현실이다.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이다. 그러므로 하드웨어인 육신은 망가져도 소프트웨어는 존재한다. 靈魂중에서도 혼은 살아오면서 생각한 마음의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의해서 죽은 후에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영은 영원한 것이다. 이 영을 통해서 창조주와 연결되는 것이고, 육신은 죽어도 가장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인 靈은 본질상 피조된 물질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기에, 없어질 수(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은 원래의 고향인 창조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모든 종교는 존재의 진리를 찾는 것이다. 즉, 인간과 세상의 본질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든 종교는 보는 관점과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나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결코 타 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싶지 않다.
12. 종교를 갖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가?
종교를 갖지 않아도 자신이 유한한 피조물임을 자각하고 따라서 전지전능한 신을 인정하며 신을 위주로 살아간다면 천국이나 극락에 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현실적으로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교만으로 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성공했든 실패했든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피조물의 한계를 자각하지 않고 산 사람은 신이 가장 낮은 등급으로 취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님을 무시하고 혼자 산 자식과 같기 때문이다.
13. 종교의 목적은 착하게 사는 것인가?
종교의 목적은 자신이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지, 착하게 살도록 유도하는 것이 직접목적은 아니다.
물론 종교에 심취할수록 이전보다 더 착하게 살게 되는 것은 부수적이며 필연적 현상이다.
14. 인간의 영혼이 죽은 후에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맞는가?
인간의 영은 창조주께로부터 왔기에 魂.肉과 달리 원래의 자리인 창조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군대에서 제대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魂(사는 동안 가졌던 마음의 이력서)과 육은 이 세상에서 산 흔적이지만 靈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프트웨어는 원래 있던 곳인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 지?'는 죽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 것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자신의 믿음대로는 살아야 한다. 그 성적표는 나중에 받아볼 수 밖에 없다.
이왕 한 세상 사는 것, 후회없이 살도록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봐야하는 것일 뿐이다.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주는 교훈은?
신앙과 세상살이와는 별개이다. 각자가 받은 재능이 다르기에 신앙이 없어도 이회장님 처럼 대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신은 각 개인을 필요에 따라서 창조하고 사용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이회장님이 온 힘을 기우려서 사업을 한 결과, 이 나라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섭리였다. 이 회장님이 누린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신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이회장님이 죽을 때, 살아있을 때에 벌었던 것을 가지고 가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다면 실망이다.
하나님은 신앙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창조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향권 밖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부인해 봤자 하나님께 불효만 하는 것이다!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이라고 비유했는데에 그러면 부자는 악인인가?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무슨 마음으로 부자가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나라와 이웃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을 일구고 부자가 되었고, 이런 부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면 물고기가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당연하듯이 당연히 부자도 천국에 들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도 세리 삭게오의 중심을 보셨지 그의 사회적인 평판을 보시고 구원하신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17. 종교와 범죄는 상관이 없는가?
성경은 아담이후에 사람은 원래 악한존재(성악설)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입 속에 넣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종교가 범죄를 점차적으로 줄일 수는 있어도 종교국가라고해서 범죄가 현저히 감소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국민들이 진심으로 종교인이 아닌 이상, 종교의 범죄예방효과는 크지 않지만, 점차적으로 범죄감소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교도소를 백 개 짓는 것보다는 예배당 하나를 짓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18. 신앙인이 광인처럼 되는 이유?
여기에는 바람직한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바람직한 면은 정말로 은혜로 충만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현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는 이단 종파에서 보듯이 독단적인 아집에 빠져서 사회의 빈축까지 사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종교를 자신의 현세에서의 한풀이나 내세에 대한 보장에 국한해서 생각한다면 광인처럼 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19. 종교와 정치는 별개인가?
종교는 인간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대신에 국가 권력과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면과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종교와 정치는 별개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이고 바람직하다.
그래서 주님도 바리새인의 교묘한 질문에 "하나님의 것은하나님께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로..."라고 답하셨지 않은가?
정치는 현실이고 종교는 현실이 목표로 하는 원대한 개념이기에, 정치와 종교가 합해지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성이 될 것이다. 선도 악도 아닌 어중간한 돌연변이가 될 것이다.
20. 우리니라에 교회가 많은 데에 왜 그렇게 범죄가 많은가?
하나님의 구원과 창조과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조급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 중에 참 신앙인이 많아진다면 분명히 범죄와 사회적 시련은 점차로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에 던지는 이회장님의 꾸지람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21. 로마교황의결정에는 잘 못이 없다는데?
로마교황도 사람인 이상 잘못이 있겠지만 일반인들 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분이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잘못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교황을 한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이해해 드려야 한다.
22.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가?
기독교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기독교의 이상과 배치된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모든 교인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마 이것이 기독교적 이상일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숙제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현실적으로 기업가를 중히 쓰시는 것을 보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때에 따라서는 자본주의도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23.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모든 피조물은 시작과 끝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거대한 우주도 피조물이기에, 가엽게도 시작과 끝이 있는 데에 지구에 왜 종말이 없겠는가?
다만 종말은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하계가 태어나고 성장하다가 죽고 다시 태어나듯이...시작과 끝은 언제나 맞물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우리가 알고자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후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기업가이신 고 이병철 삼성회장님도 죽을 때가지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번민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 같은 범생들로 하여금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군요.
교우 여러분! 사는 끝 날까지 영.육간에 건강히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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